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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창 국립국어연구원 1994 10월의 문화인물 Vol.1994 No.10
일석 이희승 선생은 국어학자요,교육자며 문인이었다.일석은 이 시대 마지막 선비,아니 한마디로 작은 거인이었다.키가 남다리 작으면서도 학문과 인품 양면에 걸쳐 거대한 자취를 남겼기 때문이다.그 분은 세상에 드문 인격자,군자였다.군자는 불기라던가.일것은 관계범주상 학자요 교육자였으나,한두 가지의 전문인으로 부르기에는 부적절하다.그 분은 그 여러 전문 기능을 동시에 지니면서 그러한 능력들을 조화시키고 초월한 대인,이 시대에 찾아보기 어려운 큰 스승이었다.다섯 해 전 초겨울.일석은 문득 우화등선하였다.그 분은 떠났으나 대쪽같은 그의 지절과 난향 같은 마음결은 150여 편의 논문·논설문으로,17권의 저서와 8권의 시집·수필집 등으로 남아 우리의 거울이 되고 있다.그중에서도 ‘벙어리 냉가슴’,‘소경의 잠꼬대’,‘먹추의 말참견’등의 수필집과 ‘국어학 개설’,‘한글 맞춤법 통일안 강의’,‘국어대사전’등은 대표적 저서라고 할 수 있겠다.이러한 저서를 통해 그는 수필문학의 격조 높은 한 전범으로서,국어학과 언어 생활의 교사요 길잡이로서 영원히 남을 금자탑으로 기억될 것이다.육신이 ‘성령의 집’이라면 국어사전은 ‘민족문화의 성전’이라 하겠다.구 소련의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의 일화는 우리는 감동으로 전율시킨다.“단어란 작가의 영원한 호흡”이라고 그는 절규했었다.그리하여 엄혹한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그는 날마다 모국어 사전을 읽고 휴지조각에 깨알같은 글씨로 빽빽이 써 내려가면서 외운 뒤에 몇 권의 단어장으로 보관하고 있었다.유배지에서 다시 미국으로 추방된 뒤에도 30여 년동안 그는 모국어를 생명처럼 사랑하며 잠시도 쉬지 않고 갈고 닦았다.모국어야말로 그 민족의 살이요,피요,호흡이며 영혼인 것이다.그러니 국어사전은 그 민족 문화의 총화요 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