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 좁혀본 항목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 작성언어
          • 저자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노백헌 정재규의 주리적 심학의 형성 과정 - 한주학단과의 교유를 중심으로 -

          김낙진 ( Kim Nak-jin ) 한국철학사연구회 2021 한국 철학논집 Vol.0 No.68

          기정진의 3대 고제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정재규는 이이의 이기론을 주기적으로 해석한 전통에 반대하고 주리론적 해석을 제창하였으나, 여전히 이이의 주기철학이 주력했던 극기의 정신에 충실하던 기정진의 가르침을 받았다. 또 이진상 및 그의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주리 철학의 영향도 받았다. 이진상과 기정진의 학문은 이황과 이이에게로 연원이 소급되는 것이었기에, 두 전통 있는 학문정신을 결합한 것이 그의 학문이다. 그의 학문은 역동적인 과정의 산물임을 가정하고, 본고는 성립 과정을 해명하는 데 목표를 둔다. Ⅱ장에서는 명덕 논의에 있던 퇴계학과 이진상, 기정진의 견해 차이를 경험했던 정재규의 고뇌를 짐작해 본다. Ⅲ장에서는 서신 토론을 통해 이진상이 그에게 피력했던 지각론의 내용을 살핀다. Ⅳ장에서는 이진상의 학설을 수용하면서도 기정진의 학문정신을 결합하여 새롭게 사상의 체계를 가다듬었음을 밝힌다. Ⅴ장에서는 그런 결합이 지닌 철학적, 시대적 의미를 추정해 본다. One of Ki Jeong-jin's three great disciples was Jeong Jae-gyu. He received the teaching of Ki Jeong-jin, who was faithful to the spirit contained in Yi I's Juki philosophy. In addition, he also was influenced by the philosophy of Juri while interacting with Yi Jin-sang and his students. Because the scholarships of Yi Jin-sang and Ki Jeong-jin were traced back to Yi Hwang and Yi I, he establishes new mind philosophy, which combines these two contradictory traditions. This paper assumes that his scholarship was the product of a dynamic process, and aims to explain the formation process. In Chapter Ⅱ, I guess Jeong Jae-gyu's agony. It is presumed that he was troubled among several theories in illustrious virtue theory. In Chapter Ⅲ, I explain the theory of perception that Yi Jin-sang revealed toward him. In Chapter Ⅳ, I explain that while accepting the theory of Yi Jin-sang, he did not abandon the academic spirit of Ki Jeong-jin. In Chapter Ⅴ, I estimated the philosophical and periodic meaning of such a combination.

        • KCI등재

          허유의 심설 토론과 갈등의 양상

          김낙진 ( Kim Nak-jin ) 한국철학사연구회 2021 한국 철학논집 Vol.- No.70

          본고는 19세기 후반기 인물인 허유가 이진상의 학문을 수용하고 주변 인물들과의 토론을 통해 학술을 심화하는 과정을 살펴본 글이다. 처음에 집중 논의된 내용을 보면 이들은 이진상의 삼간법을 공부하면서, 수간법에 따라 마음의 본질을 인식하는 방법을 이해해갔다. 이것에 동의하는지에 따라, 동조자와 비판자로 갈라선다. 허유는 비판자가 된 최정기와 「심통성정」 중·하도 특히 중도의 종지에 관해 토론했다. 하도가 호발론에 적용되는 분개법에 의한 도설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이에 비해 중도는 하도에서 분개된 마음과 감정의 선한 것들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는가를 다룬 도설이었다. 최정기가 김흥락을 따라 ‘본성에 근본한다’는 공통점만을 보았다면, 허유는 이진상을 따라 리발(理發)을 공통점으로 보았다. 이들의 입장 차이는 수간법의 인정 여부에 있었는데, 그 배후에는 리의 주재와 기의 역할에 대한 상이한 인식이 있었다. 호발론적 사고의 가치를 굳게 믿는 퇴계학자들과 그것만으로는 가치혼란의 시대에 대응할 수 없으므로 수간법에 의한 대본 정립이 필요하다는 한주학단의 판단 차이에서 논쟁이 일어났다. Heo Yu accepted Yi Jin-sang's study and refined it through discussions with colleagues. This paper, which studied the process of his discussion activities, first examined what he and his colleagues tried to know among the theories of Yi Jin-sang. Looking at what was discussed at the outset, they studied how to recognize the essence of the mind according to the three observation methods(三 看法). Depending on their pros and cons, they became either sympathizers or critics. In succession with Choi Jeong-gi who became a critic, Heo Yu discussed the purpose of the middle and bottom diagram included in the Diagram about ‘mind governs nature and feelings’, especially the middle. There was no disagreement in that bottom diagram was a picture drawn by an analytical method. On the other hand, the middle diagram was a narrative explaining the commonalities of good minds and good emotions with different processes of origin. While Choi Jeong-gi saw only the commonality of the fact that good arises from nature, Heo Yu followed Lee Jin-sang and saw the fact that Li creates goodness(理發) as a common point. Their differences of opinion arose in the pros and cons of the new method of recognizing essence. Behind it, there was a different perception of Li domination and the role of Qi.

