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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루소의 자연종교와 그 생태학적 함의

          송태현(Song Tae-Hyeon) 문학과환경학회 2011 문학과 환경 Vol.10 No.2

          Born a Calvinist, Jean-Jacques Rousseau(1712-1778) converted to Catholicism as a young man, and later adopted deist views rejecting revealed religion in favor of "natural religion" based on the evidence of God's existence that reason discerns in the wondrous order and harmony of the system of nature. Rousseau's fullest account of his views on religion is found in Emile, in a section titled the "Profession of Faith of the Savoyard Vicar." In it Rousseau explains that when we ponder the marvelous order, harmony, and motion of the physical universe we can conclude that there exists a rational being who wills this universe into existence and sets things in motion. All his life Rousseau connected the love of nature with religious emotion, in a way that would one day become widely familiar but was still unusual in his day. In fact, he did more than any other person to inspire that response in the Romantic writers who came after him. Rousseau remains a measurable figure in eighteenth-century Western philosophy and letters challenging many aspects of modernity by his reflection on the civilization, his criticism of the progress, his appeal to nature's goodness as it comes from the hands of the divine. Rousseau deserves particular consideration as an example of an early modern "pre-environmentalist" because, in addition to his contribution to the nature worship which formed a powerful current in the Romantic Movement, he is recognized as an important defender of nature for its value to humanity. Rousseau would agree to the first "platform" of "deep ecology": The well-being and flourishing of human and nonhuman life on Earth have value in themselves. Nonetheless, Rousseau, by insisting that human being is superior to any other lives, differs from some radical ecologists who claim the equality between human being and any other lives.

        • KCI등재

          백남준 예술세계와 전통사상

          송태현(Song Tae-Hyeon) 인문콘텐츠학회 2010 인문콘텐츠 Vol.0 No.19

          백남준(1932-2006)은 전위적인 플럭서스 행위예술가로 출발해, TV를 이용한 비디오 아트를 창조한 후, 레이저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 영역을 개척한 ‘영원한 개척자'이다. 백남준의 독특성은 그러한 첨단 테크놀로지 속에 자신의 전통 문화와 사상, 다시 말해 한국 혹은 아시아의 문화 및 사상을 담으려고 시도한 데 있다. 백남준의 작품에는 선불교, 샤머니즘, 주역, 도교 등 다양한 아시아의 종교적 요소가 용해되어있다. 그 가운데서도 그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선불교와 샤머니즘이다. 그는 동양 종교에서 많은 모티프를 가져왔으나, 그것은 종교인으로서 그 종교의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종교를 통한 깨달음을 자신의 예술에 반영하여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서이며, 특히 자신의 전통 종교와 테크놀로지의 만남을 통해 소통과 동서 문화교류를 추구하기 위해서이다. 선불교적인 가르침을 응용하여 그는 전통음악에서 사용되는 악기 및 공연 방식과 관련한 터부를 깨트리고,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과 동양의 명상 문화의 만남을 시도하였다. 선불교의 공(空) 사상을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는 선불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수용하였다. 백남준은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예술과의 만남 및 교감, 그리고 상호소통에 의한 창조를 추구해왔는데, 이는 샤머니즘의 정신과도 상통한다. 샤머니즘은 그가 추구하는 소통과 참여의 예술에 영감을 주는 동시에 디아스포라 예술인 백남준의 뿌리 의식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한국인으로서의 뿌리 의식을 지니고 있는 백남준은 한국인, 그리고 이를 넘어 ‘시베리언 몽골리언'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시베리언 몽골리언'은 유목민이었으며, 그들의 공통된 종교가 샤머니즘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고 이를 자신의 작품 속에 담아내었다. 백남준은 한국 및 아시아의 전통 사상과 문화를 그의 첨단 예술작품 속에 담아냄으로써 지구적인 것(the global)과 지역적인 것(the local)인 사이의 공존을 추구하는 지구지역화(glocalization) 문화의 좋은 사례를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Nam June Paik(1932-2006) is an eternal pioneer in the world of modern art. His originality resides in his attempt to harmonize Korean or Asian traditional culture and thought with cutting-edge technology. Various Asian religious elements like Zen Buddhism, Shamanism, I-King, Taoism dissolve in his artistic work. Among others, Zen Buddhism and Shamanism are prominent. He broke a taboo concerning Western traditional instruments and performance custom by applying the teachings of Zen. He tried the meeting between Eastern meditation and Western technology. He adopted Zen Buddhism, but maintained a critical attitude. Nam June Paik pursued the interacting with the audience in the artistic creation, which has something in common with Shamanism. The latter, inspiring him in his art for communication and participation, is deeply connected with his consciousness of roots. He presented a good case of glocal culture which seeks the coexistence between the global and the local by harmonizing traditional culture and thought with high technology.

