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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기 보국대의 의미와 성격

          나상철 연세사학연구회 2020 學林 Vol.45 No.-

          한국전쟁 동안 민간인은 군에 동원되어 노무력을 제공했다. 군과 민은 이러한 민간 노무인력 동원 및 전쟁 지원 행위를 ‘보국대’라고 칭했다. 그러나 해방으로부터 한국전쟁이 휴전에 이르기까지, 실체성이 있는 하나의 국가행정조직으로서 ‘보국대’라는 것은 없었다. 따라서 보국대는 법제적 근거가 없는 구어적 표현이었다. 현재에 이르러서도 전쟁을 회고하는 과정에서 노무를 위해 동원된 개인과 그 집단을 ‘보국대’ 또는 ‘보국단’이라고 일컫는다. 본고는 이처럼 국가기구가 아님에도 전쟁당시 두루 사용되었던 ‘보국대’의 특성과 성격을 확인하는 것이다. 연구의 첫 단계는, 어의적 특성과 계보를 확인하는 것이다. 어의적 특성이란 ‘보국’이라는 표현이 과거부터 어떻게 쓰였고 기록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조직을 이르는 ‘隊’와 접목되어 ‘보국대’로 실체화되는 현상을 추적한다. 그런데 보국의 수사가 집약되어 조직화되는 것은 일제 강점기의 ‘근로보국대’가 유일한바, 한국전쟁기의 보국대는 일제의 그것에 적어도 어의적 계보의 연결성이 있다고 보았다. 이어서는, 한국전쟁을 겪은 인물의 회고에서 ‘보국대’가 어떤 모습으로 재현되는지를 살핀다. 회고자는 크게 민간인 노무자, 사병, 장교 출신자로 구분된다. 각각의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보국대의 모습과 성격에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회고에서 주목되는 점은 그들 대부분이 보국대를 전시 군경에 의해 강제된 것으로 기억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한국전쟁기 보국대는 단지 일제의 총동원체제기 전쟁 장치였던 근로보국대와 어의적으로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하고 운용하는 형태와 그 인식까지도 매우 닮았다. 따라서 보국대는 전시근로동원에 대한 법제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던 당시, 대중의 기억에 자리하고 있던 가까운 과거의 일련의 전시 민간인 동원 기법이 소환된 것으로, 일제가 남긴 또 하나의 잔재이다. During the Korean War, civilians were mobilized to the military for provide labor. The military and the civilians have called these acts of mobilizing civilian laborers and supporting the war as a ‘Bogukdae’. From liberation to the Korean War, however, there was no such thing as a substantive national administrative organization ‘Bogukdae’. Therefore, it was a colloquial expression with no legal basis. And in the course of retrospecting the war, the individuals and their groups mobilized for labor is also called as ‘Bogeukdae’ or ‘Bogeukdan’. This thesis confirms the characteristics of the ‘Bogeukdae’, which was used throughout the Korean War even though it was not a national organization. The first step in the study is to identify the linguistic characteristics and genealogy. The linguistic characteristic is to identify how the term ‘Bogeuk’ was used and recorded in the past. And also tracks the phenomenon of being ‘Bogeukdae’ with a ‘corps’ attached to the ‘Bogeuk’. Japanese Empire’s ‘Civilian Labor Corps(勤勞報國隊)’ is the only one, which integrate the meaning of ‘repay for nation’ to real organization. The ‘Bogukdae’ which was called during the Korean War is believed to have at least the link between the linguistic connection about the Japanese Empire’s ‘Civilian Labor Corps’. Soon after, in the memoirs of those who went through the Korean War, we can see how ‘Bogukdae’ is recreated. Retrospective people are divided into civilian laborers, enlisted men and army officers. These distinctions give a three-dimensional picture of the figure and character of ‘Bogukdae’ from each social status. Noteworthy thing in their memoirs is that most of them remember “Bogukdae” as being forced by wartime military and police. As such, ‘Bogukdae’ during the Korean War is not only connected linguistically to the ‘Civilian Labor Corps’, which was a war device under the Japanese Empire, but also very similar to the way it was organized and operated. Thus, ‘Bogukdae’ is another remnant left by the Japanese Empire, that was summoned for a series of wartime civilian mobilization techniques of the near past, that were in the public’s memory at the time when legal grounds were not laid for wartime workers.

