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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인의 맥

          박해남 안동대학 안동사연구회 1986 安東史硏究 Vol.1 No.1

          인간이란 태어나서 사고를 가지게 된 후부터 생명을 다할때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들은 크게 과거-현재-미래의 세부분으로 세분할 수 있다. 과거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 왔는가' 현재는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미래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란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중에서 인간은 보다 더 과거에 얽매인 생활을 하면서 산다. 이는 우리 스스로가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과거의 실적을 토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KCI등재

          한국 발전국가 시기 사회정치와 부랑인의 사회적 배제

          박해남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19 민주주의와 인권 Vol.19 No.4

          This study seeks to explain what caused the cruel confinement and violence against the vagabonds during the developmental state period of 1961-1988. Unlike existing researches which argues that the developmental state allowed the horrible situation in order to make the vagabonds into ‘normal’ members of society, this study focuses on the aspect of social exclusion by the state and civil society. The state determined that the causes of social question in Korean society lay in the behaviour of its members. It carried out the behavioural reform, and the segregation of those who were determined to be a social evil by the government. Civil society was not a valid competitor to the state during the process of the social politics. This was especially with regard to vagabonds - they shared an idea of ‘social purification’ with the state. No social groups argued that the Korean society should include the vagabonds and give an opportunity them to be inserted into the society. The owner of Hyungje Workhouse didn’t try to change the inmates’ behaviour so that they could be reinserted society later. What the owner concentrated was to force the inmates to obey the order of the workhouse. The inmates were socially excluded for they lost all life chances and were totally segregated from the everyday life of wider society. 이 글은 형제복지원으로 대표되는 발전국가 시기 부랑인의 무차별적인 수용과 시설 내의 폭력적 일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하여 부랑인들을 정상적 사회주체로 갱생하고자 했다는 기존의 설명을 넘어,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서 벌어진 사회정치 과정에서 부랑인에 대한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가 발생했다는 것을 가설로 삼았다. 발전주의시기 국가는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문제의 원인을 사회구성원들의 습속에서 찾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구성원들로 하여금 알아서 습속을 개조할 것은 주문했고, 문제적 습속을 지닌 이들을 사회악이라 부르며 단속하고자 했다. 사회문제에 대한 대비책은 소수의 고학력 및 고숙련인력에게만 제공되었다. 한편, 시민사회는 그러한 발전국가의 사회정치에 대한 유효한 경쟁세력이 되지 못했다. 이들은 습속에서 문제를 찾는 사회정치관을 국가와 공유하기도 했고, 부랑인을 동정했지만 연대나 권리의 대상으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이처럼 국가와 시민사회 가운데 부랑인들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포섭(inclusion)하고자 하는 세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수용시설 사업자들은 부랑인들의 사회복귀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시설의 지속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를 위한 폭력은 수용자들이 ‘사회적 삶’에 참여할 능력을 상실시켰다. 피해생존자들이 경험한 것은 발전국가 시기의 다층적인 사회적 배제였다.

        • 발전경관에서 인정경관으로: 88올림픽과 서울 도시개조

          박해남 한국공간환경학회 2018 한국공간환경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Vol.2018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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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백서의 심근경색 모델에서 중간엽 줄기세포를 이용한 심근형성술의 효과

          박해남,연태진,권진숙,김영화,김기석,배장환,손보라,황경국,김동운,이명묵,조명찬 대한심장학회 2004 Korean Circulation Journal Vol.34 No.11

