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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의 『금강삼매경』6품 해석학

          박태원(Park, Tae-Won) 새한철학회 2014 哲學論叢 Vol.77 No.3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문헌자료를 근거로 할 때 『금강삼매경』은 7세기 한반도 불교인들의 작품으로 보인다. 그리고 『금강삼매경』 찬술자(들)가 지녔던 문제의식은, ‘선(禪)의 사상적 근거를 체계화시키는 것’이었다고 본다. 7세기 한반도 불교인들은 새로운 불교 운동인 초기선종의 등장을 계기로 선의 교학적 토대를 확립하려는 문제의식을 지녔고, 그리하여 그들이 소화하고 있던 불교이론들을 통합적으로 엮어 ‘선의 철학적 기반을 정초(定礎)하려는 작업’에 착수하였으며, 그 결실이 『금강삼매경』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금강삼매경론』은 원효가 선을 주제로 삼아 자기 사상을 총결산하고 있는 저술이다. 원효는 『금강삼매경』을, 대승불교 교학의 핵심 개념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삼매의 최고경지로 나아가는 선 수행 체계를 완결된 형태로 설하는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대안이 그 내용을 편집했다고 하는 『금강삼매경』, 그리고 원효의 해설인 『금강삼매경론』은, 삼매성취의 선(禪) 수행과 그 의미를 대승불교의 교학적 핵심 개념들과 결합시킴으로써, 선의 철학적 완결체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삼매와 선 수행에 대한 이러한 시도는 그 이전과 이후를 통틀어 불교사상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특이한 사례다. 그리고 사례의 희소성 때문이 아니라 그 내용 때문에 『금강삼매경』과 『금강삼매경론』 이 시도하는 선의 철학적 체계화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금강삼매경』 구성체계에 대한 원효의 ‘6품 해석학’은 『금강삼매경』 이 대승교학의 핵심을 모두 총괄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일미 해석학’은 6품이 모두 공성(空性)인 진여지평에 수렴되고 또 그로부터 발산하고 있다는 점을 논거로 ‘한 맛’으로 꿰어져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런데 6품 해석학의 논리와 내용을 보면, 원효는 「본각리품」을 6품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음을 알게 된다. 「본각리품」을 중심축으로 삼는 『금강삼매경』체계, 그리고 ‘개념환각(相) 깨뜨리기’의 과정과 내용 및 결과를 시각/본각의 틀로써 해명하고 있는 원효의 6품 해석학은, 원효사상이 시각/본각의 틀 안에 대승교학의 핵심을 망라하여 선의 철학적 토대와 체계를 수립하는 것으로 결산되고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According to existing text materials, 『Vajrasam?dhi-S?tra(金剛三昧經)』 is to be supposed the product written by Buddhists of the Korean Peninsula in 7th century. The interest of 『Vajrasam?dhi-S?tra(金剛三昧經)』’s writers was to develop a system of philosophical grounds of Seon(禪). 『Commentary of Vajrasam?dhi-S?tra(金剛三昧經論)』 is a writing of final philosophical settlement of Won-Hyo(元曉) that is focussed on Seon(禪). 『Vajrasam?dhi-S?tra(金剛三昧經)』 edited by Dae-An(大安) and 『commentary of Vajrasam?dhi-S?tra(金剛三昧經論)』 written by Won-Hyo(元曉) suggest a philosophical complete system of Seon(禪) combining the contemplation practice to acquire sam?dhi with the theoretical hearts of Mahayana Buddhism. An attempt like this is a unique case that cannot be found in the philosophical history of Buddhism. Won-Hyo(元曉)’s hermeneutics on the six chapters of 『Vajrasam?dhi-S?tra(金剛三昧經)』 emphasizes that 『Vajrasam?dhi-S?tra(金剛三昧經)』 summarizes all the cores of Mahayana philosophy, and his hermeneutics of One-Taste(一味) asserts that the six chapters of 『Vajrasam?dhi-S?tra(金剛三昧經)』 are penetrated with one taste grounded by the fact that all the six chapters are converged on Emptiness(空) and diverged from Emptiness(空). In the logics and contents of Won-Hyo(元曉)’s hermeneutics on the six chapters of 『Vajrasam?dhi-S?tra(金剛三昧經)』, 「Chapter on the Benefits of Original Enlightenment(本覺利品)」is a central axis. The composition of 『Vajrasam?dhi-S?tra(金剛三昧經)』 that makes the 「Chapter on the Benefits of Original Enlightenment(本覺利品)」 as its central axis, and Won-Hyo(元曉)’s hermeneutics on the six chapters of 『Vajrasam?dhi-S?tra(金剛三昧經 )』 that elucidates the breaking conceptual hallucination with the frame of ‘Beginning Enlightenment(始覺) and Original Enlightenment(本覺)’, imply that 『commentary of Vajrasam?dhi-S?tra(金剛三昧經論)』 is the final Won-Hyo(元曉)’s philosophical settlement on Seon(禪)’s philosophical grounds and organization covering all the cores of Mahayana philosophy through the frame of ‘Beginning Enlightenment(始覺) and Original Enlightenment(本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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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4 : 화쟁사상을 둘러싼 쟁점 검토