        • KCI등재

          한국전쟁기 육군예비사관학교 연구

          나상철 육군사관학교 화랑대연구소 2020 한국군사학논집 Vol.76 No.1

          This study traces the history of the Army Reserve Officer Academy, which was founded in May 1951 during the Korean War and disbanded in October of the same year, in the category of ‘micro-historical military history’. This Academy was established simultaneously with the 5th Corps (reserve), which was established following the disbandment of the National Defense Corps. The Reserve Officer Academy is presumed to be an organization to clean up the remaining human and material resources of the National Defense Corps Officer Academy. However, unlike before, the officers who graduated and commissioned the academy followed the Army's officer hierarchy, although they were a reserve. The Reserve Officer Academy produced about 4,500 officers during its six-month until disbandment. Some of them were turned into active-duty officers and have been deployed to the front and rear mopping up and counterterror echelon. And many of them have become the link of the ROKA and U.N. military alliance, with the deployment of a number of senior members of the Korean Service Corps. In addition, they played a role in ensuring the robustness of the labor force to support the U.N. military's defense. But memories of them have been forgotten and excluded from the study of Military History which was implemented from national history research institutions. Therefore, in this paper, I attempt to restore the nature of the Reserve Officer Academy and its military historical character by compiling the statements of the veterans along with the extremely scarce literature historical materials. 본 연구는 한국전쟁기 국민방위군의 후신으로 창설된 예비군단인 제5군단의 기간요원을 양성하기 위해 군단과 함께 창설되었던 육군예비사관학교의 편성과 운용의 역사적 실체를 조명하여 전쟁 당시의 혼란 중에도 장교를 확보하고자 했던 잊혀진 노력의 발굴을 시도한 것이다. 예비사관학교의 역할이 두드러진 것은 한국전쟁의 한 변곡점인 제5군단을 모체로 하여 창설된 한국노무단(Korean Service Corps, KSC), 일명 노무부대의 기간 장교로서 미군을 중심으로 한 UN군의 ‘축차진지상에서의 방어작전 반복’이라는 현 휴전선 일대에서의 고지전 및 참호전을 성공적으로 지원한 중역이라는 역사적 지점이다. 미 제8군의 심장부에 잔존한 KSC의 계보적 뿌리이자 역사의 사각지대에 이들 육군예비사관학교와 예비역 장교들이 있었다.

