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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신성인의 군인, 이인호의 생애와 럭비활동

          안진규,위승완,박준형 한국체육사학회 2019 체육사학회지 Vol.24 No.2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Lee, In-Ho's life and rugby activity through literature analysis and interviews and to investigate its meaning. The following is the results from the study. First of all, Lee, In-Ho joined the rugby club voluntarily to become a ‘faithful soldier'. Second of all, under the educational objectives of the Korea Naval Academy, Lee cultivated strong physical strength and mental strength and especially learned and practiced ‘initiative spirit' and ‘sacrifice spirit' through practicing rugby extracurricular activities at the academy. Third of all, he played wing and flanker for the first three years and played the ‘number 8' position in his fourth year at the academy. His abilities to run and tackle were excellent. Last of all, Lee, In-Ho not only led the general championship of the 3rd Sports Competition among the whole army which was the very first time that navy won but also led a foundation for the honor and tradition of Navy's rugby team. As a result of this study, Lee, In-Ho was able to become a ‘faithful solider' who was eager to learn through training and discipline of the naval academy, especially the rugby player, and saved the life of his men by victory in Vietnam. 이 연구는 문헌분석방법과 인터뷰를 통해 이인호의 생애와 럭비활동을 밝히고, 그 의미를 규명하는데 본 연구의 목적이있다. 이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이인호는 ‘충실한 군인'이 되기 위해 자발적으로 럭비부에 가입하였다. 둘째, 해군사관학교의 교육목표 아래, 이인호는 1, 2학년 때는 옥포회 활동시간에, 3, 4학년 때는 과외 활동시간에 럭비부 활동에참가하여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함양하였으며 특히 ‘솔선수범'과 ‘희생정신'을 배우고 실천하였다. 셋째, 이인호는 3학년까지는 윙과 플랭커로, 4학년에는 8번 포지션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주력과 태클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마지막으로, 이인호는 제3회 삼군사관학교 체육대회에서 삼군사관학교 체육대회개최 이래, 최초로 럭비부 우승과 첫 종합우승을 이끌며 럭비부의 명예와 전통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와 같이 연구결과를 열거하여 종합해 볼 때 이인호는 해군사관학교의 교육과훈육 아래 특히 럭비부 선수활동을 통해 본인이 열망했던 ‘충실한 군인'이 될 수 있었고, 베트남전쟁에서 살신성인하여부하들의 생명을 구하고 승리할 수 있었다.

        • 국내 대학배구 심판의 무심과 오심 : 1부 팀 대 2부 팀 경기를 대상으로

          안진규 한국스포츠인류학회 2014 스포츠인류학연구 Vol.9 No.2

          본 연구의 목적은 질적 연구방법을 사용하여 대학배구 1부 팀과 2부 팀의 경기 시 나타나는 심판오심의 종류와 원인, 승자와 패자를 심층적으로 규명 하여 심판 오심에 대한 대처 방안을 제시하는데 있다. 우선 양 팀의 실력이 대동소이할 때, 특히 1세트∼4세트는 20점 이후, 5세트는 초반과 10점 이후, 그리고 경기흐름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에 나타나는 오심이 경기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심판의 오심종류와 원인은 첫째, 심판의 전문성과 도덕성이, 둘째는 심판들의 유기체적 관계 부족, 셋째는 잘못된 고정관념, 마지막으로 는 간섭과 외압으로 나눌 수 있었다. 이러한 오심은 승자에게는 패배로 인한 사회적 비난을 모면시켰으나,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했고, 패자는 심판에 대 한 강한 불신과 함께 정신적 허무함을 느껴야 했으며, 스스로 잘했다고 위안 을 가졌다. 오심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교육을 통해 심판의 자질(전 문성과 도덕성)을 높이고, 주장의 역할 및 선수의 규칙에 대한 이해도를 높 이고, 매 경기 심판의 능력을 평가하여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주고, 지도자가 심판에게 향응 및 금품을 절대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This study uses a quality based research method and the purpose is to present an in-depth analysis on the types and causes of a referee's misjudgments in the First Division Teams and Second Division Teams' competitions, and find out what the winners and losers get after the competition. For the types and causes of misjudgment, what matters was, firstly, the professionalism and morality, secondly, the deficiency of organic relationship between the referees and lastly, the interference and outer pressure. These misjudgments will allow the winners to curve the public's blame in the sense that they didn't lose but they couldn't avoid the guilty conscience. Meanwhile the party of losers feels a strong distrust toward the referee and despondency and has to find comfort in their doing best in the game. To prevent the misjudgment, we should elevate the referee's quality, improve the understanding about the captains' role and game rules. And, also, we have to arrange the system to evaluate the referee's ability to give an incentive or penalty and prohibit the couch from offering entertainments and bribes.

