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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보건교사의 직업정체성: 근거이론적 접근

        권진옥,오진아,김은하,한대동 한국아동간호학회 2015 Child Health Nursing Research Vol.21 No.1

        목적초등학교 보건교사의 직업정체성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함으로써 보건교육에 대한 현장의 경험에 근거한 시각을 제공하고 초등학교 보건교사의 행동과 사고를 이해할 수 있는 직업정체성의 유형을 탐색하고자 하였다. 방법눈덩이표집법에 의해 편의추출된 초등학교 보건교사 15명을 대상으로 근거이론연구방법을 이용하여 심층면담을 통한 자료의 수집과분석을 반복적이고도 순환적으로 시행하여 개방코딩, 축코딩, 선택코딩, 도형화의 단계를 거쳤다. 결과연구결과 15개의 범주와 35개의 하위범주, 그리고 120개의 개념이도출되었고 핵심범주는 ‘간호를 베풀며 교사로 살아가기’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보건교사의 직업정체성 형성은 ‘보건교육중시형’, ‘간호-교육병행형’, ‘간호제공위주형’의 3가지 유형으로 파악되었으며, 참여자별로 한 가지의 유형으로 파악되지 않고, 세 유형이 조금씩 혼합되어 나타났다. 결론초등학교 보건교사의 명확한 보건업무의 해석이 필요하며, 보건교사를 지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과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초등학교 보건교사의 직업정체성 형성 과정을 둘러싼 불평등한 제도 개선즉 성과급제도와 승진 제도에 대해서 심층적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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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의 기문(記文) 연구

        권진옥 동아시아고대학회 2018 동아시아고대학 Vol.0 No.49

        본 논문은 조선 중후기의 대표적인 소론(少論) 계열 인물인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 1646~1715)을 대상으로, 그가 남긴 산문 가운데 기문(記文)을 고찰하였다. 최석정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대체로 그의 정치사적․사상사적 입지와 의의를 밝히는 데 치중하였으며, 학문에 대해서는 예학(禮學)·산학(算學)·어학(語學) 분야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그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 기실 최석정의 문학은 당대는 물론이고 후대에 이르기까지 높이 평가하였다. 한시는 기세(氣勢)가 우뚝하여 당대 시인들이 미치지 못할 수준이었고, 문장은 경학(經學)에 기초한 경세지문(經世之文)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이와 같은 평가에 기초하여 최석정의 문학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다만 본 논문에서는 한시가 아닌 산문을 다루되, 기문에 집중하였다. 최석정의 시문집인 『명곡집(明谷集)』에 수록되어 있는 기문은 총 10편이다. 기문은 모두 공적 건물과 사적 건물에 부친 건물기(建物記)이다. 창작시기는 대부분만년이고, 주로 제3자의 청탁에 의해 공적 건물과 사적 건물에 부친 기문이다. 선기옥형(璿璣玉衡)을 설치한 제정각에 부친 「제정각기(齊政閣記)」, 이상적인 관리의궁극적인 목표는 ‘여민동락(與民同樂)’임을 논설한 「파주풍락헌기(坡州豐樂軒記)」, 관리와 누정의 관계를 설명한 「자민루기(字民樓記)」, 경종(景宗)의 완쾌를 축하하기 위해 지은 「집경당기(集慶堂記)」, 대나무의 청허한 성질에 빗대어 이상적인 관리상을 제시한 「차군정기(此君亭記)」, 신라 시조를 모시는 사당인 경주 나왕전(羅 王殿)을 중수한 것을 기념한 「경주나왕전중수기(慶州羅王殿重修記)」, 노년에 산수를 즐기며 사는 즐거움을 묘사한 「이로당기(二老堂記)」, 술에 취한 즐거움과 물에취한 즐거움을 비교대조하여 논설한 「취수정기(醉水亭記)」, 제천(堤川) 의림지(義 林池)에 지은 누정에 부친 「임소정기(臨沼亭記)」, 나양좌(羅良佐)를 위해 『주역(周 易)』의 둔괘(屯卦)의 의미와 변방으로 유배 가는 그를 권계하는 「둔재기(遯齋記)」 가 있다. 이상의 기문은 대부분 사경(寫境)보다는 기사(記事)와 의론(議論)에 중심을 두고 있다. 이는 청탁자의 의도와 목적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공적 건물에부친 기문은 권계하는 내용의 기사형(記事型)이 많으며, 사적 건물에 부친 기문은청탁자와 작자의 철리(哲理)를 교섭하여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의론형(議論型)이많다. 최석정의 기문을 “참신한 비유를 통한 이상적인 목민관 제시”와 “『주역(周易)』 과 『장자(莊子)』를 활용한 의론 전개”라는 소절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최석정의 기문 가운데 참신한 입론과 비유를 통해 이상적인 목민관을 제시한 작품으로 「차군정기(此君亭記)」와 「자민루기(字民樓記)」를 거론하였다. 