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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화단의 모더니즘 추상미술 전개에 관한 연구

        오병희 한국기초조형학회 2017 기초조형학연구 Vol.18 No.1

        This study is an inquiry into the fact that Informel in Korea first started in the Gwangju area and Gwangju was a significant region in Korean abstract art where creative artists who practiced abstract art of the 1960s produced works through which they experimented with a wide range of styles and explored their identities. Informel in Korea initiated by Kang Yong-un and Yang Su-ah, teachers at Gwangju Teachers' School, was the departure point of the modern Korean abstract art movement. Kang produced paintings influenced by Art Informel from the late 1940s to the early 1950s while Yang held his solo show of abstract paintings at the United States Information Service in Gwangju in 1948. Gwangju's abstract Informel art was ahead of that of Park Seo-bo and Ha In-du. It can be seen as a progenitor of Korean modernism and abstract art if we consider Kang Yong-un's Spring (1947). Gwangju's abstract art movement was led by Jung Young-ryeol, Choi Jong-seob, Woo Je-gil, Choi Jae-chang, Jang Ji-hwan, and others who studied under Kang Yong-un and Yang Su-ah at Gwangju Teacher's School. They actively worked in the Gwangju art community with Epoque, a modern abstract art organization founded in 1964. The Gwangju abstract art scene of the 1970s produced abstract works of great diversity, concentrating on monochrome art in which images are objectively and analytically shaped while attaining a painting's two-dimensional trait. After the 1980s, Gwangju's abstract artists such as Choi Jong-seob, Kim Jong-il, and Woo Jae-ghil created works of art in their ingenious styles. Choi Jong-seob produced the serialized work Korean Fantasy, including monochrome abstract paintings in which the artist represented our emotion and culture with the material property of hanji, traditional Korean paper. Kim Jong-il worked on black monochrome paintings in the 1970s and works adding additional colors in the 1980s. Woo Jae-ghil studied and experimented with the nature of material based on matter and color emerging through light. As the Gwangju art scene underwent a great change after the 1995 Gwangju Biennale, young artists pursued abstract art mainly with Epoque and produced works of post-modern art. 본 연구의 목적은 광주의 모더니즘 추상회화의 흐름을 통해 광주에서 앵포르멜 추상이 시작되었으며 1960년대 이후 추상 모더니즘을 지향한 독창적인 예술가들이 다양한 양식의 작품을 창작한 한국 추상미술에서 광주가 중요한 지역임을 고찰하는데 있다. 광주사범학교 교사인 강용운과 양수아가 전개한 앵포르멜은 광주를 비롯한 현대적 의미의 우리나라 현대추상운동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강용운은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초 앵포르멜 영향을 받은 추상 작품을 그렸으며 양수아는 1948년 광주미국공보원에서 추상화전을 열었다. 광주의 앵포르멜 추상은 박서보, 하인두보다 빠르며 강용운의 <봄>(1947)까지 고려하면 우리나라 모더니즘 추상운동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이 후 광주의 모더니즘 추상운동은 광주사범학교에서 강용운, 양수아에게 수업을 받은 정영렬, 최종섭, 우제길, 최재창, 장지환 등이 주도한다. 이들은 1964년 설립된 모더니즘 추상미술 단체인 에뽀끄를 중심으로 광주화단에서 활발히 활동한다. 1970년대 광주 추상화가들은 회화의 평면성을 확보하면서 객관적, 분석적으로 화면을 재구성한 모노크롬 추상을 중심으로 다양한 경향의 추상 작품을 제작한다. 1980년대 이후 최종섭, 김종일, 우제길 등 광주의 추상 모더니즘 작가들은 독창적인 화풍의 작품을 창작했다. 최종섭은 우리 정서와 문화를 한지의 물성으로 표현한 단색 위주의 모노크롬 추상회화 <코리아환타지> 연작을 제작한다. 김종일은 1970년대 그린 검정 모노크롬 회화에서 1980년대 이후 검정에 색을 넣은 작품을 그렸다. 우제길은 빛에 의해 발현된 물체와 색을 바탕으로 물질의 본질을 연구하고 실험하였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개최 이후, 추상회화와 함께 포스트모더니즘미술 등 미술의 다양화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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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이프치히 화파의 성장배경과 발달사례 연구- 세계미술시장에서의 위치와 마케팅 전략을 중심으로

