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펼치기
        • 등재정보
          펼치기
        • 학술지명
          펼치기
        • 주제분류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저자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있어서 해원상생의 재해석과 지평

        김방룡,Kim, Bang-ryong 대진대학교 대순사상학술원 2017 대순사상논총 Vol.29 No.-

        이 연구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본격적인 도래를 앞두고 종교는 어떠한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대순진리회의 미래관'이란 종교 신앙적 차원에서 증산 상제의 천지공사에 의하여 도래할 미래사회의 모습을 예견하고 전망하는 사명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의 존립근거는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새롭게 교리를 재해석하여 시대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부여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증산은 앞으로 도래하는 시대는 '인존(人尊)시대'라고 밝혀주었다. 이는 기술 과학의 혁명을 인간이 주도하고 인간이 통어하며 인간을 위해 진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산업혁명'의 핵심은 '지식'을 기반으로 삼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식기반사회'에서 발생하였던 '인간소외'와 '양극화 심화' 및 '환경파괴' 등의 문제는 여전히 발생할 수 있고 그 정도가 심해질 수 있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시대의 진입에 있어서 이러한 문제점을 직시하고 그 대안을 제안해줄 종교적 역할이 새롭게 대두된다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대순진리회의 4대 종지 가운데 하나인 '해원상생'의 이념이 다가오는 제4차 산업혁명시기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으며, 크게 세 가지의 연구를 진행하였다. 첫째, 대순진리회의 종지와 그 가운데 해원상생의 본래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밝히고, 이를 새로운 4차 산업혁명시대를 염두에 두고 그 보편적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밝혔다. 둘째, 종교학적 차원에서 4차 산업혁명시대의 소외와 갈등 요소를 규명하였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과 더불어 노동에서의 인간소외, 인간의 정체성 혼란, 인간 대 포스트휴먼의 갈등 등을 다루었다. 셋째, 해원상생의 원리를 통한 소외와 갈등의 치유 방법에 대하여 다루었다. 두 번째 작업을 통하여 드러난 소외와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해원상생의 이념의 새로운 해석과 적용을 통하여 4차 산업혁명시대의 대순종학의 해석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하였다. This paper critically examines the role and function of religion prior to the full-out advent of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We can understand 'The vision of Daesoon Jinrihoe (大巡眞理會)' as a mission to foresee and create a prospective figure for a future society in the person of the Lord on High, Jeungsan (甑山) as a religious dimension. However, the existence ground of religion relies on giving positive meaning to the present time after reinterpreting religious doctrine to reflect changing realities. Jeungsan (甑山) said that the age to come is 'the age of the human majesty (人尊)'. This means that humans will take the lead and control the revolution of scientific technology to progress and benefit humanity. Problems such as 'human alienatio', 'increased polarization', and 'destruction of the environment' still arise and deepen because the motive of 'the Industrial Revolution' was built upon 'knowledge' within the context of a Knowledge-Based Society. Therefore, we can say that the role of religion will newly rise to the forefront in the era of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Consequently, religion should face matters squarely and suggest viable alternatives. This paper deals with reinterpreting the concept of 'the resolution of grievances for mutual beneficence (解冤相生)', one of the four teachings of Daesoon Jinrihoe, within the context of the coming era of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My research is divided into the following three parts: First, I determined the teachings of Daesoon Jinrihoe and the original meaning of 'the resolution of grievances for mutual beneficence', and then I disclosed the way we can reinterpret the general meaning of this concept for application in the ear of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Second, from the perspective of the religious dimension, I inquired into factors regarding alienation and conflict in the era of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I focused on human alienation from labor, identity confusion, potential conflicts between humans and post-humans,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Third, I examined potential cures for alienation and conflict through the principle of the resolution of grievances for mutual beneficence. I tried to enlarge the interpretive prospects of Daesoon's main teaching in light of the era of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through a new interpretation and application that employs the concept of 'the resolution of grievances for mutual beneficence (解冤相生)' in order to cure the alienation and conflict.

