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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을법함(vraisemblance)의 리얼리즘- 모파상의 소설창작론에 비추어 본 김동인의 창작관

        김시몽 ( Simon Kim ) 한국비교문학회 2014 比較文學 Vol.0 No.64

        본 논문은 김동인 작품세계와 연관지어온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를 제검토하여 한국, 프랑스, 일본의 다른 소위 "자연주의" 작가와 김동인이 어떻게 다른가를 살피고자한다. 김동인의 소위 자연주의를 자세히 살펴보면, 오로지 과학과 결정론의 시점에서 자연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하는 프랑스 에밀 졸라에 의한 자연주의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라는 주장을 작가 자신의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라는 것으로 재해석한 일본 사소설의 자연주의와 김동인의 창작세계가 사뭇 다르다. 프랑스 자연주의나 일본 자연주의가 추구하는 것이 현실에 복종하는 것이니 만큼 사실과 진실인 반면에, 김동인에 있어서는 현실과 진실의 관계가 창작의 장치에 불과 한 것이다. 현실에의 복종은 사실을 형성시키는 장치며, 진실과 흡사한(다시 말하면, 있을법한) 사건을 만드는 데 유용한 창작전략이다. 김동인에 의해, 이 장치는 문학의 근대성을 보장하는 조건이라고 봤다. 김동인이 문학창작을 다루는 평론에서 이러한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있을법함(vraisemblance)의 시학을 구상하였다. 이 평론들을 보면 김동인이 생각하는 자연주의.사실주의가 프랑스 사실주의 작가 모파상이 그려낸 리얼리즘의 이론과 흡사한 점을 많이 찾을 수 있다. 특히 에밀 졸라의 과학적 자연주의나 田山花袋의 “고백체”에 의한 자연주의가 작가를 단순히 관찰자로 봤다면, 반면에 모파상과 김동인이 작가를 창작하는 사람, 즉 예술가로 봤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Le present article se propose d’interroger les notions de realisme et de naturalisme qu’on associe traditionnellement a l’oeuvre de Kim Tong-in sans arriver a rendre parfaitement compte de ce qui le distingue des autres auteurs dits “naturalistes”, que ce soit en Coree, en France ou au Japon. Il semble en effet qu’il y ait une particularite du naturalisme de Kim Tong-in qui le differencie du naturalisme a la Zola qui cherche une peinture “telle quelle” de la realite, en s’appuyant sur une vision scientifique et deterministe de la Nature, mais qui ne s’identifie pas pour autant a la lecture japonaise de ce mot d’ordre naturaliste selon laquelle l’auteur naturaliste doit representer fidelement sa propre realite personnelle dans toute sa verite. A cette double soumission a la verite du reel, Kim Tong-in oppose une approche strategique, faisant de ce rapport au vrai et au reel un outil creatif. Le rapport au vrai devient un appareil au service de la vrai-semblance, a l’aune de laquelle Kim Tong-in va juger de la modernite de la litterature. A partir de la, Kim Tong-in developpe dans ses ecrits theoriques egalement une veritable poetique de la vraisemblance qui n’est pas sans rappeler la poetique developpee par Maupassant autour du realisme et du naturalisme en France, et qui rend a l’ecrivain tout son statut d’artiste et de createur que le naturalisme scientifique de Zola ou le “confessionalisme” de Tayama Katai avaient reduit a un simple observateur. This article seeks to examine notions of realism and naturalism that have been traditionally associated with the work of Kim Tong-in without fully appreciating what distinguishes him from other so-called "naturalist" authors from Korea, France or Japan. Indeed, it seems that there is a feature of naturalism Kim Tong-in which differentiates it to the French naturalism of Zola who seeks to paint reality "as it is", relying solely on a scientific and deterministic vision of the nature. Kim Tong-in’s naturalism can not be identified either to the Japanese interpretation of this moto according to which the naturalist author must faithfully represent his own personal reality ‘as it is’, that is: in all its truth. Against this double submission to the truth of reality, Kim Tong-in opposes a strategic approach, making of this bind to the truth and the real a creative tool. The bind to the truth becomes an instrument for the shaping of truth, for creating likelyhood-to-the-truth or verisimilitude, something by which Kim Tong-in will assess modern literature. From there, Kim Tong-in elaborates a unique poetic of the verisimilitude in his theoretical writings that is reminiscent of the poetic developed by Maupassant around the realism and naturalism in France, which holds the writer for an artist and a creator when the scientific naturalism of Zola or the "confession-type" naturalism of Tayama Katai had reduced him to a mere 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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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 예술품으로 보는 영화에 대한 고찰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로베르 브레송 중심으로