이들 작품은 청탁자가 목민관이고, 대상 건물이 공적 건물인 이상 그 기문에서 지향하는 주제의식은 여민동락의 선정일 수밖에 없으나, 이러한 주제의식을 청탁자, 혹은 이후 그 건물을 소유할 목민관으로 하여금 선명하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참신한 입론이나 비유를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차군정기」와 「자민루기」는 그 문학성과 실용성을 인정할 수 있었다. 최석정의 기문 가운데 『주역』을 활용한 경우로 「돈재기(遯齋記)」를, 『장자』를 활용한 경우로 「취수정기(醉水亭記)」를 예로 들 ... This paper examines Myeonggog(明谷) Choi, seogjeong(崔錫鼎)’s gimun(記文) who is a representative soron(少論) figure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isting research focuses on examining the meaning of political and historical. For the study, it was concentrated on the fields of yehak(禮學), arithmetic, and language. However, there is no research on his literature. In fact, his literature was well appreciated not only in the present day but also in later generations. Based on these evaluations, this paper studied his literary works. However, his prose works was examined and the gimun(記文) was focused in this paper. His works collection, myeonggogjip(明谷集) is composed of 15 books. Among them, there are about 400 prose and the gimun(記文) are 10 works. The gimun(記文) is for public buildings and individual buildings. The time of creation was his later years, and it was wrote by the request of another person. Most works focuses on articles and arguments rather than scenery description. This is the result of the requester's intent and purpose. The works written on the public buildings are subject to a exhortation, and the works written on individual buildings often reveal the philosophy of the author. His works was divided into two themes. First, it presents the ideal governor through an innovative analogy. Chagunjeonggi(此君亭記) and Jaminlugi(字民樓記) suggested an ideal governor through an innovative discussions and analogy. Both works can recognize literacy and practicality. Second, the discussion was carried out using the Juyeok(周易) and Jangja(莊子). Donjaegi(遯齋記) consoled the other party through a cyclical philosophy of Juyeok(周易), Chuisujeonggi(醉 水亭記) persuade the other by breaking conventional wisdom, through accepting criticism of Jangja(莊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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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은(晦隱) 남학명(南鶴鳴) 산수시(山水詩)의 특징

        권진옥 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2019 인문사회과학연구 Vol.20 No.2

        This paper examines the poems that Hoeeun(晦隱) Namhagmyeong(南鶴鳴) created for the nature, among the poems that he created. Hoeeun(晦隱) Namhagmyeong(南鶴鳴)’s nature poem(自然詩) is almost half of the poems, and he created poems in various forms. His attitude toward nature is pure. Most of the works express the description of nature, expressing pure and sophisticated interest and relaxation. There are no disconnects with the world, serious