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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희 소설에 나타난 ‘걷기’의 의미

          강유정 ( Kang Yu-jung ) 배달말학회 2018 배달말 Vol.62 No.-

          오정희의 소설은 존재의 심연, 삶에 내재한 갈등과 모순, 욕망과 안정의 이분법을 보여주었다. 아름다운 문장과 심오한 세계관이 담긴 오정희의 작품들은 지속적 연구와 평론의 대상이 되어 왔다. 오정희의 소설은 내면적인 인물의 일상을 통해 삶의 비의와 아이러니,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생의이면을 보여주곤 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오정희 소설의 철학적 깊이와 내면적 사유는 오정희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 차별성을 간과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 와서 여성 인물에 주목하고, 여성성의 지표를 다시 보는 여성학적 독법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여성학적 연구와 기존의 존재론적 연구가 분리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존재론적 결핍, 존재론적 심연과 같은 언어들로 희석되며 그 차별성을 잃고 만다. 성차에서 비롯되는 첨예한 갈등과 문제의식이 인간으로서의 본원적 갈등으로 중화되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 중 하나는 오정희의 소설에 유독 걷는 여성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걷기는 단순히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귀환의 통로로 여겨지곤 했지만 오정희의 소설 안에서 ‘걷기’의 의미는 훨씬 더 풍부하고, 다양하다. 여성의 삶이 처한 곤궁과 어려움, 한계, 사회적 억압이 드러나는 것은 걷는 동안, 길 위에서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오정희 소설의 걷는 여성을 추적하고, 그 의미를 구분하고 해석함으로써 오정희 소설의 걷기의 의미와 상징성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남성에게 있어 걷기는 성장의 배경이며 자아 정체성을 찾는 육체적 고행내지는 수련 과정과 동일시된다. 하지만 길 위의 여성은 가부장제를 거역하거나 혹은 가부장제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여성으로 취급받는다. 「순례자의 노래」의 인물 혜자는 망가진 삶을 복구하기 위해 길에 나서지만 걷는 동안 그녀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만을 확인할 뿐이다. 가벼운 산책을 떠나는 여자에게는 돌아올 집이 있지만 그 보다 멀리 걸어 나가거나, 이미 집을 벗어났던 여자에게 귀환은 허락되지 않는다. 집은 세상이 정한 규율 즉 가부장적 질서를 따르는 여성에게만 허용된 공간이다. 이는 자신의 존재론적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거듭 길로 나서는 여자 은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바람의 넋」의 은수는 전쟁고아로, 어딘가 자신의 중요한 부분이 결락되어 있음을 호소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상실을 회복하고 애도하기 위해 거듭 길을 나서지만 남편에게 그것은 거역이며 길 위의 남자들에게는 빌미일 뿐이다. 추방과 폭력으로 돌아 온 은수의 걷기는 길 위의 여성이 겪어야만 하는 폭력과 오해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만약 가정을 가진, 엄마이자 아내인 여성에게 허락된 걷기가 있다면 그것은 아이를 재우고 난 이후, 동네 주변을 도는 가벼운 산책이거나 아버지가 잠든 후 집 앞을 잠시 도는 정도의 산보에 불과하다. 「전갈」의 여자는 남편처럼 아프리카의 밀림을 꿈꾸지만 아내이자 엄마로서 그녀에게 허용된 것은 산책뿐이다. 「새벽별」의 정애가 하루 밤의 일탈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듯한 공포를 느끼고 인생이 모두 끝나버린 여자라는 주변의 평을 듣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오정희 소설에 있어서 많은 여성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걷는다. 목적지를 두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방황하며 거리를 헤맨다. 이 걷기는 단순한 서사적 관습이 아니라 오정희 소설의 중요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상징이다. 여성 인물이 길 위를 걷는다는 것이 어떤 결말의 징후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적인 것은 이 헤맴이 자아의 성찰이나 회복, 정체성의 확보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폭력과 추방의 원인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여성의 길 나섦, 걷기가 여로형 서사와 다르게 추방과 낙오의 결말로 이어지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다. 오정희 소설에 있어서 ‘걷기’는 여성으로서의 한계와 가부장제의 억압, 여성으로 살아가기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문학적 상징이자 행위이다. The novels by Oh, Jung-Hee have been recognized as the excellent literary imagery showing the dichotomy of an abyss of beings and conflict/contradiction, and desire and stability. One thing we should pay attention to is that almost every work by Oh, Jung-Hee repetitively shows 'walking women' besides 'family'. The motif of 'walking' repetitively shown in the novels by Oh, Jung-Hee is not a simple repetitive act, but an act revealing the gender difference and an ontological act showing all the meaning, limitation, and restriction of lives as women. Making them come back home after going out is not important. It would be necessary to have questions such as what makes them go out, what makes them come back, and why the act of 'walking' for women should be named 'taking a walk' or 'going out' that always has destinations. The repetitive motif means that it contains the narrative symbolism. When walking on the street which is not allowed to women instead of house allowed to women, the reality of female characters in the novels by Oh, Jung-Hee could be more solidly viewed. Therefore, this paper aims to analyze/understand the meanings of 'walking' for women shown in the novels by Oh, Jung-Hee, by analyzing the walking always shown in the novels by Oh, Jung-Hee to examine the parts that have not been revealed in the novels by Oh, Jung-Hee, and also recomposing the imagery process of gender differentiation as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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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희 소설의 결말 구조 연구