        • KCI등재

          학교운동회(1895~7)의 성격에 관한 연구

          안진규,조문기 한국스포츠학회 2020 한국스포츠학회지 Vol.18 No.3

          This author in this paper identified characteristics of sports festivals held from 1895 to 1897 by Eul‒mi‒ui‒suk, Public Primary School, Kyungsung School and Royal Foreign Language School. In addition, this author also examined correlations between the sports festivals held around this time and imperialist countries. It was highly probable that the Great Sports Festival held by Eul‒mi‒ui‒suk in May 1895, was planned and operated in the Japanese way with the intention of aggression on education by principals and teachers who experienced culture of sports festivals of Japan, started under the name of "Kyeongtuyuhi" since 1874. However, like that of Japan, only imperialistic or militaristic characteristics cannot be given to this sports festival. The reason is that it was introduced from Japan, planned and operated by Japanese but it was attributed to complex nature of Kabo Reform Movement that independent efforts of the government's moderate enlightenment party existed. However, thereafter, the sports festivals held at Public Primary School, Kyungsung School and Royal Foreign Language School showed transplantation of typical Japanese and western sports festival cultures such as singing a national anthem, flag raising, hurrah repeat and reading of a speech, which was due to careful strategy that the imperialistic colors of great powers are overlaid on appearance of 'supporting the education reform of Joseon'. 본 연구의 목적은 문헌분석방법을 사용하여 을미의숙, 관립소학교, 경성학당, 관립외국어학교 등에서 개최한 운동회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1895년 5월에 개최된 을미의숙 대운동회는 1874년부터 ‘경투유희'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일본의 운동회 문화를 경험한 교장 및 교사들이 교육 침략적 의도를 갖고 자국의 방식으로 기획하고 운영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운동회에는 일본의 그것처럼 제국주의 또는 군국주의적 성격만을 부여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일본으로부터 유입되었고, 일본인이 기획․운영하였으나, 조선 정부 온건개화파들의 주체적 노력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에 전개된 관립소학교, 경성학당, 관립외국어학교 등의 운동회에서는 애국가 제창, 국기 게양, 만세 복창, 연설문 낭독 등의 전형적인 일본 및 서구의 운동회 문화가 이식되는 양상을 보였는데, 이것은 ‘조선의 교육개혁 지원'을 표방한 제국주의적 팽창의 결과였다.