      • 영.미의 통신요금 규제

        김방룡,Kim, Bang-Ryong 한국전자통신연구원 1997 전자통신동향분석 Vol.12 No.4

        최근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통신부문의 경쟁 진전과 더불어 통신사업에 대한 규제가 급격히 완화되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통신사업이 독점체제에서 경쟁체제로 이행하는 것을 계기로 10여년 전부터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한 요금 규제 방식을 공정보수율규제에서 가격상한규제로 대체하여 왔다. 최근 미국에서는 AT&T를 비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하고, 경쟁 기업과 거의 동일한 조건 하에 경쟁이 가능하도록 최대한 간소화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본 고에서는 통신요금에 대한 규제완화 동향을 영국의 BT, 미국의 AT&T 및 BOCs의 사례를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고, 영.미의 요금 규제 제도를 비교 분석하였다.

      • KCI등재후보

        정혜결사의 연구현황과 과제

        김방룡(Kim Bang-Ryong) 보조사상연구원 2003 보조사상 Vol.20 No.-

        This paper has for its object to review the existing research papers on Jeonghyeagyeolsa(定慧結社), association of Samādhi(定) and Prajnā(慧), Jinul's central idea with that of sudden awakening followed by gradual cultivation and and the unity of Zen and Kyo. I studied concretely the state of the existing researches on Jeonghyeggyeolsa(定慧結社) and then analyzed those researches by the standards of time and subject. Lastly I referred to the problems left in our learned world of buddhism. In analysis of the time, I classified a lot of researches poured out after the regular meeting sponsored by Bojo Thought Research Institute under the theme of reviewing Jeonghyeagyeolsa(定慧結社). In analysis of the subject I classified into historical, philosophical, comparative researches etc. It is necessary to make a synthetic and comparative research about associations in Korea Buddhism. I commented upright succession of Jeonghyeagyeolsa(定慧結社) with an proposal of those problems.

      • 한국 선종사에 있어서 대행선의 위상과 의의

        김방룡(Kim, Bang-ryong) 대행선연구원 2019 한마음연구 Vol.3 No.-

        묘공당 대행(1927~2012)은 한국 근현대를 살다간 고승으로서 십 수 년의 철저한 산중고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었으며, 그 깨달음의 바탕을 ‘한마음’과 ‘주인공主人空’이라 정의하였다. 대행은 한마음선원을 중심으로 하여 대중 교화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불교의 현대화·생활화·과학화·세계화에 큰 업적을 드러내었다. 본고는 대행이 깨닫고 대중들을 지도하였던 선사상을 ‘대행선’이라 명명하고, 이러한 대행선이 한국 선종사에 있어서 어떠한 위상과 의의를 지니는가를 고찰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다음의 두 가지의 면에서 고찰하였다. 첫째는 대행선이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대행선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구도과정에서 자신의 의문을 밖의 스승이나 학문에서 찾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에서 그 독특성이 나타난다. 대행은 특별한 스승이 없이 철저한 구도와 독자적인 체험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었으며, 깨달음의 바탕을 ‘한마음’과 ‘주인공主人空’ 혹은 ‘한마음 주인공’이라 명명하였다. 대행은 ‘믿음’, ‘놓음’, ‘지켜봄’을 특징으로 하는 주인공 관법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점은 대행이 기존 선사상을 맹목적으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내고 있는 것으로서, ‘대행선’이라 명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한 공체共體·공심共心·공생共生·공식共食·공용共用의 오공五共 사상 역시 대행의 독특한 사상이다. 