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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조선시대 족보의 女性 등재 방식 변화-여성의 夫家 귀속과 다원적 계보의식의 축소-

          권기석 조선시대사학회 2019 朝鮮時代史學報 Vol.- No.90

          The descendants of women are not listed in the patrilineal genealogy. However, the descendants of daughters were registered in the early Joseon genealogy, and the ancestors of daughters-in-law were registered in the late Joseon genealogy. Apparently, all genealogical records of the Joseon Dynasty seem to constitute a marriage network with women as nodes.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find out that the early genealogy of daughters’ descendants implemented the kinship network covering all types of descent rather than the marriage network. Sons-in-law linked by marriage were listed before daughters-in-law also linked by marriage because of the practice of not recording women's names publicly in pre-modern Korean society. Sons-in-law’s name is usually listed instead of daughters’ name, but sons-in-law’s children, not daughters’ children, were not considered grandchildren and are excluded from the record. If a daughter’s only husband has a child and the child is not her biological child, she was recognized as having no descendants. The editors of genealogy in the early Joseon period were more interested in verifying daughters’ descendants than marriage relationship with sons-in-law’s family. If a son had more than one wife, the genealogy editors clearly recorded how many children each daughter-in-law gave birth so that they could identify their mother's ancestry. This was part of an effort to verify non-patrilineal descent rather than the marriage relationship with daughters-in-law’s family. Since the mid-18th century there have been many changes in the way women are listed. The mark on a daughter’s marriage order disappeared and the willingness to determine who was daughters’ descendant was weakened. The description of a woman who does not have children was changed from ‘muhu(無後)’ to ‘muyuk(無育)’. ‘Muyuk’ is an expression that implies the notion that women only contribute to nurture, and that the pedigree origin is in the father. In many cases, the remote ancestors of daughters-in-law were recorded. This was intended to represent the family of daughters-in-law and to establish a marriage network between the lineage groups based on patrilineal descent. 부계 위주의 족보에서 여성은 계보 연결의 종결점 역할을 한다. 그러나 16세기 이전의 內外孫 統合譜에서는 사위에서 외손으로 이어지는 異姓의 계보가 등재되었기 때문에 여성에서 계보가 끝나지 않았다. 17세기 이후 일반화되는 同姓譜에서는 외손의 등재 범위가 점차 축소되는 반면에 배우자(며느리)의 계보 정보가 풍부해졌다. 전기 족보에서는 딸이, 후기 족보에서는 며느리가 다른 성씨로 이어지는 네트워크의 연결점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당시 족보편찬자들의 관념도 그러했을지는 재고가 필요하다. 傍註의 내용이 극히 부실한 초기 족보에서 며느리(배우자)는 등재되지 못했고, 딸은 사위가 대신해서 등재되었다. 딸 대신 사위를 넣은 이유는 賤民 이외의 여성 이름을 隱諱하고 밝히지 않으려는 사회적 관습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사위의 등재가 반드시 딸과 사위 부부로 인해 발생한 혼인네트워크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 再娶 이상의 혼인을 한 사위인 경우, 그 자녀들 중 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만을 기재하고, 딸이 몇 번째 부인이었는지를 명시하고, 사위가 다른 부인에게서 자녀를 두었을지라도 딸과의 사이에서 자녀가 없으면 ‘無後’라고 표기하는 관행이 15세기 『성화보』에서부터 18세기에 간행된 족보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인 여성등재 방식으로 정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관행을 통해서도 사위의 이름은 딸의 대체표기였을 뿐이고, 실은 딸의 후손들인 ‘外派’ 혈통을 分辨하고자 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음이 확인된다. 며느리의 경우에 소생자녀수를 명시하여 자녀의 모변 혈통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여성 등재 방식에 있어서 18세기 이후부터는 적지 않은 변화가 감지된다. 첫째로 딸의 前室‧後室 표기와 며느리의 소생자녀수 표기 사례가 점차적으로 줄어든다. 둘째로 무자녀 여성의 ‘無後’ 표기가 ‘無育’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는 여성을 혈통적 所自出로 보지 않고 양육의 은공만을 인정하려는 관념의 소산이며, 결과적으로 부부의 후사가 남편의 부계 혈연으로 단일화되는 데 기여하였다. 셋째로 배우자에 대한 정보가 늘어나는데, 특히 同姓 중심으로 계보 기재가 축소되는 추세 속에서도 며느리의 四祖나 遠祖를 더 상세히 밝히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주목된다. 이는 며느리의 출신 가문을 나타내어 婚班을 드러내려는 의도로서 부계친족집단 상호 간의 혼인네트워크의 구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 정향 추출물의 항진균활성 및 항진균물질의 분리동정