          강유정(Yu Jung Kang) 한국현대소설학회 2015 현대소설연구 Vol.0 No.59

          오정희(1947-)는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완구점 여인>으로 등단한 이후 한국 여성 작가의 대표로 자리매김해왔다. 오정희의 소설은 난해하다. 오정희 소설이 난해한 까닭은 우선 주제적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정희 소설의 난해성은 당혹감과 연관되고 이는 일종의 미학적 성취로 평가받는다. 당혹과 미학이라는 역설적 관계는 오정희의 소설 안에서종종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이 환유되고 충돌하는 데서 빚어진다. 오정희의소설 안에서 삶과 죽음, 관능과 혐오 등의 대립적 요소들은 불편하게 공존하고 길항한다. 말하자면, 오정희 소설이 주는 당혹감은 낯선 미학적 전위인 셈이다. 오정희 소설의 결말은 모순과 갈등, 충돌과 혼돈으로 가득 찬 현실을강조한다. 전통적 서사가 보장하던 질서정연한 세계에 대한 환상과 바람을채워주는 게 아니라 그것의 불가능성을 철저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곧, 전통적 소설의 사실성이 추구하는 환영주의에 대한 저항이며 오정희가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적 태도의 반영이기도 하다. 고전적 소설이 추구하는 욕망의 충족이나 갈등의 해소는 오정희 소설에있어서는 전도된 욕망의 도착으로 재규정된다. 따라서, 오정희 소설의 결말은 독자들에게 동일시의 환상이 아니라 낯선 이질감과 이해할 수 없는모순으로 다가온다. 오정희는 이 불가해성을 자기 소설의 특징이 아니라곧 세상의 속내라고 말한다. 난해성은 오정희 소설의 문체적 개성이나 미학적 특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정희가 바라보는 삶의 속성이다. 희망적인 긍정을 보여주는 유일한 작품인 <옛우물>의 결말 역시 선조적 시간질서를 전복하고 낯설게함으로써 삶의 세속성을 전경화한다. 자동화된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기, 이는 오정희 소설의 미학적 목적이자 윤리적 주제이다. 그런 점에서, 오정희 소설의 결말은 그녀가 바라보는 삶의 추악함과 미결정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종결에 대한 환상을 낯설게 해주는 서사적장치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서사적 장치가 무척 예민한 관찰력을 통해 섬세한 묘사로 장면화된다는 사실이다. 오정희 소설의 모든 결말은 서술이 아닌 묘사로 끝난다. 오정희는 소설의 윤리성을 거짓 화해의 제시가 아니라갈등과 불화의 구체적 제시에서 찾는다. 그리고 이 예술가적 윤리성이 드러나는 토대가 바로 오정희 소설의 결말이다. Oh Jung-hee (1947~) has proven herself as a representative Korean female writer after making her debut with A Woman of the Toy Store from winning the annual literary spring contest of Joongang Daily Newspaper Co. in 1968. Her novels are profound. The reason can be found out in a thematic aspect above all. The esotericism of her novels is connected with embarrassment and evaluated as a kind of aesthetic achievement. The paradoxical relations of embarrassment and aesthetics are originated from metonymy and conflict of unfamiliar heterogeneous things. In her novels, opposing elements such as life and death and carnal desire and hatred coexist inconveniently and stand against each other. So to speak, embarrassment which is given by her novels can be said as strange aesthetic transposition. The endings of Oh`s novels emphasize the reality full of contradiction and conflict and collision and chaos. They do not fill illusion and desire for the ordered world that traditional narration has secured but show the impossibility thoroughly. This is resistance to illusionism which realism of traditional fiction pursues and also reflection of the attitude of Oh who looks at the world. Satisfaction of desire or resolution of conflict that traditional novels pursue is redefined as perversion of reversed desires. So, the endings of her novels come as unfamiliar senses of difference and incomprehensible inconsequence to readers. She says the incomprehensibility as not characteristics of her novels but the intention of the world. Abstruseness is not staying at the individuality of her writing style in her novels and aesthetic properties but the attribute of life which she stares at. The end of Old Well as her sole work presenting hopeful affirmation shows panoramic views of worldliness of life by overturning and un-familiarizing sequential time order. Looking at the automatized world unfamiliarly is the aesthetic purpose and ethical subject of the novels of Oh Jung-hee. In this point, the finish of her novels intactly shows ugliness and pendency of life which she stares at. It is a narrative device to un-familiarize the illusion of the conclusion. An important thing is the fact that the device is to be made like scenes into delicate description through so keen observation. All ends of her novels finish with description, not narration. She finds out the ethicality of fiction in specific suggestion of conflict and discord, not in suggestion of false reconciliation. And, the foundation which reveals the artistic ethicality is just the ends of Oh`s nov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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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이라는 소재와 낭만적 이상화