        • KCI등재

          구한말 관립 영어학교의 교과목 ‘체조'에 관한 연구

          안진규,조문기 한국스포츠학회 2019 한국스포츠학회지 Vol.17 No.2

          본고는 학부에서 외국어학교교칙을 제정・공포한 1900년도를 전후로 ‘체조과'가 정규 교과과정에 편성되는 과 정과 편성 이후의 하위 학습영역 및 시수 등등 운영상의 변화를 확인하였다. 영어학교에서 ‘체조과'가 정규 교과과정으 로 편성되기 시작한 것은 1900년 6월 27알에 학부에서 기존의 ‘외국어학교관제'를 보완하기 위해 ‘외국어학교규칙'을 제정・공포하면서이다. 1908년 영어학교에서는 총 16개 교과를 운영하였는데, 이 가운데 체조과는 주당 3시수로서 두 번째로 많은 시수를 확보하고 있었으며, 1, 2, 3학년 공통 과목이었다. 하위 학습영역은 보통체조와 병식체조로 구성되 어 있었는데, 이것은 정부에 파견된 일본인 고문들과 영어학교의 설립 및 운영에 주도권을 쥐고 있던 거류민 교사들의 영향에 의한 것이었다. 1909년도에는 영어학교의 체조과 하위 학습영역은 크게 변화했는데, 이는 병식체조의 소멸과 학교체조의 신규 편성으로 특징된다. 이러한 변화는 을사조약 체결 후 1906년 2월에 설치된 통감부의 지휘를 받는 일본 인 주도로, 특히 학정참여관 시데하라 히로시(幣原坦)의 구상을 기초로 이루어진 것인데, 당시 교육구국운동의 전개와 함께 점차 확산되어 가는 병식체조의 영향력을 의식하여 학교체조로 대체했던 것이다. This paper investigated how the subject of ‘Gymnastics' was organized in the regular curriculum and changes in its operation around 1990 when the Foreign Language School Rules was enacted and promulgated. As the Foreign Language School Rules was enacted on June 27, 1900, the ‘Gymnastics' started as a regular curriculum at English schools in order to complement the existing ‘Foreign Language School System'. In 1908, among 16 subjects in total at English Schools, gymnastics procured three hours per week, the second largest in weekly hours, as a common subject from the first to the third grade. Its sub-area of learning consisted of general and military style gymnastics, an influence from Japanese advisors and resident teachers who were in charge of establishment and operation of English Schools. In 1909, the military style gymnastics was replaced by the school gymnastics by the Japanese impact, especially the planning by School Policy Councillor Shidehara Hiroshi, under the Residency-General established in February 1906, because of the widespread impact of educational save-the-nation movement through the military-style gymnastics.

        • KCI등재

          한국 해군사관학교 축구반의 발전사(1946∼1993) - 명예와 전통이야기 -

          안진규,우재홍,위승완 한국체육사학회 2018 체육사학회지 Vol.23 No.4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the process of forming the honor and tradition of Korea N.A. Soccer Club by using text analysis method. The following conclusions were obtained. First, on February 8, 1946, the year that very first class of N.A. entered into the school, and the history of the N.A. soccer club begins. It becomes the oldest soccer club among other Military Academies in Korea. Second, the soccer club was operated in accordance with the educational purpose of the academy. However, as the first Sports Competition of the Whole Academy had begun in 1954, the team was concentrated on the spirit of soldering spirit, that is, play only for victory. Third, the club team was sorted as special physical activity. The club team trained not only during physical activity class but also in the morning hours, nighttime and vacations outside of the academy. Fourth, the official results of the club team have been shown since 1951. In 1952, the club team won the 33rd National Athletics Championships and had achieved excellent results in regional and national competitions by the late 1950s. Last, after experiencing downturn from 1960 to 1977, the team have won 21 titles and have won 6 consecutive title games twice in Sports Competition among the Whole Army Academy, forming the honor and tradition of the N.A. Soccer Club. 이 연구는 문헌분석방법을 사용하여 해군사관학교 축구반의 명예와 전통의 형성과정과 그 의미를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이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1946년 2월 8일 1기생이 입교함과 동시에 해군사관학교 축구반의 역사는 시작된다. 이는 육⋅해⋅공군 사관학교 축구반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파악된다. 둘째, 해군사관학교 축구반은 개교와 함께 학교의 교육목적에 부합되도록 운영되었으나, 1954년 삼사체전이 개최됨에 따라 군인정신인, 감투정신 함양, 즉 오직 승리에만 목적을 두고 집중⋅운영되었다. 셋째, 축구반은 체육부 활동반 중 특별반으로 분리되어 체육부활동 시간 외 새벽, 야간 그리고 방학기간에는 전지훈련(합숙훈련) 등을 이용하여 훈련하였다. 넷째, 해군사관학교 축구반의 공식적인 대회실적은 1951년부터 나타나며 1952년 제3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1950년 말까지 지역 및 전국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마지막으로 해군사관학교 축구반은 삼사체전에서 1960년부터 1977년까지의 침체기를 보내며, 총 21번의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6연패를 2회 달성하는 등 해군사관학교 축구반의 명예와 전통을 형성하였다.

