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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미펜에 저항성을 보이는 다낭성 난소증후군 여성들에 대한 메트포민 치료의 효과

          고상현,이상훈,Ko, Sang-Hyeon,Lee, Sang-Hoon 대한생식의학회 2001 Clinical and Experimental Reproductive Medicine Vol.28 No.4

          Objective : This study was performed to investigate the effect of metformin therapy on ovulation induction & pregnancy rate in clomiphene citrate-resistant PCOS women. Method: This study used a randomized, single-blinded, case-controlled methods. Total study group consisted of 21 women who showed clomiphene citrate-resistant parttern on previous ovulation induction cycles. Patients of metformin group received metformin 500 mg three times daily, for 7 weeks. Control group received none. Metformin group was consisted of 10 women and control group was consisted of 11 women. Then clomiphene was administrated at daily 50 mg for 5 days to both groups. Clomiphene dosage was increased to daily 150 mg until ovulation was occurred. Before and After metformin treatment, blood samples for measurement of insulin, glucose, steroids were obtained. Results: In the metformin and control groups, 6 of 10 women (60%) and 2 of 11 women (18%) ovulated. And 4 of 10 women (40%) and 0 of 11 women (0%) conceived. Comparisons between the groups were significant. Conclusion: In PCOS women who are resistant to CC, metformin use increased the ovulation rate and pregnancy rate from CC treatment, significantly.

        • SCOPUSKCI등재후보

          과배란유도에서 GnRH Antagonist (Cetrorelix) Single 및 Multiple Dose Protocol의 임상적 효용성에 관한 연구

          고상현,김동호,배도환,이상훈,Ko, Sang-Hyeon,Kim, Dong-Ho,Bae, Do-Hwan,Lee, Sang-Hoon 대한생식의학회 2002 Clinical and Experimental Reproductive Medicine Vol.29 No.4

          Objective: This study was performed to compare the clinical outcomes of GnRH antagonist (Cetrorelix) single dose and multiple dose protocols for controlled ovarian hyperstimulation with GnRH agonist long protocol. Materials and Method: From September 2001 to March 2002, 48 patients (55 cycles) were performed controlled ovarian hyperstimulation for ART using by either GnRH antagonist and GnRH agonist. Single dose of 3 mg GnRH antagonist was administered in 15 patients (17 cycles, single dose group) at MCD #8 and multiple dose of 0.25 mg of GnRH antagonist was administered in 15 patients (18 cycles, multiple dose group) from MCD #7 to hCG injection day. GnRH agonist was administered in 18 patients (20 cycles, control group) by conventional GnRH agonist long protocol. We compared the implantation rate, number of embryos, and clinical pregnancy rate among three groups. Student-t test and Chi-square were used to determine statistical significance. Statistical significance was defined as p<0.05. Results: There were no significant differences in ampules of used gonadotropins, number of mature oocytes, obtained embryos between single and multiple dose group, but compared with control group, ampules of used gonadotropins, number of mature oocytes, obtained embryos were decreased significantly in both groups. Clinical pregnancy rate and implantation rate were not different in three groups. There were no premature LH surge and ovarian hyperstimulation syndrome in three groups. Multiple pregnancy were occurred 1 case in multiple dose group and 2 case in control group. Conclusions: GnRH antagonist is a safe, effective, and alternative method in the controlled ovarian hyperstimulation compared with GnRH agonist. Clinical outcomes and efficacy of both single and multiple dose protocol are similar between two grou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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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상 수상논문 : 고려시대 수륙재 연구

          고상현 ( Sang Hyung Ko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2011 禪文化硏究 Vol.10 No.-

