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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 근대 학문 형성기의 국어국문학 연구 ; 한국 근대 문학사 연구의 형성 과정 -당대(當代) 문학을 규정하는 방식의 변화를 중심으로-

        강용훈 ( Yong Hoon Kang ) 우리어문학회 2014 우리어문연구 Vol.49 No.-

        식민지 조선에서 ‘문학’(혹은 ‘예술’)과 역사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고찰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였다. 이러한 연구의 선구적인 업적은 안확의 『조선문학사』에서 이루어졌다. 안확은 ‘문학의 기원·변천·발달을 질서 있게 기재’하는 작업을 ‘문학사’로 규정한 후 문학사를 통해 국민의 심적(心的) 현상이 변천하고 발달한 과정을 살펴보려 했다. 또한 『조선문학사』의 「최근 문학」 부분에서 안확은 갑오경장 이후 신문학(新文學)이 형성된 과정을 개략적으로 분석하며 당대의 문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당대의 문학을 문학사적 논의에 포함시키려고 했던 시도는 1930년대의 대표적 문학사 관련 연구인『조선소설사』(김태준)에서도 발견된다. 안확과 김태준의 문학사 관련 연구에 담겨 있는 ‘최근 문학’ 부분은 그들이 문학과 관련된 과거의 문헌들을 실증적으로 정리하는 데에만 머무르려 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문학사 연구를 통해 당대의 문학적 질서에 대한 비판적 인식 또한 드러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확과 김태준이 당대의 문학적 상황을 인식하는 방식, 그리고 당대 문학사를 서술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존재했다. 이 논문은 이러한 차이들 중 김태준이 저술 속에 밝히고 있는 참고 문헌들에 주목했다. 이를 통해 1920년대의 다층적 비평 담론이 1930년대 『조선소설사』 서술에 영향을 미쳤음을 분석했다. 김태준의 『조선소설사』는 당대(當代) 문학에 대해 서술하는 과정에서 박종화의「대전(大戰) 이후 조선의 문예운동」과 김기진의 「10년간 조선문예의 변천 과정」을 많은 부분 참조했다. 김기진과 박종화는 조선 근대문학의 역사적 단계를 설정했으며, 개별 시기 조선 신문예운동을 대표하는 작가 및 사조를 제시했다. 김기진과 박종화는 1920년대 문예비평의 성과를 발전적으로 계승하며 조선의 당대 문학을 구성했던 구체적 개별 작품들, 그리고 그 작품을 발표했던 작가들에 주목했던 것이다. 김태준의 『조선소설사』는 김기진과 박종화의 담론이 대학 제도의 영향 하에 있던 ‘문학사 연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김태준의 『조선소설사』는 조선문학의 개별 장르에 대한 통시적 서술을 시도한 저작이자 조선문학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제도화된 과정을 보여주는 저작이기도 했다. 그 저작 안에는 조선 문학의 당대(當代)에 대한 관심이 깔려 있었다. 그 관심 때문에 김태준은 김기진과 박종화가 집필한 다양한 비평 관련 자료를 참고했던 것이다. 조선 근대문학사는 이처럼 학문연구와 문예비평의 경계에서 서술되기 시작했다. 당대의 문학/문화가 변화하고 있는 양상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 양상을 비평적으로 성찰하고 싶은 욕망은 근대문학사 서술을 형성하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 원동력은 대학 제도의 영향 하에서 문학(혹은 문학의 개별 장르)의 통사를 서술하려고 했던 일련의 작업들과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조응하고 있었다. In the colonial Chosun, it was in the 1920’s whe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literature (or ‘art’) and the history started to be contemplated properly. The pioneering achievements of such studies were done in the Ahn, Hwak’s “The History of Chosun Literature”. Ahn, Hwak was to look into the process of change and development of the nationals’ psychological phenomena through the history of the literature. In addition, Ahn, Hwak was revealing his position on the contemporary literature in “The History of Chosun Literature”. Kim, Tae-joon’s The History of Chosun Novels, which is the representative study on the history of the literature in the 1930’s also included the contemporary literature in the discussion of the history of the literature. Ahn, Hwak and Kim, Tae-joon were to reveal their critical perception on the contemporary literary order through the studies on the history of the literature. However, there were differences between the methods to perceive the contemporary literary situation and to describe the contemporary literary history by Ahn, Hwak and Kim, Tae-joon. This thesis paid attention to the bibliographies that Kim, Tae-joon discloses in his writings out of such differences. With the help of the bibliographies, the result of our analysis showed that the multilayered criticism discourses in the 1920’s had influenced the writing of The History of Chonsu Novels in the 1930’s. Kim, Tae-joon’s The History of Chosun Novels consulted Park, Jong-hwa’s “The Literary Movement in Chonsun after the First World War” and Kim, Ki-jin’s “The Process of Change of Chonsun Literature for 10 years” in many parts in the process to describe the contemporary literature. Kim, Ki-jin and Park, Jong-hwa developmentally succeeded to the outcome of the literary criticism in the 1920’s and described the history of the new literary movement in Chosun. On the contrary, Kim, Tae-joon’s The History of Chosun Novels is the writing that attempted diachronic description of the individual genres of the Chosun literature. In addition, it was the writing which showed the process of institutionalization of the academic researches on the Chosun literature. In his writings, there lies the interest in the time of Chosun literature. Because of the interest, Kim, Tae-joon consulted the various references related to the criticism that Kim, Ki-jin and Park, Jong-hwa wr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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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평의 형성 과정과 월평 방식의 변화 양상

        강용훈 ( Yong Hoon Kang )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2011 한국문예비평연구 Vol.- No.34

