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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로서의 우산국

        권오엽 경상대학교 중등교육연구소 2017 중등교육연구 Vol.29 No.-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우산국은 우한한 도이의 나라였다. 그러나 그것은 신라 중심의 이야기로 우산국의 실체를 설명하는 용어가 아니다. 우산국을 설명하는 용어도 마찬가지다. 우산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용어들은 신라를 설명하는 용어였다. 우산국은 신라의 침범을 1회 이상 격퇴시킨 나라다. 말하자면 신라는 우산국과의 전쟁에서 1회 이상 패한 일이 있는 나라다. 그래서 무위로는 정벌하기 어려우니 계책을 써야 한다며, 나무로 만든 사자로 위협하는 계책을 사용한 것이다. 우산국을 정벌한 이사부는 신라의 왕족이며 최고의 관리였다. 그래서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는 일은 거국적인 사업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 신라의 침략을 우산국이 1회 이상 격퇴했다는 것은, 우산국이 신라에 대적할 수 있는 독자적인 나라였다는 것이다. 우산국이 나무로 만든 사자를 두려워하며 항복했다는 것은 사자를 매개로 하는 문화, 즉 불교문화를 인식했다는 것이다. 원래 사자는 우산국은 물론, 삼국과 중국에도 없고, 인도에나 있는 맹수였다. 그래서 우산국 사람들은 볼 수 없었고, 본 일이 없기 때문에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두려워하며 항복했다는 것은, 사자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외국과의 교류를 통한 인식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삼국이나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사자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인식하는 사자는 공상의 맹수로 영혼을 운반하는 신의 사자, 불법을 수호하는 성수, 주술적 능력을 발휘하는 맹수였다. 우산국 사람들은 이사부가 보이는 목우사자를 보고 그런 사자, 불교를 수호하는 성수로서의 사자를 연상한 것이다. 그 사자를 이사부가 전선에 싣고 와서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사부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사자가 무서운 재앙을 내릴 것으로 여기고 항복한 것이다. 무위로 신라의 침략을 격퇴시킬 수 있는 우산국이었지만 사자를 매개로 계책을 간파하지 못한 것이다. 그처럼 사자를 매개로 하는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우산국이었다면, 우산국은 『삼국사기』가 말하는 우한한 도이의 나라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주변국과 교류하며 불교문화를 수입하는 독자적인 나라, 신라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하고 있던 국가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우산국은 울릉도만이 아니라 주변의 섬, 울릉도에서 육안으로 확인되는 암도를 포함하는 영역을 영토로 하는 나라로 보아야 한다. 지증왕이 우산국과 울릉도를 같이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정벌의 대상을 울릉도가 아닌 우산국으로 말한 것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三國史記』の記錄によると于山國は愚悍な島夷の國になっている。新羅に服屬すべ き國として語られている。しかしそれは新羅中心の話で、于山國に對する配慮が欠けた 記錄に過ぎない。于山國の說明に用いられた用語もやはり新羅中心語なので、その言葉 らを逆の立場、卽ち于山國の立場から讀み直すと新羅を迎てて對等に戰っていた于山國 の面影が浮かんでくる。新羅は于山國の征伐が單なる威では難しいことを知り、木で作っ た獅子を見せながら脅かす計略を取り、于山國を服屬させようとした。 これはその征伐が二回以上行われたこと、于山國が一回以上新羅を擊退したことを 示唆する。また新羅の王族であり最高級の官吏である異斯夫の責任で征伐が行われたこ とは、それが擧國的な攻擊であったことを意味する。それを迎て對戰して、退いたのが 于山國であることを考えると、于山國こそ獨自的な國であったことがわかる。その國威 は威による攻擊は退けたが獅子像を見せる脅かしに屈したことからも伺える。威で服屬 させなかったということは、國が團結して充實な國力で抗戰していた于山國の國力の反 證である。また獅子を恐れたことは于山國の文化と國際交流の樣子を物語てくれる。 獅子というものは于山國はもちろん高句麗、百濟、新羅にもない。中國にもなく印 度にある猛獸であった。それを于山國が經驗することはあり得ない。それで怖がるはず もない。なのにそれを怖がり服屬したということは、于山國が國際交流などの方法を通 じて、文化や宗敎などを通じてそれを間接的に經驗したことになる。獅子というものは 空想の動物や靈魂を運搬する神の使者、佛法を守護する聖獸、または呪術的能力を發揮 する動物として知られていた。于山國は獅子の外形をみて以上のことを思いだし、それ を怖がったのでろう。つまり、威の侵略には耐えたが、獅子を媒介する文化的計略に騙 されたわけである。それは文化の差による敗北であったといえる。 于山國がそれくらい新羅と對戰できたのを考えると、于山國こそ强力な國家で、獨 自的くにであったことがわかる。只、鬱陵島のみを以て成り立つ國ではなく、周邊の諸 島を統合していた國であったと思われる。その統合の過程をへていたので國をも名乘っ ていたはずである。その一定の領域が獨自の秩序で統治されていたとみられる。新羅の 侵略に對抗していたことが何よりの證據である。その實情を認めたので新羅も國を付け__ て于山國と呼んでいたと思われる。その統合した周邊の島の中に獨島も含まれていたは ずである。 日本は獨島を竹島と呼びながら自國領であることをこじつけている。『三國史記』 の于山國の記錄に獨島のことが言及されていないことを言い譯にしてそこには獨島が含 まれていないと主張している。17世紀に鬱陵島/竹島が朝鮮の領土であることを認めたこ ともあるが、そのとき認めた領域には獨島は含まれていないということだ。しかし『三 國史記』などの記錄の于山國に獨島が含まれたことが明確である以上そのような主張は 成り立た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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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구만(南九萬)의 밀사(密使) 안용복(安龍福)