        김시몽 ( Simon Kim ) 한국비교문학회 2021 比較文學 Vol.- No.84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로베르브레송의 영화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생산물’이라고 했다. 본 논문에서는 이 ‘새로운 생산물’의 본질을 브래송의 영화에서 물론이고, 뒤라스의 영화에서도 찾아보고자 한다. 소설가인 뒤라스나, 문학작품을 토대로 영화를 만든 브레송, 이 두 감독만큼 글쓰기와 관련된 영화감독은 드물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들은 상당히 실험적일뿐만 아니라, 문학에서 내려온 서술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필자는 이 두 감독에 있어서 영화적 글쓰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살피고자 한다. 뒤라스와 브레송이 공통적으로 파악한것은 영화라는 매체가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점을 이용해서, 예컨대 영상과 음성을 떼어놓으면서, 뒤라스와 브레송은 관람객에게 창의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결국 그들의 영화는 영화만의 현실을 창작해내면서 신종 예술품을 창조하였다. Marguerite Duras, evoking her admiration for Robert Bresson’s cinema, claimed that he was creating a “new product”, a cinema like no other film-maker has made. We would like to develop this idea by applying it in the same way to Marguerite Duras. Few film-makers have more ties to literature than Duras, a writer, and Bresson, who based his film works on literary texts. Yet their films are renowned for their experimental character deviating from the traditional paths of storytelling inherited from literature. The question which then arises is that of the nature of this “cinematographic writing” which one qualifies the film production of these two authors. A characteristic shared by Duras and Bresson is the awareness and original use of the duplicity of cinema, which is based as much on images as on sounds. However, by playing on this duplicity, by separating the image from the sound or by giving to the sound the role traditionally attributed to the image, the films of Duras and Bresson offer their viewers an original experience which blurs temporality, mixing past, present and future voices to create a truly filmic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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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렝(Surin) 신부의 시에서 나타난 신비주의의 경험

        김시몽 ( Simon Kim )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2015 프랑스어문교육 Vol.49 No.-