        1910년을 전후로 발표된 문학에 관한 논의들은 보편적 차원의 문학에 대해서만 언급했을 뿐, 조선문학의 현재적 상황에 대해서는 면밀하게 분석하지 않았다. 당대의 조선문학을 비평 대상으로 창출해내는 과정은 1920년대 월평의 도입을 통해서 가능해졌다. 월평이 시도된 1920년대 초반은 문예비평이 개별적 장르로 인지되기 시작하던 시기였으며 월평의 도입은 문예비평이 여타의 글쓰기로부터 분화된 과정과 맞물려 있다. 또한 월평 쓰기는 1920년대 전반에 걸쳐 지속되었기에 월평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는 일은 문예비평의 변화 양상을 분석하는 데 유효한 참조점을 줄 수 있다. 이 글은 ① 『창조』·『백조』·『폐허』를 중심으로 월평이 도입되던 1920년대 초, ② 『개벽』에 월평이 정기적으로 연재되고 『조선문단』 합평회가 진행되던 1925년, ③ 『개벽』이 폐간된 이후 『조선지광』에 문예시평이 연재되던 1927년에 주목하여 월평의 형성 과정을 서술했다. 그 과정에서 본 연구는 월평 방식의 변화 양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월평은 1개월이라는 제한적 시간 내에 발표된 복수의 작품을 비평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 시대의 비평적 글쓰기와는 변별된다. 월평 쓰기가 시도되었다는 것은 비평적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복수의 작품이 발표되었으며, 그 작품을 실을 수 있을 만큼의 매체가 간행되었다는 점을 가리킨다. 1920년대 초 월평은 3·1 운동을 전후로 식민지 조선의 매체 환경이 변화했기에 도입될 수 있었다. 초창기 월평은 문예 지면이 확대된 상황에 비판적으로 대응하며 동시대 작품들 중 미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선별하여 소개하려고 시도했다. 월평의 대상이 될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은 문단의 경계를 가시화하는 작업과도 연결된다. 1925년에는 『개벽』 문예란에 월평이 정기적으로 연재된 동시에 『조선문단』 합평회가 진행되었다. 월평이 제도화된 1920년대 중반, 평자들은 자신의 미적 판단을 타인과 독자들에게 충실히 전달하려 시도했으며 그 과정에서 평자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본 연구는 각기 다른 문학관을 지닌 평자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한 ``실감``이라는 용어에 초점을 맞추어 당대의 평자들이 지니고 있던 공통감각을 살펴보려고 시도했다. 공통의 비평 술어 ``실감``은 당대의 평자들이 ``사실과 같은 느낌``을 가져다주는 소설을, 가치 있는 소설로 판단하고 있었음을 드러내준다. 월평을 통해 평자들이 확립해낸 공통의 언어적 지반은 김기진과 박영희 사이에 벌어진 내용·형식 논쟁의 기원을 이룬다. 이 글에서는 김기진과 박영희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공통의 비평 술어였던 ``실감``의 위상을 재정립하려는 시도로 해석했다. 내용·형식 논쟁이 진행되던 1927년, 『조선지광』에는 「문예시평」이라는 이름 아래 지속적으로 월평이 실렸다. 『조선지광』 월평의 대상은 문단 제도·문학담론·연극과 영화와 같은 공연예술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조선지광』의 문예시평은, 김기진과 박영희의 내용·형식 논쟁에서 도출되었던 다층적 문제의식을 이어받지 못했고 개별 작품 속에 방향 전환 담론의 흔적이 담겨 있는지의 여부에만 초점을 맞췄다. 작품비평의 틀을 표준화된 원리에 종속시켜 버린 『조선지광』의 「문예시평」의 문제점은 개별 작품이 만들어내는 감각이나 정서의 층위를 탐색하지 못했던 프로문학 비평의 한계를 드러내준다. This study aims to analyze the formation of monthly-review and changeable aspects of critical method. The discourse of literature mentioned universal dimension of the literature in 1910s. But it didn`t analyze contemporary situation of Chosun`s literature. The monthly-review made contemporary literature the object of criticism. And the monthly-review lasted during 1920s. So to analyze the formation of monthly-review becomes a reference point for studying about literature criticism. This study describe a formation process of monthly-review three step. First this study focus on the early part of 1920s. The monthly-review of this period had been affected by extension of media. The monthly-review of this period tried to select a work which is the aesthetic value. Second this study attention to the year of 1925. In this year 『Gae-Byeok』 published serially the monthly-review and 『Chosunmundan』 began a meeting for a joint review. 『Gae-Byeok』 and 『Chosunmundan』 referred to each other. So the critics reflected on one`s own criteria. In the middle of 1920s the critics of the monthly-review tried to convey one`s own aesthetic judgement to other critics. So the critics use the common term. ``SilGam`` is a typical case of commom term. ``SilGam`` means not only reality but also visual vividness. ``SilGam`` was interpreted to common sense of 1920s in this study. A different position of ``SilGam`` made an argument about form and contents between Kim, Ki-jin and Park, Young-hee. In 1927, 『Chosunjikwang』 published serially the monthly-review. The objects of the monthly-review has been extended to literary world · literary discourse · drama and movies. But the monthly-review of 『Chosunjikwang』 normalized criticism of the work. So the monthly-review of 『Chosunjikwang』 could not explore a sense and feeling of the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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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청년들의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과 교통 없는 공동체

