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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성준 승무 연구 : 김천흥본과 이주환본을 중심으로

        위송이 단국대학교 대학원 2019 국내박사

        RANK : 248655

        승무(僧舞)는 대표적인 한국 전통춤이며 사상성과 형식을 두루 갖춘 최고 수준의 춤이다. 1907년 12월 24일 협률사에서 공연된 관기들의 자선연주회를 시작으로 계속 공연되었다. 1913년 ‘고종 탄신 62세 축하연’에서 민속무용 중 유일하게 공연되었으며, 기생조합과 권번의 기생들의 주요 종목이었다. 한성준은 근대 전통춤의 거장으로서, 1935년 첫 작품발표회에서 발표된 승무는 여러 제자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이 연구는 일제강점기에 추어진 한성준의 승무를 올바로 이해하고 원형을 탐색하기 위해서 김천흥본과 이주환본을 중심으로 한성준의 승무를 고찰하였다. 연구를 위해 Ⅱ장 1절에서 일제강점기 승무공연의 전개양상에 대해 알아보고, 2절에서는 한성준의 생애와 승무, 3절에서는 김천흥의 생애와 승무, 4절에서는 이주환의 생애와 승무에 대해 알아보았다. Ⅲ장에서는 김천흥본, Ⅳ장에서는 이주환본을 장단별로 무보화 하였다. V장에서는 김천흥본과 이주환본 승무의 춤사위, 동선, 구성에 대해 비교해 보았다. Ⅵ장에서는 V장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성준의 제자였던 한영숙과 강선영의 승무와 비교하여 무대, 음악, 춤사위, 법고로 나누어 한성준의 승무를 분석했다. 19세기의 승무는 극 형태였으며 20세기 초 스토리가 사라지며 현재의 형태인 홀 춤으로 변화하였다. 일제강점기 승무는 권번과 극장에서 첫 순서로 많이 추어졌으며 기생, 고전 무용가, 신무용가 그리고 외국인까지 배우고 공연하며 쌍승무, 성진무, 쌍고사승무, 바라승무, 노승무, 바라무, 승무의 인상 등 다양한 형태로 추어지고 개칭되어 공연되었다. 이러한 승무는 조선춤의 기법과 서사적 배경이 내포되어 있으며 그 구성이나 작품성이 매우 뛰어났다. 이 연구를 통해 한성준의 승무의 원형을 재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대 구성의 측면에서 북의 사용방식과 위치는 자유로웠다. 둘째, 음악 구성에서 장단의 구성은 염불, 자진염불, 느린타령, 자진타령, 느린굿거리1, 자진굿거리1, 느린굿거리2, 자진굿거리2, 법고, 느린굿거리(마지막)이다. 셋째, 굿거리·법고과장에서 느린굿거리1, 자진굿거리1은 장삼놀음, 느린굿거리2는 북채놀음, 자진굿거리2와 법고는 북놀음, 느린굿거리(마지막)는 장삼놀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넷째, 춤의 시작은 상수에서 걸어서 등장하며, 마지막은 중앙에서 정면을 보고 끝났으며, 법고의 가락은 발전해가는 중이였다. 다음은 한성준 승무의 과장별 춤사위와 구성의 특징이다. 염불과장에 ‘퍼 넘기는 사위’와 북을 치는 구성이 있다. 타령과장에서 느린타령 초입에 ‘북치는 사위’, ‘밖으로 뿌리는 사위’, ‘앉는 사위’ 후 회전하여‘밖으로 뿌리는 사위’와 ‘앉는 사위’를 반복하는 춤사위절과 이마 앞에서 원형으로 뿌리는 춤사위절이 있다. 자진타령 초입에는 ‘북치는 사위’, ‘앉는 사위’를 반복하며 양팔을 사선 위로 뿌리고 감는 사위를 한다. 굿거리과장에서 ‘궁체’의 춤사위가 많고, 느린굿거리2는 북채놀음으로 구성되었고, 느린타령과 느린굿거리에 춤사위 횟수가 증가하는 구성이 있다. 한성준 승무의 자진염불, 자진타령, 자진굿거리1에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좌, 우를 반복하는 구성으로 1, 2박에 북을 치고 춤사위를 하고 다음 장단에 반대쪽으로 반복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단의 동작이 양손으로 북의 중앙을 치고, 양팔을 올려 안으로 뿌린 후 양손으로 북의 면을 치고, 각을 치고 양팔을 위로 올려 뒤로 넘기는 것으로 모두 같았다. 마지막으로 자진부분이 끝나고 다음 장단의 첫 박에 마지막장단에 뒤로 넘겼던 양팔로 북을 치며 뒷걸음으로 북에서 물러난다. 한성준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인물로 극 형태와 홀 춤 형태의 승무를 모두 접하였다. 1935년 승무 초연 당시 홀 춤에 극 형태의 승무를 가미하여 심오한 불교의 세계를 표현하다가 장삼과 고깔을 벗고 원초적인 삶의 세계를 표현하였다. 이후,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승무 공연을 허가해주지 않아 스토리가 사라지고 북놀음이 빠진 장삼놀음과 바라춤으로 구성된 바라승무, 바라무, 노승무의 명칭으로 주로 공연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법고가락이 춤에 비해 많이 발전하지 못하였다. 이렇게 한성준의 승무는 외형적인 스토리가 없으며 복식은 흰 바지, 저고리를 입고 행전을 한다. 그리고 위에 횐 장삼에 붉은 가사를 두르고 횐 고깔을 쓴다. 춤은 서서 시작하고 염불과장에서 무겁게 춤을 추고, 타령과장에서 장삼소매를 힘차게 날리며 역동적으로 변하고 굿거리과장에서 제자리에서 어르거나 회전하며 호흡을 끌어 올려 부드럽게 이어간다. 법고과장에서 16~19장단 정도 힘차게 북을 치며 승무의 절정을 보여주고 느린굿거리(마지막)에서 다시 장삼놀음을 통해 긴장감을 풀어준다. 그리고 정면을 보며 인사를 하고 마무리 했을 것이다. 동선에 있어서는 염불에 주로 사선동선을 사용하고, 타령에는 좌, 우로 이동하는 일자이동 동선, 굿거리에는 앞, 뒤로 이동하는 동선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리고 자진염불, 자진타령, 자진굿거리1, 자진굿거리2에서 제자리에서 북을 치거나 회전하는 동선을 주로 사용하였다. 