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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同伴者型 설화 속의 元曉 - 해골바가지 사건의 새로운 해석을 중심으로 -

        고운기 열상고전연구회 2018 열상고전연구 Vol.61 No.-

        원효의 생애에서 요석공주와의 만남은 파계였고, 도당행(渡唐行)의 중단은 포기였다. 파계와 포기가 실패로 연결되지 않고 그의 생애와 구도의 길을 한 차원 높이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는 ‘기뻐 날뛰면서(歡喜踊躍) 사방에 노닌다(遊於四方)’는 경전(經典)의 가르침을 ‘모든 마을 모든 부락을 돌며 노래하고 춤추면서 다녔는데, 노래로 불교에 귀의하게’ 하는 것으로 실천하였다. 『삼국유사』의 원효 관련 기사는 그런 삶을 구체적으로 그린 것이다. 핵심은 동반과 패배였다. 누군가와 늘 동반하는 사람으로 그려진 원효는 늘 지는 쪽이었다. 지는 자는 동행자와 대응한다. 원효는 지는 자의 위치에서 동행자의 역할을 완성한다. 그리고 끝내 함께 이기는 자가 된다. 일연(一然)이 『삼국유사』에 그린 원효이다. 문제는 해골바가지 사건이다. 일연은 이 이야기를 싣지 않았다. “마음 밖에 법이 없으니 어찌 따로 찾으리오.”라는 매력적인 선언 때문에 이 이야기의 전승력은 막강하다. 그러나 나는 경전의 변주된 원효의 이 선언이 전승의 과정에서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본다. 일연도 그렇게 보았던 것 같고, 무극(無極) 또한 원효가 두 차례 모두 의상과 동행했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다만 흔한 구절이라도, 깨달음의 정황이 실감나게 정합(整合)할 때, 전승은 강력한 배후의 힘을 얻는다. 원효가 등장하는 어떤 일화보다 해골바가지 사건은 그 같은 조건을 갖추었다. 이광수와 김선우는 각각 『원효대사』와 『발원』에서 해골바가지 사건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이광수는 이 일이 중국에서 일어난 것으로, 김선우는 꿈속에서 나타난 것으로 쓴다. 허구로 보았을 가능성의 암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해골바가지 사건은 실제 같은 허구, 허구 같은 실제의 감동을 주고 있다. 원효가 만나는 다중의 동반자 구조가 화학적 반응을 만들어내는 자리에서 그는 새로운 동반자와 만난다. 그것은 바로 당대의 민중이다. It means apostasy that Wonhyo(元曉) meets Yoseok(瑤石) princess, and give up that he stops going to China in Wonhyo’s life. But the apostasy and give up are not connected to failure, they work as occasions to raise his life and seek after truth. ‘Singing and dancing all around the village, he came to believe in Buddhism with songs’. That’s why he practiced the lesson ‘dancing about for joy and playing around’ in the Buddhist scriptures. The articles about Wonhyo in <Samkukyusa(三國遺事)> are what embodied his life. The keywords are accompany and loss. Wonhyo, who is described to accompany by someone, loses all the time. The loser corresponds to the partner. Wonhyo completes the partner’s role in the position of loser. And finally he becomes the winner together. That’s what Ilyeon(一然) describes in Samkukyusa. The skull affair is the key. Ilyeon didn’t include this story. “If with true mind, how can it be somewhere?” With this attractive saying the story is handed down powerfully. But I think Wonhyo’s varied saying in the Buddhist scriptures was possible to be made newly while being handed over. Even if it’s common phrase, when the condition of enlightenment makes sense with reality, it is handed down to others powerfully. The skull affair has better condition than any other anecdote. Lee Kwang-su(李光洙) and Kim Seon-woo(金宣佑) included the skull affair individually in <Wonhyo Daesa(元曉大師)>, and <Balwon(發願)>. Lee Kwang-su wrote it as the affair happened in China, but Kim Seon-woo, in dream. It suggests the possibility of fiction. However in the other aspect of the story in <Samkukyusa> the skull affair is impressive as the fiction like reality, and the reality like a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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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소재로서 원효 이야기의 재구성