ideas, philosophical thoughts. The nature is not a superficial space, preferably the world is a superficial space. Since these ideas of nature have become the foundation, his poems are more pure than the poems of Confucianist and hermit. The living space is an artificial space in which human force works. However, according to the will of the person who owns and the place, the boundary with nature is broken down into one. Because he is not the person of the world with his mind, he creates and expresses the mental state that transforms the living space into the space of nature. Among his poems, there are records of journeys through poem. It is a poem and a prose about nature records(山水遊記). Since he recorded his excursion as a poem form, the poems that sang the excursion are more concrete, descriptive, and pictorial than other poems. In his nature poems, we finds the characteristics of prose about nature records(山水遊記) and prose about nujeong(樓亭). 본 논문은 조선 중후기의 소론(少論) 계열 인물인 회은(晦隱) 남학명(南鶴鳴, 1654-1722)을 대상으로, 그가 지은 한시 가운데 산수시(山水詩) 작품들을 고찰한 글이다. 그가 지은 산수시에 주목한 이유는 첫째 특정한 한시 세계를 좀 더 예각화 하는 미시적인 연구의 일환이다. 둘째 그의 삶에서 산수와 자연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데, 그가 창작한 문학 작품에서 그의 산수애호, 산수유람, 산수관 등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기때문이다. 이에 2장에서는 회은집(晦隱集) 소재 산수시 작품들을 개관하고, 3장에서는 산수와 자연에 대한 의식세계, 공간에 대한 인식 등 주제의식 측면을 먼저 살펴본 다음, 산수 유람을 기록한 산수시에서 그 표현양상 측면을 살펴보았다. 남학명의 시문집인 회은집은 총 5권2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권1에 한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총 98제 103수의 한시와 한 편의 부(賦)가 있다. 이 가운데산수시 작품 수는 전체 한시 작품 가운데 거의 절반에 이른다. 또한 창작 시기를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한시 창작이 만년에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산수시는 생애 전반에 고루 창작되었다. 남학명이 창작한 산수시를 대상으로, 주제의식 측면에서는 ‘산수에 대한 순수한 관조’, ‘생활공간과 산수의 일체화’를, 표현양상 측면에서는 ‘산수유기를 표방한 산수시 창작’을 고찰하였다. 산수에 대한 남학명의 태도는 심각하지 않고 순수하다. 대부분의 산수시는 산수와 자연의 묘사, 이로 인한 순수하고 담박한 흥취와 감회를 드러내는 데 그치고 있다. 속세와의 결연한 단절, 귀거래에 대한 의지, 심각한 관념이나 고원한 유가적 사유 등은 보이지않는다. 남학명에게 있어서 산수는 이상향, 가보지 못한, 갈 수 없는 피상적인 공간이 아니다. 외려 속세야말로 가보지 못한, 갈 수 없는 피상적인 공간이다. 이러한 산수관이 기초가 되었기에, 그의 산수시는 유자와 은자가 표방하는 산수관, 산수시보다 덜 심각하고순연하였다. 남학명은 산수 속에 거주지가 다수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공간들을 이용하여 처사의 삶을 무리 없이 영위할 수 있었다. 생활공간은 인간의 물력이 작동한 인위적인공간이기는 하지만, 이 공간이 자리한 장소, 이 공간을 소유한 이의 의지에 따라 산수와의 경계가 허물어져 일체화되기도 한다. 자신의 마음가짐과 지향이 이미 속세의 사람이아니었던 그의 의식세계가 견인하여 세속의 생활공간을 산수와 경계가 없는 은일의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정신적 경지를 표방하여 산수시를 창작하였다. 남학명의 산수시 가운데는 한시를 통해 유람의 여정을 기록한 작품들이 있는데, 한시이면서 산수유기(山水 遊記)를 표방하였다. 자신의 유람을 한시라는 형식까지 활용하여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남학명이기 때문에, 유람을 노래한 산수시는 여타 산수시보다 더욱 구체적이고 설명적이며 회화적이다. 지리적 정보나 지형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남학명의 산수유기 특징, 짧은 편폭의 분량에 간단한 사실의 기록이나 몇 구절의 시구를 인용하고 그치는 남학명의 누정기(樓亭記) 특징 등을 이러한 산수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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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 저술의 종합적 검토를 통해 본 이유원의 문화사적 의미

