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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소비에트 연방의 민중문화로서의 춤 공연예술 현상연구

        양민아 무용역사기록학회(구 한국무용사학회) 2015 무용역사기록학 Vol.39 No.-

        본 연구에서는 1920~30년 초기 소비에트 연방이 국가로서 기틀을 다지기 위해 민중계몽, 사회주 의이념 확산, 민족통합을 목적으로 예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나타난 민중문화로서의 춤 공연예술 현상을 살펴보려고 한다. 1920~30년는 레닌의 예술중화 사상에 의해 신생국가 소비에트 연방을 이끌어 갈 다양한 사회 계층의 국민들이 향유하고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의 모습을 찾고 있던 시기다. 따라서 이 시기 는 소비에트 연방의 공연예술의 특징과 형식 그리고 방향성이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이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비전문인들의 예술단인 소인예술단(素人藝術團)의 활동. 일반 중들이 공연 예술의 생산과 향유의 주체로 등장한다. 둘째, 에스트라다(Эстрада)와 민속춤의 활성화. 이는 다민족․다문화 민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공연예술의 형식과 장르로 자리 잡는다. 발레안무가들에 의한 민속예술단의 탄생에 지한 향을 미친다. 셋째, 소비에트 발레의 탄생. 1934년에 열린 ‘전소련 작가동맹회의’에서 고리끼 M.이 소비에트 예술창작원리로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선포하고, 이에 따라 젊은 소비에트 안무가들은 소비에트 연방 정권이 추구하는 주제와 내용에 부합하는 소비에트 발 레를 창안한다. 초기 소비에트 연방에서 형성된 민중공연예술의 형식과 레닌의 예술사상은 여타 사회주의국가들의 예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1980~90년 활발했던 민족․민중춤 활동에도 지한 향을 미쳤다. 앞으로 소비에트 연방 초기에 형성된 민중문화로서의 춤 공연예술의 형식과 특징들이 민족․민중춤 활동에서 어떠한 경로로 수용되고, 반되었는지에 한 후속연구로 이어지기를 기한다. This study examines the trends related to dance as a performance art during the early period of the Soviet Union, a time in which art was broadly used for public enlightenment, the promotion of socialist ideology, and national integration and establishment in the 1920s and 1930s. Dance in this period will be investigated with the aim of determining who produced and appreciated dance performance, the format and genre of the dance performances, and the themes and contents of the performances. Throughout the 1920s and 30s, efforts were made to develop a new form of art that would be appreciated and accepted by Soviet people from various social classes and would help to lead the newly born country, based on Lenin’s idea of popularizing art for the general public. It was a critical period that shaped the characteristics, format, and direction of performing arts in the Soviet Union. In looking at this period, three phenomena stand out. First, ordinary people emerged as both producers and viewers of the performing arts, and an amateur performing arts group (Soin Yesuldan) became popular. Second, Estrada and folk dance became popular during this period among the multi-ethnic and multi-cultural people of the Soviet Union, which greatly influenced the birth of a folk dance company with ballet choreographers. Third, at a meeting of the Pan-Soviet Writers Alliance held in 1934, Gor’kii M. declared that socialist realism should be the principle for creating Soviet art. Subsequently, young Soviet ballet masters developed new forms of ballet in which the themes and contents were in accord with the government agenda. Dance as a performing art in the early period of the Soviet Union greatly influenced not only the art movements in other socialist countries but also Minjok and Minjung chum in Korea in the 1980s and 1990s. In this regard, future research should investigate how dance formats and characteristics from the Soviet Union have been accommodated and reflected in Korean Minjok and Minjung c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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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러 스포츠문화 교류의 시원(始原): 넬리 김(Нелли Ким)의 기계체조 활동사를 중심으로

