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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사회 거주 노인의 영적안녕, 사회적 지지, 생활만족도 및 우울의 관계

        김소남 ( So Nam Kim ),이상복 ( Sang Bok Lee ) 경희대학교 동서의학연구소 2013 동서간호학연구지 Vol.19 No.2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노인들은 역할상실, 신체 및 건강의 퇴화 등으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노인의 스트레스나 위기 상황에서 완충역할을 할 수 있는 영성(Reed, 1991)과 사회적 지지는 노인들의 건강한 삶을 유지, 증진시켜 안녕감을 높여 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Nam, 2004)이다.본 연구결과에 의하면, 영적 안녕은 득점범위 20-80점 중에서 평균 55.90점으로 중상정도의 영적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역사회 노인을 대상으로 한 Lee (2002)의 연구결과(53.50)를 지지하는 결과이다. 일반적 특성에서 신체적 건강 상태, 종교, 종교에 대한 만족도, 경제상태에서 영적 안녕정도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상생활수행능력이 좋을수록 영적 안녕이 높게 나타난 Lee와 Lee (2011)의 연구결과와 같이 본 연구에서도 신체적 건강이 좋은 대상자가 영적 안녕점수가 높게 나타나 신체적 건강과 영성이 관계가 있음을 나타냈다. 그러나 입원노인환자를 대상으로 한 Choi (2002)의 연구결과보다 영적 안녕점수가 낮았다. 이는 본 연구 대상자의 60%는 신체적 건강상태가 보통이상이라고 지각하고 있는 일상생활 수행이 가능한 지역사회 노인인 반면 Choi (2002)의 연구 대상자는 입원 및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삶의 위기에 직면한 환자로서 위기를 통해 자신의 의지가 아닌 신과의 관계를 통한 영적 소망으로 영적 안녕 점수가 높게 나타났다고 사료되므로 일상생활 수행능력과 현재 질병 중증정도에 따른 영성과의 관계에 대한 추후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종교가 있는 경우가 종교가 없는 경우에 비해 영적 안녕 점수가 높았다. 종교와 영적 안녕과의 관련성에 있어서 입원노인환자를 대상으로 한 Choi (2002)와 Kim, Kwon, Sung과 Kwak (2007)의 연구에서 종교가 있는 노인이 종교가 없는 노인보다 영적 안녕정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본 연구결과를 지지 하였다. 재가 노인의 영적 안녕 영향요인을 평가한 Jang과 Kim (2003)의 연구에서 종교가 삶에 미치는 중요성 인식정도가 33.1%의 설명력을 보였고, 취약계층 독거 여성노인을 대상으로 한 Lee와 Lee (2011)의 연구에서도 종교가 영적 안녕에 관해 14.9%의 설명력을 나타내 개인의 영적 안녕에 종교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영적 안녕의 하위 영역별로는 실존적 안녕이 28.85점으로 종적 안녕 27.05점보다 더 높은 점수를 나타냈다. 특히 일반적 특성에서 경제상태, 신체적 건강상태, 삶에 대한 만족도, 사회적 모임의 유무에서 실존적 안녕 점수에 차이가 있었는데, Song과 Kim (2011)의 연구에서는 성별과 만성질환의 개수에서 실존적 안녕점수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본 연구와는 다른 특성들에서 유의한 결과를 보였다. Sung (1999)은 노인의 영적 안녕, 희망, 지각된 건강실태에 대한 연구에서 실존적 안녕 점수가 높았고, 영적 안녕은 지각된 건강상태와 관계가 있다고 했으며,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Lim (1998)의 연구에서도 실존적 안녕에 더 의미를 두었으며, 종교와 믿음 정도에서 영적 안녕에 대해 유의한 차이가 있다고 보고하였다. 이는 노인들에서 실존적 안녕감이 높을수록 스스로 대응하고 조절하며, 삶의 어려운 문제들을 극복하고 수용할 수 있다는 Song과 Kim (2011)의 연구결과를 뒷받침하며, 이러한 선행연구를 통해 볼 때 노인은 자신과 신의 관계에서 느끼는 종교적 안녕감은 물론 종교와 무관하게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 만족감을 나타내는 실존적 안녕감을 통한 영적 안녕을 추구함을 알 수 있다.또한 대상자의 사회적 지지는 경제수준, 신체적 건강상태, 삶에 대한 만족도에서 유의한 차이가 있었다. 경제 수준이 보통 수준 이상의 노인과 삶에 매우 만족 하는 노인이 사회적 지지의 하위 영역인 가족, 친구, 특별 지지 각 영역에 있어서 통계적으로 높은 사회적 지지를 지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Lee 등(2004)의 연구와 일치하였으며, 중간 수준 이상의 생활수준과 아울러 월 지출액 만족을 지각하는 노인이 사회적 지지망 형성에 있어서 관계맺기의 어려움이 적을 것이라는 Joo와 Kim (2011)의 연구결과를 뒷받침 한다. 신체적 건강상태가 매우 좋은 노인이 통계적으로 높은 사회적 지지를 지각했는데, 건강이 좋을수록 신체적, 심리적으로 여러 가지 활동에 대한 어려움이 감소하여, 사회적 모임과 같은 상호작용적 관계를 형성하고 지속시킬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사회적 지지가 높을수록 영적 안녕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영적 안녕에 대해 30%의 설명력을 나타내어 영적 안녕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나타났다. 노인들은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받는 관계에 있는 주위 사람들의 수를 나타내는 사회적 지지망의 구조적 크기가 클수록 노인들의 영적 안녕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게 나타난 Jang과 Kim (2003)의 연구결과를 뒷받침한다.