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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1619년 深河戰役의 미결 지리 고증

        김일환,이승수,신춘호,임문성 한국어문교육연구회 2019 어문연구(語文硏究) Vol.47 No.4

        This paper summarized the detailed historical research results on the geographic data of a certain section in the battlefield of Sarhu broke out in March 1619. The relevant section is from ‘Pingdingshan Mountain’ from which 13,000 Joseon soldiers started marching in Niumaoling pass to about 40 km out of Hetualacheng fortress where about 4,000 to 5,000 Joseon soldiers who survived in the battle stayed as prisoners. In this geographic space did the tragic event occur for 8 days from Feb. 28 to Mar. 6, which was not too much to take a lesson for a long time and was very piercing when it was reviewed even today, 400 years from that time. However, the event was nearly forgotten by incompetent power and even moral meaning as well as tremendous pains were lost. This paper aims to remind the tarnishing history and furthermore provide the opportunity to ruminate the history by accurately criticizing and correcting the place of such tragedy. Through the literature review and field investigation as well as field survey, several new information was acquired. In spite of field trips twice, the old Niumaoling pass couldn’t be perfectly reconfigured. However, this paper made definite progress for thorough reconfiguration through the further study. The theory of Wangcongan(王 從安) was applied to several spots including Niumaoling Pass. It was identified that ‘Shimha’ would be the village name not the river through the records in documents. It was newly identified that 8,000 to 9,000 Joseon soldiers died and remaining 4,000 to 5,000 Joseon soldiers escaped to Pushan Mountain and the field near Pushan Mountain. Such result is the most important achievement of this paper. Moreover, the detailed ground for argument and opinions on prisoners’ path of movement which was not discussed in detail up to now were presented for the first time. Pain and grief generated by this battle are still talking to us up to now, even 400 years since then. Furthermore, the incompetence and hypocrisy of the power who forgot and ignored this battle are still tormenting people as they were. This paper was prepared to listen to what pain and grief wanted to say and to face up to incompetency and hypocrisy. 이승수 · 김일환 · 신춘호 · 임문성, 2019, 1619년 심하전역의 미결 지리 고증, 183 : 171~201 이 논문은 1619년 3월에 있었던 심하전역(深河戰役)의 현장 중 일부 구간에 대한 정밀 지리 고증의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이 구간은 조선군이 우모령(牛毛嶺) 행군을 시작한 ‘平頂山’부터 조선군 포로가 끌려가 머문 ‘奴城(赫圖阿拉城) 밖 10리 지점’까지이다. 2월 28일에서 3월 6일에 이르는 8일 동안 이 지리공간에서는, 오늘날 돌아보아도 가슴 아픈, 그리고 두고두고 교훈으로 삼아도 지나치지 않을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 비극의 장소를 정확하게 비정함으로써, 희미해진 역사를 환기하고 반추하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것이 본고의 취지이다. 문헌 검토와 현지 조사에 현장 탐문을 더하여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深河가 강이 아닌 마을의 이름일 가능성을 확인했다. 8,9천 명의 조선군이 전사하고, 나머지 4,5천 군사들이 피신했던 장소는 釜山과 그 아래 벌판으로 비정했다. 조선군이 포로가 되어 끌려간 길을 처음으로 구체적인 논거와 함께 의견을 제시했다. 이 전투로 발생한 고통과 비애는 4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이 전투를 외면·망각했던 권력의 무능과 위선은 여전하다. 고통과 비애의 말을 들어주고, 무능과 위선을 직시하는 것, 이것이 본고를 작성한 이유이다.

      • KCI등재

        세종대 대마도정벌의 군사적 전개과정

        김일환 순천향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2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Vol.31 No.3

