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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田橫論에 대한 연구

          배종석(Bae, Jong-suk) 한국고전번역원 2015 民族文化 Vol.46 No.-

          본 논문은 2200년 전 중국 산동성에 살았던 제나라의 왕 田橫에 관한 것이다. 그와 관련된 기록은 사마천의 『史記』에 전해지고 있다. 그는 한 고조에게 무릎을 꿇을 수 없다고 하면서 自決하였고, 그를 따르던 오백의사는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자결하였다. 이후 이들의 절의는 2천년 넘게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들에 대해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이들의 처신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고 한 조선 지식인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끊임없는 관심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의분을 참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세상에 이들의 자결은 통쾌한 자극을 준 셈이었다. This paper concerns itself with research that has been done on Tian Heng (田橫), the monarch of Qi who lived in the vicinity of Shandong, China 22,000 years ago. Sima Qian (司馬遷) mentions him in Records of the Grand Historian (史記). Rather than surrender in disgraceto Liu Bang, the first Han emperor, he committed suicide. Tian Heng’s 500 retainers also killed themselves when they learned of his death. This event is still avidly discussed today. Although almost everyone viewed these suicides favorably, there was a Joseon dynasty scholar who bluntly criticized Tian Heng for them. The legend of Tian Heng and the 500 retainers appeals strongly to those who feel the indignities of living in a corrupt world.

        • KCI등재

          양계초(梁啓超)의 재일시기(在日時期) 시사(詩詞) 연구

          배종석 ( Bae Jong-suk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6 大東文化硏究 Vol.0 No.95

          본 논문은 梁啓超가 일본에 망명간 시기에 지은 詩詞 총 104제 227수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본론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전개했다. 첫째, 양계초에게 憂國은 奸臣에 대한 비판과 憤怒로 나타나기도 하고, 스스로를 督勵하며 救國活動에 대한 자신감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특히 ‘詩界革命’을 주장하고 자신도 新詩를 지어 개혁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하는 계기로 삼기도 했다. 둘째, 列强이 약소국을 잠식해 나가는 과정에서 진화론적 사고에 대한 깊은 성찰이 드러났다. 그는 琉球國王인 尙泰의 죽음으로 유구국이 멸망한 것과 조선이 일본에 병탄되어 멸망한 사실을 접하였다. 같은 중화문화를 지닌 두 나라가 역사의 일부분으로 사라지는 것을 슬퍼하고, 이를 他山之石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강한 나라에 의해 약한 나라가 멸망한 것은 약한 나라의 잘못이라는 진화론적 사고를 바탕으로 自强의 논리를 펼쳐나갔다. 셋째, 나그네의 憂愁가 그의 시를 점점 서정적인 시로 바꿔가고 있었다. 그는 평소 시에 대한 애착이 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인들을 ‘鸚鵡名士’라고 조롱했다. 하지만, 오랜 망명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과 鄕愁는 점점 서정적인 시를 짓게 만들었다. 스스로 시를 경계하는 글을 짓기도 했지만, 그의 서정적인 詩作은 계속 이어졌다. 일본 망명시기에 지어진 양계초 시의 특징을 통해 그의 내면을 살펴볼 수 있고, 당시 한국 지식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그의 저술에 대해서도 한층 깊이 이해할수 있다. This paper focuses on Liang Qichao(梁啓超)``s poems(詩詞) which have been created during his exile in Japan. In general, they can be divided into three parts. First, the poet gave sharp criticism on the traitorous ministers and also encouraged himself to be confident in the movement that would lead to national salvation. He claimed the Reform of Poetry(詩界革命) by creating the New Poetry personally. Second, some of his poems have revealed the opinion of Darwin``s theory of evolution. The death of the Ryukuy Clan Sho Tai , as well as the end of the Choson Dynasty made him very sad since the Ryukuy Clan and the Choson Dynasty were both Chinese civilization. But at the same time, he thought that the weak countries had their own fault to be encroached by the powerful countries. Third, Liang Qichao has created a large number of nostalgic poems and lyric poems since traveling overseas. He was used to looking down upon poetry and even called the poet as the Parrot Celebrity. However, homesick and loneliness made him to create lyric poetry for comfort. From these poems we could know about the inner side of Liang Qichao as well as have a deeper understanding of his works that have made great attraction upon Korean intellectuals then.

