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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공화주의 정치철학에서의 자유의 문제

        김범춘(Kim, Beom Choon)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5 통일인문학 Vol.64 No.-

        신공화주의는 자유를 비지배라는 개념에 기초하여 새로이 정의하면서, 다른 사람의 자의적인 의지에 지배당하지 않는 비지배 자유를 진정한 자유라고 제안한다. 이 비지배 자유를 통해서 신공화주의는 독립적인 개인에 대한 외부적 간섭을 거부하는 불간섭 자유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와 시민적 덕성을 함양하여 공공선을 실현하는 자치로서의 자유를 주장하는 공동체주의를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다. 다시 말해 신공화주의는 자유주의의 불간섭 자유보다 더 많은 자유를 시민들이 누리면서도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를 존중하는 공공선을 실현하고자 하는 공공철학을 제안한다. 신공화주의의 비지배 자유에서는 통제, 특히 선택에 대한 통제라는 개념이 핵심적이다. 왜냐하면 신공화주의는 선택에 대한 통제를 통해서 비지배 자유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선택을 통제한다는 것은 그 사람 외부의 어떤 힘이 그 사람의 선택가능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공화주의는 자유를 다른 사람의 영역에 대한 외부적 또는 소외시키는 통제의 부재로 정식화한다. 달리 말하면 신공화주의는 자유로운 인간을 자신의 선택행위가 외부적 통제로부터 제도적으로 보호받고 그러한 통제에 대항할 권리를 갖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신공화주의의 비지배 자유는 주로 동의에 내주었던 자리를 견제력이 대체하는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여기에서는 정부가 무엇을 하든지 시민들이 항상 견제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말해 민주적인 제도는 시민에게 선거권뿐만 아니라 대표자들이 내린 결정을 놓고서 논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신공화주의는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민중주의의 대안으로 견제적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결국 신공화주의 정치철학은 공화주의적 이상들이 실현될 수 있는 제도적 고안의 모델과 실제 사례를 모색하는 연구프로그램이다. Neorepublicanism defines freedom newly by being based on the concept of nondomination and suggest it as a true freedom, because it doesn’t make people live under the arbitrary will or domination of others. By taking freedom as nondomination, neorepublicanism integrates liberalism asserts noninterference freedom which denies alien control to individuals, with communitarianism insists civic virtues and self-mastery which materialize common good. Neorepublicanism is a public philosophy realizes public good, in which all citizens have more freedom as an equal partners. Neorepublican freedom as nondomination emphasizes the notion of control, in particular control over choice. Because neorepublicanism draws freedom as nondomiantion from control over choices. Being control on other"s choice means the probabilities attached to the option be affected by the alien control of others. In this sense, neorepublicanism formulates freedom as the absence of alien or alienating control on other person. To put it another way, neorepublicanism embodies the conception of a free person as one who has the right to protect ones own choice from alien conrol on it by an institution. Neorepublican freedom as nondomination supports democracy which replaces consent with contestatory right. It is very important that citizens always counter what the government does. In other words, democratic institutions should give citizens not only electoral rights but also the effective opportunity to contest the decisions of their representatives. So neorepublicanism provides contestatory democracy as an alternative procedural democracy and majoritarian populism. Ultimately neorepublican political philosophy is a research program to explore models and practices of institutional design in which republican ideals can be real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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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 : 다문화사회의 정치철학으로서 공동체주의의 가능성

        김범춘 ( Beom Choon Kim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3 시대와 철학 Vol.24 No.2