대상자의 일반적 특성에 따른 생활만족도와 우울은 신체적 건강상태가 좋을수록, 경제적 상태가 좋을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수록 우울점수가 유의하게 낮았으며, 생활만족도가 유의하게 높았다. 신체적 건강상태가 노인의 우울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신체적 건강상태와 생활에 대한 만족 정도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인자(Youm et al., 2005)가 된다는 연구결과와 일치한다. 우리나라는 산업화로 인한 가족환경의 변화로 노인 단독가구의 비율 증가에 따른 독거노인의 증가로 고독과 소외감 등의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있는데(Joo & Kim, 2011)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삶의 만족도가 높은 노인이 지역사회의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다른 노인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친밀한 사회적 지지망을 구축함으로써 우울이 감소하고 생활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생각된다. 생활만족도가 높을수록 영적 안녕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영적 안녕에 대해 35.2%의 설명력을 나타내어 노인의 생활만족도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영적 안녕감을 향상시킬 수 있는 심리적 간호중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영적 안녕과 우울에서 유의한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영적 안녕이 증가할수록 우울이 감소한다는 Youm 등 (2005)의 연구결과와 상반되지만 신체적으로 매우 건강한 노인이 우울정도가 유의미하게 낮게 나타나 우울이 노인의 건강증진행위에 대한 설명력이 큰 요인이라는 Seo와 Ryu (2010)의 연구결과를 뒷받침한다.따라서 노인의 생활만족도를 높이고 우울을 감소시켜 안녕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노인들이 문화생활, 여가활동, 종교활동과 같은 개방적인 사회적 지지망을 이용하여 사회적 지지의 양을 늘리고 불안과 우울을 감소시켜 주는 영적 안녕을 증진시켜 대상자의 심리적인 측면의 간호지지를 제공하여야 할 것이다.결론적으로 본 연구에서는 영적 안녕과 사회적 지지, 생활만족도 및 우울이 노인의 일반적 특성과 관련이 있으며, 특히 실존적인 안녕이 생활만족도에 더 유의한 영향을 미쳐 노인의 안녕과도 긍정적인 상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노년기의 영적 안녕과 사회적 지지 및 생활만족도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삶의 위기를 대처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며,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사회적 영역을 강화하여 총체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 본 연구의 결과는 노인의 안녕을 평가할 때 영적 안녕을 고려하고 다양한 사회적 지지체계를 형성 할 수 있도록 돕는 간호중재 개발의 기초자료의 확장에 기여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본 연구결과는 일부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편의 표집 하여 조사하였으며, 시설입소노인, 입원노인, 치매노인과의 비교평가를 하지 못했다는 제한점이 있다. 향후 본 연구결과를 토대로 이를 확인하기 위한 추후연구가 필요하다. The purposes of this study were to identify correlation of spiritual well-being, social support, life satisfaction and depression in the community dwelling elderly, and to explore a possibility to apply the spiritual well-being, and social support as resources to promote welfareof the elderly. Methods: A structured questionnaire was used to obtain data from a convenience sample of 222 senior citizens, who visited social welfare centers in Gangwon-do from September to October, 2010. Data were analyzed using t-test, ANOVA, and multiple regression.Results: There were significant differences in spiritual well-being based on religion, satisfaction to religion, economic status, physical health, and life satisfaction. Social support was significantly different according to economic status, physical health, life satisfaction, and social gathering.The existential well-being, family support, and special support had a significant effect on life satisfaction, and demonstrated positive correlations with the well-being of the elderly. Conclusion: Spiritual well-being and social support have significant effects on depression and life satisfaction of senior citizens. Thus spiritual well-being and social support can be considered as important factors that improve the elderly`squality of life.

