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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蘇武傳」의 韓國文學 收容 硏究

        손찬식(Son, Chansik)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7 한국문학과 예술 Vol.23 No.-

        이 논문은 한국 한문학에 수용된 소무의 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시인들은 「소무전」의 고사를 원용하여 소무의 신산했던 삶과 그의 변함없는 충절을 찬양하고 이를 시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이들은 유배 및 억류 등 자신이 당면한 현재적 상황을 소무의 처지와 동일시하여 스스로를 위로하고 자신의 심지를 굳게 다짐하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아무런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자신의 절망적 처지에서 소무의 환국과도 같은 극적인 상황을 선망하기도 하였다. 이밖에도 영물시에 소무의 충절을 가탁하여 형상화하는가 하면, 또 사신을 가는 친구에게 사신으로서의 임무와 역할을 소무 고사를 환기하여 당부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때로는 이릉의 입장과 처지에서 때로는 소무의 입장에서 서로의 상황과 처지를 이해하고 위로하거나 이별의 슬픔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였다. 뿐만아니라, 문답형식을 통하여 이릉의 실절과 그의 올바른 처세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소무가 환국한 후에 전속국에 임명된 것은 그의 충절에 걸맞지 않은 미관으로, 부당하다는 비판적 견해가 주를 이룬다. 이와 달리 전속국은 표면상 낮은 직위지만, 그 임무는 조정의 핵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하였다. 또 대부분의 조선조 문인학자들은 흉노 아내를 취하여 통국을 낳은 사실과 그들을 환국시킨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였다. 그런데 송시열은 소무의 이러한 처사는 수절이라 할 수 없다는 비판적 입장을 표명하였다. 장현광은 소무가통국을 낳은 것은 인욕에 기인한 것으로, 평생의 부끄러움이라 하였다. 소무가 공신으로 인정되어 그의 초상화가 기린각에 봉안된 것에 대하여 조선조 문인들은 이를 병풍에 그리거나 시를 지어 찬미하였다. 그리하여 소무의 입장에서 자신을 기린각에 봉안해 준선제에게 사례하는 글을 쓰기도 하고, 소무 아들 입장에서 선제에게 감사를 표하는 글을 짓기도 하였다. This study considered the appearance of Somu in Korean classical literature. The poets quoted the story of Somujeon and praised Somu’s life of privation and loyalty in their poems. The poets consoled themselves identifing their present situations like an exile or detainment comparing with Somu’s situation and strengthened their will. Besides they dreamed dramatic situation like Somu’s returning to his own country in their own desperate condition which didn’t show any solution. Moreover, they reflected Somu’s fidelity into Youngmulpoem and used to ask friends who were dispatched as anvoys to carry out mission and role evoking Somu’s case. Sometimes they tried to understand their own situation and comforted one another in Leereung’s stance or in Somu’s situation and presented the sadness of parting literarily. Through exchanging questions and answers, they expressed Leereung’s loss of fidelity and their opinions about his right attitude as well. There were mainly obvious critical opinions that after Somu’s returning to the country, being appointed as Jeonsokguk which was a trival position was irrelevant to his fidelity. On the other hand, some insisted that his task was more important than any position of the Dynasty even if Jeonsokguk was seemingly low position. Moreover, most of scholars of Choson Dynasty thought it positive that Somu adapted a wife from Hyungno tribe and made his son, Tongguk, return to his country. Whereas Songsiyeol suggested critical viewpoint that Somu didn’t hold on his principle in spite of this management. Janghyeongwang thought it ashamed of all his life that Somu had a son from the Hyungno woman from because of physical desire. Even so, Somu was recognized as a vassal of merit and his portrait was placed in Giringak. Literary men in Choson Dynasty admired him writing poems and painting on folding screens. They wrote appreciative writings for the Emperor, Seonjae, in recompense for enshrinement of his portrait in Giringak in Somu’s shoes or from his son’s pos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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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료 언간(諺簡) 「부원군부인 왕후ᄯᅡ님 경계 편지라」의 문학적 성격