          고려시대 수륙재에 대한 연구는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에 필자는 시론적인 성격으로 고려시대의 수륙재에 대한 단편 기사를 통해 수륙의례집의 간행과 유포, 수륙재의 설행 형태와 목적, 수륙재와 관련한 도량 건립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먼저, 수륙의례집의 간행과 관련한 직접적인 기사(記事)는 『고려사』 선종7년조에 최사겸이 송나라에서 구해 온 수륙의문과 이제현이 쓴 혼구의 비명(碑銘)에 『신편수륙의문』 2권을 스님이 편찬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에 간행되기는 하였으나 현존하는 수륙의례집인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천지명양수륙잡문』 등에 고려 죽암공이 편찬하거나 또는 고려시대에 쓰여진 발문이 전하는 의례집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의 기록을 통해 볼 때 고려시대에도 여러 의례집이 수차례 간행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조선시대에도 이어져서 간행되었음을 쌍봉사에서 간행된 『천지명양수륙재의 찬요』의 이제현의 발문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수륙재의 설행 목적으로는 첫째는 혜거 국사가 하산소로서 갈양사를 중창시 설행한 낙성고불식이며, 둘째는 진정국사가 백련사, 만연정사, 조계사에서 설행한 것으로 적멸의 근원인 불덕(佛德)을 깨닫도록 하였으며, 셋째는 치병(治病)을 위한 수륙재이며, 넷째는 액을 없애는 해액수륙재(解厄水陸齋)이다. 다섯째는 추선(追善)의 재의로, 공민왕이 죽은 승의공주를 위해 국행수륙재를 설행하는 등 현전하는 기록으로 가장 많은 횟수가 설행된 예이다. 여섯째로는 수륙재와 유사한 무차 대회로 개설된 공신들을 위한 공신재이다. 일곱째로 광종이 설행한 무차수륙회로 죄업(罪業)을 소멸(消滅)하고자 한 것이다. 수륙재와 관련한 도량이나 당우는 혜거국사의 하산소로서 갈양사에 수륙도량을 개설한(971) 것과 선종 6년(1089)에 보제사에서 수륙당을 건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조선 건국 직후에 국행수륙도량으로 진관사에 수륙사를 조성한 것이나 조선후기에 간행된 『무위사사적(無爲寺事蹟)』, 『대둔사지(大芚寺誌)』등에 수륙사, 수륙전 등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러 형태로 수륙재 관련 도량이나 당우(전각)가 계속 건립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Due to the lack of historical datas, the Study of Koryeo Dynasty Suryukjae(Buddhist Ritual for the Beings of Water and Land, Shuiluzhai) can not be achieved fully. Hereupon, I aim to study about the publication and circulation of rituals of Suryukjae, the forms and purpose of doing Suryukjae and the building type of temple for Suryukjae through the paragraphics which were written in the days of Koryeo Dynasty. First of all, there are three articles which are directly to the publication of Suryuk ritual ceremony. 1st is Suryuk ritual sentences. Choi Sa - Geum had brought this articles from the Song(宋) country at Sun - Jong 7 accroding to 『Koryeo - sa』(高麗史). The second is 『A new edition Suryuk ritual sentences』(新編水陸儀文) volume 2 which is written by monk Hon-gu. Lee Je - Hyun wrote an inscription for monk Hon - Gu. The third is 『Chunji myungyang suryuk jaeui chanyo』(天地溟陽水陸齋儀纂要) and 『Chunji myungyang suryuk jabmun』(天地溟陽水陸雜文) etc. Some articles were published in Joseun Dynasty and remains until now. And others were written by monk Jukam in Koryeo Dynasty and were remained only the part of epilogue. Although direct articles are not remained today, but judging from the records in the days of Koryeo, we can find that various rituals were published several times. It has continued until Joseon dynasty. We can find this fact from Lee Jae Hyun`s epilogue of 『Chunji myungyang suryuk chaeui chanyo』 which is edited by Ssangbong temple. That book is in Yong Nam University`s library. Next, I try to find the purpose of doing Suryukjae. First, Suryukjae is for the meritorious retainer at the founding of Koryeo dynasty. Second, Suryukjae is for attaining enlightment for Buddha, that is Nirvana, We can find this from 『Hosanrok』(湖山錄)and 「Suryukjaeso」written by Jin-Jung national affairs(眞靜國師). Third, Suryukjae is for Cheondo(薦度, The Buddhist ritual or service to help). The largest number of records about Suryukjae is for Cheondo. Fourth, it is for the Healing. Fifth, it is for removing the bad luck by Haeaeksuryukjae(解厄水陸齋). Sixth, it is for expiation of the sin. Seventh, it has been used to pacify the people and unify them spiritually and politically through buddhism which was spread among the people at that time. Likewise Suryukjae has been done in a various purposes but among them Suryukjae for the Cheondo was recorded the largest number. The first structure associated with Suryukjae was built Suryuk house(水陸堂) in Bojesa at Sunjong sixth 1089 year, Suryuk house where builds in Bojesa. There are some records for Suryukjae in the early of the Joseon dynasty. They are 「Jinkwansa Suryuksa Josunggi」(The record which creates) on 『Collections of Yang - chon』(陽村集) which is written by Kwon Keun and 『Muwisasajeok』(無爲寺事蹟), 『Deadunsaji』(大芚寺誌) in the late years of the Joseon Dynasty. We can find the record of Suryuksa(水陸社) or Suryukjeon(水陸殿) from those books. As above, it is thought that there are various type of buliding temple for Suryukj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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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가교육의 질적 전환을 위한 제언