        권진옥 동양고전학회 2022 東洋古典硏究 Vol.- No.86

        이 논문은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 남긴 저술을 통해 그의 역사 및 문예 의식을 검토하고 이러한 의식과 관점이 어떠한 문화사적 의미를 지니는지 규명한 글이다. 먼저 이유원의 역사 및 문예 의식을 검토하고, 또한 문예 의식은 서화(書畫)와 시문(詩文)의 두 가지 측면에서 각각 살펴보았다. 역사 의식과 관련해서는 역사를 소재로 한 다양한 저술 가운데 『체론류편(體論類編)』과 『국조모훈(國朝謨訓)』을 고찰하였다. 이 책들은 모두 제왕학(帝王學)을 위해 별도로 기획한 유서로서, 국왕의 체모를 보존하고 국가의 논의를 결정하는 데 긴요한 참고 자료가 『체론류편』이라면, 후대 군주에게 지침이 될 만한 핵심적인 국가적 사업을 역대 국왕의 사례에서 찾아서 제시한 자료가 『국조모훈』인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하는 문화 사업을 주요하게 다루었는데, 그것은 바로 문헌의 편찬⋅간행⋅인쇄, 그리고 음악⋅회화⋅서예 등의 예술 방면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었다. 그는 역사 관련 저술을 통해 제왕학을 강조하는 동시에 국가 차원에서의 문화 사업에 대한 관심과 활용에 적극적이었다. 서화에 대한 인식과 관점에 대해서는 「옥경고잉기(玉磬觚賸記)」 소재 자료들을 위시하여 고찰하였다. 그는 시문에서 서화의 기풍과 서화에서 시문의 기풍이 융합된 문예 창작물을 지향하였다. 시문에서 융합한 서화의 풍격은 맑고 빼어남에 있고, 서화에서 시문의 기풍이나 문자향이 융합하는 것은 학문의 온축과 마음의 순수함에 달려 있다. 시서화(詩書畵)의 일치를 담보하되 그 일치하는 방식은 시문에서 서화의 기능적인 측면, 반대로 서화에서 시문의 역할에 주목하였다. 또한 서법이 고풍스러움을 띠기 위해서는 해서 이전의 전서(篆書)와 예서(隸書)를 익혀서 옛 뜻을 담아내는 것을 관건으로 인식하였다. 시문에 대한 입론은 시와 문장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시에 대해서는 성령을 깨우쳐 개성을 진실되게 표현하는, 즉 성령설(性靈說)과 신운설(神韻說)을 함께 아우르는 논의를 펼쳤고, 문장에 대해서는 도덕과 경륜을 담고 있되 그 표현은 명백하고 평이하며 작자 본연의 의취와 기상이 훼손되지 않는 논의를 개진하였다. 한편 시문에 있어서 고증적 면모를 보이는 문학적 성취를 점검하였다. 주지하다시피 그가 살던 시대는 이른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변혁의 시기였다. 중국의 아편 전쟁이나 일본의 개항을 목도한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하였는데, 이유원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외교뿐만 아니라 상대국의 지식인들과도 활발하게 소통하였기 때문에 급변하는 문화에 매우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이역(異域)에 대한 인식이나 서구 문물과 과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의 측면이 발현된 저술이 바로 각종 유서와 필기잡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역사 및 문예 의식을 고찰하는 과정에서는 외려 전통적인 제왕학, 시문에서의 순정한 고문이나 경세지문(經世之文), 서화에서의 고법 중시 등과 같은 상고주의(尙古主義) 양상도 함께 포착이 된다. 이러한 상고주의 측면은 자국의 문화를 자부하고 보존하려는 의식과 연계하여, 역사 의식에서는 국가 차원에서의 우리나라 문헌의 보존과 고유한 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문예 의식에서는 우리나라 작가의 개성을 강조하는 성령설과 신운설, 고동서화에 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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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陶菴 李縡의 「代李太白魂誦傳竹枝詞」 일고

        권진옥 고전문학한문학연구학회 2017 고전과 해석 Vol.23 No.-