        손찬식(Son Chan sik) 어문연구학회 2015 어문연구 Vol.86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논문은 미발표 언간 「부원군부인왕후님경계편지라」에 대한 서지사항, 표현과 형식의 특성, 내용적 특성, 문학사적 의미 등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이 언간은 가로 18cm, 세로 29cm의 한지(韓紙)에 다른 작품과 함께 필사되어 합철되어 있으며, 전체가 모두 7면으로, 매 면은 1면 11행, 1행 평균 20자 내외의 길이로, 句 단위를 의식함이 없이 줄글체로 잇달아 종으로 써 내려간 연행(連行) 종배법(縱排法)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언간의 발신자는 부원군 부인이며 수신자는 그의 딸인 왕후이다. 언간의 서체는 전형적인 내간체의 여필(女筆)로, 궁체에 가까우며, 필사연대는 1895년으로 추정된다. 발신자는 친정어머니이며 수신자는 왕후 딸로서 발신자인 친정어머니가 수신자인 왕후 딸에게 궁중 생활에 긴절(緊切)한 덕목을 열거하여 이를 준행(遵行)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말조심', '웃음 조심', '성(화)참기', '앉음과 걸음걸이 조심', '말씀하거나 사람을 부릴 때 소리를 유화(柔和)하게 할 것', '효도와 공경을 극진히 할 것' 등이다. 이 언간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훈교 내용과 표현이 일체의 사적인 사연이나 문제될 만한 표현은 일체 배제되어 있고 오로지 그 덕목을 실천하기 바라는 어머니의 진정이 너무나 간절하여 감동을 자아낸다. 이런 측면에서 이 언간은 진정이 스며있는 생동하는 실용적 문학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현재까지는 이러한 언간은 발견되지 않고 있어 이 언간의 문학사적 위상과 그 가치는 더욱 높다고 할 수 있다. This writing has studied the bibliographical matters and characteristics of the expression and formality, contents, the significance in cultural history about an unpublished colloquial letter <a letter for the daughter, the queen consort with advices from her mother>. This colloquial letter is transcribed and bound together with another literary works on the traditional Korean papers which are 18cm × 29cm; width and length, which is written vertically on 7pages with 11 rows on each page and around 20 characters in a row not distinguishing between phrases. The sender is queen consort's mother and the recipient is the queen consort. The style of handwriting is typical Naeganche by woman which is similar to Gungche; the court style of writing. It is estimated to be transcribed in 1895. This colloquial letter asks earnestly her daughter, the queen consort to follow in accordance with royal court mentioning virtue items. The main contents are caring in speaking, watching out laughing, suppressing anger, being prudent in her conduct, temperate tone to subjects, filial duty, respect and so on. It is inspiring that this letter shows a mother's earnest desire for the daughter as a queen consort in detail without troublemaking expressions excluding personal stories. In this respect, this letter is qualified as a practical literature. This letter seems to have high literature value in the korean literature history, because, up to now, this kind of colloquial letter has not been found. Moreover, it can give a important informations to study the honorification of the time. Besides, this transcript seems to deserve consideration to study how to distribute between classes with the feature of the style of hand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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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澤堂 李植의 詠物詩 硏究