        양민아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동유럽발칸연구소 2020 동유럽발칸연구 Vol.44 No.2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 연구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의 체육정책을 살펴보고, 러시아 한인 3세로 구소련의 올림픽 5관왕 기계체조선수였던 넬리 김의 체조 활동 사를 조사하며 그 특징과 의의를 밝히는 것이다. 넬리 김은 1989-90년까지 대한민국 기계체조 국가대표 코치를 역임하였으며, 한‧러 기계체조 교류에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연구방법은 넬리 김 관련 자료들로 자서전(러시아어, 한국어), 그리고 한국 신문기사의 콘텐츠 분석을 통한 전기적 생애사 연구방법을 사용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은 국가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올림픽에 참 가하기 시작했다. 올림픽 메달획득을 통해 체제의 우월성과 정당성을 입증 하려고 했다. 따라서 소련체육의 주요 목적이 올림픽 챔피언 양성으로 전환 되었다. 이를 위해, 소련 체육계는 두터운 선수층 확보를 위해 유소년 체육 학교(ДЮСШ) 수의 증가와 유소년 체육대회를 개최하였고, 선수들의 기록 향상을 위해 체육학을 정립하고 발전시켜 올림픽 엘리트 선수양성에 전력을 기울였다. 본 연구에서는 넬리 김이 구소련이 올림픽 선수 양성을 목표로 재편한 체육정책과 시스템 안에서 탄생한 올림픽 메달리스트임을 확인할 수 있었 다. 그녀의 체조활동 시기는 크게 체조 입문기(1966~1970), 체조선수기 (1971~1980), 선수은퇴기(1981~현재)의 3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넬리 김은 유토피아 소련의 홍보모델, 소련 내 소수민족의 롤 모델, 자랑스러운 러시 아 한인 그리고 여자 기계체조계의 국무총리로 은퇴 후에도 넬리 김은 체 조심판과 지도자로 활동하며 구소련과 대한민국의 여자체조교류, 여자기계 체조의 기술발전과 대한민국의 체조발전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This study examines the gymnasts Nellie Kim’s activity in Soviet sports policy since World War II and clarifies the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her activities. As the 3rd generation of Korean-Russian Nellie Kim is the five-time Olympic medalist. She had served as the coach of the Korean National Gymnastics Team in 1989-90 and had laid the foundation for the Korea-Russia gymnastics interchange. The methodologies used in this study are literature analysis, biographical life history methodology with contents analysis of materials related to Nellie Kim’s activities such as autobiographies in Russian and in Korean and Korean newspaper articles. Since World War II, The Soviet Union began to participate in the Olympics to improve its national image and to prove the superiority and legitimacy of the soviet system. Therefore the main purpose of Soviet sports was reformed to train Olympic champions. For this purpose, the Soviet sports society increase the number of youth sports schools(ДЮСШ) and held youth sports competitions to have a lot of strong players and to cultivate Olympic elite athletes through the establishment and development of sports studies to improve sportsmen’s records and techniques. In this research, the author was able to confirm that Nellie Kim was trained as an Olympic medalist in The Soviet Union’s Sports policy and system. Her activities can be divided into three periods: Introductory period (1967~1970), Gymnast period (1971~1980), Post-retirement period (1980~present). She was the symbolic model of Soviet Utopia, the role model of ethnic minorities in the USSR, the proud Korean-Russian and the Prime Minister in the women’s gymnastics world. Even after her retirement, she continues to work as a gymnastic judge and trainer, to promote the exchange and development of women’s gymnastics in Russia and South Korea. And had always been interested in the development of Korean gymnas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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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국가적 유라시아 한인 스포츠 공동체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제언: 세계한민족축전을 중심으로

