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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섭 ,󰡔삼성기 전󰡕 상하편에 숨겨진 사실들

        박병섭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2009 선도문화 Vol.6 No.-

        삼성기 전 상하편에 숨겨진 사실들 삼성기 전 상하편( 환단고기 중)은 Ⅰ. 판본과 소장처는 1979년 광오이해사본[원본1유형]이 국립중앙도서관에, 1979년 배달의숙본[원 본2유형]이 숙명여대에 있고, 무서지판이 동국대, 동국대 경주, 전남 대, 고려대에 있다. 삼성기 전 상하편은 원본1유형과 원본2유형을비교해 Ⅱ. 교감해 보면 사소한 차이 밖에 없다. 내용을 Ⅲ. 해제해 보면, 1. 자료는 환단고기 에 나오고 그 작자들은 연대불명인데, 내 용의 맥락을 보면 안함로는 고구려 주몽시기의 인물이고, 원동중은 발해시기의 인물이다. 2. 1949년 필사되어, 1979년 판본은 원본1유형 이나 원본2유형이나 모두 이암-이맥-이기-계연수-이유립으로 이어왔고, 원본1유형과 2유형으로 전래가 달라진 것은 이유립과 그 문인들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이다. 3. 삼성기 전 의 고대 한 국왕국들의 계보이고, 환국(7대, 3301년)-배달국(18대, 1565년)-조선 국(47대, 2096년 단군세기 )-고구려국의 계통이다. 주왕국과 방계 왕국의 종통관계는 환국문명과 수밀이문명, 배달국의 치우환웅문명 과 고대 중국의 헌원문명, 단군조선 문명과 고대 일본문명 관계이다. 상하 두 편에서 계통과 종통이 상호 보완하면서 반복된다. 4. 일부 역사가는 환단고기 가 위서라고 한다. 이유립이 주 계보와 방계관 계를 세우기 위해 추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위서는 아니다. 삼성기 는 환단사관의 역사서이다. 삼성기 전 이 계승되기 위해서는 부도 문, 간지술, 본풀이가 필요하다. 예컨대, 남녀평권과 부권은 근대용어 가 아니라 환국 사회에서의 남녀, 노소의 평권이며, 환국사회는 서자 부, 서녀부, 서부부, 서모부의 4 무리사회로 구성되었다. 주 내용은 왕과 그의 세 신하 관계, 예컨대 고대 한국의 건설자 환웅천왕과 그 세 번째 신하, 한의 고대 선조 헌원 보조왕 사이의 관계에 대한 실제 서사이다. 5. 삼성기 전 의 가치와 의미는 환단사관이라는 점이고, 그것은 전근대 사회에서 우리 계보, 우리 종통계보와 이웃들을 방계 로 설정한 우리중심의 세계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Ⅳ. 참고문헌에서 원본으로 2유형 15종의 삼성기 전 이 있고, 그 외에 고대 한국, 중 국, 일본 등의 역사연구서들이다.

