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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대역 종합정보통신망 프로토콜에서 ATM 적응계층과 제어평면의 설계 및 구현

        일환(II-Hwan Yoon),황민태(Min-Tae Hwang),이정태(Jung-Tae Lee) 한국정보과학회 1993 한국정보과학회 학술발표논문집 Vol.20 No.2

        앞으로의 통신망은 음성, 데이타 뿐만아니라 비디오 정보도 수용할 수 있는 광대역 종합정보통신망으로 발전할 전망이다. 광대역 종합정보통신망은 ATM 방식에 따라 표준화가 추진중에 있고, 프로토콜 구조는 물리계층, ATM 계층 및 ATM 적응계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광대역 종합정보통신망에 기존의 단말기를 접속하려면 TA(Terminal Adaptor)의 기능을 가진 접속장치가 개발되어야 한다. 본 연구에서는 접속장치 개발의 일환으로 광대역 종합정보통신망 프로토콜중에서 ATM 적응계층과 제어평면을 설계하고 구현하였다.

      • KCI등재후보

        교육연수과정의 품질관리를 위한 수요자 만족도 평가 개선 방안

        일환 ( Il Hwan Chung ),권동택 ( Dong Taik Kwon ),정현숙 ( Hyun Sook Jung ) 부산대학교 과학교육연구소 2014 교사교육연구 Vol.53 No.4

        최근 교육연수의 질적 제고를 위해 다양한 논의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현직 교원들의 전문성 신장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교육연수의 질은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수요자의 만족을 제고하려는 노력은 교육연수 전반적인 질 관리에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에, 연수 성과관리를 위한 질 관리에 있어서 연수 참여자인 교육수요자에 대한 만족도 제고 노력은 중요한 전제가 된다. 이에 본 연구는 연수사업품질 제고를 위한 업무 프로세스 개선 연구의 일환으로 연수 업무 프로세스 전반에 대한 개선과 연수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안 중 하나인 수요자 만족도 평가 문항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데 목적이 있다. 연수의 질적 제고를 위한 수요자만족 평가문항의 개선을 위해서는 먼저 구성원들로 하여금 연수 품질 제고를 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며, 수요자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연수 품질을 제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연수 품질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헌신이 필요하며, 지속적으로 연수 품질 제고를 위한 평가 문항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수요자의 만족을 제고하는 다양한 노력을 통하여 수요자만족도 평가에 대한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 이제 교육경쟁력 강화를 위해 교육연수 운영 및 프로그램에 대한 질 제고는 필수적이며, 질 제고는 수요자만족도 평가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Recently, issues surrounding the improvement of quality of educational training for teachers have been raised. Expressly, from a professional point of view, the quality of educational training is very important. Because the efforts of improving consumer satisfaction is important to the quality management for the whole educational training, consumer satisfaction evaluation is an important prerequisite in quality management of educational training. To improve consumer satisfaction evaluations on the quality of educational training, first there needs to be a recognition that there is a need to enhance the quality of educational training and that there should be a continuous endeavor to enhance the quality of educational training based on the consumer’s point of view. Second, there needs to be a total participation and devotion to the quality of educational training and continual develop of evaluation of items to enhance the quality of educational training. Finally, through various endeavors to enhancing the quality of educational training a specialized evaluation for consumer satisfaction needs to be developed. The essence of a successful training program is quality management which begins with consumer satisfaction.

