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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아 韓國外國語大學校 敎育大學院 2009 국내석사
<日 本 語 抄 錄> 「-면서」に対応する「-ながら」の誤用に関する研究 韓国外国語大学 教育大学院 日本語教育専攻 姜 昇 我 本稿の目的は、韓国語の接続語尾の「-면서」と、これに対応する日本語の接続助詞の「-ながら」を対照研究し相違点について考察して、韓国人の日本語の学習者に対する教育的な効率性を高めることにある。 文法的な特徴および意味にあたって、韓国語の接続語尾の「-면서」と日本語の接続助詞の「ながら」は酷似すると思われる。しかし、実例においては使用上の違いが表れる。したがって、本稿では、このような相違点が表れる原因について、文法的な特徴と意味分類に分けて考察した。また、対照考察の方法として、韓国語「-면서」の意味分類を中心に「-ながら」との対応関係について探ってみた。考察した結果を次のようにまとめてみよう。 まず、「-면서」と「-ながら」との文法的な特徴によって対照してみたら、両者は同時進行の意味を持つ時、「 -고 있- 」と「-ている」は、各々「-면서」と「-ながら」に結合するのが不可能であるが、「-면서」と「-ながら」が両方とも逆接の意味を持つ場合には、変えることができた。また、「-면서」と「-ながら」が同時進行の意味の場合、「-면서」は前に付く動詞による制約がほとんどないとも言えるのに対し、「-ながら」は結合する動詞によって制約される。 次は、「-면서」が同時進行の意味を表す場合、「-면서」はほとんど「-ながら」に対応する。しかし、同時進行の「-ながら」には瞬間動詞が接続できないが、「-면서」には先行成分に対する制約がないため、「-면서」の先行成分が日本語の瞬間動詞に当たる場合には、「-ながら」と対応しない。また、先行文の述語の先行成分が「-くなる」となっており、後行文が無意志的な性格を持つ動詞になされた場合は、同時進行の意味を持つ「-ながら」とは結合できないが、「-면서」は先行文と後行文の述語の種類だけが同一であれば、同時進行の意味を持つ文が成り立つ。そして、「-ながら」は打ち消しと繋がると逆接の意味になるため、同時進行の意味を表す時は、打ち消しの「-면서」に対応しない。しかし、「-면서」はこのような制約はないので、「-면서」と「-ながら」しない。また、先行文の動詞が自動詞の場合も制約のない同時進行の「-면서」と比べて、同時進行の「-ながら」は先行文の動詞において動作性を持つ動詞に限られるので、「-면서」と「-ながら」は対応しない。 なお、「-면서」が逆接の意味を表す場合には、「-ながら」と文法的な特徴がほとんど類似するため、調査した範囲内では対応した。この時、「-면서도」と「-ながらも」の形態を持つのが特徴であるとも言える。 最後に「-면서」が継起の意味を表す場合、これに対する意味は日本語「-ながら」にはない意味になるので、この時、誤用が頻繁に起こると思われる。継起の意味を表す「-면서」は基本的に先行文と後行文の同時関係である意味を表しているが、先行文は後行文の動作や様態の起点となっている。こういう先行文に「-부터」を付けてみると、その意味の違いが確実にわかる。継起の意味を持つ「-면서」は前述した通り、'起点'の意味を内包しているため、先行文無しに、後行文の出来事は生じ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特性を有している。そこで、同時進行と逆接の意味を持つ「-면서」と区別できる。 本稿では研究対象を韓国語の接続語尾中、「-면서」と日本語の接続助詞の「-ながら」の対照考察に限定して探ってみたが、今後はそれ以外の接続助詞などにも注目して対照研究を進めたい。
포렌식 데이터의 분류체계와 활용방안 : 클라우드 스토리지 데이터를 중심으로
강승아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2023 국내석사
클라우드 스토리지 서비스는 장소나 기기에 제약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다양한 클라우드 스토리지 서비스가 단순한 데이터 저장소에서 벗어나 생성, 편집, 공동작업, 삭제, 공유, 댓글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추세이다. 따라서 클라우드 서버에는 사용자가 생성한 데이터 뿐만 아니라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사용자의 데이터를 관리하거나 유용한 데이터를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데이터를 저장한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기본적인 파일 콘텐츠와 메타데이터 뿐만 아니라 클라우드 스토리지의 종합적인 통계 데이터 등 사용자의 활동을 추적할 수 있는 방대한 정보를 데이터 분류 체계에 따라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수집 및 분석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를 제안한다. Cloud storage services are actively used because data can be used anytime, anywhere without being restricted by places or devices. Various cloud storage services are moving away from simple data stores and providing various functions such as creations, editing, collaboration, deletion, sharing, and comments. Therefore, the cloud server stores not only the data generated by the user, but also additional data for managing the user’s data or providing useful data in the cloud service. Accordingly, this paper proposes a framework that can classify vast amounts of information, systematically collect and analyze the information that can track user’s activities such as basic file content and metadata, as well as comprehensive statistical data of cloud storage.