        양민아 인문사회 21 2022 인문사회 21 Vol.13 No.4

        Suggestions for Making of a Network ofTransnational Eurasian Korean Sports Community:Focusing on the World Koreans FestivalMina Yang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contents and results of the World Koreans Festival held for 25 years (1989-2014) and makes suggestions for forming a network of transnational Eurasian Korean sports communities. The methodologies used literature study and content analysis. The World Koreans Festival played a role in forming networks with the global Korean community, national identity and solidarity and creating national pride. However, the problems are the difficulties in network management, lack of identity as a sporting event, and aging of participants. In conclusion, It is necessary to secure legal and institutional grounds, hold an e-sports online festival for MZ generations and establish a sports network with North Korea. This research will have a positive impact on the need to form a network of Eurasian Korean sports communities. Key Words: Transnationalism, Eurasia, A Network of Korean Sports Community, The World Koreans Festival, Overseas Koreans 초국가적 유라시아 한인 스포츠 공동체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제언:세계한민족축전을 중심으로양 민 아** 연구 목적: 이 연구는 25년간(1989-2014) 개최된 세계한민족축전의 개최 현황과 성과를 검토하고 초국가적 유라시아 한인 스포츠 공동체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제언을 하는 것이다. 연구 방법: 주제와 관련된 학술연구물과 신문기사 등의 문헌연구와 콘텐츠 분석을 사용하였다. 연구 내용: 세계한민족축전은 재외한인 공동체와 네트워크 그리고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고 연대감 그리고 자긍심을 고취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네트워크 후속관리의 어려움, 스포츠 행사로서의 정체성 부재, 참가자들의 고령화도 문제점과 한계로 드러났다. 결론 및 제언: 초국가적 유라시아 한인 스포츠 공동체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서는 첫째, 법적・제도적 근거 확보, 둘째, MZ 세대 한인들의 온라인 e스포츠 대회 개최, 셋째, 북한과의 스포츠 네트워크 구축이다. 이 연구가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유라시아 한인 스포츠 공동체 네트워크 형성의 필요성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핵심어: 초국가주의, 유라시아, 한인 스포츠 공동체 네트워크, 세계한민족축전, 재외한인 □ 접수일: 2022년 5월 31일, 수정일: 2022년 7월 14일, 게재확정일: 2022년 8월 20일* 이 논문은 2020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2S1A6A3A02033580). ** 중앙대학교 외국학연구소 HK 연구교수(Professor, Chung-Ang Univ., Email: minayang9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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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거주 1인 가구 청년의 조리태도에 따른 식생활 특성 및 공유부엌 니즈

