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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용 CD ROM 분석을 통한 한문과 디지털교과서 개발 방향 모색 - 문화콘텐츠 활용 방안을 중심으로 -

          손유경 ( Yoo Kyung Son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2016 漢文古典硏究 Vol.32 No.1

          21세기의 C-세대들은 컴퓨터로 사이버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며, 때로는 새로운 콘텐츠를 자유롭게 창출하면서 현대 사회를 운용한다. 한문교과에서는 이러한 C-세대의 시청각·체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교육용 CD ROM을 보급했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하다. 본 연구는 디지털교과서 전면 도입에 앞서서 교육용 CD ROM을 면밀히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였다. 이에 추후 디지털교과서가 갖추어야 할 주요 기능 중 ‘학습지원, 촉진기능'에 집중하고, 멀티미디어 자료 중에서 ‘문화콘텐츠' 발굴에 주력하였다. 기존 출시되어 있는, 2009개정 『한문』 교육용 CD ROM이 어떤 방식의 멀티미디어 기능을 담고 있는지를 고찰하고, 앞으로의 개발 방향에 대해 논한 것이다. 본고에서 분석 대상으로 삼은 8종의 중학교 『한문』 CD ROM에서 세 가지주제 -‘명절[풍속]·역사적 인물[역사]·교훈적 인물[이야기]'-에 대해 살펴본결과, 다음 몇 가지의 공통적 특징을 찾아낼 수 있었다. 첫째, 멀티미디어 기능의 제한적 사용이다. 구성은 ‘도입부'와 ‘심화부'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표현방식은 6가지 형태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도입부'와 ‘심화부'외에 ‘평가부'에서도 멀티미디어 기능을 적극 활용할 것과 제시법에 있어서 ‘오디오' 기능을 삽입하고 ‘질문 제시형'을 개발할 것을 제언하였다. 둘째, 콘텐츠가 빈약하다는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교육콘텐츠가 상업적 콘텐츠에 못지않은 완성도와 재미를 가져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상업적 콘텐츠들을 적극 발굴하고 일부 소개하였다. 또한, ‘역사적 인물'을 ‘도표제시형'으로 구현할 때, AR(증강기술)을 활용한다면 현재 교육환경에서도 좀더 풍부하고 입체적인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마지막으로, 애니메이션을 모든 단원에서 획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적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문화적 요소가 강한 ‘명절[풍속]'의 경우, ‘이미지+텍스트+오디오 결합형'을, ‘역사적 인물'의 경우, ‘도표 제시형'을, ‘교훈적 인물'은 ‘동영상+텍스트+오디오 결합형[애니메이션]'을 활용할 것을 제안했으며, 그이유를 설명하였다. 본 연구는 스마트 교육 전면화 방침으로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점차 그 의존도가 높아져가는 한문과 멀티미디어 자료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①스마트 교육 환경에 맞는 디지털교과서 개발의 방향성 제시, ②교육콘텐츠 개발 방안 제시를 통한 다양한 수업 모형 구현 가능성 제고, ③현대적 접근 방식을 통해 한문교육 위기 완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The researcher thought that there was a great need to thoroughly examine the educational CD ROM before introducing digital textbooks. The way in which the multi-media function was carried out in 2009 revised CD ROM was minutely examined and the direction in which to develop in future was discussed. This paper looked at three themes of eight middle school CD ROMs - traditional festival[customs], historical figures[history], and edifying figures[story] -, by thoroughly examining these, several common characteristics could be found. Firstly, the multi-media function was used restrictively. The composition was concentrated in ‘introduction' and ‘advanced section' and the expression mode consisted of six forms. Observing these led this study to suggest that multi-media function should also be utilized more widely in ‘assessment' as well as in ‘introduction' and ‘advanced section' and for presentation method, it was suggested to insert ‘audio' function and to develop ‘question presentation'. Secondly, it was discovered that the contents were meager. This study actively looked for commercial contents and introduced some of them to emphasize the fact that the educational contents should have the degree of completion and fun that are not short of the commercial contents. In addition, this study also suggested to consider utilizing the AR(Augmented Reality). Lastly, it could be observed that the multi-media function, animation in particular was used uniformly in all chapters. This study is meaningful first attempt to examine the multi media contents in Chinese character education which has more relevance in middle and high school classes where radical changes are expected due to full implementation of smart education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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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광한(申光漢) 대일인식(對日認識)의 형성(形成) 배경(背景)에 대한 일고찰(一考察)