      • KCI등재후보

        계보위축변천과정, 왕호신구 토픽 그리고 『환단고기』 신 진위검토방법(2) -환인환국-환웅대인국-삼조선병행 계보-

        박병섭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 2011 선도문화 Vol.10 No.-

        1. 고구려 건국신화는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광개토왕비문」, 『삼국사기』, 『삼국유사』, 그리고 「동명왕편」에 나온다. 우리는 『삼국사기』고구려 주몽왕 편에서 해모수, 그리고 해부루를 만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해모수는 오룡거를 타고 홀승골성에 도착해북부여를 건국한 천왕이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해부루는 해모수의 아들이고, 처음에 북부여의 왕이다가 상제의 명으로 가섭원으로이주해서 동부여의 왕이 되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북부여의 구도에는 자칭 해모수왕이 왔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주몽은 해모수와우발수의 유화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제까지 『삼국사기』에서 해모수는 한 명으로 간주되었다. 나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비교한후에 고구려사 속에 적어도 세 명의 다른 해모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까지 『삼국사기』 고구려사에서 동명은 한 명으로 간주되었다. 나는 『후한서』 및 『삼국지』의 부여조와 『삼국유사』를 비교한 후에 고구려사에서 동명이 적어도 두 명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비교한 후에 북부여 구도의 해모수를 졸본부여의 동명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까지 『삼국사기』 고구려사에서 해부루는 한 명으로 간주되었다. 나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비교해서 적어도 세 명의 해부루를 발견하였다. 나는 북부여와 동부여의 왕 해부루가 한 개인 왕명이 아니라 왕호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그 후 해모수, 동명, 그리고 해부루가 단지 개인 왕 이름일 뿐 아니라또한 왕호라고 결론 내렸다. 나는 고구려 주몽왕이 고유명이자 신왕호로서 주몽을 가지고 있고 구왕호로서 동명을 가지고 있으며, 졸본부여 동명왕이 고유명이자 신왕호로서 동명을 가지고 있고 구왕호로서 해모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신구 왕호 토픽의 병행 호칭법이다. 이것이 한국고유철학의 주제 중의 하나이다. 2. 한국사의 자료 해석방식에는 축소해석과 확장해석이 있다. 사서가 「광토개왕비문」, 『삼국사기』, 『삼국유사』, 그리고 「동명왕편」으로시간이 갈수록 북부여, 동부여, 졸본부여, 그리고 고구려의 역사가 축소된다. 『후한서』와 『삼국지』의 부여조와 『삼국유사』를 비교해 보면,동명왕은 두 번 건국했다. 『삼국사기』와 「광개토왕비문」을 비교해보면, 고구려 주몽은 세 번 건국했다. 주몽의 건국이 「광개토왕비문」의 첫 번째 건국에서 『삼국사기』의 세 번째로 변하자, 졸본부여의 동명왕의 이 단계 건국 전승과 북부여 해모수왕의 건국 전승이 축소해석 되고, 때때로 신구 왕호 토픽 병행 호칭법 때문에 주몽 건국 속에사라져 버렸다. 이것이 왕 계보 의식과 역사의 축소해석이다. 한국인이 한자와 한국전통철학, 그리고 중국사를 연구한 것은 축복이었다. 그러나, 한국 전통철학과 중국사를 연구하면 할수록 한국사는 확대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축소해석되어 왔다. 이것들은 부작용이다. 3. 그러나 한국인 학자들과 과학자들이 한국현대철학을 연구했지만,『환단고기』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광개토왕비문」, 『삼국사기』, 『삼국유사』 그리고 「동명왕편」의 북부여, 동부여, 졸본부여 그리고 고구려의 전승에서 세 명의 해모수, 두 명의 동명, 그리고 세 명의 해부루를발견하지 못했다. 『환단고기』는 북부여기에서 북부여와 졸본부여를다 ... 1. The founding myths of Goguryeo are related in ancient Korean texts, with slight variations, including the Gwanggaetostele, the SamgukSagi, the SamgukYusa, and the DongmyeongWangpyeon of the DonggukIsanggukjip (by YiGyu-bo). We Koreans have faced “Haemosu” and “Haeburu” in the King “Chumong” story of “Goguryeo” in SamgukSagi. According to SamgukYusa, Haemosu is the king of heaven, riding in achariot of five dragons, arriving at Holsenggolseong to establish Bukbuyeo (North Buyeo). According to another story of SamgukYusa, “Haeburu” {who is the prince of the Heaven King “Haemosu” of Bukbuyeo (North Buyeo)}is the first King of DongBuyeo (East Buyeo). According to SamgukSagi,Haeburu, by order of the King of Heaven, after