        양민아,아사노가나,김나래,윤지현 대한지역사회영양학회 2020 대한지역사회영양학회지 Vol.25 No.3

        Objectives: This study examined the dietary characteristics and needs for community kitchens among young adults of single-person households in Seoul according to the cooking attitude. Methods: During April 2018, an online survey was conducted on young adults of singleperson households in their 20s and 30s residing in Seoul. The respondents were classified into the more positive cooking attitude group (More Positive Group; n=152, mean=4.11) and the less positive cooking attitude group (Less Positive Group; n=190, mean=3.03) based on the mean score (3.51) of the 4-item 5-point Likert scales measuring the cooking attitude. The responses of the two groups were compared. Results: Approximately 90% of the More Positive Group had the cooking ability to prepare ordinary meals or more advanced cooking skills, whereas only 61% of the Less Positive Group had such skills. Approximately a half of the More Positive Group cooked at home three times a week or more; only 30% of the Less Positive Group did so, and more than 30% of the group seldom cooked. The More Positive Group had higher mean scores in the levels of satisfaction with dietary life and care for food safety and nutrition than the Less Positive Group. Approximately 30% of all the respondents expressed their needs for community kitchens. The most frequently answered reason for such needs was “being able to have a meal with others”. Conclusions: The young adults of single-person households with a more positive cooking attitude possessed a higher cooking ability, cooked more often, and cared more about food safety and nutrition than those with a less positive cooking attitude. There were moderate needs for community kitchens among young adults of single-person households living in Seoul. Therefore, societal efforts to improve their cooking attitude would be meaningful for improving their quality of dietary life. Cooking lessons or social dining programs based on community kitchens could be an option. 본 연구에서는 서울시에 거주하고 있는 1인 가구 청년을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조리태도에 따른 식생활 특성과 공유부엌에 대한 니즈를 파악하였다. 주요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5점 척도로 측정한 1인 가구 청년의 조리태도의 평균값은 3.51이었다. 이 값을 기준으로 총 342명의 응답자를 조리태도 고긍정군(n=152, 조리태도 평균=4.11점)과 조리태도 저긍정군(n=190, 조리태도 평균=3.03점)으로 분류하였다. 두 군의 일반적 특성에는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2. 조리태도 고긍정군의 약 90%가 일상적인 식사 이상의조리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조리태도 저긍정군의 경우에는 약 61%만이 일상적인 식사 이상의 조리가 가능하였다. 3. 조리태도 고긍정군의 반 정도(50.7%)가 가정에서 주3회 이상 조리하는 것으로 나타나 조리빈도가 높은 반면, 조리태도 저긍정군의 약 30%만이 가정에서 주 3회 이상 조리하였고, 거의 조리를 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도 31%에달했다. 4. 식재료 구매 장소의 경우, 두 군의 응답 분포에는 유의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반 이상(54.1%)이 대형 할인마트에서 식재료를 구매하였으며, 약30% 정도가 동네 슈퍼마켓을 이용하였다. 5. 조리태도 고긍정군과 저긍정군 간의 외식 및 가정간편식 이용 빈도의 분포에는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주 2~3회이상 외식을 하는 비율은 약 70%, 가정간편식을 이용하는비율은 약 28%였다. 6. 식품 안전 및 영양에 대한 관심도, 식생활에 대한 만족도에서 조리태도 저긍정군과 비교하여 고긍정군이 높은 점수를 나타내었다. 7. 응답자의 약 1/3(30.1%)이 본인에게 공유부엌이 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 응답자의 약 1/2 이상(52.6%)이 일반적인 1인 가구 청년에게 공유부엌이 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 본인의 니즈와 1인 가구 청년의 니즈 모두에서 조리태도고긍정군과 저긍정군 간의 차이가 있었다. 8. 응답자의 38%가 공유부엌이 필요한 이유에 대하여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할 수 있어서’라고 응답하였으며, 30% 는 ‘식사준비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어서’라고 응답하였다. 또한 공유부엌 이용 시 고려하는 사항 중 ‘함께 이용하는사람’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41%로 가장 높았고, 공유부엌에서는 주로 일상적인 음식을 만들기를 희망하였다(64.1%). 결론적으로, 보다 긍정적인 조리태도를 가진 서울시 1인가구 청년들이 그렇지 않은 청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조리 능력을 보유하고, 더 자주 가정에서 조리를 하였고, 식품의 안전 및 영양에 대하여 보다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식생활에 더 만족하고 있었다. 서울시 1인 가구 청년의 공유부엌 니즈는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보다 긍정적인 조리태도를 가진 청년들의 공유부엌에 대한 니즈가 그렇지 않은 청년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러므로 1인 가구 청년이 긍정적인 조리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노력이그들의 식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한노력의 일환으로 공유부엌을 기반으로 하여, 조리 능력을 함양시킬 수 있는 요리 수업이나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할수 있도록 하는 소셜다이닝 등이 효과적일 것이다. 본 연구는 조사 전문업체를 통하여 조사를 수행하였기에본 연구 결과가 서울시 1인 가구 청년 전체를 대표하기에는한계가 있을 수 있다. 또한 공유부엌을 잘 알지 못하거나 이용 경험이 없는 응답자의 경우 공 ...