          손유경 ( Yoo Kyung Son ) 동방한문학회 2013 東方漢文學 Vol.55 No.-

          본고는 1484년(성종 15)에서 1555년(명종 10)까지를 살았던, 16세기를 대표하는 문인인 企齋 申光漢의 對日認識을 살피고, 대일인식 형성의 배경을 찾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신광한은 일본으로 건너가 그들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지는 않았기에 『實錄』에 남아있는 그가 獻議한 내용과 『企齋集』에 남아있는 일본 使僧 安心東堂과의 창화시를 통해 그의 대일인식의 일단면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實錄』에 전하는 그의 提言과 『企齋集』에 전하는 시문들을 통해 보이는 신광한의 대일인식이 긍정적인 시선보다는 부정적인 것이 더 강했던 당대 문사들과 그 결을 달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이것은 華夷論에 입각해서 일본을 夷로 파악하던 당시 문사들의 일반적 대일인식과 구별점을 가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어서 신광한이 개방적인 일본관, 친화적인 대일정책을 갖게 된 배경을 가계로부터의 영향과 학통으로의 영향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신광한의 조부인 泛翁 申叔舟와 그가 師友 삼았던 慕齋 金安國의 대일인식이 신광한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선 전기의 문사인 신광한의 일본인식을 살펴봄에 있어서 제한된 자료만을 참고해야 한다는 사실은 연구의 한계를 露呈하는 것이기에 안타깝다. 논의를 보다 풍부하게 하고 논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근거 자료를 찾아서 보완 해야 할 것이다. 16세기 문인들의 對日本 관련 자료들과, 더 나아가 일본측 문헌들까지 발굴되어서 당시 상황들을 보충할 수 있다면 당시 교류 상황과 신광한의 대일인식의 면모가 좀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드러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attitude toward Japan of GiJae(企齋) Shin Gwanghan(申光漢), who lived from 1484 to 1555, and to identify its formative background. For this purpose, this study selected and researched Shin Gwanghan(申光漢)`s remarks recorded in Chosun Dynasty Chronicles and his works in Gijae-jip(企齋集), the collection of his works. The research was triggered by the difference in the attitudes toward Japan between Shin Gwanghan and other shcolars as he held very equal and friendly attitude toward Japan unlike a majority of scholars who were negative toward it. This study attributed the formative background of Shin Gwanghan`s open and friendly attitude to the influences from his family line and his academic school. That is to say, Shin Gwanghan`s attitude had been heavily influenced by his grandfather, Beomong(泛翁) Shin Sookju(申叔舟) and his teacher, Mojae(慕齋) Kim Ahngook(金安國). It is unfortunate that only limited resources are available to examine Shin Gwanghan`s attitude toward Japan, which remains as the limitation of this study. For further studies, it is necessary to find and refer to more resources to encourage more academic discussions. It is expected that more specific and objective examination will be made possible regarding Chosun-Japan exchanges at that time and Shin Gwanghan`s attitude toward Japan if more works by 16th-century scholars and Japanese documents are found and researc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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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論文) : 16C 기묘사림(己卯士林)의 기몽시(記夢詩) 연구(硏究)