        강용훈(Kang, Yong-hoon) 우리문학회 2015 우리文學硏究 Vol.0 No.46

        1930년대 함대훈의 장편 소설은 다층적 신여성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 중 함대훈 소설이 궁극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공동체 운동에 뛰어드는 신여성 형상이다. 『폭풍전야』와 『무풍지대』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은 야학이나 협동조합운동과 같은 공동체 운동에 참여하며 연애 관계로 인해 생긴 상처와 갈등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다. 공동체 운동에 뛰어드는 신여성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 공동체의 구현 과정과 연애서사를 동시에 소설속에 배치했다는 점은 함대훈 장편소설을 여타의 대중소설과 변별 짓게 만드는 요소다. 함대훈 소설 속에 표상된 공동체는 야학과 협동조합으로 나뉘며, 그 중 협동조합은 함대훈의 형인 함상훈이 주되게 활동했던 협동조합운동사의 실천양상을 많은 부분 재현하고 있었다. 함대훈 장편소설에 형상화된 공동체 운동은 시장이 만든 교환 관계의 기반 위에서 호혜적 관계를 취한다는 점에서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의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어소시에이션은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시장 경제를 닮은 반면, 호혜와 상호부조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공동체와 닮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협동조합을 비롯한 공동체 운동에 참여하게 된 인물들의 모습은 온전히 단독적인 주체로 형상화되고 있지 않다. 공동체 형성 과정에 참여한 인물들 사이에는 비대칭적 권력 관계가 내재되어 있으며 작가는 그 관계 자체에 대해 의문시하고 있지 않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 첫 번째로, 공동체의 이념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젠더화(성별화)의 문제를 이 작품은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지 않다. 두 번째 문제는, 함대훈의 소설에 나타나고 있는 공동체가 외부와의 교통(communication)이 배제된, 폐쇄적 형태로 형상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외부와의 교통,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감정적 갈등이 사라져 버렸을 때 그 공동체는 생명력을 상실하게 된다. 함대훈 장편소설에 형상화된 공동체는 식민지 시기 실험된 협동조합의 문제의식을 재현하고 있지만, 그 재현의 과정속에서 공동체는 생명력을 잃은 채 도식적 형상으로 고착되어 버린 것이다. The full-length novel of Ham, Dae Hun in 1930s visualized various kinds of appearance of new women in multiple layers. Among various shapes, his novel ultimately highlighted the shape of new women leaping into the community movement. Female characters appearing in 『The night before the storm』 and 『The zone without wind』 got free from scratches and conflicts through a romantic relationship by participating in community movement such as night school or cooperative movement. The following factors distinguish his novel from other popular novels. He showed the appearance of new women leaping into the community movement and placed the process of formation of the community and a love story in his novel at the same time. The community represented in his novel reproduced many aspects of the cooperative movement where his brother, Ham, Sang Hun, actively worked. As the community movement represented in his novel gave mutual benefits on the basis of exchange relationship made by the market, it shared the issues of association. As the association is based on free contract of individuals, it is similar to the market economy. In addition, as it is based on mutual benefit and assistance, it is similar to the community. However, the appearance of characters participating in the community movement including cooperative association did not represent singular individuals. A variety of power relations were present in those who participated in the process of formation of the community and the author did not ask questions about the relationship itself. First, this novel did not criticize the gendered issues emerging in the process of implementing the ideology of the community. Second, the community in his novel was shown in a closed form excluding communication with the outside. When the communication with the outside and the emotional conflicts between internal members disappear, the community will lose the vitality. The community formed in his full-length novel reproduces the critical mind of cooperative association which was tested in the colonial era, but the community is stuck in the schematic shape as it is losing a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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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개벽사 발간 잡지의 문예 담론과 식민지 조선의 매체 지형 - 『혜성』(1931~32), 『제일선』(1932~33), 속간 『개벽』(1934~35)을 중심으로 -

        강용훈 ( Kang Yong Hoon )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2018 比較文化硏究 Vol.51 No.-

        이 연구는 『혜성』, 『제일선』 및 속간된 『개벽』을 대상으로 1930년대 개벽사 발간 잡지에 나타난 문예 담론을 분석했다. 1930년대 『혜성』, 『제일선』 및 속간된 『개벽』지의 문예 담론은 문화 및 사회 담론과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 잡지에 나타난 문예 담론을 분석하는 작업은 개벽사가 1930년대 조선의 사회ㆍ문화를 어떻게 바라보았으며,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려 했는지를 드러내준다. 1931년 발간된 『혜성』은 대중운동의 방향성을 고민한 시사 및 사회 문제 관련 기사가 많이 실렸던 반면, 상대적으로 문예면에 큰 역할을 부여하지 않았다. 백철이 개벽사에 입사한 1931년 12월부터 『혜성』에는 조선문단을 바라보는 시각이 명시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 시각은 『혜성』에 함께 실렸던 여타의 사회 관련 글들과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혜성』의 여러 필자들은 자본주의 사회ㆍ문화의 일반적 모순과 조선 사회ㆍ문화의 특수성을 동시에 인식한 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선을 구축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혜성』은 지속되는 검열을 비롯한 다층적 요인으로 인해 1932년 5월 제호를 『제일선』으로 바꿨다. 『제일선』에는 농민이나 노동자와 같이 조선의 운동을 이끌 계급적 주체를 호명하는 어휘가 사라진 대신, 그 자리를 ‘문화’와 ‘문예’가 대체하고 있다. 그 결과 『혜성』에는 축소되었던 문예 지면이 『제일선』에서는 확충된다. 『혜성』에 실린 문예 관련 글들과 비교해보면 『제일선』은 조선문화의 후진성을 한층 더 강조했다. 이는 신진작가의 등용을 통해 조선문학 전반을 재편하려고 했던 『제일선』 문예면의 기획의도와 맞물려 있다. 위기 및 후진성을 부각시킬수록 그 위기와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주체, 즉 신진작가를 등장시킬 필요성 또한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진작가를 등용하여 조선문단을 재편하려고 한 『제일선』의 문제의식은 변화하는 매체 환경 속에서 제대로 구현될 수 없었고 『제일선』은 1933년 3월 이후 발간되지 못했다. 개벽사는 1934년 『개벽』을 속간하며 조선문화의 방향성을 변화시키려는 의도를 다시 표출했지만, 세계체제 및 조선의 급변하는 정세를 파악하여 조선의 사회·문화 전반을 변화시키려고 했던 『혜성』의 문제의식, 문화 영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전선을 구축하려고 했던 『제일선』의 문제의식은 온전히 지속되지 못했다. 개벽사는 결과적으로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매체 지형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고 1930년대 후반 조선사회의 공론장에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까지 개벽사는 변화하는 매체 환경에 조응하며 이를 비판적으로 전유하려는 시도를 해나갔다. 그 시도가 지니는 의의와 한계를 면밀하게 검토하는 일은 1930년대 식민지 조선 사회가 지니는 입체성을 재조명하는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Hyesung’ and ‘Jeilsun’ are media that reveal the new searches of the Gaebyeoksa Publishing Company of the 1930s. However, studies in the past did not sufficiently analyze their significance. Furthermore, there are no analyses on how the critical minds of ‘Hyesung’ and ‘Jeilsun’ were linked to ‘Gaebyeok’, which continued publications in 1934. The 1930s when ‘Hyesung’ and ‘Jeilsun’ were published, was a time where the media of colonial Chosun was rapidly changing, and it was a time where literary magazines were increasing in quantity. In the 1930s, Gaebyeoksa attempted to actively respond to such changes reflected in the media. This was demonstrated through the publication of the new media ‘Hyesung’ and ‘Jeilsun’ and continuing publication of the ‘Gaebyeok’ magazine in 1935. This study analyzed the literary discourses shown in the magazines published by Gaebyeoksa in the 1930s based on ‘Hyesung’, ‘Jeilsun’, and the continued publication of ‘Gaebyeok’. Through such analysis, this study examined how the magazines published by Gaebyeoksa perceived the culture and literature of colonial Chosun in the 1930s and in which direction it tried to reorganize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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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속 개념의 변천 양상에 대한 역사적 고찰