        • KCI등재

          조선 중기 寒旅學派의 철학사상

          김낙진(Kim Nak-Jin)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10 한국학논집 Vol.0 No.40

          河謙鎭이 이미 지적하였듯이 한려학파의 중심인물인 鄭逑와 張顯光의 사승 관계는 실제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들에게서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철학 사상적 동질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들을 하나의 학파로 묶기 위해서는, 활동 지역과 시기를 같이하기에 영향을 주고받았을 이들이, 선배학자들의 업적을 통합한 위에 자기 성찰을 더함으로써 어떤 학문 내지 학문정신이 나타났고, 이것이 어떻게 전수되었는가를 살피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이런 시각에서 정구와 장현광, 그리고 旅軒 문도들로 이어지는 흐름을 조망하였을 때, 다음과 같은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聖人이 되고자 하는 立志 의식이 매우 높았다. 둘째, 성인이 자기 임무의 대상으로 삼는 우주 또는 세계를 이들 역시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다. 셋째, 그 결과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통합학을 건설하고자 한다. 통합학의 중심에는 정구의 경우 道學이, 장현광의 경우 도학을 한 차원 더 심화된 易學과 理氣論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와 같은 학문으로 함양된 개인들은 성인의 경지에서 발휘되는 明體適用을 인격적 성취의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이런 특성이 정구와 장현광에게서 일정한 정도 성공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강력한 성인의식이 나타났다. 성인이 되고자 하는 입지와 명체적용의 인격적 이상은 유학자들이 공유하는 것이지만, 두 명의 중요한 스승이 이룬 통합학의 업적은 지역의 학인들로 하여금 학파적 우월의식을 불러왔던 것으로 보인다. Jeong Gu and Jang Hyun Gwang were not a real relation of teacher and student as mentioned by Ha Gyum Jin. So it is not easy to find out philosophical identity in their writings. Accordingly in order to catch the academic group characters, supposing that they transferred the influence of scholarship, we must to pay attention to the packing effects of the predecessors’ attainments and the self insight. By the use of this method, I could find several features. The first, they had the consciousness of determination to grow a saint in life. The second, they had concern for the world that saints must to consider it as the sphere of their responsibility. The third, they dreamed of constructing a integration of various sciences. Jeong Gu put the moral philosophy in the center of whole knowledges, and Jang Hyun Gwang put the Iching Philosophy and the theory of Li-Qi(理氣). The last, they desired to attain the mental stage of saint. It was the capacity that cultivate moral character and know things in all aspects, so can actualize his virtue and knowledge with perfect freedom. They kept the extraordinary sense of saint, because of two master’s successful products. The East Asian Confucianists held this high ideal in common, but the scholars of Han-yeo school were encouraged by two masters, and had a sense of superiority to others.