          손유경 ( Yoo Kyung Son ) 한국한문고전학회(구.성신한문학회) 2008 漢文古典硏究 Vol.16 No.1

          1506년 중종반정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16C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으로 인하여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였다. 이들의 첨예하게 대립되는 정치적 입장은 결국 기묘사화로 많은 사림파 문인들이 희생을 당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 때 희생된 사람들을 己卯士林이라고 한다. 그동안 16세기 사림문학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그 결과 이 시기 載道文學에 대한 연구는 상당 부분 진척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성향은 이 시기의 사림 문학 전반을 재도 문학으로 아울러 내는 거시적인 관점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문학 작품의 개별적 분석을 통한 미시적 관점에서의 접근은 미비하였다고 생각된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 하여 이 시기 사림 문인들에 대한 개별적 작품 분석을 통해 그들의 의식 세계를 탐토해 보고자 하는 큰 연구 목적의 한 작업으로서 16세기 기묘사림들의 記夢詩를 분석한 것이다. ‘記夢詩의 淵源및 定義'에서는 기몽시의 연원을 정리하고, 이를 통해 기몽시의 개념을 추출하여 정리하였다. ‘記夢詩 分類'에서는 16C 己卯士林의 記夢詩를 出仕에의 의지 표출ㆍ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ㆍ至親에 대한 그리움ㆍ절망적 상황에의 신세 한탄의 네 가지로 분류하여 분석하였다. 이러한 記夢詩의 분석은 기묘사화 후 개인 작품의 산일과 그들의 짧은 생애로 인하여 그들의식의 내면을 고찰할 방법이 적은 당시 사림 문인들이 유배기의 심리 상태를 살펴볼 수 있다는 데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으며, 또한 이들의 記夢詩가 16C 후반의 다양한 형태의 기몽시가 창작되는 데에 일정정도의 기여를 하였음을 밝히는데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본고는 시작품의 분석 대상을 일부 기묘사림의 작품에 국한하고 있다는 한계점을 지닌다.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記夢詩를 분석하려는 시도는 그들의 의식세계의 일단면을 엿보는 데에 유의미한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추후 이 시기 개별 작가들의 시작품 분석 과정에서 더 많은 기몽시 작품들을 보완하여 논의를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1506 was the time of political confusion owing to the feud of hoongu-pa(勳舊派) and sarim-pa(士林派), which is also the time of sixteenth-century starting from jungjongbanjoeng(中宗反正). This political situation of sharp conflict caused that many sarim-pa men of letters were sacrificed from KIMYOSAWHA(己卯士禍). And people who were sacrificed at that time are called KIMYOSARIM(己卯士林). This manuscript is the analysis of KIMONGSI(記夢詩) of the sixteenth-century KIMYOSARIM(己卯士林) as one of work, which is based on the large purpose of research to investigate and consider their consciousness through the analysis of an individual work about sarim men of letters at that time. ‘In the chapter of the origin and the definition of KIMONGSI(記夢詩)' the origin of KIMONGSI(記夢詩) has been organized, and through this, the general idea has been abstracted and organized. ‘In the chapter of the classification of KIMONGSI(記夢詩)' it has been classified and analyzed byfour topics, which are the will expression of KIMONGSI(記夢詩) of the sixteenth-century KIMYOSARIM(己卯士林), the criticism of political actuality, the yearning of friends and the lamentation of hopeless circumstances. This analysis of KIMONGSI(記夢詩) has a meaning that we can see the mental state of sarim men of letters in the period of exile, even though it is hard to consider their inner world owing to their short life and the dispersion of an individual work, and is supposed to be required work to find out that their KIMONGSI(記夢詩) contributed to create various types of KIMONGSI (記夢詩) partly for the later sixteenth-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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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의 『산중일기(山中日記)』 연구(硏究) -경남 함양 유람에 관한 기록을 중심으로-

          손유경 ( Son Yoo Kyung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2014 漢文古典硏究 Vol.29 No.1

