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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 제네바의 목양방식을 통해 본 교역자의 위상: 교회의 규례들(1541)을 중심으로

        공헌배 ( Hun Bai Kong ) 한국조직신학회 2011 組織神學論叢 Vol.0 No.29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lluminate ministers` authority, by looking into their pastoral methods done in the era of Calvin at Geneva, through an article "Draft Ecclesiastical Ordinances (1541)." Today, one of the factors to conflicts in Churches of South Korea is often seen between pastors and elders. But this is completely different from pastoral methods in the 16th century at Geneva, Switzerland. In the 16th century at Geneva, elders took one-year temporary job, and ministers were able to manage churches in cooperation with deacons, so was the structure formed. Thus, ministers and elders seemed to have little cause to frictions related to tasks in churches. At that time, elders at Geneva were appointed by the municipal assembly to be elected through indirect elections, not by church members through direct elections. Elders` duties were accomplished mainly from connections with the municipal assembly. According to Calvin`s intention, churches must submit to ministers` disciplines, and ministers` authority was predominant in their sermon proclamations. Ministers were teachers who teach layperson, they should not only have the authority as spiritual parents but also be ``the passage of blessing`` as ministers of God. In the 16th century, ministers at Geneva were both governors and judges. However, today, some in South Korea tend towards misunderstanding ``all people priests theory`` as ``all people ministers theory``, which weakens pastors` authority. But this is totally different from pastoral methods in the 16th century at Geneva, Switzerland. Calvin sufficiently acknowledged ministers` authority.

      • KCI등재

        초기 한국 장로교회에서의 임기제 실행 가능성에 관한 연구

        공헌배 ( Hun Bai Kong ) 한국조직신학회 2013 組織神學論叢 Vol.0 No.35

        본 연구의 목적은 초기 한국장로교회에서 교회직원의 임기제가 실행되었을 가능성을 찾는 데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칼빈파 교회들에서는 거의가 장로와 집사의 임기제를 실행한다. 그러나 유독 한국에서는 임기제만큼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초기 내한(來韓)선교사 곽안련에 의해 번역되고 소개된 핫지(J. A. Hodge)의『교회정치문답조례』에서는 장로의‘윤번시무제(輪番視務制)’를 주장함으로써 사실 상 교회직원의 임기제를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한국의 장로파 교회가 임기제에 있어서만큼은 예외’였다는 주장이 그다지 타당하지 않다. 물론 그 당시의 실지 사태가 어떠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연구를 해보아야 하겠지만 원칙에 있어서는 교회직원(장로)의 임기제가 가능하였음을『교회정치문답조례』는 밝히고 있다. 한국의 장로파 교회는 서구의 개혁교회에 비교할 때 온전하지 못한 형태의 교회정치를 실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초기 한국 장로파 교회의 선교적 상황 때문이었다. 이로 인한 제도적 미숙함이 광복이후에는 오용(誤用)적 사태를 낳기도 했는데, 교회정치에 있어서 그 대표적인 예는‘임시목사 제도’이다. 초기의 조례를 따르면 목사와 장로와는 분명하게 구분하였다. 초기 한국 장로파 교회에서는 목사들의 권위가 장로들의 권위보다 높았다. 하지만 광복 이후 교파가 갈라지면서 소위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한 통합 측이나 기장 측에서는 장로들의 권리가 강화된 듯하고, 보수진영에서는 목사들의 권위가 보다 더 강한 듯했다. 이는 보수적 교파들이 일제 강점기의 한국장로파 교회의 정치행태를 관습적으로는 유지할 수 있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find the possibility of ‘Term of Office(term of validity)’ of churches` officers(spiritual rulers) in Korean Presbyterian Church. Almost Reformed Churches in Europe or the United States have been executed the Term of Office of Elders and Deacons. In contrast, Korean Churches have been not taking Term of Office of churches` officers. But according to ordinances(What is Presbyterian Law, 1917), which was translated and introduced by C. A. Clark, missionary in early Korean Church, on ‘Term of Office(term of validity)’ of church` officers in Early Korean Presbyterian Church, they explicitly set forth the bases for “Elders` term of validity by rotation(a reasonable space).” Therefore it is unconvincing to claim that ‘Korean Presbyterian Church was an exception to term system.’ More research is needed, however, to determine how circumstances were of the time, but the possibilities of term of office of churches` officers(Elders) showed in What is Presbyterian law(1917) in principle.