        강용훈 ( Yong Hoon Kang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4 大東文化硏究 Vol.85 No.-

        한국에서 ``통속``은 영어 popular 및 common과 유사하게 중층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통속``은 때로는 공통적인 것을, 때로는 저급한(vulgar) 것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 것이다. 그렇기에 ``통속`` 개념의 역사를 추적하는 작업은 ``공통적인 것``과 ``저속한 것``의 경계를 탐색하는 일과 연관된다. 이 논문은 일상 속에 사용된 ``통속``이라는 말의 용례, 문학 담론에서 사용된 ``통속``을 포괄적으로 분석하며 ``통속``개념의 의미 변화를 추적하려 시도했다. ``통속``은 1910년 이후 빈번하게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이 시기 ``통속``은 ``강연``혹은 ``교육``과 같은 말들과 결합되었다. 이때의 ``통속``은 그 강연에 참여할 청중의 성격을 드러내는 말이었으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어법,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어법을 의미하기도 했다. 근대 초기의 ``통속`` 개념 안에는, 특정 계층에게 점유되어 있던 지식과 언어를 공통의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끔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는 ``통속강연`` 외에도 ``통속소설``, ``통속문학``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사용되었으며 1920년대 중반에 이르면 ``통속문학``은 ``대중문학``과 동일한 의미로 인식된다. 이때 ``통속``은 대중의 일반적이면서도 불완전한 취향(taste)을 드러내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1930년대 후반에는 저널리즘의 융성과 함께 ``통속성``의 지반을 탐색하려는 논의가 활발해졌다. 그 결과 ``통속``은 대중들이 지니고 있는 상식(commone sense)과 연관된 말로 규정되기도 했다. 해방 이후 ``통속``은 일상생활에서 ``저급``의 의미로 주로 사용되었다. 해방 이후에 는 ``대중`` 개념이 해방 이전 ``통속``이 담당했던 의미 역할을 대신 맡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는 다수 사람들의 힘을 결집시켜 사회적 세력을 재편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게 된다. ``교육/강연``이나 ``소설/문학``과 주로 결합되는 ``통속``이라는 용어보다 ``국민`` 혹은 ``인민``과도 긴밀하게 결합될 수 있는 ``대중`` 개념이 해방 직후 빈번하게 사용된 원인 또한 여기에 있었다. 남북한에 각각 별개의 국가가 성립된 이후인 1950년 ``순수문학``(bells-lettres)과 ``대중문학``의 대립이 부각되면서 ``통속``은 다시 논의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백철과 조연현으로 대표되는 이 시기의 비평가들은 ``통속소설``을 당대의 소설이 저급화된 상태로 규정하는 데에만 머물렀다. 그들의 논의는 문학적 담론의 장에서 ``통속`` 개념이 이해될 수 있는 지평을 협소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A Korean word ``TONG-SOK`` is used in a double sense. It can stand comparison with an English word ``popular`` or ``common``, but sometimes it means ``vulgar.`` Tracing the conceptual history of ``TONG-SOK`` is identifying a boundary between commonness and vulgarness. This study comprehensively analyzed what Koreans have meant by the word in their daily lives or literary discourses. The word ``TONG-SOK`` began to be used frequently from 1910. In those days, the word tended to be used with a word ``lecture`` or ``education.`` In that case, the word impli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audience to attend the lecture. In addition, it functioned as phraseology that the most people were using and may come up to more people. About that time, the word ``TONG-SOK`` was used as a prefix to ``novel`` and ``literature`` in addition to ``lecture.`` Then, since the mid-1920s, TONG-SOK literature had been the same as popular literature. The word ``TONG-SOK`` used herein was to show the public`s common and incomplete taste. In the late 1930s, the word was actively discussed with the development of popular culture. During this period, the word used to be recognized as a common sense. After liberation, the word ``TONG-SOK`` tended to mean ``vulgar.`` It is because the concept ``mass`` substituted for the semantic role of ``TONG-SOK.`` In 1950 when there was an emerging conflict between belles-lettres and popular literature, the ``TONG-SOK`` began to be discussed again. However, the critics of those days regarded TONG-SOK novels only as vulgarized novels. Eventually, their discussion narrowed a prospect in discussions about the concept ``TONG-S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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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용어사전의 형성과 전후(戰後) 문학 관련 개념들의 재편 -식민지 시기 문학용어 정리 작업과의 (불)연속을 중심으로-