          愚潭丁時翰(1625~1707)은 조선후기의 학자로, 집안 대대로 벼슬을 해온 서울의 양반 명문가 출신이다. 우담 정시한에 대한 선행 연구는 사상적인 측면에 집중된 경향이 강하며 문학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집안에 보관해 두었던 여러 문학 작품이 산일되었다는 점과 정시한의 글 짓는 성향이 학문을 강론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던 점을 들 수 있다. 연구자는 정시한의 기행집인 『山中日記』라는 텍스트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이 텍스트가 정시한에 대한 연구를 보다 다각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정시한에 대한 『실록』의 기록을 살펴보면 정시한은 “산수를 좋아하여 팔방에 두루 다녔다. [喜山水遍遊八方]”라고 하였는데, 이 『산중일기』는 그가 늘그막에 기획한 네 차례의 산행에 대한 하루하루의 기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을 세밀히 분석함으로써 정시한의 평범한 일상을 엿볼 수 있었고 사상가로서의 정시한이 아닌 또 다른 작가의 면모를 살필 수 있었다. 본고는 우담 정시한에게 ‘사는 곳'이 아닌 ‘떠나온 곳'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즉 평생을 강원도 원주를 근거지로 하여 살았던 정시한에게 산행이 갖는 의미를 찾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산중일기』에 담겨 있는 네 차례의 산행 중에 1차 여행에 집중하여 분석하였다. 정시한의나이 예순 두 살 때 행해진 이 여행은 그가 기획한 여행 중 가장 긴 기간에 해당되는 여행이었는데, 그 중 6개월 가량을 경상남도 함양지역에서 체류하였다. 따라서 본고는 『산중일기』 안에 보이는 함양 체류 기록만을 발췌하여 집중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정시한에게 함양 지역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공간인지를 찾아보았으며, 더 나아가 정시한이 山水癖을 갖게 된 원인을 살펴보았다. WuDam (愚潭) Jeong, Si-Han(丁時翰) is a scholar of late Joseon dynasty and his family was yangban (aristocrat class) family living in Seoul for generations. Existing researches about WuDam Jeong, Si-Han have focused on his philosophical contemplation and his literary aspects have not been approached enough. This research was started from interest on 『Sanjungilki (山中日記)』, a travel literature of Jeong, and we believe the literature can diversify studies regarding Jeong, Si-Han. According to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Jeong was described as “likes mountain and water hence traveled around all different regions [喜山水遍遊八方]” and 『Sanjungilki』 is a book with intact daily records of four-time mountain traveling at his late age. Therefore, detailed analysis of this book could contribute for knowing Jeong, Si-Han`s normal life not just as a scholar but also as a writer. This paper has looked into the meaning of ‘the place one has left', not ‘the place one is living' for WuDam Jeong, Si-Han. In other words, the meaning of mountain traveling for Jeong, Si-Han, who lived in Gangwon-do province for his entire life, has been investigated. For this, among the four mountain traveling described in 『Sanjungilki』, the first traveling was selected for detailed analysis. The travel, proceeded on his age of 62, was with the longest time spent among his four trips and he stayed in Hamyang region of Gyeongsangnam-do Province for six months. Therefore this paper extracted records from Hamyang region only from 『Sanjungilki』 and analyzed in depth to find the meaning of Hamyang for Jeong, Si-Han. Moreover, the rationales of Jeong`s San-Su-Byeok (山水癖: propensity of craving for mountain and water) were contemplated through this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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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재 신광한의 작가의식에 대한 일고찰 -여흥(驪興) 지역(地域)이 가지는 의미(意味)를 중심(中心)으로-

          손유경 ( Yoo Kyung Son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2012 漢文古典硏究 Vol.25 No.1