        • KCI등재

          이진상의 「심즉리설」에 대한 조긍섭과 전우의 비판

          김낙진 ( Kim Nak-jin ) 한국철학사연구회 2020 한국 철학논집 Vol.0 No.64

          이진상의 「심즉리설」이 저술되고 나서 지역적 기반이 같던 퇴계학자들과의 토론이 전개되었다. 그가 사망하고 문집이 간행되자 그의 이론은 영남 이외의 지역에까지 알려져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쓰인 두 편의 비판적인 논문이 조긍섭의 「독한주이씨심즉리설」과 전우의 「이씨심즉리설조변」이다. 전자는 퇴계학파, 후자는 율곡학파의 견해를 대변한다. 토의가 늘 생산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대상의 견해에 대한 무지도 있었고, 기존의 유사 이론에 대한 전통적인 비판도 경험 또는 선입견으로 작용하여 이해의 증진을 저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고는 이들의 논란에서 드러나는 입장의 차이와 논변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나아가서는 왜 이런 논쟁이 전개되었는지를 설명해 본다. 구체적으로는 이진상의 심즉기 이해가 잘못되었음을 비판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비판자 양인의 마음 이해의 동일성, 심즉리를 비판하는 양인의 입장 차이, 논쟁의 이유인 심법에 관한 삼인의 견해 차이를 비교한다. After the writing of Yi Jin-sang's article on Sim jeuk Li, discussions with young-nam scholars who had the same regional basis progressed. After his death, his anthology was published and his unique theory became known widely, so scholars from other schools joined the band of criticism. In the process, two critical papers were written by Cho Geung sup and Jeon Woo. The former represented Toegye school's academic view, the latter represented Yulgok school's. The discussion was not always productive. One reason was ignorance of the other's views. Traditional criticism of similar theories has also worked as a prejudice. Nevertheless, this paper intends to examine the validity of the arguments and the differences of positions revealed in these controversies. Finally, I will explain why this debate has evolved.

        • KCI등재

          重齋 金榥의 心卽理說 옹호와 활동

          김낙진(Kim Nak Jin)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18 한국학논집 Vol.0 No.70

          한주학단의 마지막 거장인 김황은 조선유학과 한문학을 20세기 한국민들에게 전해주었다. 본고는 그의 浩澣한 글 중 주로 심설논쟁에 관련된 철학사상을 알아보려 한다. 그가 그린 「東儒心學略圖」는 조선 말기까지 이어져 온 여러 학파에 대한 한주학단의 평가적 시각이 반영된 심법 전수의 계통도이다. 주리학으로 자칭한 영남의 한주 학문을 가장 높이, 주기로 이름 한 기호의 심학을 가장 낮게 평가한다. 따라서 기호의 주기학을 대표한 전우가 이진상과 곽종석을 비판한 것에 대응하여 주리학의 본질과 장점을 선양하는 것이 그의 성리학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였. 본고는 그가 전개한 변호의 골자를 살펴본 뒤에 주리학과 주기학으로 분립하였던 심법의 시대적 역할을 검토해본다. 마지막으로 김황이 개입했던 여러 지역적 분쟁들을 비판적으로 성잘함으로써, 생활세계로부터 분리된 20세기의 유학이 몰락하는 양상을 조망해 본다. Kim Hwang was the last master, and teacher who gave to contemporary people on Traditional Thoughts and Chinese literature. This paper aim to investigate his philosophical ideology on dispute of Mind out of his writings. His rough map of Chosun mind learning was a transmission genealogy of the method of moral mind. It evaluated Several school’s method of mind cultivation. He rated Juri theory high, on the contrary to this, rated Jugi theory low. Therefore he devoted himself to elucidate the fundamental meaning and value of Yi Jin-sang’s theory, and he refuted inversely Jeon Woo’s criticism. This paper will inspect closely the core of his argument, subsequently will give consideration to the historical roles of the mind cultivation in Several academic groups. Lastly this paper will reflect critically on the meaning of several conflicts, so will prospect the breaking appearance of Confucianism.

