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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트리피케이션 발생지역에서 상권 활성화에 따른 프랜차이즈 분포 및 특성에 관한 연구

          김창호(Kim, Chang-Ho), 김환용(Kim, Hwan-Yong), 나인수(Na, In-Su) 한국BIM학회 2018 KIBIM Magazine Vol.8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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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ntrification is appearing in various areas. Especially commercial gentrification, the value of property is rising and it means the change of commercial sphere in revitalizing the underdeveloped commercial. In this study, Identify the process of increasing the franchise rate, which is changing gradually in commercial areas. We analyze prior studies on gentrification and franchise. Identify changing of land use distribution in Samcheong-dong area and analyze franchise change process. As a result of analyzing the changing of land use in Samcheong-dong area, the number of houses and other uses has continued to decrease. In the case of franchises, it increased sharply and in the case of general commercial, it steadily decreased. Looking at analyzing the franchise change process in Samcheongdong area, In the franchise change process, there is very little change in land use from residential and other uses to general commercial. Representative spaces that show the process of franchise change are around the three-way streets, around the community service center and around the police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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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조선 전기 한시에 나타난 ‘소[牛]' 形象의 변화와 그 의미

          김창호(Kim Chang ho) 대동한문학회 2016 大東漢文學 Vol.48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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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the changes and meanings of the image of the cow in Sino-Korean poems written during the Koryo and Early Joseon Dynasties. The cow appears in various records about the period of the Three Korean /Kingdoms before Sino-Korean poems were created actively. Such records can be obtained mainly from Samguksagi and Samgukyusa, and they are related to a large variety of areas including people's lives, national policies, military, transportation, religion, and language life. This is the consequence of the fact that the cow was used in agriculture and incorporated into people's daily living and, as a result, it was treated as an important source of workforce and property. Particularly with the import of Buddhism, the cow appears in Buddhist stories in the context of explaining Buddhist doctrines and practices such as transmigration. This suggests that the cow was advancing gradually from the domain of daily living to the domains of spirit, idea, and culture. The cow emerges with a characteristic image in the liberal ideological atmosphere in the early Koryo Dynasty. In the record about Yoon Eon-yi (尹彦頤) and in Gwak Yeo's(郭輿) works, we can see that the cow melted naturally as an element into the expressions of the Buddhist view of life and Taoist spiritual orientation. The image of the cow is associated with meanings such as naturalness, far-sighted view, non-restraint, and mental freedom(達觀, 無拘束, 不羈). Through the mid period of the Koryo Dynasty, there were some changes in the view of the cow, but such changes did not bring forth a change in people's perception of the cow. The cow was again incorporated into the frame of pastoral scene, and with the acceptance of Neo-Confucianism, it represented a rural life in opposition to rising to a government position. To those who refused to cooperate with the emerging dynasty or chose