          권기석,이흠숙,정석진,강성태 서울産業大學校 2005 논문집 Vol.54 No.3

          Eugenia caryophyllata extract was evaluated for its antifungal properties against two species of athlete's foot fungi, Trichophyton mentagrophytes and Microsporum audinii. The essential oil exerted a good antifungal activity against two athlete's foot fungi providing complete growth inhibition at concentration of 6.25%(v/v), which indicates that the activity of essential oil was as equivalent as amphotericin B. Also similar results are obtained by paper disc agar diffusion method. Eugenia caryophyllata extracts was sequentially partitioned into h-hexane, chloroform, ethyl acetate and water-souble fractions. Among four fractions, n-hexane fraction with a yield 89.4% (w/w) showed the highest antifungal activity against some athlete's foot fungi. Antifungal compounds in n-hexane fraction were further purified by using silica gel open column chromatography and thin layer chromatography with a final yield of 23.3% (w/w). Chemical structure of the purified antifungal compound was characterized as eugenol by instrumental analysis such as EI-MS, ¹H -NMR, ^(13)C -NMR.

        • 식용유지로부터 글리세롤리스반응을 이용한 디글리세리드의 효소적 생산

          권기석,권신애,강성태 서울産業大學校 2005 논문집 Vol.54 No.3

          For the production of diglyceride(DG) edible oil and glycerol(GL) were reacted in the presence of lipase. Lipase P from Pseudomonas sp. was selected among commercial lipases on the basis of triglyceride(TG) conversion and DG content (96) during glycerolysis reaction. More than 45% of DG was obtained by reacting GL and some edible oil such as soybean oil, cotton seed oil, corn oil in the presence of lipase P. However, A little lower content of DG was obtained by mixing each edible oils and GL in the ratio of l.'l(w/w). Temperature shift effect was investigated for the production of diglyceride. After initial incubation at 37°C for 12hr, incubation temperature was shifted to -2~50°C for 60hr. TG content and FFA content were little changed in the ranges of above 25 °C. And DG purity was increased up to 55% with the increase of temperature. Below the temperature of 15°C, the content of MG was increased, whereas both DG content and TG content was decreased with the increase of temperature. The combined use of lipase AK/lipase P could make the required amount of lipase P reduce by obtaing the same DG content in the product. Maximum yield of approximately 46.3% DG(DG purity: 55.9%) was obtained by adjusting molar ratio of GL/TG and water content of GL to 0.5'-1 and 4.4%, respectively.

        • KCI등재

          과학과 기술의 공진화 경영을 통한 거대과학의 추격: 천문우주과학과 핵융합연구 사례 비교

          권기석,김시은 한국경영교육학회 2018 경영교육연구 Vol.33 No.2

          [연구목적] 본 연구에서는 한국과 같이 과학 추격에 성공하고 있는 국가의 맥락에서, 과학과 기술을 구분하여 양자의 상호작용을 통한 공진화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천문우주과학과 핵융합연구의 진화 사례를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국가 및 조직 수준에서 과학의 경영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연구방법] 본 연구는 과학의 체제론, 과학과 기술의 상호작용 등에 대한 관련 이론들, 기존에 수행되었던 한국의 기술혁신 연구들과 논의를 검토하여 과학과 기술의 공진화 모델을 도출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천문우주과학과 핵융합연구와 관련된 다양한 문헌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였다. [연구결과] 과학과 기술의 공진화 모델을 바탕으로 하여, 천문우주과학과 핵융합연구의발전을 설명하였다. 또한 두 거대과학의 발전과정 동인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였다. 공통점으로는 정부의 지원사업, 기기 확보와 기술개발의 중요성, 인력의 양성, 해외 협력이과학과 기술의 상승작용의 토양으로 작용하였다. 한편으로 단계별 진화 및 과학시스템 변화의 동인, 해외 교육훈련의 역할, 과학과 기술의 상호작용의 방향의 비대칭에 있어 차이점을 발견하였다. [연구의 시사점] 국가 과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인으로 정부의 강력한 지원, 첨단 기기의 확보, 연구인력의 팽창, 국내외 기술개발 협력이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과학의 발전을 위한 차별화된 경영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과학적 역량이구축되지 않은 단계에서 기술적 돌파구를 이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역으로 기술적 역량은 다음의 과학적 단계로 나아가는 데에 중요하였다. [Purpose] This research suggests a co-evolutionary model between science and technology in South Korea. we apply this model to the cases of astronomy and space science and nuclear fusion research in South Korea. Based on the analysis, some policy implications are put forwarded for policy practitioners in the fields of basic sciences. [Methodology] We have carried out a literature review on system approach to science, interaction between science and technology, and the Korean innovation system. Based on this, a co-evolutionary model of science and technology has been established. In order to analyze two cases in South Korea, a comparative case study has been adopted. [Findings] We have found that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in the co- evolutionary process of the science and technology in the field of astronomy and nuclear fusion research. In terms of similarities, governmental R&D program, securing research equipment, and provision of human resources are critical for the co-evolution. Regarding differences, astronomy is more dependent on the solving scientific questions, while the main drivers of the nuclear fusion research is the scientific solution of technical problem. [Implications] It is very effective to manage technology and science separately in R&D organizations in order to strengthen scientific capability. Moreover, scientific capability is a prerequisite condition for disruptive innovation of technology. Inversely, technological capability is also a necessary condition for scientific exploration. Scientific and technical capability in a certain stage is an important for a leap to a next stage. Therefore, the governments’ institutional efforts are essential in order to accelerate this transition.

