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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일본의 대학 정책과 비상근강사 문제

          박해남 한국인문사회과학회 2020 현상과 인식 Vol.44 No.2

          이 글은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일본 비상근강사 문제의 진행 과정에 관한 제도주의적분석을 목적으로 한다. 1990년대 일본 정부가 시행한 일련의 대학 정책들을 문제 형성의주요 원인으로 보고, 대학원 제도, 비상근강사에 관련 관행, 대학, 강사 단체의 동시에 고려하여 비상근강사 문제의 원인, 진행과정, 결과를 입체적으로 파악하여 보고자 한다. 본 연구를 통하여 발견된 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의 비상근강사는 제도적 고려의산물로 만들어지고 운영된 것이 아니었으며, 1990년대 비상근강사 문제는 대학원 정책과관련한 제도 실패의 산물이었다. 둘째, 비상근강사 문제는 전임과 비전임 교원 사이의 다양한 격차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비상근강사들 사이의 격차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2013년무기계약직 전환 제도의 도입 이후 연구자들 사이의 세대 간 격차를 만들어 내고 있다. 셋째, 비상근강사 문제는 격차 문제만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과 인정의 부재로 이어지고 있다. This article aims at an institutional analysis on the development of the problem of part-time lecturers in Japan since the 1990s. It assumes that higher education reforms implement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in the 1990s was the main factor for the formation of problems, and that institutions about graduate school system, practices for part-time lecturers and act of the universities and the part-time lecturer unions are the secondary factors. The findings in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ly, institutions about parti-time lecturer was not the result of planned policy but a contingent measure. and the problem of part-time lecturer was the result of institutional failure with regard to higher education. Secondly, the problem of part-time teachers is not merely a problem of various gaps between full-time and part-time lecturers. Since the introduction of the indefinite term employment contract system in 2013, it has created a generation gap among the part-time lecturers. Thirdly, the problem of part-time lecturers is not only a gap problem, but also a sort of social exclusion, for it is related to the lack of social safety nets and social recognition.

        • KCI등재

          도시의 기억과 초국경적 교류협력: 독일 북동부 도시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박해남 한양대학교 평화연구소 2019 문화와 정치 Vol.6 No.4

          In Lüneburg, a city where tens of thousands of German immigrants from Eastern Europe settled down after World War II, there have been conflicts over the memory of East Prussia. But the historical memory has been positively changed over the last 20 years. Local intellectuals use the memory of East Prussia for the promotion of transnational cooperation. Based on this, they are engaged in the cultural and academic activities with the multiple cities of Eastern Europe. 역사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오늘날, 교류와 협력을 위한 기억의 활용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이 글은 기억의 공간이자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는 공간으로서의 도시에 주목하여, 도시들이 초국경적 교류와 협력에 기억을 활용하는 양상을 분석하였다. 한자동맹의 중심도시였던 뤼벡(Lübeck)과 동유럽거주 독일인들의 대량 이주 경험을 지닌 뤼네부르크(Lüneburg)라는 독일 북동부의 두 도시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이들 도시에서 한자동맹과 동유럽으로부터의 이주에 관한 기억을 어떻게 변용시켰는지, 초국경적인 교류와 협력에 기억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독일 제2제국과 제3제국 시기 한자동맹은 독일인들의 제국주의적 확장으로 기억되었지만, 유럽연합(EU) 출범 이후 도시 간 상업네트워크이자 유럽연합의 선례로 기억되기 시작하였다. 뤼벡의 지역 지식인들은 한자동맹을 도시 간 교류와 협력의 네트워크로 재현하는 박물관을 만들고, 새로이 만들어진 한자동맹 네트워크를 주도하고 있으며, 한자동맹에 관한 초국경적 학술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등의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2차 대전 시기부터 동유럽으로부터의 피난과 이주한 이들의 정착지였던 도시 뤼네부르크는 이들이 거주하던 동프로이센의 기억과 박물관을 둘러싼 갈등을 경험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지역의 지식인들은 동프로이센의 기억을 동유럽과의 교류와 협력을 위한 기억으로 변용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동유럽 도시들과의 문화적 및 학술적 교류를 수행하고 있다.

