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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바로크 서정시와 멜랑콜리(1): 안드레아스 체어닝과 야콥 발데 -근대 초기의 멜랑콜리 이해와 17세기 유럽 문학을 배경으로

        김유동 ( Yuh Dong Kim ) 한국독어독문학회 2014 獨逸文學 Vol.131 No.-

        Die vorliegende Arbeit unternimmt den Versuch, die Aspekte der Melancholie in der deutschen Barocklyrik darzustellen. Sie ist ein Produkt eines umfassenderen Interesses, den Zusammenhang zwischen der barocken Literatur und der Melancholie zu zeigen. Die Ausdehnung des Begriffs Melancholie erfolgt in der fruhen Neuzeit einerseits durch den Beitrag des humanistischen Gelehrten Marsilio Ficino, andererseits durch den literarischen Diskurs seit dem spaten Mittelalter. Ficino behauptete, dass die Melancholie, die von Saturn komme, nicht nur Geisteskrankheiten erzeuge, sondern als gottliche Gabe den Geist zur Betrachtung hoherer und geheimerer Dinge anregen konne. In der Literatur seit dem spaten Mittelalter beginnt die an Krankheit grenzende Melancholie mit dem Gefuhl der Tristesse verschmolzen zu werden. Dazu kommt, dass die Melancholie in der Literatur des 17. Jahrhunderts mit den Wirren der Geschichte und mit den politischen und sozialen Krisen (bzw. Anderungen) direkt oder indirekt zusammenhangt. Andreas Tschernings Gedicht <Melancholey Redet selber> beinhaltet drei zeitgenossische Ansichten uber die Melancholie. Das Gedicht enthalt erstens die humoralpathologische Perspektive, die aus der hippokratischen Tradition stammt, zweitens die pseudo-aristotelische, die die Melancholie bzw. den Saturn als Ursprung der schopferischen Kontemplation glorifiziert und letztens die lutherische, in der die Melancholie nichts anderes als das Zeichen der Verderbtheit ist. In der lateinischen Ode <Melancholia> von Jacob Balde weist die Melancholie auf die von der geschichtlichen Situation Deutschlands und von der seelischen Unfreiheit bedruckte Existenz des poetischen Ichs hin. Dabei stehen die Freiheit des Geistes und die Gabe Apollos(=die gottliche Dichtkunst) der melancholischen Situation, in der sich das poetische Ich befindet, antithetisch gegenuber. Wahrend Tscherning mehr Gewicht auf die negative Seite der Melancholie als auf deren schopferische Seite legt, kann man solche relative Akzentuierung im Gedicht von Balde nicht feststellen. Meines Erachtens bezieht sich die Melancholie darin nur auf den Seelenzustand des unter der Enge der Heimat und des Korpers leidenden Ichs. Im Gegensatz zu den beiden Gedichten erfullt Milton seine Lyrik <Il Penseroso> mit Lob fur die sinnlichen, intellektuellen und spirituellen Freuden, die die Melancholie anbietet, was die deutsche Barocklyrik nicht leisten kon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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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뜩한 것의 복잡성(1):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섬뜩한 것 Das Unheimliche」에 난 균열들