          企齋申光漢(1484(성종 15)-1555(명종 10))은 16C 중종대를 대표하는 문인이다. 조부인 申叔舟(1417-1475)로부터 이어 받은 가학으로 학문적 조예가 깊었고, 거기에 趙光祖(1482-1519) 등 사림파들과 교유하면서 사상적으로 영향을 받아 개혁 성향을 지닌 실천 지식인으로서의 지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己卯士禍가 일어나자 탄핵을 받아 삼척부사로 좌천되었고, 이듬해에 파직되었다. 이렇게 예기치 않은 政爭에 휘말려 정치적 기반을 상실한 신광한은 이후15년간 驪興[현 경기도 여주시]에서 칩거하였다. 본고는 신광한의 문학작품을 그의 의식세계와 연계하여 살피려는 연구 목적의 一環으로 신광한의 문학작품을 그가 거주했던 지역과 연관지어 살펴보았다. 작가가 처한 地理的位置와 자연 환경은 어떠한 형태로든 작가의 작품세계에 투영되는데 특히 신광한에게 京畿道驪興과 江原道眞珠[현 강원도 삼척시]가 가지는 의미는 적지 않았다. 두 곳은 작가가 失意후 만나게 되는 공간이라는 점과 문학 세계 구축에 있어 진전을 이루는 계기를 만들어준 장소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경기도 여흥과 강원도 진주 중에서 본고는 우선 경기도 여흥 지역이 신광한과 그의 문학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에 포커스를 맞추어 고찰하였다. 우선, 그가 경기도 여흥 지역에 卜居한 이유를 서울과의 근접성을 염두에둔 신원복권의 도모, 경기도 지역을 기반으로 한 문화 세력의 형성이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또한 여흥 지역을 기반으로 지어진 시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감상하였다. 원형리 기재에서는 일상적인 강학과 至親의 방문에 응하는 작시 활동이 이루어졌고, 청심루와 팔대수에서는 여주목사의 초대를 받은 선비들과 그 선비와 함께 하는 유생들을 중심으로 숱한 詩宴과 酒宴이 이루어졌으며, 신륵사에서는 멀리 떨어진 친우들과 그간의 회포를 풀었음을 알 수 있었다. 기재 신광한의 경우에 국한하여 분석한 본 연구가 16C 경기도 지역에 낙향했던 일군의 문인들의 성격을 포괄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료적 취약을 안고 있는 이 시기 사림 문학에 대한 지역학적 접근은 신광한의 의식세계는 물론이고 동시대에, 같은 아픔을 지니고, 같은 지역에 살았던 이들의 내면세계를 살피는 데에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Gijae Shin Gwanghan (企齋申光漢1484--1555) is one of the most representative writers during the reign of King Joongjong in the sixteenth century. Under the literary influence of Shin Sookju(申叔舟), his grandfather, he had a deep understanding of classics and became a participatory intellectual with radical ideas through exchanges with Sarim(士林) including Jo Gwangjo(趙光祖). However, he was impeached and demoted to the Sheriff of Samcheok with the breakout of the Third Literati Purge of 1519 (Gimyo Sahwa(己卯士禍)) and was dismissed from office in the following year. Losing his political base, Shin Gwanghan kept a low profile in Yeoheung(驪興) for 15 years. This study associates Shin Gwanghan`s literacy works with the areas he resided in. The geographical locations and natural environment are always reflected in a writer`s literary world to some extent; especially to Shin Gwangahan, Yeoheung in Gyeonggi-do and Samcheok in Kangwon-do are more than significant. These two places are similar in that the writer resided in frustration and he made a progress in his literature. This study focuses on the effect of Yeoheung in Gyeonggi-do on Shin Gwanghan and his works. Fist of all, the study examines the reasons he came to live in Yeoheung in Gyeonggi-do from the point of view of his attempt to return to the political world and form a local power group, and then it addresses his poems written while he was based in Yeoheung. It is difficult to say that this study that analyzes only Gijae Shin Gwanghan`s case encompasses the wholr group of literary scholars who were made to reside in Gyeonggi-do area in the sixteenth century. Nevertheless, a geographical approach to Sarim literature during this period sheds a light not only on Shin Gwanghan`s inner world but also on his contemporaries` despite the lack of materials in order to understand the inner world of the group of literary scholars who shared the same pain, lived in the same area and at the sam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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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論文) : 『황화집(皇華集)』을 통해 본 기재 신광한(企齋 申光漢)의 작가 의식 -명사 장승헌(明使 張承憲)과의 수창 양상(酬唱 樣相)을 中心으로-

          손유경 ( Yoo Kyung Son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2011 漢文古典硏究 Vol.23 No.1

