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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禮治思想의 의미

        박홍식(朴洪植) 한국동양철학회 2009 동양철학 Vol.0 No.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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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규 소라이는 일본의 유학자로는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조선의 대유학자 이덕무와 정약용으로부터 학문적 수준을 높게 평가 받았다. 일본에서는 소라이를 기점으로 소라이 이전의 일본유학과 소라이 이후의 일본으로 나누어질 만큼 소라이는 일본유학사상사의 대유(大儒)라고 할 수 있다. 소라이는 『육경』이라는 유학의 고전에 사유의 기반을 두고, 17~18세기 일본의 특수한 사회현실 속에서, 에도 막부의 정치적인 틀 안에서, 이상적인 사회상과 바람직한 인간상을 구축하려고 시도하였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예치사상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소라이의 예차사상에는 고문사학, 육경 중심의 경학, 문물론, 성인론, 도론 등이 중심이론을 이루고 있다. 소라이는 송대 성리학과 이토오 진사이의 심성학 경향의 유학을 비판하면서 사회 정치론 중심의 독자적인 사상세계를 구축하였다. 소라이의 예치는 덕치의 현실적 실천을 위한 대안으로서, 법치의 이상적 구현을 위한 대안으로서 제창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소라이의 예치는 덕치를 현실적으로 사회에 실천하기 위한 노력과 법치를 이상적으로 사회에 구현하기 위한 모색을 동시에 도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소라이의 예치사상에는 유교 문명론자로서의 모습과 유교 경전주의자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소라이의 예치사상은 일본 에도시대의 경세론 또는 유교 제왕학이라는 일반론적인 정의를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오규 소라이의 사상적 특징을 분별하여 정의를 내린다면 학문 방법론상으로는 고문사학, 전체를 총괄하는 사상으로서는 예치사상, 예치사상의 특징으로서는 선왕예치론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學术上, 荻生徂徠从李德懋和丁若鏞受到很高評價。身爲日本儒學者受到這样的很高評價是罕见的。一般日本儒學分成兩大类, 即荻生徂徠以前的儒學和其后的儒學。這意味着荻生徂徠是日本的大儒。荻生徂徠的思想來源于儒學古典『六經』。十七世紀至十八世紀是日本第三個封建军事政權時期, 称江户幕府。在這种情況之下, 他試圖建立理想的社會和完美的人們。這能显示出他的禮治思想。荻生徂徠的禮治思想以古文史學, 以六經爲中心的經學, 文物論, 聖人論, 道論等爲重點思想理論。荻生徂徠批評宋代性理學和伊藤仁斋的心性學, 并建立以社會政治論爲中心的獨特的思想結构。 荻生徂徠的禮治思想是要展示德治的現實化的一种渠道。笔者所了解的是他的禮治思想是以法治的理想境界爲實現人間尊重的一种渠道。 再說, 荻生徂徠的禮治思想可以說是吸收德治的現實的社會實践和實現法治的理想的人間尊重。而且, 荻生徂徠的禮治思想反映着身爲儒敎文明者的影子和儒敎經典主義者的影子。荻生徂徠的禮治思想可以定江戶幕府时期的經世論或儒敎帝王學的很平凡的結論, 但是需要以儒學思想史的立場來硏究的態度。

      • KCI등재

        하곡 생리설의 철학사적 의의

        박홍식(朴洪植) 한국양명학회 2011 陽明學 Vol.0 No.30

        17-18세기의 조선양명학자 하곡 정제두는 양명의 ‘양지설'을 수용하면서도, 인간 존재에 대한 설명에 또 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곡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인간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 그 中心테마였다. 여기에서 하곡은 ‘生理'라는 개념을 도출하였다. 하곡은 세계의 중심으로서 그리고 도덕적 주체로서의 인간의 근원이 곧 ‘良知' 라는 王陽明의 사유를 수용하였다. 양명도 ‘良知說'에서 生生의 원리를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하곡은 좀 더 生生한 모습의 인간을 원했던 것이다. 하곡은 인간 정신만이 아니라, 생명력(生氣)이라는 부분까지 확실하게 부각시키게 되었다. 하곡은 양명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지향이 인간이 인간됨일 수 있는 근거에 기초하면서도 ‘人?物'의 차이를 생리와 물리의 관점에서 설명하였다. ‘생리설'이 지니는 이러한 특징은 하곡이 양명의 학설을 단순하게 수용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적인 입장에서 생동감 있게 논리를 전개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인물성동이론'의 관점에서 본다고 하더라도 하곡의 생리설은 인?물의 차이를 ‘본연지성'이나 ‘기질지성'이 아니라 ‘생리'에서 구분함으로써 논거에 대한 재론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이 점에서 하곡은 성리학자들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또한 하곡의 人?物의 구분에 대한 관심과 논설이 시기적으로 ‘인물성동이론'의 논쟁보다 앞서 표출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물성동이론'을 하곡의 ‘人?物구분론'과 더불어 <人?物의 구분론>에 대한 한국철학사적 시각에서 거시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성리학적 입장에서의 ‘인물성동이론'은 한국철학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17세기 후반 18세기 초엽에 나타난 <人?物의 구분론>에 관한 철학적 관심의 성리학적 표출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하곡의 ‘생리설'은 조선철학사의 관점에서 본 다면 당시 조선철학의 흐름 곧 학문관을 포함한 인간관과 세계관의 변화에 대한 욕구와 시도를 상당부분 수용 종합한 것이라고 할 수있다. 또한 ‘생리설'에 의한 하곡의 ‘人?物구분론'은 ‘인물성동이론'에 대한 한국철학사적 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 준다.

      • 地方政府의 기록관리 문화에 관한 연구 : 강릉시를 중심으로

        박홍식 한국지역발전학회 2011 지역발전연구 Vol.10 No.2

        정부의 공공 기록물 관리는 생산?보존?활용을 통해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과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증대하며, 기록 공개를 통해 국민과의 의사소통을 확대함으로써 국민이 참여하는 정부를 구현할 수 있다. 한편 국가 기록은 지방정부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되는 면이 있기에, 지방자치 이후 지방 수준에서의 기록 관리 문화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으로서 특정 기초 자치단체의 기록관리에 관한 법적·제도적 측면과 생산 관리적 측면을 분석한다. 또 이와 관련된의식·행태적 측면을 파악하여 전문성 제고 방향을 제시하여 지역 문화센터로서의 기능을 수행코자 한다.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다. 즉 법률적 측면에서 기록물의 보존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생산 관리적 측면에서는 기록 관리를 일반 행정의 하위 행정으로 다루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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