retirement at the end of the Koryo Dynasty, on the other hand, the cow emerges in association with their life attitude pursuing self-sufficiency or mental freedom. With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there was a clear distinction between those who entered the government service and those retired from the service, and this was represented by spatial division. To those in the government service, the country is described as a place ‘far away,' ‘yearned after,' and ‘home to return in the future' The development of poetic image to the plot of entering into/retiring from the government service or yearning for a rural life also shows the tendency of institutionalization. In some works, however, such a tendency is overcome as the poet's awareness of problems or circumstances is involved. As social contradictions accumulate and political strives grew harsher, the cow appears as a means of political communication. This is related to Do Hong-gyeong's ancient story of two cows. To them, the presentation of the cow was an implicit expression of distancing from and rejecting the world. This suggests that the image of the cow continuously became an object of interest in connection to the political realities. 이 글은 고려~조선 전기 한시에 나타나는 소[牛] 형상의 변화 과정을 살피고 그 의미를 해명하고자 한 것이다. 본격적인 한시 창작이 이루어지기 전인 삼국시대 관련 기록에는 ‘소'가 다양한 분야에서 등장한다. 주로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 의 내용을 통해 확인 가능한데, 백성들의 삶, 국가 정책, 군사 및 운송, 종교 및 언어생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걸쳐있다. 이는 소가 농사에 이용되고 생활 영역 안으로 들어오면서, 노동의 원천이자 재산으로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던 것과 관련이 있다. 한편 불교의 전래와 함께 불교 설화에서 소가 불법의 수행, 윤회 등의 설명 맥락에서 등장하며, 생태와 관련한 신이한 현상이 국가적 흥망성쇠의 조짐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소가 생활의 영역에서 정신, 관념, 문화의 영역으로 서서히 진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조에는 농본적인 정치 체제가 갖추어져 간다. 봉사와 교서에서 농사시기를 알리는 ‘土牛'가 언급되며, 칠석날 견우・직녀에게 제를 올렸다는 기록도 보인다. 소는 고려 전기의 자유로운 사상적 분위기 속에서 개성적인 이미지로 등장한다. 尹彦頤에 관한 기록이나 郭輿의 작품에서 불교적 인생관, 도가적 정신지향의 표현에 소가 한 요소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 ‘자연스러움', ‘達觀', ‘無拘束', ‘不羈' 등의 의미 계열 속에 소의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다. 중기를 지나면서 소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포착된다. 대표적인 예가 무신집권기에 활동했던 李奎報의 작품이다. 그는 소의 입장에서 소의 고통과 아픔을 대변하고 인간의 과욕을 나무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이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소'는 다시 목가적 정경의 구도 안으로 편입되고, 성리학 수용 이후 환로와 상대적 의미를 가지는 전원적 삶을 대변하게 된다. 한편 여말 새 왕조에의 협조를 거부하거나 은거를 택한 이들에게, 소는 自足이나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는 삶의 태도와 관련을 가지며 등장한다. 조선 왕조에 들어서면 출처 관념이 자리잡으면서 공간의 분화가 뚜렷해진다. 환로에 있는 이들에게 전원은 ‘멀고', ‘그립고', ‘돌아가야 하는' 곳으로 그려진다. 환로/전원의 구도나 전원에의 동경으로 귀결되는 시상 전개는 관습화의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부 작품에서는 시인의 문제의식이나 처지의 문제가 개입되면서 그러한 경향을 극복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成侃의 시에 등장하는 牧牛는 ‘태고적 순수성'을 의미하며, 金時習의 시에서는 ‘일상의 권역에서 누리는 평온한 삶'을 상징한다. 한편 환로와 대척적인 지점으로서의 전원의 성격이 모호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성종 조문사들에게 두드러졌던 낙관적 세계관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회 모순이 누적되고 政爭이 격화되면서, 소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도구로 등장한다. 이것은 陶弘景의 二牛 故事와 관련을 가진다. 李滉은 도로 위의 분망한 소와 초야에서 한가함을 누리는 소의 대비를 통해, 자신이 지향 했던 退隱의 삶을 넌지시 내보이고 있다. 林悌의 글에 제시된 鄭碏의 소 그림도 은거의 가치를 지지하는 내용이다. 이들에게 ‘소'의 제시는 세상에 대한 완곡한 거리두기이자 거절의 의사였다. 이우 고사의 전통선상에서 沈義의 <畫二牛賦>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는 긍정 일변도로 수용되던 이우고사의 소가 산중재상으로 탐심을 감추고 있던 도홍경에게 이용되었음을 증명한다. ‘소'의 형상이 정치 현실과의 연관 속에서 부단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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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위(曺偉) 시(詩)에 나타난 15세기(世紀) 후반(後半)의 관인상(官人像)과 그 의미