      • KCI등재

        1970~80년대 원주그룹의 생명운동 연구

        김소남 ( Kim So-nam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7 동방학지 Vol.178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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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1970년대 초 원주그룹 내 `생명` 인식의 태동, 197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과 협동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정을 거쳐 1980년대 초원주보고서의 제출과정, 원주보고서의 내용과 특징, 한살림모임의 창립과 한살림선언의 내용, 원주보고서와 한살림선언 간의 비교분석 등을 중심으로 연구한 것이다. 1970년 봄 원주그룹은 `삥땅사건`을 계기로 `생명` 인식이 태동하였다. 1970년대 반독재투쟁과 제반 협동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방향모색의 과정을 거쳐 1982년 초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협동적 생존의 확장』이라는 `원주보고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원주보고서는 1970년대 환경과 생태계의 위기, 현대 산업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동학사상 등에 대한 탐색 등을 거쳐 `사람`에서 `자연`과 `사물`의 영역으로 그 인식범위가 확장되면서 나타났다. 주로 맑시즘적 패러다임과 근대적 조합주의에 기반한 반독재투쟁과 협동운동에서 탈근대적 생명운동이라고 하는 근본적인 전환으로 나아갔음을 의미하였다. 1980년대 원주그룹은 한가농의 `생명공동체운동`으로의 전환, 원주소비조합과 한살림농산의 창립을 통해 유기농업운동에 기반한 도농농산물직거래운동을 전개하도록 추동하였다. 또한 원주그룹은 산업문명이 전 인류와 전 생명계를 위기로 몰아가는 시대적 상황을 진단하고 그 대안을 찾기 위해 치열한 내부논의를 진행한 결과 `한살림선언`을 제창하였다. 원주그룹은 한살림선언에서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소외·분열시키고 억압·파괴시키는 산업문명 전반에 대항하여 생명을 총체적으로 살리는 사회운동인 생명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창하였다. 또한 우리의 삶과 세계에 대한 우주적·생태적·공동체적 각성과 새로운 생활양식의 창조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원주그룹의 생명운동은 근대 산업문명을 근원적으로 비판하면서 생명의 세계관과 협동적 생존의 확장에 기초한 생활공동체 운동과 생명문화운동을 통해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나가고자 하는 의미를 지녔다. In the early 1980s, the Wonju Group published the `Wonju Report,` a critical evaluation and redirection of the 1970s activist movements. Reflecting upon a variety of concepts regarding the 1970s including the environmental and ecological crises, modern industrial civilization, and Donghak philosophies; the document fundamentally expanded the boundaries of its rumination on humans, to nature and objects. The document implied a postmodernist movement from anti-dictatorship cooperative movements, to a life-centric movement that was based on Marxist paradigms and modern unionism. The Wonju Group became the “Life Community Movement” within the Korean Catholic Farmers Association. Additionally, through founding the Wonju Consumer Union and Hansalim Agricultural Cooperative, the Wonju Group promoted the direct trade of agricultural products based on organic farming. Furthermore, diagnosing the situation in which industrial civilization was driving the human race and the environment to crisis, the Wonju Group held hosted intense discussions, ultimately putting together the “Hansalim Manifesto.” Through the Hansalim Manifesto, the Wonju Group contended the necessity of a social movement that focused on protecting life while fighting against the effects of industrial civilization that alienates and divides, suppresses and destroys both human and natural life. It was emphasized that a universal, ecological, and communal awakening was needed in human life, a new lifestyle. Wonju Group`s life movement criticizes modern industrial civilization, simultaneously striving to change the world through an activism of practicing a lifestyle founded on cooperative survival and the value of life.