        • 발전경관에서 인정경관으로: 88올림픽과 서울 도시개조

          박해남 한국공간환경학회 2018 한국공간환경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Vol.2018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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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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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일본 사회와 꿈의 사회사:이상의 시대부터 불가능성의 시대까지

          박해남 한국문화사회학회 2018 문화와 사회 Vol.26 No.3

          It is generally recognized that dreams, aspirations for a future different to the present, have been appearing and then disappearing at a faster pace in East Asian societies than others. For this reason, Kim Hong-Jung, an avant-courier of the sociological study of dreams in Korea, suggested that we need a social history of dreams. The present study aims to introduce research on the social history of dreams by Japanese cultural sociologists and, through this, to offer a suggestion for the socio-historical analysis on dreams in Korea. Mita Muneske classifies the people's dreams in postwar Japan into three periods. In the ‘Period of Ideals' (1945-1960), political actors on both the left and right competed to win favor for the ideals of their favored Cold War power. After the Left's failure, many people were able to realize the life they had longed for in the ‘Period of Dreams' (1960-1975): an affluent life like that of Americans. In the ‘Period of Fiction'(1975-1990), ‘dream spaces' were built in Tokyo and the difference between reality and hyper-reality became difficult to discern in everyday life. Osawa Masachi and Azuma Hiroki, followers of Mita's theory, argue that Japanese society lost its grand narrative during the 1990s and the 2000s. Azuma called this era the ‘Period of Anima', as Japanese youths were buried in a repetitive circuit of desire and satisfaction. Osawa, on the other hand, argued that the period was characterized by the disappearance of transcendental instances, and termed the era the ‘Period of Impossibility'. It is found that these researchers utilize some key analytical elements to depict the social history of the dream in post war Japan: the contents of the dream, the bearer of dream, the distance between dream and reality and the practical effort to realize dreams. This study argues that these elements are useful for the socio-historical explanation of young people's changing dreams in Korea. 동아시아에서 현재와 다른 미래를 희망하고 현실화시키려는 시도(꿈)는 빠른 생성과 소멸을 특징으로 한다. 이에 착안하여 김홍중은 몽상사라는 이름으로 사회사적 꿈 연구를 제시한 바 있다. 이 글은 미타 무네스케, 아즈마 히로키, 오사와 마사치 같은 현대 일본 문화사회학자들이 수행한 사회사적 꿈 연구를 소개하고, 한국사회를 대상으로 한 연구 방법을 제안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닌다. 미타 무네스케에 따르면, 전후 일본 사회는 15년을 주기로 세 시기로 구분된다. 1945년에서 1960년 사이의 ‘이상의 시대'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체제를 꿈 내용으로 하고 각기 이를 추구한 보수와 진보세력 사이의 경합으로 특징 지워진다. 이 경합은 안보투쟁을 기점으로 진보세력의 꿈 실천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서 일단락된다. 1961년부터 1974년 사이의 ‘꿈의 시대'는 풍요로운 도시적 삶이라는 꿈 내용이 경제적 고도성장 속에서 주거와 소비라는 실천을 통해 현실에 자리를 잡아가던 시대였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는 ‘허구의 시대'로 정의된다. 지속된 풍요 속에서 사람들은 꿈의 공간을 도시 내에 창출하기 시작했고, 일상에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희미해져 갔다. 일본의 대중은 일상에서 꿈 내용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을 일부를 재단하고 배제하는 실천을 수행했다. 1995년의 옴진리교는 그러한 실천의 극단적 사례였다. 미타의 논의를 이어받은 아즈마 히로키는 1995년 이후의 시대를 ‘동물의 시대'로 파악한다. 거대서사의 종말 이후 욕구와 만족이 반복되는 회로 속에서 (오타쿠가 그러하듯) 욕구 충족을 위한 실천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오사와 마사치는 같은 시기를 시간적 타자로서의 미래가 사라진 시대 이후 현재의 자신을 부정하는 모든 타자를 캡슐화하면서 동일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서사가 불가능한 시대로 현재를 정의하며 ‘불가능성의 시대'로 부르고 있다. 이들의 연구는 꿈과 현실의 거리, 꿈의 내용, 꿈의 담지자, 꿈을 현실화하기 위한 실천 등을 중요한 분석 요소로 삼고 있음이 발견되며, 이것들은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 청년들의 꿈의 변화 역시 설명하는 변수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 KCI우수등재