        손찬식(Chan sik Son) 어문연구학회 2014 어문연구 Vol.82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논문에서는 택당의 영물시를 선별하여 그 개념과 범위를 규정하고 작품을 개관한 후, 이어 내용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그 특성을 고찰하였다. 택당은 5언율시와 7언절구의 형식을 많이 사용하였고, '매화, 국화, 솔' 등의 식물과 '비, 눈' 등의 자연현상을 소재로 즐겨 영물시를 창작하였다. 택당은 정치 현실과 강호 자연을 오가며 여러 차례 出處를 반복하였다. 택당은 이러한 출처에 대한 의식과 그로 인한 갈등과 고뇌를 영물시를 통하여 토로하였다. 때로는 강호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심경을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환로에 나간 것에 대해 悔恨의 심회를 피력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또 택당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소신있게 대처할 것인가, 아니면 그때그때 世波에 순응하면서 處世할 것인가에 대해 갈등하고 고뇌하는 心懷를 영물시로 形象化하였다. 택당은 또한 당면한 자신의 불우한 현실적 상황과 그에 대한 인식을 영물시로 형상화하였다. 자신의 처지를 山菊에 비유하여 인정 받지 못하고 소외된 자아를 형상화하기도 하였고, 화재로 인하여 홀로 짝을 잃고 서성이는 오리의 모습을 통하여 자아의 불우한 현재적 상황을 비유적으로 表象하기도 하였다. 또한 택당은 궁핍한 현실적 생활과 朝夕을 보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 및 정치 현실에서 추방된 자신의 모습과 자신을 추방한 橫暴한 세계를 영물시를 통하여 비유적으로 形象하기도 하였다. 택당은 계속되는 가뭄과 장마, 때 아닌 우박, 서리 등의 자연 재해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백성들의 고통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관리들의 失政 및 수탈을 비판하였으며, 이러한 백성들을 구제하지 못하는 무력한 자신에 대한 한탄 등의 애민의식을 다양한 수사적 표현을 활용하여 詠物詩로 형상화하였다. In this Paper, I sifted Youngmul poetries(영물시) written by Taekdang(택당) and made a general survey of his poetries, making clear the concept and the scope and then investigated the characteristics, focusing on the contents. Taekdang had written poetries with the subject matters like ume flower, chrysanthemum, pine tree and natural phenomena like rain, snow etc, using 5 uhnyulsi(오언율시) and 7 uhnjeolgu(칠언절구); versification. Taekdang used to go back and forth between realpolitik and reclution in nature. He expressed the conflict and the agony of his attitude and consciousness through Youngmulsi, now revealing implicitly the feeling which is not satisfied in nature, then expressed his heart regretting bitterly in the secular society. Taekdang described his thought and feeling in Youngmul poetries, agonizing whether he would not compromise with injustice, settle for the present or get on in the world. Taekdang expressed problems confronting the reality and his perception. He described isolated self, comparing himself to wild mum or his adverse circumstances to a hovering duck which lost partner in fire. Besides, a needy life, a precarious situation, the poet himself purged from realpolitik and the reality in a high-handed manner were written allegorically in the poetries. In addition, he criticized misrule and exploitation by privileged power, providing a description of people who suffered from a natural disaster like drought, run of wet weather, hail, frost with his complicated emotion like grief and love of people that he couldn't help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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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玄洲 趙纘韓의 莊子的 思惟와 神仙趣向的 詩世界