        • KCI등재

          태평양전쟁 역사서술의 일 정형성 고찰 - 일본군 ‘蛙跳’와 연합군 ‘Bypass’를 중심으로 -

          나상철 육군군사연구소 2021 군사연구 Vol.- No.152

          Military historians have traditionally attempted to categorize wars into broader groups. For instance, the World Wars have been generalized as ‘trench war’ and a ‘blitz war’. In the same vein, military historians declared a clichés of the Pacific War, and such details were included in popular military history textbooks. This paper traces several clichés depicting the history of the Pacific War, and focuses on their respective meanings. Historians of the Pacific War assert that the Japanese deployed the ‘wazo’ tactics, and the Allies pursued ‘bypass’ tactics in battles. As the first step in dismantling of such stereotype, the paper reviews errors between Chinese character translations as empirical consideration for the wazo tactics. Subsequently, the paper compares the usage of the words ‘wazo’ and ‘leapfrog’ to evaluate the implications of the two terms in war context. Furthermore, the paper traces by literature type and chronology the unique portrayal of ‘island hopping’ from the American and U.K. perspectives. In the process, the paper uncovered the differences and similarities between ‘leapfrog’ and ‘island hopping’. Finally, the paper examined MacArthur, who serves as the center point for the Pacific War converges. MacArthur claimed that the Navy’s operation was unfair during the war, and this point was reproduced to glorify and heroify the Pacific War in other nations. However, in the historicalization of the war, the term ‘island hopping,’ which he called as a unique method of the navy, became generalized to characterize the history of the Pacific War. As a result, war the clichés, regarding the allied forces crossing the Pacific Ocean could break away from the past methods embedded in a person - centered view of history and entered into a new historigraphical landscape. 역사와 군사사 관련 학계에서는 양차 세계대전을 참호전, 전격전이라 호명하는 것처럼 전쟁의 조작적 정의를 전통적으로 시도해 왔다. 같은 맥락에서 학계는 역사를 재구성하며 이해의 편리를 돕기 위해 태평양전쟁사의 내적 구도 정형화를 시도하였고 그것은 군사사와 전쟁사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군 교재에 담겼다. 본고는 태평양 전사를 묘사하는 수 개의 클리셰를 각각의 어의에 초점을 맞추어 추적한 것이다. 태평양전쟁사 쓰기의 정형이란, 일본군은 와조, 연합군은 바이패스 전술로 군을 전개했다는 내러티브다. 정형성 해체의 첫 번째 단계로 와조의 실증성 고찰을위해 영·한문 번역 간 굴절을 검토하였다. 이어서 leapfrog와 와조의 쓰임을 비교하여 전사 서술에서 두 단어의 기능을 비교하였다. 두 번째 단계로 미국과 영연방의 태평양 전사 서술에서 island hopping이 서술되는 특이점을 문헌 종류와 시대순으로 구분하여 추적하였다. 그 과정에서 유사 어의인 개구리 뛰기와 섬 기동의 수사에서 나타나는 차이와 공통점을 발굴하였다. 마지막 단계로는 태평양전쟁 수사가 수렴하는 인물맥아더에 접근하였다. 맥아더는 전쟁 동안 해군의 작전이 부당함을 주장했고 그 논지는 전후 다년간 영웅사관 역사쓰기 방식으로 참전국과 한국, 일본에서도 재생산되었다. 그러나 전쟁 기억을 역사화 하는 수순에서 그가 해군의 방식이라 명명했던 ‘섬 기동’이 태평양 전사를규정하는 학문적 시민권의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이로써 전쟁 당시 연합군이 대양을가로지르는 작전 양상의 클리셰는 인물 중심 사관에 함몰되어 있던 과거를 탈피하고새로운 역사의식 지형을 견인하게 되었다.