        강용훈 ( Kang Yong-hoon )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2016 사이 Vol.21 No.-

        이 연구는 식민지 시기의 문학 용어 정리 작업인 『개벽』의 「중요술어사전」(1923), 『신인문학』의 「신문문예사전」(1934), 『인문평론』의 「모던 문예사전」(1939~1940)에 담겨 있는 문제 의식을 살펴본 후, 이를 해방 이후 편찬된 단행본형태의 문학용어사전 『현대세계문학사전』(1954), 『세계문예사전』(1955)과 비교하며 문학용어사전의 형성 과정을 재구성해보려고 했다. 문학용어사전을 통해 이 논문은 해방전후 문학 관련 개념들이 어떻게 재편되었는지를 탐색하려고 했다. 식민지 시기 편술되었던 「중요술어사전」, 「신문문예사전」, 「모던문예사전」은 모두 잡지에 연재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문예용어를 정리하는 작업은 `사전`으로 지칭되었지만 식민지 시기에는 그 작업의 결과가 단행본의 형태로 발간되지는 않았다. 1954년 곽종원이 편술한 『현대세계문학사전』, 백철이 대표 편술한 『세계문예사전』에 이르러서야 문학용어사전은 오늘날과 같은 서적 형태로 간행되기에 이른다. 이 논문은 식민지 시기 개별 문학용어 정리 작업의 문제의식 및 그 용어정리 작업의 수행적 맥락을 살펴본 후, 해방 이후 발간된 단행본 형태의 문학용어사전이 그 문제의식과 어떻게 연결/단절되는지를 추적했다. 식민지 시기 문학 용어 정립 작업을 대표하는 『개벽』의 「중요술어사전」은 1923년 『개벽』에 `문학부`(1회)와 `사상부`(2회, 3회)로 나뉘어 연재되었다. 「중요술어사전」은 표면적으로 당대에 유통되고 있던 문학 및 사상 관련 용어의 의미를 정립하는 저작이었지만, 그 편술 작업의 이면에는 당대의 조선문학에 운동성을 부여하려는 편술자의 의도가 내재되어 있었다. 「중요술어사전」을 편술한 박영희는 역사적 운동을 개념화한 `~ism` 관련 어휘들을 전유하며 확장된 기대지평을 창출하려고 했다. 이후 문학용어 정립 작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매체는 1930년대 후반의 『인문평론』 이었다. 이 시기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에서 `동아 신질서`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게 일어난 때이며 『인문평론』 역시 그러한 담론들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시국과 관련된 어휘들을 소개하면서도 그 경계에서 문예용어, 혹은 비평적 용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 그 자리에 바로 『인문평론』의 「모던문예사전」이 놓여 있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55년 단행본으로 발간된 『현대세계문학사전』 및 『세계문예사전』 은 표면적으로는 세계의 문예지식을 망라하는 백과사전식 구성을 취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문학용어 역시 민족(어)문학 단위로 재편되고 있던 상황이 놓여 있다. 민족문학 단위로 분화된 용어들을 연결시켜 주고 있는 것은 문예사조와 관련된 어휘들이다. 1920년대 『개벽』의 「중요술어사전」에 수록되어 있던 `~ism` 관련 어휘들의 대부분은 두 사전에도 재수록되어 있다. 「중요술어사전」의 어휘들이 상당부분 한국전쟁 직후 발간된 문학용어사전에 계승된 것과 달리, 『인문평론』의 「모던문예사전」에 수록되어 있던 용어들은 많은 부분 그 사전들에 수록되지 않았다. 「모던문예사전」의 핵심적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던 `교양`, `세대`, 그리고 김남천이 정리했던 `모랄`, `세태소설`, `풍속`, `전형`과 같은 용어들에도 『세계현대문학사전』 및 『세계문학사전』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한국전쟁 직후의 문학용어사전이 재구성하려고 했던 민족문화는 1930년대 후반 조선문학의 고민들과 온전히 대면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 비로소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대신 이 사전들은 한국전쟁 전후 재편된 문단 제도, 즉 격렬한 좌우 대립의 결과로 탄생한 문단 제도 관련 어휘를 상당 부분 수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휘를 서술하는 두 사전의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곽종원의 『세계현대문학사전』이 냉전적 질서가 야기한 좌우대립구도를 문학용어사전의 형태로 재생산하려 했다면, 백철이 대표 편술한 『세계문예사전』은 그 구도와 거리를 둘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고 있었다. This study was conducted to review the problems that compilers realized in the process of arranging and defining literary term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attempted to resolve, based on `Dictionary of Important Predicates (1924)`, `New Writer Literature Dictionary (1934)`, and `Modern Literature Dictionary (1939 - 1940)` . In addition, it was to reconstruct the compilation of the dictionaries by comparing them with two dictionaries, `Modern World Literature Dictionary (1954)` and `World Literature Dictionary (1955)` that were published in book form after independence. With the foregoing, this study aimed to identify how literature-related concepts have been redefined before and after independence. The dictionaries of literature terms compiled during the colonial period had one thing in common; they were serialized in magazines. All the glossaries were called `dictionary`, but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ey could not be published in book form. The dictionaries of literature terms began to be published in book form, like those of today, as `Modern World Literature Dictionary` was compiled by Jong-Won Gwak in 1954 and `World Literature Dictionary` by Cheol Baek. This study reviewed the respective problems that compilers realized while arranging and defining literary terms during the colonial period and attempted to resolve, as well as to track how their realization and attempt influenced the dictionaries of literature published in book form after independence. `Modern World Literature Dictionary` and `World Literature Dictionary` were published in book form between 1954 and 1955 after independence. Out of their names, however, they reflected social and cultural changes that occurred from independence to Korean War. Ostensibly, the two dictionaries take the form of encyclopedia including all literary knowledge in the world, but internally they rearrange literary terms according to the unit of national (-language) literature. The dictionaries of literature published from 1954 to 1955 show multilayered knowledge on national literature so as to reorganize national culture of those days. The terms, divided as to the unit of national literature, are interconnected with each other by vocabularies related to literary trends. The terms, including a suffix `ism`, were contained in `Dictionary of Important Predicates` in the 1920s and also were contained in the two dictionaries again. The vocabularies in `Dictionary of Important Predicates` are mostly grounded on the dictionaries of literature published after independence, but on the contrary to this, the terms in `Modern Literature Dictionary` published in the late 1930s were not contained in the dictionaries of literature published after independence. It shows that the dictionaries of literature published after independence did not squarely face the trace of Chosun literature in the late 193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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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전후 함대훈 소설에 나타난 ‘러시아’ 표상 연구