          김창호 ( Chang Ho Kim ) 한국한문고전학회(구 성신한문학회) 2012 漢文古典硏究 Vol.25 No.1

          이 글은 조위 시에 나타난 15세기 후반의 官人像에 대해 알아보고, 그것이 조선 전기 時代精神의 변화 가운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규명하는 데에목표를 둔다. 조위의 관인상 형성의 배경에는 두 축이 있다. 하나는 자형이자 스승인 김종직으로, 그는 조위에게 유가적 근본이념의 탐구와 실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한편, 그러한 이념적 지향을 바탕으로 새 시대를 열어나가기를 기대했다. 또 하나는 당숙인 조석문으로, 조위를 경화 사회에 훈구가문의 일원으로 인식하게 하는 한편, 그가 이른 나이에 경화문화적 체질을 형성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상대적인 성향의 두 사람을 통해 조위는 당대에 필요한 관인적 능력을 갖추어 가면서, 관인으로서의 지향 정립에 필요한 사고와 감각을 갖추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관인상'은 임금을 보좌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로서 지향하는 이상적 지점이면서, 직접적으로는 시대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을 규율하고 실천의 방향을 정립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조위의 관인상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태평 성세로 자부하는 당대에서의 ‘聖君을 보좌하는 盛世의 官人'의 像이다. 이는 시대에 대한 자신감 또는 낙관적 사고의 반영으로, 봄볕같은 성세의 혜택을 입으면서 그러한 성세를 지속시켜 나가야 한다는 책임 의식과 관련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진사류적 의식과 관련된 것으로 ‘自己檢束을 바탕으로 道義를 견지하는 관인'의 상이다. 신진사류와의 연대 속에서 학문적ㆍ정치적신념의 실천에 대한 기대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이 가운데 특히 민생을 우선시하고 時政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 태도와 관계된 것이다. 시대적인 흐름을 볼 때, 조위가 활동한 시기는 정치권력이나 학문권력의면에서 훈구로부터 사림으로의 점차적인 이동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김종직 진출 이후 조위, 金宏弼, 金馹孫등으로 이어질 무렵에 사화가 일어나고, 극심한 피해가 있었지만, 종국적으로는 16세기 후반 사림의 승리로 귀결된다. 조위의 시에 나타나는 두 관인상은 훈구로부터 사림으로 정치ㆍ학문 권력이 이동하기 시작하던 15세기 중ㆍ후반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時代精神의 점차적인 변화라는 측면에서도 설명 가능하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images of the 15th century`s bureaucrats in Jo Wi`s poems, and what implications they have with changes of zeitgeist in the early Joseon period. There were two bases of the formation of Jo`s images of bureaucrats. One is his brother-in-law and teacher, Kim Jong-jik, who woke up Jo about the importance of the exploration and practice of the radical ideologies of Confucianism, and expected him to open a new age on the basis of such an ideological orientation. The other is his uncle (his father`s cousin) Jo Seok-mun, who got Jo Wi to recognize himself as a member of a Hungu family in capital society, and helped him to be equipped with capital-cultural features in his early days. The `images of bureaucrats` not only meant ideal points toward which officials who assisted the king and govern people should be oriented, but also directly refer to directions in which they disciplined themselves and established their practice on the ground of the evaluation of the times. Jo`s images of bureaucrats can be summarized generally in two dimensions. In one dimension, they are ``officials assisting the lord in the reign of peace`` in the days of King Seongjong, which the poet himself regarded as the reign of peace. This was a reflection of his confidence in the times or optimistic thoughts, and the officials in those images appeared to vow to fulfill their responsibilities in keeping the time of prosperity. In the other dimension related with neo-bureaucratic consciousness, they were ``officials maintaining morality on the basis of self-regulation.`` In particular, they put priority on public welfare, and were willing to criticize political situations at that time. The parallelism between the two images of bureaucrats in Jo Wi`s poems well reflect the aspects of the middle and late 15th century, in which politics, scholarship, and power began to move from Hungu to Sarim. This can be accounted for on the side of changes of zeitg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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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曺偉 詩를 通해 본 15世紀 後半 文學 地形의 一面