      • KCI등재

        1970년대 원주그룹의 농촌소비조합운동 연구

        김소남(Kim, So-Nam) 한국사학회 2014 史學硏究 Vol.- No.114

        1972년 8월 남한강유역의 대홍수를 계기로 창립된 재해대책사업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원주그룹은 1973년 남한강유역수해복구사업과 한우지원사업, 1976년 원주원성수해복구사업 등의 추진을 통해 수해를 입은 농민과 광부들을 위한 긴급구호사업을 추진해 나가는 한편, 농촌지역에서의 부락개발운동과 신협운동을 통한 민간 주도의 협동조합운동을 3개도 13개시·군, 80~90여 개 부락과 10여 개의 탄광지부에서 광범위하게 전개해 나갔다. 이 글은 1970년대 전반 원주그룹에 의한 부락개발운동이 전개되는 속에서 농촌지역의 구판장과 소비조합이 설립·운영되는 과정, 1970년대 후반 신협의 부대사업으로 협동조합 원칙에 입각한 구판사업이 운영토록 추동하였던 과정과 특징, 새마을운동에 의해 설립·운영되었던 새마을구판장과 재해위의 추동에 의해 구판장·소비조합과의 비교 등을 중심으로 연구한 것이다. 1970년대 재해대책사업위원회는 관할 농촌부락에서 부락개발운동을 전개하면서 농민의 자체 요구와 희망에 따라 구판사업의 설립·운영을 지원하였다. 당시 災害委의 지원을 받아 부락에서 추진된 구판사업은 부녀구판사업과 농산물구판매사업, 소비조합사업 등으로 유형화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전반 재해위의 추동을 받아 농촌부락에서 전개되었던 구판사업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상당수가 협동조합 원칙에 입각해서 정상적으로 운영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는 농촌부락의 농민들이 민간 주도의 협동조합에 대한 경험의 부족과 이를 보완할 만한 지속적인 소비조합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 등이 나타난 결과였다. 1970년대 중반 災害委는 작목반과 부락총회를 중심으로 한 부락개발운동이 정체하게 되자 농촌부락 내 신협을 중심으로 부락개발운동을 전개하고자 하는 방침 속에서 신협운동이 활발히 전개해 나갔으며, 농촌부락 내 설립된 구판장과 소비조합은 신협의 부대사업으로 협동조합의 7대원칙에 입각해서 조합원에 의해 자발적, 자립적, 자주적으로 운영되도록 추동되었다. 1970년대 농촌지역에서 농민이 설립·운영한 구판장과 소비조합은 신협조직과 함께 농민 주도의 농촌개발운동인 부락개발운동의 주요 협동조직체였을 뿐만 아니라 신협의 부대사업으로 구판사업을 중심으로 한 소비조합운동이 추진되면서 신협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는데 있어 크게 기여하였다. 1970년대 災害委관할 농촌지역에서 전개된 소비조합운동을 통해 1970년대 농민 주도의 협동조합운동이 전개될 수 있는 주요 기반이 되었으며, 새마을운동과 농협·마을금고를 중심으로 한 관제협동조합 등 관 주도의 농촌근대화정책에 맞서 농민지향적 협동조합운동의 전개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 KCI등재