        • 梅泉 黃玹의 「李忠武公龜船歌」 고찰

          배종석(Bae, jong-suk)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10 이순신연구논총 Vol.- No.14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梅泉 黃玹(1855~1910)은 구한말의 지식인으로 일제의 국권침탈에 자결한 우국지사로 잘알려져 왔다. 그의 시 중 「李忠武公龜船歌」는 우국정신을 거론하면서 일찍부터 주목받아 온작품이다. 기존의 논문에서는 이 시를 매천이 살던 시대가 임진란을 연상하게 하는 역사적인 면에 치중하여 해석하고 있다. 나아가 제국주의에 대응한 매천의 민족적 의식이 드러난 시로 보고 있다. 물론 이 시의 가장 큰 의미는 우국적 측면이 확실하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면에 치우쳐 개인의 정감에 대해 소홀히 다루는 면이 없지 않다. 즉 시는 한 시인의 정감이 만들어 낸 것으로 그 시인의 내면세계가 고스란히 펼쳐져 있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동시대 지식인들이 이순신을 소재로 시를 지으면서 서로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점은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점은 시의 史的인 측면을 벗어나 개인적 정감의 순수한 발로라는 측면으로 시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살펴본 결과 「이충무공귀선가」 는 상상을 통해 현실세계를 극복하려는 매천의 염원이 실려 있으며, 특히 그의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Hwang-hyeon(1855~1910) was an well-known patriotic intellectual who made a strong protest against Korea-Japan annexation by suicide in the late Greater Korean Empire. His poetry「Yichungmugong_Gwiseon_ga The song for Gen.Yi Sun-Sin s Turtle Ship 」also got focused for its theme, a patriotism. The exsiting studies on the poetry, however, explained it concentrating on its historical period reminding Imjinwaelan, Japanese invading Chosun in 1592~1598, but not on his personal emotion. However, the inner world of a poet which his poetries are extracted from shouldn t be overlooked, especially in considering that other poetries written by each authors of the period evokes distinguised impressionses from themselves. This study on the poetry 「Yichungmugong_Gwiseon_ga」, conducted under the consideration, concluded that it should be re-explained on the point of that Hwang-hyeons s hope to get over the suffering situation and his strong will for the life are embraced in it.

        • 명량해전 관련 이순신 주변인물 고찰

          배종석(Bae jong suk)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12 이순신연구논총 Vol.- No.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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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량해전은 그 결과만 두고 보더라도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대첩이다. 무엇보다 칠천량해전에서 수군이 궤멸된 뒤 이뤄낸 승리라서 더없이 값진 것이다. 그리고 대첩의 저변에는 백성에게 절대적 믿음을 가진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에 올라, 관군과 백성이 한마음으로 왜적을 무찌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순신과 수군 이외의 이들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실정이다. 가장 큰 원인은 이들에 대한 자료가 부족한 탓이다. 당시 상황을 가장 자세하게 기록한 『난중일기』를 보더라도 전란 중에 이순신이 혼자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 소략할 수밖에 없다. 이에 개별 문집을 검토하여 명량해전에 참여한 세 명의 인물을 찾아 서술하게 되었다. 본문에서 언급한 세 사람은 명량해전에서 수군을 고립되지 않게 도와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배응경은 내륙의 관군으로 정유재란 때 나주 목사가 되어 수군에 협조하였고, 오익창과 정운희는 모두 영광 사람으로 명량해전 때 피난선에서 수군에 원조하였다. 특히 뒤의 두 명은 피난민으로서 당시 수많은 민간인들이 전투에 참여한 것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명량해전에 민간인들이 수군의 뒤에서 군수물자를 제공하거나, 소리를 질러 성원하였던 것은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Sea battle of Myeong-ryang(鳴梁海戰), leaded by General Lee Sun-sin(李舜臣) is among the most dramatic naval warfares through the history over the world. The story, moreover, increased in value as the Chosun Navy won the war after they got demolished in the previous sea battle of Chilcheon-ryang. The source of power that brought the win to Choseon was the strong unity and will between the forces and civilians against Japanese invading troops. The source of the unity and will, as well as, was General Lee’s leadership of trust in people. However, the studies on the sea battle so far have been limited in General Lee and the navy at that time. The first reason that the studies couldn’t focused on the people out of the navy was lack of the records. For instance, Nanjungilgi(亂中日記) was poor in substance as it was just General Lee’s personal diary written through the war time. This is the study on the three men who participated the war found out in the separate literatures. The three men were models who supported Chosun navy as civilian. Army officer Bae Eung-gyeong(裵應褧) supported the navy since he took office as Mayor of Naju in Jeonra province. Oh Ik-chang(吳益昌) and Jeong Woon-hee(丁運熙), refugees from Yeonggwang, show that a number of civilian took part in the battle. It deserves a profound study that the civilian supported the navy in sea battle of Myeong-ryang by providing military demands or raising a great war whoop.

