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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전래동요와 일본의 와라베우다의 비교 분석

        김경혜 대구보건대학 1996 대구보건대학 論文集 Vol.16 No.-

        현재 한국에서 구전되어 오고 있는 전래동요와 일본이 전래동요곡인 와라베우다를 음악의 기본 3요소인 박자, 조표, 악곡의 형식과 음악의 3요소인 리듬, 선율, 화음 등을 중심으로 비교 분석 하였다. 일본의 와라베우다와 비교하여 한국전래동요의 특성은 우리민요의 특징인 3박자 계통이었으며, 밝고 경쾌한 장조, 짧은 곡으로 유아들이 따라부르기에 좋은 반면, 선율은 도약이 많고, 리듬은 너무 긴음으로 진행되어 있고, 온음계를 사용하므로써 유아들에게 힘든면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KCI등재

        《신정진전(新政眞詮)》에 나타난 변법운동시기(變法運動時期) 하계(何啓),호례원(胡禮垣)의 교육개혁론(敎育改革論)

        김경혜 중국사학회 2012 中國史硏究 Vol.78 No.-

        本文目的在於探討維新變法時期何啓、胡禮垣的敎育思想. 何啓、胡禮垣是維新變法時期代表的思想家. 但大部分硏究者把何啓、胡禮垣劃分爲早期維新派, 主要硏究甲午戰爭以前他們思想主張. 一般認爲, 早期維新派是, 在甲午戰爭以前, 批判以學習西方軍事技術和新式工業爲主的洋務運動, 而主張設立議院, 實行君民共主的先進知識分子. 所以, 從現在已有的關於早期維新派的論著來看, 多是以19世紀70年代至甲午戰爭之前他們的思想主張爲硏究中心, 而沒有注意到甲午戰爭以後他們思想的發展. 但筆者認爲, 早期維新派的思想也有一個隨著社會發展變化而發展的過程. 一些早期維新派創辦報紙、參加學會、提倡民權, 積極從事維新變法活動, 實際上已經成爲維新派. 最有代表性的就是何啓、胡禮垣. 從1887年起, 何啓、胡禮垣繼續發表一系列政論性的文章, 合著而成『新政眞詮』一書. 在此書中, 集中反映了他們各個方面的改革要求, 代表了他們對 公平 社會的追求, 也反映了他們改革思想的形成和發展. 此書共有七篇文章:『曾論書後』(1877年)、『新政論議』(1894年)、『新政始基』、『康說書後』、『新政安行』(1898年)、『勸學篇書後』(1899年)、『新政變通』(1900年). 此書出版後, 在國內知識界廣泛流行, 影響흔大. 本文將以『新政眞詮』爲基本史料, 對何啓、胡禮垣敎育改革思想進行考察. 何啓、胡禮垣進一步提出, 要想眞正覺醒, 挽救民族危機, 就必須先解決最根本的問題, 卽政治和敎育問題. 他們認爲, 西方國家强盛的根本原因倂倂不在於船堅포利, 而在於政治和敎育. 他們還認爲, 傳統科學制度根本培養不出時代要求的人才, 只有變科學, 興學校才能使人才輩出. 他們主張改革科學考試科目的同時, 還主張恢複傳統的鄕學裏選制. 他們淸楚地知道, 培養, 選拔人才與政治有著密切的關系. 要設立議院, 實行君民共主, 必須有了解西方政治的人才. 就是說, 取士, 用人, 行政方面的改革是分不開的問題.

      • KCI등재

        변법운동시기 하계ㆍ호례원의 민권론

        金慶惠 中韓人文科學硏究會 2001 한중인문학연구 Vol.6 No.-

        本文旨在探計變法運動時默何啓, 胡禮垣的民權論.何, 胡是變法運動時期代表的思想家從1887年發表「曾論書後」開始,他們先后撰寫了一系列政論性約文章 通通這些文章, 我們可以看刻他們形成를平一 讀院一 民權的政治主張. 他們指出, 上下不遍, 君民二心約中國社會是一混不公平的社會. 這是因爲中國歷煊君主忘一自己的本分, 以民爲奴隸, 以擧國爲私産, 那丸窓樣才能解決間題鳴河, 胡主張, 異要變革君主專制制度, 設立談院, 俵人民參與政淪, 才能解決這個問題. 似們相信, 謠院制度是能鉤責現公平的理想的機制 .罕午戰爭失敗以后, 在瓜分危機嚴重的情況下, 何, 胡積極池提倡民權. 他刷主張, 只有民權, 中國才能擺脫瓜分的危機, 才能富强. 他們認爲民權的有無與國家耉亡有如此密切約關系所以池們强詞作爲國權的民權. 集體權利的民權, 而否定個人的權利

      • KCI등재후보

        국내 중국학관련전공 대학생의 중국· 중국인에 대한 인식 - 중국유학 경험자를 중심으로-

        김경혜 한국중국문화학회 2011 中國學論叢 Vol.32 No.-

        本硏究是继2008年《韩国大学生对于中国和中国人的认识》的研究。今年是韓中建交20周年。韓中两国之间交流的继续成长对两国互相的印象到底作出如何影响?本研究对于中国生活过6个月至1年以上的韩国大学生进行了设问调查,而其结果如下:1。认识到中国是人多地大的很有潜力和经济方面迅速发展的国家。政治方面来说,‘比较稳定社会’的认识也增多。2。对中国人的印象仍然存在着,‘不干净’,‘吵闹’等的固定认识。不过对中国人的印象上也有了正面的变化 - 中国人是可以信赖的,以及勤劳的人民等。如同上述的结果,中国生活的经验对中国和中国人的认识上的变化,作出了一定的作用。