        독일과 영국, 프랑스처럼 이주민의 문화적 정체성을 수용하던 유럽 국가들의 다문화정책이 기독교적 가치, 영국적 가치, 프랑스적 정체성처럼 자국의 전통적 가치관과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다문화주의 정책의 기조는 처음에는 자국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다른 문화를 통합하는 용광로(melting pot) 이론으로부터 시작하여, 통합 속에서도 개별적 특수성을 유지하는 샐러드 그릇(salad bowl) 이론으로 옮겨져 왔다. 그리고 이제는 다양성 속에서도 민족적 정체성과 시민의 공통의 가치를 강조하는 새로운 다문화이론, 즉 통합적 다양성(diversity within unity) 이론을 제안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이주노동자와 결혼 이주여성의 증가, 장기체류 외국인의 증대로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한국보다 다른 민족이나 인종의 인권을 더 잘 보호하고 다른 문화에 대해 더 너그럽다고 평가되는 유럽 국가들의 다문화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 앞에 놓인 어려움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유럽 국가들과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서로 다른 가치와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서 같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구성원들이 자신보다 그들이 속한 공동체를 중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공공선을 실천하는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를 다문화 사회의 정치철학으로 수용하고 있다. 샌델을 포함한 공동체주의자들은 다양한 민족과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동체의식과 결속을 실현하고 상호책임감을 배양할 수 있는 방법은 반드시 미래의 비전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에게 좋은 삶이 어떤 것이며, 그 좋은 삶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며, 더 나은 공동체를 어떻게 형성하고, 이를 위해 개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안해야 한다. 이 논문은 이런 공동체주의의 주장을 철학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공동체주의가 다문화사회에서 정치철학으로서 기능할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The main purpose of this paper is European countries such as Germany, the United Kingdom and France which accepted the cultural identity of immigrants change multicultural policies which emphasize christian values, british values and french identity. Melting pot theory, multiculturalism policy stance in the beginning, integrates different cultures from the point of national identity. And then the special characteristics of individuals are preserved in the cultural integration which is known as salad bowl theory. Now diversity within unity theory suggests new multiculturalism theory and puts stress upon identity and common values in the cultural diversity. With the increase of immigrant workers, immigrant women and long-term residence of foreigners, Korea is just entering the multicultural society. We can easily guess how difficult conditions Korea faces with. This worry is based on critical evaluation of european countries having already entered the multicultural society and estimated as more generous to other cultures and races. But unlike european countries and Korea, the United States accepts communitarianism as a political philosophy of the multicultural society. Communitarianism places emphasis on the community to which individuals belong, and they pursue their own interests while practicing the common good. There are many different ethnicities and people with different values in a democratic society. Communitarians like Michael Sandel assert that the program to realize the sense of community, solidarity and mutual responsibility certainly lead to a certain vision of future. In other words, we need to worry about what is the good life for us and how can we achieve the good life in what way. Furthermore we should to propose what individuals have to do for shaping more better community. This paper, by examining communitarian claims in the side of philosophy, is going to explore the possibility of communitarianism as a political philosophy of multicultur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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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화 사회의 소통 패러다임으로서 레비나스의 타자성

        김범춘(Kim, Beom Choon)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4 통일인문학 Vol.57 No.-

        이 논문은 다문화 사회에서 겪게 되는 낯선 다문화 타자와의 소통 문제의 핵심에 근대적 주체관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그러한 주체관 대신에 레비나스의 윤리적 주체관을 제안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아동일성이라는 전통적 주체관이 자아와 타자를 분리하고 배타적 향유를 가져온다면, 레비나스의 윤리적 주체관은 타자를 자아성립의 전제조건으로 적극적으로 수용할 뿐만 아니라 타자에 대한 책임과 환대를 주장한다. 레비나스는 철학이 존재에 관한 물음 이상의 것이자 그 이상의 것에 대답하는 것이며, 따라서 철학은 진리가 아니라 선(善)에 관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레비나스는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윤리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레비나스는 타자성이라는 개념에 기초하여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데, 이 타자성은 직접 대면하지 않는 제삼자에 대한 책임까지 포함하는 삼자성을 매개로 하여 사회정의로 이어지게 된다. 이때 사회정의는 모든 사람의 모든 사람에 대한 무한책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에는 ‘사랑의 지혜’가 필요하며, 타자에게 단순히 마음을 여는 것을 넘어서 자기 입 속의 빵을 건네주는 적극적인 환대가 요구된다. 이런 내용을 통해서 이 논문은 타자를 환대하는 윤리적 주체를 끌어내면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레비나스의 타자성이 다문화 사회에서 새로이 등장하는 다문화 타자와 소통하는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This paper finds out that the key point of communication problems with unfamiliar others in the multicultural society is modern view of subject itself. To do so, I firstly intend to propose Levinas’s ethical view of subject instead of a modern view of subject. As a self-identity, traditional view of subject separates self-ego from others and brings exclusive jouissance. On the contrary Levinas’s ethical view of subject not only positively accepts others as a precondition in self-formation but also proposes responsibility and hospitality for others. Levinas prescribes that philosophy is something beyond the questions about beings. Philosophy is to answer to them, therefore it doesn’t relate to the truth but the goodness. In this sense Levinas says that his task is only try to find the meaning of ethics. secondly, I asserts that Levinas develops his argument based on the conception of alterite. He connects this alterite to illeite which makes self-ego responsible for not facing third party, so the conception of alterite leads to social justice. Social justice here indicates that we are all limitlessly responsible for all men. And realization of social justice requires wisdom of love, which is active hospitality. We should give our mouthful bread to others beyond just opening our mind. With the above-mentioned points, finally this paper demonstrates that Levinas’s conception of illeite, concerned with ethical view of subject and social justice, would be a paradigm of communication with newly appeared multicultural others in the multicultura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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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적 철학하기의 예제로서 알랭 드 보통의 철학