          한국 발전국가의 습속개조와 사회정치 1961~1988

          박해남 비판사회학회 2019 경제와 사회 Vol.- No.123

          This article argues that the Korean government sought to reform the behavior of Koreans to solve the social question, which occurred during industrialization and urbanization, and to facilitate social order and social integration. To verify this argument, this study analyzes the discourse and policies on moral reform in the President's speeches and the government's policy documents. Moreover, this study also attempts to identify the characteristics, the policy changes and the effects of the social politics during the Developmental State period from 1961 to 1988. The finding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since the early 1960s, the government diagnosed Koreans' behavior as the cause of social questions including poverty. The solution was the behavioral reform of the individual subjects based on the self-help principle. There was no principles like redistribution or solidarity in their social politics. Second, there were some changes in the concept of respectable behavior defined by the state. As they saw poverty as the main social problem in the 1960s and 1970s, the Developmental State Korea encouraged some habits that were useful for economic growth. In the 1980s, the government viewed social disorder as the greatest problem of the time and emphasized civilized habits such as behavioral order and cleanliness as solutions. Third, the results of the social politics carried out by the Developmental State was very divisive, for they applied discriminative treatment, such as exclusion and discipline to the members of the society. The government viewed members of the lowest social class as a ‘source of social pollution' and isolated them from the rest of society.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 was the object of surveillance and discipline through the social reform campaigns. Only a small number of highly educated and highly skilled workers benefitted from the institutional social safety net. 이 글은 발전주의 시기 사회구성원들의 습속을 개조하려던 국가의 시도를 사회정치 로 본다. 발전국가 특유의 방식으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문제에 대처 하고 사회질서와 통합을 확보하려고 한 것으로 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연설 과 정책 문서들 안에서 습속 관련 담론 및 정책을 확인해 이를 검증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발전국가의 사회정치가 지니는 특성과 효과를 파악하고자 했다. 분석의 결과 다음 과 같은 사실이 확인된다. 첫째, 1960년대 초반부터 발전국가는 지속적으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습속이 빈곤 등 사회문제의 원인이라 진단했다. 그리고 자조(self-help) 원 리에 기초한 개별 주체들의 습속개조를 해결책으로 삼았다. 연대나 재분배와 같은 것들 은 고려되지 않았다. 둘째, 습속개조를 위해 발전국가가 인정할 만한 습속이라 상정한 것들은 연대별로 달라지는 양상을 보인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사회문제는 주로 빈곤에 관한 것인 만큼 발전국가는 경제성장에 필요한 습속을 강조했고, 아울러 탈정치 화되고 비서구화된 습속을 강조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발전국가는 무질서를 더 큰 문제로 보았고, 질서와 청결 등 문명화된 습속을 해결책으로 내세웠다. 셋째, 이러한 담론에 기초한 정책의 실천은 사회구성원들을 분할하는 과정에 다름없었다. 기층의 사 회구성원들은 사회의 습속을 오염시키는 것으로 여겨져 사회로부터 격리되었으며, 대 다수의 인구는 관제 캠페인을 통한 습속의 감시와 계몽의 대상이었다. 반면에, 오직 소 수의 고학력 및 고숙련 노동자에게 제도적 사회안전망을 제공했다.

        • KCI등재

          한국 발전국가 시기 사회정치와 부랑인의 사회적 배제

          박해남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19 민주주의와 인권 Vol.19 No.4

          This study seeks to explain what caused the cruel confinement and violence against the vagabonds during the developmental state period of 1961-1988. Unlike existing researches which argues that the developmental state allowed the horrible situation in order to make the vagabonds into ‘normal' members of society, this study focuses on the aspect of social exclusion by the state and civil society. The state determined that the causes of social question in Korean society lay in the behaviour of its members. It carried out the behavioural reform, and the segregation of those who were determined to be a social evil by the government. Civil society was not a valid competitor to the state during the process of the social politics. This was especially with regard to vagabonds - they shared an idea of ‘social purification' with the state. No social groups argued that the Korean society should include the vagabonds and give an opportunity them to be inserted into the society. The owner of Hyungje Workhouse didn't try to change the inmates' behaviour so that they could be reinserted society later. What the owner concentrated was to force the inmates to obey the order of the workhouse. The inmates were socially excluded for they lost all life chances and were totally segregated from the everyday life of wider society. 이 글은 형제복지원으로 대표되는 발전국가 시기 부랑인의 무차별적인 수용과 시설 내의 폭력적 일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하여 부랑인들을 정상적 사회주체로 갱생하고자 했다는 기존의 설명을 넘어,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서 벌어진 사회정치 과정에서 부랑인에 대한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가 발생했다는 것을 가설로 삼았다. 발전주의시기 국가는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문제의 원인을 사회구성원들의 습속에서 찾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구성원들로 하여금 알아서 습속을 개조할 것은 주문했고, 문제적 습속을 지닌 이들을 사회악이라 부르며 단속하고자 했다. 사회문제에 대한 대비책은 소수의 고학력 및 고숙련인력에게만 제공되었다. 한편, 시민사회는 그러한 발전국가의 사회정치에 대한 유효한 경쟁세력이 되지 못했다. 이들은 습속에서 문제를 찾는 사회정치관을 국가와 공유하기도 했고, 부랑인을 동정했지만 연대나 권리의 대상으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이처럼 국가와 시민사회 가운데 부랑인들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포섭(inclusion)하고자 하는 세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수용시설 사업자들은 부랑인들의 사회복귀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시설의 지속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를 위한 폭력은 수용자들이 ‘사회적 삶'에 참여할 능력을 상실시켰다. 피해생존자들이 경험한 것은 발전국가 시기의 다층적인 사회적 배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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