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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발설과 자아 개념

        손영식(Son, Young­Sick) 한국동양철학회 2011 동양철학 Vol.0 No.35

        문석윤 선생의 미발 개념을 비판하면서, 이승환 선생은 미발 공부론을 제시했다. 미발은 의식의 미지향적 국면, 혹은 최소 의식이라 한다. 공부 방법은 예를 들자면, ‘비디오 테잎을 통한 자기 관찰법’같은 성찰이다. 그는 미발이든 이발이든 의식의 일부라고 본다. 그래서 그는 공부론에서 출발한다. 공부는 ‘의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형이상학을 배제한다. 왜 그러한가? 이승환은 현실에 있는 것에 근거한다. 그것은 지각 경험에 의해서 확인된다. 그래서 ‘미발=최소 의식’이라 한다. 반면 성리학은 형이상학이며, 리기 등의 개념은 요청된 것이다. 미발은 ‘성리(性理)’를 규정하는 말이다. 그는 미발의 의미를 주희와 이황의 문헌에서 훈고학적으로 증명하려 한다. ‘미발=의식’이라 하므로 심리학으로 나간다. 문제는 그의 훈고­고증에 있다. 그는 주희가 ‘틀린 미발 공부’라 한 것을 ‘틀린 미발 개념’으로 간주한다. ‘미발 공부 방법’과 ‘미발 개념’은 다르다. 논리적으로 보아도, ‘미발=무의식’에 가까운 개념이므로 주희와 이황의 제자들이 요명적멸窈冥寂滅한 의식 상태에 빠지려 한 것이다. ‘미발=최소 의식’이라면 그렇게 했겠는가? 주희는 미발을 ‘思慮未萌 知覺不昧’라 규정한다. 사려미맹이란 개인의 사려가 싹트기 이전의 것, 즉 개인성을 떠난 보편타당한 상태이며, 과불급이 없고 치우침(偏倚)이 없는 상태이다. 경험 이전의 ‘선험적’이라는 뜻에 가깝다. 지각불매란 최소 자아(현재의 자아)를 뜻한다. 그 자아는 인식을 하되, 인식 대상이 되지 못 한다. 따라서 지각불매로서 미발은 인식 대상이 아니다. 이승환은 이발 미발을 의식의 상태로 규정한다. 이는 미발과 이발을 리­기의 대립된 대칭성으로 파악하는 성리학과 다르다. 미발이 최소 의식이라면 공부가 불필요하다. 마음 수양이란 가능태를 현실화하는 것이다. 최소 의식은 그냥 주어지는 것(현실태)이다. 비디오 테잎에 한 자기 관찰법은 이발의 성찰이지, 미발 함양은 아니다. 미발 공부법인 계신공구(戒愼恐懼)는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대상이 없다. 미발의 자아를 키우는 것(함양)이기 때문이다. 이승환은 개인의 욕망과 영리심이 서양 근대의 자본주의를 가져왔다고 본다. 이는 틀렸다. 만약 이기심만 앞선다면, 자본주의로 나가기보다는 침략으로 나갈 것이다. 보편적 진리와 당위(선험성)를 추구했기 때문에 과학의 발달 ­ 기술 혁명 ­ 자본주의로 나갔을 것이다. Criticizing Prof. Moon, Suk-yoon’s concept of wei-fa (the feeling & thinking are not aroused yet), Prof. Lee Seung-Hwan presented the practicing wei-fa theory. He said wei-fa is a pre-intentional aspect of consciousness or minimal consciousness, such as a video-tape self-observation. He presupposes that either wei-fa or yi-fa(the feeling & thinking are aroused) is a consciousness. So he departs from the practicing wei-fa theory. Because we can practice within a consciousness. He based on the actuality which is confirmed by a perception & experience. He excludes metaphysics such as li, qi etc. But metaphysical concepts are not experienced, but postulated. He tried to prove his wei-fa conception by a scholastic method within Zhuxi’s & Yi Whang’s writings. But it is wrong, because he regards ‘a wrong method of practicing wei-fa’ as ‘a wrong concept of wei-fa’ which were mentioned by Zhuxi & Yi Whang. And let’s think logically, ‘wei-fa is the unconscious (quietness)’, so the students of Zhuxi tried to get into the state of quietness without any promptings of consciousness. If wei-fa is a minimal consciousness, did they do such thing? Zhuxi defined wei-fa as ‘thinking is not aroused’ & ‘perception is not dark’. The former means ‘a state that personal thinking, i.e., individuality is not rising.’ It is similar to ‘pre-experience, transcendental, universal validity’. The latter means one's minimal self, or present self which can perceive all other things, but cannot recognize itself. So Zhuxi recommended his pupils not to perceive wei-fa self, but to nourish it. Zhuxi made a symmetrical theory of li & qi. But Prof Lee consider both wei-fa & yi-fa are consciousness. so they can not be symmetrical. Minimal consciousness is always given, so it’s not an object of practice. A video-tape self-observation is a yi-fa self-examination, not a wei-fa nourishing. Prof Lee assumes that seeking profit mind & desire brought the modern capitalism. It is wrong. If men are persuading only a profit, they will plunder, rather than produce capitalistically. I think essence of western modernity is the transcendentalism which push up the modern science & the Industrial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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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희와 이황의 미발(未發) 이론에 대한 논쟁 : 이승환 선생의 미발 개념 비판