        김범춘(Kim, Beom Choon)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7 통일인문학 Vol.69 No.-

        콩트는 과학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근대적 인간의 특유한 정서적이고 지적요구에 맞추어 전통적 종교를 대신하는 인류의 종교를 제안한다. 콩트의 인류의 종교에서 실증주의 사제는 과거의 종교적 사제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근대적 인간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들이 공동체적 관계를 회복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실증주의 과학으로 신이 사라진 틈새를 메우면서 자본주의의 그늘이 없는 공동체 세상을 만들고자한 콩트의 프로젝트를 우리시대에 알랭 드 보통이 되살리고자 한다. 그는 이 작업을 위해 인문학적 철학을 통해 능력주의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심리치료사라는 우리시대의 새로운 사제를 제안한다. 알랭 드 보통이 제안하는 인문학적 철학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분과학문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일반인이 원하는 철학, 즉 삶의 지혜와 관련되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가르침을 주고자 한다. 건축, 결혼, 불안, 섹스, 연애, 여행, 예술, 일, 종교와 같은 일상적인 경험에 관한 이해와 치료적 효과를 제공하는 그의 철학은 삶의 철학, 일상철학, 대중철학으로 불려진다. 그의 일상철학에서는 철학자, 인문학자, 예술가가 서로 교류하면서 우리가 처한 조건과 우리의 능력을 설명해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고통을 위로받고 치유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그의 일상철학은 ‘인생학교’라는 문화사업으로 구체화 된다. 이러한 일상철학의 목적지는 위안과 치유고, 그 목적지에 이르는 방법은 바로 철학적 시선으로 대상에 접근하고 이해하여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일상철학이라는 알랭 드 보통의 프로젝트는 단지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넘어서는데, 그는 치유된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갖고서 궁극적으로는 일상적인 미덕에 기초한 공통체적 삶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이런 공동체적 삶을 위해서 그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세속적 미덕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감정이입, 예의, 용서, 유머, 인내, 자아인식, 자신감, 활기, 희망, 희생이라는 열 가지 미덕을 통해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동시대의 피할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요청한다. Auguste Comte suggests the religion of humanity in place of traditional religion in accordance with the peculiar emotional and intellectual demands of modern society, namely, scientism and capitalism. In the religion of humanity, the positivist priest, like the religious priests of the past, comforts the souls of free modern human beings and plays a role in restoring them to community relations. The project of Auguste Comte is to make more flawless community of the world of capitalism by filling the gap which have grown the fall of God and the rise of positivist science. Alain de Botton suggests a new priest of our time, psychotherapist who comforts and heals people suffering from meritocracy through humanistic philosophy. Alain de Botton’s humanistic philosophy is not a philosophy of teaching and learning in college, but an ethical and moral teaching relates to general public, that is, the wisdom of life. His philosophy provides understanding and therapeutic effects of everyday experiences such as architecture, marriage, anxiety, sex, love, travel, art, work, religion, so it is called philosophy of everyday life or popular philosophy. In his philosophy of everyday life, philosophers, human scholars, and artists communicate with each other to explain our conditions and our ability to do, so that they prevent us from suffering and comfort and heal us. His philosophy of everyday life is embodied in a cultural business project called ‘The School of Life’. The aim of Alain de Botton’ philosophy of everyday life is consolation and therapy, and the way to reach its destination is to approach, understand and love each other through philosophical contemplation. But his philosophy of everyday life goes beyond just healing psychological wounds, and he wants to create a common life that is based on secular virtues, with healed healthy bodies and minds. For this community life, he says, we need to practice virtues that we can fully discover in our everyday lives. He asks us to live with contemporaries who are incompatible with us through ten virtues, that is to say confidence, empathy, forgiveness, hope, humour, patience, politeness, resilience, self-awareness, and sacri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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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 : 이데올로기 비판과 해방의 기획으로서 랑시에르의 정치철학

