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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조 음악의 『시경』 수용과 활용 양상

        송지원(Song, Ji-Won)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6 한국문학과 예술 Vol.19 No.-

        고대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시가집으로서의 『시경』은 사서삼경의 경전으로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유학사(儒學史)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시경』은 음악과 관련된 경전으로서 원래 노랫말이 있는 음악이었으며, “『시경』은 곧 『악경』”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으리만치 음악적인 면에서 중요한 경전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특히 유학의 심화가 이루어지는 조선조에 『시경』은 문학 텍스트만이 아닌, 노랫말 있는 음악이라는 시각이 확대되었다. 텍스트만 남은 시에 노래 선율이 있다면 그 선율의 모습은 사람들마다 다르게 그려질 수 있다. 따라서 조선에서는 학문적 권위를 지니는 주희가 선택한 시경 선율을 유입하고 그것을 손보아 여러 의례에서 활용하였다. 또 『시경』의 텍스트가 지니고 있는 교화적 기능은 그 노랫말에 당시 쓰이고 있는 여러 선율을 붙여 연주하는 시도로 이어기지도 했다. 조선 전기에 여러 의례를 제정하는 가운데 활용된 『시경』의 노랫말 선택 양상에서 그러한 시도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조선 후기로 가면서 『시경』이 ‘시와 악’의 화두와 함께 학문적 논의가 심화되는 현상들이 이어진다. 이처럼 조선조 음악에서 『시경』을 수용하거나 활용하는 사례는 다양하다. 이 글에서 그와 같은 양상에 대해 논의하였다. 첫째, 『시경』의 음악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중국에서 모의시악(模擬詩樂)을 만들어 놓은 음악을 조선이 수용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양상에 대한 것, 둘째, 텍스트만 남아 있는 『시경』의 가사에 제3의 선율을 입혀 활용하는 양상, 셋째, 그러한 『시경』 관련 음악들이 여러 의례에서 쓰이는 양상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또 『시경』이 ‘노래가 있는 음악’이라는 전제에서 성립한 시악학(詩樂學)으로의 전개 양상에 관한 것도 논의하였다. The Book of Songs, which is the oldest book of poetry of the ancient China, is one of the scriptures of the Seven Chinese Classics and influenced the history of Confucianism after entering Korea. Especially, the Book of Songs is a scripture related to music which used to have lyrics and takes an important position as a scripture in terms of music so that some scholars even view the Book of Songs as the Scripture of Music. Especially in the Joseon Dynasty when Confucianism took its root firmly, the view that considered the Book of Songs as music with lyrics, not just as literary text, spread widely. If a poem that used to have a melody has only its text left, its melody will be imagined differently by different people. So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melody of the Book of Songs that had been chosen by Zhu Xi, who held academic authority, was introduced to Joseon, touched up, and used in various ceremonies. In addition, the edifying function of the text of the Book of Songs led to the efforts to combine the lyrics with various melodies that were used at that time. Such efforts can be found in the aspect of choosing lyrics of the Book of Songs, which were used in establishing various ceremonies in the early Joseon era. In the meantime, in the late Joseon era, there were in-depth academic discussions on the Book of Songs along with the theme of ‘poetry and music’. Like this, there were various cases where music in the Joseon Dynasty accepted or used the Book of Songs and this paper discussed such aspect. First of all, this paper examined the aspect of how Joseon accepted and used what China made as trial poetry and music, since the music of the Book of Songs does not exist now. Second, it reviewed the aspect of combining the lyrics of the Book of Songs with a third melody. Third, it studied the aspect of how music related to the Book of Songs was used in various ceremonies. Also, it discussed the developing aspect of the study of poetry and music that was formed under the premise that the Book of Songs was ‘music with s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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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북 한시의 공연예술화에 대한 소고

        송지원 ( Song Ji-won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2016 공연문화연구 Vol.0 No.33