        김유동 ( Kim¸ Yuh-dong ) 한국독일언어문학회 2020 독일언어문학 Vol.0 No.90

        본 논문은 프로이트의 섬뜩한 것 (1919)에 대한, 그 내용 및 서술층위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다. 작업의 바탕에는 프로이트가 섬뜩한 것의 복잡성을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섬뜩한 것에 대한 자신의 기본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를 가리고 있다는 의심이 자리잡고 있다. 섬뜩함은 그 원천이 억압을 거친 “오래 전에 친숙한 것”뿐만 아니라 거세위협, 외부세계의 수많은 위험, 죽음 등 애초부터 낯선 것에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섬뜩한 것의 영역에선 안과 밖, 친숙한 것과 낯선 것이 대립하면서도 다양한 형태로 서로 얽혀 있다. 경계현상으로서 섬뜩한 것은 프로이트의 경우처럼 그 핵심이 예부터 친숙한 것에 있다고 보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일단 그것의 낯섦에 주목할 때 보다 잘 파악된다. 프로이트는 섬뜩한 것의 본질을 단순화하고 있으며 범주화 작업을 통해 그것을 재차 단순화하고 있다. 섬뜩한 것 의 서술은 부분적인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분화와 환원이라는 거의 체계강박적인 이중운동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허구에서 발생하는 섬뜩함에 대한 저자의 서술 또한 일반화하기에 무리가 있다. 섬뜩한 것의 개별성과 상호연관성과 복잡성은 체계적 환원 자체에 저항한다. 그런데 섬뜩한 것 은 섬뜩함을 초래하는 근원들의 상호 모순에 대한 지적, 스스로를 아이러니화하는 질문, 부자연스러운 완결의 제스처, 생략 등을 통해 텍스트 도처에 가려져 있는 균열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은밀한 heimlich’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볼 때 텍스트는 진지하면서도 자기모순적인 것, 더 나아가 유희적인 것이 된다. 관찰의 불충분함을 은폐하면서 드러내는 저자의 글쓰기는 서술의 두 번째 이중운동을 특징짓는다. Diese Arbeit ist ein kritischer Kommentar über Freuds Das Unheimliche (1919). Ihr liegt der Zweifel zugrunde, ob er nicht trotz eines gewissen Bewusstseins die Komplexität des Unheimlichen für seine Theorie des Unheimlichen verschleiert. Die Quelle des Unheimlichen liegt nicht nur im “Altbekannten, Längstvertrauten”, sondern auch in den zahllosen Gefahren der Außenwelt und der grundsätzlichen Unbekanntheit des Todes, die das Ich erschüttern und die Angst vor der Trennung verursachen. Das Unheimliche ist ein Grenzphänomen zwischen Innen und Außen, dem Vertrauten und dem Fremden, und offenbart seine (im)materielle Realität, indem es diese beiden Gegensätze miteinander verflicht. Die komplexen Aspekte des Unheimlichen werden auch dadurch vereinfacht, dass der Autor die unterschiedlichen Fälle, die er als Beispiele des Unheimlichen nennt und erklärt, unter Kategorien klassifiziert. Trotz der teilweisen Offenheit kennzeichnet eine fast zwanghafte Doppelbewegung von Differenzierung und Klassifizierung Freuds Darstellung. Die Darstellung des Unheimlichen in Zusammenhang mit der Fiktion ist ebenfalls kaum zu verallgemeinern. Die Individualität, Wechselbeziehung und Komplexität des Unheimlichen widerstehen der systematischen Reduktion selbst. Jedoch macht Das Unheimliche den Leser durch heimliche Winke(etwa die kurzen Hinweise auf die widersprüchlichen Quellen des unheimlichen Gefühls, die die Grundidee des Textes ironisierenden Fragen, die unnatürlichen Gesten der Abgeschlossenheit und die Auslassung) auf die Risse im Text aufmerksam. Aus diesen lässt sich eine zweite Doppelbewegung der Darstellung herauslesen, in derdie Unzulänglichkeit des Unheimlichen verschleiert und entschleiert wird. So gesehen ist Das Unheimliche spielerisch ern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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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의 욕망이 초래한 뜻밖의 사태

        김유동(Kim, Yuh-Dong)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7 인문과학연구 Vol.0 No.52