      • KCI등재

        일본어와 한국어의 조건표현의 대조연구 : 「 Nara 」 And 「 -Tamjon/-Ramjon 」 「 ナラ 」 「 - 다면/- 라면 」 를 중심으로

        김경혜 한국일어일문학회 1999 日語日文學硏究 Vol.34 No.1

        日本語와 韓國語의 條件表現을 나타내는 形態素로는「ば·と·たら·なら」와 「-면」이 代表的이다. 各 形態素는 日本語와 韓國語의 條件表現의 領域을 나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形態的 特徵과 意味特性, 그리고 構文特徵을 볼 때 類似點만큼이나 相違點을 發見할 수 있다. 本稿에서는 各 形態素 中 條件表現에서 「ば·と·たら」와 相違한 構文構造를 지닌 日本語의 「なら」와 韓國語의 先語末語尾와 合成하여 나타나는 「-면」의 形態를 中心으로 해서 構文的 特徵과 接續樣相에 대해 對照硏究를 하였다. 「なら」와 「-면」의 對應樣相은 周知와 같이 一對一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構文의 特異한 特徵으로「なら」의 提題·條件設定機能과 「-다면/-라면」의 機能이 一致한다는 點을 들 수 있다. 이때「-다면/-라면」이 提題·條件設定機能에 더욱 附合되는 까닭은 「-다/-라」가 「-면」에 接續한 結果가 前件과 後件의 斷絶效果를 높이어「條件∼結果」的는 構文特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 때문인 것이라고 判斷된다. 이러한 對應樣相을 보이는「なら」와 「-다면/-라면」이지만 實際에 있어서는 「-면」의 意味領域이 廣範圍하여 先語末語尾와의 接續이 아니더라도 「なら」의 全機能에 對應되는 例를 찾게 된다. 그러나 本稿와 같이 細部的으로 綿密한 對應樣相을 보려고 하였을 때는 「-다면/-라면」, 「-(어·아)ㅆ더라면」등의 特異한 形態가�發見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恒時 特徵的으로 나타나는 「-면」의 登場을 「たら」와 「なら」에 接續하여 나타나던 「ば」와 같은 機能으로 看做할 수는 없기 때문에 「-면」의 存在에 대한 再認識이 必要하다고 생각한다. 接續에 따른 特徵에서 나타난 結果로는 「なら」는 體言, 情態·程度副詞, 時制와 敍法을 나타내는 一部 助動詞, 助詞等과 接續樣相을 보이고 있고, 「-면」 또한 類似한 接續樣相을 보이고 있는데 이 두 形態素의 接續 中에서 特徵的인 것은 時制를 나타내는 先語末語尾와의 接續이라고 할 수 있다. 日本語의 時制表現은 多樣하지 않기 때문에 助動詞 「た」만이 表面的으로 나타날 뿐이다. 反面 「-면」은 過去時를 나타내는 「(어·아)ㅆ」, 現在時를 나타내는 「ㄴ(는)」, 未來時를 나타내는「ㄹ것」과 같은 單一形態와의 接續이 可能하다는 것이다. 「-면」만이 이러한 接續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면/-라면」과 같은 先語末語尾와 接續한 「-면」의 또 다른 先語末語尾와의 接續樣相은 그 形態가 多樣하다. 특히 意味特性에서 나타나는 反事實的 條件表現을 나타낼 경우, 「ば·と·たら·なら」로는 前件만으로 構文의 意味特性이 反事實的 條件表現임을 가릴 수 없는 것과는 달리 「-(어·아)ㅆ더라면」 이라는 形態로 前件이 反事實的 條件表現의 提示임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特徵을 보이는 「なら」와「-면」의 對應樣相을 一目瞭然하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なら」와 對應하는 韓國語는 「-으면」, 「-다면」, 「-이면」, 「-라면」의 四形態인 것은 알 수가 있다. 實質的으로는 韓國語의 「-면」이 先接하는 形態가 多樣해서 日本語의 「ば·と·たら·なら」와 같은 獨自的인 形態를 이루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 妥當할지도 모르겠다.

      • KCI등재

        上海에서의 王韜

        김경혜 한중인문학회 2009 한중인문학연구 Vol.28 No.-

        본 논문은 19세기 중엽 대표적 중국 근대 지식인인 王韜에게 있어서 上海라는 공간이 어떤 의미였는가 하는 점을 밝히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王韜가 上海에서 활동하였던 시기는 두 시기로 구분된다. 첫째는 1849년부터 墨海書館에서 일하였던 13년 동안의 시기이며, 둘째는 오랜 망명생활을 접고 다시 上海로 돌아온 1885년부터 1897년까지 格致書院 山長으로 일하였던 시기이다. 중ㆍ서 문화교류의 중심지였던 上海에서 王韜는 서양을 중국과는 또 다른 문명세계로 인정하게 되었으며, 실용을 중시하는 서양의 교육풍토를 格致書院에서 직접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reveals meaning of Shanghai to modern scholar, Wangtao(王韜), the mid nineteenth century. There are two distinct time periods that Wangtao(王韜) had worked in Shanghai. One is the thirteen years that he worked at Mohaishuguan(_London Missionary Society Mission Press)from 1849, The other is from 1885 to 1897 when he worked as Gezhishuyuan (Shanghai Polytechnic Institution). Wangtao(王韜) admitted Shanghai, the central spot of cultural interchange between China and Western, not as barbaric but as enlightened civiliazation, thus tried to practice Western educations that concentrates on utility in Shanghai Polytechnic Institution.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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