          강유정(Yu-Jung Kang)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6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Vol.5 No.2

          영화사에 있어서 “전쟁”은 낯선 소재가 아니다. 한국영화사에서 전쟁은 남과 북이라는 분단 상황을 불러일으킨 한국 전쟁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전쟁은 한국 역사에 있어 부인할 수 없는 공통의 정신적 외상(trauma)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 전쟁과의 시간적 거리만큼 전쟁을 다루는 방식이 다양해졌다는 사실이다. 1960년대 전쟁 영화에서 한국 전쟁은 강박증에 가까우리만치 심각한 주제 의식으로 전경화되었다. 이에 비해 1990년대 이 후 전쟁을 다룬 영화는 전쟁영화라는 장르보다 오히려 멜로 영화의 면모를 띄는 경우가 더 많다. ‘영화의 주제였던 “전쟁”이 점차 소재화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주제가 아닌 소재로서의 “전쟁”은 1990년대 이후 제작된 영화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1998년 제작된 강제규 감독의 『쉬리』는 한국 전쟁과 분단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블록 버스터 상업 영화의 문법에 전유함으로써 새로운 한국 영화의 가능성을 제안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영화는 분명 전쟁에 대한 강박적 죄의식이나 윤리적 의무감에서 벗어나 있는듯 보인다. 적극적으로 읽자면 이러한 변화는 “한국 전쟁”이라는 집단적 상처를 개인사로 구체화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선언은 한편 전쟁이라는 불변의 현실을 환상과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해보고자 하는 노력으로 연계된다. 문제는 그 재구성이 역사의 상처에 대한 반성적 치유인가 아니면 대중 영합적 자기 합리화인가이다. 본 고에서 『쉬리』 이후 한국 전쟁과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 작품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주제가 아닌 소재적 차원에서 원용되고 있는 한국 전쟁의 면모와 그것의 의의 및 한계에 대한 재고라고 할 수 있다. War is so familiar theme in film history. In Korean film history, most of what is called war is The Korean War. The Korean War must be frightful tranma to Korean. What is more important is that most korean war films are highly diversified. In the 1960's korean war film were dedicated to ideological means to end. But after 1990s, korean war films get toward not ideological but melo dramatic form. Spectacle of the Korean War is used by not theme or subject only but materials. Director Kang's {Swiri, 1998} is the first block-buster which used the division of Korean peninsula as melodramatic obstacles. After 1990s, korean war films are seemed to be free from obsessive guilt trip about terrible sight of war. This change can be comprehended as declaration to concrete the pain of war in specific private history. The declaration must be connected the trial to change and overcome immutable trauma of war. The problem is the reconstuction of war image can be used popular fashion or commercial items. So this paper would verify the meaning and problem of current Korean War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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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희 소설의 공간과 욕망의 배치 연구 - 「옛우물」을 중심으로 -