        본 논문은 시선의 욕망이 불러일으킨 뜻밖의 사태라는 이야기 구도를 갖고 있는 문학작품 네 편(에우리피데스의 『박코스 여신도들』, 프란츠 카프카의 「다리」, 마렉 흐와스코의 「구름 속의 첫걸음」, 한강의 『채식주의자』(「몽고반점」))을 분석함으로써 이 이야기 구도가 지니고 있는 특성 및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시선-사태의 이야기 도식은 드라마나 단편 소설 혹은 장편(掌篇) 등에 걸맞은 이야기 구성으로서 뜻하지 않은 사태의 전환 혹은 급변을 통해 충격 효과를 자아낸다. 네 작품의 테두리 내에서 볼 때 이러한 전환, 급변은 (1) 폭력에 의해 주인공의 시선의 욕망 혹은 충동이 좌절되거나, (2) 주인공들이 몰래보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심각한 갈등상황을 초래하거나, (3) 뜻밖의 인물이 우연한 상황에서 주인공의 눈의 욕망이 만들어낸 것을 봄으로써 발생한다. 이는 주인공에게 결정적인 충격이 가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공은 욕망의 좌절을 경험하거나 주관적인 의식의 붕괴를 겪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하거나 (비록 순간적이거나 불충분하기는 하지만) 쓰라린 자기인식과 자기반성을 하기도 한다. 시선이 불러들인 이야기의 전환으로 인해 독자는 등장인물, 화자, 그리고 작품 자체를 거리를 두고 다시 바라보게 되고, 작품의 숨겨진 그리고 복잡한 차원에 관심을 갖게 되며, 더 나아가 작품 속에 내재한 단절, 갈등, 틈, 모순, 분열, 환상, 억압 등에 주목하게 된다. 과잉된 욕망을 갖고 있던 주인공의 좌절, 혼동, 몰락을 통해 독자에게 작품을 보다 세밀하고 비판적으로 그리고 ‘이질적인 전체’와의 연관 속에서 재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그래서 그가 자신의 제한된 인식의 틀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말없이 자극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시선-사태’ 이야기 구도가 지니고 있는 진정한 힘일 것이다. This paper examines plot-pattern of the unexpected incident caused by the desire of the eyes by analyzing four literary works – Euripides’ Bacchae, Franz Kafka’s Bridge, Marek Hłasko’s A First Step in the Clouds, Han Gang’s The Vegetarian (Mongolian Mark) – to present the characteristics and meanings of the plot-pattern. The ‘eyes-incident’ plot which is suitable for dramas and short stories gives a shock effect through the unforeseen turn or the sudden reversal of events. Within the frame of the above mentioned four works, the unexpected incident refers to the moments when the hero’s desire to see is frustrated by violence(Bacchae, Bridge), when the main characters are not satisfied with their peeping and cause a serious conflict(A First Step in the Clouds), and when the third character watches accidentally the images created by the desire of the hero’s eyes(The Vegetarian (Mongolian Mark)). An unexpected turn of the event that the desire of eyes brings up causes a decisive change of the main characters’ physical and mental conditions. The protagonists in those works experience either a frustration of excessive desires or a disruption of subjective consciousness. They also suffer a sudden death or reflect, albeit momentary or insufficient, a bitter self-awareness. The story line of ‘eyes-incident’ helps readers look at the characters, the narrator, and the work itself from a distance and motivates them to have an interest in the hidden and complex dimensions of the work. In short, to give them an opportunity to awaken from their limited horizon of awareness and to read the texts as a heterogeneous whole will be the real strength of the ‘eye-incident’ story compos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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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 치유, 그리고 우울

        김유동(Kim, Yuh-Dong)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3 인문과학연구 Vol.0 No.39