          고상현(Sang Hyun Ko),오형만(Hyung Man Oh)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2013 佛敎學報 Vol.0 No.66

          스마트시대로 진입하면서 수직적이고 이기적 관계는 수평적이고 이타적 관계로 변해가고 있다. 이런 변화에는 ICT의 발달에 따른 기기도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교육방법의 다변화를 촉진하였다. 전통적인 교육에서 ICT활용교육으로, 그리고 e-러닝, m-러닝, u-러닝을 거쳐 스마트러닝으로 발전하였다. 승가교육은 청정한 수행자로서 지혜를 전하는 지도자라는 승가상을 갖춘 승려의 양성과 승가 공동체의 일원을 양성하는 데 있다. 이것을 위한 현대의 승가교육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기는 해방이후부터 1994년까지로 근대기의 연속선상에 있었으며, 일제시기 유학파의 환속 등으로 승가내에서의 교학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퇴보하였다. 94년 개혁으로 시작된 2기는 1995년부터 2009년까지로 승가교육의 체계를 기초교육-기본교육-전문(특수)교육-재교육(연수교육)으로 정착한 시기이다. 하지만 교육내용면에서는 큰 변화를 이루지 못하였다. 3기는 2010년부터 현재진행형으로, 승가교육의 전면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그 내용으로는 행자교육의 안착화, 기본교육의 표준교육과정으로 교과목 전면 개정, 연수교육으로 승려의 평생교육 제도 재정비를 들 수 있다. 교육방법에서도 청암사승가대학과 율학승가대학원에서의 스마트캠퍼스 개설, 교육원에서의 이러닝(엠러닝)의 개설 등 이전시기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스마트교육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이러한 변화에도 승가교육의 현장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학습 방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출가자는 다양한 학력, 연령, 국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 개개인에게 맞는 스마트교육이 필요하다. 일반사회교육에서는 이미 교수자에서 학습자로 교육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스마트한 방법이나 기기를 활용한 교수자와 학습자간의 맞춤학습에 초점을 두고 있다. 승가교육도 승가공동체를 중시하면서도 출가자 개인의 역량에 맞는 학습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랬을 때 승가공동체도 진일보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승가교육 활성화를 위한 인식전환이 전제되어야 하며, 학인들의 교육을 최우선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또한 승가교육방법도 전통적인 논강을 되살리면서 학인들에게 맞는 맞춤형 학습과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승가교육에서 ICT 발달에 따른 스마트디바이스의 활용에 대한 긍정적 수용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육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승가교육자료공개센터(가칭)>를 구축해야 한다. 따라서 스마트교육을 위한 승가교육의 틀을 바꿀 수 있는 방안 연구와 이를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들이 더욱 경주되어야 한다. As our country moves into the Smart Era, vertical and selfish relationships are changing into horizontal and altruistic ones. To this change, electronic equipment resulting from the development of ICT (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has contributed to a certain degree. This change stimulated the diversification of instruction methods: from the conventional education to the education utilizing ICT, and through electronic learning (e-learning), mobile learning (m-learning) and ubiquitous learning (u-learning) to Smart learning (s-learning). The Education for Buddhist monks consists in cultivating Buddhist monks who are equipped with self-image such as a leader who, as a pure and clean practitioner, transmits wisdom; and in fostering a member of Buddhist community. We could say that for this purpose there have been some endeavors throughout largely three periods of modern and contemporary education for them. The first period was between the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1945) and the year of 1994. This period was fundamentally an extension of the modern period, and the academic atmosphere inside Korean Buddhist clergy rather regressed because of some factors including the exclaustration of those who had studied in Japan during Japanese colonialism. The second period starting from 94``s reform is between 1995 and 2009, when the system of the education is settled in the way of "education for beginners" ― "basic education" ― "professional (special) education" ― "reeducation (training course)". At this time, however, there were not big changes in the aspect of educational contents. The third period began in 2010 and is now in progress, when there were radical changeovers in the education: the establishment of the education for haengja (novice monks), an overall change of the basic eduction into a standard educational course, the reorganization of Buddhist monks`` lifelong eduction system with training course, and so forth. As regards instruction methods, a new Smart education system, which could never be observed in the past, was introduced; for example, Smart campuses in Chungamsa Sangha university and Yulhak Sangha graduate school opened, and the Bureau of Monastic Training of the Jogye Order is offering e-learning (m-learning). In spite of these changes, the educational arena for Buddhist monks still features traditional learning methods. Renunciant monks have various academic background, age, and nationality. Therefore, a Smart education suitable for each of them is needed. For this, before anything else, there should be change in understanding for the invigoration of the education, and student monks should be the number one priority. Besides, as for the teaching methods, such traditional way to study as non-gang (論講, discussing Buddhist scriptures) should be recovered; a more customized learning for each of the student monks and a more active, creational learning should be achieved; and utilizing Smart devices in accordance with the development of ICT should be accepted affirmatively. And finally, (tentatively named) "Sangha (Buddhist Community) Open Educational Resources Center" should be established. Accordingly, plan researches, with which the framework of sangha education in preparation for Smart education can be changed, should be conducted; and the efforts to reflect this change in the policy should be made more and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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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연등회를 통한 궁궐 문화유산콘텐츠의 창의적 활용 방안 연구