          박태원 ( Tae Won Park ) 한국불교사연구소 2013 한국불교사연구 Vol.2 No.-

          기존의 화쟁사상 연구들은 크게 두 가지 상이한 태도 위에 진행되고 있다. 화쟁사상과 원효의 일심 및 전체사상을 무차별하게 결합시켜 다루는 경우가 하나이고, 양자를 구별하여 취급하는 경우가 다른 하나이다. 그리고 화쟁사상의 범주와 대상을 제한시켜 탐구하는 연구들은 다시 그 범주와 대상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대해 입장이 갈라진다. 원효 사상 전체를 화쟁의 논리에 의거하여 독해하려는 방식에서는 화쟁사상과 원효사상은 구별할 필요가 없이 완전히 하나로 결합되어 버린다. 이러한 독해는 ‘화쟁’이라는 말의 의미와 범주를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확대시키고 있고, 그에 따라 화쟁 특유의 문제의식과 실제 범주로부터 일탈하고 있다. 확인 가능한 자료에 의거하는 한, 화쟁사상의 범주는 원효사상의 전체 체계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화쟁’은 구체적 쟁론들을 염두에 둔 문제 해결의 태도를 담고 있는 언어이며, 원효 자신도 그러한 의미로서 사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화쟁사상의 범주는 ‘불교 이론에 관한 상이한 견해들’로, 화쟁의 대상은 ‘불교 이론에 관한 상이한 견해들로 인해 생겨난 배타적 대립과 불화 및 상호불통 상황’이라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리고 신, 구유식의 갈등이나 중관과 유식의 공·유 대립은 원효가 전개한 화쟁 논법의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 아울러 화쟁이론의 성격은 ‘화해이론으로서의 종합주의’라기 보다는, ‘통섭(通攝)이론으로서의 화회(和會)주의’라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원효가 구사하고 있는 화쟁의 논리 형식을 확인하는 작업은 화쟁 원리의 이해를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쟁론 상황에 적용하기만 하면 화쟁이 되는, 그러한 논리 형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원효의 화쟁 논리에 대한 관심이 그러한 기대를 담고 있는 것이라면, 그 탐구 결과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화쟁 논법의 구성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긴요한 것은, 화쟁의 논리 형식을 펼쳐내는 ‘원천’의 내용과 의미에 대한 세밀한 포착이다. ‘긍정·부정의 자유자재’ ‘극단적 견해를 버림’ 등의 논리형식은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실제 쟁론에 적용하기에는 모호하거나 막연하여 문제 해결에 무력하다. 쟁론의 문제 해결을 위해 실제로 요구되는 것은, ‘긍정과 부정 및 극단적 견해의 내용 여하를 변별하는 경계선을 적절하게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긍정과 부정의 적절한 경계선을 포착하는 능력이 수반되지 않는 ‘긍정·부정의 자재’는 공허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조차 하다. 화쟁의 논리형식이 솟구치는 ‘원천’은, 이 ‘긍정·부정의 적절한 변별과 판단을 위한 경계선 포착력’을 근원적 수준에서 계발시키고 발전시켜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원효의 화쟁 논법이 그러한 원천에 기반하는 것이라면, 화쟁 논법은 불교적 쟁론뿐 아니라 세간의 쟁론 일반의 치유에도 유효할 수 있는 보편적 화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만약 화쟁 논법의 원천에서 그러한 내용과 의미를 포착할 수 없다면, 화쟁사상의 한계는 명백하다. 향후의 화쟁사상 탐구는 이 점에 주력해야 한다. There has been two different types of study on the Won-hyo`s philosophy of dispute-reconciliation(和諍). One type is to connect the thought of dispute-reconciliation with the whole system of Won-hyo`s philosophy indiscriminately, another type is to treat them discriminately. The type of connecting the philosophy of dispute-reconciliation with the whole system of Won-hyo`s philosophy indiscriminately expands the category and meaning of the word dispute-reconciliation(和諍)` too much, thus deviates from the actual category and problem of dispute-reconciliation(和諍). ‘Dispute-reconciliation(和諍)’ is the word that has the desire to solve the concrete disputes, and Won-hyo must have to use the word with this meaning. The category of the philosophy of dispute-reconciliation(和諍) is the different understandings on the Buddhist theories, and the object of dispute-reconciliation(和諍) is the situation of exclusive confrontation and conflict and non-communication caused by it. The disagreement between ex-school of Yogacara(舊唯識) and neo-school of Yogacara(新唯識), and the confrontation of emptiness(空)·existence(有) of Madhyamaka(中觀)·Yogacara(唯識) cannot be regarded as the object of Won-hyo`s dispute-reconciliation(和諍). In order to understand the composition-principle of Won-hyo`s dispute-reconciliation argument(和諍論法), the contents and meaning of the source of dispute-reconciliation`s logic must be elucidated in detail. The source of dispute-reconciliation`s logic is to develop the capability to grasp the boundary line for the appropriate discrimination and decision of affirmation or negation. If Won-hyo`s dispute-reconciliation argument(和諍論法) is to be founded on that source, his dispute-reconciliation argument(和諍論法) could not only have the healing capability on the Buddhist disputes but have the universal capability of healing on mundane disputes. The research on Won-hyo`s dispute-reconciliation argument(和諍論法) hereafter needs to concentrate on this subject. Subject : Buddhist Philosophy, Philosophy of Won-hyo`s dispute-reconcil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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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 화쟁철학의 형성과 발전

