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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의 미디어 ― 식민지조선의 메타미디어

        이경돈 ( Lee Kyeong-don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8 大東文化硏究 Vol.0 No.104

        ‘신문의 신문’인 언론전문지는 한국 言論史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근대 언론의 주체인 미디어를 언론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메타미디어의 출현이기 때문이다. 언론전문지의 출현으로 기존 미디어 위에 메타 미디어의 지층이 형성되어 식민지조선의 미디어장은 복층 구조로 변화했다. 이는 미디어와 메타미디어의 관계 성립에 따라 언론의 성격과 양상도 다른 단계에 진입했음을 뜻한다. 미디어가 비평할 수 있고 또 비평해야 할 대상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로서 언론을 검열하는 식민권력과 마찬가지로, 언론을 비평하는 언론 또한 언론의 의미를 비틀고 흔들어 놓았다. 그런 점에서 언론전문지는 신문 이상의 신문이었다. 3.1운동 이후 조선문 신문이 다시 발행되었고 여러 기자단체도 결성되었다. 4대 조선문 신문 체제가 성립하고 무명회와 철필구락부 등 기자단체가 활동을 전개했다. 이를 기반으로 1925년 조선인 신문기자 중심의 조선기자대회도 개최되었다. 언론연구도 시작되었다. 김동성의 『신문학』 발행, 조선신문연구협회의 활동, 김현준의 박사학위 논문, 임경일의 『신문』 발행 등은 대표적 언론연구이다. 조선문 신문, 기자단체, 언론연구는 식민지조선에서 언론계가 형성되었으며 언론전문지가 출현할 수 있는 토대가 구축되었음을 뜻한다. 식민지조선에서 발행된 첫 언론전문지는, 1925년 오사카마이니치신문 기자 출신인 김학수가 조선 내 일본계 신문사를 배경으로 발행한 『신문춘추』였다. 그 후 조선신문연구협회의 『신문연구』, 조선문 신문 사회부기자를 중심으로 한 『신문춘추』와 『철필』이 언론운동과 기자단체를 배경으로 발행되었다. 그 뒤 상업적 언론전문지를 지향한 『호외』, 파시즘의 횡행에 대응한 『쩌날리즘』도 언론전문지로 발행되었다. 4호를 발행한 『철필』을 제외하고는 모두 창간호가 종간호가 되었기에 식민지조선을 관통하는 언론전문지를 거론하기는 어렵지만, 2~3년의 간격을 두고 언론전문지가 명멸을 지속했다는 점에서 식민지조선의 메타미디어는 실존했다. 언론전문지의 기사는 대개 신문 및 미디어현상에 대한 논문과 신문비평, 기자 활동관련 취미독물, 시와 소설 등 문예까지 다루었다. 메타미디어로서 언론계를 감시, 비평하는 소명과 함께 기자들의 단합과 조직에 기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나아가 일반 독자들까지도 고려했다. 메타미디어지만 언론계 독물, 기자를 위한 독물, 대중적 독물을 고루 배치했던 것이다. 언론전문지는 언론계의 소식을 전하는 메타미디어였을 뿐 아니라 신문기자의 동호회지이기도 했고 식민지조선인의 대중 독물이기도 했다. 메타미디어는 미디어 지식을 전달하는 미디어 계몽자이자, 개별 미디어들을 비평하는 감시자였다. 이로서 식민권력의 반대편에서, 언론계의 내재적 힘에 근거해 미디어를 통제하는 언론권력의 가능성이 현시되었다. In the history of Korean media, a media critic paper is special, because metamedia which has changed the media as a modern subject into the object of media appears. A media critic paper makes the layer of the metamedia on the existing media. and this causes the change of the media into multi-layered structure in Korea under Japanese rules. This means that the characters and aspects of media enter into the different level according to the relation between media and metamedia. This downgrades the position of media as the object which another media can and must criticise. And thus, the meaning of media was twisted and shook by the media which criticise the media. A media critic paper was the paper more than a paper. After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korean paper was published again. And several reporter's groups were organized too. The system of four korean paper was established. The reporter's groups such as mumyeonghoe and cheolpil club went into action. Based on this, journalist competition centering korean reporters was held in 1925. A various studies on media had just began. For example, the publication of Sinmunhak(Tounalism) by Kim Dongsung, the activity of Chosun paper study club, the a doctoral thesis of Kim hyunJun, the publication of Newspaper by Lim Gyeongil. These examples showed that journalism was developed in Korea under Japanese rules. The first media critic paper was Sinmunchunchu issued in 1925. Kim haksu came from Osacamainichi issued the paper with a support of japanese paper company in colonial Korea. After that Sinmunyeongu, Sinmunchunchu, Cheolpil were published under the media movement and reporter's organization. Also Hooe showing commercial features, Journalism against the advent of fascism were issued successively. Except Cheolpil which was published to fourth edition, all other papers had only the first edition. So the first edition was the last edition. This is why we are not able to mention the metamedia which can show the entire character of Korea under Japanese rules. But we can recognize the possibility and necessity of metamedia in Korea under Japanese rules from the fact that a media critic paper appeared and disappeared every 3~4 year. Metamedia was the media illuminator delivering the knowledge as well as the surveillant monitoring personal media. This showed the possibility of media power controlling the media based on the indwelling power on the opposite of the colonial auth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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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론(論)’의 중력 ‘설(說)’의 매력 - 근대 미디어텍스트체제와 국론(國論) -