          고상현 ( Sang Hyun Ko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2014 동아시아불교문화 Vol.0 No.20

          신라시대 이래로 현대까지 이어지는 손꼽히는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가 연등회이다. 이러한 연유로 2013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22로 지정되었다. 연등회는 고려시대부터 국속으로서 전국적으로 행해진 연례행사였다. 상원연등, 2월연등, 4월초파일 연등 등 설행 날짜의 변경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따라 위로는 국가적 차원의 궁궐에서부터 아래로는 민간에 이르기까지 누구나가 즐기는 보편적 문화였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는 궁궐에서의 팔관회와 연등회의 연등이나 궁중정재와 백희잡기 등 공연예술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고려사』에서는 궁궐에서의 연등회에 대해 연행준비와 임금의 복식과 행차순서, 위치도 등에 대해서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관등이나 관희의 전통으로 배설된 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들을 활용하여 전통이 살아있는 궁궐의 문화유산의 창의적 활용을 위해 봄(음4월)과 가을(음 10월) 콘텐츠로서의 팔관회와 연등회의 설행과 연등의 복원, 경연 문화의 확대, 초파일 빔이나 호기놀이 같은 아동용 문화의 복원 및 확산, 궁궐이라는 공간적 제한성에서 탈피하여 왕실의 행차 등을 통한 공간의 확장, 문화기술(CT)을 활용한 복원과 적용을 통한 멀티유즈화, 남북의 공통적인 궁궐문화를 활용한 문화적 교류를 통한 통일의 단초마련 등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The Yeondeunghoe (the Lightening Lantern Festival) is a cultural heritage that has been considered important since the Silla Dynasty. For this reason, it was designated as National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No. 122 in 2013. As a national custom of the Goryeo Dynasty, the Yeondeunghoe was a countrywide annual event. Despite changes in its date-such as the Sangweon Yeondeung (上元 燃燈會) on the 15th of the first lunar month, the Yeondeunghoe of the second lunar month (二月燃燈會), and the Buddha``s Birthday Yeondeunghoe of the fourth lunar month (初八日燃燈會) -the consolation of the festival was universally enjoyed, depending on the era, by everyone across the nation, from nobles of the palace to ordinary citizens. However, the History of Goryeo and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of all sources, provide relatively detailed descriptions of Yeondeunghoe at the palace as well as of the performing arts, such as the court dance and the BaekhiJabgi. In particular, the History of Goryeo minutely describes the preparation for performances, dress styles, and the ordering and positioning of the king``s walk.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describes lanterns, prepared according to the traditions of the Lightening Lantern Festival, and the event of watching a traditional play. By using this information, this paper proposes methods for creatively utilizing the following cultural heritages of the palace: the performance of Yeondeunghoe for the lunar April in the spring; the restoration of lotus lanterns; the expansion of cultural events; the restoration and spread of children``s culture, such as the Buddha``s Birthday dress or the Hoginori; the spatial expansion of the palace beyond its special limits through events such as the ceremonial walk of the royal family; the multi-utilization, through restoration and application, of cultural technology; and the beginning of unification through cultural exchanges by applying the common palace culture of North and South Korea. It is anticipated that this study will significantly contribute to the restoration and expansion of the Yeondeunghoe, an important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in that it examines the Yeondeunghoe and proposes methods to use this event activ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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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등회의 시대구분론 재고