        본 논문의 목적은 인문 기반 치유의 정당성을 확립하고 인문학적 관점에서 우울 치유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인문 기반 치유는 인문학 공부와 인문적 활동이 삶과 지혜를 사랑할 수 있게 해주고, 경험의 진실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 인문 기반 치유는 인문학의 치유 잠재력에 기대어 삶(생명)을 복원하고자 한다. 삶의 복원이란 서로 의존하면서 삶을 이루는 요소들 전체의 복원을 의미한다. 이러한 복원은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반복되어야 하며, 혼동을 품고 있으면서도 조화를 지향한다. 복원의 행위는 기본적으로 (자기) 삶을 사랑하는 행위이다. 평생에 걸쳐 이루어져야할 이러한 복원의 과정에서 자기치유자가 특히 중점을 두어 수행해야 할 과제는 삶의 비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고난을 끝까지 견디는 용기와 인내를 잃지 않는 것, 삶의 모순들과 다채로움을 껴안는 것, 웃고 즐길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는 것, 열린 마음으로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지키며 타인과 관계 맺는 것, 정화된 희망을 품고 두려움 없이 삶의 모험을 떠나는 것, 정당한 분노를 정당한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 등이다. 이렇듯 인문 기반 치유는 기본적으로 삶 전체의 변화를 의도하기 때문에 그것은 분리하고 대상화 하며 국부적인 증상의 완화 및 치료에 관심을 갖는 의학치료와 구분된다. 자기치유자가 자신의 우울을 더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는 기존의 심리치료와 인문 기반 치유가 서로 접속하는 일이 요구된다. 인문 기반 우울치유는 자신의 독자적인 위상을 세우면서 기존 우울증 치료의 원리들과 방법들을 배우고, 재해석하고, 변형시켜 나가야 한다. 또한 기존의 우울증 치료가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대화적이며 감성적인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존의 우울 치료 영역에서도 인문 기반 우울치유를 위한 공간이 확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stablish the legitimacy of the Humanites Based Healing(HBH) and to seek a way to heal the depression from the perspective of humanities. The HBH ist mainly based on the belief that the humanities can inspire the Self Healer(=client) to love life and wisdom and to pursue the truth of the experience. It ist aiming at restoring the human being’s life with such a healing potential of the humanities. The restoration of the life, which is driven by love, is nothing else than that of whole elements of the life which are interdependent to each other and interacting with each other. It must always repeat itself in a new form, thus has nothing to do with a museum-like preservation. In this lifelong process of the restoration, what is especially required for the self-healing would be to accept the tragedy of the life just as it is, not to lose courage to endure the suffering, to embrace the contradictions and the colorfulness of the life, to cultivate the capacity to feel the joy, and to undertake a life adventure with empty and open mind etc. Thus, the HBH is sharply contrasted to the medical treatment, which separates, objectifies, and focuses on the elimination or remission of symptoms. In order to help the Self Healer overcome his depression better, the existing psychotherapies and the HBH need to be connected to each other. The HBH for Depression can gain a lot from ideas and methods of the existing depression-therapies. On that occasion, reinterpretation and transformation of those ideas and methods in the spirit of humanities are inevitable. And the fact that the existing psychotherapies emphasize the importance of the dialogic and emotional relationship between the councilor and the client indicates the possibility that the HBH could play a meaningful role in the realm of psychothera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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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랑콜리: 17세기 유럽 문화의 한 가지 동인 -시대적 배경, 바로크 멜랑콜리, 그리고 멜랑콜리 담론

        김유동 ( Yuh Dong Kim ) 한국독어독문학회 2012 獨逸文學 Vol.123 No.-

        Diese Arbeit stellt zuerst die zeitgeschichtlichen Hintergrunde dar, vor denen die Melancholie des 17. Jahrhunderts entstehen konnte, und zeigt danach, dass die Melancholie einer der Kernbegriffe ist, die die barocke Kultur kennzeichnen und dass sie von zeitgenossischen Texten auf unterschiedliche Weise thematisiert wurde. Die Melancholie im 17. Jahrhundert war vor allem die emotionale Reaktion auf komplexe Krisen, und dazu wirkte in protestantischen Gebieten des Heiligen Romischen Reiches das Luthertum mehr oder weniger auf die Entstehung eines solchen Gemutszustands. Die barocke Kultur kann man ohne Melancholie-Konzept nicht recht verstehen. Sie wurde nicht nur durch hofisch-weltliche Prachtigkeit und religiose Entzuckung gepragt, sondern auch durch deren Schattenseite, Eitelkeit und Trauer. Die Melancholiediskurse des 17. Jahrhunderts weichen im Großen und Ganzen nicht vom tradierten Melancholieverstandnis ab und stehen noch unter dem Einfluss des Christentums. Jedoch besitzen sie auch, wie es die Falle von Robert Burton und Blaise Pascal zeigen, ihre besonderen Merkmale. Merkwurdig ist in Robert Burtons ≪Anatomyof Melancholy≫, dass der Autor seinen melancholischen Blick auf den Gegenstand projiziert, so dass die anatomisch analysierende Darstellung der Melancholie durch die Melancholie des Autos durchdrungen wird. Einerseits spielt Burton unter der Maske des "Democritus Junior" das Spiel der doppelten Perspektive, andererseits leidet er darunter. In ≪Pensees≫ wird der Mensch als ein elendes Wesen aufgefasst. Er will zwar in der Zerstreuung(divertissement) sein Elend vergessen, aber gerade in diesem Wunsch bestatigt sich nach Pascal das großte Elend des Menschen. Pascal fasst den Menschen zweiseitig: Der Mensch ist nicht nur elend, sondern groß, solange er sein Elend erkennt. Erst wenn er die Grenze der Vernunft und damit seine Grenze erkennt, entsteht der Ansatzpunkt fur einen transzendenten Schwung zum Religiosen. In Aegidius Albertinus` Lasterspiegel ≪Lucifers Konigreich und Seelengejaidt≫ wird die Acedia (Tragheit) als eine der Haupt- oder Todsunden zwar implizit aber unverkennbar im engen Zusammenhang mit der Melancholie behandelt. Da dieses Werk die katholische Position vertritt, ist die eigene Ansicht des Autors darin nicht zu finden. Dieses Werk kann man als ein Beispiel dafur verstehen, dass die Melancholie auch im 17. Jahrhundert von der Kirche ausschließlich negativ bewertet wur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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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 정치, 그리고 우울: 안드레아스 그뤼피우스의 『그루지야의 카타리나』 -복합적인 대립구도를 중심으로