이상과 같이 한성준 승무의 구성과 춤사위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김천흥본과 이주환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춤사위, 동선, 구성 등은 한성준이 모든 제자에게 공통적으로 가르친 것으로 보여지며 이러한 공통점은 일제강점기 한성준 승무의 기본 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성준은 개인지도 교육방식으로 모든 제자에게 똑같이 가르치지 않고 개인 기량과 특성에 맞게 지도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한성준의 승무에서 민속춤의 즉흥성과 열린 구조를 찾을 수 있으며 그의 전수교육 방식의 고유성을 읽을 수 있다. 이 연구의 자료로 사용한 이주환 「승무보」는 일제강점기 한성준의 승무를 기록한 유일한 자료로서 한성준 승무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조사보고서 ‘승무’󰡕에서 생략된 법고가락까지 기록되어 있고 그 내용도 상세하여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이번 연구를 통하여 승무의 다양성 또한 확인할 수 있었으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승무 외에 많은 형태의 승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새로운 자료 발굴을 통하여 많은 형태의 승무들을 심도 있게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 Seungmu(僧舞) is the representative traditional dance of Korea and the best dance that features thoughts and form. It has been performed from December 24th in 1907, which was first performed in Hyupryulsa as a charity concert of Korean official geisha. It was performed as a only one among folk dances at‘Gojong’s 62th birthday celebration’ in 1913 and it was a main event of Korean geisha(Gisaeng) association and a Gisaeng call-office. Han Seong-jun is a master of traditional dance in modern Age and the first Seungmu of performance in 1913 was passed down by his disciples. Han Seong-jun Seungmu was researched focused on Lee Joo-hwan bon and Kim Cheon-heung bon to properly understand in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 rule. In No. 1 of chapter II the development phase of Seungmu performance in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 rule was researched, in No. 2, Hanseung jun’s life and Seungmu and in No. 3, Kim Cheon-heung’s life and Seungmu and No. 4, Lee Joo-hwan’s life and Seungmu. In chapter III, Kim Cheon-heung bon and in chapter Ⅵ Lee Joo-hwan life and Seungmu was transcribe by beat respectively. In chapter V, dancing steps, flow and composition of Kim Cheon-heung bon Seungmu and Lee Joo-hwan bon Seungmu were compared respectively. In Chpter Ⅵ, Han Seong-jun Seungmu was analyzed compared with Han Young-sook and Kang Seon-young Seungmu of Han Seong-jun’s disciple by classifying stage, music, dancing steps and Beopgo focused on the content of chpater V. Han Seong-jun Seungmu in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 rule can be inferred as follows. First, when it comes to the composition of stage, the way of playing and position of drum is free. Second, with regard to music composition, it is composed of Buddhist prayer, Neurin Taryeong, Jajin Taryeong, Neurin Gutgury 1, Jajin Gutgury 1, Neurin Gutgury 2, Jajin Gutgury 2, Beopgo and Neurin Gutgury(final one). Third, Gutgury·Beopgogwajang consists of Neurin Gutgury 1 and Jajin Gutgury 1 does composed of jangsamnoleum, Neurin Gutgury 2 does Bukchaenoleum, Jajin Gutgury 2 does Beopgo and Buknoleum , and Neurin Gutgury(the last one) does jangsamnoleum. Fourth, the dance begins with walking from the inside the downstage and ends with seeing forward. Fifth, the tune of Beopgo was developing. Next, the composition of dancing steps feature as follows. The phase of Buddhist prayer