      • KCI등재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통해 본 신정론 비판

        공헌배 ( Hun Bai Kong ) 한국조직신학회 2015 組織神學論叢 Vol.0 No.42

        본 연구의 목적은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를 중심으로 기독교에서 사용해 왔던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의 언어들을 비판하는 데 있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으로 할 때 기독교의 신정론식 주장은 엉터리였거나 헛소리였음이 드러났다. 그 이유는 신정론이 ‘론(論)’으로 불리는 이성적(理性的) 질문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의 견해에 의하면 세계 내의 현(現) 사태들에 대해서는 원인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연에는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비트겐슈타인은 자연과학적 정합성으로 설명되어왔던 소위 ‘자연의 법칙’조차도 법칙이 아니며, 자연의 법칙 같은 것들은 오직운 좋은 우연들의 반복일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간신히 이끌어 낸 단순한 몇 가지의 법칙 내지 인간들의 논리일 뿐이다. 인류는 환원 가능성 공리나 확률 및 통계적 사고를 신뢰해 왔다. 하지만 환원 가능성의 공리나 통계는 논리가 아니다. 소위 실험이나 경험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귀납의 방법도 심리적 정초(定礎)일 뿐이다. 그래서 세계 내의 현(現) 사태들에 대한 원인이나 특성들이 논리철학에서는 말해질 수 없는 헛소리이다. 신정론이 성립되려면, 세계 내의 현 사태들의 원인이 신의 의지(意志)에 있을 때 타당하다. 하지만기독교의 신정론은 이와 같은 것들의 논리적 증명 없이, 신이 창조하셨고, 섭리하신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는 근본 전제에 대한 증명 없이 선언적으로 주장해왔기 때문에 비(非) 논리이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에서는 이와 같은 기독교 신학자들의 신정론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신정론은 그림언어의 밖에 있다. 결국 이것은 말해질 수 없는 영역에 있어야 한다. The purpose of the study is to criticize the languages of theodicy, which have been used on Christianity focusing on Ludwig Wittgenstein``s logic philosophy. Based on Ludwig Wittgenstein``s Logic Philosophy, Christian theodicy turned out gibberish or nonsense. The reason is because theodicy starts from intellectual question called ‘argument.’ However, according to the views of Wittgenstein, we wouldn``t know about the reason for the present situation in world. Besides, there are no rules in nature. In other words, Wittgenstein deemed that even the so-called ‘a law of nature’ explained as scientific coherence is not a rule. Things like a law of nature repeat not only just coincidences fortunately, but also simple law drawn by human or human logic. Mankind has placed his trust in axiom of reducibility, probability or statistical evidence. But either axiom of reducibility or statistics are not logic. And we regard the procedure of induction as the simplest law that can be reconciled with our experiences. This procedure is not at logic basis but psychological one. Therefore, the causes or characteristics of the current situation in world are nonsense or gibberish in logic philosophy. To formulate theodicy, it would appear quite reasonable when we find the causes of the current situation in world in God``s will. But the Christian theodicy premised a remark that ‘God created and made providence’ without logical proof about these matters. This is illogical because it was asserted declaratively without proof of the fundamental premises. For this reason, such Christian theodicy cannot be accepted in Wittgenstein``s logical philosophy. As a result, theodicy is out of picture language. It should exist in the realm which it cannot be said.