        김범춘 ( Beom Choon Kim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0 시대와 철학 Vol.21 No.1

        이른바 `정치-이후`의 시대, 랑시에르는 이러한 정치 종언을 역설적으로 새로운 철학적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기반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철학이 새로운 것을 정초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어떤 무엇인가가 종언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랑시에르는 정치의 종언, 즉 자유주의 경제가 정치를 소멸시켰다는 주장뿐만 아니라 맑스주의가 혁명으로 계급 정치를 소멸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까닭은 정치 그 자체가 사회구성원인 개인 또는 집단들 사이의 끊임없는 계쟁(係爭)에서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랑시에르는 "정치는 권력행사가 아니다."를 <테제1>로 제시하면서, 정치를 서로 계쟁하는 두 세계의 불일치 속에서 보일 이유가 없었던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엄연히 존재하는 세계를 보일 수 없고 들릴 수 없게 만드는 것이 현실적 의미의 정치, 즉 치안이다. 치안은 우리의 감각을 분할하여 사회적으로 셈해지지 않는 공백을 위한 어떤 자리도 배정하지 않고 배제함으로써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한다. 반면에 랑시에르의 정치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예기치 않은 단락을 통해 제기되는 저항이다. 이 저항은 사회적 합의의 틀에 흠을 내는 불화이자 틈인데, 바로 이 불화와 틈에서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등장하게 된다. 랑시에르는 정치적 주체의 등장 과정을 주체화 또는 감성화라고 부르면서, 이것을 감각적인 것의 나눔, 즉 치안의 배제 속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게 된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감각경험의 방식에서 이탈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감성화는 일상적인 지각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지각방식의 틀이나 나눔 자체를 다시 정립하여 배제된 주체를 보이게 하는 고유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처럼 랑시에르의 정치철학은 현존하는 불화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부분, 보지 않는 부분들이 서로 공통의 공간 속에 존재하는 평등한 존재로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랑시에르의 정치철학은 모든 사회구성원이 서로 다르지만 평등하다는 것, 그리고 사회구성체는 이 평등한 다른 것들이 서로 자신의 목소리와 자리를 요구하는 시끄러운 계쟁의 장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랑시에르의 정치철학은 정치경제적인 계급 갈등을 넘어서 인종적이고 문화적인 갈등을 가져오고 있는 오늘날의 다인종·다문화 사회에서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정치술을 분석하는 기법을 제안하는 것인 동시에,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정치적 주체화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다. In this age of what is called a epoch of post-politics, Jacques Ranciere says that the end of politics is new base which makes a new philosophical thinking. Because when someone says something is over, just at that moment philosophy lays the cornerstone of new thinking. Jacques Ranciere maintains that politics is established in a ceaseless litigation of members of the society. Jacques Ranciere suggests <thesis1> that is to say politics is not an exercise of power but a letting members who have vested rights see a unvisual thing in litigation of two parts in conflict with each other. He says police is not politics because police makes it almost impossible for the social weak to be counted them as a equal member of the society. In contrast to police, politics is a resistance which bring about an unexpected break with 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part of society. This resistance is a discord and a gap which get into trouble about a social consensus and a new political subject emerging from this resistance. Jacques Ranciere call this emerging process of subject esthetisation(establishing one`s subjecthood). And he says esthe tisation is the way of separation from the sensory dividing and the exclusion, which have let members place in the society. Also it is the way of separation from the sensible experience given to them. Thus, esthetisation is not only getting out of routine sensory perception, but also re-establishing division itself which makes excluded subject come into sight. The essence of Jacques Ranciere`s political philosophy makes invisible and visible portion of society an equal being through existing disagreements. After all Jacques Ranciere`s political philosophy suggests that we are different, but equal as a member of society, and society is a field of litigation in which equal members require their own seat with a loud voice. And his political philosophy could be one of the guidelines in this age which cultural conflicts have come about. In addition, his political philosophy could be a political technique for analyzing this multicultural and multiracial society. First of all, it could be one of alternatives which make the social weak and social minority be a political 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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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와 평등의 대칭성에 관한 철학적 분석

        김범춘(Kim Beom Choon)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2010 통일인문학 Vol.49 No.-

