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 좁혀본 항목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 작성언어
          • 저자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백제의 시호제(諡號制)와 시호(諡號)의 함의

          문동석 ( Moon Dong Seok ) 백제학회 2020 백제학보 Vol.0 No.32

          시호는 왕의 사후 그의 삶이나 업적을 평가하고 기리기 위한 호칭이다. 시호에 사용되는 글자들에는 모두 엄격한 의미가 정해져 있다. 이를 시법 또는 시호법 이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의 일생을 문자로 표현하려는 유교의 독특한 평가 방식이다. 시법의 연원은 중국 고대 주(周) 나라까지 소급된다. 『사기』에 기록된 「시법해」에는 각각의 뜻을 가진 시자(諡字) 103자가 정리되어 있다. 백제의 시호제는 무령왕이 동성왕에게 올린 ‘동성’이라는 시호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동성’이라는 시호는 시법에 기록된 시자를 적용하여 정한 것이 아니라 사후에 업적을 평가하여 올리는 시호 자체의 의미를 충실하게 따른 것이다. 무령왕대에는 국가적 교육기관으로 태학이 설치되고, 유학에 정통한 인재들을 오경박사에 임명하였다. 그 결과 무령왕대에는 유교 경전과 예제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었을 것이다. 무령왕대에 정비된 예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왕대에는 시법을 적용하여 무령왕에게 시호를 올린 것으로 보인다. 성왕이 사마왕이 돌아가신 후 올린 ‘무령’이라는 시호를 시작으로 이후에 올려진 ‘성’, ‘위덕’, ‘혜’, ‘무’ 등의 시호는 시호법에 따른 시자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는 유교뿐만 아니라 불교도 성행했기 때문에 ‘법왕’의 경우와 같이 불교식 색채가 드러나는 시호도 있다. 그러나 ‘무’, ‘성’, ‘위덕’, ‘혜’ 등은 『사기정의』 「시법해」와 『시법』에 있는 시자와 의미가 부합하고 있다. 따라서 백제는 무령왕대에 시호제가 실시되었지만, 성왕대부터 시호법에 따른 시자를 적용하여, 각 왕들에게 시호를 올렸다. The posthumous name (shihao) is a title bestowed to a king after his death for the purpose of evaluating and honoring his life or achievements. All the letters used for posthumous titles have strict meanings, which are referred to as the order of posthumous names (shifa, shihaofa). This is a unique Confucian method for assessing a person’s life in several letters. The rule has origins dating back to the Zhou dynasty of ancient China. The chapter called “The Order of Posthumous Names Explained” (Shifajie), included in the Correct Meanings of the Records of the Historian (Shiji Zhengyi), lists 103 posthumous characters with their respective meanings. The Backje’s system of posthumous names began with the “eastern castles” (dongseong), which King Muryeong gave to King Dongseong. However, the posthumous name “eastern castles” was not chosen within the certain rules such as “the order of posthumous names,” but faithfully followed the meaning of the name itself, which evaluates the king’s achievements after his death. With the deeper understanding of Confucian classics through the erudites of the Five Classics (wujingboshi) and the systematic readjustment of rites during the reign of King Muryeong, it seems to have applied the Confucian order to give the posthumous name to the King Muryeong during the King Seong era. Starting with “the martial and peaceful” (muryeong), the subsequent names such as “the holy” (seong), “the mighty and virtuous” (wideok), “the benevolent” (hye), and “the martial” (mu) are interpreted as the Confucian order. Of course, there are also the titles that reveal Buddhist-style colors, as in the case of “the law” (beop), because Buddhism as well as Confucianism was prevalent at the time. However, “the holy,” “the mighty and virtuous,” “the benevolent” and “the martial” correspond to the characters in “The Order of Posthumous Names Explained.” Therefore, Baekje was considered to have applied the Confucian order to name each king since the King Seong era, although the system was initially implemented during the reign of King Muryeong.