        • KCI등재

          상경헌 이능호의 경의(敬義)사상과 망명

          배종석 ( Bae Jong Suk ) 우리한문학회 2017 漢文學報 Vol.37 No.-

          常敬軒 李能灝(1854~1919)는 1910년 일제에 의해 나라가 망하자, 서간도로 망명을 떠났다. 그는 구국활동을 위해 망명을 떠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 추구해 온 성리학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어 망명을 단행했다. 이 경우 망명을 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일본의 강제 병탄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망명에 대한 논리는 그의 평소 신념이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금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능호의 생애를 밝히고, 또 그가 평생 추구해온 성리학의 敬과 義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는 『周易』의 ‘敬으로 써 안을 곧게 하고, 義로써 밖을 바르게 한다[敬以直內 義以方外]’는 말을 종신토록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敬으로 마음을 바르게 하여 더 깊은 학문의 경지로 나아가려 했고, 이를 통해 알게 된 지식을 실천하는 강인한 義를 지니고 있었다. 일제의 침탈에 반기를 들고 조국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義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망명지에서도 원수가 있는 한 모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며 죽을 때까지 義를 지켰다. When the country perished in 1910, Sangkyeongheon Lee Neungho(李能灝, 1854~1919) went to exile directly. His decision on exile was not for the activity of saving the country, but for that he could not betray the Neo-Confucianism which he pursued for life. Japan's coercive annexation of Korea could be regarded as an immediate cause of his exile, but the logic of exile and death is what his belief and philosophy is reflected in. In this respect, this paper is intended to reveal his unknown life and study the Neo-Confucianism in two ways: esteem and righteousness. He said he would keep his mind straight with esteem and behave properly under righteousness[敬以直內 義以方外] as long as he lived. He learned it from The Book of Change(周易) and act up to his principal. This was why he had been trying to achieve a stage of deeper field of study with esteem thus he would be able to practice it under righteousness. This can explain why he could rise in revolt and leave the country when Japan occupied Koran in 1910. As there the enemy was, he couldn't get back and just meet his death as an exile is. There is something more than life to him.

        • KCI등재후보

          가전체소설 「海衣國史」의 이본 고찰

          배종석(Bae, Jong-suk)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 장서각 Vol.- No.45

          「海衣國史」는 김을 의인화한 가전체소설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전체소설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사물인 ‘김’을 소재로 지어진 점에서 특이할 만하다. 이 때문에 2007년 『연합뉴스』에서 이 작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때 저자를 朴尙淵(1631~1696)으로 소개하였는데, 이는 2007년에 발표한 유권석의 논문을 근거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학계와 대중에 이렇게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 필자는 아직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安璥(1564~1640)의 문집에서 이 작품을 찾았다. 안경의 문집은 현재 하버드대학 옌칭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각각 필사본 이본이 소장되어 있다. 여기에 각각 「해의국사」가 실려 있다. 그러므로 「해의국사」의 이본은 총 3종으로 2종은 안경의 문집에, 나머지 1종은 박상연의 문집에 실려 있다. 본고에서는 3종의 「해의국사」 이본을 비교하였다. 먼저 안경의 문집 『芹田集』 이본을 서로 대조하여 선본을 가렸다. 그리고 박상연의 문집 『金谷集』과 비교하여 그 차이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안경의 문집은 장서각에 소장된 『근전집』이 선본이었다. 『금곡집』과의 비교를 통해서는 안경의 「해의국사」는 전고를 그대로 차용하였고, 서술이 대체로 간략한 측면이 있었다. 반면, 박상연의 「해의국사」는 전고를 문맥에 맞게 수정하였고, 서술이 비교적 상세하였다. 이 점은 박상연이 안경의 글을 개작하여 보다 완성도 높은 글을 지었다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해의국사」는 김이 천자인 나라의 흥망성쇠를 전개하며 이단(불교)을 배척하고 스스로 위신을 갖춰야 한다는 경계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 안경의 경우 병자년(1636)의 치욕으로 더 이상 벼슬하지 않고, 자손에게도 벼슬하지 말라고 경계하며 스스로의 위신을 생각한 것이 「해의국사」를 짓게 된 동기와 관련이 있으리라 여겨진다. 박상연의 경우는 경신대출척을 겪으며 벼슬길이 막힌 뒤 전라도를 유람하였는데, 이때 김을 접하고 안경의 「해의국사」를 수정·보완하여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서술한 것으로 여겨진다. Haeuiguksa (海衣國史) is a Korean anthropomorphism novel that personifies the laver. It is unique in that it is based on ‘laver,’ a motif that has not been seen in Korean anthropomorphism novels ever known. In recognition, it was featured in Yonhap news in 2007. At that time, the author was known as Park Sangyeon (朴尙淵, 1631-1696), based on a paper published by Professor Yu Kwonseok in 2007, which has been known to the academia and the public so far. However, I recently found another version of this work in a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by An Gyeong (安璥, 1564-1640), which is still little known to the academic community. Two copies of An Gyeong’s collection are currently housed in the Harvard-Yenching Library and in Jangseogak of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respectively in manuscripts. Therefore, there are three versions of Haeuiguksa, two of which were contained in the collection of An Gyeong and the other in the collection of Park Sangyeon. This paper compared the three different versions of Haeuiguksa. First, the two versions of An Gyeong’s collection called Geunjeonjip (芹田集) were compared to each other to determine which is the original one, and the difference was analyzed in contrast to the version of Park Sangyeon’s collection of writings Geumgokjip (金谷集). As a result, Haeuiguksa of Geunjeonjip housed in Jangseogak predated one of Harvard-Yenching Library. The two versions of the Haeuiguksa of An Gyeong shared the same allusion, and the description was generally brief. On the other hand, the Haeuiguksa of Park Sangyeon revised the allusion to fit in the context, and the description was relatively detailed. This is the evident reason why Park Sangyeon wrote an article with a higher level of completion by using the writings of An Gyeong. Haeuiguksa was written with the purpose of vigilance that the emperor ‘laver’ should be well versed in the rise and fall of the heavenly kingdom, reject Buddhism and attain prestige on his own. An Gyeong, who was no longer a government official after the disgrace of the country of 1636, was also wary of his descendants and considered prestige important. In the case of Park Sangyeon, he went on a trip to Jeolla-do after being dismissed from office due to the incident called Gyeong-sin-dae-chul-cheok (庚申大黜陟) in 1680. And it is believed to have been a modified version to Haeuiguksa of An Gyeong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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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安璥)의 『가해조천록(駕海朝天錄)』에 드러난 해양 이미저리(Imagery)