이는 대행의 한마음 사상에서 비롯된 수행론이라 할 수 있고 깨달은 자가 행하는 자비행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현대적 개념으로 말한다면 생명·생태철학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는 독특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한국 선종사에 있어서 대행선의 위상은 어떠한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대행선’이라 명명할 때 거기에는 선의 보편성과 대행만의 독특성이 함께 존재한다. 이러한 대행선의 정체성은 대행의 열반으로 완료된 것이 아닌 그 제자들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대행선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대행선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어서 과거 한국선의 역사적 전통을 직접적으로 계승한 측면은 크게 발견되지 않아 이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대행이 활약하였던 1970년 이후 2012년까지 대행은 현대 한국불교의 개혁적 방향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따라서 현대 혁신불교를 이끈 대표적 선사로서의 위상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Myogongdang Daehaeng (1927~2012) was an eminent Korean monk who attained enlightenment after more than ten years of exhaustive practice. She defined the basis of her enlightenment as the concepts of 'Hanmaeum (One Mind)' and 'Juingong (True Self)'. Operating out of her Hanmaeum Seon Center, her superior abilities to teach and educate allowed her to make great progress in modernizing and globalizing Buddhism and in teaching the concept of living practice. Her brand of Seon Buddhism has been labeled 'Daehaeng Seon', and in this paper I want to examine the status and meaning of Daehaeng Seon in Korean Seon history. First, what is Daehaeng Seon? Ven. Daehaeng did not seek answers to her questions from any teacher or texts; she listened to her own 'inner voice' to find truth. That is the uniqueness of Daehaeng Seon. She attained enlightenment by fearlessly seeking the truth and through her own experiences. Ven. Daehaeng's 'Juingong meditation' focused on faith, selflessness and observation. These indicate that Ven. Daehaeng didn't blindly follow existing Seon thought but chose her own unique path. The Five sharings (五共) is also Daehaeng's unique thought. This can be called a kind of practice originated in Daehaeng's Hanmaeum thought and mercy act of Buddha. It is an unique theory that can be also a kind of life·ecology philosophy in modern concept. Secondly, what is the status of Daehaeng Seon in the history of Korean Seon? In 'Daehaeng Seon' we see the universality of Seon as well as the uniqueness of Ven. Daehaeng's thought. The practice of Daehaeng Seon did not end with her passing away but is still being carried on by her pupils. Accordingly, we must properly establish the identity of Daehaeng Seon for the future. I cannot find in the present Daehaeng Seon any trace of the Korean Seon tradition of 'Seon lineage' or 'succession of teachers.' However, Ven. Daehaeng made great achievements in influencing the direction of modern Korean Buddhism during her active working period (1970-2012). Therefore, I regard Ven. Daehaeng as an eminent Seon master who led the modern renovation of Korean Buddhism.