        강용훈 ( Kang Yong-hoon )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2016 比較文化硏究 Vol.44 No.-

        식민지 시기 함대훈은 러시아 문학을 자신의 소설 창작에 반복적으로 활용했다. 그 중에서 투르게네프의 소설 『그 전날 밤』은 함대훈의 첫 장편소설 『폭풍전야』에도, 1943년 발표된 『북풍의 정열』에도 반복적으로 차용되고 있다. 함대훈 문학에 차용된 러시아 문학은 지금 이곳과는 다른 문화, 다른 질서에 대한 인물들의 동경을 이끌어냈으며, 인물들의 동경은 1930년대 중반 발표된 『폭풍전야』에서는 민족운동에 뛰어든 신청년(新靑年)의 형상으로 구체화되어 당대 식민지 조선의 상황과 긴장 관계를 만들어냈다. 반면 1943년 발표된 『북풍의 정열』은 『폭풍전야』와 마찬가지로 투르게네프의 『그 전날 밤』을 차용하고 있지만, 이 소설에는 『폭풍전야』와는 변별되는 지정학적 상상력이 구현되어 있다. 『북풍의 정열』에서는 ‘만주’를 둘러싼 당대의 정치적·역사적 맥락은 소거된 반면, ‘만주’와 과거 지식인 청년들의 열정을 이끌어냈던 ‘러시아’를 연결시키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열정이 만주에 대한 동경으로 대체되는 과정은 함대훈 문학에 나타난 ‘북국(北國)’ 표상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1930년대 후반 함대훈의 소설에서는 ‘러시아’가 ‘북국’으로도 표상되고 있었다. 그러나 함대훈 문학에서 ‘북국’은 점차 ‘러시아’가 아니라 ‘만주’를 지칭하는 공간 표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북국’ 표상을 통해 러시아와 만주를 연결시키는 방식은 ‘만주’가 시베리아 지방과 멀지 않은 지역임을 부각시키는 언술에서도 암시되어 있듯이 시베리아지역으로까지 대동아공영권을 확대하고 싶은 제국 일본의 욕망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었다. 함대훈은 ‘북국’ 표상을 통해 러시아에 대한 낭만적 동경을, 제국 일본의 지정학적 논리를 정당화하는 담론으로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 시기 함대훈에게 ‘러시아’는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었지만, 그 동경은 ‘만주’에 대한 함대훈의 인식에서 드러나듯 언제든 세속적 욕망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는 해방 직후 발표된 함대훈 장편소설 『청춘보』에서도 확인된다. 해방직후는 소련이 냉전질서의 한 축으로 부각되고 러시아어가 한국인의 일상적 담화공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던 시기였다. 함대훈은 『청춘보』를 통해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고 소련의 문화를 동경하던 연구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후, 그의 시선으로 해방 전후의 북조선 사회를 재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 작품은 러시아의 문화 및 ‘소련’과 관련된 다층적 표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재현의 양상을 만들어낸 것은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심퍼사이저(sympathizer) 의식, 즉 ‘동반자 의식’이다. 이러한 주인공의 동반자 의식은 식민지 후반의 조선에서 금지의 대상이었던 ‘소비에트’ 문화의 이국성을 그가 동경하고 있었던 것에 기인한다. 그러나 러시아어가 일상에서 사용될 수 있는 언어이자 영어와 교환될 수 있는 위상을 확보하게 된 해방 직후 ‘러시아’ 및 ‘소비에트’를 재현하던 주인공의 시선은 변모하게 된다. ‘붉은 군대’라는 상징 아래‘러시아’와 ‘소비에트’를 통합적으로 인식하던 시선은 점차 변모하였고, 월남(越南)이후에는 ‘러시아’를 ‘공산주의’라는 도깨비에 의해 점령된 소굴로 간주하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와 ‘소비에트’는 분리되어 이해되기 시작했다. 식민지 시기 가장 핵심적인 러시아 문학 연구자이자 번역자로 규정된 함대훈의 해방 이후 행보, 그리고 해방 직후 그가 발표한 소설 『청춘보』의 러시아어 번역/통역가 곽성식의 면모는 해방직후 한국의 러시아 문학 연구가 걸어야 할 침체의 길들을 서사의 형태로 예견하고 있다. 금지된 것에 대한 열망 및 러시아의 이국적 문화에 대한 동경에 의해 수행되던 낭만적 번역, 해방 전후 함대훈 소설의 러시아 표상은 그러한 낭만적 번역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Daehoon Ham`s novel ‘Cheongchunbo’ features a studier as the main character who majored in Russian literature and admired the culture of the Soviet Union. From his viewpoint, the novel reproduces North Korean society before and after its independence from Japan. In this regard, it shows multilayered presence related to Russian culture and Soviet Russia. Such an aspect is based on the sense of sympathy that the main character has. The sense of sympathy is originated from the main character`s admiration for the exoticism of Soviet culture which was forbidden during the late Japanese occupation. After Korea`s independence from Japan, Russian was replaced by English. Such change also occurred in the main character`s viewpoint. He underwent a change in his integrative viewpoint on Russian and Soviet under the name of Red Army. After defecting to South Korea, he began to put Russia down as a den possessed by the devil called ‘communism.’ In the meantime, Russia and Soviet have been separated from each other in ideological terms. The novel ‘Cheongchunbo’ stresses that the decisive cause of such changes is argued over trusteeship. The main character, fascinated by the presence of exotic Soviet, predicates that Soviet is a political symbol around the national division caused by the trusteeship. His change alluded to the life path of Korean authors who translated Russian literature after independence.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Russian literature translated into Korea was a longing for forbiddance and admiration for Russia. However, the Russia presented in Daehoon Ham`s novel before and after independence implies that the romantic translation has en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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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전후의 현대문학사 연구 : 『신문학사』(임화), 『조선신문학사조사』(백철), 『현대조선문학사』(박영희)에 사용된 '양식' · '사조' · '사상' 개념을 중심으로