        오늘날 쉬렝 신부는 17세기 당시에 마귀 들린 루뎅(Loudun) 수녀들을 구한 퇴마사(exorciste)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명망 높은 신비주의자였다. 그러나 그의 사망과 더불어 원고와 소품들이 사방으로 흩어진 까닭에 그의 원서에 담긴 독창적인 사상을 파악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18세기에 그의 작품은 신비주의에 대한 교회의 경계심 때문에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에 대한 재평가는, 여전히 일반인들이 그를 루뎅 사건의 퇴마사로 인식하고 있긴 했지만, 신비주의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19-20세기에 와서야 가능해졌으며, 재 간행된 그의 원서들은 그가 신비주의를 어떻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해했는지에 대한 파악을 허용하였다. 그런데 루뎅 사건에 대한 쉬렝 신부의 자서전적인 문서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그의 시집은 그 반대의 운명을 겪었다. 여기에는 신비주의자의 작시문화(作詩文化) 전통이 프랑스보다 스페인에서 더 빈번했다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17세기에 십자가의 성 요한이나 예수의 성녀 테레사가 작성한 시작품들이 불어로 번역되어 신비주의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지만, 막상 불어로 신비주의적인 시를 작성한 시인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도 또 다른 이유가 된다.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쉬렝 신부이다. 쉬렝 신부 고유의 신비주의를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본 논문은 그의 시집을 시작하는 첫 서시(Prologue mystique)에 관심을 갖는다. 이것은 그의 시가 신비주의 문학의 전통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며, 거기에서 다른 작가들과의 차이점을 포착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십자가의 성 요한과 예수의 성녀 데레사가 찬양한 ‘신비주의 혼인(mariage mystique)’이 영혼과 하느님의 결합을 상징한다면, 이런 신비주의의 최후 단계로 여겨진 모티브가 쉬렝신부의 시 속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지만 스페인의 두 성직자가 찬양하는 순수 사랑과 비교해본다면, 쉬렝 신부는 상당히 전투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이 결합을 묘사한다. 영혼이 하느님을 갈망하는 것이라면 그와 동시에 하느님의 사랑은 전투사처럼 그 영혼을 폭력적으로 정복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은 쉬렝 신부의 신비주의에 대한 이해에서 언제나 발견되는 것으로 그만의 고유한 독창적인 신비주의의 양상을 정의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점을 그의 생애와 연관 지어 파악하는 것 역시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한 증언에 따르면, 루뎅 수녀들을 찾아온 악마를 쫓을 때 쉬렝 신부가 악마를 자기 몸 안으로 초대했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로 그는 17년 동안 악마에 시달린 까닭에 하느님에게서 버림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버린 하느님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라는 확신을 그는 견지했다. 이런 경험에서 그의 모순된 신비주의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악마에 들렸고, 하느님 곁에서 내쫓겼지만, 하느님의 잔인함마저도 사랑하는 태도가 신비주의 최고의 순수한 사랑이라는 신념이 그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두 스페인 성직자가 그러했듯이 쉬렝 신부도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이야기를 시로 옮기면서 신비주의를 정의하려고 시도했다. 그의 삶이 극단적인만큼 그의 신비주의 역시 극단적이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그는 이 극단의 사상을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는 형식이 결국 시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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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s descendants de Narcisse

        KIM, Simon(김시몽) 프랑스문화예술학회 2012 프랑스문화예술연구 Vol.39 No.-

        자화상을 정의하려면, 너무 당연하게 화가가 자기 자신의 인물을 그리는 초상화라고 할 터지만, 자세히 보면 작가가 자화상을 제작할 때, 혹은 자화상을 표현할 때 정작 무엇을 그리고 있는 건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사진작가 타르티그가 자기 자화상을 찍었을 때, 제 모습을 거울에 보면서 자기 자화상을 그리는 모습의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이 작품 안에 자화상의 주제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 자화상이 표현하고자 하는 자아는, 작가의 사진 속에서 비춰진 작가가 그리고 있는 그 자화상속의 그림에 있는가, 아니면 자기 모습을 비추는 거울에 있는가, 혹은 카메라에 등을 돌린 체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사람에 있는 가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20세기 추상미술 작가들의 자화상을 보면, 인물의 모습을 아예 찾기가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자화상이 표현하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밖에 남지 않는다. 우선 중세나 르네상스의 자화상들을 살펴보면, 중세의 자화상은 주로 화가의 사인을 대신하여 그림의 작가를 알리는 수단으로, 르네상스의 자화상은 작가의 존재감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자기 존재감을 그토록 강조하고자 하는 욕구에 나르시시즘의 요소를 찾을 수 있다. 창작물 속에 자기 모습을 나타내면서, 주님이 세상을 창조 하듯이 화가도 자기 세계를 창조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선언처럼 볼 수도 있다. 르네상스 이후, 자화상에 나타나는 화가 (자신)의 모습은, 화가 (자신의) 입장을 알리는 증표도 된다. 정치적이거나, 큰 역사를 앞에 두고, 증언으로 남기려는 의도 하에, 화가가 이 그림이 자기 목소리와 다름 아니라는 것을 자화상으로 이야기해준다. 그러나 나르시시스는 자기 모습에 반하여 자기 모습을 비춰주는 수면을 계속 보면서 점점 꽃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화가가 자기 모습을 그리면서 자기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을 표현하기도 한다. 자기 모습을 그린다는 것은 마치 세월의 흐름을 멈추려는 시도 같기도 하고, 반면에 자기가 늙어가는 것을 승화시키려는 의도도 없지 않다. 그러기 위해, 작가는 거울에 비치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 충실하지 않고 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그림으로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다. 다른 면에서 보면, 자화상 속에 있는 인물이 거울에 비치는 자기 자신의 모습과 다르다는 점은 작가가 자기 자신을 주제로 삼을 때, 그림 속에 그의 모습이 더 이상 자기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럴 때,화가는 무한한 자유를 추구함으로써 자기 스스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확장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실현하는 공간이 된다. 예를 들어, 피카소가 평생 그린 자화상들은 그의 그림의 변화를 이야기해준다. 큐비즘의 시대를 연 아비농 아가씨들이라는 그림은, 그 이전에 이미 피카소가 자화상을 그리면서 이런 새롭고 혁명적인 화법을 시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술가는 자화상에 スR1 의 모습을 담으려 하기보다 자신의 독창적 및 예술적 사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20세기의 추상파 예술가들의 알아볼 수 없는 자화상들은 이 사실을 증명해준다. 즉, 자화상은 작가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예술정신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예술작품을 그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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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테스의 음악적 글쓰기 -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과 『목화밭에서의 고독』 중심으로