      • KCI등재

        한국 근,현대 간화선사(看話禪師)들의 보조선(普照禪)에 대한 인식

        김방룡(Bang Ryong Kim)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2011 佛敎學報 Vol.0 No.58

        본고는 근·현대 간화선사들이 보조선(普照禪)에 대하여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한국 간화선의 시원은 바로 보조 지눌이다. 지눌이 간화선을 최초로 국내에 소개하긴 하였지만 그에게 있어서 간화선은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에 들어가는 삼문(三門) 중의 하나에 속하는 것이었다. 또한 중국에 들어가 명안종사(明眼宗師)를 만나 화두를 직접 받아 간화선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대혜어록(大慧語錄)』의 한 구절을 열람하는 기연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간화선사로서의 지눌에 대한 평가는 탈중국적인 한국 간화선을 정착시켰다는 평가와 하택 신회(荷澤神會)와 규봉 종밀(圭峰宗密)의 선(禪)을 계승한 지해종도(知解宗徒)라는 상반된 평가로 나타나곤 한다. 근대 선승들은 조계종의 종명과 보조선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고 있었지만 현실적인 법맥은 태고법통설을 따르고 있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혼란과 재정비의 필요성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한암은 ``도의-보조 종조설``을 주창하였고, 성철은 ``태고법통설``을 주창하였다. 근 현대 선승 중 보조선의 계승을 통하여 간화선을 중흥한 대표적인 인물로 경허와 한암, 동산, 경봉, 효봉 그리고 구산 등을 들 수 있다. 근 현대 수많은 선지식들이 보조선풍을 드날렸지만, 그 중에서도 송광사의 효봉과 구산의 노력은 남달랐다. 이들은 보조의 계승의식이 남달랐지만,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는 철저한 간화선사였다. 즉 간화선사의 입장에서 보조선을 이해하였고 돈오 후 점수 과정인 정혜쌍수에 대하여는 새롭게 해석하였다. 보조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본격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주장한 사람은 성철이다. 즉 보조의 ``돈오점수설``이 혜능과 마조와 임제를 잇는 임제선의 정통에서 벗어난 이단사설이라는 것이다. 보조의 돈오점수란 사실은 ``해오점수(解悟漸修)``로 하택과 규봉을 잇는 하택종의 종지이자 화엄선(華嚴禪)이어서, 이를 따르면 선문의 금기인 지해종도가 된다고 성철은 강력히 배격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경허 이후 많은 간화선사들이 돈오점수와 선교일치를 주장하는 보조선을 간화선의 수행지침으로 여겨 왔음을 밝혔다. 다만 성철은 이러한 보조선을 태고법통설과 임제-대혜를 잇는 임제종의 종풍에 입각하여 강력히 배격하고 있음을 밝혔다. Through this paper I aim at investigating how modern Ganhwaseon masters recognized Jinul`s Seon. It was Bojo Jinul who started Korean Ganhwaseon. Jinul introduced Ganhwaseon for the first time in Korea; yet for him it belongs to one of the three practice styles to enter into ultimate awakening. Besides, he reached enlightenment not by receiving a hwadu from a clear-eyed master in China but by opportune conditions in which he read a passage of The Record of Dahui. It is for these reasons that the assessments for him as a Ganhwaseon master run counter to one another. After all, there are some who consider him as a pioneer in Korean Ganhwaseon distinguished from that of China while there are others who underestimate him as merely an intellectual succeeding to Heze(684~758) and Zongmi`s Chan of China. Modern Seon masters have been greatly influenced by the names of ``Jogye Order`` and ``Bojo`s Seon``; however, Dharma lineages of today practically acknowledge Taego as the rightful successor of the Dharma. So the problem of orthodoxy requires settling. Hanam advocated ``the theory of Doui and Bojo as the founders`` while Seongcheol proposed ``the theory of Taego inheriting the orthodoxy of the Dharma``. There are lots of Seon masters who had their names up practicing Bojo`s Seon, for example, Kyeonheo, Hanam, Dongsan, Gyeongbong, Hyobong, and Gusan. Among them Hyobong and Gusan were conspicuous. Both of them were distinct in their determination to inherit Bojo`s thought. But they were Ganhwaseon masters. In other words, they accepted Bojo`s Seon from the perspective of Ganhwaseon masters and so renewed the interpretation of ``the balanced development of samadhi and prajna`` which was originally put forth for gradual cultivation after sudden awakening. It is none other than Seongcheol who criticized Bojo`s Seon thoroughly and systematically. He asserted that Bojo`s approach of ``sudden awakening/gradual cultivation`` was heretical against orthodox Linji Ch`an succeeding from Huineng to Mazu to Linji. Bojo`s was, according to Seongcheol, in fact ``the understanding- awakening/ gradual cultivation(haeo jeomsu)`` and the main principle of the Heze School, to which Heze and Zongmi belong, and the Avatamsaka Seon. So following it meant becoming ``the follower of discriminative intellect(jihae jongdo)`` which is a taboo among the Seon practitioners. That is why he repudiated Bojo`s approach strongly. In this paper, I investigated that most Ganhwaseon masters of the post- Gyeongheo era accepted as their guidance Bojo`s Seon which insisted on sudden awakening/gradual cultivation, the congruence of Seon and doctrines. Among others, Hyobong and Gusan greatly exalted Bojo`s Seon centering around Songgwang Temple. Despite favorable attitudes toward Bojo`s Seon, however, as I further examined, Seongcheol repudiated Bojo`s Seon based on the Dharma orthodoxy of Taego and on the Linji and Dahui style of Ganhwaseon.