        강용훈(Kang Yong hoon) 한국문학회 2015 韓國文學論叢 Vol.69 No.-

        Studies on modern Korean literature history were published before and after the liberation, and they presented the ways to define the era of the Korean literature history. In addition, some concepts such as 'form', 'trends' and 'thoughts' were established to contemplate the aspects of changes in modern literature history. Through this, those who studied literature history continued to ask question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tradition and trends of the age,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western literature introduced through the Imperial Japan and colonial Chosun literature. In particular, researchers of modern literature history focused on the period from the late 19th century to the early 20th century in which western civilization was introduced after the opening of a port. Lim, Hwa defined this period as 'transition period' and tried to explore the boundary of 'old era and new era' and 'tradition and foreign culture' in . Use of the term of 'transition period' met the concept of 'form'. Lim, Hwa fundamentally examined how civil culture took root in the Chosun society through the concept of 'form'. Lim, Hwa's critical minds were not substantially inherited in “investigation of Chosun new literature history” written by Baik, Cheol and “Chosun modern literature history” written by Park, Young-hee after the liberation. Baik, Cheol replaced terms of 'transition period' and 'form' which Lim, Hwa used with 'the time of enlightenment' and 'trends'. While Lim, Hwa tried to explore the grounds in which civil culture was formed in Chosun society, Baik, Cheol was concentrated to summarize and introduce multi-layered contents of foreign trends introduced in Chosun society. In addition, Baik, Cheol claimed that modern Chosun literature started in 1923 when the proletarian movement was formed after he classified the period into 'modern' and 'contemporary' times. Baik, Cheol thought that the main trend was formed in Chosun new literature sharing the flow of global trends. In addition, he described that anxiety and awareness of crisis sprang up before and after 1932 and 1933 when a 'main trend' was lost. “Investigation of Chosun new literature history” was significant, because he described the detailed situations of literary world during the period from 1930s to the liberation. On the other hand, Park, Young-hee comprehensively defined 'Contemporary times of Chosun literature' without using a term of 'modern'. When Park, Young-hee defined 'Contemporary times of Chosun literature', he thought that aspects and situations of national ordeal using Korean education were important. Unlike Lim, Hwa and Baik, Cheol, Park, as Young-hee highlighted Korean language and national awareness, he did not deeply explore the effects of world trends and Japanese literary circles on Chosun literature. Instead, he highlighted the term of 'thought' in the process of description of literature history. He defined the term of 'thought' as the national feeling which sprang together with political awakening of Korean people. In “Chosun modern literature history “, he excluded multi- layered areas which did not converge into 'nation' from the description of literature history rather than being focused on national emotion formed in the process of overcoming the crisis of the nation. 해방 전후 발표된 한국현대문학사 연구는 한국 문학사의 시대를 규정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또한 현대문학사의 변화 양상을 사유하기 위해 '양식', '사조', '사상'과 같은 개념들을 정립했다. 이를 통해 문학사 연구자들은 전통과 당대(當代)의 관계, 제국 일본을 경유하여 들어온 서구문화와 식민지 조선문화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한편으로 그 작업은 해방 전후의 현대문학사 연구자들이 1930년대 후반의 파시즘적 분위기와 대면했던 양상들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문학사 서술 과정에서 현대문학사 연구자들의 우선적으로 관심을 드러낸 시기는 개항 이후 서구 문명이 유입되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이었다. 임화는 『신문학사』에서 이 시기를 '과도기'로 규정하며 '구시대와 신시대', '전통과 외래'의 경계를 탐색하려 했다. '과도기'라는 말의 이러한 사용법은 '양식' 개념과도 맞닿아 있었다. 임화는 '양식' 개념을 통해 시민적 문화가 조선 사회에 어떻게 뿌리내리게 되었는가를 근원적으로 살펴보려 했다. 이러한 임화의 문제의식은 해방 직후 집필된 백철의 『조선신문학사조사』와 박영희의 『현대조선문학사』에는 상당 부분 계승되지 않았다. 백철은 임화가 사용했던 '과도기', '양식'과 같은 개념을 '개화기', '사조' 등의 용어로 대체한다. 임화는 시민적 문화가 조선사회에 형성될 수 있었던 지반을 탐색하려한 반면, 백철은 조선사회에 유입된 외래사조의 다층적 내용을 정리하고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백철은 '근대'와 '현대'를 구분한 후 조선문학의 현대는 프롤레타리아운동이 형성되었던 1923년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이 시기부터 백철은 조선 신문학에 세계사조와 흐름을 같이 하는 주조(主潮)가 형성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주조'가 상실된 1932,33년을 전후로 세계 각국의 문단에 불안과 위기의식이 싹트게 된 양태를 서술하고 있다. 『조선신문학사조사』의 의의는 백철이 '현대'라고 지칭한 시기, 즉 1930년부터 해방 직전까지의 문단 상황을 밀도 있게 증언하고 있는 데 있다. 반면 박영희의 경우에는 '근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채 '조선문학의 현대'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박영희는 '조선문학의 현대'를 규정지을 때 조선어문을 사용하게 된 양태와 민족적 수난의 상황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조선어와 민족의식을 부각시켰기에 박영희는 임화 및 백철과는 달리 세계사조 및 일본문단이 조선문학에 미친 영향에 대해 깊이 있게 탐색하고 있지 않다. 그 대신 박영희는 문학사 서술 과정에서 '사상성'이라는 용어를 부각시킨다. 박영희에게 '사상성'은 곧 조선민족의 정치적 각성과 맞물려 싹트게 된 민족 감정을 의미했다. 박영희의 『현대조선문학사』는 민족의 위기/극복 과정에서 형성되는 동류의민족감정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대신, '네이션(nation)' 서사로 수렴되지 않는 다층적 영역을 문학사 서술에서 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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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作家)” 관련 개념의 변용 양상과 “작가론(作家論)”의 형성 과정 -1910년대~1930년대 중반 식민지 조선의 경우를 중심으로-