          박태원(Park, Tae-Won) 새한철학회 2017 哲學論叢 Vol.90 No.4

          원효사상의 체계와 내용을 관통하는 원리, 원효철학의 모든 것을 직조해 내는 근본원리, 원효의 모든 통찰을 수렴하는 상위원리는 ‘통섭’이다. 통섭과 화쟁은 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화쟁의 꽃이 필 때라야 통섭의 열매가 맺는다. 원효의 화쟁사상은 그 시대 불교사상계의 분열적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미시 해석학적 방법이다. 이 글에서는 원효 화쟁철학에서 주목되는 ‘문門구분의 사유방식’을 중심으로 화쟁철학의 형성과 발전단계를 추적해 보았다. ‘문門구분을 통한 화쟁’을 중심에 두고, 다른 두 축인 ‘모든 쟁론의 인식적 토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마음지평(一心) 열기’와 ‘언어 환각에서 풀려나 언어를 사용하기’를 양 옆에 세운 후, 이 세 축이 서로 맞물려 힘을 보태면서 끝없이 상승해 가는 구도. - 이것이 원효의 화쟁에 대한 필자의 독법이다. 통섭이나 화쟁의 통찰을 전개할 때 구사하는 ‘문門구분’의 ‘문門’은, ‘일련의 타당한 인과계열’ ‘조건적으로 타당한 의미맥락’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원효는 이 ‘문門 구분 사유방식’을 『대승기신론』의 일심이문一心二門에서 포착하여 확대, 발전시켜 간 것으로 보인다. 원효는 기신론의 ‘이문二門 구별’에서 ‘문門 구별의 연기적 사유’를 포착한 후 다양한 유형의 이문二門구별로 발전시킨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론과 주장들을 조건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사실에 부합하는 정확한 이해에 접근하려 한다. 아울러 다양하게 분석한 이문二門들의 ‘통섭通攝적 관계’를 밝힘으로써, 배타적으로 엇갈리는 이론과 주장들이 화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렇게 볼 때 연기적 사유의 원효적 유형인 ‘문門구별의 사유방식’은 크게 세 단계에 걸쳐 발전하고 있다. 첫 단계는 기신론의 ‘진여/생멸 이문二門 구별’에서 문門 구별의 사유방식에 눈뜬 것이며, 두 번째 단계는 이 ‘문門구별의 사유방식’을 활용하여 ‘문二門 구별의 다양한 방식들’을 전개하는 것이고, 세 번째 단계는 ‘문門구별의 사유방식’을 통해 상이한 이론과 관점들이 ‘서로 열고 서로 안을 수 있는’ 통섭通攝과 화쟁和諍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원효의 ‘문門구별 사유방식’은 이 세 번째 단계를 발전의 정점으로 삼는다. The meta-principle which penetrates all the system and contents of Won-Hyo’s philosophy is ‘Mutual Opening and Embracing’(通攝). ‘Mutual Opening and Embracing’ and ‘Reconciliation’(和諍) have close relation. This treatise analyses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Won-Hyo’s reconciliatory philosophy centering on the Mun(門)-division thinking. Won-Hyo used the term Mun(門) when he folds the ‘Reconciliation’(和諍) and ‘Mutual Opening and Embracing’(通攝), and the term means a series of appropriate causal relation. After capturing the Mun(門)-division thinking in the ‘Two Mun’(二門)-division of The Awakening of Faith in the Mahayana(大乘起信論), Won-Hyo developed it as diverse form of ‘Two Mun’(二門)-division. Through the diverse form of ‘Two Mun’(二門)-division he could reach the correct understanding of theories and argues. On the whole Won-Hyo’s Mun(門)-division thinking had developed through three stages. The first is the stage of finding out the Mun(門)-division thinking. The second is the stage of folding diverse form of Mun(門)-division by using the Mun(門)-division thinking. The third is the stage of preparing the space of ‘Reconciliation’(和諍) and ‘Mutual Opening and Embracing’(通攝) through the Mun(門)-division thi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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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각이란 무엇인가?