          강유정(Kang, Yu-Jung) 우리문학회 2021 우리文學硏究 Vol.0 No.69

          모든 공간은 일종의 표상이다. 공간의 의미는 사람들의 공통된 인식의 결과로, 사회적 합의와 학습을 통해 구성된다. 사회학은 매우 오래전부터 공간을 사회적 결과물로 인식해왔다. 소설에서 공간은 작가의 선택으로 제한되는 수행적 구성 요소이다. 특히 오정희 소설에서 공간은 단순한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한다. 「중국인거리」, 「유년의 뜰」, 「파로호」처럼 제목에 아예 공간적 상징이 들어간 작품도 많지만 서브텍스트를 담은 제유이자 상징일 때가 많다. 오정희의 소설에서 집은 소설 전체의 아우라와 주제를 함축한다. 특히 「옛우물」은 여성의 내면을 공간적 은유와 제유로 배치하고 명명함으로써 여성적 욕망의 입체적 조감도를 제시하고 있다. 「옛우물」은 오정희 소설 많은 연구와 논의가 집중되어 온 작품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것은 그 연구가 대개 ‘여성’과 ‘모성’과 같은 특정 언어에 집중됨으로써 「옛우물」이 지닌 다층적 해석의 가능성과 미학적 해석의 지평이 축소된 바가 없지 않다는 사실이다. 「옛우물」은 플롯 구성의 시간성에 있어서도 무척 의미 있는 소설이지만 욕망을 구체적 장소로 명명하고 배치했다는 점에서 건축학적 개성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고층아파트’, ‘예성아파트’, ‘연당집’은 각각 인물을 구성하는 자아의 다양한 층위를 제유한다. 법과 질서를 체질화한 현실적 자아, 과거와 현재를 반추하는 실존적인 자아, 리비도와 욕망에 흔들리며 통제되지 못하는 본능적 자아가 이 공간적 명명 안에 녹아 있다. 이는 프로이트가 아주 오래전 이야기한 초자아-자아-이드의 공간적 스펙터클화이기도 하다. 주체, 자아, 욕망의 스펙트럼을 공간적 구조물을 통해 재현해 낸 것이다. 「옛우물」은 직접적인 어투로 여성의 현실이나 그것을 만들어 낸 환경과 역사, 질서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할머니, 어머니, 자신으로 이어지는 평범한 일상 속에 그것이 어떻게 유전되고 변형되어 침윤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 스스로도 느끼지 못했던 현실의 이데올로기성을 각성케 한다. 이는 한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삶의 관성을 내재화한, 대개의 인간 존재에 대한 보편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옛우물」은 소설의 아주 오래된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근원적 자아와 현실적 주체 사이의 불일치와 갈등이라는 소재를 매우 수준 높은 형상화 방식을 통해 새롭게 하고, 전경화한 작품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Every space is a kind of representation. The meaning of space is composed through social agreement and learning of people’s common perception. Sociology has perceived space as a social outcome for a very long time. At the moment, when a space is put in a place, it is not an accidental phenomenon, but reveals a special meaning after going through institution, custom, and discourse. A space in a novel is not only an object of imitation, but also a performative element designated by the author’s selection. The spaces in Oh Jeong-Hee’s novels work as something more than simple background. Just like 「The Chinese Street」, 「The Garden of Childhood」, and 「Paro Lake」, many of her works have titles that include the spatial symbol. However, a lot of them are synecdoche and symbols containing a subtext in the space between lines of works. In Oh Jeong-Hee’s novels, a house provides a clear image that implies the subject contained in the whole novel and an aura beyond the simple spatial background. Especially, her work 「The Old Well」, which cubically visualizes feminine desire by arranging and calling women’s inner side into a concrete shape through spatial metaphor and synecdoche. Oh Jeong-Hee’s 「The Old Well」 is an absolute masterpiece that has been researched and discussed many times. Unfortunately, most of those researches focused on areas like ‘woman’ and ‘motherhood’, thereby reducing the prospect of aesthetic interpretation and the possibility of multilayered interpretation of 「The Old Well」. Centered around the lifetime ruminations through a day in the life of a 45-year-old middle-aged woman, 「The Old Well」 is a meaningful novel for the temporality of plot composition. Also, the calling and arranging desire as a concrete place in a space gives this work an architectural strength. Its ‘high-rise apartment building’, ‘Yeseong Apartment’, and ‘house of Yeondang’ represent various layers of ego through synecdoche, composing each manifest being of a woman. The space of a realistic ego naturally obeying the law and order, an existential ego that examines and ruminates the past and the present, and an instinctive ego that is swayed by libido and desire with no control, is melted in a place that is spatially called the spectacled space of the internal layer of ego built up with superego-ego-id proposed by Freud a long time ago. The subject, ego, and internal spectrum have been represented through spatial structure. 「The Old Well」 does not directly criticize the reality of women, or its environment, history, and order. By showing how it has been inherited, transformed, and infiltrates ordinary daily life continued from grandmother and mother to herself, it enables us to realize the ideological feature of reality that has not been felt before. This is not only a trace of patriarchy suppressing a woman, but also a story about most human beings internalizing the inertia of life, which can be described in one word: disillusionment’. In this aspect, 「The Old Well」 has renewed and foregrounded its material like discordance and conflict, between original ego and the realistic subject that used to be an old theme of novels, through the sophisticated representation meth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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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에 나타난 욕망의 구조 -진리의 탐색과 알레고리