      • KCI등재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통해 본 부활

        공헌배 ( Kong Hun-bai ) 한국조직신학회 2017 組織神學論叢 Vol.0 No.47

        본 연구의 목적은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놀이 이론을 담고 있는 『철학적 탐구』를 통하여 기독교의 진술인 부활을 어떻게 여겨야 하는지를 분석하는 데 있다. 언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개념의 공유다. 하지만 표준 예의 적용으로 말미암아 신학자들은 그 어떤 사태를 해석함에 있어서 영향을 받았다. 이와 같은 신학은 언어의 혼란을 가중화함으로써 사고(思考)에도 혼란을 가중화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주장한 “문법으로서의 신학”에 따르면, 신학의 언어에도 개념의 공유가 필요하다. 그래야 언어놀이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학자들은 부활에 대한 증언을 이성적 판단에 의해 판별함으로써 언어의 혼란을 가중 화 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 철학 논고』대로 하면 부활은 체험될 수도 없고, 말해질 수도 없다. 그리고 신학자들의 표준 예(paradigm) 적용은 현대인들의 인식에 적합한 자연과학적 사고나 환원가능성의 공리 그리고 통계적 사고, 역사적 해석 등을 고려함으로써 성경에 나타난 `부활`이라는 말을 혼란하게 했다. 그래서 언어의 혼란을 가중화한 신학적 진술들은 사고의 혼란을 가져온다. 그래서 이는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문법으로서의 신학을 훼손한다. 기독교의 진술인 육의 부활은 경험자들의 진술에 의한 증언들로써 그 유형은 심리적이거나 사적(私的)인 말들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에 의하면, 그와 같은 주장들은 이해될 수도 없고, 언어로 표현될 수도 없다. 결국 그것은 심리적 발성(發聲), 즉 소리이다. 그래서 이는 언어가 아니다. 따라서 육의 부활이라든가, 영의 몸으로의 부활은 언어의 영역이 아니라 신비(神秘)의 세계이며, 신앙(信仰)의 세계이다. The object of this study is to analyze how we think of the resurrection, the Christian statement, through Philosophishe Untersucbungen that includes L. Wittgenstein`s language game theory. The important thing in a language is the sharing of concept. But in consequence of on application of paradigm, theologists are influenced in interpreting the a situation. The theology was weighted the confusion of thinking through weighting the confusion of the language. With regard to `theology as grammar` L. Wittgenstein asserted, theological language is also in need of concept share. And then we can play language game ordinarily. But theologists weighted the confusion of the language as judging the resurrection in the Bible by rational judgment. According to L. Wittgenstein`s Tractatus Logico Philosophicus, the resurrection can`t be experienced, nor to be said. As theologists applying paradigm, it leads to confusion on the meaning of resurrection in the Bible, because of the perception of modern human being: scientific thinking or axiom of reducibility and statistical thinking and historical thinking, and so on. Therefore theological writings bring upon the confusion of thinking caused by the confusion of language. It is also damage `theology as the grammar` spoken by L. Wittgenstein. The Christian Doctrine a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is private words on the testimony through the statement by the experienced. The typology is psychological or personal words. According to L. Wittgenstein`s Philosophishe Untersucbungen, the allegations can`t be understood nor expressed in language. In conclusion, it is psychological vocalization, namely voice. It is not language. In other word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or the soul is not the territory of the language but world of religious faith as well as mystery.

      • KCI등재

        예수, 옛 계약의 완성자인가 새 계약의 창시자인가?

        공헌배(Hun-Bai Kong) 한신대학교 신학사상연구소 2019 신학사상 Vol.0 No.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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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서양의 기독론들은 그 시대의 행태를 따라서 볼 때에는 괄목할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의 기독론들은 고대 1세기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느꼈을 실존상 (象) 보다는 서구인들의 경험에 기초한 신학의 주제로 역사적 예수를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설령 오스카 쿨만이나 위르겐 몰트만이 ‘유대적 기독론’을 인식했다고 할지라도 구약을 충분하게 고려하지 못한 약점들이 발견될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일어난 ‘제3시대의 역사적 예수 연구 (third quest) ’는 분명 괄목할 만한 시도였다. 그러나 이 시도의 경우에도 예레미아스의 주장 중, 한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의 육성’ (Ipsissima vox Jesu ) 에서 드러나는 ‘아바’ (ABBA)였다. 예수가 유대교적이거나 구약과의 연속성이 인정되려면 그가 불렀던 ‘아바’ (ABBA)의 정체를 찾아야 한다. The aim of study is to show the modern christology—christology that opposes traditional Christology—is still deficient of Jewish theism. It is true that modern western Christology is unique to the era. Despite the fact, Christology in the twentieth century mostly provides the understanding of Jesus in a way that reflects western experiences, not of Jesus in a more genuine way that reveals how first century Palestinians might have felt or perceived him. Although Oscar Cullmann and Jürgen Moltmann recognized Jewish Christology, they seemed not to consider the Old Testament deeply. In this vein, the third quest was a great attempt that occurred after the 1970s. However, the movement should have taken into account one of Jeremias’ arguments about ABBA which was uncovered in Jesus’ true voice (Ipsissima vox Jesu) . We should discover ‘ABBA’ as used by Jesus in order to either characterize him in Judaism or connect him to the Old Testa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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