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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다회(多繪)의 전통과 기술의 변모

        설지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대학원 2018 국내석사

        RANK : 248639

        본 논문은 조선후기와 근대기를 중심으로 다회의 제작기술 및 수요의 전개를 살펴본다. 다회의 기원과 상징, 그리고 시대상황과 연계하여 다회 제작품과 기술, 수요환경의 변화를 파악하는 것을 연구목적으로 가진다. 다회의 기원과 상징 및 명칭을 고찰하였다. 다회는 여러 올의 명주실로 엮어 짠 끈을 통칭하며, 어떤 대상의 위엄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표상으로 정의해볼 수 있겠다. 다회를 뜻하는 한자 명칭 총24개를 정리하여, 다회의 다양한 쓰임새를 방증하였다. 그중 絛와 綬, 纓은 다회의 형태와 기능성을 대표한다. 조선시대에 파생된 多繪는 새로운 제작기술의 유입 혹은 세밀한 기록을 위해 다회 자체의 명칭의 필요성으로 유추해보았다. 한글 명칭은 ‘-끈’, ‘-띠’, ‘끈목’으로 사용한 것을 확인하였다. 조선시대 경공장 다회장과 매듭장은 다회 관련 품목을 제작한다. 다회장은 대부분의 제작품(금전지, 장황끈, 소형유소 등)을 전담하며, 다회장과 매듭장의 협업은 대형유소의 발생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다회장은 다회 전반을 담당한 장인인 반면, 매듭장은 굵은 다회로 정세한 매듭을 맺는 전문기술을 갖춘 장인인 것이다. 조선후기 장시의 발달로 인해 다회는 저변화된다. 또한 다회는 규방공예의 일종이다. 다회 수요확대의 주역은 다회를 치던 여성과 장신구를 유통하던 행상임을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조선시대까지 의물과 복식(조대와 영자)은 꾸준한 수요가 있었으며, 조선후기에 생활용과 장식용 다회 제작품을 제작 및 소비되었다. 다회의 제작기술은 총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동다회와 광다회로 대별된다. 다시 동다회는 짜는 끈과 꼬는 끈, 광다회는 환조, 편조, 평직이다. 짜는 끈 동다회와 환조 광다회는 다회틀을 사용하며, 꼬는 끈 동다회는 새끼처럼 꼬는 방식으로 제작한다. 편조 광다회는 다회직기로 만들며, 평직 광다회는 직기와 동일한 원리로 구성된 대자틀로 제직한다. 광희동 장인집단은 근대기 가장 명성을 지닌 다회장 집단이다. 광희동 장인집단의 전신은 훈련도감 상공업자로 조선후기까지 소급해본다. 다회장 집단이 취급한 물품은 허리띠, 대님, 댕기 등이다. 특히 광희문 부근은 다수의 발인행렬이 행해져 민가에서 대형유소의 수요가 손꼽혔을 것이다. 다회장과 매듭장의 협업으로 광희동 다회의 명성을 쌓는 것이 가능하였다. 다회 제직기계는 1910년대부터 유입된 것으로 보이며, 1930년대에 기계화가 이뤄진 것으로 추론하였다. 1920년대까지 직뉴(織紐)가 성행하였다. 직뉴는 일제 강점기 때 다회 제직을 지칭하는 일본어이다. 1897년 설립한 ‘정경순공장’을 함께 1911년에 설립한 경성직뉴주식회사를 대표적인 직뉴공장으로 들 수 있겠다. 직뉴회사는 1910년대 말까지 경성 광희정·병목정을 중심으로 다회를 대량생산하여 전국 다회수요를 충당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 본격적인 근대복식의 유입과 ‘절약보국운동’으로 인해 필수적인 복식의 범주에서 제외되었으며, 광희문 개발로 인해 1920년에 다회장 집단이 해체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었다. 이후 수예 영역의 진입을 시도하나 당시 조선미술전람회의 미감에 불합하여 탈락한다. 다회의 마지막 소비자는 광복 이전까지 연희를 위해 전통한복을 착용하였던 기생임을 알 수 있겠다. 다회의 제작기술은 남원 노암리 박용학과 광희동 마지막 세대인 매듭장 정연수를 통해 이어지게 된다. 1969년 매듭장 정연수가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로 인정되면서, 미술공예적 성격의 매듭공예화가 이루어지는 수순을 밟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여성들의 규방공예 중 하나로 매듭이 유행하였으며, 현재까지 매듭교육이 활성화를 이룩한 변모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공예의 발전사는 기술과 수용의 연동체계이다. 오랜 시간과 공간, 사람 속에서 공존하며 공예는 유기적인 변화과정을 거치게 된다. 다회를 그 하나의 사례로서 짚어보는 시도이다. 이번 연구는 다회의 기원과 상징, 제작품과 기술 및 소비대상의 변모를 시대상황과 결부하여 분석하였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