        손영식(Son Young-Sick) 한국동양철학회 2009 동양철학 Vol.0 No.31

        마음을 기로 보는 물질주의적 경향이 있다. 이승환 선생은 ‘미발=미지향성’으로 본다. 이 또한 그런 경향 가운데 하나이다. ‘未發’은 『중용』에 나오지만, 『예기』 「악기」의 감응 이론으로 이해된다. 정이가 장재학파와의 토론 속에서 처음 미발 개념을 제시한다. 주희는 호남학파와 대결하면서 미발 개념을 확립한다. 이황은 서경덕 제자들과 접하면서 미발을 이해한다. 그들은 기=개체성을 주장하는 기론자들과 대결하면서, 미발 개념에 ‘선험성 보편성’을 근거시켰다. 이승환은 미발을 개인의 심리로 본다.(심리학주의) 그 결과 도덕의 보편성과 객관성을 정초시키기 어렵다. 이는 사실에서 당위를 이끌어내는 자연주의적 오류라 할 수 있다. 그는 ‘미발 ≠ 의식 두절 상태“임을 훈고로 증명한다. 그러나 ‘미발=미지향성’은 훈고하지 못 한다. 미발을 규정하는 서양 학문의 용어는 내적 통일성이 없다. 게다가 미지향성이라는 말은 노에마(인식 기능)라 하는 것이 더 낫다. 성리학에서 미발과 태극은 리를 규정하는 핵심 용어이다. 미발은 선험성 보편성을, 태극은 규범성 모범성을 규정하는 말이다. 미발은 인식 대상이 아니라, 함양할 것이다. 미발은 자아의 선험적 근거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미발 개념은 근대성의 핵심이다. There is a trend that regard mind as a material force(qi). In this context, Prof. Lee Seung Whan presented an idea that 'being not aroused yet'(未發; NAY) is pre-intentional. NAY is in the head of “the Doctrine of the Mean”, but most researchers understand that concept in the light of a stimulus - response theory of “Liji(Classic of Rites) Yueji(Classic of Music)” In discussing with Zhang Zai & his disciples, Ch’eng I presented the concept of NAY first. In the confrontation with Hunan scholars, Zhuxi established NAY theory. Yi Whang came in contact with the students of Seo Kyung Duck, he recognized NAY. They competed with the materialist, they developed NAY as transcendentality. Prof Lee considered NAY as personal consciousness. This is a kind of psychologism & the naturalistic fallacy that take the ought out of the fact. He tried to verify that NAY is not a coma, but he didn't verify that NAY is a intentionality. Zhuxi defined Li(principle) with the concept of NAY & Taiji (great ultimate). NAY is a transcendentality & universality. Taiji is a standard & ideal. NAY is a ground of transcendental e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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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공손룡자』「견백론」연구 -실체의 부정과 속성 보편주의

