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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란직후 상주 지역질서의 재편과 존애원<SUB>存愛院</SUB>

        김형수(金炯秀) 한국국학진흥원 2016 국학연구 Vol.0 No.30

        임진왜란은 조선사회에 매우 큰 충격을 역사적 사건이었다. 특히 전쟁의 피해가 가장 컸던 경상도는 전쟁 이후 새로운 질서를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전쟁 이후 재건의 중심에는 사족士族들이 있었고, 이들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을 바탕으로 지역사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상주지역은 임란 초기 북천전투의 패배로 인하여 구심점을 잃고, 산속으로 숨어들어갔으나, 선조의 교서, 김성일의 격문 등을 근거로 김각金覺 · 김홍민金弘敏 · 이봉李逢 등이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전투하여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이들은 전쟁이 끝난 뒤 상주지역의 서애문인들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의 재건을 도모하게 되었다. 이들은 향안鄕案의 중수, 향약鄕約의 시행등 예교(예의와 교화)를 우선으로 하는 개건 방향을 정하였으며, 그 중심인물은 김각 · 정경세 · 이준李埈 · 이전李㙉 등이었다. 이들은 우선적으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국醫局인 존애원存愛院을 창설하여 의료활동을 전개하였다. 존애원은 의국으로 출발하였으나, 백수회白首會를 개최하고, 교육장소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존애원은 17세기 중엽 급격히 쇠퇴하였다. 1607년 도남서원이 창설됨으로 인하여 사족들의 교육공간으로서의 기능과 여론 형성 장소로서의 역할은 도남서원으로 넘어갔으며, 재정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17세기 중반 이후에는 의국(병원)으로서의 기능도 상실하였다. 상주지역의 서애문인들은 상주지역의 현안이 전쟁으로 황폐해진 전답 등을 소복하여야 하는 것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충격은 이들에게 경제적인 소복보다는 다른 차원의 질서를 건립하도록 하였다. 전쟁과정에서 나타난 인륜의 파괴는 이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들은 결국 임란 이후 질서 재편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예교의 복원을 들고, 이를 위하여 존애원의 창건과 향안의 중수 및 향약의 실시를 시도하였던 것이다.

      • KCI등재

        자기조절학습에서 인지적 효율성의 즉시적 자기평가 효과 추이

        김형수(金亨洙), 김동일(金東一), 최한나(崔한나)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2010 아시아교육연구 Vol.11 No.2