        손찬식(Son Chan-sik) 한국도교문화학회 2003 道敎文化硏究 Vol.18 No.-

        조선조의 도가철학 사상이 유가적으로 수용된 ‘유가적 도가철학’이었다는 점은 양자간에 상호 대척적인 관계이거나 충돌할 소인이 개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玄洲 趙纘韓도 이러한 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현주는 기본적으로 儒者였으며 그의 중심사상과 학문 역시 儒家의 성리학이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현주는 한 발 더 나아가 장자와 신선사상에도 관심을 표명하고 일정하게 그 세계에 침잠하였다. 현주는 불행한 가정사, 懷才不遇에 따른 소외감, 횡포한 정치현실, 世俗雜事에 구속되기 싫어하는 방달한 성격 등으로 인해 정치현실에의 집착을 단념하고 강호에서의 은일적 삶에 관심을 갖고 是非憂樂에서 초월하고자 하였으며 그 방편으로 현주는 莊子的 思惟와 신선사상에 경도한 것이다. 「無外論」과 「混沌歌」에서 현주의 장자적 사유를 窺知할 수 있는데, 여기서 ‘至大’를 ‘無外’로 인식하고 ‘混沌’의 참의미를 터득함으로써 현상 세계의 상대적?주관적 가치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또한 현주는 勝境을 仙界로 관념하고 그 곳에서 세속과 일정하게 거리를 유지한 채 한가롭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가는 隱逸者를 地上仙으로 인식하여 자신의 이상적 삶의 좌표로 설정하였으며 결국엔 자신도 그러한 삶을 살았다. 뿐만 아니라 현주는 仙界를 찾아가 신선을 만나고 그들과 主客의 일치를 경험하며 傲遊하는 기쁨을 토로하기도 하고 煉丹에의 정진을 통해 仙化하고자 하는 욕구를 표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현주가 실제로 道經을 탐독하고 煉丹에 정진하는 등의 신선 수련을 한 것은 아니다. 오직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정신세계의 몰입을 통한 현상세계에 대한 망각 체험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현주는 이러한 莊子的 思惟와 신선세계에 대한 꿈꾸기를 통하여 현상세계의 갈등을 극복하고 是非憂樂에서 초월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탁월한 詩的 재능을 발휘하여 詩篇으로 형상화하였는바, 이는 또한 그의 唐詩風지향의 詩風과도 일정하게 연관된다. Hyunjoo(玄洲) Cho Chan-Han(趙纘韓)(1572~1631) was a Confucianist originally and his central idea was Seonglihak(性理學) of Confucianism. But Hyunjoo didn't cling to only Seonglihak and he was interested in Taoism and Jangja(莊子). He had unhappy family history, the sense of alienation the distrust in politics. He was indifferent to politics. He took interested in the life in seclusion and he could have freedom of the thought through the relative, subjective awareness of the phenomenal world. He didn't read with avidity the scriptures of Taoism and didn't train practically. He was only absorbed in romantic and fantastical spiritual life as an experience of a forgetfulness of the phenomenal world. He had superior ability to write poems and wrote poems, which had tendency to the style of poetry in Tang(唐) Dynasty consistently.

      • 冲庵 金淨의 佛敎認識과 그 詩文學的 形象

        손찬식(Son, Chan-sik)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16 충청문화연구 Vol.17 No.-

        Chungam Kim Jeong enrolled Ijochampan, Daesaheon of Saheonbu, Doseungji, Hyeongjopanseo and promote the political reformation such as Hyangyak execution, abolishing Sogyeoksseo, Hyeonryanggwa execution but passed away at 36 in Jeju by Gimyosawha. About 560 poetry and a number of his works are related to Buddhism such as naming titles of works after monks and temples. The monk"s names of poetry titles are as followings: Jiyeolsangin(志悅上人), Seongin(性印), palhwan(八還), okhui(玉曦), Seolcheong(雪晴), Jahye(慈惠). Haengbun(行芬), Seonjong(性宗), Cheongsa (淸師), Hyesa(惠師), Sinhyeon (信玄), Gyeongun(景雲), Hyeongcheol (瑩徹), Yeongsa(岑師), Uijong(義宗), Gakhye(覺海), Suan(守安), Jeonggok(靜谷), Doneungsa(道能師), Dosim (道心), Wong(圓空), Seokhui(釋熙), Singyeong(震卿), Nulgyeong(訥敬), Gingisangin(眞機上人), Giheonsa(止軒師), Wolgan(月侃),*1) Onsa(溫師), Sugan(守侃), Geukbu(克符) up to 30 people. In addition, there are many monks not referring to Buddhist name such as Seonsuing(禪僧), Ilseung (一僧), Seoksangin(石上人), Seung(僧), Beopju(法住), Noseung (老僧), Goseung(高僧), Sanseung(山僧), Seokja(釋子), Ilnap(一衲), bujer(浮屠), and so on. There are many temples where Chungam stayed and stuied such as Beopcheonsa(法泉寺), Cheonggyeongsa(淸凉寺), Hansansa(寒山寺), Hoeeomsa(檜巖寺), Yeonam(蓮菴), Cheongryongsa(靑龍寺), Gangam(嵌巖), Dosolam(兜率菴), Yujeomsa(楡岾寺), Jangansa(長安寺), Pyohunsa(表訓寺) and so on. He studied in the temples or trip to beautiful mountains and temples, exchanging poetry with monks, writing the preface of poem. The temples are spaces to study and read and due to the positive cognition of Buddhism. Their exchange were continued to Jeju life in exile. Chungam created the poetic world of a noble character and appearance for old monk beyond human world, comparing ‘a lonely crane(孤鶴)’ or ‘a bright goose(冥鴻)’, ‘Lotus(蓮華)’, A crand on a pine tree(松上鶴)’ and ‘crystal(氷玉)’ etc. Chungam expressed the positive cognition in poem all over , based on deep He sometimes explained the differences and the harmony between Confucianism and Buddhism. And also he identified all pervading superstition and harmful effects, insisted to propagate Buddhism to people in 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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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扶餘八景의 詩的 形象