        • 1990년대 백제의 신발견 문자자료와 연구동향

          문동석(Moon Dong Seok) 서울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9 인문논총 Vol.18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This study clarifies Baekje's Corpus of Characters was found between 1990's and 2000's. Corpus of characters, even though the term should be redefined as very often used recently, This study refers the corpus of Characters to ones carved on earthenwares, bricks, tiles, metal relics, woods, and stones founded in home and abroad. These classification can be classified more in detail according to the other situation. This study proposes task in order to study characters as below. It is very important things for Characters to decipher an old manuscript. The first, According to subjective point of view, the result lead to unexpectedly. it will be very useful to decipher the wood materials with infrared camera, which is recently used very often. The second, the old materials, that is founded in past, also, is very important, because, the result will be changed if the infrared camera applied to them.

        • KCI등재

          중국 유리와(琉璃瓦)에 대한 연구

          문동석(Moon, Dong Seok),유가은(You, Ga Eun) 중부고고학회 2015 고고학 Vol.14 No.2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1990년 이후 2015년 현재까지 실시되고 있는 경복궁 발굴조사 결과, 침전권역을 비롯한 주요 건물지에서는 수만 점의 청기와가 출토되었다. 경복궁에서 출토된 청기와에 대한 보다 정밀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중국 유리와에 대한 정보는 필수적이다. 중국 사료에서 유약을 발라 구운 기와, 즉 유리와가 지붕의 건축자재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북위 때부터이다. 이후 수・당대 유리와는 호화스러운 건축에 사용되었다. 원나라 대부터는 국가의 지휘아래 유리 가마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명・청대에는 유리와의 사용이 규격화 되고 그 제작기술 또한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명대에는 건축물의 등급에 따라 사용되는 유리와의 색채를 철저히 제한하였다. 중국의 고대 건축물의 색채에는 한대의 음양오행설의 원리가 크게 반영되었는데, 유리와 또한 다르지 않았다. 유리와의 유약색은 황색, 청색, 자색, 백색 등 다양한데 이러한 색의 차이는 각 건물의 위계를 잘 나타내었다. 황색은 황제 전용의 존귀한 색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오직 황제의 궁전 및 황제와 황후의 무덤, 사묘 등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반면 녹색의 유리와를 사용하는 것은 황제의 후대 자손에 대한 희 망을 표현한다. 따라서 녹색 유리와가 사용된 대표적인 건물은 태자궁, 천단, 선농단, 일단, 월단 등이다. 또한 친왕과 군왕 등의 저택도 녹색 유리와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중국의 건축제도와 기술은 주변 국가들 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Gyeongbokgung Palace excavation results since 1990 until now progressed, the main building sites have been excavated a large amount of blue tile. This is an important material data to prove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record that the main building of the palace were covered with blue tile. The technique of building blue tile was originated from China. In order to proceed with the accurate study of blue tile, the beginning and transition of the chinese glass tile and information about the color and the meaning are required. The glazed tile from the chinese historical materials, in other words glass tile, had first used as a building material since the Northern Wei Dynasty. subsequently, Glass tile was used to posh building. Finally, the glass tile was standardized and its production technology also came to the climax in the Ming, Qing Dynasty. In addition, there was thoroughly commanded limit the color of the glass tile to be used in accordance with the degree of architectural. Glass tile had become important construction materials in the imperial architecture. In the color as well as the glass of Chinese ancient architecture, the Yin-Yang principles and the Five Elements theory were reflected. The differences in the color glaze of glass represented the hierarchy of each building well. The yellow glass was used as the Emperor’s exclusive color while the green(blue) glass was used for the Princes and the Crown Prince's residence. The Chinese construction systems and technology has a great influence even in neighboring countries.