          고상현(Ko, Sang-Hyun)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2016 佛敎學報 Vol.0 No.74

          연등회의 시대구분은 일반적으로 국가별 시대구분에 따라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연등회는 시대에 따라 설행주체의 중심축이 이동하였다. 이에 따라 본고에서는 왕조(국가)별이 아닌 설행주체를 중심으로 크게 국가주도기, 민관이행기, 민간주도기의 세 시기로 구분하였다. 첫째는 국가주도기로, 신라시대와 중세 양반사회였던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공식적으로 연등회가 폐지되는 세종 13년(1431)까지를 말한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등의 정사류를 중심으로 한 기록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주로 국가와 왕실에서 설행하는 연등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둘째는 민관이행기로, 관과 민간이 각각 설행하는 시기이면서도, 왕실이나 일제 등 지배체제 중심에서 민간으로 중심축이 이동한다는 측면에서의 이행(移行)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려와 조선초기의 유풍이 남아 행해지는 시기이지만, 민간에서의 설행이 문헌상에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시기이다. 셋째는 민간주도기로, 해방(1945년 8월) 이후 1946년부터 지금까지로 불교계가 자율적으로 연등회를 설행한 시기이다. 이 시기는 1946~1995년까지의 종교축제기인 1기와 불교적인 불교인들의 축제에서 1996년 이후의 대중축제로의 전환을 꾀하는 2기로 나눌 수 있다. Yeondeunghoe (燃燈會) has been changed in many ways in the aspects of its main agents, contents, and forms for 1000 years. Thus, it cannot be understood as the appearance or the form in a certain one period or at a certain one time. So as to examine the Yeondeunghoe as a festival, around its implementation bodies I divided the history of the Yeondeunghoe into three periods: the state-dominated period (國家主導期), the intergradational period led by civilian and public bodies (民官履行期, 民官移行期), the civilian-dominated period (民間主導期). The state-dominated period (國家主導期) is the time during which the festival was held as a national ceremony by a nation or royal family. From the Silla Dynasty through the Goryeo Dynasty to the 13th year of King Sejong"s reign during the Joseon Dynasty(1431), the Sangweon Yeondeunghoe (上元 燃燈會) on the 15th of the first lunar month, the second lunar month Yeondeunghoe, and the Buddha"s Birthday Yeondeunghoe in the fourth lunar month were held. A special Yeondeunghoe as occasion demands was also held. There were Yeondeungdogam (燃燈都監) and its departments as the implementation body of the festival. The intergradational period led by civilian and public bodies (民官履行期, 民官移行期) can be divided into two stages. The first stage covers from the 13th year of King Sejong"s reign during the Joseon Dynasty (1431), when the Yeondeunghoe was actually abolished, to the Korean Empire era; and the second stage is the Japanese colonial era. This period is the time during which the festival had been established as the Buddha"s birthday Yeondeunghoe and at the same time its main agents were changed from government offices led by royal family to civilian organizations. The civilian-dominated period (民間主導期) from the year 1946 after the liberation from the Japanese Empire to the present day is the time during which the festival has been held by civilian Buddhist community. This period can also be divided into two stages: the religious festival era until the year 1995 and the era in which efforts to convert the Yeondeunghoe into people"s festival have been m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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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축제의 현황과 발전 방안