        김시몽 ( Simon Kim )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2017 프랑스어문교육 Vol.56 No.-

        1989년에 별세한 콜테스는 프랑스 희곡사에서 뺄 수 없는 중요한 작가가 되었다. 그 이유는 그의 문체의 독창성 때문이다. 특히 『숲에 이르기 직전 의 밤』과 『목화밭에서의 고독』 이 두 작품은 독백으로 구성되어 있어 특유 한 기나긴 문장들이 유난히 인상적이다. 이러한 문장들을 묘사할 때 평론가 들은 흔히 음악과 비교를 한다. 이 문장들이 갖고 있는 리듬과 두운이 곧 시학이 말하는 시의 음악성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메쇼닉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음악에서의 리듬 같은 개념과 언어와 시에서의 리듬이 동일치 않은 것이니만큼, 한 작가를 다룸에 있어서, 이러한 개념을 사용할 때에는, 음악과 시를 잘 구분해 써야 한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일반적인 주장이 되 었다. 그렇지만 어렸을 적에 고전음악을 공부한 콜테스 자신은 음악과 글쓰 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했다. 이 두 주장을 감안해서 본 연구는 음악 개념을 콜테스의 글쓰기에 적용해서 살펴보기보다, 콜테스가 영향 받았다는 음악 장르들을 참고하면, 그가 희곡을 구상하는데 있어 어떻게 이러한 음악 장르들이 적용됐는지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콜테스는 극중 인물 하나하나가 자기 자신을 표현해줄 수 있는 “음악 체계”를 내포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목화밭에서의 고독』에서 나오는 딜러의 인물은 블루스를 부르는 사람을 생각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따라서 블루스이라는 음악 장르의 형식적 특징을 보고, 그것이 극에서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살펴 보았다. 블루스가 사용하는 삼박자의 반복과 변주는 콜테스의 글 곳곳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리고 콜테스가 대화를 제외시키고 일반 언어가 아닌 음악적 요소로 지은 독백은 희곡보다 오히려 고전음악의 아리아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아리아라는 장르에서처럼 콜테스의 독백은 스토리의 전개를 잠시 멈추고 쉬어가면서, 전개를 더 진전시키기 보다는 그 상황에 멈추어 공연의 시간을 채운다.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과 『목화밭에서의 고독』 이 두 작품은 이야기가 따로 없고 기나긴 독백으로 이루어지는 희곡이다. 그리고 고전음악의 아리아에서처럼 이 독백들 역시 타인 혹은 관람객들을 향하는 사랑의 갈구이다. 이러한 콜테스의 독백이 일반 언어로가 아닌 고전음악의 아리아와 비슷한 형식으로 되어있는 이유는 사랑은 일반적인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끝에 화자가 말하듯이 콜테스는 우리에게 “사랑한다 (...) 나는 아직도 그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콜테스는 인간 간의 소통이 끊긴 우리 시대에, 독백으로 된 음악적 대화가 인간 사이를 다시 메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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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졸리니의 시학, 『장미 모양으로의 시』를 중심으로