        손찬식(Chan-sik Son) 어문연구학회 2005 어문연구 Vol.47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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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nce the collapse of the Baekje Dynasty, most of the brilliant and glorious cultural heritage sites of Buyeo have disappeared, and today, only the vestiges of them remain in the scenic features of Buyeo's Palgyeong (eight scenic places), such as Nakhwaam, Goransa temple, and Jaondae. Poets of the time selected some sights as Buyeo's Palgyeong, and reflected their emotions onto them as poetic images. Palgyeong has been selected several times over: The Buyeo areawas selected as the Subukjeongpalgyeong of Sangchon, Sin Heum, and the Buyeohoegopalyeong of Kim Honguk. Before these, there had been the old and previous Palgyeongs, which were allegedly the sources of the Sin's and Kim's. In the second half of the reignof King Youngjo, the later Palgyeong was selected, and the new Palgyeong was chosen in 1920. This is because Buyeo has beautiful scenery and historicity as the ancient capital of the Baekje Dynasty. Whenever the Palgyeong of Buyeo was selected, each different sight and scenic feature was chosen. In the old, the previous, and the later Palgyeongs and the Buyeohoegopalyeong, the Palgyeong were called only by their area names. In the Subukjeongpalgyeong and the new Palgyeong, on the other hand, the sights were named by mixing their names and their scenic characteristics. Numerous poets, such as Lee Gok of the Goryeo Dynasty, ceaselessly make Buyeo's Palgyeongs into poetic figures. These poets recall the historical facts through the Palgyeong and recognize the contrast between [the] changeable life and [the] consistent nature as time goes by. They put the emotion, the transience, which is aroused in the process of recalling, into their poems. With the seasonal and timely background of the evening and the late fall, transience stirs up other emotions, such as solitude, sorrow, anxiety, and lamentations through poetic words: 'wild and lonely fortress,' 'the patter of raindrops,' 'the sound of drums at sunset,' and 'the songs of the fishermen.' Although the collapse of the Baekje Dynasty might have been inevitable, the Sillaites tried to justify that it was the right thing for Silla to conquer Baekje. The remaining people of the Baekje, however, lamented their country's downfall, criticized King Uija, the last king of the Baekje, for his misgovernment, while mourning for the loyal subjects, such as Seong Chung and Heung Su. Furthermore, they changed the shame of the Baekje Dynasty into their own and tried to vent their indignation through their poetry. Most of the Buyeo's Palgyeong have tales related to its scenic features. There are some who admit the truth of the contents of the tales, customarily use them to find the circumstantial evidence of what happened during that and arouse the emotion of the present. But others do not admit the tales as facts and consider them fictional outcomes used to show the treacherous subjects, King Uija's misgovernment and his wallowing in sensual pleasure, and Sojeongbang's heroism and myst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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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십경(公州十景)의 시적(詩的) 형상(形象)