          배종석(Bae, Jong-Suk)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8 한국민족문화 Vol.66 No.-

          안경(安璥, 1564~1640)은 17세기 명 · 청 교체기에 해로를 통해 명나라 사행을 다녀왔다. 그는 약 200년 만에 다시 시작된 해로사행에서 처음으로 조선을 떠나는 배에 올랐다. 이때는 중국에 갔던 사행단이 육로가 막혀 뱃길로 오다가 대부분이 침몰한 사건이 일어난 직후였다. 그래서 큰 부담감을 안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배에 오르기 직전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을 남겼다. 그것이 17세기 해로사행의 첫 기록인 『가해조천록(駕海朝天錄)』이다. 『가해조천록』은 그날 있었던 일을 기록한 부분과 그날의 정감을 읊은 시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해로에서 지은 시에는 안경의 눈에 비친 해양 이미지가 드러난다. 이 시들을 살펴보면,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생사를 초탈한 정신적 경지가 드러나거나,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바다의 풍경을 접하며 시로 읊거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임금의 명을 떠올리는 사신의 사명감 등이 나타난다. 이러한 특징은 조선유학자가 경험한 바다의 일면이다. 본격적인 해양시대가 도래하기 전 지식인의 눈에 비친 바다는 분명 현대 지식인의 눈에 비친 바다와 상당히 다른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같고 이를 접하는 사람이 달라졌을 뿐이다. 세계화시대에 해양의 역할이 커지면서 바다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도 필요로 하고 있다. 이에 과거 지식인이 생각하는 해양 이미저리는 지금 시대의 해양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의 일환이 될 수 있다. In the 17th century, An Gyeong(安璥, 1564~1640) was sent on a diplomatic mission to the Ming Dynasty by sea between the Ming and the Qing Dynasties. He was the first man who went to the Ming Dynasty by sea after an interval of 200 years. At that time, land transport was blocked, and safety accidents in waterway transportation happened frequently, which resulted in enormous casualty. Therefore, this mission was extremely arduous. An Gyeong kept a record of the trip from the day of departure to the day when he returned to Korea, which is 『Gahaejocheonrok』. 『Gahaejocheonrok』 consists of two parts, one is the incidents and details, the other is the poems that recorded the feelings of what he experienced. The poems written on the sea show the ocean imagery of An Gyeong. When we read these poems carefully, we can appreciate the spirit beyond life and death in the storm of the sea, the beautiful ocean view, and the sense of mission that bears the king’s order. These characteristics are the views of the ocean recognized by Korean Confucians. It is far different from the view of the ocean in modern intellectuals’ opinion, which needs to be understood from the perspective of humanities. The ocean is the same now as in the past, but the people who are in contact with the ocean have changed. In the era of globalization, the ocean plays a more and more important role, hence an interpretation of humanities is required now. At this time, the past view of the ocean may also become part of the humanities cogn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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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속 인물의 한중(韓中)비교 연구 -전횡(田橫)을 중심으로-