        석북 신광수는 시창(詩唱) 「관서악부(關西樂府)」의 작가로 잘 알려진 조선후기의 시인이다. 「관서악부」는 조선시대의 음악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시창이다. 그것을 통해 신광수의 한시에 선율을 붙여 노래 불렀던 전통이 이미 조선시대에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는 조선시대의 한시가 노랫말로 사용되었던 증거의 하나이다. 석북 외에도 조선시대의 문인들은 한시를 짓고 직접 노래했다. 이 경우 노래의 소통 공간은 작자 개인의 사랑방이 된다. 그러나 석북의 작품처럼 그것이 음악인들에 의해 노래로 불려질 때, 이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음악으로 공개된다. 이 글은 이미 조선시대에 사람들의 인기를 얻었던 석북 신광수의 한시와 음악을 이 시대의 무대에서도 소통될 수 있는 음악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새로운 시도이다. 그의 한시를 일정 선율에 얹어 실제 무대를 통해 음악화한 작업의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한시의 공연예술화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기 위한 것이다. 신광수의 한시는 그 작품 수도 많지만 한시 하나하나에 그의 삶을 조망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한시 작품을 통해 그의 삶에서 있었던 주요한 사건을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진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신광수의 음악적 삶을 조명하고 그의 한시를 공연예술화하는 방식과 그 내용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한다. Shin Gwang-su (申光洙, 1712∼1775), also known as Seokbuk (石北), is a well-known poet and author of the song poetry (詩唱) “Gwanseo-akbu (Poems of the Gwanseo Region, 關西樂府)” in the late Joseon Dynasty. “Gwanseo-akbu” was popular among the Joseon Dynasty musicians. This fact confirms that the tradition of adding a melody to Shin Gwang-su’s “hansi (Korean poetry recorded in Chinese characters, 漢詩)” already existed in the Joseon Dynasty. It is also a proof that the hansi poem was used in songs. Besides Seokbuk, other literary figures in the Joseon Dynasty wrote and sang hansi. In that case, the place of communication for songs was a poet’s personal study, or “sarangbang.” But when, like the works by Seokbuk, poems were sung by musicians, they became available to the public to communicate through music. This study is one of the attempts to re-make Seokbuk Shin Gwang-su’s poems and songs, once popular among the Joseon Dynasty people, into the contemporary music that can be performed on stage. By adding a certain melody to his poems, this study introduces a case of musical work and offers an opportunity to consider hansi as performance art. There is a number of hansi works by Shin Gwang-su, and each poem includes material which can help survey Shin Gwang-su’s musical life. And, working on his hansi works makes it possible to narrate major events that took place in Shin’s life. Thus, this study attempts to focus Shin Gwang-su’s musical life and introduces methods and contents to stage his hansi poems as performance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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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장각 소장 조선왕실의 악기제작 의궤 고찰

        송지원(Song Ji won) 국립국악원 2011 국악원논문집 Vol.23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 논문은 현재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는 4종의 악기제작관련 의궤(儀軌)의 현황에 대한 보고이다. 이들 의궤 가운데 1624년(인조 2)의 『제기악기도감의궤』가 가장 이른 것으로 제기(祭器)와 악기 및 의물(儀物)의 제작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1745년(영조 21)의 『인정전악기조성청의궤』는 창덕궁 인정전의 화재로 인해 소실된 악기를 다시 제작하는 과정을, 1804년(순조 4)의 『사직악기조성청의궤』는 사직 악기고(樂器庫)의 화재로 인해 소실된 악기 제작과정을 기록하였다. 또 1776년(정조 즉위)의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는 당시 새롭게 제정된 경모궁제례에서 제례악을 연주하기 위한 악기 제작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이러한 의궤를 통해 인조대, 영조대, 정조대, 순조대 악기 제작 목적 및 제작 현황, 제작과정, 악기를 만드는 재료, 재료의 조달 방법과 조달처, 악기 제작 단가, 악기 제작에 참여한 장인(匠人)의 종류와 전문분야, 악기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임금상황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특히 각종 장인들의 명칭과 그들이 담당한 전공분야가 매우 세분화되어 있고, 분업화되어 있다는 사실과 1등 장인(一等匠人)에서 3등 장인(三等匠人)에 이르는 각종 기술직 장인들의 다양한 존재양상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들 의궤 중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와 같은 기록에서는 정조대 당시 악기 제작 단가도 기록하여 당시 악기의 가치도 알려주고 있다. 또 악기 제작재료를 조달하는 과정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경석(磬石)과 같은 특정 악기 재료 채굴처가 어느 곳인지 알 수 있는데, 사직악기조성청의궤의 기록을 통해 편경의 재료로 사용되는 경석은 수원부의 건달산(乾達山)에서 채굴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며 이와 더불어 돌을 채굴할 때 사용하는 도구에 대한 정보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내용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규장각에 소장된 조선시대 악기제작 관련 4종의 의궤는 악기제작 자체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여 사회경제적 측면, 문화적 측면을 비롯, 조선 사회가 보유하고 있는 각종 장인(匠人)의 현황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조선시대 사회를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의궤라는 의미도 아울러 지닌다. This paper is a report on the current condition of royal protocols uigwe 儀軌 concerning the manufacturing of 4 types of musical instruments, currently owned at Kyujanggak. From among those royal protocols uigwe, Jegiakgidogamuigwe 祭器樂器都監儀軌 in 1624 (the 2nd year of King Injo) was the earliest one, which recorded the manufacturing process of utensils for ancestral rites, musical instruments, and ceremonial tools. Injeongjeon akgijoseongcheonguigwe 仁政殿樂器造成廳儀軌 in 1745 (the 21st year of King Yeongjo), recorded the process of manufacturing again for musical instruments which had been lost to fire in Injeongjeon of Changdeok Palace, and Sajik akgijoseongcheonguigwe 社稷樂器造成廳儀軌 in 1804 (the 4th year of King Sunjo) recorded the manufacturing process for musical instruments which had been lost to fire in the warehouse of musical instruments for the Royal Court. Also, Gyeongmogung akgijoseongcheonguigwe 景慕宮樂器造成廳儀軌 in 1776 (the year of the coronation of King Jeongjo) recorded the manufacturing process of musical instruments for playing ancestral rite music at the newly established ancestral rites at Gyeongmo Palace. Through such royal protocols uigwe, it is possible to obtain various types of information covering the purpose of manufacturing musical instruments and an overview of manufacturing during the times of King Injo, King Yeongjo, King Jeongjo, and King Sunjo, the manufacturing process, the materials for manufacturing musical instruments, the procurement method for materials and places of procurement, the manufacturing costs of musical instruments, the type and special fields of artisans who participated in manufacturing musical instruments, and the wages of those who participated in manufacturing musical instruments. In particular, they disclose that the nominations of each artisan and special fields they were in charge of were greatly segmented and divided, and there existed diverse patterns of existence for various technical master craftsman ranging from the first to the third. Among those royal protocols uigwe, the records in Gyeongmogung akgijoseongcheonguigwe reveal the value of a musical instrument back then by recording the manufacturing costs of musical instruments during King Jeongjo. Also, as they recorded the process of procuring materials for manufacturing musical instruments, it was possible to identify the places used to excavate specific materials for a musical instrument, such as pumice stone. Then, it was confirmed from the records in Sajik akgijoseongcheonguigwe, that pumice stone, which was used as a material for pyeongyeong 編磬, was excavated from Geondalsan (mountain) of Suwonbu. Along with that, the royal protocol was discovered to contain a broad spectrum of contents even covering information about tools used for excavating stone. As such, the 4 types of royal protocols uigwe in relation to the manufacturing of musical instruments during the Joseon period, owned at Kyujanggak, propose diverse contents including information about the manufacturing of musical instruments, themselves, ranging from the socioeconomic aspect and cultural aspect, to the current condition of various artisans owned by the Joseon society; thereby, they are also meaningful as a royal protocol which enables us to see the Joseon society from three-dimensional ang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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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명응의 詩樂學 연구