          강유정 ( Yu Jung Kang ) 배달말학회 2011 배달말 Vol.49 No.-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은 『하구』, 『우리 기쁜 젊은 날』, 『그 해 겨울』의 삼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들은 소설의 여정을 성장의 과정과 동일시 해왔다. 물론 『젊은날의 초상』의 여정은 성장과 닮아 있지만 성장이라고 단순화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다. 성장이라는 보편적 현상으로 말할 수 없는 "나"라는 인물의 절대적 진리에 대한 결핍과 그것에 대한 탐구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젊은날의 초상』의 주인공이 경유하는 여행지는 단순한 방랑처가 아니라 그가 찾고자 하는 절대적 진리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공간이다. 첫 번째 경유지인 『하구』에서 그는 도시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진실을 찾아 고향에 내려간다. 그에게 고향이란 훼손되지 않은 원본이었지만 그곳에 가서 직접 확인한 고향은 훼손된 원본이며 진실이 부재한 공간이다. 하구를 찾은 지 10여년이 지난 후 시점의 서술자는 과거를 돌아보며 절대적 원본으로 낭만화할 수 없었던 고향을 서술한다. 『하구』는 고향이 진리 탐색의 과정일수는 있으나 잃어버린 원본 자체가 되어 줄 수 없다는 확인의 기록이다. 그 확인은 환상의 불가능성이며 환멸과의 조우이기도 하다. 한편 『우리 기쁜 젊은 날』은 주로 대학이라는 공간에서의 진리 탐색 과정을 보여준다. <절망의 뿌리>, <길동무들>, <무엇을 할 것인가>, <주점 쩌그노트의 추억>, <사랑놀이>, <해따기>, <새지 않는 밤>, <여름의 끝>의 8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우리 기쁜 젊은 날』은 서울과 대학, 도회라는 공간에서 지식을 통해 진리를 찾는 과정과 중첩된다. 고향이 원본을 찾는 장소라면 대학은 좀 더 상징화된 진실의 공간, 지식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과정에서 상대적 결핍과 지식의 무력함을 발견할 뿐이다. 오히려 그는 길거리를 헤매는 고아 소년을 통해 진짜 삶을 체험하고 김형의 죽음을 겪으며 지식의 무위를 깨닫는다. 문자의 독파와 지식의 해독만으로는 진리 탐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 기쁜 젊은 날』에 조형된 8가지의 에피소드들은 진리를 탐색하는 각각의 지적 포즈와 간접적 체험의 알레고리적 양식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진리"를 발견하게 된 것은 바로 진리 찾기를 포기한 순간 마주친 창수령에서이다. 그는 절망과 환멸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그토록 찾고자 했던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발견은 절대적 미를 고스란히 재현(再現)하려는 욕망의 포기와 수긍으로 이어진다. 창수령 이전의 여로가 절대적 진리에 대한 강박적 추구였다면 그 이후는 한계 자체를 예술적 노에마로 받아들이는 수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이문열의 소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순도 높은 예술관을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는 절대적 진리가 예술을 통해 이해 가능한 가시적 영역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것, 현실의 결핍과 가난의 피로를 극복할 수 있는 욕망의 절대적 대상이 바로 예술임을 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젊은날의 초상』은 젊은 예술가의 절대적 진리에 대한 결락감과 그것에 대한 근원적 욕망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From a novel of 『The Portrait of the Days of Youth』, which was the form of trilogy of 『Estuary』, 『Our happy days of youth』 and 『that year`s winter』, a character of "I" was seeking the journey to find absolute truth. In 『Estuary』, I, who have already become the past and lost the original identity, checked the absence of truth in the hometown. The narrator, staying in the current, do not represent the past and the hometown to be romantic as absolute original. In 『Estuary』, hometown was meaningful in a process of seeking the truth, but that will never become the lost original to be confirmed. In the end, what I got at the homeland was a fantastic impossibility and disillusion. Meanwhile, in 『Our happy days of youth』, it showed the process of navigating thru the truth and knowledge, which consist of 8 episodes such as "The roots of despair", "fellow travelers", "what do we do", "Pub Jjeogeunote`s memories" "the life of love", "haettagi", "tight night" and "summer`s end" which overlapped each other with process of finding the truth through knowledge in the urban, Seoul and university. Hero, "I", thru the course of this, could only find a relative deficiency of fatigue and knowledge`s helplessness. Rather, he, thru orphan boy wandering through the streets, experienced the texture of real life and knew that truth`s exploration thru knowledge is impossible with brother Kim`s death. The 8 episodes in 『Our happy days of youth』 could show an each pose to explore the truth and allegorical forms of indirect experience. Importantly, he came to find the truth, which he had tried to seek, through despair and disillusionment. Such a finding was connected with the consent and the giving up of desire trying to reproduce the absolutely untouched beauty. If previous journey of Changsuryeong ridge was the compulsive pursuit of absolute truth, the later part was in the part of convincing the acceptance of the limitations in itself as artistic noema.