        본고는 陶菴 李縡(1680-1746) 문학 연구의 일환으로 그가 지은 科詩 작품 「代李太白魂誦傳竹枝詞」를 개관하고 그 주제사상을 고찰하였다. 특히 이재의 「죽지사」는 일부지만 12歌詞 가운데 「죽지사」로 현재까지 歌唱되고 있는데, 이는 과시로 지은 작품이 이후에 詩唱되고 가창되어 현재까지 대중적인 문학양식으로 자리매김한 일단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문헌의 기록을 상고하면 이재의 「죽지사」는 당대는 물론이거니와 조선후기까지 꾸준히 회자되었는데 심지어 중국에까지 전송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별도의 텍스트를 통해 전파되진 않았고 口傳만 되었던 것 같은데, 다행히 현전하는 일부의 필사본 자료를 통해 그 전모를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이재의 「죽지사」가 科詩選集에도 종종 수록되어 있는 사실을 감안하면 과시로서도 후대에 가작으로 평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재의 「죽지사」는 구성, 압운, 평측 등 형식면에서 과시의 정격을 잘 준수하고 있다. 그 가운데 과시의 入題에 해당하는 “천지는 늙지 않고 달은 유구한데, 적막강산에 백 년 인생이로다.(乾坤不老月長在, 寂寞江山今百年)”라고 한 부분이 바로 현재 가창되는 「죽지사」의 첫 번째 사설이다. 이재의 「죽지사」 전체의 모습과 주요하게 사용된 전고를 살펴보면, 李白을 위시한 전고가 매우 빈약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申光洙의 「登岳陽樓歎關山戎馬」가 시어나 시구 거개가 杜甫 시를 근거로 하거나 변용하였다는 사실과 비교하더라도 매우 다르다. 이 의문점은 이백과 두보에 대한 이재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요컨대 이재는 이백의 혼령을 대신하여 짓는 과시를 지을 적에 두보의 工力처럼 수십 작품의 시어와 시구를 집구하고 인용하여 단련하기보다는, 이백의 才氣처럼 다양한 전고를 사용하여 이백 시의 주제사상을 구현하는 데 힘을 기울인 것이다. 이재의 「죽지사」는 내용면에서 宋나라 黃庭堅의 「夢李白誦竹枝詞三疊」을 모델로 하여, 이백을 화자로 삼아 그 내면 심리를 핍진하게 묘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대체는 속세를 벗어난 은거 혹은 초월 지향이라는 주제사상 아래 애상과 처량의 정조가 흐르고 있다. 1단의 3-6구에서 신선의 자태와 인간으로서의 허탈함이 선명하게 대비되고, 結聯에 이르러서 다시 속세를 벗어난 초월 세계를 환기시키고 있다. 중간에 삽입된 풍류와 낭만, 회재불우의 고난, 나그네의 지독한 시름 등의 주제나 애상, 위로, 처량 등의 정조는 초월 세계를 더욱 갈구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평생 풍류와 낭만 속에서 유유자적 인생을 살다가 역경을 계기로 세상을 등진 이백의 행적, 송나라 황정견이 꿈에서 이백을 만나 「죽지사」를 세상에 전송한 일화 등을 고려하면, 이재가 「죽지사」를 초월적 세계에 대한 동경을 주제사상으로 엮은 이유가 납득이 간다. 그런데 이재가 「죽지사」를 지을 즈음 창작한 여타 한시를 살펴보면 같은 주제사상을 읊은 작품들이 다수 발견된다. 어렸을 때부터 젊은 시절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참상은 물론이고 환로의 전변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터라 이 무렵 이재의 시는 그의 심상을 대변하고 있는데, 한결같이 속세를 벗어난 은거, 혹은 학문을 통한 초월 세계 지향 등을 주제로 삼고 있다. 이재의 「죽지사」는 특정한 試題에 맞추어 지어진 과시이기는 하지만, 이백에 대한 그의 추향 의식, 작품을 창작한 당시의 현실 상황과 맞물려서 「죽지사」의 주제사상과 정조가 구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As a part of literary studies about Doam(陶菴) Leejae(李縡), this study overviews his DaeLeebaekhonjeonsongJukjisa(代李太白魂誦傳竹枝詞) and examines themes. In particular, Leejae(李縡)’s Bamboo branch poems(竹枝詞) is one of the 12Gasa(歌詞), has been sung to date. This shows that Leejae(李縡)’s Bamboo branch poems(竹枝詞) has been sung later and placed in popular literary form to date. Looking at the records of the literature, Leejae(李縡)’s Bamboo branch poems(竹枝詞) was repeated until the late Joseon Dynasty, even spread to China. According to the records, it was not spread through the special text, but it spread through the mouth. Now we can see the whole picture through some of the manuscript data. In addition, Leejae(李縡)’s Bamboo branch poems(竹枝詞) is often included in anthology of the poetry for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科詩), considering this fact, it was evaluated as a great work in later generations by the poetry for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科詩) Leejae(李縡)’s Bamboo branch poems(竹枝詞) obeys composition(構成), rhyme(押韻), and pyeongcheuk(平仄) in terms of form. Among them, the part corresponding to the Ipje(入題) is