          김창호(Kim Chang-ho)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08 동양한문학연구 Vol.26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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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曺偉 시에 나타나는 新進士類的 志向의 推動力을 확인하고 그간 연구가 미진했던 館閣文學的 性格을 부각시킴으로써, 조위 문학의 온전한 이해에 도달하고, 이를 통해 15세기 후반 문학사의 이해에 필요한 몇 가지 문제를 전망하고자 했다.<BR>  조위는 일찍부터 스승 金宗直의 학문적 영향을 받았고 출사 초반 젊은 관리들과의 유대를 공고히 하면서 신진사류로서의 분명한 지향을 정립한다. 그것은 관리의 본분을 자각함으로써 治道에 보탬이 되고자 하며, 백성의 어려움을 함께 하는 동시에 時政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관리로서의 다짐을 노래하고 민생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작품의 기저에서 이 같은 지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BR>  한편 조위의 생애를 보면 소년기에 당대 훈구관료인 曺錫文의 漢陽 집에 머물며 과거를 준비한 것을 알 수 있다. 조석문은 부친 曺繼門의 사촌형으로 世祖의 집권을 도와 영의정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이른 시기의 한양 생활에서 그는 훈구가문과 접촉하고 京華文化를 체험하면서 관각 문학적 교양을 갖추게 된다. 김종직은 이러한 면을 염두에 두고 그의 작품에 대해 “流麗하여 服粉의 態가 있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당대 老成한 관각 문인들 사이에서 관각의 인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 자신도 사대외교에 필요한 창작문제에 대해 고민했으며, 국가적 문화사업에 참여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BR>  이러한 측면 이외에 조위 시문학의 이해와 관련하여, 15세기 후반의 정치 상황과 문학 기풍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는 신진사류와 훈구세력의 정치적 대립이 지속되는 한편, 조정에서는 好文君主 成宗에 의해 문학 숭상 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은 조위에게 있어서 이른 시기부터 다져온 신진사류로서의 문학 정신을 발양하는 한편, 관각의 효용에 필요한 문학 창작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BR>  한편 성종조의 독특한 문학 환경과 이에 따른 문인들의 동향에 대해서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무렵 임금을 정점에 둔 사장 확산의 분위기는 經術對 詞章의 문학 구도에 미묘한 파장을 가져온 면이 있다. 당시 徐居正은 문사들이 浮誇를 숭상하며 性理之學에 뜻을 둔 이가 없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사장 편중의 문학 풍조가 가져올 폐단에 대한 염려이지 훈구문인인 그가 경술로의 근본적인 문학 노선 수정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마찬 가지로 조위도 당시 관각 인재로 인식되었고 사장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정신지향의 면에서 여전히 신진사류로서의 비판적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조위 문학 성격의 규명은 어느 일방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신진사류적 지향, 관각문학적 성향 등을 포괄하고, 당대 문학 풍조를 고려한 바탕 위에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동시대 문사들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각자의 정치적 위치, 행력 등에 따라 나타나는 문학 지향 및 작품 실제의 混在的 性格, 接點的 位置 등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요구된다.   This paper aims to reconsider an aspect of the late 15th century"s literary history through characteristic features of Jo Wi"(曺偉)s poetic literature.<BR>  As for the late 15th century"s literary history, it is mostly the case that whether it is about the period or individual writers, work has its subject attributed to Hungu(勳舊), Sarim(士林), Gyeongsul(經術), or Sajang(詞章).<BR>  As Jo Wi also was a student of Kim Jong-jik"(金宗直)s, he has been empathized as one of the early figures from Sinjinsaryu(新進士類) "New officials" in the days of King Songjong(成宗), and his hiterary spirit also has been dealt with from this perspective. However, on the other hand, he was a member of the family that gave birth to Jo Seok-mun(曺錫文), a Hungu bureaucrat who helped King Sejo(世祖) sit on the throne. While staying at Jo Seok-mun"s house in Seoul during his childhood, Jo Wi studied for the state examination, and experienced Gyeonghwa Munhwa(京華文化) "Capital Culture."<BR>  Young Jo Wi"s self-image was formed with his establishment of orientation toward the intention to care people"s life and devote himself to Chido(志道) "the political Tao," which had been formed while he received his teacher Kim Jong-jik"s educatin and worked with young officials since going into government service. This seem to have fed the driving force of Jo"s consciousness as a Sinjinsaryu.<BR>  Another side of Jo Wi"s poetry had to do with his role of leading cultural projects at that time. Though such a property was criticized by Kim Jong-jik who claimed that it had "Jibun-eui Tae"(脂粉의 態) "traces of cosmetic powder," Jo Wi, based on his experiences in Gyonghwa Munhwa and interpersonal relations since his earlier days, showed his outstanding ability in diplomatic affairs, which required the ability of writing. Also, he was recognized as a man of ability in Gwangak(館閣). Seongjeong as King who likes literature had him engage in the work ultimately finishing Dusieonhae(杜詩諺解).<BR>  Jo Wi so far has been prominently presented mainly in tandem with his spiritual aspects as a member of Sinjin Saryu. On the other hand, we should, however, look into his work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fact that he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late 15th century"s cultural projects. I expect that we can more richly explain the late 15th century"s literary history by digging up the implications of Jo Wi"s works as well as his personal proper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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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민 영어교사와의 협동수업의 실태 분석

          김창호(Kim, Chang-ho) 현대영미어문학회 2009 현대영미어문학 Vol.27 No.3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the present conditions about the team teaching with native English teacher in middle schools in Jeollabukdo and try to find out more effective team teaching directions. Questionnaire to middle school students revealed that the team teaching has a positive effect on students' affective domains in English learning. Also it showed that English teachers are very positive to team teaching. Based on these findings, we suggest that more training on both Korean teachers and native teachers, enriched systematic team teaching materials as well as lots of financial support for this program should be needed in order to carry out the successful team t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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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初等學校) 한자교과서(漢字敎科書)에 있어서의 고전자료(古典資料) 활용(活用)에 관하여