          Background and Objectives:Cellular cardiomyoplasty (CCM) is considered to be a novel therapeutic approach for post-myocardial infarction (MI) heart failure. In this study, the functional effects of cultured mesenchymal stem cells (MSCs) transplantation and the associated histopathologic changes were evaluated in a rat model of MI. Materials and Methods:Rats were subjected to 5 hours of coronary ligation followed by reperfusion, and 10 days after MI, animals were randomized into either the MSCs transplantation (MI-MSC, n=8) group or the control (n=8) group. Allogeneic MSCs (3×106 cells) or media were epicardially injected into the center and the border area of the infarct scar. Results:Four weeks after the MSCs transplantation, the echocardiogram showed preserved anterior regional wall motion and increases in fractional shortening in the MI-MSC heart relative to the control heart. Left ventricular (LV) end diastolic pressure was smaller in the MI-MSC than in the control group. Implanted MSCs formed islands of cell clusters on the border of the infarct scar, and the cells were positively immunostained by sarcomeric α-actinin and cardiac troponin T. In addition, the number of microvessels on the border area of the infarct scar was greater in the MI-MSC than in the control group. Conclusion:Allogeneic MSCs transplanted into the MI scar formed clusters of cell grafts on the border of the infarct, expressed cardiac muscle proteins, increased microvessel formation, and improved regional and global LV function. Our data indicate that CCM using MSCs may have a significant role in the treatment of post-MI heart failure. 배경 및 목적: 세포를 이용한 심근형성술(cellular cardiomyoplasty)이 심근경색 후 심부전 치료의 새로운 방법으로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본 연구는 백서의 심근경색 모델에서 중간엽 줄기세포(mesenchymal stem cells, MSCs)의 이식이 경색 심장의 심기능 및 조직병리학적 변화에 미치는 효과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방 법: 백서에서 5시간 동안 관동맥을 결찰한 후 결찰을 풀어 재관류가 이루어진 통벽성 심근경색을 유도한 뒤, 10일 후 무작위로 MSCs를 이식한 군(MI-MSC, n=8)과 대조군(n=8)으로 나누었다. MI-MSC군은 3×106개의 배양된 MSCs를 심근경색의 중앙 부위와 주변 부위에 총 3~5회에 걸쳐 주입하였다. 결 과: 세포 이식 4주 후 심초음파를 이용해 측정한 좌심실 내경은 MI-MSC군과 대조군 사이에 유의한 차이가 없었으나, MI-MSC군에서는 심근경색의 주변부인 좌심실 전벽의 운동성이 대조군과는 달리 어느정도 유지되었으며, 좌심실 분획단축률은 MI-MSC군에서 유의하게 증가하였다(27.1±1.4 vs. 19.8±2.6%, p<0.05). 또한, 좌심실 확장말기압도 MI-MSC군에서 대조군과 비교하여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조직학적 검사에서 심근경색의 크기는 양군 간에 차이가 없었으나, 경색 반흔의 두께는 MI-MSC군이 유의하게 두꺼웠다(1.54±0.05 vs. 1.14±0.1 mm, p<0.05). 이식된 MSCs는 주로 경색의 주변부에서 군집을 이룬 형태로 발견되었으며, 이식 세포의 군집에서 sarcomeric α-actinin과 cardiac troponin T가 발현되는 많은 수의 이식 세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식 세포의 군집 주위에서는 von Willebrand factor에 염색되는 많은 혈관들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경색 주변부의 미세혈관 개수는 MI-MSC군에서 대조군과 비교하여 유의하게 높았다(9.5±1.0 vs. 5.3±0.5 vessels/HPF, p<0.05). 결 론: 백서의 심근경색 반흔에 이식된 MSCs는 경색의 주변부에서 군집을 이루며 생존하였고 수축 조절 단백질들을 발현하였으며, 경색 반흔 두께의 감소를 억제하였고 경색 주변부 미세혈관의 형성을 증가시켰으며, 국소 벽운동 및 전반적인 심기능을 향상시켰다. 본 연구의 결과는 MSCs를 이용한 심근형성술이 심근경색 후 심부전 치료의 새로운 방법으로서 고려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KCI등재

          서울올림픽과 도시개조의 유산:인정경관과 낙인경관의 탄생

          박해남 한국문화사회학회 2019 문화와 사회 Vol.27 No.2

          This study aims to explore the urban renewal projects carried out by the developmental state around the time of the Seoul Olympiads. It seeks to understand how people viewed the projects and how the projects influenced urban society. In particular, the study focuses on the landscape development strategy of the developmental state, which sought to display Korea's development to international society. In preparation for the Olympic Games, the government endeavoured to build a “respectable landscape” through large-scale renovation of the city. They systematically managed the landscape of Gangnam and Jamsil, transformed the Han River into a space symbolizing the development of Korea, and built parks, cultural facilities and commercial facilities in the Gangnam district. The urban renewal projects transformed Gangnam district from a ‘commuter town’ into a ‘down town’. The respectable landscape spread after the Olympics. New towns, which proliferated nationwide after the Olympics, replicated the physical aspects of this landscape. Middle class residents living in the new towns interpreted the new towns’ landscape as a display of their development; meaning of the new towns' landscape was not only about the respectability of Korea in international society, but also the respectability Korea’s middle class. The developmentalistic identity of the middle class forms a negative other, the poor and shabby past. The same goes for the landscape; respectable landscape has a negative other that contrasted with affluent and orderly life. In this respect, public housing apartments became disrespectable, stigmatized landscapes. The Olympic Games simultaneously created the respectable landscape and the disrespectable landscape in South Korea. 이 글은 서울올림픽을 매개로 발전국가가 수행했던 다양한 도시개조 프로젝트의 내용을 확인하고, 이것이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어떻게 수용 되었는지, 도시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이 글은 발전국가가 한국의 발전상을 전세계에 보여주고자 했던 경관 조성의 전략과 그 결과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글이 발견한 바는 다음과 같다. 서울올림픽을 위한 도시개조는 ‘인정경관’ 만들기였다.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성장의 성과를 인정받고자 했던 발전국가는 강남과 잠실의 경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한강의 경관을 대폭 개조함으로써 이곳을 한국의 발전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또한 각종 공원과 문화시설, 상업시설 등을 강남이라 불리는 지역에 집중 배치시켰다. 이는 기능적 차원에서 ‘강남의 완성’이기도 했다. 이러한 인정경관은 올림픽 이후 확산되었다. 올림픽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된 신도시는 올림픽 당시의 인정경관을 물리적으로 복제한 것이었다. 게다가 신도시에서 살게 된 중산층 거주민들은 올림픽 당시의 민족 발전 서사를 자신들의 발전 서사로 전유하였다. 이제 신도시의 경관은 중산층 사회구성원들이 인정받을만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기 위한 재료로 활용된다. 이러한 발전 서사에는 가난하고 지저분했던 과거라는 부정적 타자가 형성된다. 경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풍요와 질서를 보여주는 인정경관의 부정적 타자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내적 논리 속에서 임대아파트는 신도시에 부적절한 경관 내지 낙인경관이 되어버렸다. 요컨대, 서울올림픽을 위한 도시개조는 인정경관을 창출했을 뿐만 아니라 낙인경관 역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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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의 기억과 초국경적 교류협력: 독일 북동부 도시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박해남 한양대학교 평화연구소 2019 문화와 정치 Vol.6 No.4