        • KCI등재

          현대문학 : 장정일 『아담이 눈 뜰 때』에 나타난 “미성년”의 의미

          강유정 ( Yu Jung Kang ) 배달말학회 2013 배달말 Vol.52 No.-

          장정일의 『아담이 눈 뜰 때 』는 전형적은 성정 소설중 하나로 평가 받아왔다. 『아담이 눈 뜰 때 』는 19새 재수생의 성적 일탈과 문화적 방랑을 포스트 모더니즘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정작 아담의 방황과 성장이 198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과 어떤 연관을 갖는 지 그리고 그 성정의 징후와 과정이 같는 차별성이 어떤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19세이라는 차별적 연령이 왜 포스트 모던한 방식의 성장으로 귀결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다는 의미이다. 우선 성장의 주체인 아담이 19세의 청년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대개 한국문학사에서 성장의 주체, 주인공들은 소년으로 호명되는 유소년기의 어린 인물들이었다. 세계를 자신의 언어 체계로 받아들일 수 없는 유소년 인물들은 혼란스러운 세계를 만나 혼동을 겪는다. 그런데, 보통 어린인물들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질문 자체를 성장의 과정으로 이해한고 만다. 성장 소설이 세상과의 화해로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장 소설의 주인공들은 공동체와의 화해를 모색하곤 했다. 하지만 장정일의 『아담이 눈 뜰 때 』에서 아담의 성장은 기존 질서나 세계와 화해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완성된다. 장정일은 ``화해``야 말로 성장서사의 이데올로기 장치(dispositivo)라고 말한다. 따라서 아담은 세상과 화해하는 것이 아니라 불화를 선언함으로써 성장을 마친다. 통합이 아닌 이탈로 성장을 완수하는 것이다. 아담의 성장 선언은 세계와의 연대가 아니라 세계의 부정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성장 서사와 구분된다. 『아담이 눈 뜰 때 』의 화자는 19세의 미성년이지만 지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이미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게다가 이 인물은 자신의 가까운 과거, 1년여 전의 사건들을 회고함으로써 무의식이나 향수로 각색되지 않은 생생한 의지적 기억으로 사건을 다룬다. 19세, 미성년 인물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철저한 자기 검증을 통한 정체성의 확립이다. 아담에게 있어 정체성의 확립은 기존 사회와의 형식적 화합이 아닌 자기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부정을 거친다. 『아담이 눈 뜰 때 』의 “나”는 결과로 산출된 “내”가 아니라 성찰적으로 기획된 “나”라는 점에서 기존의 성장 서사 속 인물들과 구분된다. 성찰된 기획으로서의 “나”는 『아담이 눈 뜰 때 』에서 혼돈과 방황을 글로 기록하는, 서술적, 논평적 정체성으로 자아를 성립해간다. 아담의 성장은 자신의 방황과 혼돈을 기록하고 정리할 수 있는 서술적 정체성의 발견으로 마무리된다, 아포리즘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이러한 서술은 특정한 사건과 경험을 자신의 시점을 통해 기록하는 서술적 정체성의 표지이다. 이는 한편 1980년대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새롭게 발명된 성장의 양상이기도 하다. 『아담이 눈 뜰 때 』의 “나”는 기존의 지식 체계(학교, 입시), 문화(대중문화, 예술) 등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서술함으로써 정체성을 획득한다. 비록 미성년이지만 아담은 글을 쓰는 주체, 서술적 주체로서 고유한 정체성을 찾아간다. 공동체가 요구하는 개인의 삶을 거부하고 단독자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서술적 정체성의 발견은 기존의 성장서사와 차별되는 반 성장의 서사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담은 190년대와 1980년대에 형성된 문화와 지식, 장치로서의 학교를 거부하며 90년대적이라고 불리는 하위문화의 교양적 가치를 발견한다. 1980년대를 문화자본과 지식, 공동체의 허위의식으로 논평함으로써 이데올로기적 성장의 질서를 거부하는 반성장의 주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논평적이며 서술적 정체성으로서의 “나”의 성장이란 공동체와 대중성에 대한 반대이며 1980년대식 연대적 정체성과 정반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즉『아담이 눈 뜰 때』의 “아담”이라는 19세 인물은 1980년대가 요구하는 성장을 거부하고 서술적 정체성으로서 단독성을 선언한, 새로운 개인의 출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Although he is under age, he, as the subject and narrator writing the novel, is described as the character with descriptive identity. Of course, “I” in the novel have experiences sexually and intellectually. But that is different from the aspect of traditional growing-up narration in which a character considers itself to be an internally immature person to harmonize in a social community. “I” in the novel mentally wanders to establish its own identity, rather than to reconcile with the consciousness of a social community. Finally, “I” in the novel discovers and establishes the writing self with descriptive identity, and as a result, resists the personal life required by the community and chooses to Live on its own as a single person. The novel 『when Adam opens his eyes』 by Jeong-il Jang has critically been considered to be the beginning of the literature in the 1990s in the point that it refuses the culture and knowledge created in the 1970s and 1980s, and a school as a device. Strictly speaking, the novel 『when Adam opens his eyes』 should be reconsidered in the points that it is the discussion against the growing-up in the 1980s, and that it criticizes the cultural capital and knowledge, and false consciousness of a community in the 1980s. That is because the growing-up of “I” in the novel that Adam chose as the descriptive identity is directly opposite to the growing-up of the social self in the 1980s, which is summarized into community and popularity. By suggesting the discussion of anti growing-up in the direct opposite perspective of the growing-up required in the 1980s, the novel 『When Adam opens his eyes』shows a new character who reflects on the newly planned self going beyond the characters in the 198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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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어교육 :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소설의 계몽성 연구-박완서의 「자전거 도둑」을 중심으로