          김창호 ( Chang Ho Kim ) 韓國漢字漢文敎育學會 2009 漢字 漢文敎育 Vol.23 No.-

          이 논문은 초등 한자교과서에 古典資料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 아래, 구체적인 주제와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 것이다. 한자교과서의 내용을 구성하는 單語의 상당수는 근대 서구의 학문체계 및 분류에 기반하고 있다. 造語原理의 면에서 이전부터 쓰여 온 漢字를 조합하였고 또 漢文構造의 장점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 사상적·정서적 기반은 전통문화와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한자, 또는 한자가 조합된 단어의 학습이 전통문화의 이해를 담보한다는 막연한 오해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언어생활이 중심인 초등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전통문화 및 가치와 관련된 요소를 의도적이고 체계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풍부한 문화유산인 고전자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자료의 선정에는 몇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 先人들의 삶의 모습과 정서를 잘 반영하고 있으며 전통문화의 이해 및 가치관 형성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원자료를 번역한 것, 또는 가공한 내용이 초등학생 수준에서 이해하기 쉽고 음미할 만한 내용의 것이어야 하며, 길지 않은 분량의 자료, 또는 길더라도 적절한 분량으로 가공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아울러 우리가 직면한 사회 문제와 관련성을 가지면서, 문화이해에 도움을 주고, 학습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제시형태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고려할 수 있을 듯하다. 첫째, 교과서를 개방적인 체제로 전환함으로써 고전자료 운용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둘째, 기존 교과서와 같이 본문이나 단원 마무리 부분을 이용하되 고전자료 번역문, 번역문 형태의 警句, 가공 자료, 단편적인 문화상식 등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한자학습 과정에서 교과서의 여백을 이용하여 간단한 형태의 자원풀이, 한자 문화 상식 코너를 마련할 수 있다. 넷째, 언어생활 자료, 예를 들면 대화나 인용문, 읽기 자료의 내용 중간에 사자성어, 경구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다섯째, 만화나 그림 형태로의 자료 가공도 필요하다. 초등학생의 발달 단계와 이해 수준을 고려할 때, 활용 가능한 주제로는 ①가족의 의미, ②더불어 사는 사회, ③인간과 자연, ④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⑤웃음과 機智 넘치는 조상들의 삶, ⑥사물의 관찰과 표현, ⑦문화 이해를 위한 기초상식 등을 들 수 있다. 고전자료 활용의 의의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첫째, 고전자료의 활용은 언어생활 중심의 한자교과서에서 결여되기 쉬운 文化와 價値 要素를 보충한다. 둘째, 선인들의 지혜와 민족적 경험의 총체를 담고 있는 고전자료는 정신적·문화적으로 학습자의 정체성 확립에 많은 기여를 한다. 셋째, 고전자료의 활용은 중·고등 한문 교육과의 자연스런 연계를 가능하게 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concrete subject and ways under the assertion which is to use plenty of classical literatures and materials in the Chinese character textbook for elementary school students. Many words of the Chinese character textbook are related on changes of thinking pattern and life caused by the western civilization. Looking at the principal words, those words are made by compounding single character and reflecting the strong point of structure of the Chinese literature but the ideologic and emotional bases of words are irrelevant to traditional culture. So the constituent related on traditional culture and value is needed to involve in the contents of Chinese character education intentionally and systematically. Some standards are needed to choose the materials. Firstly, the materials should be help to understand the traditional culture and form values. Secondly, the translated or treated contents should be easy to understand and able to appreciate for the primary school students. Thirdly, the length of text should not be too long. Fourthly, the contents of materials have to be related on the social problem, help students to understand cultures and induce the students` interest. The subjects which have a value to be taught can be involved these; 1) the meaning of family, 2) the society to live together with others, 3) the human and nature, 4) how to live in ancient times?, 5) the ancestors` life with humor and wit, 6) the observation and expression on things, 7) the basic knowledge for understanding culture and so on. The meaning of using classical literatures and materials is as the below. Firstly, the using of classical literatures and materials supplement cultural values in the Chinese character textbook which is placed too much emphasis on linguistic communication. Secondly, that help students to establish the identity mentally and culturally. Thirdly, that can make a connection with the Chinese literature education in a secondary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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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at recliner 용 sector gear의 fine blanking에 관한 연구

