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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通信使の行列と行列記 ―朝鮮像の変遷―

        箕輪吉次 한국일어일문학회 2010 日語日文學硏究 Vol.72 No.2

        江戸時代の朝鮮通信使をめぐる通俗板本である行列記に検討するにあたり、まず、通信使と対馬島主宗氏の行列の規模を、天和二年の場合を例に、史料によって具体的に検討した。宗氏一行は荷物持ち人夫も含め、対馬から1800人ほどが同行、通信使側は信使一行474人の他に、馬子や人足などが常時1,374人ほど同行しており、総勢3,000人以上の人々が江戸迄往復していた。通信使行列の見物には、礼を失わないように種々規制はあったが、見物自体は幕府からむしろ奨励されており、江戸市中では、座敷、二階からの見物も許され、ある時期には、物干しから見ることも許されていた。通信使の通り筋の両側には桟敷席が臨時に造られ、そこからも見物したが、幕府は禁じてはいるものの、屋根の上に登って見物する者もおり、男女僧尼同席し、酒食し、高声高笑指差しなどし、挙げ句の果ては、通信使一行が威儀を正して進む道の傍らで、喧嘩口論酔狂にまで及んでいたというのが実態である。対馬では6尺ほどの高さの石垣の上に登って見物する者もいた。通信使行列を題材とした行列記の類は、天和二年と文化八年を除けば、ほとんどが通信使到着前に刊行されており、行列見物の際の案内書のような性格を持っている。京の菊屋七郎兵衛刊行の書は神功皇后を出すなど朝貢使としての色彩がややみられたが、求板本と思われる『朝鮮人来朝義式』などには朝鮮賛美の傾向が見られる。江戸本願寺前の辻村五兵衛刊行の行列記では「貢をさヽぐる韓客」と朝貢であることを標榜している。行列記を標榜してはいないが、実質は行列記を含み、朝鮮に関する往来物を収めている『宝暦新刻大船用文』には通信使と朝貢がを結びつけられている。文化八年『朝鮮人来朝行列之記』では「今年対州乃地に來伏なしぬ」と朝貢という意識がより鮮明となり、『神功皇后三韓平治往来』に至っては、神功皇后や、神国日本が強調されるに至る。既に、芸能では、正徳五年に『神功皇后三韓退治蘆分船』が初演され、享保四年には紀海音『神功皇后三韓責』が初演されたほか、太閤の朝鮮征伐を含む浄瑠璃『太閤記』も元禄十一年以降には演じられている。行列記が、正徳元年には朝鮮を賛美する内容もあったのに、後に、専ら、朝貢使として描くようになったのは、行列記の出板書肆が主導した結果なのではなく、神功皇后の三韓征伐伝承に材を得た芸能などを背景に、世の風潮を受け、読者に受け入れやすいように記述内容を変えていったのであろう。