        • KCI등재

          맥루언과 보드리야르

          송태현(Song, Tae-Hyeon)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07 외국문학연구 Vol.- No.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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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뮤니케이션 혹은 미디어 이론에서 가장 혁명적인 도전을 던진 발언은 ‘미디어는 메시지다 the medium is the message'라는 마셜 맥루언의 말일 것이다.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인 장 보드리야르(1929-2007)의 사유는 현대의 전자문명 및 미디어 문명을 깊이 성찰한 점에서, 그리고 미디어에서 궁극적인 요소가 그것이 전달하는 메시지보다 미디어 자체의 형식이라고 주장한 점에서 맥루언과 상통한다. 보드리야르는 맥루언의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명제를 『소비의 사회』(1970), 『기호의 정치기호학 비판』(1972), 그리고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1981)에서 수용 혹은 재검토하면서 소비사회 및 대중매체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발전시키고 있다. 본 논문에서 우리는 이 세 문헌을 검토하며 맥루언의 명제에 대한 보드리야르의 견해와 그 함의를 추적해 보았다. 모더니즘 시대에는 기표 signifiant가 기의 signifié를 지시하는 것으로, 즉 기표와 기의 사이에 연합 관계가 형성되는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 포스트모던 사회에 들어오면서 기표는 더 이상 기의를 지시하지 않음으로써 기의와 유리되는 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이 새로운 의미작용 양식과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은 매스 미디어이다.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대중매체란 응답을 영원히 금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교환과정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구체적인 현실을 그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대중매체의 추상 작용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추상 작용 위에 사회 통제 및 권력의 체계가 구축된다. 보드리야르는 대중매체화 massmédiatisation가 메시지 전파 기술의 총체가 아니라 ‘모형 부과 imposition de modèles'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보드리야르는 맥루언의 명제가 그 극단에 이르면 맥루언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도출된다고 보았다. 모든 내용물과 메시지가 미디어 속으로 증발해 버린 뒤에, 이제 미디어 자신이 증발해 버린다. 메시지 없는 미디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메시지 없이도 여전히 미디어라 할 수 있는가? 메시지가 사라졌을 때 미디어도 사라져 버린다. 결론에서 우리는 맥루언과 보드리야르의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즉 맥루언은 전자 매체에 대해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바라본 반면에 보드리야르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파악)를 고찰해 보았고 보드리야르 사상이 지닌 약점으로 현대 매스 미디어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과, 현대 미디어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인터넷이나 컴퓨터 문화에 대한 적절한 성찰이 없다는 점을 들어 지적해 보았다. 그리고 이미지 폭발 시대에 창조적인 상상력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Marshall McLuhan provides revolutionary theses on the role of media when he says that “the medium is the message”. Jean Baudrillard has something in common with the canadian thinker : he reflects deeply on the modern electronic media as well as media civilization, and he asserts that the ultimate element of medium is the form of the medium itself rather than the message. Baudrillard reexamines the famous McLuhan's formula(“the medium is the message”) in his books like The Consumer Society(1970), For a Critique of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Sign(1972) and Simulacra and Simulation(1981). He develops furthermore his own view on consumer society and mass media. In this study, I investigate the review of Baudrillard on the McLuhan's formula as well as its implication in the postmodern ere. In modern times, the “signifiant” indicates the “signifié”. In other words, “signifiant” and “signifié” were considered as the constituents of a unity. However, in postmodern times, the “signifiant” does no more indicate the “signifié”, and the “signifiant” parts from the “signifié”. The mass media coincide well with this new mode of signification. According to Baudrillard, the mass media prohibit forever the response and make impossible all the exchange system. Here lies the process of abstraction by changing the real into the totally other thing. Baudrillard insists that the “massmédiatisation” is not the whole of technology which transmits the message, but it is the imposition of the models. Baudrillard judge that McLuhan's formula, pushed to its limit, drew an expected conclusion. After all the contents and messages have been volatilized in the medium, it is the medium itself that is volatilized as such. What is medium if there is no message? What's the use of it? Is it still medium? Where the message disappears, the medium will disappear.