        1970년대 원주지역 재해대책사업위원회의 농촌신협운동 연구

        김소남 ( So Nam Kim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4 동방학지 Vol.166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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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8월 남한강유역의 대홍수를 계기로 창립된 재해대책사업위원회에 의해 3개도 13개 시?군, 80~90여개 농촌부락과 10여개 탄광지부 를 중심으로 민간 주도의 신협운동이 전개되었 다. 이 글은 1970년대 전반 정부에 의해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고 있던 기반 위에서 1973년부터 災害委에 의해 농촌지역에서 남한강유역수해복 구사업과 한우지원사업, 원주원성수해복구사업 등을 통해 설립?운영된 농촌신협의 설립과 운영 과정, 농촌신협과 농협?마을금고 등 관제협동조 합과의 관계, 농촌신협과 가톨릭농민회와의 관 계 등을 중심으로 연구한 것이다. 1970년대 災害委는 남한강사업과 한우지원 사업 관할 농촌부락에서 일찍부터 신협의 설립 을 추동하고 있었으나 1970년대 전반 災害委의 주요 활동부분은 부락개발사업을 통한 농촌개 발운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 반 부락개발운동이 침체에 놓이면서 災害委는 본격적인 신협운동의 전환을 모색하게 되었으 며, 이에 따라 부락개발사업 대상부락에 대한 신 협운동은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다. 그 결과 1970년대 말 災害委 관할 농촌지역에서 54개의 농촌신협이 설립?운영될 수 있었고, 이 중 14개 신협이 재무부의 인가를 받고 있었다. 당시 농촌 신협은 대체로 그 자산과 조직이 소규모였기 때 문에 신용사업을 넘어 생산과 유통, 소비와 구판 의 업무까지 취급하기 어려웠으나 농협이 농민 을 위한 협동조합으로 제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 지 못하면서 부락별로 설립된 농촌신협이 이러 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1970년대 災害委의 추동을 받아 농촌과 광산 지역 전개되었던 민간 주도 협동조합운동의 핵 심은 신협운동이었다. 당시 신협운동은 그 과정 에서 관제농협의 민주화를 추동했을 뿐만 아니 라 관 주도 새마을운동의 전개에 따라 ‘마을회 의’나 대동계, 마을금고 등을 중심으로 부락 내 권력을 유지?행사하던 기존 권력구조를 신협임 원들이 주도해 나가면서 부락 내 정치구조의 변 동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1970년대 농촌부락에 서 신협을 통해 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한다는 것 은 정부 주도의 새마을운동이 전개되는 기반위 에서 부락단위에 기반한 농민 주도의 농촌개발 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핵 심체였다는 점에서 1970년대 災害委에 의해 전 개된 신협운동은 역사적?사회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Established in response to the Great Flood of the Namhan River basin in April 1972, the Relief and Rehabilitation Committee headed the civil-led Credit Union Movements with the participation of about 80 or 90 rural villages, 13 cities and districts in 3 provinces, and more than 10 mining branches. This study aims to elucidate the relations between the agricultural credit unions found and managed by the restoration projects for the flood-hit areas of the Namhan River basin and Wonju-Wonseong regions, the Korean Beef Cattle Support Program conducted by the Relief and Rehabilitation Committee in agricultural areas, and governmental credit unions such as the National Agricultural Cooperative Federation, or village funds. It also explores the credit unions` connection with the Catholic Society of Farmers under the New Community Movement (Sae-ma-eul Undong) put in place by the government. In the 1970s, the Relief and Rehabilitation Committee propelled the establishment of credit unions in the agricultural villages where restoration and support projects were being conducted. In the early 1970s, the Committee`s activities mainly centered around Agricultural Community Development Movements through the implementation of village development projects. However, as the village development projects came to a halt in the mid-1970s, the Relief and Rehabilitation Committee planned the switchover of its activities to Credit Union Movements. As a result, these new types of movements were actively introduced into the villages where the development projects had once taken place. In the late 1970s, the change enabled 54 agricultural credit unions to establish themselves in these rural areas under the jurisdiction of the Relief and Rehabilitation Committee, and 14 of them were authorized by the Ministry of Finance. At the time, those credit unions only had a limited budget and a small constitution, making it difficult for them to maintain production, distribution, consumption and marketing all on their own; therefore, they could only operate credit banking. However, as the National Agricultural Cooperative Federation could not properly act as a credit union for farmers, those agricultural credit unions in the villages needed to fulfill that role. The civil-led cooperative movements overseen by the Relief and Rehabilitation Committee in the agricultural and mining areas of the 1970s had the Credit Union Movements at their core. The movements led to the democratization of the National Agricultural Cooperative Federation and also effected a significant power shift in villages, as the officials of the credit unions replaced the old power structure including the village councils, village funds or county fraternity formed by the government-led Sae-ma-eul movements. The fact that cooperative movements were conducted via credit unions in the agricultural areas while Sae-ma-eul movements were in place, was a key driver of the village development movements led by farmers on the basis of village units. This credit union movement led by the Relief and Rehabilitation Committee has an important historical and sociological significance.