        본 연구에서는 인지적 효율성의 자기 평가적 요소가 자기조절학습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밝히기 위하여 웹 기반 자기조절학습 프로그램을 구현한 후, 반복적인 자기 평가 및 평가 결과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인지적 효율성의 변화 추이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인지적 효율성이 학습자 자기평가의 구체적인 지표로써 활용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 본 연구에서는 경인지역 중학생 54명을 대상으로 비교집단과 실험집단을 구성하여 영어교과목에 대한 웹 기반 자기조절학습 프로그램을 4주 20회기에 걸쳐 실시하였다. 비교집단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되 평가는 피드백 없이 사전-사후 검사만을 실시하였으며, 실험집단은 성취도 검사와 난이도 평정을 매주 한 번씩 총 4회 실시한 후 매번 프로그램 상에서 평가결과의 개인 간 비교치 및 개인 내 변화치에 대한 피드백을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인지적 효율성은 검사에 대한 난이도를 자가 평정하여 난이도 대비성취도 점수의 형태로 산출하였다. 결과분석은 첫째, 프로그램의 효과크기 산출, 둘째, 비교집단과 실험집단 간 성취도, 난이도 인지적 효율성 평균차이 분석 그리고 셋째, 인지적 효율성의 반복평가 추이에 대한 반복측정 분산분석 순으로 진행하였다. 분석결과 우선, 실험집단은 큰 효과크기(.85)를 나타냈다. 그리고 비교집단은 중간정도의 효과크기(.66)를 나타냄으로써 프로그램의 전체적 효과의 적정성과 인지적 효율성의 반복 평가 적용에 따른 상대적 효과를 확인하였다. 둘째, 사후 비교 - 실험 집단 간 차이를 분석한 결과 실험집단의 성취도와 인지적 효율성이 유의하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난이도 인식 변화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셋째, 인지적 효율성은 반복 평가 과정을 통해서 유의한 선형의 상승을 나타냈다. 인지적 효율성이 산출과정에서 이미 성취도를 내포하는 변인이므로 성취도의 변화는 인지적 효율성과 변화를 같이 할 수 있다. 다만, 인지적 효율성의 반복 평가 과정에서 인지적인 부하감이 다소 줄어들고 따라서 동일한 성취도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더 쉽게 도달 할 수 있을 것으로 지각하게 한다는 덤은 인지적 효율성이 학습자의 학업 수행에 대한 선행 평가 지표로서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the effect of repeated immediate self-evaluation of cognitive efficiency in self-regulated learning. In this study, 54 middle school students(male: 26, female: 28) participated in 20 session web-based self-regulated learning program for 4 weeks. 24 participants were assigned to experimental group and 30 participants were assigned to the control group. For the control group, participants" cognitive efficiency were evaluated before and after the program without immediate self-evaluation in the program. For the experimental group, participants" cognitive efficiency were evaluated once a week and monitored in the program. The cognitive efficiency was calculated by scores of participants" achievement tests depending on participants"s own rating of the difficulties of achievement tests. We examined the effect size of the program, the difference of achievement, difficulties, and cognitive efficiency between experiment group and control group. We also analyzed the variance of repeated measures for trend of repeated immediate cognitive efficiency evaluation. The results were followings: First, the effect size of the experimental group was .85 while that of control group was .66. Second, the level of achievement and cognitive efficiency for the experimental group improved significantly than those for the control group. However, participants" perceived difficulties did not make a significant difference. Third, the linear improvement of cognitive efficiency was found for the experimental group which included participants" repeated self-evaluation. The results of this study implied that cognitive efficiency could be considered as one of the indexes of learners" self-evaluation on their self-regulated learning behaviors.