moving to the new capital of Gasepwon, became the new founder King of Dongbuyeo (East 284 仙道文化 제 10 권Buyeo), and then the name of 3 other Kings “Haemosu” came from the old capital of BukBuyeo (North Buyeo). According to SamgukSagi,Chumong is described as the son of “Haemosu” (the prince of heaven)and Yuhwa (daughter of the river god Habaek) of Ubalsu. Until now, we believed that there was only one Haemosu in “Goguryeo” foundation history of SamgukSagi. After comparing SamgukSagi with SamgukYusa, I find that there are really three king Haemosus i.e. the first king “Haemosu” of North Buyeo, the second king “Haemosu” of the former Capital city of Bukbuyeo (North Buyeo), and the third king “Haemosu”of Ubalsu, Samguk Goguryeo people always considered there was only one person with the same name. Until now, we also believed that there was only one Dongmyeong in Goguryeo foundation history in SamgukYusa. I now differenciate Dongmyeong of Jolbon Buyeo from Dongmyeong of Goguryeo, after comparing SamgukYusa with Buyeo in History of the Later Han (simplified Chinese: 后汉书; traditional Chinese: 後汉书; pinyin:hòuhànshū; Wade-Giles: Hou Han Shu) & Records of Three Kingdoms (simplified Chinese: 三國志; traditional Chinese: 三國志; pinyin: SānguóZhì). After comparing SamgukSagi with SamgukYusa, I identified Haemosu of the former Capital city of North Buyeo as Dongmyeong of Jolbon Buyeo. Until now, we believed that there was only one Haeburu in “Goguryeo” history of SamgukSagi. Now I recognize at least three Haeburus among one Haeburu of East Buyeo, another Haeburu of the same as King Youngpumli of Bukbuyeo (North Buyeo), the third Haeburu of one King both of Bukbuyeo (North Buyeo) and ancestor of King Biru of Baekje in both SamgukSagi and SamgukYusa. I realized that King “Haeburu” of BukBuyeo (North Buyeo)and DongBuyeo (East Buyeo) was not one personal King name but was 285계보위축변천과정, 왕호 신구 토픽 그리고 『환단고기』 신 진위검토방법(2)ㆍ박병섭the new title name of King. Then I concluded that Haemosu,Dongmyeong and Haeburu is not only the personal King name but also the title name of King. It can be seen that king “Chumong” of Goguryeo was called one personal name and the title name of the King Chumong and another old title name of king Dongmyeong, and king “Dongmyeong” of Jolbon Buyeo have been called one personal name and same new title name of king Dongmyeong and another old title name of king Haemosu. These are subjects of Korean Original Philosophy and history of ancient Korea. 2. Comparing records of Gwanggaetostele, SamgukSagi, SamgukYusa, and DongmyeongWangpyeon of DonggukIsanggukjip (by YiGyu-bo), delay time foundation histories of Bukbuyeo (North Buyeo), DongBuyeo (East Buyeo), Jolbon Buyeo, and Goguryeo reproduced on a reduced scale. From comparing articles “Buyeo” in History of the Later Han (simplified Chinese: 后汉书; traditional Chinese: 後漢書; pinyin: hòuhànshū; Wade-Giles: Hou Han Shu) and Records of Three Kingdoms (simplified Chinese: 三國志; traditional Chinese: 三國志; pinyin: Sānguó Zhì ) with SamgukYusa, it can be seen that King Don...