        본 논문은 조선조 세종 1년(1419)에 단행한 대마도정벌을 전쟁사적 시각에서 연구한 것이다. 이 전쟁은 고려 말부터 자주 우리 해안을 침탈하던 倭寇를 근절 하기 위한 군사적 토벌이었다. 이 전쟁은 세종 원년(1419) 대마도 왜인들이 식량을 약탈할 목적으로 중국의 요동지역을 공격하러 가는 가운데 충청도 비인의 도두음곶을 급습하면서 시작되 었다. 기습적인 왜구의 침탈로 인한 엄청난 인명피해에 놀란 조선정부는 군사적 보복을 위해 대마도 정벌을 결정하였다. 이 전쟁은 두 가지로 작전계획을 짰는데, 첫째는 왜구의 주력부대가 중국으로 떠난 상황에서 그들의 근거지인 대마도를 급습하여 이들의 가족을 포로로 잡는다 는 것과, 둘째는 왜구들의 귀환을 기다려 해상에서 요격한 후 궤멸시킨다는 것이 었다. 이 때문에 대마도 정벌은 시간적으로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이종무를 최고지휘관으로 한 1만7천여명의 조선군이 대마도의 아소만으로 진 입하여 요충지인 두지포에 상륙하자 놀란 대마도주와 왜인들은 산속으로 도망을 하였고 원정군은 항복을 권유하였다. 그 사이 원정군은 대마도의 육상통로의 요 충지인 훈내곶을 장악한 후 목책을 치고 대마도를 양분한 후, 수색을 통해 왜인 의 잔당을 토벌하였다. 그 가운데 上縣지역의 니로군에 왜인들이 집결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이들을 토벌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 작전은 실패하여 매복 하고 있던 왜인들의 기습공격으로 많은 사상자를 내고 두지포로 철수하였다. 두지포에 돌아온 이종무 원정군은 7월 3일 결국 귀환을 결정한다. 대마도주의 항복을 받지 못하고 귀환한 것은 요동으로 북상한 왜구 주력부대가 귀환할 시기 가 되어 이들을 조선 연안에서 요격해야할 2차 작전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차 東征을 준비 중에 극적인 상황전환이 일어난다. 왜구의 요동 侵寇에 대한 정보를 전해 받은 중국정부가 복병을 이용해 금주 망해과에서 왜구를 궤멸 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보를 접한 조선정부는 2차 동정을 중단하고 외교적 압박으로 대마도주를 굴복시킬 것을 결정하였다. 조선과 중국 명나라의 共助에 의해 대마도 왜구를 궤멸시키고 대마도를 조선에 복속시키는 결정적 전기가 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 토벌전쟁의 결과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의 요동, 산둥 반도에 대한 왜구출몰이 종식되었다. 이 전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한·일간에 입장을 달리 하지만, 이후 對馬島主 가 항복을 청하여 옴으로써 사태가 일단락되게 되었다. 대마도 도주는 또한 신하 의 예로서 조선을 섬길 것을 맹세하고 경상도의 일부로서 복속하기를 청하였다. 세종이 이를 허락하고 이후 삼포를 개항할 때에 대마도 도주에게 통상의 권한을 줌으로써 평화로운 관계로 전환되었다. 이와 동시에 대마도가 조선의 요구에 순응해 옴에 따라 각종 통교제한 정책의 실시가 가능해졌고 조선이 외교적 주도권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3포가 왜인들의 교역항구로 정립되었고 왜관을 설치하고 흥리선이 도박하여 무역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 KCI등재후보

        한국 중등학교 다문화교육의 현황과 방향

        김일환,윤언배 사단법인 한국민족연구원 2011 민족연구 Vol.0 No.47

        The aim of this research is to get understood the facts about education for people with multi-cultural identity in the secondary schools and, with this, to offer guidelines for proper instructions toward students with various racial backgrounds. For this, policies on multi-cultural education of MEST(Ministry of Education, Science and Technology) and Offices of Education of each city and province and related contents of revised curriculum in 2009 have been analyzed. Based on this, prospect on multicultural education in the secondary school is gained. As a result of analyzing policies on education and curricula for students with various cultures, it must be fair to say that, in the mid of its transformation into the multicultural, multi-racial and globalized society, Korea has been actively dealing with those students with great interest. With these policies, education for multi-cultural students in schools has been fairly well-balanced and stabilized. But things like below cannot be neglected. First, multi-cultural educations have highly been narrowed down to passive ones; for adapting themselves to new circumstances of schoo ls or for increasing comprehension on students with parents from different races. Second, multi-cultural educations have been centered on extracurricula activities rather than on regular curriculum and not systematized yet. Third, multi-cultural education has relatively been put more emphasis on primary education than secondary ones, which is somewhat worrisome, given the fa ct that many multicultural students have gone to secondary schools. And finally, chances are students' national identities might be unsettled due to too much weight on multi-cultural education. With all these facts considered, a few suggestions must be made below. First of all,rather than just adaptation to schools in Korea, multi-cultural education should be able to encourage multi-cultural students' strong points, and also, their self-esteems.

      • SCOPUSKCI등재

        Retinoic Acid 국소도포와 부분적 절제술로 호전된 Favre - Racouchot 증후군 1예

        김일환,홍승현,이길주,오칠환,손상욱,김경문 대한피부과학회 1998 大韓皮膚科學會誌 Vol.36 No.2

        Favre-Racouchot syndrome is a disease of senile or actinic processes and another name is nodular elastosis with cysts and comedones. Clinically, facial skin shows, especially lateral to the eyes, multiple open and cystically dilatated comedones and can be defined as cutaneous disturbances characterized by a degenerative process of the dermis associated with cysts and comedones. Sunlight is a strong causative factor and dermal degenerative processes result in this condition. We report the case of a 78-year-old man who showed multiple yellowish papules on both sides of cheeks, the periorbital and, malar areas. He had had this condition for 25-years. His job used to involve physical labor and much exposure to sunlight. An excisional biopsy specimen from the facial malar lesion showed cystically dilated comedones with basophilically degenerated dermal tissue. We performed a therapeutic excision on the two large nodular lesions on both malar areas and applied topical tretinoin. The Patients clinical appearance was much improved 2 months later.

      • KCI등재

        우리나라 憲法上 "基本權의 對私人的 效力" 論議의 批判的 考察

        김일환 한국헌법학회 2000 憲法學硏究 Vol.6 N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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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社會的 基本權의 法的 性格과 保護範圍에 관한 考察

        김일환 한국헌법학회 1998 憲法學硏究 Vol.4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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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憲法上 새로운 情報秩序確立을 위한 序說的 考察

        김일환 한국헌법학회 2001 憲法學硏究 Vol.7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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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첨단과학기술사회에서 효율적인 기본권보호에 관한 예비적 고찰

        김일환 한국헌법학회 2002 憲法學硏究 Vol.8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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