        • KCI등재후보

          볼테르의 관용 사상과 `보편적 관용`의 문제

          송태현 ( Song Tae Hyeon ) 아시아문화학술원 2016 인문사회 21 Vol.7 No.5

          최근에 국내 학계에서 볼테르의 관용에 대한 몇몇 연구들이 수행되었다. 어떤 이들은 볼테르의 관용 사상을 무신론까지 수용하는 “보편적 관용 사상”으로 해석해왔다. 반면에 다른 진영에서는 볼테르의 관용이 “무신론자를 관용하지 않는 `협의`의 보편적 관용”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볼테르의 `관용`이 무신론과 같은 특정 사상을 예외로 둔다면, 볼테르의 `관용`이 진정한 관용이라 말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볼테르는 과연 무신론을 관용의 대상에서 제외시켰는가? 이 문제는 `관용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관용의 정의(定義)와도 관련이 된다. 볼테르는 사상적인 오류와 범죄를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그 사상이 실제로 사회에 해를 끼치는 행동으로 이어질 때 범죄가 된다. 이론적으로 비판하는 것과 실제적으로 박해를 가하는 것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자신과 이견을 가진 사람을 박해하지 않는 것이 관용이다. 볼테르가 무신론을 동의하지 않고 강한 어조로 비판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무신론자에 대한 박해를 주장하지 않았고 모든 종교에 대한 관용을 주장했기에, 그의 입장은 무신론자에 대한 관용을 포괄하는 보편적 관용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상 문제는 권력이 아닌 이성의 활동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그의 `관용 정신`은 `사상의 자유`를 위한 토대가 된다. Several recent studies on the tolerance of Voltaire were carried out in the domestic academy. Some researchers have interpreted Voltaire`s tolerance as a “universal tolerance” which accepts even an atheism. In the other camp, they argued that Voltaire excluded atheists from his tolerance. If Voltaire`s tolerance make an exception for some thoughts like atheism, his tolerance is not a true tolerance. Did Voltaire really exclude atheism from his range of tolerance? Voltaire distinguishes the crime from ideological errors. According to Voltaire, only when an ideology actually leads to behaviors harmful to the community, it constitutes a crime. If one does not persecute those who do not agree theoretically with him, he practices the tolerance. It is true that he doesn`t agree with the atheism, and he criticized it in a firm tone. However, he did not insist on the persecution of atheists. So his tolerance is an universal tolerance which embraces the tolerance for the atheism as well as all kinds of religions. His `spirit of tolerance` is the foundation for `Freedom of thought` in respect that the problem of thought should be resolved through the activities of the `reason`, not through the `autho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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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향전』의 프랑스 역본 『향기로운 봄』의 문화적 의의