인천지역 교육시설의 건축환경과 실내공기질의 상관성 분석
Students spend an average of 4 to 14 hours a day in Educational Facilities. Therefore, their health is greatly affected by the Indoor Air Quality of Educational Facilities. The quality of air in Educational Facilities has been deteriorated in recent years due to diversification of construction materials, increased application of chemical substances, and the lack of ventilation systems incorporated in Educational Facilities. As a result, students who spend great deal of their time in newly constructed Educational Facilities suffer from "Sick School Syndrome", a phenomenon similar to the "Sick House Syndrome". This has a potential of becoming a serious health concern, especially among young students who have not fully developed strong immune systems. Currently, the rules and regulations on the Indoor Air Quality as enforced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is less strict than that of the Ministry of Environment. On top of this, there are only few studies conducted on the Air Quality of classrooms, not to mention the complete absence of study done on the correlations between the Educational Facilities air quality and the building construction conditions. Based on the aforementioned background, this study presents some primary data based on the survey of classroom construction conditions and the measurements taken on the Air Quality of Educational Facilities. Relationships between the year of construction, the designs of Educational Facilities, and the density of pollutants are also analyzed and are included in this study. To summarize, there is a direct correlation between the year of classroom construction and the density of harmful chemicals present in Educational Facilities. 2008년 현재 전국의 교육시설(유치원,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대학교)은 19441개로, 신도시건설과 교육시설 개선사업으로 교육시설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한편, 최근 건물에서는 건축자재의 화학물질 사용증대, 고기밀화 및 환기부족 등의 원인으로 실내공기질 면에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으며, 교육시설에 있어서도 학생들은 장시간(4h~14h/1day) 실내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교실의 실내공기질은 학생들의 건강 및 쾌적성 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신체적으로 미성숙하고 면역기능이 발달되지 않은 학생들은 실내공기오염으로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다. 한편, 교육시설은 면적당 재실자 수가 일반 사무실보다 4배 이상이고, 교실에서 다양한 교과목의 교육으로 인해 여러 종류의 오염물질이 존재할 수 있는데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보건법」은 환경부의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관리법」에 비해서 내용이 다소 미비한 상황이며, 교육시설의 실내공기환경에 관련된 연구 또한 부족한 실정이다. 교육시설의 실내공기질에 관한 기존의 연구로는, 학교 실내공기질 현장측정 및 성능평가, 친환경 자재, 환기시스템) 등에 관한 연구가 있으나 교육시설의 건축환경과 실내공기질의 상관성 분석에 관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 연구에서는 교육시설의 건축환경과 실내공기질의 상관성 분석을 목적으로 인천지역 교육시설을 대상으로 신개축년도와 실내마감재 및 가구 등의 건축조건에 대한 조사와 실내온열환경, 일산화탄소(CO), 이산화탄소(CO₂), 미세먼지(PM10), 포름알데히드(HCHO), 총휘발성유기화합물(TVOC), 각종 휘발성유기화합물질(VOCs)에 대한 측정 및 결과를 바탕으로 그들의 상관성에 대해 분석하였다.