      • KCI등재

        1970년대 원주지역 재해대책사업위원회의 광산지역 장기구호사업 연구: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중심으로

        김소남 ( So Nam Kim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동방학지 Vol.158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1972년 대홍수를 계기로 원주에서 결성된 재해대책사업위원회에 의해 수해를 입은 농촌과 광산지역을 대상으로 남한강유역수해복구사업이 전개되었다. 이 글은 이 중 광산지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장기구호사업을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중심으로 연구한 것이다. 재해대책사업위원회가 주도한 광산지역의 장기구호사업은 3단계로 구분되어 추진된 구호사업 중 가장 핵심적인 비중을 가지고 추진된 것이다. 1970년대 전반기 실시된 장기구호사업의 내용은 주로 광산노동자들의 생산소득사업과 광부들이 참여한 협동조직체에 대해 지원한다는 기본원칙에 의거하여 16개 탄광지부와 2개단체를 대상으로 축산사업과 국수공장사업, 노동금고 및 신협사업과 소비조합사업 등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광산지역 장기구호사업은 기본적으로 협동조합운동을 지향하면서 추진되었다. 1977년 중반기를 넘어서면서 장기구호사업은 이전 시기의 구호사업적 성격에서 벗어나 탄광지역에서 각 노조지부를 중심으로 신협과 그 부대사업으로 소비조합을 결성 운영하도록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유신체제 하 탄광지대의 노동운동이 위축되어 있는 상황과 정부의 감시 및 탄압속에서 재해대책사업위원회의 장기구호사업은 일정하게 굴절되면서 전개되었다. 그럼에도 재해대책사업위원회와 광산지역의 노조 및 신협지도자들이 주도한 협동조합운동에 기반한 장기구호사업은 활발하게 추진될 수 있었으며, 1970년대 탄광노조의 민주화와 노동운동에도 일정하게 영향을 미치며 전개될 수 있었다. This study focuses on analyzing the “Long Lasting Relief Program” in mining areas in the restoration program for flood of Namhan River basin (agricultural and mine districts) by the Relief and Rehabilitation Committee in Won-ju in the 1970s. In early 1973, the Relief and Rehabilitation Committee in Won-ju started the long lasting relief program in the mining areas, financed by Deutsch Caritas, with the supporting principles of making miners more economically self-reliant, independent, and cooperative. As a result, the long lasting relief program, operating a livestock project, a noodle factory project, various types of credit associations project, and a consumers` cooperatives project was in relation with 18,729 miners in 16 trade unions. Two community groups organized many workers` funds or credit unions in the 1970s. From 1973, credit unions set up funds with either financial aid from the Relief and Rehabilitation Committee or their own money, and began to give the people low-interest loans to free them from money-lenders, thereby solving the chronic practice of usury in the mining villages. From 1977, consumers` cooperatives were promoted in credit unions financed by Misereor. Although the two activities in trade union and economic cooperation should be closely connected or harmonized, Korean workers used to lay much stress on trade union but little on economic activities, compared to other advanced nations with a long history of labor movements. They realized the importance of cooperation in their consuming life by its natural results and through various formation and practice they now actively participate in their cooperatives. Most of those social activities done by Relief and Rehabilitation Committees were suppressed as anti-government campaigns, and even the credit unions, which have cooperated with the Won-ju Diocese, were disregarded as anti-government organs and oppressed. The authorities concerned put much pressure on trade union or enterprisers to transform their credit unions into "village funds" sponsored by the government. However, as most local leaders overcame difficulties in clever and cooperative efforts, a foundation for the cooperatives in credit business could be put in the mining ar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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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문 : 정각질세포주의 피부감작물질 검색 관련 효용성 분석