        • KCI등재

          大阪府 四條畷市 蔀屋北 遺跡에 대하여

          문동석(文東錫)(Moon, Dong-Seok) 일본어문학회 2011 일본어문학 Vol.54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蔀屋北遺跡は、大阪府の東部の四條畷市大字蔀屋ㆍ砂に位置しており、生駒山地から流れ出る川によって形成された沖積地に立地した弥生時代から江戶時代までの遺構が連続的に確認された複合遺跡である。調査の結果、古墳時代の中期から後期に属する遺構ㆍ遺物が多数確認できており、古墳時代の代表的な聚落遺跡として注目されている。浅い渓谷や区画された溝によって五つの居住域(北東、南東、南西、北西、西)に区分される。確認できた遺構は竪穴住居址73基、堀立柱建物址84基、井戸27基、多くの土坑と溝、そして周溝墓2基などが調査で明らかになった。特に馬具、馬埋葬土坑、多量の製塩土器、韓式系土器、U字形板状土製品が出土されたことで馬の飼育と関連した聚落で、この聚落に居住した人たちの起源が馬韓及び百済と深い関わりを持つ点が注目される。蔀屋北遺跡の聚落は5世紀前半に造られて、5C半ばから後半にかけて最盛期を迎え、6C後半まで維持されるが、7C以降は主に水田または畑として利用された。

        • KCI등재
        • 풍납토성 경당지구 발굴로 본 한성백제

          문동석(Moon, Dong-seok) 서울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0 인문논총 Vol.20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There are Seokchondonggobungun, Monchontoseong and Pungnabtoseong in which the relics are clarifed the history of the Hansung Baekje. Among them, We can not expect to survey Seokchondonggobungun, Monchontoseong further because they became Park after scrutinzing to be encave in insufficient. Wheres, Pungnabtoseong that is treasure house, Since that is excavated in 1997, have still scrutinized. The result also still have been published. The information amount that the Pungnabtoseong is much unexpected, the report related to that, will be scheduled to be published with the shape of many volumes. The more outcome be accumuated, the more lighten be the culture and history of Baekje. The information deducted from the Pungnabtoseong is helpful of clarifying the history of Baekje anew, and the recognizing concrete life style and the technology of the ancestors of Baekje.

        • SCOPUSKCI등재
        • KCI등재

          2000년대 백제의 신발견 문자자료와 연구동향

          문동석(Moon Dong-Seok) 한국고대사학회 2010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57

          이 논문은 2000년 이후부터 2009년까지 출토된 백제 문자 자료를 수합 정리 소개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문자자료란 최근에 와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용어로서 그 개념 규정이 필요하지만, 필자는 토기ㆍ벽돌ㆍ기와에 새겨진 문자, 금속유물에 보이는 문자, 나무에 쓴 문자 등으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2000년대 이후 토기, 벽돌, 기와에 새겨진 문자 자료는 부여의 왕흥사지, 정읍의 고부 구읍성, 금산 백령산성, 나주 복암리 제철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금속유물에 보이는 문자 자료로는 2006년 고흥 안동 길두리 고분에서 출토된 동경 명문, 2007년 고창 오호리 신지매 5호 석실분에서 출토된 銅印과 2007년도에 부여 왕흥사지에서 청동제사리함에 새겨진 명문, 그리고 2009년 익산 미륵사 서탑에서 사리봉안기 명문과 金丁을 들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출토 백제 문자 자료 중 가장 많이 출토되고 연구가 활발한 것은 나무에 쓴 문자, 즉 목간으로 2009년 현재 4개 지역 혹 유적에서 81점이 출토 되었다. 목간은 그 당시 도읍지였던 부여에서 53점이, 2008년도에는 지방인 나주 복암리 제철유적에서 31점이 출토되었다. 2000년대 이후 백제의 문자 자료는 이전 시대 보다 종류도 다양하고 그 양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09년 1월 19일 공개된 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봉안기에는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하여 伽藍을 창건하고 己亥年(639)에 사리를 봉안하여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륵사의 창건목적과 施主, 석탑의 건립연대 등을 정확히 밝힘으로써 문헌사 연구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문자자료인 동시에 백제시대 書體 연구에도 큰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는 유물이다. 목간 자료는 부여에서뿐만 아니라 나주 등에서도 출토되고 있어 백제의 지방사회를 새롭게 밝힐 수 있는 단서가 되고 있다. This study clarifies Baekje's Corpus of Characters was found between 2000 and 2009. Corpus of characters, even though the term should be redefined as very often used recently, This study refers the corpus of Characters to ones carved on earthenwares, bricks, tiles, metal relics, woods, and stones founded in home and abroad. These classification can be classified more in detail according to the other situation. This study proposes task in order to study characters as below. It is very important things for Characters to decipher an old manuscript. The first, According to subjective point of view, the result lead to unexpectedly. it will be very useful to decipher the wood materials with infrared camera, which is recently used very often. The second, the old materials, that is founded in past, also, is very important, because, the result will be changed if the infrared camera applied to them.

