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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와 기독교적 인식론

        양성만 통합연구학회 1998 통합연구 Vol.11 No.1-2

        In this article I discuss that a Christian epistemology in 20th century should be. Schaeffer analyzed the rise and decline of western thought and culture in his books. His conclusion is that western men happen to escape from reason because they decided to escape from God and to be automonous. My discussion starts from this conclusion and I propose to return to God and restore reason. I describe some principles of a Christian epistemology and show how they solve a epistemological perplexity in philosophy as an example.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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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 언어는 불가능한가

        양성만 새한철학회 1999 哲學論叢 Vol.16 No.-

        실체를 정신과 물질의 두 종류로 구분하는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사적 언어가 가능하다고 본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의심이 가능한 물체의 존재와는 달리 의심할 수 없는 정신의 존재는 육체의 존재를 전제하지 잃으므로 사적 인어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사적 인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그 가장 중요한 논거는 사적 언어의 경우에는 언어의 사용의 맞고 틀림을 구분해 줄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에어는 사적 언어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판단의 정당화는 어디에선가 끝나야 하므로 일차 인지는 다른 일차 인지에 의한 뒷받침이 없을 때에도 정당화의 근거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적 인어의 경우 기억이 낱말의 바른 사용에 대한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억에 간한 우리의 실제 언어 놀이를 분석해 볼 때 우리의 언어놀이에서 기억이 정당화에 기여하는 것은 그 기억의 내용이 맞는지를 당장 확인할 수 없을 때이다 그렇다고 모든 기억이 정당화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 또는 그런 종류의 기억의 정확성이 경험에 의해서 확증되었을 때에만 우리는 그 기억에 신빙성을 부여한다 우리의 이 관찰은 기억은 그 기억의 내용이 맞을 때에만 정당화에 기여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이 틀렸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모든 기억이 똑같이 정당화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므로 에어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음이 드러난다 사적 언어의 경우에는 기억이 개별적으로뿐 아니라 집합적으로도 그 정확성이 확인될 수 없으므로 기억은 사적 언어 사용의 기준을 제공할 수 없다고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적 언어는 불가능해도 사적 감각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감각은 일정한 물리적 현상과 연결되어 있으며 물리적 사물에 관한 언어의 유비적인 용법을 통해서 표현된다는 사실은 그만큼 순수한 사적 감각이 불가능함을 보여 준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의 단락 243-315를 중심으로 한 소위 사적 언어 논증에서 사적 언어가 불가능함을 입증한다.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이 말하고 있는 사적 언어란 어떤 사람이 우연히 자기 혼자만 알게 된 언어가 아니라 오직 "말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말하는 사람만이 그 뜻을 알 수 있는 언어이다(§243). 비밀 일기를 쓰기 위해서 자기만의 기호를 고안해서 사용하는 언어나 로빈슨 크루소처럼 고도에 혼자 떨어져 살게 된 사람의 언어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이 사적 언어의 대표적인 후보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나는 아프다"에서 '아픔'과 같은 감각 언어이다. 물론 비트겐슈타인은 사적 언어를 부인하고 있으므로 그에 의하면 '아픔'은 사적 언어가 아니다. 그런데 '아픔'과 같은 단어는 사적 언어이며 사적 언어는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을 이원론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데카르트주의자들이 그들이다. 이들에 의하면 나의 아픔을 나는 느껴서 알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알 수 없으므로 사적 감각이고, '아픔'은 이런 사적 감각을 지칭하므로 사적 언어라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실체를 물체와 정신의 두 종류로 나누면서 사고를 정신의 속성으로 삼았다. 이때 사고란 지적인 사유뿐 아니라 의지, 감정, 아픔, 쾌락, 심적 이미지, 감각 등 정신이 의식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정신의 사유의 내용이 물체에 관한 것보다 우리에게 더 확실하게 알려진다고 주장했다. 나의 감각의 대상이 실재하는 사물인지는 의심할 수 있지만 내가 그 감각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만일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실체가 언어를 사용한다면 그 언어는 위에서 규정한 사적 언어임에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데카르트의 정신은 육체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이와 같은 이해는 그의 추종자들뿐 아니라 당시의 경험론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철학자들에게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고 거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철학의 중심적인 패러다임으로 남아 있다. 데카르트 이원론의 영향이든 아니든 일반인들도, 우리 인간에게 사적 감각이 있으며 그런 사적 감각이 혼자만의 언어나 혹은 공적인 언어를 통해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다른 사람은 나의 감각을 나의 행동을 보고 간접적으로 알지만 나는 직접적으로 느껴서 안다. 때로는 아픔-행동이 전혀 없는 아픔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아픔이라고 해서 아픔이 되는 데에 전혀 모자라는 것이 없으므로 아픔은 본질적으로 사적인 대상이라고 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아픔을 비롯하여 여타의 감각들을 언어로 얼마든지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적 언어가 불가능하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은 철학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유작 『탐구』가 1953년에 출판되자 철학자들은 『탐구』의 이 내용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 이후 여러 각도에서 이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사적 언어 논증을 통해 사적 언어의 가능성 문제뿐 아니라 이 문제와 관련된 여러 문제들, 예컨대 고통과 같은 감각은 나만이 알 수 있다는 주장의 타당성 여부, 감각 언어에서의 사적 감각의 역할 등을 함께 다루고 있지만 이 논문에서는 사적 언어 자체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서 논의하려고 한다. 필자는 비트겐슈타인이 어떤 논거에서 사적 언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지 설명하고 다음에는 사적 언어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철학자 어어의 반론을 살피려고 한다. 필자는 에어의 논박이 성공하지 못했음을 보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반적으로 감각이 사적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음을 보이려고 한다. Catesians think there can be a private language Following Descartes, they divide reality into mind and matter Descartes argued that we can doubt about matter but not about mind and that a mind can exist without a body So he thought there can absolutely be a private language But Wittgenstein argued that there can't be a private language His main argument is that there is no criterion for correctness of the usage of a private language Ayer proposed that there can be a private language Since every process of checking must terminate in some act of recognition, no process of checking can establish anything unless some acts of recognition are taken as valid in themselves So memory can provide a criterion for the correctness of a private language But in reality it is when we can't check the correctness of memory that memory plays its role in the process of justification But it is not that all memory can play the role We have trust in the memory of a person when his memory has turned out [o be correct by some tests So it appears that Wittgenstein is not correct when he said that only the correct memory can play the role of justification. But our observation shows also that Ayer's argument is not true In the case of a private language memory can't be' checked not only individually but also collectively we must conclude that there is to criterion for a private language Many persons think that there can be private sensations even though there can't be a private language. But the fact that sensations in general are correlated with material process and that they are often expressed analogically by some words which originally denote material things shows that there can scarcely be a pure private sens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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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6절의 ‘바르고 필연적인 귀결’