        손영식 ( Young Sick Son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2015 동방학 Vol.32 No.-

        「견백론」은 반대자와 공손룡의 논쟁 형식으로 되어 있다. 1) 반대자는 ``딱딱한, 하얀, 돌 자체``의 셋을 인정하는 반면, 공손룡은 ``딱딱한, 하얀``의 둘을 주장한다. ``돌 자체``(실체)의 존재를 인정하느냐 마느냐가 논쟁의 초점이다. 공손룡은 ``지각=존재``와, ``교차 부정`` 논증을 통해서 ``돌 자체``를 부정한다. 반대자는 ``돌``이 ``딱딱한, 하얀``을 ``담아 채움``(盛盈), ``널리 닦음``(廣修), ``따름과 취함``(循取)라는 용어를 동원해서 ``돌 자체``의 존재를 주장한다. 공손룡은 ``돌 자체``를 부정한다. 따라서 ``딱딱한, 하얀`` 등의 속성은 분리된다. 나아가 ``돌``과 같은 개별 사물이 담아 채우지 않아도, 속성들은 ``홀로이면서 바른``(獨正) 보편자이다. 그는 눈과 손이 속성을 마음에 저장함(藏)을 논의의 근거로 삼는다. 마음에 저장된 것으로 볼 때, ``돌 자체``는 없고, ``딱딱한, 하얀``은 분리되어(離) 있다. 이런인식 주관에 근거한 논의에 대하여, 반대자는 객관 실재론으로 나간다. ``딱딱한, 하얀, 돌``은 서로 담아 채운다.(盛盈) 공손룡이 ``藏·離``에 근거한 다면, 반대자는 盛盈에 근거한다. 2) 공손룡의 ``실체`` 부정, 속성 보편주의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이는 음양 오행론의 철학적 기초가 된다. 실체가 부정되고, 속성만 남아야, 음양 오행론처럼 분야를 넘나드는 분류가 가능하다. 둘째, 중국 철학사상 거의 유일하게 철저한 경험론이다. 노자나 장자, 묵자, 맹자, 한비자 모두 제각각 실체를 설정하고, 세계를 설명한다. 철저하게 경험에 근거한 철학은 공손룡이 유일하다. On Hardness & Whiteness is consist of discussion between Gong Sun Long and an opponent. The opponent acknowledges ``hard, white, stone itself``, but Gong only ``hard, white``. The focal point is being of ``stone itself``(substance). Gong denies the existence of ``stone itself`` through the theory of ``perception = being`` & cross-denial. While antagonist defends ``stone itself`` by the terms such as ``put-in & fill``, ``widely construct``, ``follow & take``. Gong repudiates ``stone itself``, so the attributes such as ``hard, white`` are separated. In advance, the attributes are independent and correct even though the ``stone itself`` does not put them in and fill itself. His arguments ground on the perception of eyes & hands which store the mind with the attributes such as ``hard, white``. But the ``stone itself`` is not stored. Therefore ``stone itself`` does not exist, and ``hard, white`` are separated. The opponent goes to the objective realism that the ``stone itself`` puts attributes in and fill itself, while Gong stays at a subjective empiricism that mind does not store ``stone itself``, so ``hard and white`` are separated. The meaning of denial of ``stone itself`` ; First, it is the basis of yin yang & Five Agents theory which classify the attributes across all fields of world. In this case we can classify, only if the substance such as ``stone itself`` is denied. Second, Gong is probably only one empiricist in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On the contrary, Laozi, Zhuangzi, Mozi, Mencius, Han Feizi each set substance up, and explain the world by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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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고논문 : 한원진의 리발 부정 방식인 구절주의와 관점주의 비판 -『주자 언론 동이고』에 나오는 4-7 리발-기발 논증을 중심으로-