      • KCI등재

        한반도의 일본인 유골 수습·발굴·송환에 관한 한일 정부 간 협력-1970년 덕적군도 등 서해안 일대 일본인 유골 발굴·송환 사례를 중심으로-

        오일환 한일민족문제학회 2014 한일민족문제연구 Vol.27 No.-

        지금까지, 1970년 덕적군도 등 서해안 일대에서 일본정부에 의한 일본인 유골 발굴·수습을 전후하여, 국내 일본인 유골에 관한 한국정부의 태도와 방침을 살펴보는 동시에, 일본인 유골 문제는 인도주의적인 문제인 동시에 한국인 유골을 송환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음을 살펴보았다. 1970년대 초 일본정부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하여 덕적군도 등 서해안 일대와 제주도 지역에서 일본인 유골을 발굴·조사하는 과정에서, 한국정부와 해당 지방자치단체 및 주민들이 일본정부의 발굴조사단의 방한과 체류, 유골의 발굴·송환에 적극적으로 협력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본 연구를 통해 한국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으로 사망하여 일본정부가 보관하고 있던 한국인의 유골을 송환하기 위해서 일본인 유골의 발굴과 송환에 협력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한국인 유골 송환에 앞서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이미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일본인 유골을 조사하고, 위령하고 송환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당초 덕적군도와 제주도에 표착한 유골은 식민지 피지배 상태에 놓여 있던 현지 주민들이 일본제국주의 군인·군속들의 유골을 정성껏 수습하여 매장하고 관리해 왔던 것들이었다. 이들에 대한 유해 발굴 및 수습은, 일본정부의 공식 요청에 따라 우리정부가 일본 측과 긴밀한 외교적 협상을 통해 이루어졌으나, 그 이면에는 현지 주민들과 지역 출신의 재일한국인들의 적극적인 제보와 헌신적인 협조가 아니었다면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한국정부는 일본정부 발굴조사단의 방한과 체류, 발굴, 수습, 송환의 전 과정에서 외무부는 물론, 해당 지자체와 주민들에 대해 일본 발굴조사단의 체류와 안전보장, 교통과 통신, 편의시설 제공과, 유골의 매장·발굴지역 안내, 관련정보 및 발굴인력 제공, 유골안치소 및 화장터 운영 등에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에 앞서 1966년에 이미 한국정부는 한국 내에 산재하는 일본인 유골의 현황을 파악하여 일본정부에 전달하였으며, 수천 구의 일본인(민간인) 유골을 일본으로 송환하고, 나머지 무명의 일본인 유골들은 별도의 납골당을 건립하여 안치하고 위령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처럼 한국정부는 한국인 유골의 송환에 미온적인 일본정부의 태도와 반일감정이 극심한 가운데에서도,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먼저 일본인 유골을 수습, 송환하였으며, 일본정부 발굴조사단의 체류와 발굴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일본정부로 하여금 한국인 유골을 송환하는 계기를 도출하였다. 일본정부는 1970년 7월 덕적군도에서 257기의 유골을 발굴한 직후 한국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한국인 유골 1기를 돌려주었으며, 이듬해인 1971년 3월에 1기를 돌려주었고, 같은 해 10월 제주도에서의 일본인 유해 172기를 발굴한 직후인 11월에 246기의 유골을 돌려주게 된다. 이후 2005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약 1천여 기의 한국인 유골이 국내로 송환되었고, 현재도 유골이 봉환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당시 1965년 한일회담 및 국교정상화협정을 체결한 직후였지만, 일본의 과거사청산 및 사죄와 보상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데 대한 불만과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만연했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가해국인 일본인의 유해에 대한 발굴과 본국 송환에 대해서만큼은 우리정부와 국민이 인도주의적 정신에 입각하여 아낌없는 협력과 지원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

      • 돈사 내 PCB(기판) 부식현상 개선방안 연구

        박수인 ( Su-in Park ),일환 ( Il-hwan Seo ),김경민 ( Kyung-min Kim ),김경란 ( Kyung-ran Kim ) 한국농공학회 2019 한국농공학회 학술대회초록집 Vol.2019 No.-

        최근 정부에서는 혁신성장을 위한 8대 선도사업의 일환으로 스마트팜 확산을 위한 관련 R&D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스마트팜은 ICT기술을 기반으로 융복합 솔루션을 적용하기 때문에 전기·전자기기의 사용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돈사 사육장 내에 설치된 센서나 CCTV의 경우 장기간 사용 시 PCB(기판)부식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고장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돈사 내에서 ICT장비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PCB 부식발생을 저감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에 본 연구는 돈사 사육환경에 노출된 PCB의 부식발생 현상을 모니터링하고, 사육환경의 주요 특징인 습기,분진, 가스와 PCB 부식발생의 연관성을 분석하였으며, 부식현상을 저감하여 PCB의 환경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의 효과를 검증하였다. 현장실험은 전라남도 영광군에 위치한 상업용 돈사에서 진행하였으며, 선행연구에서 분석한 사육환경 분석을 바탕으로 사육장 내 와류로 인한 먼지와 오염이 정체 되는 위치에 PCB샘플을 거치하였다. PCB샘플에는 부식현상 발생정도를 검증을 위한 별도의 패턴을 설계하였으며, 부식현상의 개선방안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대조군 PCB의 패턴 위에 코팅제를 도포하여 부식현상의 발생정도를 비교 하였다. 50일 방치 결과, 코팅제를 도포하지 않은 PCB PAD의 납땜 부위 중 먼지가 소착된 부분부터 외관상 부식이 발생하는 현상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돈사 사육환경에 노출된 PCB(기판)의 부식현상의 특징을 분석하였고, 환경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부식현상 방지방안의 효과를 제시하였다. 본 연구 결과는 돈사 내에 사용되는 ICT 개발 장비의 PCB·기구 설계에 필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판단되며, 추후 실험 기간과 샘플 수를 늘려 데이터의 신뢰도를 높이고, 실제 동작하는 ICT기기에 개선 방안을 적용하여 종합적으로 평가 할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 KCI등재