      • KCI등재

        나말여초 동리산문의 지형과 사상

        김방룡(Bang-ryong Kim) 보조사상연구원 2022 보조사상 Vol.64 No.-

        중국으로부터 이 땅에 선(禪)이 전래되어 한국선이 형성된 시기는 나말여초이며, 고려 중기에 이르면 그 대표적인 산문을 총칭하여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 부르게 된다.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선은 초기에 북종선이 전래되었고, 이어 남종 마조계의 선이 전래되었으며, 10세기에 이르면 남종 석두계의 선이 전래되었다. 또한 동일한 산문이 초기 북종선을 전래하였다가 다시 남종 마조계의 선을 전래하기도 하고, 남종 마조계의 선을 전래하였다가 다시 남종 석두계의 선을 전래하기도 하였다. 동리산문은 ‘나말여초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에 위치한 동리산 태안사를 중심으로 하여 적인 혜철(寂忍惠哲)에 의해 개산된 후 그의 선풍을 계승한 선종의 문파’를 지칭하는 말이다. 개산조 혜철은 가지산문의 도의(道義) 및 실상산문의 홍척(洪陟)과 더불어 마조(馬祖)의 제자인 서당(西堂)의 법을 이어 선문을 개척한 초창기 인물이다. 본고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동리산문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동리산문의 사상적 특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이 두 가지 문제에 있어서 가장 큰 난제는 ‘옥룡사계로 분류되어진 도선(道詵)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본고에서는 이 문제에 관한 김두진, 이덕진 등의 선행연구의 내용을 검토하여 이들 사이에 나타나는 핵심적인 쟁점을 도출하고, 이들의 의견이 지니는 타당성과 부당성 및 이들의 관점이 지닌 함의가 무엇인지를 정리하였다. 이러한 검토를 거쳐서 혜철의 법을 이은 도승은 도선과 다른 인물로 보아야 하며, 옥룡사계로 분류되어진 도선과 경보의 경우 동리산문의 소속이 아닌 별개의 선승으로 보는 것이 타당함을 밝혔다. The time when Korean Seon was introduced to this land from China and Korean Seon was formed was around the late Silla and early Goryeo era. In the mid-Goryeo period, the representative Mountain School is collectively called Gusan Seon Schools. Seon from China was initially introduced by the Northern School Seon. Subsequently, the Southern School Seon of department of Majo were introduced, and by the 10th century, the Southern School Seon of department of Seokdu were introduced. In addition, the same mountain School introduced the Northern School Seon in the early days, followed by the Southern School Seon of department of Majo, or introduced the Southern School Seon of department of Majo, followed by the Southern School Seon of department of Seokdu again. Dongnisan School refers to “the Seon Shool that inherited Jeokin-Hyecheol ’s Seon type after being opened by him, centering on Taeansa Temple in Dongnisan, located in Wondal-ri, Jukgok-myeon, Gokseong-gun, Jeollanam-do in the late Silla and early Goryeo era”. A School founder, Hye-cheol was the early person who pioneered Seon School by following the lineage of Seodang, a disciple of Majo, along with the Doui of Gajisan School and Hongchuk of Silsangsan School. There are two main problems addressed in this paper. One is the question of how to define the scope of Dongrisan School, and the other is the question of how to view the ideological characteristics of Dongrisan School. The biggest challenge in these two problems is how to deal with Doseon classified as Okryongsa lineage. In this paper, after reviewing the contents of previous studies such as Kim Doo-jin and Lee Deok-jin on this issue, key issues that appear between them were derived, and the validity and unfairness of their opinions and their implications were summarized. Through this review, it was revealed that Doseung, who succeeded Hye-cheol's lineage, should be regarded as a different person from Doseon, and in the case of Doseon and Gyeongbo, which were classified as Okryongsa lineage, it was reasonable to regard them as separate monks rather than belonging to Dongrisan School.