          김창호(Chang-ho Kim), 강수호(Soo-ho Kang), 이관영(Kwan-young Lee), 남기우(Ki-woo Nam) 한국기계가공학회 2010 한국기계가공학회지 Vol.9 No.1

          This study was performed to solve the breaking problem in the fine blanking(FB) process of sector gears for car seat recliner using nickel chrome molybdenum steel(SNCM220) plate. The optimal design of embossing circle is changed to oval with labors' experiences and finite element analysis. The maximum principal stress and effective strain in a forming process are analyzed by commercial finite element software to solve the problems in embossing stage of FB process. As a result of FE analysis, the maximum principal stress in forming is lower than yield point of material. It is shown from experiments in the modified die that the formed gear does not break in embossing s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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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한시에 나타난 ‘소[牛]'의 형상과 그 의미

          김창호 ( Kim Chang-ho ) 한국한문교육학회 2018 한문교육연구 Vol.51 No.-

          이 글은 조선후기 한시에 나타난 ‘소'의 형상과 그 의미의 해명을 목표로 한다. 조선 전기를 지나면서 소는 점차 농가의 울타리를 벗어나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진다. 이전 시기 ‘소' 제재의 시에 안온함의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다면, 조선후기에는 격변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소의 고난이 강조되고 있다. 여전히 유가적 농본 사회의 생활과 관념을 대변하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상업 경제의 거대한 흐름에 편입되어 감을 볼 수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인간의 욕망은 소의 도구적 가치에 주목하게 되었고, 도구적 효용을 높여감에 따라 소의 고통은 가중되어 갔다. 한편 戰亂, 士大夫 階級 및 農民 階級의 分化, 政爭, 稅制, 屠殺, 牛疫 등의 문제와 얽어지면서, 소는 생산성·경제력의 지표, 명분이나 지향의 상징, 흔들리는 농본 체제의 보루 등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소에 부하된 인간의 욕망은 사대부의 반성적 사고를 환기했다. 그리고 이것은 중세 농본 사회의 해체에 대한 깊은 우려로 연결된다. 소는 영락한 현실의 반영물로서, 그리고 인간의 이욕을 강조하는 매개물로서 자주 등장한다. 무엇보다 形象 계열의 측면에서, 해체의 길을 걷던 중세 農本社會의 상징물로서의 성격이 보다 뚜렷해진다. 한국 한시에 있어서 소의 형상 변화는 유가적 농본 사회에서의 牧歌的 理想鄕의 형성과 점차적인 해체라는 일련의 흐름에 일정하게 대응하고 있다. This article aims at clarifying the image and meaning of 'cow' appearing in Sino-Korean Poems in the late Joseon period. The cow, which appears in Sino-Korean Poems in the late Joseon period, is gradually drawn at various angles beyond the fence of farmhouse. The poems with a material of 'cow' in the previous period are dominated by the warm and stable atmosphere. However, the poems in the late Joseon period are let down with shadows of cataclysm and the suffering of cow is emphasized. While still representing the life and ideas of the Confucious agricultural society, on the one hand, it can be seen to be incorporated into the huge flow of commercial economy in the late Joseon period. In this flow, human desire has paid attention to the instrumental value of cow, and as the instrumental utility increased, the pain of cow was increased. On the other hand, as it is intertwined with the problems such as the war (戰亂), the differentiation (分化) of the class of Sadaebu (士大夫 階級) and the class of peasant(農民 階級), struggles (政爭), taxation system (稅制), slaughter (屠殺), and cattle plague (牛疫), etc., the cow has the meaning of productivity, an indicator of economic power, a symbol of justification and orientation, and the stronghold of a shaky agricultural system. The desire of humans under cow evoked the reflexive thinking of Sadaebu, and this leads to deep concerns about the breakdown of medieval agricultural society. Cows often appear as a reflection of ruined reality and as a medium to emphasize human greed. Above all, from the perspective of the image series, the character as a symbol of the agricultural society walking on the road of dismantling becomes clearer. In Sino-Korean Poems, the image change of cow is constantly responding to a string of flow, that is, the formation of the pastoral ideal in the Confucian agricultural society and gradual disinteg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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