        리기다소나무와 잣나무 낙엽의 분해율 및 분해과정에 따른 영양염류 함량 변화

        원호연,이영상,조수언,일환,진선덕,황소영 한국환경생태학회 2018 한국환경생태학회지 Vol.32 No.6

        We examined the nutrient dynamics during the leaf litter decomposition rate and process of Pinus rigida and Pinus koraiensis in Gongju for 21 months from December 2014 to September 2016 as a part of National Long-Term Ecological Research Program in Korea. The remaining weight rate of P. rigida and P. koraiensis leaf litter was 58.27±4.13 and 54.08±4.32%, respectively, indicating that the P. koraiensis leaf litter decomposed faster than P. rigida leaf litter. The decay constant (k) of P. rigida leaf litter and P.koraiensis leaf litter after 21 months was 0.95 and 1.08, respectively, indicating that P. koraiensis leaf litter decayed faster than P. rigida leaf litter probably due to the difference of nitrogen concentration between the two. The C/N ratio of P. rigida and P. koraiensis leaf litter was 64.4 and 40.6, respectively, initially, and then decreased to 41.0 and 18.9, respectively, after 21 months. The C/P ratio of P. rigida and P. koraiensis leaf litter was 529.8 and 236.5, respectively, and then decreased to 384.1, 205.2, respectively, after 21 months. The contents of N, P, K, Ca, and Mg were 6.78, 0.83, 2.84, 0.99, and 2.59 mg/g, respectively, in the P. rigida leaf litter and 10.90, 1.87, 5.82, 4.79, and 2.00 mg/g, respectively, in the P. koraiensis leaf litter, indicating that the elements except the magnesium showed higher contents in P. koraiensis. After 21 months elapsed, remaining N, P, K, Ca, and Mg was 88.4, 77.6, 26.7, 50.5 and 44.5%, respectively, in decomposing P. rigida, and 114.4, 61.3, 7.6, 115.2 and 72.0%, respectively, decomposing P. koraiensis leaf litter. 국가장기생태연구사업의 일환으로 국내 주요 조림수종인 리기다소나무와 잣나무 낙엽의 분해율 및 분해과정에 따른영양염류 함량 변화를 파악하였다. 분해 21개월경과 후 리기다소나무 낙엽과 잣나무 낙엽의 잔존률은 각각 58.27±4.13, 54.08±4.32으로 잣나무 낙엽의 분해가 리기다소나무 낙엽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1개월경과 후 리기다소나무 낙엽과 잣나무 낙엽의 분해상수(k)는 각각 0.95, 1.08로 잣나무 낙엽의 분해상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리기다소나무 낙엽과 잣나무 낙엽의 초기 C/N 비율은 각각 64.4, 40.6 이었으나 21개월경과 후에는 각각 41.0, 18.9로점차 감소하였고, C/P 비율은 리기다소나무 낙엽과 잣나무 낙엽에서 초기에 각각 529.8, 236.5에서 21개월경과 후384.1, 205.2로 감소하였다. 낙엽의 초기 N,P,K,Ca,Mg 함량은 리기다소나무 낙엽에서 각각 6.78, 0.83, 2.84, 0.99, 2.59 mg/g 이었으며, 잣나무 낙엽에서 각각 10.90, 1.87, 5.82, 4.79, 2.00 mg/g으로 마그네슘을 제외한 원소의 함량은잣나무에서 높았다. 21개월 경과 후 N,P,K,Ca,Mg 잔존률은 리기다소나무 낙엽에서 각각 88.4, 77.6, 26.7, 50.5, 44.5% 이었으며 잣나무 낙엽에서 각각 114.4, 61.3, 7.6, 115.2, 72.0%로 나타났다.