        김시몽 ( Simon Kim ) 한국비교문학회 2016 比較文學 Vol.0 No.69

        파졸리니는 주로 영화감독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영화에 서뿐만 아니라, 시, 소설, 희곡, 언어 이론에까지 뻗어 있다. 본 논문은, 파졸리니의 표현방식이 시든 영화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같은 일관된 비전을 갖고 있다는 전제를 시작으로, Poesia in forma di rosa (장미 모양으로의 시) 시집을 들여다보고, 파졸리니가 사용하는 다른 장르의 표현방식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 지 살펴보고자 한다. Poesia in forma di rosa가 발간 된 해는 파졸리니가 영화 ``마떼오에 따라 복음``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위원특별상을 수상한 1964년이다. 그 해부터가, 파졸리니가 자신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치던 고전 시의 전통과 거리를 두며, 체계적으로 여러 장르에서의 표현방식을 발전시키는 시기였다. 이 시집에서 파졸리니는 이탈리아 시의 전통 형식인 terzetto (일연 삼행식)를 포기하는데, 그 배경은 이렇다: 파졸리니가 그의 영화 라 리코타 때문에 국가 종교를 모욕한 죄목으로 심판에 섰을 때,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쓴 일기 에는 기자와의 인터뷰, 추후의 창작 프로젝트 등이 다양한 형태의 시로 쓰여 지는데, 이 시들이 Poesia in forma di rosa 시집에 수록된 것이다, 그는 시창작에 대한 그의 접근방식을 변환시키면서, 자신을 평생동안 이토록 공격하고, 비판한 이 신-자본주의 체제로부터의 탈출구를 추구한다. 파졸리니는 공산당과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의 독단이 그 탈출구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과 이탈리아의 룸펜프롤레타리아 역시 자신의 해방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따라서, 파졸리니는 역사의 변증법적 흐름의 탈출구를 찾아서 제3세계로 관심을 돌린다. 신-자본주의로 도달한 역사에 맞서서 파졸리니는 소위 신-선 사 시대를 내세운다. 자신이 내세운 이 신-선사시대를 계기로, 파졸리니는 시인의 위치와 시창작의 개념을 재평가 하게 된다. 그는 신-자본주의세계에서 사용되는 합리적인 언어에서 이별하고, 신화의 언어를 택하며, 예언행위를 통 하여 자신의 창작을 재정의한다. 파졸리니는 신화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서 시를 넘어 시학을 설립할 수 있게 된다. 시는 영화나 시사적 기사와 똑같은 위치로, 세상에 가하는 행위로 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파졸리니가 택한 모든 장르와 표현방식은 미적이든, 이 데올로기적이든 "실천적인 시"로, 또한 시적인 행위로 인식된다. Pasolini is mostly known as a film director, and yet his work ranges from the movies to poetry and linguistic theory. Starting from the premise that Pasolini``s many fields of expression (from the films to the poems) are supported by a same coherent vision, we have tried to look into the book of poems Poesia in forma di rosa (Poem in form of a rose) in an attempt to see how it interacts with other forms of expression used by Pasolini. Poesia in forma di rosa (1964) is contemporaneous with his first major films, including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for which he was awarded the Special Jury Prize at the Venice Film Festival. In other words, it is the time when Pasolini diversified systematically his forms of expression, parting from the classical poetic tradition that so influenced him in his youth. In this particular book, Pasolini moves away from the tercets traditional to Italian poetry and gives to his poems various forms from the day-by-day account of his trial (as he was charged of offense against the state religion for his film La Ricotta), an interview with a journalist or even the notes for a future work. By transforming his approach to Poetry, Pasolini deals with the search of a way out of this Neo-Capitalist system (in which he has been attacked, sued and criticized many times throughout his career). It is a time when Pasolini realizes that the dogmatism of the Communist Party and the Marxist intelligentsia leads to a dead end, and that moreover the Italian sub-proletariat is incapable of dreaming its own emancipation. Pasolini therefore turns to the Third World in which he sees a way out of the system by exiting the dialectical course of History. To this History, Pasolini opposes a New Prehistory. This New Prehistory leads him to reassess his position as a poet and his approach to write poetry. He defines his work as prophesizing, using the myths as a breaking apart from the rational language of the Neo-Capitalist world. The myth being etymologically something that exceeds the common language, Pasolini can then conceive a poetic beyond the poem. A poem is seen as an act upon the world, in the very same way as a film or a stand in the newspaper. Accordingly, all expressions (be it aesthetical or ideological) is perceived by Pasolini as an act of Poetry, as a "practical poe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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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 펠르티에의 시학에 나타난 번역에 대한 관점과 시적 실천