          송태현 ( Song Tae-hyeon ) 세계문학비교학회 ( 구 한국세계문학비교학회 ) 2018 世界文學比較硏究 Vol.64 No.-

          19세기 말에 『춘향전』이 『향기로운 봄(Printemps parfume)』(1892)이란 제목으로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된 사건은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교류에서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다. 이는 프랑스 작가인 로니(J.-H. Rosny)와 “유럽에 온 최초의 한국인”인 홍종우가 프랑스 파리에서 공동으로 작업하여 한국 문학을 유럽 최초로 번역 출간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향기로운 봄』은 『춘향전』 줄거리의 기본 구도를 따르되, 원전을 매우 자유롭게 번역한 작품으로서, 이는 번역이라기보다는 번안 혹은 재창작에 더 가까운 작품이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로니와 홍종우의 자유로운 번안 혹은 재창작이 지니는 문화사적 의의를 탐색하고자 한다. 필자는 이 연구를 통해 『향기로운 봄』의 공동 번역자들이 재창작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겨냥한 바가 상호문화 정신에 토대를 둔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교류의 추구이며, 프랑스와 한국사이의 문화적 가교를 놓는 일임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한국이 미개한 나라, 한국인이 야만인이라는 이미지를 벗겨내고 한국이 문명을 지닌 나라이며 한국인이 훌륭한 문화 전통을 간직한 민족임을 보여주기 위해 『향기로운 봄』의 역자가 선택한 재창작적 요소의 핵심은 한국에서 구현된 공자(나아가 유교) 사상의 실천이다. 『향기로운 봄』의 역자는 이 작품에서 공자 혹은 유교 사상의 위대함을 드러냄으로써 프랑스가 제국주의적 교만 속에서 조선인을 야만인으로 보지 않게 만들고 또한 조선 문화를 수준 높은 문화로 인식시킴으로써 ‘문명화의 사명'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속에 빠지지 않기를 소망했다. 『향기로운 봄』의 역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한국과 동아시아는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또한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도 한국 혹은 동아시아 문화의 장점을 받아들임으로써 상호간에 ‘평화로운 화합'을 이룩하는 것이다. The fact that Chunhyangjeon was translated into French under the title Printemps Parfume(1892) in the late 19th century is a very meaningful event in the cultural exchange between Korea and France. This is because French writer J.-H. Rosny and Hong Jong-ou, the first Korean to come to Europe, collaborated in Paris and published their first translation of Korean literature in Europe. Printemps Parfume follows the basic structure of Chunhyangjeon's story, but it is a very free translation of the original, which is closer to adaptation or rewriting than translation. In this paper, I explore the cultural and historical significance of J.-H. Rosny and Hong Jong-ou's re-creation of work. The study revealed that the co-translators of Printemps Parfume ultimately aimed at pursuing cultural exchanges between France and Korea based on the spirit of “interculture”, and establishing cultural ties between France and Korea. Translators shed the image of Korea as an uncivilized country, Korean people as semi-barbarian people, and show that Korea is a country of civilization and a nation of great cultural traditions. The core element of the re-creative element chosen by the translators of Printemps Parfume is the practice of Confucius thought implemented in Korea. The translators of Printemps Parfume revealed the greatness of Confucius or Confucianism in this work, making the French not to regard the Joseon people as barbarians in imperialistic pride, and recognizing Joseon culture as a high quality culture. Translators hoped the French would not fall into the hollow "civilizing mission". What the translators of Printemps Parfume ultimately seeks is for France to embrace Korean or East Asian culture to compensate for their deficiencies and to achieve "peaceful harmony" with each other, including Korea and East Asia, by accepting the merits of Western culture.