        • KCI등재

          6·25전쟁기 노무단의 구성과 활동

          나상철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2020 군사 Vol.- No.115

          본 논문은 한국전쟁 중 동원된 노무인력의 형태와 운용 실태를 전반적으로 파악하면서, 특히 미 제8군 예하의 한국노무단(KSC, Korean Service Corps)의 구성과 운영을 중점적으로 분석한 연구이다. 이것은 예비병력이 KSC로 전화되어 가는 과정을 규명하는 것에서 출발해, 민족상잔 비극의 중심에 존재했던 진중 노무자에 대한 당대의 다양한 인식을 살펴 KSC의 군사사적 성격을 밝히는 것이다. 개전 초, 미군의 참전에도 고전을 면치 못한 전쟁 국면은 낙동강까지 전선을 후퇴시켰고 폭발적인 소요에도 불구하고 각종 인력 동원은 법제의 공백으로 체계적으로 실시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인천상륙작전으로 군이 북진하자 노무인력 동원 범위는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기 동원한 노무자는 빈번히 부대를 이탈했고, 언어장벽과 업무 효율 등 문제가 계속 제기되어 노무인력의 조직화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다시 전선이 남하하여 현재의 휴전선 일대에서 고착되자 미군은 노무인력 조직화에 박차를 가하게 되고 한국노무단이 창설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KSC의 창설은 단지 미 제8군의 필요에 따른 일방적 정책 구현은 아니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예비병력과 비전투병력의 총 결집을 통한 총력전 체제로의 전환을 기도하였고, 1950년 12월 ‘국민방위군’을 창설하였으나 이른바 ‘국민방위군 사태’로 국민방위군은 반년 만에 해체된다. 그리고 미 제8군과 마찬가지로 노무인력의 체계적인 동원의 필요성을 전쟁 기간 내내 몸소 겪은 국군은 예비인 제5군단을 창설한다. 이것은 국민방위군 소속이었던 인원들을 다시 흡수하여 5개의 사단 규모의 병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한·미 양국의 필요가 합치되어 제5군단을 모체로 KSC가 창설되었고 그것은 작전지속지원을 위한 ‘근무 부대’로서 운영된다. This paper takes an overall look at the form and operation of the labor force mobilized during the Korean War, with a particular focus on the Korean Service Corps(KSC) under the Eighth U.S. Army. Despite the UN Forces’ participation at the beginning of the war, the front line ended up being pushed down to the Nakdong River. Attempting to overcome this crisis, South Korean President Syngman Rhee appealed to the whole nation for voluntary assistance in the war effort. However, due to the lack of legal basis for the mobilization of reserve forces and laborers and the declaration of emergency martial law leading to men being conscripted on the streets, systematic mobilization was unable to be implemented. About one month after the war broke out, the "Special Measures Ordinance on Punishment" was enforced, laying down the legal basis for conscription and mobilization. However, due to the increase in the number of refugees and floating population, systematic mobilization could still not be carried out as administrative procedures were difficult to implement. The range of the Eighth U.S. Army’s labor mobilization expanded across the country as the Incheon landing cleared the frontline and the military advanced northward. However, some of the refugees who were mobilized during the Nakdong River battle went missing while following the U.S. military northward. Moreover, problems such as the language barrier and the work efficiency of the Korean labor force were continuously made apparent, raising the need to organize the workforce. As the front lines again moved southward with the entry of the Chinese military and the conflict turning into a war of attrition along the present-day demarcation line, the organization of the workforce was stepped up, resulting in the establishment of the KSC. The creation of the KSC was not just in accordance with the needs of the Eighth U.S. Army. The Korean government attempted to create a national all-out war system by combining the reserve and non-combat forces. It established the "National Defense Corps" in December 1950, but due to the so-called "National Defense Corps issue," the National Defense Corps was disbanded after half a year. The Korean Army, feeling the need for the systematic mobilization of the labor force throughout the war just like the Eighth U.S. Army, established the Fifth Corps, a reserve unit. It aimed to reabsorb personnel from the National Defense Corps to secure troops enough for five divisions. Meeting both the needs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the KSC was established with the Fifth Corps as its parent institution. Since the armistice agreement, all labor organizations have been gradually dismantled, with some remaining as the current KSC. Despite its distinctiveness, the KSC was termed the 'vacuum of Korean War research' because it had not received attention in either history or military studies at home or abroad. Therefore, this research’s significance lies in finding historical significance by following in the footsteps of those who existed at the center of Korea’s national trag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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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기 공산군의 유엔군 포로 관리와 성격