the first lyrics of Bamboo branch poems(竹枝詞) that are currently being sung. This work is based on Hwangjeonggyun(黃庭堅)’s MongLeebaeksongJukjisasamcheop(夢李白誦竹枝詞三疊) in the aspect of the contents, and it is a work depicting LeeBaek(李白)’s innermost psychology. The alternative content is the theme of retirement and transcendence, its base is the flow of sorrow and miserableness. However, if we look at other works when he created Bamboo Poems(竹枝詞), there are many works containing the same theme. In these days his works represents his mind because he experienced the individual devastation and the changes of life as an official in direct and indirect. The theme is one that is a retirement out of the world, or is a transcendental world through study. Leejae(李縡)’s Bamboo branch poems(竹枝詞) is a poetry for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科詩), but the theme and emotion of this work were embodied in connection with the real situation and the respect for Leebaek(李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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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중기 한문 사대가의 비평사적 존재 양상과 위상 재고

        권진옥 고려대학교 한국언어문화학술확산연구소 2022 Journal of Korean Culture Vol.58 No.-

        This thesis examines how they exist in a critical-historical context, and what is the reality of their status, targeting the ‘Chinese character four great writers’, a literary group representing the mid-Joseon period. In Korean Chinese literature, the representative writers of the Joseon Dynasty from the Seonjo(宣祖) to Injo(仁祖) period are Lee jeong-gwi(李廷龜), Shin heum(申欽), Lee sik(李植), and Jang yu(張維), and these The so-called ‘Chinese character four great writers’, which refers to the four people in parallel, began with the mention of Kim tae-jun(金台俊). In addition, Kim tae-jun(金台俊) presented the critical data of Kim chang-hyeop(金昌協) and Kim yun-sik(金允植), who are the figures of Noron (老論), as a basis for naming these four people side by side. In Kim yun-sik(金允植)'s critical data, it is the first time that these four people are referred to as ‘Sangwolgyetaek(象月溪澤)’. After Kim tae-jun(金台俊), when describing the history of Chinese literature or criticism of Chinese characters in the Joseon Dynasty, researchers generally mentioned the Chinese character four great writers in the mid-Joseon period, and explained the main factors that unite the four people under the name of ‘the Chinese character four great writers’. The core discussions are the eight great writers of the Tang and Song Dynasty(唐宋八大家), sunjeong gomun(醇正國文), and Huncheokgye(勳戚系), but it is not clear to unite them with these factors alone. Then, in terms of the history of Chinese prose critics, what was the aspect of their existence through the critical materials produced the period of their activities and after