        양성만 기독교학문연구회 2017 신앙과 학문 Vol.22 No.1

        Westminster Confession admits good and necessary consequence in addition to expressed texts of Scripture as means to know the whole counsel of God. In this article I try to clarify the meaning of ‘good and necessary consequence’. First I will check the reasons for what the Christian church need to use good and necessary consequence to get some intentions of God and seek the ground to use it in Scripture. And I try to examine and specify the exact meaning of ‘good’ and ‘necessary’ in ‘good and necessary consequence’ in Westminster Confession from the minutes of the Westminster Assembly and the writings of Gillespie, and explanations of recent writers. There are some Christian scholars who wrote about logic on Christian point of view. So I will compare their understandings of logic with that of Westminster Confession. Finally I ask if the spirit of ‘good and necessary consequence’ can be the frame for Christian academic study or not.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6절은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성경 명문 외에, 성경을 전제로 삼은 바르고 필연적인 귀결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고백한다. 이 논문은 이 ‘바르고 필연적인 귀결’이란 어떤 추리를 말하는지를 해명해 보려는 시도이다. 먼저 성경을 이해하는 데 왜 바르고 필연적인 귀결이라는 방법이 필요한지, 또 그 사용 근거가 무엇인지를 확인한다. 그 후에 우리는 “바르고 필연적인 귀결”의 “바른”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리고 “필연적인”이 어떤 종류의 필연성을 말하는 것인지를 규명하려고 한다. 그런 후 이후의 카이퍼, 도여베르트, 클락, 포이트레스의 논리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고, 이 네 기독교 학자들 각각의 논리관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논리관과 비교하여 평가해 본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탐구 결과가 기독교적 학문 연구 일반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탐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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