      • KCI등재

        경비행기의 이착륙 성능에 관한 연구

        김정환,황명신,이정모,김칠영,일환,장욱진 한국항공운항학회 1995 한국항공운항학회지 Vol.3 No.1

        본 연구는 창공-91 항공기의 비행 시험의 일환으로 수행된 것으로, 항공기의 이착륙 성능 측정을 위한 비행 시험의 절차와 사용된 방법, 자료 처리 절차 그리고 비행 시험 결과에 대해 기술하였다. 본 비행 시험은 FAR 부속서인 Advisory Circular 23-8A 의 비행 시험 절차에 따라 수행되었으며, 측정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설계시에 결정된 창공-91의 성능 자료를 만족함을 보였다.

      • 농업·농촌시설의 돌발홍수 위험잠재능 평가

        김수진 ( Soo-jin Kim ),김성필 ( Seong-pil Kim ),배연정 ( Yeon-joung Bae ),배승종 ( Seung-jong Bae ),김학관 ( Hak-kwan Kim ),일환 ( Il-hwan Seo ),배원길 ( Won-gil Bae ) 한국농공학회 2014 한국농공학회 학술대회초록집 Vol.2014 No.-

        최근 국지적, 집중적 특성을 지닌 강우패턴의 변화로 인하여 돌발홍수 피해영향이 상대적으로 크고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주로 소하천의 최상류 계곡에서 발생하는 돌발홍수는 과거에 비해 여가생활 및 여행의 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인명피해가 급증하고 있어 돌발홍수 발생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서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 홍수방어측면에서 비구조적인 대책의 일환으로 과거의 홍수발생 원인과 현상을 종합하여 홍수위험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취약성 분석과 위험잠재능 평가가 다수 진행되어왔다. 다만, 국가하천이나 지방하천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어 실질적으로 돌발홍수에 의한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소하천이나 계곡의 경우 최근 이상기후 및 재해경향을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농업·농촌 시설의 경우 홍수피해가 빈발하여 매년 많은 피해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대응하기 위한 체계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즉각적인 대응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특정 치수단위구역의 잠재적인 홍수피해 취약 정도를 나타내는 홍수피해잠재능 개념을 도입하여 수계 내 상대적인 홍수위험정도를 평가할 수 있는 돌발홍수 위험잠재능을 산정하고자 한다. 더불어 수문기상, 사회경제적인 요소를 포괄하여 홍수위험관리 측면에서 지역별 상대적인 우선순위를 유연하고 체계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 KCI등재