          박태원(Park, Tae-Won) 새한철학회 2018 哲學論叢 Vol.93 No.3

          본각本覺은 불교철학, 특히 대승불교철학과 원효철학의 궁극적 관심을 반영하는 개념이다. 본각에 대한 독법에는 두 가지 상이한 사유방식이 혼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본각이라 부르는 ‘불변의 참된 것/온전한 것’이 이미 인간 내면이나 존재의 이면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유방식으로서, 형이상학적 유형이다. 다른 하나는, 본각이라 부르는 ‘참됨/온전함’, 달리 말해 ‘온전한 경험지평’ 혹은 ‘궁극적 이로움을 누리는 경험지평’은, 아직 경험되지 않았으며 그래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이제부터 확보하는 능력에 의해 비로소 경험하게 되고 또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 보는 사유방식으로서, 경험주의적 유형이다. ‘불변의 참된 것/온전한 것’의 내면적/이면적 선재先在를 설정하는 형이상학적 사유방식과, ‘참됨 및 온전함’의 경험적/역동적 후현後顯을 주장하는 경험주의적 사유방식의 차이인 것이다. 형이상학적 사유방식으로 보면, 본각이라 할 ‘불변의 참된 것/온전한 것’은 언어와 분별망상에 가려 드러나지 않다가 언어를 초월하고 분별의 베일을 거두면 환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주의적 사유방식으로 보면, 존재나 삶의 ‘참됨/온전함’은 마음이나 내면에 이미 있지만 가려져 있던 것을 마치 보물 캐내듯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인지능력의 전의轉依적 향상을 통해 비로소 그 지평에 눈떠 경험으로 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참됨/온전함을 경험하기 위한 마음/인지 능력의 향상은, 언어와 사유의 퇴행적 폐기가 아니라 ‘언어와 사유’ 능력의 전진적 차원 향상에 의해 이루어진다. ‘Enlightenment in itself’(本覺) is the ultimate concept of the philosophy of Mahayana Buddhism and Won-Hyo(元曉). There are two-way of thinking to understand ‘Enlightenment in itself’(本覺). One is the metaphysical way of thinking, the orther is the empirical way of thinking. The metaphysical way of thinking asserts that there exists an unchanging perfect substance corresponding to ‘Enlightenment in itself’(本覺) in Human or behind Existence. While on the other side, the empirical way of thinking asserts that the horizon of reality corresponding to ‘Enlightenment in itself’(本覺) has not yet experienced, thus not yet existed to human, and asserts that it would be experienced and existed by the capability which would be secured hereafter. To the metaphysical way of thinking, ‘Enlightenment in itself’(本覺) is screened by language and thoughts, therefore if we transcend language and remove the vail of thoughts, ‘Enlightenment in itself’(本覺) could be presented brightly. But to the empirical way of thinking, ‘Enlightenment in itself’(本覺) could be experienced and presented by way of improvement of mind/cognitive capability, and the improvement of mind/cognitive capability can be accomplished by improvement of language/thought cap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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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불성(佛性) 유(有)/무(無) 화쟁’의 해석학적 번역과 논지 분석