      • 국내 학습장애 아동의 중재 프로그램 효과: 체계적 고찰

        양민아,이혜식,김정란 대한아동·학교작업치료학회 2019 대한아동 ․학교작업치료학회지 Vol.8 No.1

        목적 : 국내 학습장애를 대상으로 한 중재와 그에 따른 효과에 대한 체계적 고찰을 통해 학습장애 중재에 대한 근거를 마련 하고, 작업치료 분야에서의 학습장애 중재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고자 하였다. 연구방법 : 문헌 검색은 2014년 5월부터 2019년 5월까지 5년간의 연구를 포함하였다. 데이터베이스는 KISS, RISS를 사 용하였고, hand searching을 통해 추가로 문헌을 찾았다. 검색어는 “학습장애” AND “중재 OR 교수 OR 전략 OR 학습 OR 교육”을 사용하여 최종적으로 7편의 문헌을 선정하였다. 결과 : 총 7편의 문헌에서 적은 수의 참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단일대상연구들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용된 중재의 종류는 쓰기 3편, 읽기 2편, 과학 2편으로 쓰기 중재가 가장 많았다. 각각의 중재는 철자의 정확도, 문장의 이해도, 과학 성취도에 효과적이었다. 결론 : 본 연구를 통해 학습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한 작업치료의 중재, 대상자, 평가도구 및 효과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고, 임상과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Objective : Through systematic review of the interventions for learning disabilities in Korea and the corresponding effects, we intend to establish the basis for the intervention of learning disabilities, and recognize the need for the intervention study of learning disabilities in the field of occupational therapy. Methods : The literature search included five years of research from May 2014 to May 2019. The database used KISS and RISS, and further literature was found through hand searching. The search term was selected 7 literature using "Learning Disabilities" AND "Intervention OR Teaching OR Learning OR Education" Results : The types of intervention used in a total of seven literatures were three writing, two reading and two science, with writing intervention being the most used. In each intervention, spelling accuracy, comprehension of sentences, and scientific achievement were effective. Conclusion : This systematic review provides evidence concerning the participants, intervention, assessment and effects of occupational therapy for learning disability. It should be used for basic data for the research and practice of occupational therapy for learning dis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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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러시아한인예술단 내한공연의 무용사적 의미 : 디아스포라 문화연구의 관점으로