        • KCI등재

          `리스본 대지진`을 둘러싼 볼테르와 루소의 지적 대결과 근대지식의 형성

          송태현 ( Song Tae-hyeon ) 한국비교문학회 2016 比較文學 Vol.0 No.70

          1755년 만성절(萬聖節) 아침에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발생한 대지진은 근대에 들어와 유럽에서 발생한 가장 심각한 자연 재앙이었기에 온 유럽을 충격에 빠뜨렸으며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인 볼테르와 루소는 각각 리스본 지진에 관한 글을 남겼다. 볼테르는 이 지진을 주제로 삼은 시를 지었고, 이어서 루소는 그 시를 비판하는 서한문을 작성하여 볼테르에게 보냈다. 이 두 글은 리스본 지진이라는 거대한 자연 재해를 다룬 문학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지만, 이들 두 작가의 글이 양자사이의 지적 대결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도 의의가 있다. `리스본`은 근대성탄생의 상징으로서, 리스본 지진을 출발점으로 세계인식이 신학과 형이상학을 떠나 과학과 인간의 책임으로 이동하며 형성되기 시작했다. 볼테르와 루소는 그 이행기를 살았던 작가들이다. 사실 볼테르와 루소는 양자 모두 신정론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적절히 풀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글들은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닌다. 볼테르의 시는 라이프니츠가 확립한 전통적인 신정론을 혹독하게 비판함으로써 당대까지 주류 이론으로 자리매김해온 그의 신정론에 강력한 타격을 입힌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편 리스 본 대재앙 문제를 다루면서 신이 아닌 인간에게 책임을 지움으로써 루소는 재난을 사회-문화 맥락으로 풀고자 한 최초의 논증을 제시한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볼테르와 루소 양자 간의 리스본 지진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리스본 지진에 대한 그들의 입장이 공히 신과 신학에 의지하는 전근대적인 지식에서 떠나 근대 지식을 향해 나아가는 이행기의 성격을 보여주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The great earthquake struck Lisbon midmorning on All Saints Day, 1755. Considered as one of the most destructive natural disasters ever recorded, it had far-reaching consequences. When news of the Lisbon quake spread, it inspired an intellectual debate, not only in Portugal but in all of Europe, about the natural world and God`s place in human affairs. Voltaire, Jean-Jacques Rousseau, Immanuel Kant etc. took up the disaster as a vehicle to express their own Enlightenment ideas. In this article I focus on the controversy between Voltaire and Rousseau on the Lisbon earthquake. Voltaire learns, at the end of November 1755, that Lisbon undergoes an earthquake such a magnitude that the victims amount “a hundred thousand”, and, in early December, he composes in Alexandrine verse “Poem on the Lisbon disaster. Or an Examination of the Axiom, `All is Well`”. This French philosopher criticise, in his “Poem”, Leibniz`s concept of theodicy as well as the axiom of Alexander Pope “Whatever is, is right.”, suggesting that the massive destruction of the “unhappy mortals”, victims of the Lisbon earthquake demonstrated that God was not providing the “best of all possible worlds”. Then the quarrel festers when Rousseau contradicts, in a reply to the poem of Voltaire, the concept of providence exposed in the “Poem”. For Rousseau, it is not God but human beings and their civilization who are really responsible for this enormous sacrifice. First of all, I indicate the points of dispute between the two philosophers. Then, I try to reveal the deep-rooted reasons of the difference which results from differences in their world-views as well as their religious viewpoints. Finally, I bring to light the implication of the controversy in terms of the formation of the Enlighte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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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르치아 엘리아데 : 상상력의 종교학적 깊이

          송태현(Song Tae-hyeon), 진형준(Chin Hyung-joon) 대한철학회 2006 哲學硏究 Vol.98 No.-

            본 논문에서 우리는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의 종교학 사상이 상상력 이론에 기여한 바를 고찰하고자 한다. 엘리아데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존재(homo religiosus)', 즉 불가피하게 종교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보았다. 종교성을 상실하는 것은 곧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현대인의 질병과 현대 사회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종교성을 상실하여 탈성화(脫聖化, d?sacralisation)에 이르게 된 데 기인하는 것으로 엘리아데는 파악하였다. 엘리아데에 따르면 속화된 인간이 호모 렐리기오수스의 계승자라는 것이다.<BR>  종교사학자이자 작가이기도 한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종교적 구조와 문학 작품 간에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파악했다. 엘리아데는 이야기 만들어 내는 기능인 상상력이 인간에게 필수적임을 역설했다. 그리고 그는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인간 조건의 구조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인간에게서 이야기를, 또한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원천인 꿈과 상상력을 빼앗을 수는 없으며 인간에겐 내면에서 그리고 직관을 통해 솟아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엘리아데는 주장한다.<BR>  엘리아데는 원래 신성한 이야기를 의미했던 신화가 점점 속화된 현상을 신화의 ‘타락'이라고 보긴 했지만, 그 신화의 타락을 ‘열매가 풍부한 타락(chute f?conde)'이라 불렀다. 신화는 신성한 이야기의 수준을 벗어나 속화 되면서 신화에 바탕을 둔 혹은 신화적 요소를 포함한 새로운 문학 작품을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신화의 ‘타락'을 통해, 비록 고유한 의미의 신화와는 강도(强度)가 다르긴 하지만, 문학 작품에는 여전히 ‘신화적 원형' 혹은 ‘신화적 구조'가 존속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엘리아데의 상상력관은 특히 질베르 뒤랑을 비롯한 신화비평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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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와 문화콘텐츠