        송지원(Song, Ji-won) 한국고전번역원 2013 民族文化 Vol.42 No.-

        조선후기의 학자 保晩齋 徐命膺에 의해 수행된 詩와 樂 관련 연구는 조선후기 학술계에서 개별 분과학문의 개성화와 전문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현장을 보여준다. 조선후기의 학자 서명응은 영조, 정조 년간 중앙의 핵심관료를 지내면서 국가규모의 편찬사업에 두루 간여하여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 중요한 저술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여러 학문 분야에 정통했지만 특히 詩와 樂에 관하여는 ‘침식을 잊을 정도로 심취’하여 일정 정도의 성취를 이루어내었다. 그가 침식을 잊고 연구한 詩와 樂은 근본적으로 詩樂의 원론적 탐색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제사와 연향, 군사의례 등 각종 국가전례에서 쓰이는 ‘樂章으로서의 詩樂’의 이상적인 형태를 찾아 그것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시와 악이 堂上의 노래와 堂下의 연주로 편성되는 이상적 형태의 음악을 제시함으로써 儒家의 樂論을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을 탐구하고자 한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서명응이 추구한 詩樂의 理想은 국가전례의 이상과 일정 지점에서 조우한다. 그러나 그것은 때로 이념적 이상으로 제시되는 것에 그치기도 한다. 시와 악의 원론적 탐색을 거쳐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단계까지 연결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실행 여부를 놓고 서명응의 연구에 대한 가치를 매기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오히려 가장 이상적인 시와 악이 무엇인지 고뇌했던 조선후기 학자가 그 고민의 결과로서 제시한 악장과 음악의 만남, 당상악과 당하악의 이상적 형태에 대한 고찰은 우주론적 의미에서의 시와 악에 대해 보다 깊이 성찰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Study on poetry and music conducted by Bomanjae Seo Myoung-Eung, a scholar of the late Joseon dynasty, shows the scene of active individualization and specialization of individual branch study in an academic field. Seo Myoung-Eung, a scholar of the late Joseon dynasty, wrote on various academic fields, engaging national compilation project while he worked as a high-ranking government official. Although he was well-versed in various academic fields, he was especially interested in poetry and music that he forgot to eat and sleep. He gained some achievement in those fields. Poetry and music he studied, forgetting to eat and sleep, are related to a theoretical investigation into Poetry musicology but ultimately, they are to find and suggest an ideal form of ‘poetry musicology as a Akjang (movement)’ that is used at traditional national ceremonies such as ritual, reception and military protocol. Furthermore, they were for the investigation into how to realize Confucian’s theory of music realistically by suggesting ideal form of music that consists of Dangsang’s 堂上 songs and Dangha’s 堂下 instrument play. Therefore, idea of poetry musicology which Seo Myoung-Eung seeked meets the ideal of traditional national ceremonies at some points. However, it sometimes is limited to being just suggested as ideological idea. That is probably because it is hard to connect the theoretical investigation of poetry and music to the stage of action in reality. However, it would be meaningless to measure the value of Seo Myoung-Eung’s study depending on carrying it out in reality. Rather, combining Akjang and music, and the ideal form of Dangsanak (music on the hall) and Danghaak (music under the hall) suggested by the late Joseon dynasty scholar who studied what the most ideal poetry and music are can give an opportunity of reflecting on poetry and music more deeply in cosmological s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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