them? Kim yun-sik(金允植)'s writing is the only case in which these four people appear alone, but it shows various aspects, such as when one, two, or three of the four major Chinese characters are mentioned, or other authors including four are mentioned together. The fact that Chinese prose writers in the mid-Joseon Dynasty pursued the aesthetics of literature as pure literature and awakened the beauty of individuality is a point distinct from the previous period. In the process of finding differences by comparing them without recognizing them individually, in the process of finding differences between them, the symbol of the Chinese character four great writers functions a major role in the history of Chinese literature in the mid-Joseon period, where numerous writers were produced. However, apart from these functional aspects, it is always necessary to reflect and examine whether the basis or background of the symbol is reasonable and whether it is a unique conclusion. On the other hand, it is also meaningful to re-excavate the rational arguments that unite the Chinese character four great writers. 이 논문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장가 집단인 한문 사대가(漢文四大家)를 대상으로, 비평사적 맥락에서 이 작가군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검토하고, 또 그 위상의 타당성을 재고한 글이다. 조선 중기의 한문 산문 작가들이 순수 문학으로서 문예미를 추구하고 개성미를 각성한 것은 확실히 이전 시기와는 변별되는 지점이다. 수많은 문장가들이 배출된 조선 중기 한문 산문사에서 이들을 파편화된 채 인식하지 않고 서로 비교하여 그 동이점을 찾아가는 과정에 한문 사대가와 같은 표상이 주요하게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기능적인 측면과는 별개로 표상의 근거나 배경이 합리적인지, 또 과연 유일무이한 결론인지에 대해서는 언제나 반성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 한문학에서 조선의 선조(宣祖)~인조(仁祖) 시대 문장을 대표하는 이정귀(李廷龜), 신흠(申欽), 이식(李植), 장유(張維) 이들 4명을 병칭하는 이른바 ‘한문 사대가(漢文四大家)’라는 명칭은 김태준(金台俊)의 언급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김태준은 이들 4명을 묶어서 병칭하는 근거로 노론(老論)의 인물이었던 김창협(金昌協)과 김윤식(金允植)의 비평 자료를 제시하였는데, 김윤식의 비평 자료에는 이들 4명을 ‘상월계택(象月溪澤)’으로 병칭한 사례가 처음으로 보인다. 김태준 이후로 연구자들이 조선 시대 한문 문학사 혹은 한문 비평사를 서술할 때 대체로 조선 중기의 한문 사대가를 거론하게 됨에 따라 학계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한문 사대가를 한문 산문 비평사 측면에서, 이들이 활동했던 시기와 그 이후에 산생했던 비평 자료들을 통해 그 존재 양상이 과연 어떠했는가. 이들 4명만 단독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김윤식의 글이 유일하지만, 한문 사대가 가운데 1명이나 2명 혹은 3명이 거론되거나 4명을 포함하여 여타 작가들까지 함께 언급되는 경우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문 사대가의 위상은, 결국 김태준이 이들 4명을 한문 사대가로 확정하는 데 주요 근거로 삼은 김창협의 「농암잡지(農巖雜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농암잡지」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서술하고 있는 대상은 역시 한문 사대가이다. 그만큼 김창협은 한문 사대가 구성원 4명을 당시까지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김태준은 위와 같은 김창협의 비평 내용, 그리고 김창협의 비평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상월계택’이라는 병칭을 덧붙여 제시한 김윤식의 글을 토대로, 이들 4명을 ‘월상계택 사대가’로 표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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