        손영식 ( Young Sick Son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08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42 No.-

        ⑴ 맹자는 마음에서 대체(大體)와 소체(小體)를 주장한다. 대체는 ‘사덕→사단’으로 나오는 것, 즉 선한 본성이다. 성리학에서는 성즉리라고 하여 본성을 리로 보고, 그 리가 드러난다고 한다. 반면 소체는 몸에서 나오는 감정 욕망이다.순자는 마음에 식욕과 성욕의 욕망, 혹은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 지각을 인정한다. 욕망과 지각은 하나의 근원을 가진다.맹자는 이원적이라면, 순자는 일원적이다. 이황의 리발-기발 이론은 전형적으로 맹자 이론이다. 기대승과 이이의 일도설은 순자의 이론과 틀이 같다.⑵ 이황은 사덕에서 나온 사단은 선하고, 몸에서 나온 7정은 악으로 흐를 수 있다고 한다. 선과 악이 마음의 근원 차이에서 결정된다. 반면 이이-송시열-한원진 계열의 심기학에서는 마음(氣)은 일원체이며, 그 마음의 과불급에 따른 중절(中節) 여부가 정(情)의 선-악을 결정한다고 한다. 중절이라는 결과에 따라 선악이 결정된다면, 그 근원에는 선악이 없다는 말이며, 외적인 조건에 의해서 선과 악이 정해진다는 말이다. 이는 순자의 성악설과 같은 논리이다.⑶ 한원진은 맹자의 ‘사덕→사단’ 이론에 대한 주희의 주석들에서 달랑 한 구절씩, 세 구절만 따온다. 그리고 {중용} 첫머리에 대한 주희의 주석에서도 한 구절만 빼온다(구절주의). 이렇게 뽑은 4개의 구절을 가지고, 이황의 리발설을 부정한다.한원진에 따르면 마음은 ‘기발리승 일도’ 혹은 ‘성심정의 일원체’이다. 그 하나의 것을 주희가 보기에 따라, “4단-리발-기발, 7정-기발-리발, 정-리발-기발”이라 말한다고 한다. 같은 것인데, ‘관점/맥락에 따라’ 리발-기발의 모순되게 말했다는 것이다(관점주의). 그것이 바로 그가 뽑은 4개의 구절이라는 것이다.⑷ 한원진이 뽑은 주희의 말 4개는 일관되게 맹자의 ‘4덕→4단’을 지지하는 것이다. 성선설이고, 리발을 뜻한다. 그런데 한원진은 “성=리, 심=기”라는 이이 심기학의 도식을 그 4구절에 적용하여, 서로 모순된 명제로 만든다. 주희를 그 모순에서 구제하는 방법은 관점주의라는 것이다. 구절주의와 관점주의를 동원해서 한원진은 주희를 모순에 빠뜨리면서, 동시에 주희의 이론과는 완전 반대인 심기학의 일원론을 합리화한다. ⑸ 한원진의 논증은 조선 후기의 학문의 수준을 보여준다. 모순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면서, 구절만 뽑아서 관점에 따라, 맥락에 따라 달리 말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엄밀한 학문의 입장에서는 엄히 부정되어야 할 것들이다. Hahn Wonjin wrote “Investigation of the alike & unlike of Zhuxi’s statements”, he denied Zhuxi’s proposition “The Four Beginnings (of the sense) are the manifestation of principle(li), the Seven Passions are the manifestation of material force(qi)”. ⑴ He picked up four phrases from Zhuxi’s statements, cutting off the head and tail. ⑵ Into four phrases, he put in Yi Yi’s formulae-“Mind is material force(qi)”, “Nature is principle(li)”, “The Principle is universal, material force limits (the principle)”. ⑶ As a result, Zhuxi’s four phrases are contradictory.-“The Four Beginnings are the manifestation of principle(li), and of material force (qi);while the Seven Passions are the manifestation of material force(qi) and of principle(li).” ⑷ Hahn resolved the contradiction with ‘viewpointism’;according to the standpoint or viewpoint, Zhuxi made the contradictive statements. ⑸ Hahn asserted that Zhuxi didn’t say that “the Four Beginnings are the manifestation of principle(li), the Seven Passions are the manifestation of material force(qi)”. but Zhuxi said contradictorily according to cases or standpoints. ⑹ Hahn denied Zhuxi’s proposition Li-fa(理發). Hahn’s arguments are false in every parts; ① His picking up four phrases are a kind of drawing water to his own mill. Four phrases all mean that “four Beginnings of the sense(四端) spring from Four virtues(四德)”, that is, the manifestation of principle(li). ② Yi Yi’s formulae belongs to the school of mind-matter(心氣學). The formulae of nature-principle school(性理學) are “Nature is principle (li)”, “Feelings are qi”, “mind=nature+feelings=li+qi”. ③ Zhuxi’s four phrases which Hahn picked up are not contradictory. Four all mean that “four Beginnings of the sense(四端) spring from Four virtues(四德)”, that is, the manifestation of principle(li). ④ Standpoint, viewpoint, or viewpointism can never justify the contradictions.