        • KCI등재

          한국 해군사관학교의 체육부 운영과 대내․외 활동 연구(1946-1953)

          안진규,최권호,이원찬 한국스포츠학회 2020 한국스포츠학회지 Vol.18 No.3

          The study aims to use the context analysis method to identify the operations and activities of the sports department in Korea N.A. from 1946 to 1953. The following is the results from the study. First, In 1947, 1st cadet graduated and ran the "Gyowoohoe." In 1951, the "Okpohoe" was organized to operate the sports department. Second, the purpose of the sports department was to foster a fighting spirit and strong physical strength. Third, from the 8th cadet in 1950, the focus was on improving the performance of sports clubs for participation in external activities through the invitation coaches such as volleyball, etc. Fourth, in 1946, individual sports clubs such as ssireum or small-scale clubs appeared, and from 2nd cadet, group sports clubs such as baseball appeared. From 5th cadet, tennis․weightlifting clubs were operated. From 7th cadet in the handball․fencing․wrestling․yachts clubs and karate in 10th cadet were newly operated. Fifth, the 1st(1951) and 2nd(1952) Korea N.A. Sports Festival were held at Jinhae Public Stadium. Sixth, the Sports department of the Korea N.A. raised the honor of the Koera N.A. by participating in the 1951, 1952, 1953 National Sports Competition and winning the prize for excellence. 이 연구는 문헌분석방법을 사용하여 1946년 해군사관학교 개교부터 1954년 제1회 삼군사관학교 체육대회 개최 전까지의 체육부 활동의 운영과 대내․외 활동을 규명하고 그 의미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이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1947년 1기생이 졸업하면서 ‘교우회'를, 1951년에는 ‘옥포회'가 조직되면서 체육부 활동이 운영되었다. 둘째, 체육부 활동의 목적은 ‘고결한 군인정신' 함양, 즉 감투 정신 및 강인한 체력을 육성하는 데 있었다. 셋째, 1950년 8기생부터는 배구 등의 전문지도자 초빙 등을 통해 대외활동 참가를 위한 체육반 중심으로 경기력 향상에 초점을 두었다. 넷째, 1946년 1기생 때는 씨름 등의 개인, 또는 소규모 중심으로, 2기생부터는 야구 등의 단체 스포츠반이 나타났고, 4기생 때 정구반․역도반이 5기생부터는 송구반, 7기생부터는 커터반, 9기생부터는 펜싱반․레슬링반․요트반, 10기생부터는 당수반이 신설․운영되었다. 다섯째, 1951년 5월 7일과 1952년 10월 12일에 진해공설운동장에서 제1회와 제2회 해군사관학교 체육제전이 개최되었다. 이는 현 해군사관학교 명예 중대 경기의 근간을 이룬다. 여섯째, 1951년 6월 26일 해병학교 대 해사 대항 권투대회를 시작으로 1951, 1952, 1953년 전국체육대회 등에 참가한 해사 체육부는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여, 해사의 명예를 드높였다.

        • KCI등재

          마라토너 류해붕의 체육활동과 일장기말소의거

          안진규 한국체육사학회 2020 체육사학회지 Vol.25 No.2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larify the athletic activity of Ryu, Hae-Bung, his role in the erasure of Japanese national flag, and to examine the meaning in the aspect of athletic history. So, this paper attained the conclusion as follows. First, winning successively three times in Osaka Kobe Road relay from 1929 to 1931. He was active as a core runner, winning successively oversea four times including the victory at The Thirteenth Tokyo Yokohama Road relay in 1932. Second, he, as a Captain, leaded the golden age of Yangchung team in 1932 Third, he joined athletic team of Train Agency in 1933 and attained a victory of Gyeongseong Athletic League as well as of Chosun vs. Manju Athletic Meet. From 1934 to the early days of 1937 when he worked as a member of Goryo Athletic Game Cooperation and Seoul Athletic Game Federation, he was head in the development of our country athletics and in the entrance of national consciousness. Fifth, Ryu, Hae-Bung, a senior of Yangchung team, was proud of his juniors Sohn and Nam who won rank 1 and rank 3 at Berlin Olympic Games respectively. So, he caused the Erasure of Japanese National Flag of Chosun Joongang Ilbo in order to inspire Chosun people's superiority and anti-Japan spirit. In the end, the Erasure of Japanese National Flag of Dong-A Ilbo occurred when Ryu, Hae-bung informed of Lee, Gil-Yong. 이 연구는 문헌고찰을 통하여 마라토너 류해붕의 체육활동과 일장기말소사건에서 류해붕의 활동, 특히 여운형, 이길용, 손기정등과의 관계를 밝히고 체육사적 의미를 규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1929년부터 1931년까지 대판-신호간 역전경주대회 3연패, 1932년 제13회 동경-횡빈간 왕복 45마일 역전경기 우승 등 해외원정 4연패의 핵심 주자로서 활약하였다. 둘째, 주장으로서 동기 김은배와 후배 손기정 등과 함께 1932년 양정고보 육상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셋째, 1933년 철도국 육상부에 입단하여 경성육상리그 실업부 우승과 조선 대 만주 육상경기대회의 승리를 이끌었다. 넷째, 1934년《조선중앙일보》의 체육부 기자로 1937년 초까지 고려육상경기협회와 서울육상경기연맹 등 체육단체 임원으로, 여운형 회장과 이길용 임원과 함께 우리나라 육상발전은 물론 민족의식 고양에 앞장섰다. 다섯째, 양정고보 선배 류해붕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대회 마라톤에서 1, 3위한 후배 손기정과 남승룡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조선인의 우월성과 반일정신을 고취코자《조선중앙일보》의 일장기말소의거를 일으켰다. 마지막으로《동아일보》의 일장기말소사건은 류해붕이 같은 체육부 기자로서, 평소 체육단체 등에서 함께 일하고 친했던 형, 이길용에게 이야기하여 발생된 의거이다.