        • KCI등재

          계남(溪南) 최숙민(崔琡民)의 교유(交遊)와 학술 토론

          김낙진 ( Nak Jin Kim ) 율곡학회 2010 율곡학연구 Vol.21 No.-

          영남의 남인 출신 유학자인 최숙민은 호남의 노론 율곡학자인 奇正鎭의 문하생이다. 본래 心身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그는 기정진의 문도가 된 이후 理主氣僕의 철학과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보다는 이면의 원인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학문 방법을 배웠다. 스승의 견해에 바탕을 두고 영남에서 유행하던 심설을 결합함으로써 순선한 본심의 측면을 강조하는 心卽理說을 받아들였다. 이것에 合理氣說을 더함으로써 心氣를 경계해 마지않던 전통적인 학문 정신도 수용하였다. 그는 이런 학설을 스스로 연구하였지만, 또한 견해가 상통하는 학자들과의 교유를 통해 문제의식과 이해의 정도를 심화시켜 나갔다. 학문 연원을 같이 하는 노사학단의 동문들은 물론 활동공간을 같이 한 한주학파의 학자들, 경기도에서 활동한 화서학파의 학자들이 그의 학문적 동료들이었다. 이들과 위정척사 의식을 함께 소유하며 마음의 본질에 관한 주리적 학설을 공유한다. 당쟁으로 얼룩진 과거를 반성하면서 학파와 당파를 떠난 단합을 도모하던 이들이 공유하려던 정신이 이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한말 위정척사의 학자들이 주리론적 견해를 공동 소유한다고 보았던 논의를 세밀하게 가다듬으면 본심에 관한 주리론적 해석을 공유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유학의 세계가 영속하기를 바라던 이들이 의리의 정신으로 외세에 맞서 투쟁하고, 나라가 망하더라도 유학의 도를 언젠가는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최종 근거였다. Choi Sook Min who his family were belonged to South Party was a disciple of Ki Jeong Jin. He originally take an interest in the problem of Mind and Body. He learned the spirit of Li ju Ki bok(the theory that Li is supervisor, conversely Ki is servant) and the method of study that attach importance to the inside cause of the present condition. As the result, he received the theory of Sim jeuk Li(Li is the important content fact, and Ki is only assistance in Mind). Moreover he added the theory of Sim hap Li Ki(Mind is composed of Li and Ki), so he inherited the spirit that kept a strict watch on Mind. He went deep into this study by oneself, and deepened the theory through academic exchange with congenial scholars. His academic partners were the fellow students who studied under the same teacher, scholars belonged to Hanju school and Hwaseo school. They held in common the consciousness of Wijeong-Cheoksa(the ideas on the preservation of true science and the expulsion of wickedness) and the theory of essential Mind undersood by an angle of Ju-li-ron. They criticized the history of disunion and hostility provoked by party strife in late Cho-sun, so they devised union of Confucianism world. The basis of union was the theory of essential Mind. It was the ultimate foundation of struggle against foreign power and the recovery of Confucian Tao.