        김유동 ( Yuh Dong Kim ) 한국뷔히너학회 2011 뷔히너와 현대문학 Vol.0 No.37

        Gryphius` Catharina von Georgien verlangt durch den Fall Catharina vom Publikum (und von den Lesern), sich trotz drohenden Todes an "Constantia christiana" zu halten und "getrost fur Gott vnd Ehr vnd Land" zu leben und zu sterben. In diesem Sinne ist das Trauerspiel ein Lehrstuck. Der vorliegende Aufsatz will zeigen, dass der Autor in Catharina nicht nur seine didaktische Absicht klar zur Schau stellt, sondern auch theologische und politische Spannungen schafft, die miteinander verflochten sind. Zwar außert Catharina den sehnlichen Wunsch nach ihrer Erlosung, aber das Werk erinnert an das Wort der personifizierten "Ewigkeit", dass die Ewigkeit nicht auf Papier beruhe. Im Trauerspiel ist die Transzendenz nicht visualisiert und daher nicht zu bestatigen. Der Grund dafur liegt nicht nur im Sakularisierungsprozess, sondern auch im Luthertum, zu dem sich Gryphius bekennt. Die lutherische Glaubenslehre trennt streng das Sichtbare vom Glauben und geht davon aus, dass die Erlosung vollig vom Willen Gottes abhangt, der durch den menschlichen Verstand nicht zu fassen ist. Daher bleibt Catharina nichts anderes ubrig, als das Martyrium "in tief`ster Demut" anzunehmen. Gryphius politischer Pessimismus intensiviert als eine ethische Reaktion auf die Unordnung und die Verganglichkeit der sakularisierten Politikwelt den Schwermut im Werk. Zwar enthalt das Trauerspiel verschiedene politische Motive, wie den Wunsch nach der Realisierung des gottlichen Rechts, die Verdammung der Tyrannei und die Anerkennung der Nutzung von List im Notfall, im Ganzen gesehen herrscht jedoch ein politische Pessimismus uber das politische Bild des We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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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에 나타난 권력관계의 연구를 위한 이론적 고찰 혹은 확장된 담론분석