          배종석 ( Jong Suk Bae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2015 漢文古典硏究 Vol.31 No.1

          전횡은 사마천의 『사기』에서 나오는 인물이다. 그와 그의 오백 빈객은 의리를 위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했다. 이것은 오랫동안 한중 지식인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 많은 지식인들이 그에게 관심을 갖고, 평을 짓기도 하고 시를 읊기도 했다. 본 논문에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한중지식인이 전횡을 바라보는 시각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전횡을 평가하는 글에서 중국 지식인이 더 다양한 평가를 내렸고, 시작품에서도 중국지식인이 더 다양한 측면으로 형상화했다. 이를 통해 한중 지식인이 전횡을 평가하고 형상화하는 데 차이가 나는 이유를 두 가지 알 수 있었다. 첫째, 중국은 전횡의 유적지를 실제로 답사할 수 있는데, 한국은 서적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둘째, 중국은 여러 왕족을 거치면서 관념이 다소 자유로운 반면, 한국은 오로지 성리학을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Tian Heng appeared in Records of the Grand Historian[史記] by Sima Qian. Tian Heng and the 500 guests committed suicide for righteousness, which has shocked and moved the Korean and Chinese literati a long time ago. Therefore many literati have been concerned about Tian Heng and there were also lots of essays as well as poems about him. With this in mind, this paper intends to analyze how the Korean literati and the Chinese literati took a very different view of Tian Heng. The Chinese literati seemed to make more various comments on Tian Heng, as for poems, the Chinese poets also portrayed him in more extensive ways. There are two reasons for the difference in the Korean works and the Chinese works about Tian Heng. First, the Chinese literati could visit the sites about Tian Heng in person while the Korean literati could only learn about Tian Heng through historical records. Second, the Chinese literati could have more free concepts since the change of dynasty, on the contray, the Korean literati have embraced Neo-Confucianism only.

        • 근대전환기 지식인들의 충무공 이순신 형상

          배종석(Bae Jong Suk)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12 이순신연구논총 Vol.- No.17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This report reviewed how the intellectuals in modern transitional period described Admiral Yi Sun Sin in Chosun Dynasty. The ways of description on Admiral Yi could be grouped into three by concept and the plot of this report also accepted the system of classification. First, Some poetries were written to praise Admiral Yi for his immortal achievement, especially military. Those poetries are researched in chapter 2. Second, there are poetries with the writers’ desire of Admiral Yi’s reincarnation. They used to imagine such event during the irresistible invasions of foreign powers. This report focused on the literary works with such idea in chapter 3. Third, some of the intellectuals then also left poetries singing about Admiral Yi’s remains going to disappear as time goes by. They just deplore the limitedness of human beings without political and historical point. The study of the poetries with the motif are carried on in chapter 4. 본 논문에서는 근대전환기 지식인들이 忠武公 李舜臣을 어떻게 형상했는지 살펴보았다. 근대전환기 지식인들의 충무공 이순신 형상은 주제별로 세 부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충무공 이순신이 이룩한 불멸의 戰功을 형상한 시이다. 이는 과거 충무공 이순신의 공적을 기리는 측면에서 읊은 것이다. 두 번째, 과거의 충무공 이순신이 지금 시대에 다시 나타나길 기원한 시이다. 외세의 무력에 대응할 힘이 없어서 충무공 이순신의 환생을 상상한 것이다. 세 번째, 충무공 이순신의 유적이 시간 속에 차츰 사라져가는 것을 보고 읊은 시이다. 무한한 자연 앞에 유한한 인간사를 탄식한 것이다. 이와 같이 분류하여 논문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2장은 충무공 이순신의 영웅적인 모습을 역사에 길이 드러내려고 하였다. 이들은 문장으로 자기 시대를 보호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3장은 충무공 이순신을 나라의 수호신으로 여겼다. 이들은 의병활동을 하는 강직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4장은 사라져가는 충무공 이순신의 유적과 정신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소극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이처럼 근대전환기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현실대응 방식에 따라 충무공 이순신을 다르게 형상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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