          송태현(Song Tae-Hyeon)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9 인문과학연구 Vol.0 No.22

          문화콘텐츠는 신화의 육화(肉化)를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경우 신화는 문학을 비롯한 문화예술에서 일종의 원형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화는 그 자체로 일종의 모델이 되어서 그 모델에 토대를 둔 새로운 창작을 이끌어낸다. 자청비 신화의 독특성은 자청비가 여성 영웅이면서 그 성격이 매우 당차다는 데 있다. 자청비는 다른 지방의 그 어떤 무속 신화에 나타난 여신들보다 훨씬 용감하고 적극적인 인물이다. 자청비 신화가 오늘날 비교적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는 이유는 시대상황, 즉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동안 중심부로부터 소외되어온 주변부에 대한 관심, 그리고 억압된 것의 귀환에 그 특징이 있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억압받아온 여성성 역시 포스트모던 시대에 분출되기 시작한다. 자청비 신화는 문학 속으로 스며들어 재창작되었을 뿐 아니라,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공연 예술로 스며들었다. 고대 신화를 현대의 상황 속에서 다양한 형식의 문화콘텐츠로써 재창조하는 작업을 통해 신화는 그 생명을 계속 이어간다. 신화의 재창조에서 중요한 것은 기존의 신화에 대한 창작자의 새로운 해석이다. 신화와 대화하는 작업은 전통 문화를 살리는 길인 동시에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이 전통과 얼마나 큰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길이다. Cultural contents are the space to realize the incarnation of myth. The myth is, in this case, a kind of model which induces new creations upon it. A characteristic of myth of Jacheongbi is that she is a female heroine who is very persevering. She is much more brave and positive than the other Korean goddesses. The reason why the myth of Jacheongbi is concerned to many Koreans is related to the current of the times, that is, postmodernism. The feminity, oppressed in a male-oriented society, is throwing in a postmodern times. The myth of Jacheongbi is recreated not only in literature, but also in comic books, animated cartoons, and performing arts. The myth retains life through its recreation in the various cultural contents. The first thing in the recreation of myth is a new interpretation of creators. The main function of the dialogue with myth is to bring the tradition to life as well as to confirm a strong correlation between the tradition and the actuality of our society.

        • KCI등재

          상징에 대한 고찰

          송태현(Song, Tae-hyeon)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05 외국문학연구 Vol.- No.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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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article intends to study symbol in Baudelaire and Jung, representative precursors of theory of symbol. Even though Baudelaire has not discoursed systematically on symbol, he furnished clue for his viewpoint of symbolism through his poems and criticism. His viewpoint had an important effect on French symbolists poets like Mallarmé, Rimbaud, Verlaine as well as later theorists of symbol(Jung, Corbin, Eliade, Durand, etc.). Symbol has been a major study of literature, psychology and philosophy since Baudelaire's Correspondances, which can be seen as a succinct manifesto of symbolism. This famous sonnet has provided an aesthetic basis for works that have elements of symbol. In this sonnet we can grasp both vertical correspondences(between man/visible world and invisible world) and horizontal correspondences(between the senses: synesthesia, between spirit and senses). For his symbolism, Baudelaire elaborated aesthetically 'universal analogy' and ‘correspondence', which had already been presented by Fourier and Swedenborg. According to Baudelaire, this world is a hieroglyphic dictionary. Only poet can translate or decipher the symbol concealed in the dictionary. To the poet, everything in the universe is symbol which contains a transcendent message. The mission of poet is to apprehend symbolic meanings behind the nature world, and to make a work of verbal art. Jung's conception of symbol is closely related to archetype. When the archetype manifests itself in hic et nunc of space and time, it can be conceived in some form of conscious mind. Then we can speak of symbol. In order to appear as a symbol it must have an archetypal ground plan. The symbols are always grounded in the unconscious archetype, but their manifest forms are moulded by the ideas acquired by the conscious mind. Jung's own definition of symbol can be summarized as referring to the best possible formulation of a relatively unknown psychic content that cannot be grasped by consciousness. The symbol is alive only so long as it is pregnant with meaning. But once the meaning has been born out of it, then the symbol is dead. The new symbol is born of man's highest spiritual aspirations and must spring from the deepest roots of the being(archetype). The symbol is a kind of mediator between the incompatibles of consciousness and the unconsciousness, between the hidden and the manifest. The symbol is neither abstract nor concrete, neither rational nor irrational, neither real nor unreal. It is always both. It belongs to the intermediated realm of subtle reality. Jung calls this symbol-forming function of the psyche, its ability is to synthesize pairs of opposites in a symbol, transcendent function. The viewpoint of Baudelaire and Jung upon the symbol constituted a great stream which an important group of theorists on symbol(Bachelard, Corbin, Eliade, Durand, Alleau) has inherited. We considered the proper way to interpret symbols in the light of Baudelaire, Jung and their inheritors. We considered subsequently the significance of their hermeneutic attitude.