대나무 재료를 이용한 홈퍼니싱 제품 디자인 적용에 관한 연구 : -호남성 지역 특색을 중심으로-
생태 디자인의 개념 아래 홈퍼니싱 디자인에 대나무 소재를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시대의 발전에 부합하고 현대인의 일상생활에 있어 미적 요구를 충족시키며 환경오염, 자원부족, 생태불균형 등 일련의 심각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대나무 사용의 오랜 역사와 풍부한 지역 문화 자원을 가지고 있는 중국 호남성 지역을 대표 대상으로 삼고, 이 지역의 특징적인 홈퍼니싱 디자인에 대나무 소재를 적용하는 것을 주요 논제로 논의하고자 했다. 이 논문은 먼저 대나무의 재료 연구 및 응용 현황, 홈퍼니싱 디자인에 사용되는 대나무 소재의 사용 현황을 분석하고, 대나무 소재의 특성과 홈퍼니싱 디자인 경향을 명확히 하였다. 동시에 연구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대나무 재료’, ‘홈퍼니싱 제품’ 및 ‘호남성 지역문화’의 세 가지 주제어를 설명하고 정의했다. 그런 다음 ‘탄두연화(滩头年画)’, ‘통족직금(侗族织锦)’ 및 ‘보경죽각(宝庆竹刻)’을 예로 들어 호남성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소개하고 기존 호남성 지역의 특색을 지닌 대나무 소재 홈퍼니싱 제품 디자인 사례를 나열하고 기존 사례의 미학적 특징과 디자인의 한계점을 요약했다. 대나무 소재의 특성, 홈퍼니싱 디자인 트렌드 및 기존 제품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파악한 내용을 바탕으로, 본 논문은 호남성 지역의 특색인 홈퍼니싱 디자인에서 대나무 소재의 기본 원칙, 즉 인간 중심 원칙, 친환경 원칙 및 지역 특색 원칙을 제시하였다. 동시에 이 3가지 원칙에 따라 호남성 지역의 특색을 지닌 홈퍼니싱 제품 디자인에 적용할 대나무 소재의 실행 가능한 방법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방법에는 대나무 소재 CMF 디자인에 기반한 적용 방법, 대나무 소재 공정 혁신에 기반한 적용 방법, 지역 문화 요소의 표현에 기반한 적용 방법 등이 있으며, 제안된 방법의 실효성은 디자인 실습을 통해 검증되었다. 마지막으로 연구 전체 내용에 기초하여 호남성 특유의 홈퍼니싱 제품은 지역성과 실용성을 가지고 있으며 생태 환경 보호 및 대나무 재료의 자연미를 보존한 디자인적 특성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지었다. 그리고 후속 디자인을 위해 "플라스틱 대신 대나무", "문화 이식" 및 기타 방법을 사용하여 홈퍼니싱 제품에 대한 호남성 지역의 특색인 대나무 재료를 디자인할 것을 제안했다. 본 연구는 ‘호남민속화’, ‘소수민족 전통 도안’, ‘무형문화유산 프로젝트’ 등 호남성 지역의 문화적 특색에서 디자인 요소를 추출하여 호남성 지역의 특색인 대나무 소재의 홈퍼니싱 제품을 디자인해야 한다. 이것은 특징적인 홈퍼니싱 제품의 디자인에서 대나무 재료의 더 나은 응용과 혁신을 위해 특정한 참고 의의를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 위기론에 관한 이론적 재검토: 한국 위기론을 중심으로 : 규범화된 최소민주주의와 그 효과
이 논문은 2016년 이후 대두된 민주주의 위기론을 통해 민주주의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이를 위해 민주주의 위기론을 제기함에 있어서의 이론적 난점을 살펴보고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 논문은 민주주의 위기론이 다음과 같은 점에서 현실의 민주주의를 파악하기 어렵거나 한계를 보인다고 주장한다. 첫째, 민주주의의 최소주의적 정의에서 출발할 경우 선거와 그와 관련된 최소한의 제도와 규칙들의 작동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민주주의의 정의를 확장할 경우 민주주의의 여러 구성 요소들과 가치들의 경합을 발견하게 되고 특히 민주주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있어서의 관점차가 드러나게 된다. 이에 따라 여기에서는 한국 민주주의 위기론은 민주주의를 무엇으로 바라보는지, 그곳에서는 어떤 가치들이 경합하는지 살펴본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논하는 문헌들은 주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관에 입각해 논의를 진행하는데, 그와 같은 틀에서 시민을 동원하는 민주주의는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이해되어왔다. 특히 최장집으로 대표되는 시각은 최소주의적 민주주의 정의를 규범화시킨 것으로, 이는 민주주의에 있어 시민이 참여하는 여러 일상적 활동들을 지나치게 병리적으로 파악하게 만든다. 이러한 시각은 오늘날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위기론의 특징에서, 또 한국 정치를 둘러싼 ‘반정치적 담론’에서 특징에서 기원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대표 과정뿐 아니라 진행과 전개에 있어 시민 동원을 백안시하거나 외면할 수 있는 방법은 바람직하지도, 존재하기도 어렵다. 이 같은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결론은 민주주의는 제도들이나, 도달해야 할 목표일 수 있지만, 또한 끝나지 않는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이다.