        박노학의 생애와 사할린한인 귀환운동에 관한 연구

        오일환(Oh, Il-Hwan)(呉,日煥) 한일민족문제학회 2020 한일민족문제연구 Vol.38 No.-

        It took almost 50 years for Korean detainee in Sakhalin to start to visit and return to Korea since 1990’s after the end of World War Ⅱ. There was much meandering and steps before the temporary visit and permanent return to Korea is possible. But little is known of Park Rho-Hak, what and how he has done for the repatriation movement of Korean detainee in Sakhalin. This essay addresses Park’s life before being mobilized to Sakhakin, his life and re-marriage to Kazuko, the Japanese woman in Sakhalin after war, his activities since the return to Japan, the league of Korean in Japan who was detained in Sakhalin, so-called ‘Park’s letters from Korean in Sakhalin’ and ‘Park’s list of Korean in Sakhalin’, the realization of ‘temporary visit to Japan and family reunion’ and ‘temporary visit to Korea via Japan’, and so on. In summary, my discussion of Park Rho-Hak, his relationship and activities has developed four main points: First, I found out and reconstructed his background before being mobilized to Sakhalin, the forced labor at Sakhalin, detainment at Sakhalin, re-marriage to a Japanese woman, return to Japan, organizing the league of Korean in Japan who was detained in Sakhalin, and activities for repatriations of Korean from Sakhalin. Second, I found out and reconstructed that how the so-called ‘Park’s letters from Korean in Sakhalin’ was transmitted to the family in Korea and vice versa, and how the ‘Park’s list of Korean in Sakhalin’ was listed up and submitted to the governments of Korean, Japan, and Russian Soviet, even to the International Organization such as Red Cross. Third, this article reviewed the key personnel such as ministers, bureaucrats, politicians, lawyers, civic activists, and their role, who Park Rho-Hak has contacted and enter into a relationship for the purpose of repatriation of Korean in Sakhalin. Fourth, I found out and reassessed that Park Rho-Hak devised the ideas of ‘temporary visit to Japan and family reunion’ and ‘temporary visit to Korea via Japan’ and realized those ideas, considering all conditions of that times. Park’s life and efforts for the repatriation of Korean detainee in Sakhalin is the foundation stone and history of the repatriation of Korean detainee in Sakhalin, also, it means the path he has followed. 戦後、サハリンに残された朝鮮·韓国人(以下、サハリン韓人)が1990年代 以降母国である韓国を訪れたり、永住のため帰国することができるまで、およそ 50年間の歳月を要した。 サハリン韓人の母国訪問や永住帰国ができるまで、多くの紆余曲折と段階 を経ることを余儀なくされた。ところで、1958年日本に帰還してから一生の間サ ハリン韓人の帰還運動を展開した朴魯学の生涯と活動についてはあまり知られて いなかった。 本稿は朴魯学の自筆履歴書、日誌、陳情書、請願書と、朴魯学の長 男·サハリン韓人·遺族らの口述及び証言、帰還運動に携わった活動家らの 記録等を検討し、朴魯学の生涯、強制動員の経緯、サハリンから日本への 帰還、樺太抑留帰還韓国人会(以下、韓国人会)の結成と活動、言わば、「朴 魯学の手紙」及び「朴魯学名簿」の伝達及び作成の経緯、そして、母国訪問 や永住帰国の前段階としての一時日本訪問及び家族再会、日本経由母国 訪問を成し遂げた経緯等を追跡·分析した。 以上の調査·分析を通じて、以下のことを確認し究明することが出来た。 まず、朴魯学がサハリンに行かれるまでの成長背景と経緯、サハリンでの強 制動員の現実、戦後の生活と堀江和子との重婚、1958年日本へ帰還した経緯、韓国人会結成の経緯、帰還運動の主な内容等を確認した。 二つ、「朴魯学の手紙」が始まった経緯とサハリン韓人の手紙が韓国の家族 に届くまでの経緯、又は韓国からの手紙がサハリン韓人に伝わるまでの経緯が 初めて判明した。又、「朴魯学名簿」が作成され韓国、日本、ソ連の政府や 国際赤十字会等に提出されたことを確認した。 三つ、帰還運動のため朴魯学が出会った主な人々、例えば、日韓の政府 や関連機関の官僚、政治家、代議士、弁護士、有職者、市民活動家等と の関係と人脈、そして、彼らの役割と主な活動が分かった。 四つ、朴魯学は三原令、有賀正明、高木健一、大沼保昭等の市民活 動家と連携し言わば、帰還訴訟を起し、サハリン韓人の問題や帰還運動に対 する一般の理解と認識を向上させた。 五つ、朴魯学はサハリン韓人の出国さえ許されていなかった現実を鑑み、 又、日本人のサハリン墓参り訪問の事例を応用し、草川昭三議員を通してソ 連側にサハリン韓人の日時日本訪問及び家族再会が実現するように働き掛け た。 最後に、朴魯学は大沼保昭等と共にサハリン残留韓国·朝鮮人問題議員 懇談会の発足に携わった。又、朴魯学は議員懇談会に働き掛け、一時日本 を訪れるサハリン韓人が日本を経由し韓国まで行って家族に再会できるようソ連 側を説得した。1988年3月朴魯学が他界した後、その年の6月、議員懇談会 がソ連を訪問し、9月、ついに日本経由母国訪問は実現された。 朴魯学の生涯と日本での活動はサハリン韓人帰還の礎で歴史であり、サハ リン韓人帰還の歴史は彼の足跡でもあった。