          강유정 ( Yu Jung Kang ) 배달말학회 2014 배달말 Vol.55 No.-

          박완서의 「자전거 도둑」은 1979년 출간되었던 동화집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에서 6편을 추려 1999년에 재출간한 동화집의 표제작이다. 「자전거 도둑」은 7차 교육 과정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이후 현재 검인정교과서 16종 중 8종에 수록되어 있다. 박완서의 「자전거 도둑」은 작가 스스로 동화라고 밝혔다는 점에서 아동문학적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목적성과 교훈성이라는 점에서 아동문학은 교과서에 실리는 문학과 합치되는 것으로 오인되곤 한다. 「자전거 도둑」 역시 그런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자전거 도둑」은 중학교 국어과정에서 주로 ‘갈등’을 이해하고, 다루는 단원의 구체적 작품으로 제시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갈등은 서사구조의 일부로서의 갈등이기도 하고 사전적 의미의 갈등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에, 본고는 「자전거 도둑」의 교육적 적합성을 따져보는 한편 상투적 계몽성과 차별화되는 문학적으로 형상화와 미학적 완성도를 탐구해보고자 했다. 박완서의 「자전거 도둑」은 계몽성과 교훈성을 지녔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서술하거나 주장하지 않고, 비유와 서술, 간접제시 등을 통해 미학적으로 형상화해낸 작품이다. 이는 계몽적 주제에 대한 독자의 반감을 덜고 독자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따라서, 본고는 박완서 「자전거 도둑」의 미학적 형상화 과정과 수사학을 분석함으로써 그것의 교육적 가치와 계몽의 의의 및 한계를 재고하고자 했다. [Bicycle thief] by Wanseo, Park is a title piece of the reproduced collection of 6 children`s stories selected from children`s story collection titled [egg for egg] published in 1979. Since it has made its first introduction in 7th revised educational curriculum of Korean language for middle school, [Bicycle thief] is now contained in 8 out of 16 authorized textbooks. As a writer defined it as a children`s story, it has the cultural characteristic of children`s story. Sometimes, children`s story is misunderstood to be compatible with other literatures introduced in textbooks for its finality and didacticism and [Bicycle thief] is one of the cases. [Bicycle thief] is presented as a concrete literature to deal and understand ‘conflict’ in the class of Korean language for middle school. Conflict here refers to one narrative structure or the conflict itself as a dictionary meaning. Therefore, this study will analyze the suitability of [Bicycle thief] for education and its literary figuration and completeness in aesthetic ways that are different from conventional enlightening literatures. [Bicycle thief] by Wanseo, Park has enlightening and didactic features but it doesn`t directly describe or claim it but instead, it achieves aesthetic figuration through figure of speech, description and indirect presentation. This can encourage the readers to be involved in the subject of enlightenment without feeling hostile towards it. Therefore, this study will present educational value as well as meaning and limitation of enlightenment by analyzing the process of aesthetic figuration and rhetoric of [Bicycle thief] by Wanseo,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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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 "한국영화 7선": 2015년 한국영화를 말하다 : 홍상수 <자유의 언덕>의 전략적 모호성에 대하여