        • KCI등재

          高麗時代의 宿衛軍과 宿衛體

          김낙진(Kim, Nak-jin) 한국사학회 2017 史學硏究 Vol.0 No.128

          숙위(宿衛)는 궁궐에서 이루어지는 국왕의 시위와 관련된 임무를 의미한다. 그러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를 숙위군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번을 나누어 궁궐 내에서 숙직하며 비상사태에 대비하였다. 숙위임무가 궁궐에서 이루어졌던 점에서 숙위군은 금군과 관련이 있었다. 『고려사』 숙위조에 금군(禁軍)의 하나인 견룡군이 언급되어 있었던 데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숙위조에 禁衛士라는 용어가 보이고, 금위(禁衛)는 금위군사의 줄임말로 금군을 가리킨다. 따라서 금군은 곧 숙위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숙위군은 위사(衛士)라고도 불리었다. 금위사(禁衛士), 궁궐수위군사(宮闕守衛軍士), 숙위지사(宿衛之士) 등을 통칭하여 위사라고 할 수 있다. 위사들은 궁궐 내부의 가장 안쪽에서 근무하면서 적대세력의 공격으로부터의 방어와 체포, 소탕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위사에는 위사장이 있어 위사들을 지휘통솔하였다. 숙위군은 내정(內庭)지역에서 근무하며 각 전문(殿門)과 부(府) 등지에 배속되어 그곳을 경계하였다. 궁궐의 내정과 외정을 나누는 구정(毬庭)은 황성지역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방어하는 일종의 해자기능을 하였다. 궁궐 밖의 황성지역에는 2군이 머물러 있었고, 6위군들은 주로 황성을 밖의 도성지역에 나누어 주둔하였다. 즉 다층적인 방어체계에 따라 숙위체제가 짜여졌다. 고려중기에는 내순검군, 위국초맹반, 후벽, 홀치, 순군, 충용위, 익위군 등 새로운 숙위군들이 설치되었다. 이 때 설치되었던 숙위군들은 단지 궁궐 방어에 그치지 않고 수도의 치안과 국경의 방어에 이르기까지 그 임무가 확대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2군 6위의 중앙군 약화와 관련이 있었다. 특히 2군의 약화는 시위임무의 부실을 초래하였는데, 이는 숙위체제의 이완을 가져왔다. 그 결과 새로운 숙위부대를 창설하였고, 이들은 반란진압을 위해 지방에까지 출동하거나 변경의 방어에 동원되었다. Sukui(宿衛) means the duties regarding the security service for the king in the royal palace, in other words palace guarding. In the Goryeo dynasty, the palace guards were named as Sukuigun(宿衛軍). The place guards prepared for emergencies on night duty in turn in the royal palace. Given the duty of place guarding, it can be argued that Sukuigun(宿衛軍) was related to the Geumgun(禁軍) as Gyeonryonggun(牽龍軍), a part of Geumgun(禁軍), was mentioned in the section of Sukui(宿衛) in <the History of Goryeo>. Besides, it is also notable that the term, Geumuisa(禁衛士) which is an abbreviation of Geumuigunsa(禁衛軍士) appeared in the section of Sukui(宿衛) in <the History of Goryeo>. As Geumui(禁衛) meant Geumgun(禁軍), Geumgun(禁軍) was Sukuigun(宿衛軍). Sukuigun(宿衛軍) was also called as Uisa(衛士). Uisa(衛士) was a collective term which referred to Geumuisa(禁衛士), Gunggwolsuuigunsa(宮闕守衛軍士) and Sukuijisa(宿衛之士). Soldiers of Uisa(衛士) were deployed in the innermost place of the royal palace and conducted missions to defense attacks from hostile forces, arrest and mop up them. Uisajang(衛士長) was the commander of the Uisa(衛士). Sukuigun(宿衛軍) served in the courtyard area and were assigned at the palace gates or administration buildings as guards. Gujeong(毬庭), the facility which divided the inner and outer courtyards functioned as a moat. The palace guard system had a multi-layer defense system. Igun(二軍) stationed in the royal fortress out of the royal palace, and Yukui(六衛) stationed in the capital fortress out of the royal fortress. In the middle of the Goryeo Dynasty, several new palace guard units were created such as Naesungeomgun(內巡檢軍), Uigukchomaengban(衛國抄猛班), Hubyeok(後壁), Holchi(忽赤), Sungun(巡軍), Chungyongui(忠勇衛) and Ikuigun(翊衛軍). The mission of these new palace guards was expanded from defense of the royal palace to the maintenance of public order of the capital city and the border defense. This phenomenon was related to weakening of the central forces of Igun(二軍) and Yukui(六衛). In particular, weakening of Igun(二軍) undermined the royal security service and caused slackening of the palace guard system. Consequently, new units for palace guarding were established and they were deployed to provinces to suppress uprisings or to border areas to defend the remote frontier.

        • KCI등재
        • 기획논문 : 퇴계사상(退溪思想)의 유학사적(儒學史的) 좌표(座標) ;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의 리기(理氣) 심성론(心性論)에 나타난 문제의식 검토

          김낙진 ( Nak Jin Kim )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07 퇴계학과 유교문화 Vol.41 No.-