      • KCI등재

        법운 이종익의 보조사상 이해와 불교 대중화 활동

        김방룡(Kim, Bang-Ryong) 보조사상연구원 2021 보조사상 Vol.59 No.-

        법운 이종익은 근현대를 대표하는 불교학자이자 불교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승려와 재가를 넘나들면서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격변의 세월 동안 한국불교계 및 불교학계의 중심에 서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지만, 그동안 그에 대한 학계의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올해(2021년)는 한국불교학의 문호를 열었던 대표적인 석학 가운데 한 분인 이종익 사후 20주년이 되는 해로써, 그의 생애와 사상 및 불교계와 불교학계에 공헌한 업적을 조망해고자 하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일제강점기 탄생에서 출가 이전까지의 삶, 출가 이후 승려로서의 삶, 그리고 해방 이후 재가자로서의 삶 등으로 구분하여 주요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가 남긴 저술로는 소설과 학술논문이 있는데, 이에 대한 내용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아울러 대표적인 불교 대중화 활동과 󰡔보조전서󰡕의 발간 및 보조사상 연구에 기여한 내용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현대 한국의 불교학은 일제강점기에 출발하여 일본불교에 대항하여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한 노력과 함께 해방 이후 서양 사상의 유입에 따라 불교학의 현대화 작업을 거치면서 발전되어 왔다. 따라서 한국불교학 형성에 공헌한 주역들에 대한 연구는 미래 한국불교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며, 본고에서 살핀 이종익에 관한 연구 또한 그 일환의 하나라 할 수 있다. Beopwoon Lee Jong-ik was a Buddhist scholar who represented modern times and contributed greatly to the popularization of Buddhism. He has been at the center of Korean Buddhist and Buddhist academia as a monk and a lay Buddhist for the turbulent years since Japanese colonial era and liberation, but no full-fledged research has been conducted on him. This year (2021) marks the 20th anniversary of Lee Jong-ik‘s death. He is one of the leading scholars who opened the door to Korean Buddhism. This paper aims to view his life and his contribution to Buddhist community and Buddhist academia. The writer considered his life with the main contents in three periods, Japanese colonial era s life from birth, a monk’s life, and a lay Buddhist life after liberation. His writings include novels and academic papers. The writer examined the contents and characteristics of his writing. In addition, the writer looked at his representative Buddhist popularization activities and contributions to the publication of Bojo’s collection and the study on Bojo’s thought. Modern Korean Buddhism started in Japanese colonial era and tried to establish the identity of Korean Buddhism against Japanese Buddhism. Then it has developed since liberation through modernization of Buddhist studies following the introduction of Western ideas. Therefore, the study on the main contributors to the formation of Korean Buddhism is important as a foundation for the future direction of Korean Buddhism, and this study on Lee Jong-ik is also a part of it.

      • KCI등재후보

        간화선과 화엄, 회통인가 단절인가 - 보조 지눌과 퇴옹 성철의 관점을 중심으로

        김방룡(Kim Bang-Ryong) 불교학연구회 2005 불교학연구 Vol.11 No.-

          Rencently there is a trend searching for identity of Korean Buddhism in Kanhwa-Zen(看話禪). Therefore we have the problem how we should set up the relation of Kanhwa-Zen with Hwaum(華嚴). Namely "to sever the relation of Kanhwa-Zen with doctrine representing Hwaum or to unionize positively with it, that is the problem about the standpoint of Kanhwa-Zen.<BR>  In this paper, I raised that question, then I researched the answer by analyzing the viewpoint of Bojo-Chinul(普照知訥) introduced Kanhwa-Zen in Koryeo dynasty, and that of Toeong-Seongchul(退翁性徹), the supreme patriarch of the Chogye Order(曹溪宗).<BR>  As you know, they devoted themselves to set up the relation Kanhwa-Zen with Hwaum among Korean Zen masters. The thoughts of "sudden awakening and gradual cultivation" and of "sudden awakening and sudden cultivation" instituted by them are become the greatest argument after emancipation from Japanese imperialism in the world of Korean Buddhism. That argument of the two thoughts has two central points. One is the problem of awakening and cultivation. The other is the problem of relation Kanhwa-Zen with Hwaum or interpretation of those thoughts.<BR>  Bojo-Chinul has a unified standpoint of Kanhwa-Zen with Hwaum and Toeong-Seongchul has a separate standpoint of them about that argument. But If we inquire into their thoughts of inside, conflicted superficially, there is there suffering and effort to fix Kanhwa-Zen in those days.<BR>  In this paper, I made clear that all of them, Bojo-Chinul"s and Toeong-Seongchul"s standpoints are the efforts to stimulate the tradition of Zen in their times. I think that Korean Buddhism has to hold on the unified standpoint of Kanhwa-Zen with Hwaum.

      • KCI등재

        한국선의 정체성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김방룡 ( Kim Bang-ryong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2018 동아시아불교문화 Vol.0 No.35