        • 신발견 백제의 문자자료에 대한 역주

          문동석(Moon, Dong-seok) 서울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 인문논총 Vol.23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These relevant remains and artifacts are crucial pieces of information which fills in our gaps of Baekje's historical period. Among them, the Corpus of Characters not only reveals a clearer picture of that period, but also proves some well-known historical facts to be false. In the repair process of the Stone Pagoda of Miruksa Temple, more than five hundred artifacts were excavated in January 2009, including an enshrined metal record with small crystals set in Sarigong. This metal record sealed with cremated remains was meant to lay the groundwork for the future prosperity of the Baekje Dynasty. The process of housing this artifact was promoted by the Baekje Empress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Buddhist temple in 639. Through this excavation, the establishment date as well as the intention of the Miruksa Temple were verified. The new discoveries have been attracting an academic interest since the information from some of these reports is considerably different from that which is found in "The Heritage of the Three States". Especially regarding the Sunhwa Princess Story in the Chapter Gi-ei, various opinions have been suggested surrounding its authenticity. In 1990, the Karac Historial Development Institute started working on the interpretation of the written materials which had had an incalculable value. These artifacts began to be unburied from the period of Korea's liberation and continued to be disintered until that time. In 1992, they issued "inscription of Korean ancient" which contributed a great deal to the studies of Korean ancient history. After the publication, a large amount of ancient scripts were found however, the process of interpretation and annotation was not well organized. For that reason, this paper is written in order to show the newly collected information and offer translated and annotated data which is divided into more distinct categories for the corpus of Characters which are engraved onto stones, metal relics and earthenwares·bricks·tiles.

        • KCI등재

          고고자료로 본 백제와 왜(倭) 교섭

          문동석(Moon, Dong-Seok) 일본어문학회 2018 일본어문학 Vol.82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百済と日本列島の倭との関係は、文献資料だけではなく、考古学資料を 通じても活発な研究が行われている。百済地域と日本列島において相互に 関連性を持つ考古学資料は、古墳、建物址、金銅冠をはじめ、土器や石製 品など、さまざまな遺物が出ているが、時期や地域などによって違いが見 られている。考古学資料が持つ限界で、当時の交流や交渉の様相を直接的 に明らかにするのは難しいが、関連する遺物の種類や出土地域と遺構など を検討してみると、文献の記録だけでは把握しにくい多くの地域間の関係 性にある程度近づくことができる。 百済地域と日本列島において互いに関連連性を持つ考古学資料が最も多 く見られる時期は3〜6世紀である。そこで馬韓が中心になる段階である3〜4世紀と百済が中心となる5〜6世紀に分けて、関連の考古学資料、その 中でも、遺物を中心に百済と倭との交渉について考察してみようと思う。 Active research has been conducted on the relationship between Kudara and Wa in the Japanese archipelago through not only documentary but also archaeological resources. Various archaeological relics relating to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Kudara area and the Japanese archipelago have been detected, such as mounds, golden and copper crowns, ancient clay potteries, among other things, but differences are observed depending on when and where they existed. While it is difficult to directly reveal aspects of communications and negotiations due to the limitation of archaeological resources, the analyses of the kinds of relics and the areas where they were detected shed light on areal relations that would not be uncovered if documentary resources alone were considered. It is the archaeological resources of the 3~6 centuries that most clearly suggest interrelations between the Kudara area and the Japan archipelago. We analyze negotiations between Kudara and Wa by distinguish the relics of the 3~4 centuries during which Mahan confederacy throve from those of the 5~6 centuries during which Kudara throve.

        맨 위로 스크롤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