        김유동 ( Kim Yuh Dong ) 한국독어독문학회 2021 獨逸文學 Vol.62 No.4

        본 논문은 문학에 나타난 권력관계의 연구를 위한 이론적·예비적 고찰이다. 담론의 형성을 권력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푸코의 계보학은 문학담론 역시 권력관계가 만들어내는 역동적이고 전략적 유희의 산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문학은 담론분석의 대상 이상이다. 문학담론분석은 자신의 외연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표면에 머무르며 기술하는 분석과 표면의 이면을 읽으려는 해석은 텍스트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의식의 두 가지 형태로서 양자 사이에는 애초부터 은밀한 묵계가 있다. 해석은 언표작용의 분석 없이는 공허해 질 수밖에 없으며, 분석은 해석을 전제로 하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 이때 해석은 의미의 발굴·해독이 아니라 가능성과 한계 사이에 있는 실험적인 의미생산으로 이해된다. 분석과 해석과 권력은 문학연구에 있어서 핵심적인 세 범주로서 상호의존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문학에 나타난 권력의 문제를 다루는 작업은 해석을 허용하면서 문학텍스트를 분석하는 작업과 사실상 크게 다르지 않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작업은 ① 텍스트에 나타난 권력관계를 가능케 하는 역사적 조건을 규명하는 작업, ② 가시적인 권력관계가 문학장치를 통해서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하는지 분석하는 작업, ③ 이러한 분석과의 연관 속에서 텍스트가 말하지 않은 권력관계를 의미구성의 차원에서 읽어내는 작업, ④ 현재에 대한 진단 속에서 그리고 권력비판의 관점에서 텍스트의 한계와 현재성을 추출하는 작업을 포함한다. Die vorliegende Arbeit überblickt die Grundpositionen der Foucaultschen Diskursanalyse und untersucht die Voraussetzungen für die Analyse der Machtverhältnisse in der Literatur. Foucaults Genealogie, die die Formation des Diskurses in Verbindung mit den Machtverhältnissen erklärt, ermöglicht es, den literarischen Diskurs als Produkt eines dynamischen und strategischen Spiels zu betrachten, in dem Machtverhältnisse verwoben werden. Literatur ist jedoch mehr als ein Gegenstand der Diskursanalyse. Um die in der Literatur aufgezeigten Machtverhältnisse zu untersuchen, würde die Diskursanalyse eine Erweiterung des Begriffs brauchen. Analyse, die an der Oberfläche der Aussagen verweilt, und Interpretation, die das Verborgene hinter der Oberfläche zu lesen versucht, sind zwei Arten von Bewusstseinsaktivitäten, die auf das Unklare der Texte reagieren. So wie die Interpretation ohne die Analyse leer ist, sollte die Analyse die Interpretation zulassen. Die Interpretation wird dabei nicht als Sinnfindung verstanden, sondern als experimentelle Sinnproduktion zwischen Möglichkeiten und Grenzen. Analyse, Interpretation und Macht sind drei wesentliche Kategorien der Literaturforschung und bedingen sich gegenseitig. Unter diesem Gesichtspunkt unterscheidet sich die Auseinandersetzung mit der Machtproblematik in der Literatur praktisch kaum von dem Ansatz, den literarischen Diskurs zu analysieren und ihn in Bezug auf die Analyse zu interpretieren. Die Untersuchung eines literarischen Textes in Zusammenhang mit der Machtproblematik sollte Folgendes umfassen: ① die Erklärung der historischen Bedingungen, die die Machtverhältnisse im Text ermöglichen; ② die detaillierte Analyse der Funktionen und Wirkungen der durch literarische Mittel gestalteten Machtverhältnisse; ③ die Konstituierung der Rückseite der sichtbaren Machtverhältnisse durch Rückschlüsse aus dem, was diese nicht sagen; ④ das Extrahieren der Aktualität des Textes in der Reflexion über die Gegenwart und aus der Sicht der Ideologiekrit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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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차로: 발터 벤야민의 독일 비애극의 원천 과 관련지어 읽은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1) - 파국으로서의 역사, 예술의 위기, 레버퀸의 음악

        김유동 ( Kim Yuh-dong ) 한국독어독문학회 2016 獨逸文學 Vol.57 No.3

        Die Arbeit zeigt, dass Thomas Manns Doktor Faustus(1947) in Bezug auf das Benjaminische Trauerspielbuch(1925) lesbar ist und dass eine Affinitat zwischen den beiden Texten in mehrfacher Hinsicht zu bestatigen ist. Sie stehen in ihrer Entstehung in Zusammenhang mit den zeitgenossischen Krisen, und die Geschichte als Katastrophe ist eins von ihren zentralen Themen. Außerdem sind sie eine Reaktion auf die Krise der Kunst, die der der Wirklichkeit entspricht. Gemeinsam liegt ihnen die kunstphilosophische Idee zu Grunde, dass das Ideal des harmonischen Scheins in der Kunst nicht mehr gelte und dass die Kunst demnach eine “Korrektur” bzw. einen “Durchbruch” brauche. Die beiden Begriffe ‘Magisches Quadrat’ und ‘Konstellation’, die fur die Auffassung der musikalischen Welt Leverkuhns zentrale Bedeutung haben, sind auch jeweils Schlusselkonzepte fur das Verstandnis der Melancholie-Lehre und der Ideenlehre im Trauerspielbuch. Die beiden Texte machen auf die Zauberkraft des magischen Quadrats aufmerksam, die eine Transformation ermoglicht - d.h. im Fall des Trauerspielbuchs nach der Tradition humanistischer Melancholie-Diskurse die Wandlung schadlicher Melancholie in segensreiche und im Fall der Musikwelt Leverkuhns im musikphilosophischen Sinne die Geburt des freien Ausdrucks aus der strengen Kunstform. Mittels des Begriffs der Konstellation, dessen Merkmale Diskontinuitat und Korrespondenz sind, steht die Musikwelt Leverkuhns mit der Ideenlehre Benjamins und daruber hinaus mit seinem Trauerspielbuch selbst in einem Ahnlichkeitsverhalt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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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회로 만들기, 길 찾기, 그리고 해피엔딩 - 그림 동화 「쇠 난로」에 나타난 권력관계분석