        자유와 평등은 역사적 기원에서뿐만 아니라 개념적 규정에서도 대칭성을 가지며 서로를 전제한다. 하지만 자유가 자유주의의 이념으로, 평등이 마르크스주의의 이념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연결되게 되면서 자유와 평등은 서로를 배제하고 대립하는 비대칭성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대칭성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유에 대한 제약 속에서 평등은 불가능하며 동시에 평등이 실현되지 않는 자유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자유에 대한 수요가 평등보다 더 컸던 자유경쟁시장의 시대에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자유주의자가 양산되었고, 동시에 자유경쟁시장의 폐해는 마르크스주의적 평등에 대한 급격한 수요를 발생시켰다. 그런데 자유주의 진영은 평등의 요구를 자유주의 체제 자체가 지닌 한계가 아니라 체제 운영의 부작용으로 보았다. 반면에 마르크스주의 진영은 자유를 언제나 자본주의적 소유권에 대항하는 권리의 문제로 환원하고 있었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을 내포와 외연에서 동일한 가치로 설정하고, 그 대칭성을 구체적 현실에서 실현해야 한다. 자유와 평등을 둘러싼 입장이 자유주의적 평등이든 평등주의적 자유든 간에 두 가지를 모두 살려내는 정의(justice)나 평등적 자유(?gqliberet?)와 같은 공통항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그 공통항은 자유와 평등 사이의 비율이나 역학관계를 따지는 함수가 아니라 가치의 대칭성을 반드시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이데올로기적으로 또는 기능적으로 왜곡된 자유와 평등의 대칭성을 복구하는 일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획에서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Freedom and equality have a symmetrical relation in historical origins as well as conceptual definitions, and they presuppose each other. But as freedom is connected to ideal of liberalism and so did equality to ideal of marxism, freedom and equality were mutually exclusive and conflictive, finally asymmetrical each other. However this asymmetry is not valid theoretically and realistically, because equality is impossible in the constraints on freedom, and freedom is impossible under the condition in which equality is not realized. Historically, the demand for freedom is larger than equality in the period of the free market, liberalists who put up freedom as the highest value were produced on a large scale. And people demanded a marxist equality by reason of the harmful consequences of the free market. But the liberal camp accepted the demand of equality as the operating system's side effects, not the limitations of the system itself. In contrast, the marxist camp always reduced freedom to problem of the human rights which fight against capitalist ownership. To correct these shortcomings, we should set up freedom and equality which have the same value in connotation and extension. Moreover the symmetry between freedom and equality must be realized in concrete reality. No matter what position on freedom or equality, namely in liberal equality or egalitarian liberty, should establish such a common term as justice or ?gqliberet?. In addition, the common term must include the symmetry of value which freedom and equality have, must not calculate the ratio or functional relation between freedom and equality. Because To restore the symmetry between freedom and equality distorted by liberalism and marxism ideologically or functionally, holds a essential position in planning for good huma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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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엥겔스의 정의론 재구성

        김범춘(Kim, Beom Choon)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20 통일인문학 Vol.84 No.-

