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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의지의 생물학적 해명은 가능한가? : 윌슨의 '통섭' 프로그램에 대한 반성을 위하여

          오용득(Oh Yong-Deuk) 새한철학회 2009 哲學論叢 Vol.56 No.2

          윌슨은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문제들을 생물학적 차원에서 해명하는 생물학 중심의 통섭을 제안하였다. 그의 통섭: 지식의 대통합 은 이러한 통섭 프로그램의 기본 골격을 이룬다. 그는 여기서 주요한 사회과학의 문제들 및 인문학의 문제들을 생물학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이러한 윌슨의 통섭 프로그램에는 자유의지의 생물학적 해명이 포함된다. 윌슨은 이 자유의지의 문제가 인문학적 문제들 중에서 생물학적으로 해명하기에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한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자유의지를 생물학적으로 해명하는 것은 곧 그가 지향하는 통섭 프로그램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논문은 윌슨의 통섭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는 자유의지의 생물학적 해명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다. 필자는 우선 윌슨이 자유의지의 문제를 어떻게 생물학적 차원에서 해명하는지를 반성적 차원에서 고찰하였다. 나아가 필자는 이러한 자유의지의 생물학적 해명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통섭 프로그램에 포함된 인문학의 생물학화에 대한 반성 및 생물학을 중심으로 하는 통섭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반성을 이끌어내었다. 그 결과 필자는 우리에게 새로운 통섭을 위한 기초를 세워야 할 과제가 주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In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E. O. Wilson suggested that problems of the social sciences and the humanities could be explained by way of the biological explanation model, that is to say Consilience Program. This program contains a biological explanation on the free will which has been generally a main problem of the humanities. But Wilson said that the free will is the master unsolved problem of biology. It means that a biological explanation on the free will is a key point in the biologization of the humanities. This paper aims to criticize the biologization of the humanities and reflect on Consilience Program. In this paper I examined how does Wilson explain the free will by the way of biological explanation model and discussed what means the biologization of the humanities in his thought. Form this I drew two conclusion: a biological explanation on the free will involves some aporia to achieve the Consilience Program and Wilson does not consider the authentic meaning of the humanities. In the result I suggested that we ought to set up a foundation of an another consilience program.

        • KCI등재

          인지향상약물은 왜 공식적으로 승인되지 않는가? - 사회 철학적 분석과 전망 -

          오용득 ( Oh Yong-deuk )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6 인문학연구 Vol.0 No.52

          인지향상약물은 인류 전체적인 차원에서 많은 잠재적인 가치를 가지는 과학기술적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것은 의약학적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승인되지 않고 그 사용도 자유롭지 않다. 사회 철학적 시각에서 그 이유를 분석하고 대안을 전망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인지향상약물이 아직 공식적으로 승인되지 않는 하나의 유력한 이유는 인지향상약물 자체의 특성보다도 그것을 부정적으로 이미지화하는 능력주의 사회의 구조와 운영원리에 있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능력의 차이에 따른 차등적 분배가정당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 구성원들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지만, 그 경쟁이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약물인지향상이 경쟁의 규칙을 위반하는 부정행위로 간주되며, 인지향상약물이 부정행위와 연루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이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인지향상약물이 부정적으로 이미지화되어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승인되기 어렵다. 그러므로 만약 인지향상약물의 부정적 이미지를 제거하고 그 잠재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먼저 능력주의 사회운영원리를 폐기해야 한다. 그 대신 우리는 다른 사회운영원리를 마련해야 하는데,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깨뜨리지 않고 만들어갈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은 구성적 공동체이다. 이 구성적 공동체에서 인지향상약물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구성해가기 위한 반성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생활필수품이 되고, 공동체의 선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공적인 재화가 된다. 이러한 점에서 구성적 공동체의 조성은 인지향상약물을 공식적으로 승인할 수 있는 기본적인사회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The cognitive enhancement drugs(CEDs) are a technological product that may have many potential values to promote the welfare of all mankind. But still now they are not admitted in the official medical system, and anyone can not use them voluntarily. It is the aim of this study to analyze why are not CEDs admitted officially and to prospect what are the social conditions to admit them officially. I think that the CEDs are not admitted officially because of the structure and working principle of the meritocracy to treat them bad. In the meritocracy, it is reasonable to distribute gradational share on one``s merits, and so members are competing against each other to get more share. In this case, they have to compete upon a rule. So they regard the pharmaceutical cognitive enhancement as a cheating because it breaks the rule. In the meritocracy, therefore, the CEDs are involved inevitably in a cheating. That is to say, CEDs are treated as bad in the meritocracy. So it is very difficult to admit officially CEDs in the meritocracy. If we want to remove a bad reputation of CEDs and to realize potential values of them, firstly we must abandon the meritocracy and then establish a constitutive community members of which should not compete against each other to get more share but cooperate mutually to realize good of community. In this community, the CEDs would be the essential goods of life which members require to enhance their own reflecting ability to constitute themselves a member of the community, and be the common assets which are necessary to realize good of community. To constitute a constitutive community, ultimately, will be a social condition to admit officially the CEDs.