      • KCI등재

        조선 중 · 후기 안동지역 사원의 동향과 용수사의 운영

        김형수(金炯秀) 한국국학진흥원 2017 국학연구 Vol.0 No.34

        조선왕조는 건국하면서 억불숭유抑佛崇儒정책을 표방하였다. 태종은 사원寺院의 토지와 노비를 몰수 하면서 불교계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켰다. 임진왜란 이후 불교는 다시 부흥의 기회를 맞을 수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활동은 당시 불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지배층의 인식을 바꿀 수 있었고, 조선후기 광범하게 진행되던 토지의 사유화와 산업의 발달은 전란으로 피해를 입은 사원을 재건할 수 있게 하는 경제적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안동지역 사원을 재건할 때 대부분 사원 소속의 승려들이 주도하고, 승려들이 재원을 염출하여 공사를 진행해가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예안의 용수사의 경우 예안지역을 대표하는 사원으로 고려 명종대 창건된 사원이었다. 조선초기 불교계가 상당히 난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16세기까지는 조선은 불교의 영향력이 강한 국가였다. 그러므로 용수사는 예안지역의 사족들과 연대를 하면서 19세기까지 어느 정도 절을 유지할 수 있었다. 16세기 이후 조선의 사상계가 성리학을 중심으로 강력한 결집력을 보이고 있었지만, 유학자 이외에 지식인으로서 승려집단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승려들과 유학자들은 상호 긴밀한 교유를 하고 있었다. 특히 용수사의 경우 도산서당을 용수사의 승려들이 짓는 등 퇴계학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임란이후 태백산 사고를 수호하는 승군을 내어야 하는 사원이었으므로 국가적 차원에서 보존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용수사는 1728년 무신란 당시에도 무기를 낼 수 있었고, 19세기까지 사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용수사는 퇴계학파의 초기부터 이황과 그의 문인들이 학문적 토론을 하는 장으로 이용되었고, 이러한 관계로 말미암아 퇴계학파의 후학들은 용수사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1744년 이세택이 『용산지』(『광려지匡廬誌』)를 저술한 것도 용수사가 퇴계학파의 연수 중의 한 곳이라는 확고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The Joseon Dynasty proclaimed the policy of respect for confucianismbut restraint for buddhism. King Taejong confiscatedlands and slaves of buddhist temples in order to undermine the economicbase of buddhism. Buddhism took the chance of revival after Japanese invasion in1592. The performance of monk soldiers during Japanese invasionin 1592 could change the negative perspective of ruling class onbuddhism. The privatization of land and development of agriculturein the late of Joseon Dynasty became economic backgrounds for reconstructingtemples damaged by the war. Buddhist monks led thereconstruction of temples in the Andong area as contributing expensesafter the war. Yongsusa(龍壽寺), a representative buddhist temple in Yean, was built during King Myeongjong's reign of Goryeo. Although buddhism was faced with difficult situation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it had remained a powerful influence until the 16<SUP>th</SUP> century. Thus, Yongsusa had been remained through solidarity with the local gentry in Yean until the 19<SUP>th</SUP> century. The philosophical world of Joseon Dynasty united strongly with focusing on neo-confucianism after the 16<SUP>th</SUP> century. However, buddhist monks and confucian scholars interacted closely with each other because the monk school as well as confucian scholars had belonged to intellectuals until then. The monks of Yongsusa, in particular, had close relationships with Toegye school by constructing Dosan Seowon(陶山書院). Yongsusa also deserved to be preserved at the national level since it sent monk soldiers to protect a library in Taebak mountain after Japanese invasion in 1592. Therefore, Yongsusa had remained until the 19<SUP>th</SUP> century as producing weapons for military coup in 1728. Followers of Toegye school recognized positively Yongsusa because Lee Hyang and his scholars had used the temple as a space for academic discussion. Since Lee Saetaek firmly believed Yongsusa as an education institute for Toegye school, he wrote Yongsanji in 1744.

      • 노인의 종교성에 따른 심리적 안정감 및 죽음태도 차이

        김형수,김지민 숭실대학교 부부가족상담연구소 2013 가족과 상담 Vol.3 No.1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 연구는 노인의 종교성에 따른 심리적 안정감 및 죽음태도 차이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 다.이를 위하여 서울,경기,인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남녀 노인 25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통해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배부된 설문지 250부 중 총 209부가 통계분석에 사용되었다.수집 된 자료는 우선,인구학적 변인에 대해서 기술 분석을 실시하였으며,종교성에 따라 심리적 안정과 죽음태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상관분석 및 t-검증을 실시하였다.분석 결과,종 교성과 심리적 안정감 및 죽음태도의 변인이 유의한 상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조사대상 자의 종교성이 높을수록 심리적 안정감이 높고,죽음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인 경향을 보였다. 반면,종교성이 낮을수록 죽음에 대한 태도가 부정적인 경향을 보였다.이러한 결과는 우리나 라 노인들에게 심리적 안정감 및 긍정적인 죽음 태도를 제공하기 위한 변인으로서 종교성이 고려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 연속철근 콘크리트 포장체의 피로수명에 대한 실험적 연구