      • KCI등재

        强制動員 死亡者 遺骨奉還을 둘러싼 韓日 政府 間 協商에 關한 小考

        呉日煥(Oh, Il-Hwan) 한일민족문제학회 2009 한일민족문제연구 Vol.17 No.-

        50年代以降, 日本政府が韓国政府に正式に返還した遺骨は, 旧軍人軍属として死亡した朝鮮人と浮島丸の爆沈事故で亡くなった乗船者の遺骨であった. 日本政府は50年代初めからこれらの遺骨の存在と返還の意思を韓国政府に伝えていたが, 実際の返還が始まるのは1971年からだった.遺骨の返還が日韓の両国で合意したのは, 1969年, 第三次日韓閣僚会議の時だった.第三次日韓閣僚会議は, 戦後, 両国の政府が直接交渉を通じてその間解決されていなかった軍人軍属等の遺骨約2千体の引渡しに合意し, また, その後の実際の返還と引き取りにおける主な事項及び手続きなどについても大半合意が行われたという点において意義がある.合意が可能になった最大の原因は, 韓国政府がそれまでの立場であった北朝鮮籍の遺骨に対しての引渡しの要求を初めて撤回したからであった. そして, この時, 合意された主な原則らは, 2007年以降韓国政府の日帝強占下強制動員被害真相糾明委員会が追い進めた三回の遺骨返還(2009年7月現在, 延べ204体)にも非常に重要な影響をもたらしていた.当時の合意は, 日本政府が保管していた約2千体余りの軍人軍属の遺骨だけを対象にしたもので, まだ収集していない軍人軍属の遺骨と, 数多くの労務動員·徴用者らの遺骨に関しては対象外としていた. また,遺骨返還の際の基本的な作業である遺骨の身元の確認と, 遺族関係証明の手続きを日本政府の主張をそのまま受け入れたことによって, 無駄な行政力の浪費と自国民の確認の責務を怠ったことは非常に消極的な態度であったとも言える.ところが, もっとも大事な誤りは, 単なる遺骨, それだけを引渡したり受け取ることに傾いて, 遺骨返還の際の一番重要な条件でありながら前提とも言える, 死亡者と遺族に対する日本政府の十分な説明と資料の提供, そしえ謝罪と補償, 慎んだ儀礼をあえて無視したことであろう.1969年, 第三次日韓閣僚会議は, 戦後日韓両政府間の遺骨返還に関する初めての合意でありながらも, これまでの遺骨返還における重要な原則と手続きの原点になったという点から, 新たに評価されるべきであろう.了. Since 1950s, the Japanese government officially returned the remains of the Korean soldiers and civilian employees in the Japanese military and the Korean Ukishimamaru victims sunk by explosion. Japanese informed their intention of returning them in the early 1950s but actually returned after 1971. It was the third Korea-Japan ministrial meeting in 1969 that both governments agreed on returning of remains. Through the direct negotiation, they not only resolved the problem of returning about two thousand remains to Korea, but also agreed on the details and procedures. They could reach the consent because the Korean government finally gave up its previous insistence on the returning of the remains with the North Korean nationality. Those agreed principles at that time deeply influenced afterwards-Japanese returned the remains three times since 2007 according to the Korean government's request through Truth Commission on Forced Mobilization under the Japanese Imperialism Republic of Korea. soldiers and civilian employees in charge of the Japanese government, which did not include the remains of many mobilized laborers. As for the identification of the remains and the procedures about the verification by surviving family members, the agreement only reflected the Japanese position. The Korean government showed the passive attitude about verifying its nationals' identification and as a result, a lot of administrative efforts were wasted in vain. However, the biggest mistake was made when Koreans only focused on returning the remains, neglecting to demand a full explanation about the deaths and all the records confirming the situation as well as funeral services, apologies and compensation from Japanese, which was, in fact, the most important about returning remains. The Korea-Japan ministrial meeting in 1969 needs to be reevaluated; it was meaningful that the two governments agreed for the first time about the returning remains but it lacked in forming the most important principles.

      • GUI 환경하에서 구동되는 TDL 컴파일러의 설계 및 구현

        전상은(Sang-Eun Jun),김성원(Sung-Won Kim),일환(Yil-Hwan An),이호석(Ho-Suk Lee),김우성(Woo-Sung Kim) 한국정보과학회 1998 한국정보과학회 학술발표논문집 Vol.25 No.2Ⅱ

        본 연구는 반도체 검사 장비를 국산화하는 프로젝트의 일환 중에서 메모리 칩의 무결성을 검사하는데 사용되는 메모리 테스트 장비의 소프트웨어 개발에 중점을 둔 것이다. 기존에 발표된 프로그램은 자체 개발된 것 없이 외국의 프로그램을 들여와 단지 운영만을 하는 수준이었다. 더욱이 프로그램들도 text모드 하에서만 구동되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새로운 컴퓨팅 환경에서 운영될 수 있도록 윈도우즈 하에서 GUI(Graphic User Interface)에 기반한 새로운 TDL 컴파일러를 개발하였다. 개발된 프로그램은 Test Data를 기술하는데 더 효과적이었으며 오류를 검사하고 수정하는데도 큰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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