        이경돈 ( Lee¸ Kyeong-don ) 반교어문학회 2021 泮橋語文硏究 Vol.- No.58

        민의(民意)를 확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근대에 이르러 이 유령 같은 민의는 계량할 수 있는 단위로 환산되었다. ‘사실화된 민의’, 즉 ‘여론’의 등장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민의를 대체한 근대의 여론은 항상 민의로부터의 이반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타르드와 리프먼, 하버마스로 이어지는 여론론을 일별하면, 여론은 ‘가사실’에 기반한 ‘헌법적 허구’의 ‘텍스트’들이 현상하는 일시적 ‘텍스트 체제’로서 ‘실재적 사실’로 간주할 수 없다. 텍스트의 생성과 매개의 과정은 외부적 힘에 의해 뒤틀림을 전제하는 조건이다. 따라서 근대의 여론은 항상 계몽여론이었고 계속되는 민의와의 어긋남은 여론의 숙명이었다. 게다가 ‘말하는 소수’와 ‘듣는 다수’를 고려하면 뒤틀림의 폭은 더욱 커진다. 식민지근대에 여론은 통제하는 식민권력, 높은 문맹률, 희소한 텍스트 창출자, 협소한 매체 선택권 등의 조건에 둘러싸여 있었다. 여론이 계몽과 결부되어 조성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인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언론은 ‘론(論)’-‘보(報)’-‘설(說)’의 삼각 편제를 갖추었다. ‘보(報)’는 사실의 영역에서, ‘설(說)’은 공감의 영역에서, ‘론(論)’은 동의의 영역에서 사회에 대한 인식과 감정, 그리고 의지를 지면 위에 펼쳤다. 흩어진 사실의 조각들에, 감정의 매혹을 일으켜 공감을 이끌어내고, 정당성의 중력을 부여해 일반의지를 창출한다. 그러므로 논픽션인 ‘보(報)’가 픽션인 여론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설(說)’의 매력과 ‘론(論)’의 중력이 사실의 언어에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론(論)’-‘보(報)’-‘설(說)’의 삼각 편제는 근대 저널리즘의 여론 조성력이 어떻게 창출되는지 보여준다. 그리하여 근대의 여론은 원천적으로 픽션이 되고 식민지근대의 여론은 계몽적 리얼리즘이 되었던 것이다. 민의를 근거로 출현한 여론은 수행성의 최종심급인 국론을 지향한다. 그러나 국가부재의 국가상태인 식민지조선에서 민의의 반영인 여론은 국론이 될 수 없었다. 식민지에서의 국론은 항상 외부에서 결정된 것이며 이 타자성으로 인해 민의와 국론은 더 선명한 불일치를 드러낸다. 식민지조선에서 여론은 민의를 반영하는 여론이 아닌, 유사민의(類似民意)의 괴물같은 국론만이 시대를 휩쓸었다. It is almost impossible to confirm the will of the people. In modern times, these ghostly will of the people were converted into quantitative units. It means the emergency of public opinion that is believed as true. However, paradoxically, public opinion which replaced the will of the people, has always been a thing that is alienated from the will of the people. In a glimpse of the public opinion theory that leads to Tard, Lippman, and Habermas, public opinion cannot be regarded as a "real fact" because it is a temporary "text system" developed by "texts" of "constitutional fiction" based on "false facts." The process of generating and paraphrasing text is a condition that presupposes warping by external forces. Therefore, public opinion has always been enlightened public opinion and the fate of public opinion has continued to be contrary to the will of the people. Furthermore, considering the "speaking minority" and "listening majority", the extent of warping is even greater. In modern colonial times, public opinion was surrounded by conditions such as colonial power, high literacy rates, sparse text creators, and narrow media choices. It is an environment in which public opinion was bound to be created in conjunction with enlightenment. In these circumstances, the media has a triangular system of editorial, news, and story. In the realm of facts, empathy, and consent, each system shows the perception, emotion and will of society on the paper. In scattered fragments of facts, it creates an emotional fascination, elicits empathy, and creates a general will by justification. Therefore, the reason why nonfiction "News" can reach public opinion is because of the charm of "story" and the power of "editorial" The triangular composition of "editorial," "news," and "story" shows how modern journalism creates public opinion. Thus, public opinion became essentially fiction and colonial public opinion became enlightening realism. Public opinion based on the will of the people is aimed at national opinion, which is the final level of policy enforcement. However, national opinion, a reflection of the people's will in colonial Joseon, which is the absence of nation, could not be a national opinion. The national opinion in the colonies has always been decided by external forces, and this otherness reveals a clearer disagreement between the people's will and national opinion. In colonial Joseon, public opinion was not a reflection of the will of the people, but was only the monstrous national 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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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의 여론시대와 계몽여론