        고운기 열상고전연구회 2016 열상고전연구 Vol.49 No.-

        신라 승려에게 성인 만남은 절실했다. 성인 만남은, 다소 세속적인 표현이기는 하나, 득도(得道)의 확정이라는 점에서 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 여기에 또 다른 의의를 부여할 여지가 있다. 그것은 불교에 대한 주체적 인식이고, 본지수적(本地垂迹)과 불국토 사상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귀일(歸一)하는 사람이 원효(元曉)이다. 원효에게는 생애 동안 두 번의 선언이 있다. 첫째, 요석공주를 만나 설총을 낳을 때, ‘하늘 괴는 기둥을 자르겠다’고 한 것. 제1선언이다. 둘째, 의상과의 도당행(渡唐行) 중 홀연히 돌아서며, ‘마음 바깥에 법이 없다’고 한 것. 제2선언이다. 순서는 파계 이후 도당(渡唐)이 이어지는 것으로 본다. 도중에 돌아온 원효는 소성거사(小姓居士)라 칭하고 거리로 나섰다. 무애행(無碍行)은 원효에게 궁극의 깨달음이다. 두 번의 선언 끝에 무애행으로 이어지는 원효의 삶은 생전사후의 평가가 사뭇 다르다. 꺼리는 시골 승려에서 성인(聖人)의 반열로 승화한다. 그 변곡점은 중국과 일본에서의 높은 평가 그리고 그것이 신라 안으로 유입되는 때에 맞춰진다. 진정한 평가란 이렇듯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통해 결정적으로 원효의 지위를 확인해 놓았다. 13세기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시대에 일연은 중국을 보되, 불교를 생각하되, 바람 앞의 등불이 꺼지지 않으려면 취해야 할 자세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원효의 발견이었다. It is acute for a priest of Silla as for the encounter of the saint. It is secular expression, but has the value that I cannot abandon at the point called the decision of the profit degree. The person that we are united into one eventually here is Wonhyo(元曉). In Wonhyo, there is 2 degrees declaration. During the life of Wonhyo there are two declarations. First, birth to Seolchong(薛聰), “I will cut the pillars supporting the sky.” Second, turn around go to China, he said, “There is no law on the outer mind.” Returned on the way, Wonhyo went to the town. It is a start of Muaehaeng(無碍行). 2 degrees declaration, life of Wonhyo leading to Muaehaeng again are totally different in a post mortem evaluation during the lifetime. He sublimate in a group line of the saint from a priest of country. The point of inflection is the time when high evaluation and that of China and Japan flow in Silla society. With the genuine evaluation, It needs time in this way. There is not the person that one of Wonhyo is dramatic, and one of a life of Wonhyo does not have a dramatic 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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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申維翰의 海游錄 재론ㆍⅡ ― 필담창수집 『桑韓星槎答響』과의 대비를 중심으로

        고운기 열상고전연구회 2013 열상고전연구 Vol.37 No.-

        이 글에서는 『桑韓星槎答響』을 통해 『海遊錄』의 이면을 살펴보았다. 『桑韓星槎答響』은 己亥年(1719) 사신의 행렬이 돌아오는 길에 벌써 大坂에서 출판된 것으로 주목을 받은 책이다. 우리는 여기서 申維翰이 써서 남긴 시를 발견하고, 제술관으로서 거리낌 없이 불교에 관해 논의한 내용과, 군신간 충의가 도드라지는 고사에 儒者로서 보인 관심을 확인한다. 이 글에서 처음 그 내용이 소개되는 『桑韓星槎答響』은 신유한을 비롯한 제술관과 서기 등이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일본의 館伴과 나눈 창화 기록이다. 對馬島에 도착한 뒤 6월 29일의 첫 대면부터 8월 19일 赤間關까지이다. 『桑韓星槎答響』은 月心이 주도하여 출판되었다.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창화한 작품을 신속하게 정리하여 출판에 부친 월심의 노력은 가상하다. 아마도 신유한 등 사신 일행이 3개월 뒤 오사카로 돌아왔을 때 보여주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고 보인다. 월심과 창화한 신유한의 시는 5題 9首 실려 있다. 같은 기간의 『해유록』에 신유한은 3題 27首를 실었다. 두 책에 겹치는 시는 한 편도 없다. 『桑韓星槎答響』의 5題 9首를 통해 두 사람이 창화한 시를 볼 때, 실제 신유한이 그의 시에 대해 내린 평가가 『해유록』에 기록한 것처럼 낮다고만 할 수 없을 듯하다. 다소 인상적인 평가를 남겼을 뿐, 창화하는 자리에서 아주 무성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리어 입국 전 갖고 있었던 선입관이 월심을 통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보인다. 신유한과 월심 사이에 나눈 장문의 필담은 불교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시처럼 이 필담도 신유한은『해유록』에 싣지 않았다. 그러나 신유한의 불교 논의는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통신사행이 이어지는 동안 금기시한 것 가운데 하나가 불교 논의였다. 이런 분위기는 신유한의 사행 길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桑韓星槎答響』의 편찬자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실은 데에는 그런 희소성이 한몫했으리라 보인다. 赤間關의 고사는 『해유록』과 『桑韓星槎答響』에 같이 나온다. 이 기사는 상대 관반과의 필담도 아니고 창수시도 아니다. 저들의 대화 속에 나오는 한 부분을 신유한이 얻어 옮겨 놓았을 뿐이다. 『桑韓星槎答響』에 실린 8題 10首의 시를 신유한은 이 가운데서 5수만 『해유록』에 옮겨 적었다. 유교적 군신관계에 익숙한 신유한에게 이 사건은 매우 친숙하게 다가왔다고 보인다.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는 일은 칭송하고, 그로 인해 곤궁한 처지에 몰리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이다. 월심은 신유한이 이렇듯 관심을 보인 데 고무되어, 『桑韓星槎答響』을 편찬하며 책 끝에 붙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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