        • KCI등재

          국내외 기술규제연구의 구조와 동향 분석

          권기석,김명순,이광호 한국기술혁신학회 2020 기술혁신학회지 Vol.23 No.1

          신기술의 시장도입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술규제는 국가혁신체제의 제도적 기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였다. 따라서 기술규제연구의 현황을 분석하여 향후 연구의 발전방향과 정책적 시사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에 본연구에서는 국내외 기술규제연구 논문 15,336건의 서지데이터를 수집하여, 빈도분석, 사회연결망분석 등의 계량서지분석을 수행하였다. 분석 결과, 국내 연구 활동은 초기에 감소하다가 최근에 다시 증가한 반면, 해외 연구활동은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국내 기술규제연구는 주로 법학분야에서 이루어지지만, 해외에서는 여러 공학 분야에서 고르게 이루어졌다. 연구의 주제와 내용에 있어서, 국내에서는 특정 사회적 이슈나 세부 정책 내용과 관련된 규제연구가연도별로 급격히 변화하면서 진행되었다면, 해외에서는 학술적 관점이 유지되면서 기술규제의 인프라나 기반과 관련된 주제어가 꾸준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기술규제연구에 있어서는 주로 앵글로색슨 국가를 중심으로연구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우리나라는 이들과 주로 협력을 진행하고 있었다.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몇 가지 정책적시사점을 제시하였다. 첫째, 기술규제연구의 기반을 법학 중심에서 벗어나 융합적 연구활동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지금까지의 연구 내용을 기반으로 공통적인 기술규제의 이론적 요소를 도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적절한분석 틀을 구축하여야 한다. 셋째, 단기 대응적 이슈 중심의 연구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기술규제연구의 학문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에 노력해야 한다. As the speed of adopting new technology accelerates, the importance of technological regulation has been increased in the national system of innovation as an institutional infrastructure. In this vein, this study has analysed a bibliometric data of 15,336 papers in the field of technological regulation studies. According to the analysis results, we have found that domestic researches focus on short-term issue, whereas overseas researches are firmly based on theoretical frames for technological regulations. Moreover, domestic researches have been carried out by the scholar in the field of legal studies, while various researchers in the engineering fields are involved in overseas researches in technological regulations. At the national level, the Anglo-Saxon countries are dominating those researches in the international collaborations. Based on these findings, we put forward a few policy implications. Firstly, we have to encourage multidisciplinary approaches for technological regulation researches. Secondly, idiosyncratic characteristics of the Korean context are required to be reflected on the establishment of theoretical approaches in technological regulation researches. Thirdly, efforts for sustainable institutional settings for technological regulation researches are needed to be made instead of struggling with short-term issues.

        • 한국 이공계 대학교수의 특성과 산학협력의 방식

          권기석,한동성,한승환 한국행정학회 2009 한국행정학회 학술발표논문집 Vol.2009 No.-

          본 연구를 통해 한국대학의 산학협력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학교수의 인적, 연구역량, 환경적 특성 중 어떤 특성과 관련을 맺고 있는지 밝혀냈다. 이를 바탕으로 어떤 대학 교수가 어떤 방식으로 산학협력에 참여하고 있는지 파악하였으며 양자간의 관계를 밝혔다. 결과에 의하면, 인적 특성에서 남성이고, 경력이 길고, 응용성이 강한 분야를 전공할수록 환경적 특성에서는 지역의 연구개발 지출이 많고, 소규모 단과대학의 큰 실험실에 근무하는 교수일수록 산학협력채널이 활성화되고 상업적 채널에 개입할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특허 수로 측정된 응용적 연구역량은 산학협력 채널의 활성화와 상업적 모드의 참여에 중요한 요소인 반면, 논문 수로 측정된 과학적 연구역량은 유의미하지 않거나 부의 방향으로 유의미한 관계를 보여주었다. the first time simultaneously. Affected or zombie computers for themselves could attack the internet sites of important public organizations and agencies The first attack was that affected or zombie twenty three thousand PCs in South Korea at 6 p.m. of July 7, 2009 and two thousand PCs abroad helped to attack the websites of important government organizations and agencies. The second attack happened on July 8, 2009. Sixteen thousand zombie PCs were used at the second attack. The third attack was at 6 p.m. of July 9, 2009. Hard diskettes and data in ``zombie PCs`` which were affected by DDoS were destroyed and zJuly 10, 2009. Zombie PCs with malicious codes exploded for themselves and zat least thirty thousand to al ost sixty thousand zombie PCs. 7·7 Cyber Attack was happened by P Company in Seoul and D Company in Busan, South Korea. The two companies were consisted of file sharing sites. Methods for protection of government organization`s websites and zcyber attacks might be considered as measures for level of citizen, for level of government organization, for state level and for inter-state level. Developed countries like the US and Japan el ocated 10 percent of the total budget even 10 years ago. South Korea was labeled an internet powerhouse, but ironically spent only 1 percent of its entire annual budget on cyber secuecty. Budget for internet security in South Korea should be increased. All owners of virus-infected computers should pay immediate attention to cleaning up their operating systems.