      • 공예의 전승체계 변화와 공예 매개인력의 역할

        설지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2025 국내박사

        RANK : 248639

        본 연구는 공예의 지속 가능한 전승 기반 및 활성화 방안 마련을 목표 한다. 지속적으로 문제시되는 공예 전승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1인 공예가 체제에서 벗어나 공예 매개인력과 협력하여 활동해야 한다. 공예 매개인력은 공예와 현대사회의 다양한 요소를 연결하며, 공예 활성화를 목표로 활동하는 융합적 전문인력이다. 전통사회에는 대표적으로 상인의 형태로 나타나며, 오늘날에는 큐레이터, 창업가, 연구자 등 다양한 직업과 역할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공예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향유되고 재생산되는 리빙 헤리티지로 나아가기 위 해서는, 공예 매개인력을 구조적으로 양성하고 공예가와의 지속 가능한 협력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안성유기, 한산모시짜기, 전주한지 등 공예는 기술과 실용을 중심으로 수 세기에 걸쳐 전승된 생활문화의 총체이다. 공예 활성화를 위한 연구와 정책은 1960년대부터 꾸준히 진행되어 왔지만, 공예 전승의 위기는 여전 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는 분절된 공예 지형 내에서 정부 지원의 보강과 공예가의 자체 역량 강화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임을 방증한다. 20세기 한국은 산업혁명과 함께 급격한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전통적 제조업으로 존재했던 기술[工]은 기계‘공업’과 수‘공예’로 분리되었 다. 이후 살아남은 소수의 전통공예가와 대학공예로 양성된 현대공예가를 중심으로 1인 공예가 체제로 활동하고 있다. 근현대기 공예는 전통사회 기물을 재현하거나, 조형적 오브제를 제작 및 전시하는 미술공예적 방향과,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관광기념품과 같은 공예 산업적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즉, 근현대기 공예가의 역할은 생활문화로 서 공예보다는 전통적 공예품을 재현하거나 작품화하는 것에 집중되었다. 공예는 전시 중심의 미술공예와 기념품 중심의 공예산업을 기반으로, 원형 보존 중심의 전통공예·조형적 오브제를 제작하는 현대공예·부업으로서 취미공예로 분화되었다. 핵심적 변화는 전통사회에서는 분업화가 보편적인 운영 체제인 반면, 현대사회에서는 모든 작업을 혼자 수행해야 하 는 1인 공예가 체제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공예 활성화 방안은 근현대기에 복합적으로 전개된 한국의 공예 전승체제 변화의 총체적인 이해 없이, 각 지형별 내에서 적용 가능한 방안만으로는 실효적인 공예 전승 활성화를 이룩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본 연구자는 전방위적인 공예 전승 활성화를 위해서 유네스코에서 제시 하는 리빙 헤리티지적 방안, 즉 일상에서 살아있는 문화로서 공예를 활성 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공예가는 공예 매개인력과 협력하여 실천해야 함을 주장한다. 공예 매개인력은 공예 활성화를 목적으로 활동하는 다양 한 직군이다. 이들은 공예가와 사용자를 연결하고 공예의 의미를 전달하거나, 지속 가능한 공예 전승을 위해 활동하며, 공예를 포함한 지역 무형 유산을 촉진하고, 문화다양성을 확산하며, 공예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공예 매개인력은 활동 영역과 매개 대상을 기준으로 비즈니스형 매개 자, 융합 콘텐츠형 매개자, 대중 친화형 매개자, 정책 기반형 매개자로 분 류하였다. 매개인력의 필요역량은 크게 공예문화의 이해도 및 전문성, 윤 리적·사회적 책임감, 문화적 적응력 및 다문화 이해 능력, 공예가·이해 관계자와 소통 능력, 갈등 해결 및 조정 능력, 디지털 리터러시와 온오프 라인 소통력 등으로 도출하였다. 매개인력은 공예가와의 협력 구조를 가지며 활동한다. 단순히 공예가의 매출 증대를 목적하는 것이 아니라 윌리엄 모리스, 야나기 무네요시, 나 가오카 겐메이 등이 제시하는 공예 철학과 존중의 태도를 가지며 리빙 헤 리티지를 실천해야 한다. 공예를 생활문화의 총체임을 기억하며 스토리텔 링 브랜딩과 참여형 콘텐츠로서 접근해야 한다. 이들은 공예의 기술문화·소비문화·공동체문화 중심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기술사적 맥락에서 공예는 전통기술과 첨단기술의 맥락에서 융합적 성장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공예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소비경험 조 성과 공예의 생태적 가치경험 등을 제공하여 좋은 소비자와 질적 소비문화를 조성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예가와 관계자가 서로 공존하고 교류 할 수 있는 다층적인 공동체 활동을 구축할 수 있다. 주제어 : 공예 매개인력, 무형유산, 미술공예, 공예산업, 활성화, 리빙 헤리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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