      • KCI등재

        対馬藩における秀吉像の変遷 -『両国壬辰実記』成立の背景 -

        箕輪吉次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2014 일본학연구 Vol.43 No.-

        쓰시마(対馬)번은 히데요시(秀吉)나 임진왜란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조선 과 통교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 수단이 막혀버리는 쓰시마로서는, 히데요시나 임진 왜란에 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피하고 싶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에야스(家康)가 쇼군(将軍)이 되고 조선과 통교를 재개하려 교섭을 하고 있었던 쓰시마 내부애서 는 ‘만약 조선이 통교 재개를 거부한다면, 이에야스도 또한 조선을 공격할 것이다’ 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쓰시마에서는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관한 비판이, 자칫하면 이에야스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될 소지가 있었다. 쓰시마번은 히데요시가 남긴 “쓰시마는 나라의 변방”이라는 말을 내세우며, 바쿠 후(幕府)로부터 경제적인 양보를 이끌어 내기 위해 계략을 짜게 된다. 통교가 재개 되어진 초기에는 임진왜란의 여파가 있어, 조선은 쓰시마의 무리한 요구도 들어주 었지만, 그 여파가 점차 옅어짐에 따라 조선이 도리어 점차 무위를 뽐내게 되자, 통 교통상은 쓰시마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변방임을 내세우며 바쿠후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내고, 조선이 기록을 정비하고 있는 것에 대항 하기 위해서, 통교에 관련된 자들의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되게 된다. 한편, 사 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쓰시마이기에 타국의 해적선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지만, 이 는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결국 쓰시마는 임진왜란에 관한 전승이나 옛날 필사본 등 기록을 모으기 시작한다. 『양국임진실기』는 이러한 분위기 가운데 편 술(編述)되어진 서적이다. 이 서적은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것은 아무런 명분 도 없는 것이니, 교린을 맺을 수 있도록 교섭을 해라. 만약 조선이 이를 거부하며 무례하게 굴 때는, 내버려 두지 않고 이에야스 또한 조선을 침공할 것이다”와 같이 통교재개를 재촉하는 이야에스의 말로 그 끝을 맺고 있다. 일본측 문헌을 『懲毖 録』과 대조하며 기술한 야마자키 히사나가(山崎尚久) 역시 종래 쓰시마의 입장과 다를 바 없다. 마지막 번주였던 소 요시아키라(宗重達)는 가보에서 선조를 안토쿠( 安徳) 천황으로 삼은 다음, 쓰시마는 나라의 변방임을 메이지(明治) 정부에 주장했 다. 쓰시마의 확고한 위치를 다져놓으려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정한론( 征韓論)을 부르짖던 오시마 도모노조(大島友之允)의 생각에 이어지게 된다. 바쿠후 말기부터 메이지 유신까지, 히데요시는 다시금 그 권력을 되찾아간다. 호 코쿠샤(豊国社)도 재건되어진다. ‘쓰시마는 변방’이라는 논리는 쓰시마의 특수권 익을 확보한다는 단계를 넘어서, 결국에는 일본 전체를 연루시키게 된다. Tsushima-ban didn’t leave the document about Hideyoshi and Imjin War. Tsusima would like to avoid to mention about Hideyoshi or Imjin War because Tsusima were badly fixed unless they diplomacy with Korea. After Ieyasu became Shogun and resumed the diplomacy with Korea, there were rumors in Tsusima that If Korea refuses to resume the diplomacy, Ieyasu will also attack Korea as Hideyoshi. Criticizing Hideyoshi’s invasion to Korea could be connected to the criticize of Ieyasu in some cases because of the rumor which were told in Tsusima that Ieyasu will attack Korea. Tsusima believed firmly to the fact that Ieyasu called Tsusima as the border area of the country, and conceived a plan to draw the economic concessions from the Bakuhu. At the beginning when both sides resumed the diplomacy after Imjin War, Korea all accepted to the strong demand of Japan because of the aftermath of Imjin War. But as the aftermath faded away and Korea rather became to show their power, the diplomacy went athwart Tsusima’s purpose. Consequently, appearing border area on the surface and drawing econimic concessions, “The need of education for the ones who are related to the diplomacy” was required to counter Korea, who were organizeing the documents. Meanwhile, Tsusima was a village surrounded by sea on all sides and they needed the prepatation for the invasion of pirates, but were not accomplished. When the negotiation about 12 second time Diplomatic corps were proceeding with difficulty, Tsusima started to collect the classics or documents about Imjin War. “Ryoukokujinshinjikki” is a book which was edited in such ambience. This book ends with the words of Ieyasu demanding the diplomacy to resume such as “Hideyoshi’s invasion to Korea wasn’t consistent with what is right, negotiate so that we can form a good-neighbor, but if Korea refuse to do so and shows ungracious behavior, Ieyasu won’t leave it at that, and will also invade Korea.” Yamamzaki Hisanaga, who compared and described “Chohiroku”and the document of Japan, had the same stance of traditional Tsusima. The last Lord of Tsushima clan Sou Yoshiakira made Antoku-Tennou as forefather in their genealogy, and Tsusima as the border area of the country. It was because the government of the Meiji Restoration wanted to take a stand about Tsusima. This was also the same idea of Ooshima Tomonozyouu who tried to protect the particular right and profit of Tsusima by advocating Conqueror Korea TheoryThroughout the last period of Bakufu to the Meiji Restoration, Hideyoshi was reinstated. Houkokusya was also restored. The logic so called “The border area Tsusima” went beyond the secure of particular right and profit of Tsusima and finally became to draw the entire Japan.

      • 天和二壬戌年 天和信使記錄四十一 在江戶中狀控

        箕輪吉次 일본학연구회 2001 일본학논집 Vol.14 No.-

        선각자귀찰첨배견후. 미어견고이피성어좌지지, 대경봉존후. 여귀의, 사의무위삼사도동도도착, 대열사후. 금조자조속위(궐자)상사대구보안예수전어출, 어간몽(궐자)상의, 식첨차제, 난유봉존후. 금일팔삼사공무위(궐자)상사축전수전 · 가하수전 · 부후수전어출, 삼관사어대안피성후처, 수외, 어수미선어좌후이, 지사무대경봉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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