          강유정 ( Yu Jung Kang ) 한양대학교 현대영화연구소 2015 현대영화연구 Vol.11 No.1

          <자유의 언덕>은 모호하다. 여기서 모호함과 애매함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화용적 언어학에 있어 애매함은 중의성(ambiguity)과 맥락을 같이 한다. 루빈의 술잔처럼 하나의 표상이 두 개 이상으로 해석 가능할 때, 그것이 바로 애매한 것이다. 반면, 모호한 것(vagueness)은 판단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언술을 지칭한다. 가령, 누구는 예쁘다, 나쁘다와 같은 서술어와 같은 경우를 들 수 있다. 예쁘다나 나쁘다는 주관적인 서술이기 때문에 객관적 지표를 기준으로 내세울 수 없다. 홍상수 영화를 동시대의 다른 영화들과 구분케 하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서사적 탐험 정신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서사적 탐험이 오락적 즐거움을 위한 단순한 조작이 아니라 인간의 심연과 그 심연의 모순을 탐구하는 과정으로 도입된 조작이라는 점이다. 프랑스 영화학자 샤를 테송이 말하듯, “홍상수를 유니크하게 만드는 것은 이중 구조나 원형 구조, 시간의 교차 등 정교한 형식적 실험 등이 모두 캐릭터의 탐구에 복무하는 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홍상수의 서사 실험에서 인물 즉 캐릭터는 희생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사적 혼돈은 인물에 대한 호기심과 의아함을 증폭시켜 전형적 인물에게 허용될 수 없는 관심을 부여한다. <자유의 언덕>이 지닌 모호함의 역할도 마찬가지이다. <자유의 언덕>은 서사적 배치나 줄거리의 재구성이 어렵고 인물의 일관성도 찾기 힘들다. 즉, 관습적인 서사를 통해서 <자유의 언덕>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호함은 영화에 대한 매혹을 반감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밝혀질 수 있는 삶의 어떤 심연을 가리킨다. 홍상수의 <자유의 언덕>을 가로지르는 모호성을 우연이 아닌 전략적 기획의 결과로 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모호성의 첫 번째 전략은 서사적 재구성에 대한 의도적 위반이다. 위반의 대상은 전통적이며 관습적인 서사 구조의 모형, 즉 좋은 플롯의 전형이다. 좋은 플롯은 관객으로 하여금 깊은 몰입감을 유도해 공포와 연민을 갖게 함으로써 결국 실제의 관객은 안전한 무대 바깥 즉 허구 바깥의 삶에 살고 있다는 충족감을 얻게 한다. 그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고전적인 플롯의 효용이다. <자유의 언덕>의 서사적 위반이 이입이나 공감을 지향하는 전통적 서사의 전복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유의 언덕>은 철저하게 동화할 수 없는 허구적 서사를 추구한다. 이 추구는 나레이션과 객관적 시점의 충돌을 통해 한층 더 강화된다. 외국어로서의 영어를 주요 의사소통 수단으로 선택한 이유도 같은 맥락 속에 있다. 모국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의사 표현의 수월성에 있다. 외국어가 유발하는 의사소통의 빈 곳, 빈 틈은 곧 이입이나 동화의 어려움을 유발한다. 결국, <자유의 언덕>의 모호성은 자동화된 삶을 낯설게 만드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선택을 통해 우리는 일상의 기계성을 타파하고, 너무 익숙해서 감각이 둔해진 삶을 낯설게 체험하게 된다. 관습과 질서를 무너뜨리고, 흐트러뜨림으로서 관객들은 일상에 대한 불편함을 되찾는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끊임없이 동화와 이입을 요구하는 상업적인 서사와 구분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환각을 파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감각을 돌려주는 것, 그래서 한 번 쯤 몰입이 아닌 각성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홍상수 <자유의 언덕>이 지닌 모호성의 미학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One of these words to describe Hill of Freedom may be vagueness. There, however, it is necessary for us to know differences between uncertainty and vagueness. When it comes to pragmatic linguistics, uncertainty is a continuance of ambiguity. When this phenomenon has more than two interpretations as Rubin`s vase does, you can then say that the phenomenon is ambiguous. On the other hand, vagueness refers to this discourse that does not have anything to actually judge it from others. For instance, predicates such as “One is pretty” or “One is bad” are said to be vague because those predicates do not have any objective indicators as “One is pretty” or “One is bad” is only some subjective description but nothing else. One of the greatest features to discriminate films by Sang Soo Hong from others is how Hong is willing to go for narrative explorations. What is important there is, those narrative explorations are not tried simply for pursuing entertaining pleasure but for investigating humans` abysses as well as their contradictions. As Charles Tesson, a French film scholar, has said, “what makes Sang Soo Hong unique is how he wants his delicate, formal experiments and everything from dual structures to circular structures and time-cross to focus on every character in his films” When Sang Soo Hong works on the narrative experiments, Hong does not let figures, in other words, characters, get sacrificed. Instead, such narrative confusion increases audiences` curiosity and doubts in relation to the characters which eventually leads the audiences to have this particular interest in the figures in Hong`s films. The interest there is what the audiences have never had when it comes to these conventional characters. As for the vagueness of Hill of Freedom, its responsibilities do not differ from these of other vagueness. In Hill of Freedom, audiences find it difficult to understand narrative arrangements as they have hard time reconstructing a plot and keeping up with inconsistency of the characters. In short, it is impossible for the audiences to 100% understand Hill of Freedom through conventional narrations. Despite that, such vagueness does not halve how people get attracted by the film but invites them to realize these abysses of their lives which could be revealed through a media called film. That is why the vagueness constantly observed in Hill of Freedom by Sang Soo Hong is regarded not as a coincidence but as an outcome of strategic planning. In terms of the first strategy in relation to the vagueness, Hong intentionally violated narrative reconstructions. What Hong wanted to violate was these traditional, conventional models of narrative structures which were, in other words, good plots. Good plots basically lead the audiences to get themselves really immersed in stories which makes them to have these senses of fear and sympathy and in the end, the audiences get satisfied with a fact that they are living in a safe place outside a stage, a fictional world. That is what defines the use of conventional plots, as Aristotle had said. Again, what has been discussed so far is another reason for why the narrative violation of Hill of Freedom is understood as an overturn of the traditional narrations which have been always seeking empathy or sympathy. Hill of Freedom looks for a fictional narration that does never get assimilated. Such pursuit of the film gets intensified even more greatly through a strategy called sticking to narrations and objective points of view which is why Hong chooses English as a main tool for communication. The key responsibility of a mother tongue lies in how it makes it easy for one who speaks the language to communicate with others. When everyone speaks in a foreign language, absences of communication make it hard for one to get immersed in or get assimilated into. In the end, the vagueness of Hill of Freedom is considered a strategic choice to make an automated life feel unfamiliar. By making such choice, we break automation of our daily lives and come to realize how new the lives could feel. The lives there have been so familiar that we have been the least sensitive about them. By disturbing and distracting customs and orders, the audiences find discomforts in their everyday lives, and that is what definitely separates the narrations of the film from commercial narrations which have been continuously demanding assimilation and empathy. Not simply selling hallucinations but reminding the audiences of uncomfortable senses. Giving the audiences chances to wake up but not to get immersed in. They are what, this study believes, is aesthetic value of the vagueness of Hill of Freedom by Sang Soo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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