          나상철 육군군사연구소 2019 군사연구 Vol.- No.148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management of the UN POWs of the Communist Army during the Korean War from the military historical perspective, focusing on the US POWs. The North Korean army had not established a prisoner policy until just before the invasion. Therefore, many Korean soldiers and Smith Special Forces, who were prisoners of war in battle with the North Korean army, were killed or forced to march to the last part of the North Korean army, the Yalu River, which is the rear of North Korea army. In the process, many of the prisoners died due to lack of nutrition and physical strength. This situation continued even after March 1951, when the responsibility of the prisoner management was transferred to the Chinese army involved in the war. The confusion of the North Korean prisoners' policy continued until the last moment of the repatriation of prisoners under the armistice agreement. Before historical-reconstructing the management of the prisoners of the Communist Army, Chapter II of this paper diagnoses the reliability of the prisoners announced by the Communist Army. In this chapter, we will confirm that the North Korean military has accepted the international Red Cross agreement very selectively and as a result, the number of prisoners is reduced and concealed. Chapter III reconstructs the reality of prisoner camps. The main contents are march, daily life, interrogation and propaganda, and Indoctrination(political learning). We’ll see how they created collective memory, which is represented by death, for prisoners. In the last chapter, Chapter IV, I intend to make the above-mentioned things conceptualized and visualized to indirectly experience the prisoner camp and improve understanding of it. 본 연구는 軍事史적 관점에서 한국전쟁기 공산군의 유엔군 포로 관리에 대해 미군 포로를 중심으로 하여 고찰 한 것이다. 북한군은 남침을 개시하기 직전까지 포로 정책을 수립하지 못한 상태였다. 때문에 국군과 스미스 특수부대는 북한군과의 조우로 전쟁포로가 되어 다수가 사살되거나 북한군의 최후방인 압록강을 향한 가혹한 행군을 감수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포로들은 영양 부족과 체력 저하로 인해 다수가 사망하였다. 이것은 중공군 개입 후 1951년 3월경 포로 관리 책임이 중공군으로 이전된 이후에도 지속되었으며 포로 송환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단지 정전협정의 기조에 따라 처우의 개선과 퇴보는 반복되었다. 공산군의 포로 관리를 재구성하기에 앞서, 본고의 Ⅱ장에서는 공산 측이 발표한 포로 현황의 신뢰성 여부를 진단한다. 이 장에서는 북한군이 국제적십자협정을 매우 선택적으로 수용하였고, 그 결과 포로의 수가 감소, 은폐됨을 확인하고자 한다. Ⅲ장과 Ⅳ에서는 포로수용소의 실상을 재구성한다. 주요내용은 행군, 일상생활, 심문과 선전, 정치학습으로 각각이 어떻게 포로들에게 ‘죽음’으로 대변되는 집단기억을 야기 시켰는지 확인한다. 마지막장인 Ⅴ장에서는 본문을 정리하고 공산군의 포로 관리와 포로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 KCI등재

          Impedance Spectroscopy of Resistance Switching in a Pt/NiO/Pt Capacitor

          나상철,Min Chul Chun,김재준,손정욱,Sunkak Jo,김현진,강보수 한국물리학회 2013 THE JOURNAL OF THE KOREAN PHYSICAL SOCIETY Vol.63 No.12

          A unipolar resistance switching (URS) Pt/NiO/Pt thin film structure was successfully depositedby sputtering. Each state was analyzed by using impedance spectroscopy. The equivalent circuitof the pristine state consists of resistor-capacitor parallel circuit. The low-resistance state couldbe described by using a single resistor. The high-resistance state comprised parallelly-connectedresistor and constant-phase element, plus a serial inductor. Our results are in good agreement witha model for the formation/rupture of conducting filaments in the URS phenomenon.

        • KCI등재

          Different Set Processes for Bipolar Resistance Switching in a Ta/TaOx/Pt Thin Film

          나상철,Min Chul Chun,김재준,강보수 한국물리학회 2014 THE JOURNAL OF THE KOREAN PHYSICAL SOCIETY Vol.65 No.7

          We observed two different set processes, gradual and avalanche, for the resistance switching (RS)of a Ta/TaOx/Pt thin-film device. The gradual and the avalanche set processes could be controlledby adjusting the external reset voltage. From the current-voltage curves and the effectivethickness of the insulator layer, we demonstrated that the resistance states leading to gradual andavalanche set processes were dominated by interface-limited and bulk-limited conduction mechanisms,respectively. A possible model with different effective insulator thicknesses is proposed basedon conducting channel formation due to oxygen vacanc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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