A STUDY ON THE T(X) IN Q-ALGEBRAS : Q-대수에서의 T(X)에 관한 연구
In this paper, we rst investigate the relations among BCK=BCI=BCH-algebras and approach a special denition, set, called an Q-algebra. In Preliminaries, we introduce some denitions and theorems about Q-algebra and QS-algebra. And in Section 3, with my research about some axioms for binary operation of Q-algebra, we define a special set, called T-part in a Q-algebra X and prove that the T-part of X is a subalgebra of X. And we introduce the definition of an atom of X, and prove an equivalent condition that an element x 2 X is an atom of X. In general, a T(X) of a Q-algebra X may not be an ideal of X. But a T(X) is an ideal of QS-algebra X. So we prove this. And last, we introduce a T-ideal of X. And by using T-part, we nd a condition that every ideal of Q-algebra is a T-ideal. 이 논문에서 BCK|BCI|BCH-algebras들 사이의 관계를 우선 조사하고 Q-algebra라 불리는 특별한 정의에 의해 규정되어진 집합에 접근해나갈 것이다. 서론에서 Q-algebra와 QS-algebra에 관한 정의와 이론들을 소개하고 3절에서는 Q-algebra가 갖고 있는 이항연산에 대한 공리들을 연구함으로써 Q-algebra에서의 T-part라 불리는 특별한 집합을 정의하고 그 T-part가 X의 subalgebra임을 증명한다. 또한 X의 atom에 대한 정의를 소개하고 한 원소 가 X의 atom이라는 동치적인 조건을 살펴본다. 일반적으로 Q-algebra의 T(X)는 X의 ideal이 아닐 수 있지만 QS-algebra X에 대하여 T(X)는 X의 ideal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마지막으로 X의 T-ideal을 소개하고, T-part을 사용함으로써 Q-algebra의 모든 ideal이 T-ideal이라는 조건을 알아본다.
January 28, 2010. A serious loss was incurred on the Korean traditional music(Gugak) community. Han Seungho, Master Singer of pansori - a genre of Korean traditional music-, who had been designated as national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asset No 5., has passed away. He was born to the family, from which many Gugak musicians had come for generations. Innately he had the makings of Gugak musician and moreover through 'day and night' efforts he made himself 'genuine figure' of pansori. He has been the Master Singer of our times. He actually had played important role and significant influence on pansori community. Nonetheless, there exist only a few writings about him. So in this article, I would like to review the life of Han Seungho and the unique world of his art, with analytic and systematic point of views. In addition, I'm going to look how the singers of the past have learned, explored and passed down the sound and method of singing. The change of Seopyonje - one of the pansori factions - is also being covered in this article. Han Seungho was born in Guemnam-ro. Gwangju-si, Jeollanam-do in March 24. 1924 and died January 28. 2010. at the age of 86. He is from Gugak musicians' family. His grandfather, Han Dukman was Master of Daegum and Gayageum(Daegum and Gayageum are Korean traditional instruments) and his father Han Sungtae was Master of pansori, also apt at Gayageum. His brother Han Youngho and Han Gapdeuk were also Gugak musicians. Han Youngho was Gayageum player and Han Gapdeuk was Master of Geomungo(Korean traditional instrument). Not only his family members in a direct line were all Gugak musicians but also his relatives in collateral lines like Han Sookku, Han Ilseop, Han Jinok, Han Aesoon were famous Gugak musicians. This atmosphere has definitely influenced Han Seungho through his life. Han Seungho came into contact with pansori from his early age and learned the basics of singing from singers like Park Jongwon, Sung Wonmok, Chang Pangae. Then he studied under Park Dongsil. Earnestly he got started his career as a singer after he came to Seoul and became a pupil of 'National Singer' Song Mangap. During this pupil period under Song Mangap, he