          이황과 기대승은 한국유학사에서 주리파와 주기파의 선구자로 지칭된다. 주리 주기라는 용어는 이들의 학문이 지닌 성향을 분석하여 만든 개념인데, 이 개념들을 산출한 분석들은 이들을 신비주의자처럼 보이게 하거나 정주학의 대전제를 위반한 사람들로 보게 할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이 분석들은 그들의 학문의 특정 요소를 경시한다. 이황과 기대승은 이기를 一物로 보는 철학을 비판하고 理의 所以然임과 理의 체용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理를 중시하는 철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이 전제에 기초하여 자기 철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이견을 드러낸다. 기대승이 理는 원인이고 기는 재료이자 운동자라는 단일한 해석 관점을 사용함에 비하여, 이황은 이 관점과 함께 이발과 기발을 상대하여 보는 관점, 두 가지를 모순 없이 사용하여 자신의 철학을 전개한다. 기대승은 이황의 두 번째 관점을 첫 번째 관점에 입거하여 이해하려고 함으로써 이황의 견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류라고 평가한다. 기대승은 하나의 관점만을 사용하고 이를 일관되게 적용함으로써 논리적으로 보이고, 이황은 두 개의 관점을 혼용함으로써 비논리적으로 보이나, 실은 이황 역시 자기 논리가 있다. 이황은 두 번째의 논리를 四端七情論에 적용하고, 선이라는 점에서는 결과적으로 같을지라도 선을 발생시키는 심리적 과정이 다름을 理氣論을 활용하여 해석한다. 기대승은 선이란 결국 동일한 것이라 보고 이황이 둘로 나누었던 선을 하나의 원리에 입각하여 설명한다. 두 사람의 철학은 理를 존중하는 철학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나, 互發論에 입각하여 선악을 해명할 것인가, 理發一途論으로 설명할 것인가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We are saying that Yi Hwang and Ki Dae-seung were the pioneers of Chu-li(主理) and Chu-gi(主氣) school. But Chu-li and Chu-gi are false concepts founded on wrong analysis of their scholarly attainments. They esteemed Li(Principle) in the same manner. However they went another ways about understanding of Li-Ki, and Mind-Nature. Yi Hwang had two different logics, whereas Ki Dae-seung applied single logic to academic problems. If we can not understand Yi Hwang’s logics, his theory seem to have several inconsistency. And if we do not achieve close attention to Ki Dae-seung’s essential idea, we misunderstand his theory as a Chu-gi philosophy. They are the like-minded people in point of serious view of Li, but they hold dissenting opinions between Hobal(互發) and Libalildolon(理發一途論).

        • 남명 조식 연구 현황 분석과 제안

          김낙진(Kim, Nak-Jin) 경남연구원 2019 경남학연구 Vol.- No.1

          재세 시절 이황과 함께 영남의 학계를 양분하였던 이가 남명 조식이다. 인조반정과 무신란을 계기로 영남 우도에 대한 냉담한 시선이 형성되면서 그의 존재는 잊히거나 오해의 대상이 되었다. 19세기 후반 그의 실천사상이 다시 주목되었으나, 망국으로 인해 회복될 기회가 없었다. 그를 다시 발굴한 현대학자는 교육자 이남규였고, 최초의 학위논문을 쓴 이는 이원호이다. 1970년대부터 학계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남명을 소개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1980년대 그를 전문적으로 연구·선양하기 위한 남명학연구원이 설립되었다. 1990년대에는 경상대학교에 남명학연구소가 출현하면서 남명 연구는 궤도에 올라선다. 2014년까지 약 1,900편의 논문이 나왔고, 석사·박사 학위 논문도 속출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를 전후하여 남명 연구는 침체기를 겪는다. 텍스트의 제한과 연구자들의 상상력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새로운 방향성이 모색된다. 조식과 관계있는 인물이나 가문을 연구하거나 남명학의 현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논자는 이와 함께 연구자들의 고정관념과 사고습관을 점검하는 일도 필요함을 제언하였다. When he was alive, Cho Sik was the man who divided the academic world of Yeongnam with Yi Hwang. His existence was either forgotten or misunderstood as a cold-hearted view of Yeongnam Udo was formed by an unrelated political events. His practice idea became the focus of people"s attention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but as the country fell, there was no chance of recovery. The modern scholar who rediscovered him was educator Yi Nam Kyu, the first to write a dissertation is Lee Won-ho. Since the 1970s, work has been done to introduce Cho Sik to academic and the general public, in the 1980s Institute of Nammung-hak was established to study and enhance him. In the 1990s, The Nammyung Studies Institute was established at Gyeongsang National University, and Nam-myung"s research entered the orbit. By 2014, about 1,900 papers were submitted and master"s and doctoral dissertations were published. However, before and after this period, Naming Research entered into recession. The limitations of the text and the imagination of the researchers were exhausted. New directions are being sought to overcome this difficulty. I suggest, first of all, the need to check the stereotypes and thinking habits of the researchers.

        맨 위로 스크롤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