        • 이순신의 승리지 향적 리더십이 스포츠지도자에게 주는 의미

          안진규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07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학술세미나 자료집 Vol.9 No.1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 논고는 李舜臣의「亂中日記」ㆍ「李忠武公全書」에 나타난 승리 지향적 리더십을 밝히고, 이를 스포츠현장에 접목시켜 스포츠지도자들의 리더십 향상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이에 관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스포츠지도자 관점에서 바라본 勝利 指向的 리더십은 仁ㆍ義 중심의 리더십, 實踐의 리더십, 信賞必罰의 리더십, 對話의 리더십, 그리고 改革의 리더십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밝혔다. 먼저 勝利 指向的 仁ㆍ義 중심의 리더십은 스포츠지도자는 우선 修身을 통하여 지도자로서의 資質을 갖추도록 매일 같이 노력해야 하며, 선수들을 사랑(仁)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仁ㆍ義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둘째, 勝利 指向的 實踐의 리더십은 스포츠지도자는 實踐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승리를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단지 지도자의 實踐 능력은 제외되고, 선수개개인의 능력이 높다고 좋은 성적을 거두고, 능력이 낮다고 좋은 성적을 포기 하는 등의 무책임한 자세는 버리고, 선수 개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승리를 지향하고 이를 성취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實踐해야 할 것이다. 셋째, 勝利 指向的 信賞必罰의 리더십은 스포츠지도자는 信賞必罰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지도자의 지시에 一絲不亂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먼저, 지도자는 선수들에게 사랑과 믿음을 주고 이를 통해 선수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을 믿고 따르면, 반드시 이에 부응하는 대가가 있음을 밝히고 실천해야 하며, 지시와 명령에 불복종하는 者에게는 반드시 벌이 있음을 밝히고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仁ㆍ義 기준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넷째, 勝利 指向的 對話의 리더십은 스포츠지도자는 對話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선수개개인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지도 시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對話는 지도자와 선수들 간의 마음의 벽을 좁힐 수 있는 촉매역할을 하며, 특히 선수들의 고충을 해결해 줄 수 있어 스포츠일탈의 예방차원에서 매우 훌륭한 해결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스포츠지도자는 주위 지도자 또는 관련 전문가들과의 對話를 통해 승리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습득하고, 대회마다 달리 적용되는 경기방식과 규칙을 숙지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여 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경기를 이끌어 승리하여야 한다. 다섯째, 勝利 指向的 改革의 리더십은 스포츠지도자는 보다 확실한 승리를 위하여 그동안 고수해오던 지도방식과 기술에 안주하지 말고 과학적이면서도 실질적인 방법을 모색하여 새로운 기술과 전략 및 전술을 개발하여 적극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改革이 지도자 자신을 위한 개혁(私)이 아니라, 선수들과 팀을 위한 改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李舜臣의 改革의 리더십은 선진국일수록, 그리고 미래로 갈수록 스포츠지도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질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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