          박태원(Park, Tae-Won) 새한철학회 2013 哲學論叢 Vol.72 No.2

          『십문화쟁론』은 번역자의 관점과 이해를 가급적 분명하게 드러내는 해석학적 번역이어야 그 구체적 면모를 보여주는 문헌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여 ‘직역/의역/해의’의 체계로써 『십문화쟁론』 ‘불성 유/무 화쟁’에 대한 해석학적 번역을 시도해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번역을 통해 『십문화쟁론』 ‘불성 유/무 화쟁’의 논점과 논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원효의 화쟁 사상에서는 ‘불성(佛性)’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들이 화쟁의 대상으로서 취급되고 있는데, 이는 분명 그 시대에 풍미했던 유식학의 새로운 학풍으로 인한 교리적 혼란과 갈등이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특히 ?십문화쟁론? 잔간(殘簡)에서 등장하는, ‘모든 중생은 불성을 지닌다’는 견해와 ‘불성이 없는 중생도 있다’는 견해의 배타적 다툼에 관한 화쟁은, 당시 중국과 한반도 불교계의 중요한 교학적 논란에 대한 원효의 대응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원효는 기본적으로 ‘모든 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전통적 관점을 지지한다. 현존하는 『십문화쟁론』의 관련 내용은 ‘불성이 없는 중생이 있다’는 견해의 부당성을 비판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원효는, ‘모든 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명제를 수용하는 모든 해석학적 견해들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견해를 주장하기 위해 채택하는 ‘문헌적 근거(經證)의 관련 내용에 대한 오해’나 ‘추가하는 해석학적 관점들의 부당성’을 가차 없이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모든 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관점의 정당성과 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수립케 하여, ‘불성의 유무(有無)’ 문제에 대한 논란과 혼란을 해소시켜 가는 것이 원효의 화쟁 방식이다. 『The reconciliation theory on the Ten opinion’s contexts(十門和諍論)』 shows it’s features when it is translated by the translater’s definite points of view and understanding with hermeneutic form. Thus try to make an hermeneutic translation on 『The reconciliation theory on the Ten opinion’s contexts(十門和諍論)』’s reconciliation concerning the problem of Buddha-nature(佛性)’s existence with a system of ‘direct translation/free translation/commentary’. And as a result of this kind of translation, the point of arguments and the logics of 『The reconciliation theory on the Ten opinion’s contexts(十門和諍論)』’s reconciliation concerning the problem of Buddha-nature(佛性)’s existence are to be analyzed. Won-Hyo(元曉, 617-686)’s philosophy of reconciliation treats various subjects concerning Buddha-nature(佛性) as the object of reconciliation. It may have the doctrinal confusion and trouble caused by the new academic features of Consciousness-only-school(唯識學) as its background. Especially the reconciliation on the problem of Buddha-nature(佛性)’s existence in 『The reconciliation theory on the Ten opinion’s contexts(十門和諍論) 』 has a special meaning in that it was the Won-Hyo’s response to the important doctrinal dispute in the East Asian Buddhism of that time. Won-Hyo supports the traditional view that ‘all the people have Buddha-nature’ basically. Most of the contents of 『The reconciliation theory on the Ten opinion’s contexts(十門和諍論)』 concerning the problem of Buddha-nature(佛性)’s existence criticize the view that ‘some people don’t have Buddha-nature’. But Won-Hyo does not support all hermeneutic opinions that admits the proposition that ‘all the people have Buddha-nature’. He criticizes the misunderstanding and unreasonableness of some hermeneutic opinions that admits the proposition that ‘all the people have Buddha-nature’ severely. Through this way Won-Hyo established the rightfulness of the view that ‘all the people have Buddha-nature’ and the right understanding about this view, and dissolved the doctrinal confusion and disputes on the problem of Buddha-nature(佛性)’s exist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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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의 선(禪)사상 : 『금강삼매경론』을 중심으로