        • KCI등재

          루소의 학문예술관 및 내적 모순의 문제

          송태현(Song, Tae-Hyeon)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11 외국문학연구 Vol.- No.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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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자크 루소는 『학문예술론』에서 학문과 예술의 진보가 오히려 풍속을 문란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은 내적 모순을 야기한다. 왜냐하면 학문과 예술이 부정적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루소는 학문 및 예술 활동을 계속 수행해나갔기 때문이다. 루소는 특히 소설을 쓰고 희곡 작품을 상연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상당한 정도로 내적 모순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이 논문에서 우선 루소가 『학문예술론』에서 전개한 학문예술관을 고찰하고, 이 관점이 야기한 내적 모순이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그가 이 모순을 어떻게 해소하고자 했는지를 『학문예술론』과 그 이후의 저술들, 특히 『나르시스』서문, 『달랑베르에게 보내는 편지』, 『신엘로이즈』등을 통해 고찰한다. 내적 모순을 느낀 루소는 자신이 예술작품을 집필할 때 종종 자기변호 혹은 정당화를 시도한다. 루소가 학문과 예술을 비판하긴 했지만 이들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다. 학문과 예술이 타락에서 생겨났다 해도, 타락한 인간과 타락한 사회가 더 타락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예술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학문과 예술에 대한 루소의 관점이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동일하다. 그는 학문이나 예술보다는 덕성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학문과 예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당연시하는 맹목적인 믿음과 편견에 대해 루소는 도전한다. 루소는 이러한 진보를 신봉한 계몽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하였고, 바로 여기에 루소의 진정한 독창성이 존재한다. Jean-Jacques Rousseau(1712-1778) insists, in Discourse on the Sciences and Arts, that the advancement of sciences and arts corrupt morals. This perspective brought about an inner inconsistency, for he continued to work in various fields of activity as a writer and artist. He felt especially a considerable inner inconsistency when he wrote a novel or a play. In this article we consider, first of all, Rousseau's perspective on sciences and arts developed in Discourse on the Sciences and Arts. Secondly we consider the nature of the inner inconsistency caused by his own perspective. Finally we inquire into how Rousseau resolved this inconsistency through “Preface to Narcissus, or The Self-Admirer”, Letter to d'Alembert on the Theater, and Julie or the New Heloise. Rousseau, realizing this inconsistency, made in fact several attempts to justify his artistic activity. Even though Rousseau criticized the sciences and the arts, he did not totally deny them. They are necessary to protect human society from more severe corruption. He established the thesis that the sciences and the arts are incompatible with virtue which is of the last importance. His perspective on the sciences and the arts is basically the same thing with few differences, for him virtue is the only thing which matters. Rousseau sends a challenge to a blind belief and a prejudice which regard as natural the opinion that the advancement of sciences and arts are beneficial for human beings. He criticized severely the Enlightenment which has faith in such a progress, and it is on this very spot that we encounter the genuine originality of Rouss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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