        김시몽 ( Simon Kim ) 한국불어불문학회 2019 佛語佛文學硏究 Vol.0 No.118

        펠르티에 뒤 망(1515-1582)이 첫 시집을 발표한 연도를 고려하면 최초의 플레야드파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펠르티에는 1543년 최초로 호라티우스의 『시학』을 프랑스어로 옮기면서 수사학의 시대에 시학의 문을 열었다. 이를 봤을 때 펠르티에 뒤 망의 시와 시학에 대한 이해가 상당한 깊이를 담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펠르티에의 시학 중심에는 ‘번역’과 ‘모방’의 문제가 놓여있다. 호라티우스의 『시학』을 모델로 삼으면서, 새로운 시나 시학을 창출하려면 이전 시대, 즉 그리스·로마 시대의 위대한 작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감안하면 번역이 그의 시학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진정한 시를 창작하려면, 고대 시인을 번역하는 것보다 그들의 시학을 모방하는 것이 의미있다고 주장했던 뒤 벨레와 달리, 펠르티에는 최상의 모방이 번역이라고 생각했으며, ‘번역’과 ‘모방’을 구분하면서도 이를 한 예술활동의 양면으로 여겼다. 이처럼 펠르티에게 있어 ‘번역’과 ‘모방’의 경계는 모호한 것이었다. 당대 문인들의 우상인 베르길리우스가 호메로스를 모방하면서 라틴어 시학을 발전시켰듯이 펠르티에도 베르길리우스를 모방하면서 프랑스어 시학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작품을 능가하는 번역·모방이야말로 프랑스어와 프랑스 시문학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펠르티에의 번역·모방 개념은 다른 시인 및 시론가(詩論家)들의 그것과 차별화된다. 그는 베르길리우스가 호메로스를 모방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호메로스를 개선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펠르티에는 번역이 원작보다 더 나은 작품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호라티우스의 『시학』을 번역함에 있어 작품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기보다 프랑스의 상황에 맞도록 원작을 변형시켰다. 이렇게 옮겨진 글은 더 이상 호라티우스의 작품만이 아니라 번역자 펠르티에의 작품이 되기도 하며, 이렇듯 그의 작품 속에는 번역, 모방, 창작 개념이 한데 뒤섞여 있다. 그의 시집에는 이와 같은 펠르티에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시집의 전반부에는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와 페트라르카의 시 번역이 수록되어 있고, 후반부에는 펠르티에가 창작한 시들이 실려 있다. 대부분이 자연을 묘사하거나 전원생활을 노래하는 시들이며, 이러한 공통된 주제 안에서 시 번역과 시 창작 간의 밀접한 관계가 형성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시집의 이와 같은 구성을 통해 호메로스에서 베르길리우스, 그리고 호라티우스에서 펠르티에 자신에 이르기까지 시학이 어떻게 개선되어 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렇게 하여 펠르티에 뒤 망은 당대 작가들과는 달리 시학의 이론과 시학의 실천 양 면에서 일관성을 보여주면서 시문학의 발전 방향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었다. Cet article se propose d’aborder le rôle que Peletier du Mans reserve à la traduction-imitation dans l’etablissement d’une nouvelle poetique et d’une poesie en langue française. Partageant avec les autres membres de la Pleïade l’ambition d’illustrer la langue française en lui donnant une poesie qui puisse rivaliser avec celle des auteurs antiques, Peletier developpe une conception particulière de la traduction qui n’est plus aussi clairement detachee de l’imitation que chez Du Bellay. Pour Peletier la traduction doit être meliorative. Il ne s’agit plus tant d’imiter ou de traduire un auteur classique, mais de l’ameliorer, de le surpasser. Après avoir longuement expliquer dans son Art poetique comment Virgile a pu ameliorer Homère en passant dans la langue latine, Peletier entend montrer avec son premier recueil d’Oeuvres poetiques comment il pretend ameliorer à son tour Virgile et Horace à l’interieur de la langue et de la poesie françaises, mettant ainsi en pratique ce qu’il preconisait dans son Art poetique.