        오병희 유럽문화예술학회 2017 유럽문화예술학논집 Vol.8 No.2

        Located in East Germany, Leipzig fell under the socialist system after World War II. Artists there during this period worked on propaganda paintings and socialist history paintings that were predicated upon socialist realism. After German reunification in 1990, Leipzig artists embraced a new mode based on both the socialist tradition and traditional German art with which they had grown up. They later found themselves placed at the center of the global art market in the 2000s. This study pays heed particularly to the Spinnerei, a former industrial site that is used today as an artistic complex. The Spinnerei has contributed greatly to transforming Leipzig artists into world-class artists through its multilateral support. This study also pays attention to the role of art dealers like Gerd Hari Lipke, support from German museums and galleries, and the German government’s branding policy for young and up-and-coming Leipzig artists. It researches the role of the international art market’s network that was dedicated to promoting young Leipzig artists worldwide, the process of support offered by the German government and its museums and galleries, and the procedure by which artists traded their works in the international art market. In addition, this study is a discussion on how such artists were able to further their own socialist tradition as a mode befitting the international art market. Based on this discussion, this study explores cases that are meaningful to revitalize art markets through support policies for young artists. 구동독 지역에 위치한 라이프치히는 2차 세계대전 후 사회주의 체제에 있었으며 이 시기 예술가들은 사회주의 사실주의를 근간으로 한 선전화와 사회주의 역사화를 그렸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된후 라이프치히의 작가들은 사회주의의 전통과 독일 전통미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양식을 도입하였다. 사회주의 전통과 독일 표현주의 미술 양식의 기반 위에 성장한 라이프치히 작가들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세계미술시장 중심에 위치한다. 본 연구는 신라이프치히 화파의 작가들을 세계적인 예술가로만든 배경에 있어 다각적인 예술지원, 특히 작가들을 지원하는 예술단지인 스피너라이에 주목하였다. 더불어 본 연구자는 세계미술시장에 소개한 게르트 하리 립케와 같은 화상의 역할, 독일갤러리들과 미술관들의 지원, 독일 정부의 라이프치히 청년작가를 위한 미술 브랜드화 정책이 동반되었음을알게 되었다. 이 연구는 라이프치히 청년작가들을 전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한 세계적인 미술시장 네트워크의 역할, 독일 정부 및 미술관과 갤러리의 지원 과정, 국제미술시장에 신라이프치히 화파의 작품이 거래되는 과정을 알아본다. 더불어 라히프치히 청년작가들이 자신들이 배운 사회주의 미술 전통을 국제 미술시장에 적합한 양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는지 그 배경에 관해 논의하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이 연구는 청년예술가 지원 정책을 통해 미술시장을 활성화 시키는 사례로서 의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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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형법상 법인의 형사책임에 대한 연구 -중국 형법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오병희 한국법학원 2024 저스티스 Vol.205 No.-

        베트남과 중국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성립된 사회주의 국가로서 초기 사법제도의 형성과정에서 구소련의 제도를 기반으로 하였고, 시기적으로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국가로 되면서 거의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하였다. 베트남은 1980년대 사회주의체제를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경제정책의 실패를 맛본 이후 경제 재건을 위하여 1986년 도이 머이 정책을 실시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사법제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러한 과정에서 베트남보다 앞서 1970년대부터 개혁개방정책을 시도한 중국이 베트남의 모델이 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도 베트남은 사법제도 개혁과정에서도 법원체계나 판례제도 등 다수의 사례에서 중국을 모방하였다. 한편, 베트남은 형사법률에서 법인에 대한 처벌규정을 전혀 두지 않고 있었는데, 위와 같은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2015년 개정 형법에서 최초로 영리법인에 대한 처벌규정을 도입하였다. 중국은 베트남에 앞서서 1997년 개정 형법총칙에서 단위범죄에 대한 처벌규정을 신설하였고, 위와 같은 중국의 영향을 고려하면 베트남의 법인 형사처벌규정의 해석․적용에서도 중국 형법이 참고가 될 수 있다. 다만, 위와 같은 영리법인 처벌규정의 형식이나 내용을 보면, 이 부분에 있어서는 중국보다는 프랑스 형법의 영향을 더 많이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베트남 2015년 형법을 살펴보면, 형법총칙규정에서 범죄의 정의 및 종류, 범죄구성요건, 형벌 및 사법조치, 공범, 형의 양정, 위법성 및 책임 관련 조항, 공소시효 등의 규정을 두고 있는데, 위와 같은 베트남 형법총칙의 구성 및 내용, 해석과 관련된 이론 등은 중국 형법과 대체로 유사하고, 다만, 베트남 형법에서 범죄의 종류나 사법조치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는 점이라든지 각 조항의 내용 및 해석에 있어서 일부 차이가 존재한다. 한편, 베트남 형법에서 영리법인에 대한 처벌규정에 대하여 살펴보면, 중국이 단위라는 상당히 넓은 범위로 처벌대상을 규정하고 있는 것과 달리 베트남은 영리법인에 한정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영리법인의 처벌에 관하여 형법총칙에 별도의 장으로 구체적인 규정을 다수 두어 형법총칙에 단 2개의 조문만 두고 있는 중국과 다르다. 이외에도 베트남의 법인 처벌규정의 형식이나 내용 등에서 중국의 것과 다른 부분이 많고, 오히려 이 부분은 프랑스 형법의 관련 규정과 훨씬 더 유사하므로, 이 부분 베트남 형법의 해석에 있어서는 프랑스 형법의 관련 규정을 상당 부분 참고하였다. 그리고 베트남 영리법인의 처벌과 관련하여 공범조항의 적용과 관련된 문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고, 이외에도 베트남 형법에 고유한 사법조치, 형벌의 가중사유로 규정된 재범과 관련된 문제 등에 대하여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양벌규정의 형식으로만 법인을 처벌하고 있는데, 경제․사회발전에 따라 법인범죄에 대한 처벌을 확대하여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이에 따라 법인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 할 것인데, 위와 같은 베트남, 중국 등의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베트남에 진출하여 있는 한국기업들을 현지에서 진행되는 형사사법절차에서 보호하여야 할 실제적인 필요성도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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