        양민아 무용역사기록학회(구 한국무용사학회) 2014 무용역사기록학 Vol.34 No.-

        본 논문은 1920년대 초 러시아 연해주 한인예술단의 내한공연에 관한 연구이다. 1921년~1922년 3차례에 걸쳐 내한한 러시아한인예술단의 표면적인 방문 목적은 계속되는 가뭄과 사회주의 혁명이후 전쟁으로 어려워진 연해주 한인들의 구제와 교당 건축기금의 모금이었다. 이들의 내한공연은 전국적인 인기를 누리며 우리사회에 서양민속춤과 음악의 유입, 무도열풍으로 인한 춤의 대중화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리고 당시 신무용 3인방으로 꼽히는 조택원이 춤에 입문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등 한국 근대무용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러시아한인예술단처럼 디아스포라의 문화가 모국의 문화에 영향을 끼 친 경우는 디아스포라의 문화연구에서 매우 이례적이며, 그것이 공연예술 활동이었기에 그 파급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디아스포라 문화연구 관점에서 1917년 사회주의혁명이후~1922년까지 내전 중이 던 러시아와 당시 일제강점기에 놓였던 우리사회의 사회․문화적인 맥락 속에서 해삼위 러시아한인예 술단의 활동과 단원구성 및 주요 인물분석, 공연형식, 공연레퍼토리 분석을 통해서 그 성격과 특징 무 용사적 의미를 규명해 보려고 한다. 이는 동시에 1920년대 러시아 연해주 한인 디아스포라를 다각적으 로 조망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러시아한인예술단의 단장인 이강, 한용헌, 곽병규는 당대 연해주 사회의 종교계에서 활동하던 독립 운동가들로 이들의 내한공연이 독립운동의 일환이라는 추측을 배재하기 어렵다. 단원 대부분이 비전문 인으로 소인예술단 형태이다. 공연형식은 당시 러시아에서 유행하던 민중공연예술형식인 에스트라다 순회공연형식을 취하고 있다. 1920년대 러시아한인예술단의 내한공연은 다음과 같은 무용사적 의미를 갖는다. 첫째, 최초의 재외 한인예술단으로서 초국가적인 민족정체성 형성의 기폭제역할을 했다. 둘째, 러시아에 거주하는 한인 디아스포라로 문화를 전달하는 문화적 중개인이었다. 마지막으로 국내․외 비밀 독립운동의 조력자 역 할을 했다. 그러나 1922년 12월 30일 소비에트 연방의 탄생으로 이들의 내한공연은 계속될 수 없었다. 연구방법으로는 문헌연구, 현지조사, 러시아 극동국립문서보관소(РГИА ДВ),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일본 외무성 사료와 <동아일보>, <매일신보> 그리고 연해주에서 발행된 한인 신문 <선봉>의 기사를 분석하였다. This research is about the performances of Korean immigrant art troupe, from Russia’s Vladivostok maritime province (Yonhaeju : Prismorsky Krai), that visited Korea in the early 1920s. Initially the performances aimed to raise funds to build churches and help Koreans in Russia suffering from economic difficulties due to prolonged droughts and the civil war in the aftermath of the Russian Revolution. However, the performances gained nationwide popularity, introducing Western folk music and dancing to Korea, which became the driving force in spreading a dance craze throughout the country. These performances significantly influenced the history of Korean modern dance, best exemplified by Cho Taek-Won who was first introduced to modern dance by the troupe’s performances and who became one of three new dance (Shinmuyong) pioneers. It is rare in the field of Diaspora Studies that cultural influences come from the outside the mother country, as in the case of the Korean-Russian art troupe. This research, from the perspective of the Diaspora (in the socio-cultural context of the troupe as they were caught between Russia’s civil war, in the period after the 1917 Revolution through 1922, and Korea under occupation by imperial Japan) shows the characteristics and meaning of the performances on the history of Korean modern dance, through analysis of performance activities and structures, member composition, the role of major leaders, and the troupe’s repertory of performances. At the same time, this study provides a foundation to understand the Korean Diaspora in Russia Like Lee Kang, Han Yong-Hun and Kwak Byuing-Gyu, the leaders of the Korean art troupe in Russia were leaders of the religious community who had participated in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in the maritime province of Russia. Most of them were non-professionals and each group had a small number of members. Their art form followed “Estrada,” a typical people’s performing art which were popular folk dance touring performances in Russia at the time. In the history of modern dance in Korea, the significance of the performances of the Korean immigrant art troupe from Russia is as follows. First, as the initial overseas Korean performing arts group, they inspired Koreans to pay attention to the problems of overseas Koreans through the promotion of their visit to Korea; they helped build a national identity across borders. Secondly, this art troupe, as part of the Korean Diaspora, became a cultural bridge between people in Korea and Koreans in Russia. Lastly, the art troupe supported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However, the performances were forced to stop, for political reasons, by the birth of the Soviet Union on December 30, 1922. Research methods include literature and library research, field surveys, including existing literature in the National Russian Library of East Asian Literature, materials made from the Japanes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kept in the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Dong-A Ilbo, Mae-il Shinnbo, and Sunbong, the Korean newspaper published in the maritime province of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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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本の道路標識のパターンから見る言語景観研究

        梁敏鎬(양민호) 한국일본어학회 2012 日本語學硏究 Vol.0 No.35

        본 연구는 실제로 필자가 수집한 언어경관 사진자료를 통하여 도로표식의 표기의 경향과 다언어 표기 패턴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그 결과, e기단계에 단일 언어 표기였던 것이 서서히 다언어 표기로 변화하고 있는 점과 언어 표기가 통일되어 가고 있는 점, 언어 표기가 바르고 자연스러운 표기로 수정되어 바뀌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눈에 보이는 도로표식’에는 다언어 표기가 시행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패턴으로는 ‘일본어와 영어’의 대응이 가장 많았다. 또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시설이나 도로에는 한국어 등이 첨가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국제화와 함께 진행되어 온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일본인에게는 장식적인 효과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언어경관에 등장하는 다언어 표기는 다나카(2009)가 지적하고 있는 다언어 표준 모델(일본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 픽토그램)에 대부분 부합하지만 본 논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도로표식에 한정해서 보면 다언어 표준 모델의 적용은 어렵다. 따라서 다언어 정책은 장면이나 상대방에 의해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향후 한국의 조사결과를 비교해 한국과 일본의 다언어 표기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분석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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