      • 기획논문 : 퇴계사상(退溪思想)의 유학사적(儒學史的) 좌표(座標) ; 이황과 조식 사상의 쟁점 몇 가지

        손영식 ( Young Sick Son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07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41 No.-

        이황과 조식은 조선 중기 이후 영남 지식인 사회를 이끌었던 일종의 호족이다. 그들은 조선 후기를 특징지었던 산림-언론-붕당 정치를 만들었다. 이황이 논리적이고 산문 정신에 가득 찼다면, 조식은 이미지의 제시와 시 정신이 특징적이다. 이황이 성리학이라면, 조식은 심즉리학의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황의 사상에 대해서는 리발의 가능성, 4단-7정 논쟁의 해석, 심학 여부 등의 논쟁점이 있다. 필자는 리발이 가능하며, “4단=리지발, 7정=기지발”은 맹자의 성선설의 이원론과 같다고 본다. 이황에게 심학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혼란을 더 가중시킨다.조식은 거대 자아를 추구한다. 조식의 텍스트는 둘이 있다. ⒫ 자료는 조식이 모은 글귀들이다. ⒬ 자료는 조식 스스로 쓴 글이다. 현재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 자료에 근거해서 조식을 성리학자로 규정한다. 이것은 틀린 것이다. ⒬ 자료에 따르면 조식은 거대 자아를 추구한다. 그것은 양명학적 경향이다. 조식은 자아의 분열에서 거대 자아의 에너지를 찾는다. Yi Hwang & Jo Shik were a kind of a intellectual feudal lord who led the intelligentsia of Kyungsang Province. Yi & Jo created the politics of Sanlim, of speech, of clique. Yi was logical, and he was full of prose spirit, while Jo presented images in a verse, and he had a poem spirit. Yi’s philosphy is Nature-Li school, Jo’s is Mind-Li school. There are such points of dispute in Yi’s philosophy;the possibility of manifestation of Li, analysis of the debate of four moral emotions & seven feelings, whether he is the mind school, etc. I assert that Li(理) can manifest itself;Yi Hwang’s dualism is the same as the Mencius’ doctrine that human nature is good. It will confuse the situation worse than ever if we put the name ’mind school’ to Yi’s philosophy. There are two kinds of text;⒫ data is Jo’s anthology of Nature-Li school, but ⒬ data is the one that Jo wrote by himself. Most resear- chers define Jo’s philosophy as Nature-Li school on the authority of ⒫ data. This is wrong. According to ⒬ data, Jo had pursued the gigantic Self. That is the Mind-Li school. Jo sought a energy for the gigantic Self from the split of the normal 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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