          企齋 申光漢(1484-1555)은 1507년 宦路에 들어서서 1554년 致仕할 때까지 30년간 관직에 있으면서 文衡을 장악하여 당대 문단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낸 인물이다. 본고는 신광한의 삶의 여정을 따라 그의 시세계를 분석하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의식세계를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신광한이 明使를 접대하면서 수창한 시작품들을 살펴보았다. 물론 이것은 신광한의 작품 세계에 있어서 지극히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가 敍用되자마자 연이어 明使의 접대를 담당했던 이력은 신광한의 삶의 여정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며, 그의 시문에 대한 동시대인의 인정을 반증하는 것이자,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이기에 그 의미가 작지 않다. 『기재집』에 소재한 시 작품들 중에서 신광한의 외교술과 사장 능력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는 권11과 권12를 들 수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황화집』에 수록되어 있는 신광한의 작품들인데 접반 업무의 특성 상 明使의 先唱에 唱和하는 과정에서 지어진 시들로 대부분 次韻詩의 형식을 띠고 있다. 본고는 明使 장승헌의 원운시와 신광한의 차운시가 함께 수록되어 있는 『황화집』 소재 작품들을 텍스트로 하여 明使 장승헌과의 교유 양상을 밝히고, 그 唱和詩에 속에 투영된 신광한의 의식세계를 고구하였다. 신광한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세 차례의 사행 중에서 1545년(인종 1)에 행해진 사행에 논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하였다. 『황화집』 수록 작품들은 비록 특수 문학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신광한의 경우 자신의 작품 안에서 국가의 체모를 지키고자 하는 관료의식과 시인의 자존심을 온전히 지키려는 시적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기에 사환기의 그의 내면세계를 엿보는데 유의미한 연구 자료가 된다. 또한 명나라 장승헌의 작품과 조선의 신광한의 작품을 함께 분석함으로써, 신광한의 작시 배경을 좀 더 세밀하게 검증하고 양국 문사의 시각을 함께 드러낸 것 또한 본 연구가 가지는 연구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Gijae Shin Gwang Han (1484-1555) is a figure who played a key role in the literary circles of the day while being in the government service for around 30 years. As a method to identify the development of his literary world in his life and his consciousness presented in his poems, this study looked into poems he exchanged with a Ming envoy while carrying out the duty of greeting him. Those poems, of course, account for a very small part of his works. However, the record of greeting a Ming envoy was an important incident in his life and it is significant as it demonstrated the recognition of his poems by his contemporaries. This study was conducted based on poems contained in Hwanghwajip, which includes both Ming Envoy Jang Seung Heon`s poems and Shin Gwang Han`s responding poems, looking at the aspect of poem exchange between Shin Gwang Han and Jang Seung Heon and the poet`s consciousness reflected in the poems exchanged with Jang Seung Heon. Shin Gwang Han was involved in three times of envoy greetings directly or indirectly and this study focused on the envoy greeting carried out in 1545 (the 1st year of King Sejong`s reign). Though pieces of work in Hwanghwajip have the characteristics of specialized literature, the poems can serve as meaningful research materials for getting a glimpse of Shin Gwang Han`s inner world during the period he was in the government service because they display both his bureaucratic attitude to save his country`s face and poetic self-esteem to fully keep the pride as a poet. In addition, another outcomes of this study would be to verify the background of his literary works in more details and to reveal the viewpoints of two literary men who lived in the same era but different countries by analyzing poems written by Jang Seung Heon of Ming dynasty and Shin Gwang Han of J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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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령자의 노후준비가 은퇴 후 생활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 성별 차이를 중심으로

          손유경 ( Son Yoo Kyung ), 최성문 ( Choi Sung Moon )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2020 사회복지 실천과 연구 Vol.17 No.2