      • KCI등재

        박병섭 ,��삼성기 전�� 상하편에 숨겨진 사실들

        박병섭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연구원 2009 선도문화 Vol.6 No.-

        삼성기 전 상하편에 숨겨진 사실들 삼성기 전 상하편( 환단고기 중)은 Ⅰ. 판본과 소장처는 1979년 광오이해사본[원본1유형]이 국립중앙도서관에, 1979년 배달의숙본[원 본2유형]이 숙명여대에 있고, 무서지판이 동국대, 동국대 경주, 전남 대, 고려대에 있다. 삼성기 전 상하편은 원본1유형과 원본2유형을비교해 Ⅱ. 교감해 보면 사소한 차이 밖에 없다. 내용을 Ⅲ. 해제해 보면, 1. 자료는 환단고기 에 나오고 그 작자들은 연대불명인데, 내 용의 맥락을 보면 안함로는 고구려 주몽시기의 인물이고, 원동중은 발해시기의 인물이다. 2. 1949년 필사되어, 1979년 판본은 원본1유형 이나 원본2유형이나 모두 이암-이맥-이기-계연수-이유립으로 이어왔고, 원본1유형과 2유형으로 전래가 달라진 것은 이유립과 그 문인들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이다. 3. 삼성기 전 의 고대 한 국왕국들의 계보이고, 환국(7대, 3301년)-배달국(18대, 1565년)-조선 국(47대, 2096년 단군세기 )-고구려국의 계통이다. 주왕국과 방계 왕국의 종통관계는 환국문명과 수밀이문명, 배달국의 치우환웅문명 과 고대 중국의 헌원문명, 단군조선 문명과 고대 일본문명 관계이다. 상하 두 편에서 계통과 종통이 상호 보완하면서 반복된다. 4. 일부 역사가는 환단고기 가 위서라고 한다. 이유립이 주 계보와 방계관 계를 세우기 위해 추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위서는 아니다. 삼성기 는 환단사관의 역사서이다. 삼성기 전 이 계승되기 위해서는 부도 문, 간지술, 본풀이가 필요하다. 예컨대, 남녀평권과 부권은 근대용어 가 아니라 환국 사회에서의 남녀, 노소의 평권이며, 환국사회는 서자 부, 서녀부, 서부부, 서모부의 4 무리사회로 구성되었다. 주 내용은 왕과 그의 세 신하 관계, 예컨대 고대 한국의 건설자 환웅천왕과 그 세 번째 신하, 한의 고대 선조 헌원 보조왕 사이의 관계에 대한 실제 서사이다. 5. 삼성기 전 의 가치와 의미는 환단사관이라는 점이고, 그것은 전근대 사회에서 우리 계보, 우리 종통계보와 이웃들을 방계 로 설정한 우리중심의 세계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Ⅳ. 참고문헌에서 원본으로 2유형 15종의 삼성기 전 이 있고, 그 외에 고대 한국, 중 국, 일본 등의 역사연구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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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료전지 구동을 위한 메탄올-과산화수소 개질의 백금촉매 담지량에 따른 특성

        박병섭,권세진 한국항공우주학회 2015 한국항공우주학회 학술발표회 논문집 Vol.2015 No.11

        백금(Pt) 촉매 담지량에 따른 메탄올-과산화수소 개질의 특성을 확인하였다. 사용된 과산화수소의 농도는 70 wt%이며, 과산화수소와 메탄올의 무게 혼합비는 3.036 이다. 이 때의 O₂/CH₃OH, H₂O/CH₃OH 몰비율은 1.0, 3.619 이며, 혼합물의 공급유량은 30.36 g/h 이다. 특성 확인을 위한 백금 촉매의 조건은 6 wt%, 12 wt%, 18 wt% 백금을 동일한 반응기에 4 g 을 사용하였다. 개질 특성은 온도, 유량, 가스 구성물질을 통해 확인하였다. 온도분포의 경우, 세 가지 경우 모두 유사함을 확인하였으나, 18 wt% Pt 조건에서만 과다한 코크생성을 확인하였다. 개질 가스의 총유량과 수소 유량의 경우 12 wt% Pt 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나타냈다. 가스 구성물질의 경우, 6 wt%, 12 wt% Pt 의 모든 실험구간에서 고온 PEM 연료전지에 적용가능한 CO 함유량을 나타냈다. 결과적으로 12 wt% Pt 에서 가장 우수한 특성을 확인하였다. The characteristics of methanol-hydrogen peroxide reforming were determined depending on various Pt loading. 70wt% H₂O₂ was used. The weight mixture ratio of H₂O₂/CH₃OH was 3.036. The molar ratios of O₂/CH₃OH, H₂O/CH₃OH were 1.0, 3.619. The flow rate of mixture was 30.36 g/h. The conditions of Pt loading were 6 wt%, 12wt%, and 18 wt%. 4 g Pt catalyst was used for reforming experiment. The temperature, flow rate, and gas composition were determined. There were similar temperature distributions among all cases. But, the coke formation was confirmed in 18 wt% Pt. 12 wt% Pt was better than the others in total and H2 flow rate. The available CO content was determined for HT-PEMFC in 6 wt% and 12 wt% Pt cases. As a result, there were the best characteristics in the condition of 12 wt% 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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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가 누락된 경위와 함의 - 조약에서 누락된 섬들과의 비교 검토 -