        손찬식 ( Son Chan-sik )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20 인문학연구 Vol.59 No.4

        이 논문은 공주십경시의 자료를 새로 발굴 확충하여 공주십경의 위치와 그 명칭을 검토하고, 이와 관련한 시작품을 분석하여 이들이 시적으로 어떻게 형상화되어 있는지를 고찰한 것이다. 「공주십경」시는 서거정의 「공주십경」과 신유의 「공산십경」두 계열로 대분된다. 서거정의 「공주십경」에서는 명소를 먼저 제시하고 그곳에서의 놀이나 흥취 및 감상 대상, 그리고 그곳에서의 행위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비하여 신유가 선정한 공주십경은 산(3), 사찰(3), 나루(2), 정자(2) 등으로, 그 십경으로 선정된 명소만 제시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서거정이 선정한 공주십경은 현재의 공주군과 연기군(세종시) 일부까지 포괄하는 광범한 지역인데 비하여 신유가 선정한 공주십경은 공주 治所에서 10리 이내에 있는 승경만을 대상으로 했다. 이들이 선정한 공통적인 공주십경으로는 “금강춘유-금강진, 웅진명월-웅진도, 서사심승-정지사” 등 세 곳 뿐임을 규명하였다. 「공주십경」시는 모두 공주십경의 승경과 명소 및 명물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수려한 풍광의 공주십경을 찾아 오유하면서 그 속에서 노니는 흥취를 노래하는가 하면, 공주가 백제의 고도라는 점을 환기하여 역사적 회고를 통한 무상감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들은 공주십경과 관련한 고사를 환기하여 선정이 행해지기를 희구하고 치자로서의 애민의식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시인들은 공주십경에 포함된 여러 사찰을 찾아 고승과 교유하면서 잠시나마 세속을 벗어나 청정한 마음을 가져보기도 하고 수려한 풍광을 대해서는 선경을 관념하고 은일적 삶을 동경하기도 하였다. In this paper, we look at the locations and names of Gongju-Ten-Views ,compare and analyze the poems related to the views and consider how they were embodied into poems. Gongju-Ten-Views are divided into two lines, such as Seo Geojeong's < Gongju-Ten-Views > and Shin Yoo’s < Gongju-Ten-Views >. Gongju-Ten-Views which Seo Geo-jeong and Shin Yoo chose not only have different forms of titles, but are also quite different regions. Seo Geo-jeong's ‘Gongju-Ten-Views’ presents the attractions first, and consists of play, enjoyment and the objects of appreciation and actions there, on the other hand, Gongju-Ten-Views by Shin Yoo are only mountain(3), temple (3), naru(2), and pavilion(2), etc. And Gongju-Ten-Views by Seo Geo-jeong spreads an extensive area that covers the current part of Gonjugun and Yeongi-gun (Sejong City), but Gongju-Ten-Views selected by Shin Yoo is targeted only at attractions within 10Ri from Gongju government office. It can be seen that there are only three common Views selected by them: Geumgangchunyu-Geumgangjin, Wonjinmyeongwol-Wungjindo, Seosasimseung-Jeongjisa. All of the poems of 「Gongju-Ten-Views」 sang the scenic spots, the famous sights and specialties about ten superb view in Gongju. The poets visited ten beautiful places in Gongju and sang the pleasure seeing the superb view, and also reminded that Gongju was the ancient capital of Baekjae, expressing vanity of life through the historical retrospect. In addition, they recalled the idioms originated in ancient event related to the Gongjusibgyeong and wished good politics would be done expressing their love for the people as a governor. Moreover, the poets visited the temples in ten superb view of Gongju and conceptualized the fairyland and yearned for hermit interacting with high monks through the beautiful scen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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