        權五曄 한국일본어문학회 2015 日本語文學 Vol.65 No.-

        對馬藩を相手にする領土紛爭を主導する南九滿は、對馬島藩の事實歪曲がその原因であること、江戶幕府との円滿な外交關係を妨げる原因であることを認知した。それは安龍福が提供した情報に影響された結果とも言える。對馬が幕府の意圖に反して鬱陵島の侵奪を企てていたと判斷した南九滿は、對馬藩を除いた外交路線の構想した。對馬藩以外の路線を通じて朝鮮の意圖や事實を幕府に傳えると領土問題を解決でき、兩國の円滿な關係も保てると判斷したのである。その時、安龍福が十一人の一行を結成し、使者を意味する船旗を揭げて鳥取藩を訪問した。對馬藩の非理を記錄した訴訟狀を提出し、幕府に傳達することを求めたのだ。それを接した幕府は訴訟狀の內容を鳥取藩に實行するよう命じたが、對馬藩がそれに反發すると、幕府は意を變えて廢却を命じた。結果的に安龍福は對馬を除外した別の外交路を開拓するという所期の目的は達成できなかったが、南九滿が構想した政策の實行に勤め成功させた。それは南九滿が構想した政策と安龍福が鳥取藩を訪問して展開した活動の內容が合致することで分かることである。ところがそれは朝廷の合意を得た政策ではなく、南九萬とその勢力が密かに推進した政策であった。成功した後に公表する予定のことであったのだ。當事、日本の朝鮮往來は釜山港に限られていた。日本人の亂れた出入りを防ぐためであった。その狀況で朝鮮が對馬藩以外のところを通じて使者を派遣することは日本側に言い譯を與える心配があるので、朝廷の合意を得がたかった。それで南九萬は安龍福を密使にして派遣したし、その內容を知らない官吏らは安龍福の死刑を主張した。後でその眞相を把握した領議政柳尙運の協力で安龍福は赦免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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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력경로(應力經路)에 따른 이방성(異方性) 점성토(粘性土)의 변형특성(變形特性)

        권오엽,Kwon, Oh Yeob 대한토목학회 1989 대한토목학회논문집 Vol.9 No.3

        과압밀성(過壓密性) 점성토(점성토)의 응력(應力)-변형(變形) 거동(擧動)은 일정한 응력수준(應力水準)에 이르기까지 거의 선형(線形)의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본 연구(硏究)에서는, 이러한 지반(地盤)의 응력(應力)-변형(變形) 거동(擧動)을 추정하기 위하여 횡이방성(橫異方性) 탄성론(彈性論)을 도입하고, 이 이론(理論)에 필요한 탄성정수(彈性定數)를 등가매개변수(等價媒介變數)로 대치(代置)하는 새로운 방법(方法) 제안(提安)하였다. 이 방법(方法)은, 등방퇴적면(等方堆積面)과 연직방향(鉛直方向)의 공시체(供試體)로 임의의 두가지 응력경로(應力經路) 배수시험(排水試驗)에 의한 연직변형도(鉛直變形度) 측정만에 의해서도 매개변수(媒介變數)가 결정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 방법(方法)으로 결정된 등가매개변수(等價媒介變數)를 횡이방성탄성론(橫異方性彈性論)에 적용하여 추정한 응력(應力)-변형(變形) 거동(擧動)을 실험치(實驗値)와 비교(比較)한 결과 대체로 부합된 결과를 얻었다. Lightly overconsolidated clays are commonly anisotropic, and exibit substantial ranges of approximately linear behavior at stress levels which do not produce yielding. The theory of cross-anisotropic elasticity is adopted to predict the stress-strain behavior of such an anisotropic soil. Equivalent elastic parameters $A^*$ and $B^*$ which express the relationships of stress and strain in the theory have been proposed. It is shown that constitutive relationships derived from the theory represents well the mechanical response of anisotropic so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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