      • KCI등재

        Valeur du mythe comme instrument comparatif

        KIM Simon(김시몽) 프랑스학회 2010 프랑스학연구 Vol.52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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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학을 비롯하여 (비교)문학에서 사회학까지 신화라는 개념이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으나, 넓게 쓰이면 쓰일수록 그 의미가 흐릿해지는 것 같다. 본 논문은 신화의 정의를 살펴보면서 신화의 본뜻을 되찾아 비교문학 분야에서 신화를 어떤 개념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를 제시하는 것 이다. 신화는 먼저 이야기이며, 신[神] 흑은 영웅들의 일화들을 다루는 이야기이다. 레비스트라우쓰디Claude Lévi-Strauss같은 인류학자들이나 엘리아드Mircea Eliade 같은 신화론자들은 신화가 또한 기원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 들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신화의 구성특정을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선화는 구두로 전해지는 이야기이고, 둘째, 신화 그 자체로 성[聖]스러운면이 깃들어 있으므로 정해진 인간 저자가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단군의 이야기는 한반도의 기원을 이야기해 주며 그 이야기의 원저자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그 이야기를 충분히 신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리 언급된 신화의 두 구성특정 외에도, 신화라는 것을 구성하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그 요소는 신화[mythe]의 어원에서 찾을 수 있다. 신화[mythe]는 희랍어 뭐 토스[μ v θ o ç] 에서 나오는 말인데, 희랍어에서의 μ v θ o c라는 그 말은, 꼭 오늘날에 널리 알려진 mythe[신화]라는 뜻보다도, 말을 정의하는데 쓰이는 여러 방법 중 하나와 더 가깝게 정의된다고 볼 수 있다. 플라톤부터 고전 철학에서 μ v θ 0 ç는 말의 일면으로 정의되고 있으며, 이와 상반된 말의 다른 면은 바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로고스[λ ó r o ç] 이다. 따라서 μ v θ o ç는 이야기보다 말의 형태며, 합리적인 언어능력을 가리키 는 λ ó r o ç의 반대로 합리적으로 설명이 안될 때 사용되는 언어의 기능이다. 철학에 속하는 개념이니만큼 철학적인 내용, 즉 진리의 말로 이해된 μ v θ o ç가 우리가 말하는 신화에 철학적인 면을 다루게 한다. 비합리적으로 말한 진리를 알려면, 해석이 필요할 것이고, 신화는 역시 해석을 부르는 말/이야기이다. 신화는 또한 이야기의 내용과, 그 이야기의 구성을 같이 가지기 때문에, 놀스롭 프라이Northrop Frye가 말하는 ‘서술 구조’(narrative structure)로 되어있다 이에 따라, 서술 구조로 본 신화는 해석할 이야기이면서도 해석을 위한 구성의 도구이다. 마지막으로, 신화라는 개념이 해석을 위한 도구라고 하면, 무엇을 해석해 주는 도구냐는 문제가 남는다. 이렇게 푼 신화의 뜻이 워낙에 희랍의 고대문화와 깊숙한 관계가 있다 보니, 우리가 종종 보편 적으로 적용해 쓰는 신화이기보다는(우리가 종종 신화를 보편적으로 방대히 적용하여 끼어 맞추는 일을 하며 여러 가지 정확한 디테일 을 놓치는 실수를 사전에 예방하려면 ). 좀 더 세심한 비교를 위해 쓰이 는 것이 훨씬 적합한 도구로의 활용이라고 할 수 있다.