          고상현(Ko, Sang-Hyun)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2015 佛敎學報 Vol.0 No.70

          각종 지역축제에서 불교적 축제들이 행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교축제에 대한 연구는 연등회나 팔관회 등 특정한 분야에 국한되어 왔다. 본고에서는 불교의례와 문화행사중에서 축제로서의 의례와 문화행사에 주목하였다. 이들 불교축제를 유형과 내용에 따라 나누었다. 유형별로는 불교의례를 중심으로 한 불교의례축제(Buddhist Ritual Festivals)로, 불교문화를 활용한 축제를 불교문화축제(Buddhist Cultural Festivals)로 분류하였으며, 내용별로는 복합형과 테마형으로 분류하였다. 불교의례축제는 불교의례가 중심이 된 축제로, 팔관회, 우란분재, 수륙재, 개산대재, 영산재 및 괘불재, 생전예수재 등을 들 수 있다. 불교문화축제는 불교의례에서 파생되거나 불교적 모티브를 차용하여 축제적인 요소가 강화된 것이다. 복합형 축제는 연등회,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 등이 있다. 테마형 축제는 주제에 따라 사찰음식축제, 음악회형 축제, 생태자연축제, 낙화놀이 축제, 동제형 축제 등으로 세분화하였다. 불교축제의 발전 방안으로서는 종단차원에서 불교축제현황 파악과 홍보, 축제전문연구자나 기획자의 양성을 들었다. 사찰 내적으로는 축제의 지속성을 위해 개산대재와 같이 정기적인 의례와 결합하는 방안, 일반인 참여 확대를 위해 내재적 제약요인을 줄이는 테마축제를 기획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교의례나 불교문화적 요소가 담긴 축제는 고유성과 정체성을 견지해야 한다. 또한 축제 프로그램의 스토리텔링화를 통한 체계적 구성, 스토리메이킹을 통한 새로운 축제 영역의 개발과 창조적인 연출이 필요하다. 외적으로는 지역은 물론 지역축제와의 연계성을 높여야 한다. Existing research on Buddhist Festivals has been limited to specific festivals such as the Yeondeunghoe or the Palgwanhoe. This article focuses on the rites and cultural events that are a feature of Buddhist festivals. In terms of classification, the festivals that mainly involve Buddhist rites are classified as Buddhist Ritual Festivals, and the festivals that are associated with Buddhist cultural events are classified as Buddhist Cultural Festivals. According to the content of festivals, they are classified as either complex or thematic in form. In addition, festivals can also be classified as either diachronic or synchronic festivals, but this article does not deal with that type of classification. Buddhist Ritual Festivals include Palgwanhoe, U’ranbunjae, Suryukjae, Gaesandaejae, Yeongsanjae, Goibuljae, and Saengjeonyesujae. Buddhist Cultural Festivals began as Buddhist rites but the festival elements have been strengthened. Examples of such complex-form festivals include the “Lotus Lantern Festival” and the “Millennial Anniversary of the Tripitaka Koreana.” In addition, when it comes to the thematic form, festivals are subdivided into temple food festivals, concert festivals, ecological festivals, fireworks festivals, and village ritual festivals. In order to improve Buddhist Festivals, this article suggests an investigation into the current status of Buddhist festivals at the level of religious organization, the production and distribution of Buddhist festival calendars, and the training of festival experts and planners. Within temples, festivals need to be combined with regular rites, such as the anniversaries of temple foundations, to ensure their continuity, and temples need to plan thematic festivals in which intrapersonal constraints are minimized to ensure the greater participation of ordinary people. However, uniqueness and identity are still important. This article also suggests the systematic composition of festival programs and the development of new types of festivals through the techniques of storytelling and story-making. Looking outward, connectivity with adjacent regions and other regional festivals should also be impro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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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문화유산정책의 회통적 관점에서의 방향 -불교문화유산을 중심으로

          고상현 ( Sang Hyun Ko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2015 탐라문화 Vol.0 No.50