consists of‘digging and passing over’and playing the drum. The phase of Taryeong beings with ‘playing the drum’, ‘scattering , repeating of spinning around and scattering after sitting’and ‘scattering circularly over forward’. Jajin Taryeong beggins with repeating with‘playing the drum’ and ‘sitting’and scattering with diagonal line and winding. The phase of Gutgury has lots of‘Gungchae’dancing steps and Neurin Gutgury 2 consists of Butchae noleum. Neurin Taryeong and Neurin Gutgury increases dancing steps. Buddhist prayer of Seungmu, Jajin Taryeong, Jajin Taryeong, Jajin Gutgury have in common as follows. The repetition of left and right and playing a drum and at the first and second beat dancing steps and then repeating on the opposite side at next rhythm. The motion of last beat is same in that a performer play the drum and raising two arms passing ocer. Lastly, the part of Jajin ends and both arms back stays away from the drum walking backward at the first beat of next rhythm. These common things were adopted in Kim Cheon-heung bon, Lee Joo-hwan bon and Seungmu of Han Young-suk, Kang Seong-young, which indicates that Jajin part from Seungmu of Hanseungjoon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 rule are same with contents above. According to the contents above, Seungmu of Hanseungjoon beggins with standing and then dancing heavily in the phase of Buddhist prayer. Next, the sleeves of Buddhist monk’s robe becomes dynamic whirling in the phase of Taryeong and moving or spinning on the spot and raising breath, moving smoothly. At the phase of Beopgo, playing a drum powerfully, which is the peak of Seungmu and it becomes relaxed in Jansam noleum at Neurin Gutgury(the last one) and then it ends vowing standing straight. In addition, the capital Police Bureau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did not permitted Seungmu so it ruled out Buk noleum and Seungmu was performed being composed of Bara Seungmu, Baramu, Noseungmu. In this reason, Beopgo melody rarely developed compared with dance. Through this study has been researched the composition and dancing steps of Han Seung-jun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 rule. Through this study the common dancing steps, moving line and composition of Kim Cheon-heung bon, Lee Joo-hwan bon were handed down to their disciples, which is the big frame of Han Seung-jun Seungmu. Also, Han Seung-jun did not tutor all the disciples in the same way but tutored depending on disciples’skills and characteristics. This is identified from composition in spontaneity and open composition of folk dance and the he pursued various teaching method. Lee Joo-hwan 「Seungmubo」this study used is the only old document and it is very important. Especially, Beopgo melody that was ruled out from 󰡔Research Report‘Seungmu’󰡕 is recorded and the contents is detailed, which is worthy as a research material. This writer has identified the variety of Seungmu from this study. Seungmu has many forms beside the one as a national tangible cultural property. Further studies would be researched about the many forms of Seungmu through finding data and researches.