      • KCI등재

        로랑 고데의 서사시적 문학관

        김시몽 ( Kim Simon )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2011 프랑스어문교육 Vol.36 No.-

        로랑 고데는 서점가에서 지속적으로 추천받고 독자들에게도 사랑받는 작가이지만,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비평가들은 그를 혹평한다. 비평가들이 비난하는 것은 로랑 고데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과장하는 경향이다. 로랑 고데의 문체는 실질적으로 프랑스 현대문학에서 사용되는 문체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이 전설 속에서나 가능한 인물형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은 그의 시대착오적 문학관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로랑 고데 작품에서 나타나는 이런 시대 착오적 경향의 원인을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그 원인을 고대 서사시의 영향에서 찾고자 하며,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서사시의 특징적인 면모를 고찰해 보고, 이어서 그 특징들을 로랑 고데의 작품과 비교해 봄으로써 이들 둘 사이의 유사점들을 도출해 볼 것이다. 서사시의 특징은 대략 4가지, 즉 위에 언급된 과장법 문체, 경이로움(merveilleux)의 요소, 강한 영웅상과 대규모의 이야기 구성이 그것이다. 이런 네 가지 서사시적 특징은 로랑 고데의 작품마다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첫 작품인 『오니소스』(2000)는 고대 신 디 오니소스(바커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송고르 왕의 죽음』(2002)은 『일리아드』를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재현하고 있다. 역사적인 사건을 다룰 때도 경이의 요소를 투입한다. 『외침』(2001)은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고대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돼지-인간이이라는 괴물을 그리고 있으며, 『지옥의 문』(2008)이란 최근 작품에서도 1982년 나폴리에서 일어난 대규모의 지진을 설명하기 위해, 나폴리에 있던 지옥의 문이 영구히 닫히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로랑 고데의 작품세계를 더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그의 최신작 『태풍』(2010)을 서사시로 읽고자 한다. 이 소설은 2005년 뉴 올린스를 휩싼 태풍 카트리나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다. 성경의 대홍수와 같은 이 태풍은 서사시가 요구하는 경이의 요소를 충분히 갖추는 주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역사의 기억을 상징하는 주인공으로 백살 먹은 흑인 노파가 과장된 묘사로 소개되는 것부터 시작하여, 모든 인물들이 상세한 심리 묘사보다는 원형적인 묘사로 등장한다. 고대 서사시처럼, 이 소설은,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이 사태를 마치 하나의 신화처럼 구성하고 있다. 여기서 로랑 고데의 문학관이 잘 들어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문학이란 세상의 과도함을, 우리의 원시적인 심리(신화를 믿는 것이 필요했던 그 원시시대의 심리)에 기대어, 수수께끼처럼 풀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로랑 고데가 프랑스 독자들에게 이처럼 큰 인기를 누리는 것은 어쩌면 오늘날의 사회에서 불합리하고 신비스러운 인생관이 실증주의와 대립하며 점점 확산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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