        박병섭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2016 독도연구 Vol.- No.21

        독도는 1946년 SCAPIN-677에 의해 일본국 외로 규정되었다. 이 규정은 대일강화조약 등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될 때까지 유효하지만 강화조약은 독도에 대해 아무 것도 규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 정부는 각각 강화조약에 인해 독도는 자국 영토로 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약 성립 과정을 살펴보면 조약 공동초안을 작성한 영·미 양국은 독도에 대한 견해가 엇갈린 채였다. 따라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독도의 귀속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지 않았던 것이며, 조약은 독도의 법적 지위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정부는 이 관점에 서서 독도를 ‘본방(本邦)’의 범위 외로 규정한 법령을 조약 후에 개정하지 않았을 뿐더러 새 법령에서도 독도를 ‘본방’ 외로 규정하였다. 그 후 일본정부는 강화조약에서 일본의 포기가 규정되지 않았던 지역은 당연히 일본에 귀속된다는 논리를 개발하였다. 그러나 독도 외에도 조약에 규정되지 않았던 섬들은 결코 일본 영토로 되지 않았으므로 일본정부의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동사제도, 센카쿠(댜오위다오)제도, 하보마이·시코탄 등은 조약에 규정되지 않았지만 일본영토로 결정된 것은 아니다. Dokdo was defined outside Japan in 1946 by SCAPIN-677. This decision remained valid until it was finally decided by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however, the Treaty did not specify anything about Dokdo. Nevertheless, the Korean and Japanese governments insist that Dokdo has become its own territory by the Treaty. While, if we look at the negotiation process of the Treaty, the US and UK that drafted the joint draft of the Treaty had different views on Dokdo. In the end,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did not finally decide on the ownership of Dokdo, and thus had no effect on Dokdo's legal status. According to this view, the Japanese government did not amend the statute that stipulated Dokdo as outside the scope of Japanese area after the Treaty, and the new law also stipulates Dokdo as “outside of Japanese area”. Since then, the Japanese government has developed the logic that the areas of which Japanese abandonment was not specified in the Treaty naturally must be attributed to Japan. However, the Japanese government’s claims are not established, because islands, such as Dokdo, the Pratas Islands, the Senkaku (Diaoyutai) Islands, and the Habomai and Shikotan were not specified in the Treaty, but were not determined as Japanese territory.

      • KCI등재후보

        마르크스의 자본과 롤즈의 정의론 사이의 대조비교-시장과사유재산의쟁점

        박병섭 범한철학회 2003 汎韓哲學 Vol.28 No.-

        A contrast and comparison between Marx's The Capital and Rawls' A Theory of Justice-A issue of market and private property- 문】마르크스와 롤즈의 사상 사이의 비교는 어떤 마르크스냐 어떤 롤즈냐에 따라 그 결과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마르크스 사상은 일반적으로 착취와 계급투쟁을 다룬 것으로 해석되고, 극히 소수인 분석 마르크스주의만이 ‘정의’의 문제 등을 다룬 것으로 해석한다. 롤즈의 사상은 일반적인 사회윤리(정의론)를 다룬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현실 사회의 정책 방향(복지국가의 이념)을 다룬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롤즈의 ‘정의론’을 시장사회주의 혹은 분석 마르크스주의와 비교하기는 상대적으로 쉽지만 롤즈의 ‘정의론’을 비시장사회주의이면서 좌익적인 착취와 계급투쟁의 마르크스주의와 비교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렵다. 이 경우에 양자 사이의 대화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본고는 비 시장사회주의이며 좌익적인 착취와 계급투쟁의 마르크스주의와 롤즈의 정의론 사이를 거시적 관점에서 비교하려는 시도이다.비교의 대상을 한정하고 그 핵심사상 사이의 상호 차이점을 드러내기 위해서 마르크스의 주저 자본과 롤즈의 주저 정의론 사이에 비교`대조를 시도한다. 제3자 브로델을 준거로 비교해 보면 양자 사이에는 의외로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양자의 관계는 거울반영의 관계처럼 상호 닮아 보인다.이번 글에서는 먼저 시장과 사유재산에 대한 쟁점 부분(Ⅰ)을 지적하기로 하고, 이후 글에서는 공통점 부분(Ⅱ)을 거론할 예정이다. 본고에서 다룬 쟁점 부분은 양자 사이에 유사성을 염두에 두고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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