          분절과 단절의 시대를 거쳐 융합과 회통(會通, Conciliation)의 시대이다.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편의상 무형문화와 유형문화, 기념물, 민속문화재등으로 나누어 이해해 왔다. 문화유산을 회통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주의 문화유산정책의 현황을 불교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정책 방안을 제시하였다. 전제적으로 문화재에서 문화유산으로의 확장과 점, 선, 면의 분별적 관점에서 점과 선과 면을 아우르는 공간적인 복합적 개념의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불교문화재의 경우 유형유산인 불상과 화불 등 대부분이 무형유산인 의례와 직접적인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제주 문화유산정책의 현황을 제주도에서 인터넷으로 서비스하거나 발행한 도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온라인 정보로는 “멀티미디어 제주민속관광대사전 (www.jejuro.go.kr)”과 “제주학아카이브(http://www.jst.re.kr)의 디렉토리를, 도서로는 2009년 개정된 .제주어사전.과 2012년에 편찬한 .제주민속사전.에서 불교는 선정대상에서 제외되거나 내용에서 누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8년 제주문화상징 99선에서도 불교는 0.03%인 3개에 불과하였다. 이들이 제주의 불교문화를 누락시킨 것은 단순히 불교가 아니라 천여 년의 걸쳐 형성해 온 제주 민속과 문화를 말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책적 제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제주도에서 발행되고 서비스되는 각종 자료에서 천여 년의 역사와 풍속인 불교를 반영하여 수정.보완해야 한다. 둘째, 제주라는 공간을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다. 제주 전역을 공간콘텐츠와 에코뮤지엄화하는 불교문화축전의 개최를 예로 들 수 있다. 셋째, 복신미륵의 랜드마크화, 넷째, 힐링산업으로서의 참선(參禪, Meditation practice)문화를 토대로 한 마음산업(mind industry)의 육성, 다섯째, 이를 위해 (가칭)세계마음센터를 포함한 불교문화콤플렉스의 건립을 제안하였다. After periods of segmentation and disconnection, times have changed to bring a period of conciliation. For convenience, issues and items pertaining to cultural heritage can be categorized into tangible cultural issues, intangible cultural issues, monuments, and cultural properties. From such a standpoint, Cheju’s current cultural heritage policy was investigatedby observing cases, and developmental plans will be presented. Broad topics pertaining to the need for a comprehensive spatial concept that encompasses points, lines, and planes from a distinctive view, as well as the expansion of cultural assets to broader cultural heritage, were presented. In categorizing Buddhist cultural heritage, tangible heritage includes statues of Buddha; these have a direct correlation with intangible heritage as observed in ceremonies. The current status in Cheju regarding cultural heritage policies and how those policies have dealt with Buddhist cultural heritage over the past millennia were investigated through Internet sites and publications. The online data on religion, seasonal customs, and other cases pertaining to Buddhism is insufficient in “The Multimedia Cheju Cultural Tourism Dictionary” (www.jejorogo.kr), which was last updated on February 1, 2008. Based on the “Cheju Dialect Study” of 1962, the “Cheju Language Directory” comprising 25,350 sectors(revised and supplemented in 1995 and 2009), and the “Cheju Cultural Directory” compiled in 2012, certain data were omitted from the list of investigation sectors, and thus certain information is missing. In 2008, there were 99 cultural symbols in Cheju, although Buddhist cultural heritage symbols accounted for only 12.2% of that total (tangible heritage: 41%). Of the designated cultural heritage, only 0.03%, or three, were included. The developmental plan is as follows. First, published information regarding the Island of Cheju must be revised and supplemented to reflect the last 1,000 years of Buddhist history and customs. Second, a Buddhist cultural festival containing museums and involving the entire area of Cheju needs to be hosted. Third, the Boksin Maitreya needs to be declared a Landmark. Fourth, a “mind industry” should be developed as a healing business based on Chamseon or meditation. Fifth, a World Mind Center should be developed along with a Buddhist Cultural Complex.