        강용훈 ( Yong Hoon Kang )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2013 한국문예비평연구 Vol.0 No.40

        이 논문은 근대 문학이 형성되기 시작했던 1910년대~1930년대 중반에 초점을 맞춰 ``작가’ 관련 개념이 다층적으로 사용된 양상을 살펴보고, ‘작가론’이 형성된 동인(動因)에 대해 탐색하려 했다. 이러한 탐색을 통해 이 논문은 ‘작가론’의 탄생이 창작 주체의 위상 변화와 연동되는 양상을 분석하려고 했다. 1910년대~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는 창작 주체를 ‘작가’라는 개념으로 지칭하는 관습이 확립되기 시작했다. ‘저술자’ 혹은 ‘기자’로 창작주체를 명명하던 이전 시대의 방식과 비교했을 때 ‘작가’ 개념에는, 상상력과 창조성에 기반을 둔 창작 활동을 중시하게 된 사회적 변화의 흔적이 깃들어 있었다. 이러한 변화와 맞물려 개별 작가의 문학 활동은 비판적 평가(=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작가론’의 형성 배경에는 1920년대 초·중반 『개벽』 과 『조선문단』 등의 매체에 발표되었던 ‘문사’ 담론도 자리하고 있다. 1920년대 초반에는 작가를 ‘문사’로 호명하며 창작 주체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담론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문사’ 담론을 주창했던 이광수는 작가의 창작 활동을 한 민족이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영역에 위치시키며 특정 작가에 민족 공동체를 대표할 수 있는 위상을 부여하려 했다. 문사(文士) 관련 담론이 전개됐던 조선문단 과 개벽 은 개별 작가를 기념하고 논평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던 매체이기도 했다. 이들 매체에 발표되었던 작가 관련 담론은 조선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가시화하고 그 작가들의 상징적 위상을 규정했다. 이러한 특성은 1920년대 후반 진행된 조선 근대문학사 서술 작업에서도 발견된다. 조선 근대문예의 변천 과정을 정리했던 박종화와 김동인은 문학사를 변화시켜 나가는 주체로 작가를 상정했으며 개별 작가의 문학사적 위상을 규정하려고 했다. 1930년대 정립된 작가론은 개별 작가의 문학사적 위치를 규정하는데 초점을 맞췄던 1920년대의 작가 관련 담론과 유사한 문제설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특성은 1930년대를 대표하는 매체이자 지속적으로 작가론을 연재했던 잡지 삼천리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작가론의 형성 과정은 조선 문학의 대표 작가를 선정한 후 이들의 문학사적 위상을 규정하려 했던 1920~30년대 매체들의 전략과 맞닿아 있었다. This study analyzed the aspect of the multi-lateral use of the ``author`` related concept by focusing on the middle of 1910s~1930s when the contemporary literature was being created. The searching on the aspect of ``author`` related concept is linked with the purpose of analyzing on the motive of ``author theory`` creation. By means of this, this study explores the point to reflect the ``author`` related study critically which are performed at the field of education and criticism to date. The practice of calling the subject of the creation as a concept of‘author`` in the colonized Choseon in 1920s~1930s. It had been differentiated with the style of the past times when they had called the subject of creation as a ``writer`` or ``journalist`` The concept of the ``author`` reflected the social changes which put the weight on the creation activities based on the imaginative power and creativity. In conjunction with these changes, the literature activities of each author could be the object for the critical evaluation. The discussion on the ``literary man`` which was presented on the media such as 『Gaebyeok』 and 『Choseon Mundan』 in the beginning and middle of 1920s had made influence on the creation of ``author theory.`` In the early of 1920s, the arguments emphasizing the social roles of the creation subject while they called the author as ``literary man.`` The 『Choseon Mundan』 and 『Gaebyeok』 where the discussion on the literary man had been published were the media which performed the evaluation on each author. The author theory published on these media had the both nature of recording the personal impression of a certain author and criticizing the literature activity of the author. The combined ``author theory`` of figure impression record and study on the author had been used by modification into two streams in the latter part of 1920s and middle of 1930s.Firstly, the work of arranging the history of modern literature in Choseon was made in the various medias at the latter half of 1920s.Jong Hwa Park and Dong In Kim who had performed such work tried to describe the Choseon literature history based on their works after selecting the representative authors of Choseon literature. Their works have meaning of raising the author as a subject of changing the literature history. Secondly, the media representing 1930s, 『Samchunri』 planned the special edition summarizing the literal activities of the authors representing Korea before and after 1933. The special edition of 『Samchunri』 extended the objects of the description to the representative authors and it has a meaning of consistent publishing of the author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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