          박태원(Park Tae-Won) 새한철학회 2012 哲學論叢 Vol.68 No.2

          The 『Vajrasamadhi-Sutra(金剛三昧經)』 and the Won-Hyo(元曉)'s commentary of it(『金剛三昧經論』) synthesize all the Buddhist philosophy through the theme of Sun(禪). In other words, the writer(s) of 『Vajrasamadhi-Sutra(金剛三昧經)』 and Won-Hyo concentrate and unfold their views on the Buddhism and their critical mind based upon Sun(禪). Won-Hyo asserted one-tasted vipassana practice(一味觀行), after catching the vipassana practice(觀行) as the essence of 『Vajrasamadhi-Sutra(金剛三昧經)』's practice. The onetasted vipassana practice(一味觀行) and the aspect of One-mindedness(一心) are interdependent and interconnected. The one-tasted vipassana practice(一味觀行) is the aspect of vipassana that the mutual-negative world become the one being opened and embraced with each other. According to Won-Hyo, the stability/quietness/purification of Sun(禪) are not the results of looking away and negation and escape of world, not the products of restraint and disuse of mind and body, but the aspect of seeing the existence as it is and the process of having relation with the world truly. And the person who opens the Sun(禪)'s aspect is to unfold the altruistic mind voluntarily and necessarily. Sun(禪) and the saving the world must be the one. Won-Hyo always connects Sun(禪) with the practicing of world's saving. The distinguishing mark and unique significance of Won-Hyo's view of Sun(禪) are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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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논문> 선불교, 철학적으로 사유하다 : 원효 선관(禪觀)의 철학적 읽기 -선과 언어적 사유의 결합 문제와 관련하여-

          박태원 ( Tae Won Park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2013 동아시아불교문화 Vol.0 No.16