        • KCI등재

          유류분제도와 공익출연

          고상현(Ko, Sang Hyun) 한국가족법학회 2010 가족법연구 Vol.24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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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s koreanische Pflichtteilsrecht enthält nur 7 Vorschriften. Pflichtteilsberechtigt sind Abkömmlinge, Ehegatten, Verwandte des Erblassers in gerader aufsteigender Linie und Geschwister des Erblassers (§1112 KBGB). Die Berechnung des Pflichtteils ist nach §1113 Abs. 1KBGB wie folgt vorgesehen: Zur Berechnung des Pflichtteils wird der Überschuss nach Abzug sämtlicher Beträge der Nachlassschulden vom Gesamtwert des Nachlasses zur Zeit des Erbfalls mit dem Wert der Schenkungen zugrunde gelegt. Die Ausstattung einer zu Lebzeiten des Erblassers errichteten Stiftung bildet zwar keine Schenkung des §1113 Abs. 1 KBGB. Jedoch ist die analoge Anwendung zu bejahen, weil sie als unentgeltliche Transferleistung im Gegensatz zu den Interessen der Erben den verfügbaren Nachlass reduziert. Die Schenkungen gemäß §1113 Abs. 1 KBGB werden dem Pflichtteil nur hinzurechnet, soweit sie innerhalb eines Jahres vor Eintritt des Erbfalls vom Erblasser gemacht worden sind (§1114 S. 1 KBGB). Das gleiche gilt jedoch, wenn die Zuwendungen zum Nachteil des Pflichtteilberechtigten bewusst zwischen dem Erblasser und dem Beschenkten erfolgt sind, obwohl sie früher als ein Jahr vor Eintritt des Erbfalls gemacht worden sind (§1114 S. 2KBGB). Unter §1114 S. 1 KBGB fallen Zuwendungen des Stifters an Stiftungen. Dagegen schließt die Anwendung des §1114 S. 2 KBGB meiner Meinung nach ab, weil der Beschenkte, der sich bewusst auf die Unentgeltlichkeit einigen kann, noch nicht vorhanden war. Es fehlt also an einer Kenntnisnahme über die Beeinträchtigung des Pflichtteils. Der §1114 S. 2 KBGB wäre jedoch auf Zustiftungen und Spenden an bereits existierende Stiftungen anwendbar, soweit die Vertragsparteien wussten, dass die Schenkung dem Pflichtteilsberechtigten gegenüber Schaden verursacht. Nach Berechnung des Pflichtteils kann der Pflichtteilsberechtigte zum Zwecke der Befriedigung wegen des fehlenden Betrages vom Beschenkten oder Vermächtnisnehmer die Herausgabe des Geschenkten oder Vermächtnisses in Anspruch nehmen (§1115 Abs. 1 BGB). Sowohl nach deutschem als auch koreanischem Recht kann der Pflichtteilsberechtigte gegen eine Stiftung einen Pflichtteilsergänzungsanspruch oder einen Pflichtteilsherausgabeanspruch geltend machen. Im Vergleich zum deutschen Pflichtteilsrecht besteht im koreanischen wenig Möglichkeit, dass der Pflichtteilsberechtigte gegen die Stiftung die Herausgabe der Zuwendungen verlangen kann. Denn die Zuwendung innerhalb eines Jahres vor dem Erbfall wird gemäß §1114 S. 1 KBGB in die Berechnung des Nachlasses einbezogen. Zudem unterliegt der Herausgabeanspruch der Verjährung, wenn Pflichtteilsberechtigte den Anspruch binnen eines Jahres nicht geltend macht, obwohl er Kenntnis von der Schenkung oder Zuwendung hat. In der Tat ist der Fall über Stiftungserrichtung und Herausgabeanspruch des Pflichtteils noch nicht in Erscheinung getreten. Nach geltender Rechtslage in Deutschland ist die Ausstattung einer Stiftung in erheblicher Höhe durch die Pflichtteilsansprüche zurückzusetzen. Dies führt einerseits zur Einschränkung der Stiftungsfreiheit des Erblassers und andererseits zur Gefährdung des Stiftungsvermögens, also ihrer Existenzgrundlage. Dieser Problematik beruht von vornherein auf der Nichtzeitgemäßheit des Pflichtteilsrechts. Das Pflichtteilsrecht wird nach geltendem Recht als Beschränkung der Stiftungsfreiheit sowie Beeinträchtigung des Stiftungsvermögens angesehen,was sowohl für die letztwillige Stiftungserrichtung als auch für die lebzeitige Stiftungszuwendung gilt. Demzufolge kommt die Möglichkeit einer Beschränkung oder eines Ausschluss des Pflichtteilsrechts zum Schutz der Stifterfreiheit und des Stiftungsvermögens in Betra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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