        김형수,윤기용 선문대학교 1999 공과대학논문집 Vol.1 No.2

        시멘트 콘크리트 포장은 대형 차량 하중에 대한 지지력이 좋고 수명이 길며, 시공 후에 잦은 유지 보수가 필요치 않다는 측면에서 국내 고속도로에는 1980년대 도입된 이후부터 그 사용이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앞으로 건설되는 대규모 고속도로들도 콘크리트 포장으로 시공할 가능성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균열에 의한 Punch-Out 파괴에 따른 콘크리트 포장의 수명을 규명하기 위하여 이론적 연구와 정적하중재하실험을 바탕으로 1/4로 상사한 시험체를 제작하였다. 콘크리트포장의 수명을 지배하는 파괴모드를 Punch-Out으로 가정하고, 피로하중의 응력수준을 Punch-Out이 발생할 때의 하중인 정적파괴하중으로부터 산정하여 피로실험을 실시하였다. 피로실험결과로부터 기존의 콘크리트포장의 파괴기준식과 비교한 결과 Vesic에 의한 결과와 잘 일치하는 것을 보여 주었다. 본 실험은 온도변화에 의한 열응력이나 동결융해 등의 환경적 요인이 배제되었으므로 피로수명의 상한값을 제시한다. The use of cement concrete pavement in the roadway system has increased since its first application in 1980's in Korea by virtue of its good durability and excellent load-resisting capacity. in this study, six 1/4 reduce specimens were tested to investigate the fatigue life expectancy of continuously reinforced concrete pavements(CRCP). A series of fatigue tests were performed with varying fractions of the static failure load thus determined by several static tests and finite element analyses. The results were shown very close to those based on the field study performed by Vesic in 1970. Nothing that the present tests do not include the environmental factors such as temperature stress such as temperature changes, and freezing and thawing, the fatigue life expectance determined from the present tests should be interpreted as upper bound values.

      • KCI등재

        조선왕조의 건국과 태조 즉위교서의 성격

        김형수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6 石堂論叢 Vol.0 No.66

        Koryo dynasty gave way to Joseon Dynasty on July 17, 1392. Lee Seonggae, King Taejo of the new dynasty, addressed an enthronement message as a new king after 10 days of accession to the throne, Although Jeong Dojeon made out the message, it incorporated reformation plans that confucian scholars had stated in late Koryo dynasty. Moreover, the enthronement message reflected overall opinions of founding contributors of Joseon dynasty. Koryo dynasty could not make a radical reform to rebuild the dynasty for internal conflicts and external conditions from Yuan dynasty. Koryo dynasty made clear national reform bills as types of enthronement message during Yuan intervention period. However, the bills were related only to political orientation of king and ruling forces, and were inadequate to implement practically radical reform. In such circumstances, courtiers who had been influenced by confucianism called for the organization of land system, a status system, and legal system since the period of King Gongmin. The land system was organized by Gwageon Law but status and legal systems remained unsolved problems. King Taejo, Lee Seonggae, addressed an enthronement message after 10 days accession to the throne. The message encompassed main policy directions on the organization and improvement of all political issues except a status system after Gwageon Law. In fact, King Taejo tried to make known the appropriateness of enthronement from both Heaven's will and popularity through the message. He also made clear that policy orientations of the new dynasty were based on confucian ideas as imposing confucian ancestrial rites. King Taejo's enthronement message was written by Jeong Dojeong and confirmed by King Taejo. The message contained the wills of courtiers who had called for the founding of Joseon dynasty. 1392년 7월 17일 고려왕조는 생명을 다하고 새로운 왕조가 건국되었다. 새로운 왕조의 건국은 4년 여의 긴 정변과정을 거치면서 또 여러 방면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루여 졌다. 신왕조의 태조로즉위한 이성계는 즉위 10일 후 국왕으로서 즉위교서를 발표하였다. 이즉위교서는 비록 정도전이 작성한 것이기는 하나 고려후기 이후 지속적으로 유자들이 요구해온 개혁방안들이 포함되었으며, 이는 조선왕조 개창자들의 의견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였다. 고려는 13세기 후반 원의 지배로 들어가면서 내부적인 모순과 원이라는 외부적인 조건으로 말미암아 국가를 갱신할 수 있는 근본적인개혁은 거의 할 수 없었다. 비록 원 간섭기 국왕의 즉위 또는 개혁교서의 형태로 개혁론이 천명되기는 하였으나, 이는 국왕과 집권세력의정치적 방향성을 천명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근본적인 혁신을 이루기에는 그 실행이 미흡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공민왕대 이후 유신들은토지제, 신분제, 법제 정비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다. 토지제는 공양왕대 과전법으로 정리가 되었지만 노비를 포함한 신분제와 법제의정비는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태조 즉위 10일 후 발표한 태조 이성계의 즉위교서는 과전법 개혁이후 남아 있는 제반 문제에 대하여 노비문제는 제외하고 지속적인개선 및 정비를 추진하고자 하였다. 이 즉위교서는 태조 이성계의 즉위명분을 천명과 민심에서 찾고, 유교적 예제의 정비를 천명함으로써신왕조의 정책적 방향이 유교적인 방향에서 제안된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태조 이성계의 즉위교서는 정도전이 작성한 것이기는 하나 조선왕조 개창에 적극적이었던 유신들의 의지가 포함된 것이었고, 태조는 추인한 것이었다. 실제로 신왕조 개창에 반대론을 제기한 설장수․이색․우현보 등 56인에 대하여 폐서인하고 해도에 귀양 보내도록 하는등의 조치는 다른 분야는 몰라도 정적의 숙청에 대해서는 태조 이성계와 사전에 논의되지 않은 것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과거제의 개혁과 公廉한 수령의 추천 선발 등은 고려후기 이래 유자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것이었다.