      • 경, 서도 소리 극 연구

        위송이 세종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 2010 국내석사

        RANK : 248639

        연극은 행동하는 인간에 의해 실제로 창조되며 동시에 현존의 구체적인 삶을 단일한 시간 내에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행위이다. 곧 한 민족에 연극은 그 민족의 종합적 실체이며 그 민족의 미래를 열어갈 중요한 예술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훌륭한 연극적 유산인 전통 연희(傳統演戱 ;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 를 지녀왔다. 본 연구는 이런 전통연희의 특징을 바탕으로 한 한국음악극의 전통소리를 연극의 표현 수단으로써 새롭게 활용한 ‘음악을 극의 중심’에 둔 경, 서도 소리 극 이란 장르에 대해 연구하였다. 또한 전통 경, 서도 소리가 음악극의 한 장르로써 그의 발생과 정착, 그리고 오늘날에 어떤 모습으로 무대화 되고 있는지도 살펴보았다. 경, 서도 소리 극은 경, 서도 소리를 무대화 과정에 따라 소리 극으로 발전되어 삼차원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연극 고유의 드라마와 연기까지 행하여져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 하는 총체예술이다. 그러나 대중극의 중요한 공연양식 중 하나인 경, 서도 소리 극에 대한 연구는 부진한 편이다. 판소리계 창극은 몇몇 자료를 볼 수 있었으나 경, 서도 소리 극은 극히 드물고 연구한 흔적을 찾는 것 또한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본 연구자는 경, 서도 소리 극의 장르정립과 일회성이 아닌 재창조의 발전을 위해 경, 서도 소리 극 중 ‘아! 도라 산’, ‘승천’, ‘황진이’를 년도 순으로 정리, 연극적 특성을 분석하고 무대형상화 과정 중 어떤 연극적 장치를 사용하였는지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자료화 하였다. 우리 문화의 순수성을 지키는 이러한 작업의 효과는 역사성, 정통성, 정형화로 우리 공연문화의 세계화에 빠른 진보의 지름길이 될 것이며, 전통문화를 보존하면서 그 순수성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삽입, 재창조 하여 현대 우리의 이야기로 공감하는 경, 서도 소리 극무대야 말로 우리들이 지켜 나가야할 뜻 깊은 작업이 될 것이다. 시대에 따라 국민들의 삶이 질적으로 높아지면서 다양한 예술을 접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가 마련되고 많은 문화콘텐츠가 개발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 경, 서도 소리극의 창작활동 확대 및 발전을 위하여 전문화되고 세분화 된 연구가 계속 이어지길 희망하며 본 연구자의 연구가 경, 서도 소리극의 발전에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 Play is the motion that is created by the people in action and displays existing specific lives intensively in limited time at the same time. That is, the play of a nation is not only the overall substance of that nation, but also the important art-form that opens the future of that nation. Our nation has kept the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 the admirable theatrical heritage from ancient times. This study examined the genre of "Gyeong . Suhdo Sori Drama" which is music centered,, and they have been newly used as a means of expressing traditional sound of Korean-musical play, based on the characteristic of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 Also, the author examined the birth and settlement of traditional sound of Gyeong . Suhdo Sori and how they have been staged so far, as a genre of musical-plays. "Gyeong . Suhdo Sori Drama" is a overall art that leads people to see, listen and feel the general image of Korea, composed with drama and act which are unique in play, held in a three-dimensional space while proceeded for a stage. However, the studies for"Gyeong . Suhdo Sori Drama" , which is one of the important performance styles of public plays are poorly examined. "Gyeong . Suhdo Sori Drama" were so rare that it was too hard to find out the tracks of the researches, comparing 'pansorial traditional opera'. Hereby, the author systematically gathered researches for the development of re-creation, not for defining genre nor disposablity, ordering in years and analyze play-characteristics of ‘Ah!Dora mountain’, ‘Ascension’, ‘Hwang jin-yi' in Gyeong . Suhdo Sori Drama. The effect , that keep our culture pure, This study, effort to keep innocence of our culture, will effect to make a shortcut to globalize our performance-culture showing historical, traditional and standalized performances. Moreover, through editing and re-creating dramas with the background of the purity while preserving tradional culture, stage in Gyeong . Suhdo Sori Drama will be the meaningful work that we need to protect As the quality of the lives being improved, more chances approachable to a variety of art being provided, and lots of culture-contents being developed, the author hopes that this research could be the pioneer study to improve Gyeong . Suhdo Sori Drama as well as more professionalized and detailed researches could be proceeded continuously for the expansion and development in the creating-activities for Gyeong . Suhdo Sori Drama.