        • KCI등재

          기획논문 : 부정 인문학 ; 부정인간학 시론

          오용득 ( Yong Deuk Oh ) 東亞大學校附設 石堂傳統文化硏究院 2009 石堂論叢 Vol.0 No.45

          이 시론의 목적은 `부정신학`과 비교할만한 `부정인간학`의 기초를 세우는 데 있다. 이 작업은 인간을 개념적으로 정의(개념화)할 수 있다고 본 지금까지의 인간 논의들(긍정인간학)이 특정한 인간을 타자화하거나 인간 자체를 제한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기 때문에 기획된 것이다. 부정인간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의 학적 기초가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부정신학의 학적 기초가 신의 무한성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정인간학의 학적 기초는 인간의 무한성에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먼저 무한성에 대한 변증법적, 현상학적, 해석학적 고찰을 통해 인간의 무한성을 해명함으로써 부정인간학의 학적 기초를 수립하고자 한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성립된 부정인간학은 인간을 개념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는 실천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개념화에 의거하여 행사되어온 억압과 폭력을 부당한 것으로 폭로하고 인간에 대한 한층 개방된 이해를 통해 인간 상호간의 소통을 더욱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 부정인간학의 실천적 가치가 있다. This essay aims to set up a new philosophical discourse on the human being. The reason is that the traditional discourses on the human being may be a theoretical ground to suppress some people who have not the essential properties of human being. A new discourse which we will to set up is named `the negative anthropology` that is to be comparable `the negative theology`. The negative theology has a practical significance in so far as God is an infinite substance. To set up the negative anthropology, we have to get it`s theoretical foundation. It is to confirm the infinity of human being. We have elucidated this problem in terms of the dialectical, phenomenological and hermeneutical explanations on the infinity of human being. The negative anthropology has a practical significance; it will to deconstruct the conceptual definitions of human being maintained by the traditional positive anthropologies. So it will be able to set free some people who have been suppressed by a substantial power to conceptualize human being in a certain form. And it will give us a chance to accept the individual particularity of the others and to promote the communications to understand the otherness.