      • 디지털 방송과 영상콘텐츠

        김형수 한국방송공사 2003 방송 문화 연구 Vol.15 No.2

        The The study provides ---by systematically understanding the properties of matter, as a means, of visual media contents in the era of digital broadcast--- a standpoint to practically understand and utilize the production solution for visual media contents which is using an up-to-date digital technology. Complicated and various cultural productions and expressive modes ---which are created through the connections among hardware, software and contentware offered by interactive digital multimedia--- basically accompany visual media contents. Visual media contents is becoming a new cultural existent mode by performing visual media technology based on hardware and software and utilizing & composing artware which reveals audio-visual communication capability. Since digital broadcast is transforming and expanding the forms and contents of visual media contents using new types of interface and interaction, the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properties of matter of visual media contents will grow day by day. Creativeness and ideas of humans are reborn as new forms of properties of matter through materialization such as audio-visualization. The forms and contents of the process also have to relay on the properties of matter of visual media contents and the results are becoming the forms and contents of visual media contents. Accordingly, further systemizing social discussions and views on the materialization method and the composition of real existence which the properties of matter possess will help establish a viewpoint which can tune the gap between our cognition and visual media world which can be realized by technology. 본 연구에서는 디지털 방송시대의 영상콘텐츠의 도구적 물성을 체계적으로 파악하여,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영상콘텐츠 제작 솔루션을 실제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관점을 마련하고 있다. 인터랙티브 디지털 멀티미디어 환경에서 제공하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컨텐트웨어 간의 연계를 통해서 창출되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문화생산과 표현양식들은 기본적으로 영상콘텐츠를 수반하고 있으며, 이제 영상콘텐츠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의한 테크놀로지의 운용과 시각적, 청각적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발현하는 아트웨어(artware)의 구성과 활용에 의해 새로운 문화적 존재양식이 되고있다. 디지털 방송환경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인터페이스와 인터랙션을 사용하여 영상콘텐츠의 형식과 내용을 변형 및 확장시키고 있어서, 영상콘텐츠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물성은 날로 커질 것이다. 인간의 창의성과 아이디어가 시각화, 청각화 등의 물화를 거쳐 새로운 형태의 물성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 과정의 형식과 내용 또한 영상콘텐츠의 물성에 의존해야 하며, 그 결과도 영상콘텐츠의 형식과 내용이 되고 있다. 따라서, 영상콘텐츠의 물화방식과 물성이 갖는 실재의 구성에 대한 사회문화적 논의와 관점을 보다 체계화시켜 우리의 인식과 테크놀로지에 의해 구현되는 영상세계간의 간극을 조율할 수 있는 관점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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