        • KCI등재후보

          正祖 御定‧命撰書의 간행과 국가적 역량의 효과적 활용

          권기석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 장서각 Vol.- No.45

          During his reign, King Jeongjo led a massive compilation project, taking care of the entire process of writing, proofreading, and distribution of the published works. Among them, not only central government offices such as Gyujanggak (奎章閣) and Gyoseogwan (校書館), but also local administrative offices including Gamyeong (監營) were responsible for the publication of books and their nationwide distribution. In this paper, I categorized by subject Eojeongseo (御定書) and Myeongchanseo (命撰書), the works compiled by Jeongjo, recorded in Gunseo Pyogi (群書標記) and then investigated into various publication methods used by them. As a result, even within the same subject classification, different publication methods were used depending on the characteristics of the individual books. The wider the use of books and the greater the need for long-term transmission, the more likely they were to choose printing rather than transcribing. The major areas of publication were legislation, justice, ceremonies, literature, literary collection, biographies, and military science. As the demand for book distribution grew, woodblock was preferred than movable type as a means of printing, and when demand for book publication was very high, both moveable type and woodblock were used. As for the readership of Eojeongseo and Myeongchanseo, they can be categorized into four: royal families, government officials, private Confucian scholars, and the common people. The printed version was produced mainly for the royal family, government officials, and the people. Meanwhile, there are many printed copies of books targeted for private Confucian scholars, not limited to bureaucrats, so we can confirm that King Jeongjo's intention of publication was to train people of letters. A number of specialized books were also printed, which were mainly for working-level officials. Books to be widely distributed to local people were often first published in moveable type and then reprinted using woodblock. Since Eojeongseo and Myeongchanseo were compiled by the king, the central government was in charge of writing and editing these works. However, investigation into the place of publication found that the publishing process was done in collaboration between the central and local governments. The division of printing to local government offices was basically aimed at making books widely available to the mass, but it was also intended to preserve woodblocks for a long time in each province. Meanwhile, some technical books were produced and printed by related government offices. This practice was intended to effectively match supply with demand for such works. 정조는 재위 기간 중 방대한 편찬사업을 이끌어가면서 저술과 교정, 그리고 頒賜까지 작업의 전 과정을 직접 관여하며 전국적 규모의 간행 역량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群書標記 에 수록된 御定·命撰書를 주제별로 분류하여 간행 방식 선택의 추이를 살펴보았는데, 광범위한 활용성과 장기 전승의 목적성이 큰 분야일수록 刊本의 비중이 컸고, 그러한 분야로 법제·사법, 의례, 문학, 문집·유사·실기, 병학·무예 등이 있었다. 보급의 수요가 커질수록, 활자보다는 목판을 선택하였고, 수요가 매우 큰 경우 양자를 병행하기도 하였다. 어정명찬서의 독자층을 분석해 본 결과, 왕실, 관원, 民人을 대상으로 한 경우 간본의 비중이 높았고, 일부 실무 관료에게 집중적으로 보급할 전문서도 다수 간본으로 나온 것이 확인된다. 지방의 민인에게까지 광범위하게 보급하고자 한 서적은 활자본과 번각 목판본이 병행되었다. 어정명찬서는 중앙정부에서 저술되었으나, 간행처를 분석해 보면 인출과 보급은 중앙과 지방의 협업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지방의 간행 분담은 기본적으로 널리 보급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중앙의 수요를 분담하거나 해당 지역에 板木을 배치하여 오래 보존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일부 전문서적이나 병서를 관련 관청이나 군영에서 인출을 담당하도록 하여, 간행처와 활용처를 일치시키고 효과적 서적 보급을 기대하기도 하였다.

        • 공유인간(Sharing Humanity) 토론문

          권기석 미래학회 2019 미래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Vol.2019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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