          In Lüneburg, a city where tens of thousands of German immigrants from Eastern Europe settled down after World War II, there have been conflicts over the memory of East Prussia. But the historical memory has been positively changed over the last 20 years. Local intellectuals use the memory of East Prussia for the promotion of transnational cooperation. Based on this, they are engaged in the cultural and academic activities with the multiple cities of Eastern Europe. 역사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오늘날, 교류와 협력을 위한 기억의 활용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이 글은 기억의 공간이자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는 공간으로서의 도시에 주목하여, 도시들이 초국경적 교류와 협력에 기억을 활용하는 양상을 분석하였다. 한자동맹의 중심도시였던 뤼벡(Lübeck)과 동유럽거주 독일인들의 대량 이주 경험을 지닌 뤼네부르크(Lüneburg)라는 독일 북동부의 두 도시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이들 도시에서 한자동맹과 동유럽으로부터의 이주에 관한 기억을 어떻게 변용시켰는지, 초국경적인 교류와 협력에 기억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독일 제2제국과 제3제국 시기 한자동맹은 독일인들의 제국주의적 확장으로 기억되었지만, 유럽연합(EU) 출범 이후 도시 간 상업네트워크이자 유럽연합의 선례로 기억되기 시작하였다. 뤼벡의 지역 지식인들은 한자동맹을 도시 간 교류와 협력의 네트워크로 재현하는 박물관을 만들고, 새로이 만들어진 한자동맹 네트워크를 주도하고 있으며, 한자동맹에 관한 초국경적 학술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등의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2차 대전 시기부터 동유럽으로부터의 피난과 이주한 이들의 정착지였던 도시 뤼네부르크는 이들이 거주하던 동프로이센의 기억과 박물관을 둘러싼 갈등을 경험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지역의 지식인들은 동프로이센의 기억을 동유럽과의 교류와 협력을 위한 기억으로 변용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동유럽 도시들과의 문화적 및 학술적 교류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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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otball and Hegemony Competition during the Colonial Period Korea

          박해남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20 한국학연구 Vol.74 No.-

          This study seeks to reexamine the history of Korean football during the colonial period by employing the concept of ‘hegemony competition’. Existing research has explained the history of football during the colonial Korea through the concept of ‘nationalism’. However, these previous studies have not effectively explained a paradox that this approach encounters. For example, there were 38 Korean players who played for the Japanese national team between 1936 and 1942. Based on an analysis utilizing the concept of ‘hegemony competition’, this study argues as follows: firstly, football was a means to counter a colonial discourse which argued that the Japanese should rule Koreans because they were more modernized and Westernized. Secondly, Korean leaders established a form of professional football in order to display the modernized body at international sport events. Thirdly, the more Koreans wanted to compete with Japanese teams, the more they became involved with the colonizer. The zeal to hegemony competition led the footballers to a contradictory concomitance of antagonism and collab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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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Interaction between Civil Society and the State in the History of Inter-Korean Sports Dialogue, 1988-2018

          박해남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2020 민주주의와 인권 Vol.20 No.3

          North and South Korea made moves towards reconciliation in 2018. This occurred around the time of the Pyeongchang Olympic Games, and although surprising it was not unprecedented. Indeed, the sports diplomacy of 2018was inspired by historical experience gained sin the late 1980s. It is well known that sport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tools for dialogue for both governments on the Korean Peninsula, but it is less known that South Korean civil society engaged in the history of sports dialogue. Whilst most studies in the field have only focused on the government’s role, this study sheds light on the interaction between South Korea's civil society and the government in the course of sports dialogue with North Korea. The article reorganizes the history from 1988 to 2018: civil society’s period of initiative from 1988 to 1992, cooperation between civil society and government from 1998 to 2007, and a period marked by discord between civil society and government in the years afte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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