        • KCI등재후보

          공동체 사유의 실천적 의미에 대한 철학적 고찰

          오용득 ( Yong-deuk Oh ) 한국윤리학회 2016 윤리학 Vol.5 No.2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근원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말 그대로의 ‘개인’이다. 근원적인 분열 존재로서의 삶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면 대안적인 생활방식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 중 하나는 공동체적 삶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들의 분열을 강화하는 사적 소유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그러한 근원적 분열이 매워질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유해야 할 공동체는 사적 소유가 없는 그러한 공동체인 것이다. 그러나 사적 소유가 없는 공동체는 대체로 ‘좋은 곳’이면서 동시에 ‘없는 곳’을 의미하는 ‘유토피아’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토피아로서의 공동체를 사유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문제를 해명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우선 논자는 기존의 몇몇 주요한 공동체 사상을 분석하면서 이 사상들에서 사적 소유를 제한하는 공동체가 어떤 의미에서 ‘좋은 곳’이라고 생각되었는지 고찰할 것이다. 그 다음 논자는 사적 소유를 제한하는 공동체가 좋은 곳이라는 신념에도 불구하고 왜 그러한 공동체가 실제로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지 고찰할 것이다. 끝으로 논자는 인간의 일반 심리가 그러한 공동체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은 없는지 고찰할 것이다. In modern capitalist society, man is, as it were, the individual that is separated one from another fundamentally. If this fundamental separation is not good, we must seek for some alternative modi vivendi. One of them may be the communitarian modus. But if we do not give up the will to have private property increasing the separation, we can not solve the problem of the fundamental separation. Therefore we must discuss on the community all members of which will not to have private property. This kind of community, however, may be considered as the utopia to signify not only ‘eu-topos’ but also ‘ou-topos’. If that was the case, why we have to discuss on the community as utopia? In this paper, I will give this problem careful consideration. Firstly, I will inquire into why the community prohibiting private property is considered as the ‘eu-topos’ in thoughts of community proposed by some influential philosophers. Secondary, I will inquire into why those kind of community is considered as the ‘ou-topos’ in spite of a conviction that it is good. Lastly, I will inquire into how to realize those kind of community in spite of human mentality to think those community is almost impossible.

        • KCI등재후보

          인지향상약물과 사회정의의 문제

          오용득 ( Yong Deuk Oh ) 대구가톨릭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5 인문과학연구 Vol.0 No.24

          In this paper, I have discussed on some problems of social justice that we must consider in developing and using the cognitive enhancing drugs(CEDs). Because many people think implicitly that the use of CEDs is prohibited, those problems are important in following two aspects: Firstly, those problems provide some reference materials to discuss and establish the policy on whether we will remove or not the implicit prohibition order on the use of CEDs. In this paper, I give a conspectus of two theories, one of which is a theory to suppose the thesis that we must regulate the use of CEDs, another of which is a theory to suppose the anti-thesis. Secondary, if a certain social structure makes many people to think implicitly that the use of CEDs is prohibited, then those problems may be connected to an issue of the social philosophy to reflect and criticise our real social structure that makes many people to think so. In this paper, I propose that we can reflect and criticise our realistic social structure by reference to the value-pluralistic society designed by Michael Walzer. In short, it is important that we must not only think over how to minimize the unjustifiable things realized in our society, but also reflect and criticise in what sense our society is the best. In this time expected to be developed many other technologies in addition to CEDs operating on the neuronal system, those problems are very important.

        • KCI등재

          과학주의자와 인문학주의자의 통약 불가능한 대화의 실질적 의미

          오용득(Oh, Yong-deuk)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3 서강인문논총 Vol.0 No.36

          근대 과학혁명 이후 새롭게 등장한 과학적 지식의 처리를 둘러싼 철학적 논의들은 크게 과학주의와 인문학주의로 나누어진다. 지금까지 이 두 진영은 일종의 논쟁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양 진영은 이른바 통약 불가능한 대화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논쟁은 무의미한 것인가? 예컨대 ‘계몽주의 대 낭만주의’, ‘실증주의대 반실증주의’, ‘통섭 대 반통섭’ 등과 같이 단편적으로 이루어지는 논쟁은 형식적으로 통약 불가능한 대화인 셈이므로 큰 의미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논쟁의 역사적 과정을 따라 가보면, 우리는 양자가 통약 불가능한 대화를 통해서 각자 자기를 반성하고 쇄신해왔다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연구는 근대 이후 과학적 지식과 관련된 철학적 논의의 흐름을 과학주의자와 인문학주의자 사이의 통약 불가능한 대화 및 이를 통한 양자 각각의 자기 쇄신 과정으로 독해할 수 있음을 논구한다. In the history of the knowledge since the scientific revolution, we can come across a series of the philosophical arguments on the value of the scientific knowledges. On the one hand, the scienticists asserted that the scientific knowledge is only true. On the other hand, the humanitists asserted that there are some knowledge which could not be explained by the scientific methode. This arguments may be not concluded, because it is, as it were, an incommensurable conversation. Is it then meaningless? When it is a fragmentary argument on a single issue as like ‘the enlightenment vs the romanticism’, ‘the positivism vs the anti-positivism’ and ‘the consilience vs the anti-consilience’, it is like an incommensurable conversation, and so it may be meaningless. When, however, we pay attention to a series of arguments historically, an incommensurable conversation may be something meaningful. R. Rorty says that we can reflect and edify ourselves through an incommensurable conversation. In this respect, we can regard a series of the incommensurable conversations between the scientisists and the humanitists as a history of the self-reflection and the self-edification that each of them has reflected and edified itself. So, in this essay, I reconstructed the fluence of the philosophical arguments on the scientific knowledge as a course of an incommensurable conversation between a scientisist and a humanitist and elucidated what is a material significance of the self-reflection and the self-edification in each of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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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랜스휴머니즘의 포스트휴먼 프로젝트와 의지적 진화의 문제 -닉 보스트롬의 논고들을 중심으로