took part in the Chosun Traditional Vocal Association. He tried to learn Kim Chaeman-Je vocals, which later became the basis of his vocals. But at that time, because Kim Chaeman had already passed away, he could not possibly study Kim Chaeman-Je vocals under Kim Chaeman. To learn Kim Chaeman-Je by himself, he visited every place and met every person when it helped him learn Kim Chaeman-Je vocals. During the chaotic period of National Liberation and Korean War, a bunch of Mater Singers including Park Dongsil defected to North Korea and many traditional singers in South Korea made efforts to develop and distribute new genre like Yoesungguguk(Women's traditional musical), Changguk(traditional musical). But with obstinacy, Han Seungho hold fast to the genuine pansori and intensified his vocals with his own style. His pride as a genuine pansori singer had him stick to the authentic pansori. Instead of peeking into the new genre, he constructed the unique world of his vocals on the basis of Kim Chaeman-Je. Looking at the genealogy of pansori, it is divided into three factions roughly. That is, Dongpyonje, Seopyonje, Joonggoje. Gwangjusori and Bosungsori are two prominent groups of Seopyonje. Park Yujun, Yi Nalchi, Kim Chaeman, Park Dongsil, continued the tradition of Gwangjusori. In these days, people tend to associate Seopyonje with Bosungsori. Because Bosungsori is the biggest stream of present Seopyonje. But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Bosungsori was not so prominent. Gwangjusori - the vocals, which a great number of Mater Singers had adopted, was actually the core of Seopyonje. But the chaos arisen from the National Liberation and Korean War made great singers like Park Dongsil defect to North Korea and as a result the stream of Gwangjusori got almost dried up. Only Han Seungho let the legacy of Gwangjusori continue but unfortunately he passed away with no pupils behind. So it is not too much to say that the stream of Gwangjusori is now completely dried up. Analyzing Han Seungho's voice from sound sources, his vocal sound, especially Aguisung, Utbuchimjangdan and Aniri with elastic rhythm is conspicuous and unrivaled. In Zen Buddhism's lessons, there is a saying "If you meet the Buddha, kill him. If you meet a progenitor, kill him". As the meaning of this saying, he has learned from his teachers, who were Master Singers of the times, but he didn't settle himself down. He made greater efforts and surpassed his teachers, so that he created the unique world of his vocals. For this reason, there is good reason that he is called "Freeman of pansori". From Han Seungho's life and art, I have looked into his gift and his efforts to become a great singer. In this way, he has reached the level of 'getting the pure voice(Deuk-um)' and sublimate it in art of his own uniqueness. People will remember him as one of the greatest Master Singers, and this cherish will support our traditional music pansori. It is the task of us, the posterity, that we keep national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asset pansori good and make it prosper, which is also designated as a UNESCO World Heritage. This will make our ancestral Master Singers' contribution to our cultural heritage more meaningful. 2010년 1월 28일, 우리나라 국악계는 커다란 손실을 보아야 했다. 중요 문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의 기능보유자인 인간문화재 명창 한승호가 타계한 것이다. 대를 이어오는 국악인 집안에서 태어나 천부의 자질을 갖춘데다 본인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정통 소리꾼의 진면목을 보여 주다 생을 마감한 한승호, 먼 과거가 아닌 현 시대의 인물로 살았던 명창이었고, 그가 판소리계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판소리계에 끼친 영향이 결코 작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그에 관하여는 단편적으로 소개한 글들만 있을 뿐 체계적으로 정리한 문헌이 없다. 