        이경돈 ( Lee Kyeong-don ) 민족문학사학회·민족문학사연구소 2017 민족문학사연구 Vol.0 No.64

        식민지에 여론의 존재와 그 의미를 논하는 것은 계륵처럼 불편한 일이다. 근대의 도래와 잇따른 매체의 등장으로 여론은 자명한 존재인가 하면, 제국의 통제와 억압 속에 또한 여론은 부재하거나 무의미하다. 식민지 조선에서 여론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텍스트이자, 미디어이며,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근대국민국가인 여론, 그 여론의 개념 변화와 구현된 실상으로서 식민지 조선에서 여론의 의미를 묻고자 한다. 근대 초기, 여론이라는 개념이 계몽되기 시작한 때의 논의를 보면, 여론에 대한 공통인식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여론은 국가의 최종적 권력을 형성하고 또 집행하는 유일한 힘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여론은 국론을 지향한다. 둘째 여론은 `발표` 즉 미디어와 텍스트로 생성되어, `공감`을 통해 실제화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근대 여론의 개념은 계몽이 여론과 결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해 있었다. 입론자(필자)의 제한성, 미디어의 일방향성, 그리고 국가의 검열시스템 등 근대를 둘러싼 환경은, 미디어와 텍스트 없이 산출될 수 없는 여론, 국가를 지향하는 속성과 결합해 계몽과 손잡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국론을 지향하는 여론의 속성은 장기지속을 요구하는 사회적 마모보다 계몽의 역능을 활용한 억압적 지배로 이어질 가능성도 함께 지니고 있다. 병합을 앞두고 벌어진 보편타당론과 다수당파론의 대립은 진리로서의 여론과 세력으로서의 여론에 대한 해석의 갈등을 보여준다. 여론 없이 국론만이 횡행하던 1910년대가 3·1운동으로 종결된 직후, 이돈화는 여론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여론은 서로 다른 `개성`이 발현되는 것이고, 산포한 소망이자 각각의 견해이고 서로 다른 감정이며, 그래서 단일하고 균질한 국론을 후경화시켰다. 흥미롭게도 인민의 여론에 의한 지배를 상상하는 공화, 민주적 형상이 오히려 국가 부재의 국가 상태에서 제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돈화의 주장처럼 각기 다른 욕망과 이해들이 서로 다른 경험과 선택들 사이에서 다르면서도 닮은 삶에의 견해로 남겨지는 것이 여론이라면, 여론은 계몽과 결탁할 수도 없고, 또 단일하고 균질한 `국론`으로 통합될 수도 없다. 물론 쇼와시대를 맞으며 이돈화의 공화, 민주주의적 여론 개념은 좌절했고 식민지의 여론시대는 계몽여론으로 채워졌다. 다만 『삼천리』, 『철필』 등에서 공화, 민주주의적 여론 개념은 명맥이 유지되었다. 그리고 계몽의 극대화와 국론의 전면화 속에 식민지의 여론시대는 막을 내렸다. 식민지에서 민의와 여론이 끊임없이 서로의 그림자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디어로 대리되고 텍스트로 계몽되는 여론, 단일한 국론을 지향하는 식민지 여론은 발본적 의미에서 항상 민의의 그림자일 수밖에 없다. Modern nation where people get their right can`t exist without public opinion. It is necessary that from the Great Han Empire when the nation started to change into modern people nation like I mentioned, the concept of public opinion was introduced. But public opinion was just a shadow of people`s will and it was born with the destiny that could not match with the will of the people. As a result of studying the early modern public opinions, we can compress the common sense about public opinion into two. First, all public opinions were toward the national public opinions. Second, they were considered that the public opinions which wanted to follow the national opinions were known to the world through the process of media, presentation, and they were appeared by productions of texts. But like Lee Don Hwa argued, if each different desire and understanding which is different and at the same times similar is left as public opinions, they are impossible to be combined as only, homogeneous national opinions. Public opinions which are considered as a way of following the truth and are based on nations are also denied. Although this kind of thinking is collapsed, the essence of public opinions are that the public opinions are not only text but also media. Because of this characteristic, public opinions became to get a nature of enlightenment. And thus all modern public opinions became the public opinions which have a characteristic of enlightenment. Public opinions can`t not but coexist with various stories to acquire the final goal, sympathy. Public opinions are explanatory and simultaneously demonstrative, also descriptive and epic and even lyrical. That was the reason why the colonial period was not finished with the theory. That was the reason why popular feelings and public opinions only exist as each other`s shadows. Public opinions which are addicted to inevitable theory of truth, and can be substitutes of media and enlightened by texts, and intended to follow the only, homogeneous national opinion only become the shadows of public opinions origin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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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 국어국문학 연구와 함께한 반교어문학회 30년 ; 세 척의 함선 세 곳의 행선지 -2010년대, 문학 연구의 향배