      • 心韶 金千興의 舞臺呈才에 관한 硏究 : 佳人剪牧丹·舞鼓·抛毬樂을 중심으로

        위송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2013 국내석사

        RANK : 248639

        본 논문은 심소 김천흥의 정재 계승과 예술화 된 무대정재(舞臺呈才)에 관한 연구로 심소 김천흥의 정재 재현이 『악학궤범(樂學軌範)』과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등에 기록 된 궁중정재(宮中呈才)와는 다르게 프로시니엄 무대라는 제한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새로운 공간에 대한 이해를 통해 변화를 고심하고 그 결과 정재가 어떻게 변용되어 생성되었는가에 관한 연구이다. 무대정재(舞臺呈才)라는 용어는 본 논문에서 처음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궁중에서 추어지던 궁중정재(宮中呈才)와 교방에서 추어지던 교방정재(敎坊呈才)가 전승되어 왔고, 이것은 춤의 종류이기 보다는 추어지는 장소에 따라 다르게 명칭이 붙여졌다. 1980년대 김천흥이 재현한 정재는 프로시니엄 무대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맞추어 무대를 위한 정재가 새롭게 등장하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궁중정재, 교방정재와 같이 김천흥이 재현한 정재를 무대정재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범주화 하고자 한다. 시대적 상황과 심소 김천흥이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 시절 순종황제(純宗皇帝) 오순(五旬) 탄신경축진연(誕辰慶祝進宴)때 직접 추었던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무고(舞鼓)·포구락(抛毬樂)의 사적(史的) 검토 그리고 심소 김천흥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고, 정재가 시대적 상황에 어떻게 화답하며 예술화를 이루어 왔는가를 규명하였다. 1차 자료로 계사년 『정재무도홀기』, 2차 자료로 이병성과 성경린의 『무의(舞儀)』, 김천흥의 회고록 등을 검토하여 조선시대에서 이왕직아악부까지의 정재의 역사에 대한 문헌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김천흥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미적지향의 일단을 살펴보고 그것이 문헌들과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가를 논하였다. 마지막으로 1980년대 무대정재 재현 영상자료를 검토하여 문헌자료와 재현된 무대정재의 차이점을 밝히고, 문헌의 영향 관계를 밝혀 표로 제시하였다. 세 가지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1980년대 무대정재의 특징은 춤의 준비와 정리과정 및 창사의 생략과 무원의 차이, 그리고 쌍으로 추어지는 것 등이 보여진다. 2차 자료를 통해 분석하여 본 결과 김천흥의 1980년대 무대정재는 문헌과 이왕직아악부에서 체득한 것을 바탕으로 시대적 상황과 1950년대 창작활동 및 여러 경험 그리고 감상자의 변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사료된다. 이상을 통해 김천흥의 무대정재라는 장르는 아주 새로운 것이면서도 전통과 문헌해석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다. 또한 김천흥의 미적지향은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무대라는 공간을 통해 환골탈태(換骨奪胎)한 것이다. 프로시니엄 무대에 올려 지면서 정재는 서양식 무대에서 예술화 과정을 거치며 전문예술인을 통하여 무대 예술로의 독립화의 과정을 걸었다. 따라서 김천흥의 1980년대 무대정재는 궁중정재의 무대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고, 김천흥의 큰 업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김천흥의 1980년대 무대정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맥이 끊어졌던 궁중정재를 1980년대 재현작업을 통하여 계승되고 둘째, 무대화를 통하여 현대에 걸 맞는 정재로 발전되었으며 셋째, 정재의 대중예술화이다. 김천흥의 1980년대 무대정재는 문헌을 그대로 옮기기 보다는 무대화 과정을 통해 정재의 특징인 시용예술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이것은 정재의 무대화에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궁중 뜰의 궁중정재를 프로시니엄 무대의 무대정재로 예술화 하고자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김천흥의 1980년대 무대정재는 시대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여 예술로 나아간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고 김천흥은 이러한 점에서 전통과 재현 그리고 시용을 넘나드는 예술적 능력을 보여준 인물로 평가 할 수 있겠다. 1980년대 김천흥의 정재 재현작업을 무대정재의 시발점으로 궁중정재, 교방정재와 함께 하나의 독립된 예술로 보고 계승·보전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1980년대 김천흥의 무대정재 작업의 정신을 계승하여 현시대 및 한국무용의 미래에 걸 맞는 시용정재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앞으로의 정재의 재현 및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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