그래서 본 논문에서는 명창 한승호의 생애와 그만의 독특했던 예술세계를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시도하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과거 소리꾼들이 소리를 배우고 익히고 전승한 방법을 살펴보고, 판소리 유파 중의 하나인 서편제의 시대적인 흐름과 변화 양상을 분석해 보았다. 한승호는 1924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시 금남로에서 출생하여, 2010년 1월28일 향년 87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그는 한덕만(조부)-한성태(부친)-한승호로 이어진 국악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조부 한덕만은 대금, 가야금병창, 산조의 대가였고, 부친 한성태는 판소리 명창으로 가야금산조와 병창에도 능했다. 친형들인 한영호, 한갑득 역시 모두 국악인으로서, 한영호는 가야금에 능했고, 한갑득은 거문고산조의 명인이다. 이렇듯 직계가계가 모두 국악인 집안이었을 뿐만 아니라, 방계가계에서도 한숙구, 한일섭, 한진옥, 한애순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국악인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이러한 집안배경이 소리꾼 한승호의 일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한승호는 어려서부터 판소리에 접하면서 박종원, 성원목, 장판개로부터 소리를 배우며 기초를 닦았다. 그리고 이어서 박동실의 문하에 들어갔다가 서울로 상경하여 국창 송만갑의 제자가 됨으로써 본격적인 소리꾼의 길로 접어들었다. 아울러 송만갑으로부터 소리를 배우는 동안에는 조선성악연구회에서 활동을 하였다. 그 후 훗날 그의 소리의 바탕이 된 김채만제를 배우려고 했으나 그 때 김채만은 이미 작고한 후였는지라 김채만으로부터 직접 사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김채만제의 소리를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누구든지 찾아다니며 혼자 그의 소리를 익혔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뒤이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박동실을 비롯한 많은 명창들이 월북하였고, 남쪽에 남아 있던 소리꾼들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성국극, 창극 등을 통하여 소리를 전파, 발전시키는 동안 한승호는 정통 판소리를 고집하여 자기 나름의 소리를 더욱 심화시켰다. 소리꾼으로서의 그의 자존심이 그로 하여금 정통 판소리 외에는 멀리하게 한 것이다. 대신 김채만제를 바탕으로 자기만의 소리세계를 구축하였다. 판소리의 계보를 보면 크게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로 나뉘는데, 서편제는 광주소리와 보성소리가 양대 산맥을 이룬다. 그 중에서 광주소리는 박유전-이날치-김채만-박동실-한승호로 계보가 이어진다. 지금은 서편제하면 보성소리를 연상할 만큼 보성소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일제 강점기하에서는 보성소리는 아직 존재가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던 반면, 광주소리는 많은 명창들이 불러서 당시 서편제의 중심을 이루었다. 그러나 해방 후의 혼란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박동실을 비롯한 많은 소리꾼들이 월북하는 바람에 광주소리의 전승이 거의 끊어지고 말았다. 한승호가 그나마 맥을 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그마저 이렇다 할 제자를 두지 못한 채 타계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그 소리맥이 단절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승호가 남겨 놓은 음원을 통하여 그의 소리를 분석하여 보면, 그가 구사하는 성음, 그 중에서도 아귀성과 엇붙임장단, 자유자재로 장단을 가지고 놀고 구사하는 아니리가 독보적임을 알 수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逢佛殺佛),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逢祖殺祖)’는 불교 선가(禪家)의 가르침처럼, 한승호는 당대의 많은 명창 스승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배웠으되, 그에 얽매이지 않고 각고의 노력 끝에 자기 나름대로 터득한 기법을 가미하여 그만의 소리세계를 구축하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를 가리켜 “판소리의 자유인(自由人)”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승호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통하여 우리는 그가 대대로 이어지는 국악인 집안에서 태어난 천부의 자질과 도를 닦는 듯한 각고의 수련으로 한 사람의 진정한 소리꾼이 되어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또한 한승호는 바로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결국 득음의 경지에 도달하여 소리를 자기만의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피나는 노력으로 결국 그는 대중들에게 영원히 최고의 소리꾼으로 기억될 것이며, 그것은 동시에 우리의 전통 음악인 판소리를 지켜내는 힘이 될 것이다. 이제 남겨진 후손들은 중요무형문화재인 판소리가 우리 사회에서 국민들로부터 더욱 더 사랑받는 음악으로 유지, 발전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답게 세계 속의 음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것만이 앞서 간 명창들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의 의미를 뜻 깊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