          본 연구는 은퇴한 중·고령자의 노후준비가 은퇴 후 생활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지, 동시에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한 연구이다. 이를 위한 연구 자료는 국민노후보장패널(KRelS) 7차년도 자료가 사용되었으며 표본크기는 ‘은퇴하였다'라고 응답한 55세 이상 74세 이하의 중·고령자 1,695명으로, 성별집단에 따른 은퇴 후 생활만족도를 확인하기 위하여 남성 535명, 여성 1,160명으로 분류하여 분석하였다. 노후준비의 하위변인과 성별집단별 은퇴 후 생활만족도와의 관계를 분석하기 위하여 t-test와 카이자승 검증, 위계적 다중회귀분석을 사용하였다. 은퇴 후 생활만족도의 영향변인 파악을 위해 인구사회학적 변인을 통제변인으로 사용하였으며 노후준비 변인으로 건강, 경제, 사회적 노후준비가 사용되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노후준비의 건강적 변인 중 건강상태는 남성과 여성 모두의 은퇴 후 생활만족도에 유의한 영향을 미쳤다. 경제적 변인의 경우 노후 생활비가 남성의 은퇴 후 생활만족도에 유의한 변인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변인 중 가족, 친구, 이웃과의 사회적 관계는 여성과 남성 모두의 은퇴 후 생활만족도에, 여가활동은 여성의 은퇴 후 생활만족도에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나타났다. 이처럼, 은퇴 후 생활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노후준비 변인들이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었던 만큼, 성별에 따른 노후준비의 개별화 전략을 강화하고, 은퇴 후 생활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모든 노후준비 영역의 사회적,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원체계 및 지역사회서비스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effects of preparation for later life on life satisfaction after retirement and to observe if there are differences with regards to gender. The data used for this study was the 7th wave of Korea Panel of Retirement and Income Study(KRelS). The sample included 1,695 middle and elderly people aged 55~74 who answered 'retired' for job status, and a total of 535 men and 1,160 women were classified and analyzed to confirm their life satisfaction after retirement according to gender group. To analyz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ub-variables of preparation for old age and life satisfaction after retirement by gender group, t-test, chi-square test, and multiple regression analysis were used. According to the results of the study, health status among health variables of preparation for later life had a significant effect on life satisfaction after retirement for both men and women. In the case of economic variables, cost of living in old age was a significant variable in the life satisfaction after retirement of men. Among social variables, social relations with family, friends, and neighbors were statistically significant in life satisfaction after retirement for both women and men, and leisure activities were statistically significant in life satisfaction after retirement for women. As the results show how the variables affecting the life satisfaction after retirement differed according to gender, it is necessary to strengthen the individualization strategy of the preparation for later life according to gender, and to expand the support system and community service at the social and national level of all the preparation areas for retirement to increase the life satisfaction after retir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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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다 패션 필름에 나타난 브랜드 스토리 특성 연구 - 365 Film을 중심으로 -

          손유경(Son Yoo-Kyung), 김미영(Kim Mi-Young) 한복문화학회 2019 韓服文化 Vol.22 No.4

          Fashion Films are actively used as brand communication medium as they can convey the brand story that fashion brands want to convey and play an important role in shaping emotional relationships with brands and consumers. Prada, a leading fashion brand, utilizes fashion Films to create a brand story, thereby providing consumers with artistic value through innovation and creativity. Despite this infinite possibility of brand story expressed in fashion Film, precedent study is mainly focused on studying the type and characteristics of fashion Film, so research on the characteristics of brand story according to the change of brand story expression element of communication medium called fashion Film is lacking. Thus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brand stories in Prada 365 Films that convey brand identities. It is also aimed at enhancing the strategic use of fashion Films by revealing whether the characteristics of the brand story shown in Prada"s 365 Film play an important role. In order to establish the theoretical basis for the characteristics of the brand story, a literature review was conducted at domestic and international, and an empirical analysis was performed through the case of Prada Film. In this study brand storytelling was classified as a narrative type and a creative type. The elements of storytelling were classified as themes, characters, backgrounds, events, and plots. Moreover, visual elements, literal elements, and virtual elements were analyzed based on the theoretical background in Prada 365 Films. The main results ar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e strategy in Prada 365 Films embraced brand fluidity reflected in contemporary society and brand differentiation strategy. Second, Prada emphasized that there is a multi-pronged interpretation of a single topic and concept in 365 Films. Last, the virtual elements in fashion Film enhanced the brand story. Limitations of this study include using only 365 Films of the Prada, thus limiting the generalizability of the results. Future research should examine the effectiveness of the brand story in fashion Films in order to maintain brand continu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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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구논문 : 복재(服齋) 기준(奇遵)의 유배기 작품에 관한 일고찰