        김유동 ( Kim Yuh-dong ) 한국독일언어문학회 2021 독일언어문학 Vol.- No.94

        본 논문은 확장된 담론분석의 입장에서 그림 동화 「쇠 난로 Der Eisenofen」 (1815)에 나타난 권력관계를 분석한다. 텍스트 표면에 드러난 다양하고 역동적인 세력관계를 살피는 담론분석은 의미의 발견이 아니라 의미의 실험적 생산으로서의 해석과 서로 엮일 수 있다. 심리분석적 해석의 차원에서 볼 때 이 동화의 중심소재인 쇠 난로는 왕자의 폐쇄적인 자아로 읽을 수 있다. 그는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사랑할 능력이 없으며 스스로 쇠 난로에서 나오려 하는 대신 자신을 구해 줄 여성을 찾는다. 반면 공주는 아버지에게 감정이입하는 의존적인 유형으로서 “아버지의 왕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분석의 차원에서 볼 때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은 모티브, 상징, 소재, 화자의 서술시점, 이야기 도식(해피엔딩) 등과의 관련 속에서 일관되게 권력관계를 생산한다. 이러한 권력관계는 전체적으로 젠더차이와 가부장적 결혼관습의 공고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동화는 공주의 태도변화를 통해 위기의 상황에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주체적인 여성을 또한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동화적 상상력에 힘입은 것으로 당대의 남성중심 이데올로기를 동요시킬 수 있는 요소로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무게중심은 결국 기존질서를 최종적으로 안정시키는 해피엔딩에 놓인다. 해피엔딩 서사는 공주의 가시적인 변화가 불러올 수 있는 잠재력을 길들이고 왕자의 내적인 분열의 문제를 은폐함으로써 텍스트 내에서 생길 수 있는 균열을 방지하고 있다. In diesem Beitrag sollen die Machtverhältnisse in Der Eisenofen der Brüder Grimm analysiert werden. Er basiert auf der theoretischen Prämisse der Korrelation zwischen der die Funktion und Wirkung der Aussagen erklärenden Analyse und der den Sinn experimentell produzierenden Interpretation. In Der Eisenofen kann der Eisenofen(das titelgebende Objekt), in dem der Königssohn eingesperrt ist, als ein symbolisches Zeichen für das harte, isolierte, kalte und verschlossene Ich gelesen werden. Zwar ist der Königssohn sich seiner Macht bewusst und prahlt mit ihr, aber er hat keine Fähigkeit zu lieben. So bleibt er immer im Bereich passiver Aktivität. Das erklärt, warum er so gut im Taktieren ist. Er ist gespalten zwischen Verlangen nach Liebe und Selbstverschlossenheit, was eine unsichtbare Dimension des Märchens bildet. Währenddessen tritt die Königstocher als ein einfühlsamer und abhängiger Typ auf, der nicht in der Lage ist, dem “Vaterreich” zu entkommen. Im Märchen sind die Handlungen der Figuren mit den die Machtverhältnisse hervorbringenden Elementen(Stoffe, Symbole, Motive, Position des Erzählers, Handlungsschemata usw.) verwoben, um alles in allem die männliche Dominanz zu reproduzieren. Die Veränderung der abhängigen Königstocher in das aktiv handelnde Subjekt überschreitet zwar das Genderbewusstsein der ersten Hälfte des 19. Jahrhunderts, aber das Potenzial ihrer Handlung, das die Ordnung der Geschlechterdifferenz verunsichern könnte, wird nicht realisiert, weil sich an eine solche Handlung das Schema des Happyends anschließt, das alle Konflikte auflöst. Dieses Schema läßt die mutige Wegsuche der Königstochter in den Prozess der Unterwerfung unter die bestehende Genderhierarchie einfließen und lässt das Problem der inneren Spaltung des Prinzen ungelö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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