        이경돈 ( Kyeong Don Lee ) 반교어문학회 2012 泮橋語文硏究 Vol.0 No.32

        최근의 문학연구는 세대를 논하는 것이 무색하리만큼 매우 빠르게 변화했고 또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 변화의 동력은 크게 세 번의 변곡점으로부터 생성되고 있다. ``87년 체제``와 ``90년 구도``, 그리고 ``세기초 사태``들의 혼조 속에 동시대 아닌 동시대가 지나고 있다. 생명력은 소진되고 있으나 여전히 명맥을 지속되고 있는 ``문예 연구``, 문학의 외곽에서 문학을 규율하고 틀 짓는 힘에 주목하는 ``제도 연구``, 문학의 개념을 재질문하여 짜인 것 일반을 사유함으로써 문학의 근대를 넘어서려는 ``텍스트 연구``, 신세기적 변화 속에 문학에서 문화로의 중심 이동을 통해 문학의 저편으로 지평을 옮기고자 하는 ``문화연구``, 이 모두가 2010년대 문학연구의 향배를 가늠케 하는 화두들이며, 엎치락뒤치락 얽히고설키며 나아가는 이들의 매듭이 신세기 초를 이루는 문학연구 그 자체가 아닐까. 어떠한 계기들이,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열릴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기대와 우려, 희열과 좌절들이 이 시간들을 점철해갈 것이다. 그 뿐인가. 어디선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변화의 계기가 개입할지 알 수 없다. 다만 세대 및 시대의 교차와 분절, 신세기적 지각변동은 항용 그렇게 현현(顯現)하는것이기에, 새로운 세기의 문학연구는 이 함선들의 독행(獨行)와 혼성(混聲) 속에 세기초의 문학연구도 혼류(混流)의 형상을 갖추어갈 것이다. Recently, the study of Korean modern literature has been changed very fast. Three historical factors cause the changes in Korean Literature. The three factors were the Regime of 1987, the Composition of 1990, and the Situation of early new epoch. The study of literature has almost vanished but it doesn`t mean all is gone. The study on the literature system, the textology(textwissenshaft) and the cultural study rise as new and radical ways of literature studies. So we can understand all these three studies are headed for radical adventures. The study on the literature system focuses on the circumstances which make the literature. The textology means the study about the text - it is woven for some purposes not only in literature but also beyond literaturefor example tales, movies, advertisements, historical stories, web text and so on. The cultural study intends to study the real life of the people and thus tries to mix history and literature. These three tendencies are getting entangled and weaving, so it makes the feature of the study on the Korean literature early new ep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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