          손유경 ( Yoo Kyung Son ) 한국한문교육학회 2010 한문교육연구 Vol.34 No.-

          조선시대에는 학파의 대립과 권력 쟁탈로 인해 크고 작은 사화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 중 己卯士禍는 中宗反正으로 16세기를 엶과 동시에 끊이지 않던 신진사림과 기성 훈구세력 사이의 첨예한 갈등이 노정된 것으로, 오늘날 16세기 조선왕조를 이야기하는데 빠질 수 없는 핵심이 되는 사건이다. 본고는 기묘사림 중의 한 사람인 服齋 奇遵(1492-1521)의 작품세계를 고찰하려는 것을 연구 목적으로 하였다. 기록 자료의 절대적 빈곤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는 16C 기묘사림의 문학 세계를 고찰함에 있어서 복재 기준의 『德陽遺稿』 안에 305제 450여 수의 시가 남아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중 대부분의 작품들은 己卯士禍 이후 유배기에 지어진 것들이다. 일반적인 유배문학 작품들이 울분과 좌절이라는 현실과의 갈등 양상과 안분과 자적이라는 현실에의 동화 양상이 동시에 드러나는 것과는 달리 기준의 시작품 안에는 현실에의 동화 양상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당시 그가 처해있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으며, 기준 유배문학이 갖는 하나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복재 奇遵은 23세에 출사하여 신진 사림파로 크게 활약하던 가운데 28세에 기묘사화를 당하여 牙山으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죄의 가중으로 穩城으로 移配되어 圍籬安置 되었다가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사사되었다. 이렇게 순탄치 않게 살았던 그의 삶을 반영해내듯 그의 문학 작품들에는 悲哀感이 강하게 표출되어 있다. 본고는 이와 같은 비장한 정서를 문학작품 속에 담아내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기준의 유배 생활상을 살펴보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의 유배기 시작품들을 들어서 당시 기준의 심리상과 시작품 문면에 드러나 있는 비장의 정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복재 기준의 유배기 작품 세계를 다루고자 하는 본 연구가 16C 기묘사림들의 유배 생활상을 읽어내고 유배기 그들의 내면 의식을 살펴볼 수 있는 단초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다만 본고는 이러한 과정에서 16C 기묘사림들 중 복재 기준만을 그 대상으로 하여 분석하였으니, 다른 작가들에 대한 연구는 후속 연구를 기약한다. Joseon history is marked with big and small calamities of literati due to confrontations and power struggles among different schools. Among the calamities, Kimyo Calamity of Literati was the outburst of severe conflicts between the Sarim and Hunku, which had been going on since the Jungjong Restoration in the 16th century, and was one of the most historic occasions critical to the discussions of the 16th century Joseon Dynasty. This study aims to inquire into the works of Bokjae Kijun (1492-1521), who was one of the Kimyo literati. In considering the literary works of the 16th-century Kimyo Literati whose recorded texts are absolutely in lack, it is very fortunate that Bokjae Kijun`s 450 pieces of poems under 305 titles still remains in his Deokyang Memoir. Most of these poems were written during his exile days. Unlike other exile works who mostly contain pent-up resentment and frustration from the conflicts with the reality as well as self-contentment and complacency from the assimilation into the reality, the latter cannot be found in Kijun`s works. We can presume that it is closely related to the situation he was in and can be counted as 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Kijun`s exile literary works. The study starts with discussions on Kijun`s exile life, which can be the very background of the grim sentiments in his works. And then, it closely examines Kijun`s psychological states at that time and the grim sentiments in his poems written the exile days. It is expected that the study addressing Bokjae Kijun`s literary works reveals the exile life of the 16th-century Kimyo Literati and renders an opportunity to look into the literati`s mind during the exile days. As this study only deals with Bokjae Kijun`s works among a number of 16th-century Kimyo Literati, it is also expected to be followed by further studies in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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