          오용득 ( Yongdeuk Oh ) 경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5 人文論叢 Vol.38 No.-

          이 논문에서 논자는 먼저 닉 보스트롬의 논고들을 중심으로 트랜스휴머니즘의 포스트휴먼 프로젝트가 어떤 것인지(2장), 그리고 거기에 함축된 의지적 진화의 실행전략이 어떤 것인지(3장) 개관했다. 이어서 논자는 그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실행전략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몇 가지 문제들을 제기했다(4장). 이 작업의 목적은 그 프로젝트에 대한 찬반을 논하는 데 있다기보다는 그 프로젝트의 의미를 좀 더 다양한차원에서 검토하자는 데 있다. 소박한 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말하는 포스트휴먼이 된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지만, 이와 같은 매력에만 이끌려 우리의 모든 삶의 역량을 거기에 집중시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일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에 관해 좀 더 깊이 숙고하고 더 치열하게 논의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In this article, I took a general view of the problems of the volitional evolution implicated in the transhumanistic posthuman project, and then examined some difficult points contained in it. That is to say, firstly I explained what is the transhumanistic posthuaman project (Ch. 2) and what are the problems of the volitional evolution contained in it (Ch. 3), focusing on Nick Bostroms works. And then I brought forward some problems which might be cropped in transhumanist s conception of the volitional evolution contained in the executive strategy of the posthuman project (Ch. 4). They are an immanent problem of human enhancement, a problem on environmental conditions of human enhancement, and a political problem. This study does not aim to discuss for or against the transhumanistic posthuman project, but to examine the meanings of the project from a variety of viewpoints. Because the posthuman will not only be aging, but also enjoy longevity and have physically and mentally enhanced functions, most ordinary men may think of the posthuman life as fascinating. But it is not plausible to concentrate our energies on the posthuman project because the posthuman life seems to be very fascinating. Therefore, we need to be more prudent, and must deliberate on and discuss it very seriously. From this study, I wish to arouse manifold discourses on the transhumanistic posthuman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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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우콘토로지 온토로지의 계보학과 질료로서의 인간 사유

          오용득 ( Yong Deuk Oh )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4 人文科學 Vol.102 No.-

          This study aims to reflect genealogically a concept of human being based on the traditional ontology and elucidate how to understand human being differently. To express implicatively the methode and contents of this study, I suggested a new technical term of ``oukontology``. This means literally the negation(οv) of ontology(oντο λογiα) on the one hand and the logical discourses(λoγοc) on the not-being(οvκoν) on the other hand. Thus I performed this study in two phases. In the first phase, I analysed genealogically the concept of human being based on the traditional ontology and pointed out the effects of power exercised by the concept. This is the theme of the oukontology as the negation of ontology. In the second phase, I suggested a new conception of human being to protest the conception of human being based on the traditional ontology and sketched an imaginal model to think human being differently. This is the theme of the oukontology as the logical discourses on the not-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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