        이 논문은 마르크스-엥겔스의 정의론을 자유에 초점을 두고 재구성할 것이며, 이 재구성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장에 근거할 것이다. 먼저 이 논문은 착취와 필요원칙이 마르크스의 정의원칙의 토대라고 주장하는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정의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주장을 거부할 것이다. 다음으로 이 논문은 마르크스의 사상이 전통적인 현대 정치철학의 두 교의인 정의와 인간존중에 대한 체계적이고 강력한 도전을 제공한다는 앨런 뷰캐넌의 주장을 받아들여, 마르크스-엥겔스의 정의론이 자유롭고 인간적인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이 논문은 인간을 존중하는 삶, 다시 말해 모든 개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적인 삶이 마르크스-엥겔스의 정의론의 핵심이라는 점을 논증하고자 한다. 첫째, 이 논문은 마르크스가 착취, 도둑과 같은 도덕적 평가를 담고 있는 단어를 사용해서 자본주의적 착취를 비판하고 있지만, 기여원칙에 기초하는 분배정의가 마르크스-엥겔스의 정의론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먼저 노동력의 착취는 역사초월적인 사실이고, 자본가계급의 생산수단의 소유에 따른 불평등한 분배는 유물론적 역사관에 일치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캘리니코스는 비판의 대상인 자본주의적 착취에서 정의론을 구성해내는 반면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러한 비판의 목적인 모든 개인의 자유에서 정의론을 정립해내고 있다. 따라서 캘리니코스가 기여원칙에 기초해서 노동력의 자본주의적 착취를 비판하고, 착취를 정의론의 토대로 삼는 것은 마르크스-엥겔스의 정의론과 무관하다. 마르크스-엥겔스의 정의론의 목적이자 핵심가치는 착취가 아니라 모든 개인이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게 실현하면서 동시에 유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둘째, 이 논문은 마르크스-엥겔스의 정의론이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사상들과 구별하는 기준인 유물론적 역사관을 토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필요원칙을 정의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캘리니코스는 필요원칙을 정당화하는 유물론적 정의원칙을 먼저 경험적으로 정립해야만 한다. 그러나 필요원칙을 정당화하는 그런 유물론적 정의원칙을 유물론적 역사관에서는 찾을 수 없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에 따르면, 자본주의사회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따라 자원을 소유하고 생산물을 분배하며, 필요원칙은 자본주의사회가 폐지된 후 공산주의사회의 높은 생산력으로 실현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필요원칙을 현존하는 자본주의사회의 정의원칙으로 제안하는 캘리니코스의 정의론은 마르크스-엥겔스의 정의론과 다르다. 셋째, 이 논문은 마르크스-엥겔스의 정의론이 생산이나 분배에서의 계급적 차별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캘리니코스의 정의론에서는 착취 없는 분배와 필요에 따른 불평등한 분배가 핵심이라면, 마르크스-엥겔스의 정의론에서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핵심이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주의의 정의론에서 캘리니코스가 사회적 제도들의 제1의 덕목인 평등적 정의를 강조한다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개별적 존재이자 유적 존재인 개인의 제1의 덕목인 사람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다.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하나의 연합체’라는 『공산주의당 선언』의 상징적인 문구는 마르크스-엥겔스의 정의론의 핵심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This paper reconstructs Marx-Engels’s justice theory with a focus on freedom, and this reconstruction is founded on the arguments of Marx and Engels themselves. First, this paper critically reviews Alex Callinicos’s theory of justice claims that exploitation and the principle of necessity are the foundation of Marx’s justice principle, but this paper rejects his claim. Next, this paper agrees to Allen Buchanan’s argument, Marx’s thoughts provide systematic and powerful challenge to justice and respect of person which is two dogmas of traditional contemporary political philosophy. Accordingly this paper asserts that Marx-Engels’s justice theory concerns respect for persons. Through this work, this paper argues that a humane life in which all individuals freely live their own life is the core of Marx-Engels’s justice theory. First, this paper argues that Marx criticized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with words that contain moral evaluations such as theft and exploitation, but distributive justice according to the principle of contribution is not Marx-Engels’s justice theory. The exploitation of labor power is a transhistorical fact, and the discrimination in distribution, based on social class according to the capitalist ownership of the means of production, is justified in line with historical materialism. While Alex Callinicos constructs his justice theory in capitalist exploitation which is the target of criticism, Marx and Engels found their justice theory in freedom of all individuals which is the purpose of criticism. Therefore the purpose and core value of Marx-Engels’s justice theory is not exploitation, but a human life in which individuals freely realize their own individuality while living a species-being’s life. Second, this paper argues that Marx-Engels’s justice theory should be founded on historical materialism which is the criterion distinguishes Marxism from other thoughts. Thus, Alex Callinicos would presents the principle of necessity as the basis for justice, materialistic justice principle that justifies the principle of necessity must be established empirically first. However, materialistic justice principle of that kind cannot be found in historical materialism. According to the Marx and Engels’s historical materialism, capitalist society owns resources and distributes products according to capitalistic mode of production. And after capitalist society has abolished, the principle of necessity is realizable in communist society with high productive power. Thus, Alex Callinicos’s justice theory proposes the principle of necessity as the basis for justice is different from Marx-Engels’s justice theory. Third, this paper notes that Marx-Engels’s justice theory doesn’t criticize class discrimination. While distribution without exploitation and unequal distribution on demand is key value in Alex Callinicos’s justice theory, respect for persons is key value in Marx-Engels’s justice theory. In other words, in arguments about Marxist justice theory, like most Marxists, Alex Callinicos emphasizes equality as the first virtue of social institution. But Marx and Engels emphasize respect for persons who are an individual being and a species-being as the first virtue of individuals. The symbolic phrase in Communist Manifesto, “an association, in which the free development of each is a condition for the free development of all” intensively expresses the core of Marx-Engels’s justice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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