        급격한 사회적 변화와 함께 현재 한국불교는 여러 가지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 중 중요한 문제는 한국불교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라 하겠다. 현재 한국불교는 다양한 교리와 수행을 아우르는 통불교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 중심은 선사상에 있다 하겠다. 본고에서 살펴본 것은 한국선의 정체성 모색에 관한 문제이다. 그동안 한국선에 관한 많은 연구가 있어 왔는데, 그와 관련된 네 가지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논자의 견해를 밝히고자 하였다. 첫째, 선사상과 붓다의 교설과의 상관성 유무에 관한 것이다. 선사상과 붓다의 교설은 본질적으로 상통하며, 그 의미를 재해석되고 있기 때문에 불교의 역사에서 문제가 되지 않음을 필자는 주장하였다. 다음으로 논자는 중국 혜능의 남종선이 유입된 후 고려시대 지눌에 의하여 탄생한 한국선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하여 밝혔다. 이어서 필자는 근현대 한국선의 정체성에 있어서 조선후기 만들어진 ‘임제-태고 법통설’과 ‘보조선’사상의 두 가지의 입장의 모순 해결을 중심으로 두 가지 입장이 공존함을 밝혔다. 끝으로 앞으로 한국선의 정체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논자의 견해를 밝혔다. Korean Seon(禪) is facing with radical social change and various crisis circumstances. Among them, the problem of identity of Korean Buddhism is very important. Now Korean Buddhism has characteristics of complex Buddhism with diverse doctrines and practices, but the center is Seon thought. This paper examined the identity of Korean Seon. There have been numerous studies on Korean Seon. The writer tried to disclose four important problems on those studies. First, the problem is related with the existence and nonexistence of relativity between Seon thought and Buddha’s doctrine. The writer insisted that the problem breaks no square in the history of Buddhism because there is something in common with Seon thought and Buddha’s doctrine intrinsically and their meanings are reinterpreted. Next, the writer inquired into the historical identity of Korean Seon that Korean Seon was created by Jinul(知訥) in Koryeo dynasty after Huineng(慧能)’s Northern school Seon had been imported from China. And then, in the identity of modern Korean Seon, the writer investigated the coexistence of two stances, the theory of dharma lineage originated from Linji-Taego(臨濟太古法統說) in late Joseon dynasty and Bojo’s Seon(普照禪) thought in Koryeo dynasty around the solution of their inconsistency. Lastly, the writer stated his views on the problem, ‘Where is the identity of Korean Seon?’

      • 서산 보원사의 역사 문화적 의의

        김방룡(Kim, Bang-ryong)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2019 충청문화연구 Vol.22 No.-

        서산에 있는 가야산의 대표적인 불교문화재로 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普願寺址)가 있다. 그중 보원사는 통일신라시기 화엄십찰의 하나로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내포가야산에는 수많은 사찰 터가 남아 있으며, 그 중심사찰이 바로 보원사이다. 본고에서는 보원사의 역사적 전개와 고려 초 보원사의 고승이었던 탄문에 대하여 다음의 몇 가지 문제를 살펴보았다. 첫째, 보원사의 창건과 역사적 변천과정을 다루었다. 특히 매 시기 국가 권력과의 상관관계와 더불어 지역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어떠한 변화를 겪어 왔는지를 살펴보았다. 둘째, 통일신라시기 화엄십찰의 하나로 보원사가 내정된 이유는 무엇이며, 성주사를 비롯한 나말여초 구산선문의 태동과는 어떠한 영향관계가 있는 지를 살펴보았다. 셋째, 고려 초 보문사에 머문 탄문은 어떠한 존재였으며, 그가 활약했을 당시 화엄종단의 현황과 탄문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규명하였으며, 아울러 조선시기 보원사가 쇠락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았다. 다섯째, 보원사의 역사 문화적 의의는 무엇이며, 현대 우리가 주목해야 되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The representative Buddhist cultural assets are The rock-carved standing triad Buddha statue (磨崖三尊佛) and the Bowonsa temple site. It is real that although Bowonsa is known to have been one of the Huayan ten temples in the unified Silla period, the related study has not been done that much. A number of temple sites have remained in Nepo Gayasan, and the main temple is the very Bowonsa. In this writing, the following matters were examined about the historical development and Tanmun who was a monk of high virtue at Bowonsa in early Goryeo. First, the founding and historical process of change of Bowonsa were dealt with. In particular, I studied the interrelation with the state power every period and what kind of change its status in the local culture has been going through. Second, I studied the reason why Bowonsa was decided as one of Huayan ten temples and what relationship of influence it has on the beginning of Nine Mountain Zen Schools (九山禪門) in late Silla to early Goryeo. Third, I studied what kind of person Tanmun in Bowonsa, how the Huayan Schools in the period was, and what kind of role he played then, and I examined why Bowonsa decayed in th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Fourth, I studied what is the historical and cultural significance of Bowonsa, and what is the value we today pay attention to.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