        김소남 ( So Nam Kim ),여경욱 ( Kyeong Uk Yeo ),황소련 ( So Ryeon Hwang ),조지훈 ( Ji Hoon Jo ),손수정 ( Soo Jung Sohn ),염영나 ( Young Na Yum ),이용경 ( Yong Kyung Lee ),허용 ( Yong Heo ) 한국동물실험대체법학회 2011 동물실험대체법학회지 Vol.5 No.1

        Alternative methods using various human or animal cell lines are under development to classify chemical ingredients to skin sensitizing or irritant chemicals. Keratinocyte cell line could be a good target cell, in that the cells are the first contact point for chemical absorption through skin, and immune reactions including inflammation are occurred through interactions among keratinocyte, Langerhans` cell, and T cells. This study introduced current research activities on development of alternative methods using keratinocyte cell lines for identifying skin sensitizers. In addition, a good laboratory practice was introduced to perform serial passage culture of HaCaT human keratinocyte cell line. Furthermore, optimal cell density and culture duration were demonstrated to determine both intracellular and extracellular levels of IL-1α, IL-6, IL-8, and IL-18 from HaCaT cells.

      • KCI등재

        1970∼1980년대 원주지역 재해대책사업위원회의 소비자협동조합운동 연구

        김소남(Kim, So-Nam) 한국사학회 2012 史學硏究 Vol.- No.108

        1977년 하반기부터 착수된 재해대책사업위원회의 ‘광산소비조합육성사업’은 1973년의 광산지역 장기구호사업에서 추진된 노동금고 및 신협 설립운동을 기반으로 제2단계로 광산지역에 소비조합을 조직 육성하고자 한 것이었다. 광산소비조합육성사업은 탄광지부 내 신협의 부대사업으로써 산악지대라는 지역적 특성과 복잡한 유통과정을 통한 높은 광산물가 및 중간상인의 횡포를 극복하면서 광부들의 경제적 생활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추진된 소비조합운동이었다. 재해대책사업위원회는 광산신협 지도자들과 함께 광산지역 소비조합협의회를 결성하고 그 운영을 지원하면서 소비조합운동을 전개하였다. ‘광산소비조합육성2년연장사업’은 광산소비조합에 대한 교육 및 운영관리 지도와 광산지구협의회의 육성을 목적으로 소비조합육성사업의 후속사업으로써 추진된 것이었다. 재해대책사업위원회의 후신인 사회개발위원회는 소비조합육성사업과 광산소비조합육성2년연장사업을 추진하면서 제반 교육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였다. 그 결과 신협과 그 부대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소비조합의 운영을 활성화하고, 광산지구협의회를 통해 그 자립기반의 마련과 발전을 추동할 수 있었다. 광산지역의 소비조합운동은 광산지구협의회의 자립과 함께 성공적인 추진이 이루어졌다. ‘광산소비조합육성3년연장사업’은 이전 사업의 연장이자 광산지역 소비조합운동의 성과와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대두하고 있었던 한국노총협동사업부와 협력하여 한국노총 내 17개 산별 노동조합에 탄광지대라는 지역적 범위를 넘어 전국적으로 소비조합운동을 확산시키고자 전개된 것이었다. 사회개발위원회는 광산소비조합육성3년연장사업의 추진을 통해 광산지역의 소비조합운동을 한국노총 17개 산별 산하 노조 소비조합의 주요모델로 삼아 설립되거나 운영토록 하고 있었으며, 더 나아가 협동조합 7대원칙에 기반한 소비조합운동을 확산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아울러 사회개발위원회는 농촌지역과 광산지역의 소비조합운동의 성과와 경험에 기반하여 1980년대 전반기 소비자협동조합중앙회의 창립과 운영방향에 주요기반이자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사회개발위원회는 소비조합운동의 전국적 조직인 소비자협동조합중앙회를 중심으로 경제기획원의 인가를 통해 광산소비조합을 광산신협에서 독립시키며 재편하고자 하였으나 당시 한국노총 협동사업부의 정치적 행보와 한국노총 산하 전국광산노조의 압력에 의해 광산지역 신협과 그 부대사업으로 운영되었던 광산소비조합과 광산지구협의회는 한국노총소비자협동조합연합회 소속으로 남게 되었다. 재해대책사업위원회에 의해 주도된 광산지역 협동조합운동은 탄광노조의 지도자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초청교육과 현장교육 등 다양한 제반교육을 통해 광산노동자들로 하여금 광산현실에 대한 각성을 이끌었으며,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운영을 기본으로 하는 협동조합운동에 기반한 교육사업을 통해 탄광노조의 민주화를 이루는데 일정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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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진한국마한사(辰韓國馬韓史) (상권)