          정학을 초점으로 하는 선불교를 기준으로 조망할 때, 한국 선불교에는 크게 세 유형의 지평이 누적되어 있다. 이 세 지평은 때로는 각자의 고유성이 부각되는가 하면, 때로는 상호 포섭적으로 겹치기도 한다. 각지평의 중심에 선 인물은 원효(元曉, 617-686)·지눌(知訥, 1158-1210)·성철(性徹, 1912-1993)이다. 이들이 대변하는 선불교 지평의 고유성은 각각 ‘둘 아니게 살아가는 선’(不二禪)·‘몰록 깨닫고 차츰 닦는 선’(頓悟漸修禪)·‘몰록 깨달아 마치는 선’(頓悟頓修禪)이다. 원효는, 금강삼매의 선정을 성취하면 ‘하나로 보는 마음자리’에 서게되고 ‘하나가 된 마음지평’이 열린다고 한다. 선 수행과 선정의 성취는, 특수한 심리 상태나 비일상적이고 일시적인 신비 체험을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 존재 환각을 직접지각으로 꿰뚫어 실체라는 근거 없는 환각이 걷힌 ‘하나로 만나는 지평’을 훤히 대면하는 마음자리에 서게하는 조건이라는 것이, 원효 선관(禪觀)의 한 요목(要目)이다. ‘하나로 보는 마음자리’에 서게 하는 선 수행의 요점은, 알기(觀)와 행하기(行)를 ‘한 맛’으로 통섭(通攝)시켜 챙겨가는 ‘한 맛으로 알아 행하는 선 수행’(一味觀行)이다. 또한 알기(觀)와 행하기(行)를 수평(橫)과 수직(竪)에 배대하는 동시에 양자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원효의 일미관행(一味觀行)은, 구조상 ‘깨달음의 돈오점수적 결합’이 된다. 이 점은 깨달음과 수행의 요점을 ‘돈점’의 문제로 파악하는 돈점론 패러다임을 선종 내부의 문제로만 국한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원효가 본 선의 본령은, 몸이 세계와 관계 맺으면서도 내면적 동요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는 마음자리에 서는 것이다. 몸은 부지런히 중생의 법익(法益)을 위해 움직이면서도, 마음은 관계의 변화나 성패에 지배 받지 않고 내적 평온을 유지해 가는 것이 금강삼매의 선이다. 붓다에게는 입정(入定)의 선(禪)과 출정(出定)의 사회적 관계가 단절이나 불화 없이 이어져있다. 붓다의 선은 ‘본디자리 지키는 마음지평’의 개인적 간수와 사회적 전개가 ‘한 맛’으로 관통하고 있다. 선정에 관한 원효의 안목은 이러한 붓다의 선 지평에 접속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비록 실체라는 환각을 꿰뚫어 보고 그것에 붙들리지 않는 마음자리를 밝혀 챙겨갈 수 있는 지평을 열었을지라도, 막상 세간사와 관계할 때에 그 마음자리를 놓치고 자아 환각에 붙들려 역순경계에 따라 동요하고 만다면, 이것은 선(禪)의 마음과 세간사가 둘로 나뉘어 불화하는 것(心事各異)으로서 온전한 선이 아니다. 이에 비해 세간사와 만날 때라도, 존재 환각에 붙들리지 않는 ‘참되게 알기’(觀)를 놓치거나 그것이 혼탁해지지 않아, 존재 환각에 따른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고 세간사 역순경계 속에서도 동요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선의 마음과 세간사가 ‘둘 아닌것’으로 상응하는 것(心事不二)으로서 온전한 선이다. 원효가 파악한 참된 선, 불교 본연의 선관은, ‘선의 마음지평과 세간사 만나기가 분리되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다. 선의 마음자리와 세간사 만나기가 ‘둘 아니게’이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참된 선 수행이다. ‘둘 아니게 살아가려고 하는 선’(不二禪)이 불교적 선 수행이라는 소식이다. 선 수행은 ‘둘 아니게 살아가는 길’에 오르는 일이라는 원효의 선관(禪觀)은, 그 길에 올라 걸어가려면 ‘둘 아니게 보는 마음자리’를 확보해야 하는 동시에, 그 마음자리에서 ‘올바른 언어적 이해/지적 성찰’을 작동할 수 있는 언어적 사유의 힘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선수행인에게 언어적 이해/지적 성찰은, 내쳐야 할 분별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선의 마음자리’와 ‘세상’이 균열 없이 만날 수 있는 기초이기도 하다. Korean Seun-Buddhism has accumulated the three horizons. They are Won-Hyo(元曉, 617-686)`s Seun of non-dual(不二禪), Chi-Nul(知 訥, 1158-1210)`s Seun of sudden enlightenment and gradual practice (頓悟漸修禪), and Sung-Chul(性徹, 1912-1993)`s Seun of sudden enlightenment and sudden practice(頓悟頓修禪). Won-Hyo asserted one-tasted vipassana practice(一味觀行), after catching the vipassana practice(觀行) as the essence of 『Vajrasamadhi -Sutra(金剛三昧經)』`s practice. The one-tasted vipassana practice(一 味觀行) and the aspect of One-mindedness(一心) are interdependent and interconnected. The one-tasted vipassana practice(一味觀行) is the aspect of vipassana that the mutual-negative world become the one being opened and embraced with each other. According to Won-Hyo, the stability/quietness/purification of Seun (禪) are not the results of looking away and negation and escape of world, not the products of restraint and disuse of mind and body, but the aspect of seeing the existence as it is and the process of having relation with the world truly. And the person who opens the Seun (禪)`s aspect is to unfold the altruistic mind voluntarily and necessarily. Seun(禪) and the saving the world must be the one. Won-Hyo always connects Seun(禪) with the practicing of world`s saving. The essence of Seun(禪) that Won-Hyo understood is the union of Seun(禪) and social affairs. To attain this essence, the intellectual faculty of language is necess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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