        김소남(So Nam Kim)(金小南)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1983 馬韓, 百濟文化 Vol.6 No.-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9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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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각질세포주의 피부감작물질 검색 관련 효용성 분석

        김소남 ( So Nam Kim ),여경욱 ( Kyeong Uk Yeo ),황소련 ( So Ryeon Hwang ),조지훈 ( Ji Hoon Jo ),손수정 ( Soo Jung Sohn ),염영나 ( Young Na Yum ),이용경 ( Yong Kyung Lee ),허용 ( Yong Heo ) 한국동물실험대체법학회 2011 동물실험대체법학회지 Vol.5 No.1

        Alternative methods using various human or animal cell lines are under development to classify chemical ingredients to skin sensitizing or irritant chemicals. Keratinocyte cell line could be a good target cell, in that the cells are the first contact point for chemical absorption through skin, and immune reactions including inflammation are occurred through interactions among keratinocyte, Langerhans` cell, and T cells. This study introduced current research activities on development of alternative methods using keratinocyte cell lines for identifying skin sensitizers. In addition, a good laboratory practice was introduced to perform serial passage culture of HaCaT human keratinocyte cell line. Furthermore, optimal cell density and culture duration were demonstrated to determine both intracellular and extracellular levels of IL-1α, IL-6, IL-8, and IL-18 from HaCaT ce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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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질세포주로부터 Interleukin-6 생성 수준에 따른 피부감작물질 검색 유용성 분석

        김소남 ( So Nam Kim ),여경욱 ( Kyeong Uk Yeo ),김형아 ( Hyoung Ah Kim ),허용 ( Yong Heo ) 한국동물실험대체법학회 2012 동물실험대체법학회지 Vol.6 No.1

        HaCaT cell, a human keratinocyte cell line, was evaluated for its usefulness in sorting out chemicals with skin allergic potential. Interleukin-6 production was determined in HaCaT cell culture supernatants and cell lysates. HaCaT cells were cultured in the presence or absence of 4 doses, 0.01X, 0.1X, 0.5X, or 1X CV75 (75% cell viability concentration) of 3 sensitizing chemicals (dinitrochlorobenzene, hexyl cinnamic aldehyde, cobalt chloride) and 2 irritant chemicals (lactic acid, isopropanol) for 48 and 72 hours. IL-6 stimulation index (SI) was calculated through dividing IL-6 amount at each chemical concentration by IL-6 amount for vehicle control. When SI exceeding 3 is considered a threshold for categorizing into skin-sensitizer, dinitrochlorobenzene and hexyl cinnamic aldehyde were positive since SI was 7.36 and 3.03 for dinitrochlorobenzene and hexyl cinnamic aldehyde, respectively, for cell lysates obtained from 48 hour cultured-HaCaT cells. Two non-sensitizing chemicals, lactic acid and isopropanol, demonstrated SI value below 3, indicating negative to skin sensitizing potential. These results indicate that IL-6 production could be a biomarker for classification of chemicals as sensitizers or non-sensitiz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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