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三島由紀夫『鏡子の家』論 : 長編小說としての幾つかの問題点について 장편소설로서의 몇 가지 문제점에 관하여 Some problems as a long novel
許昊 한국일어일문학회 2002 日語日文學硏究 Vol.43 No.1
『교코의 집』은 미시마가 <개인의 소설>이라 칭한 『금각사』이 뒤를 이어서 <시대>를 표현하고자 집필한 장편소설이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무대는 도쿄 요스야에 위치한 <교코의 집>이다. 이혼녀인 교코(30세)가 외동딸 마사코(8세)와 단 둘이서만 사는 그곳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남자들이 모여드는 개방적인 가정으로서, 어딘지 모르게 매춘굴 같은 느낌도 들지만,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하던 상관없으며, 돈이 없더라도 아무 때나 찾아와 공짜로 술을 마실 수 있는, 완벽하게 자유로운 공간이자 전후라는 시대를 상징하는 장소이다. 그러한 <교코의 집>에 모이게 된 손님들 중에서도 특히 교코가 관심을 같고 친하게 지내는 청년들은, 일본화가인 야마가타 나쓰오, 엘리트 셀러리맨인 스기모토 세이이치로, 무대배우니 후나키 오사무, 복싱선수인 후카이 ??스케, 이상의 네 청년이다. 네 청년은 각각 20대의 젊은 나이에 나름대로 자신이 희망하는 꿈을 이룬다. 즉 나쓰오는 가을 전람회에 그림을 출품하여 대단한 호평을 받게 되고, 회사에서 윗사람들로부터 신임이 두터운 세이이치로는 부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뉴욕으로 전근가게 되고, 오사무는 이렇다 할 역할을 얻지 못한 대신에 육체미 운동을 통하여 멋진 근육의 소유자가 되고, ??스케는 프로로 저향하여 불과 6개월만에 전일본 페더급 챔피언이 된다. 그러나 미시마가 『교코의 집』을 자신의 《니힐리즘 연구》라 선언하고, 이 작품 속에서 네 청년이 교코라는 무당적인 여성을 매체로 현대의 지옥순례를 하는 모습을 그렸다고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일단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된 네 청년은, 꿈을 이룬 그 순간부터 급속도로 파멸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된다. 나쓰오는 어느 날 갑자기 예술가로서의 능력을 상실하여 암울한 신비의 세계로 빠져들고, 뉴욕으로 전근을 간 세이이치로는 아내가 호모인 백인 남성과 불륜의 관계를 맺는 사건을 당하게 되고, 오사무는 연상의 고리대금업 여사장과 변태적인 쾌락을 탐닉하던 끝에 동반자살을 하고, ??스케는 챔피언이 된 날 밤 불량배들과의 사소한 시비 끝에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여 더 이상 링 위에 설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내용의 『교코의 집』은 서로 상반되는 성격의 인물들을 등장시켜서 서로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즉 아름다운 장식에 불과할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무익한 근육을 지닌 오사무, 그리고 행위자에게 어울리는 강인한 근육을 지닌 ??스케, 이 두 사람은 미시마에게 있어서 육체가 지니는 양면성을 상징하고 있다. 반면에 교코의 딸 마사코가 좋아하는 나쓰오, 마사코가 가장 싫어하는 세이이치로, 이 두 사람은 예술가와 俗人의 상징이다. 교코 역시, 현대적 여성인 다미코 및 미쓰코와의 비교를 통해서 그녀의 보수적이며 유니크한 개성이 두드러져 보이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제1부의 무대인 도쿄가 제2부의 무대인 뉴욕과 서로 대칭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교코의 집』이 지니는 이원론적 구조의 일부라 하겠다. 마시마는 이 작품을 통해서 니힐리즘을 연구하려 했다고 언명했지만, 다소 아쉬운 점은 『교코의 집』을 집필하던 당시, 미시마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에 있었던 탓인지, 청년들이 격는 좌절에는 어딘지 모르게 작품을 원만한 마무리지으려는 작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또한 여주인공 교코에게 지나치게 많은 역할을 맡긴 것도 작품을 부자연스럽게 만든 원인 중의 하나로 생각된다. 장편소설의 가장 큰 결함이라 할 수 있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 <惡의 稀薄함>으로 인해서 주인공들의 파멸하는 모습을 냉정하게 다루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러한 점들이 『교코의 집』에 대한 평가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원인이라 하겠다.
許昊 水原大學校 2005 論文集 Vol.23 No.-
미시마 유키오는 사소설 작가는 아니지만 비교적 자신에 관해서 많은 것을 얘기했고 또한 자신 및 가족을 모델로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가족이라 함은 유년기 시절에 함께 생활했던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여동생과 남동생을 말한다. 이들 중에서 미시마가 작품의 모델로 많이 등장 시킨 것은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이다. 미시마는 가족 중에서 여자들에 관해서 많이 언급한 반면 남자들에 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있지 않은데,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에 있어서 가족이라는 테마의 일부분으로서 우선 할머니와 관련된 부분을 중점적으로 본 논문에서 고찰해 보았다.
허호일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 1992 목원어문학 Vol.11 No.-
주몽전설은 고구려 인민들의 가장 이른 시기의 구두창작인 동시에 또한 조선 인민들 속에 널리 유포되고 오랜 역사시기를 걸쳐 전승되면서 완성되고 체계화된 인민들의 구전문학 작품이다. 이 전설에는 고구려 국가 창건과 관련되어 역사의식이 농후하게 표현되어 있기도 하나 전설의 주인공 주몽의 출생이라거나 활동에는 역사적인 실재적인 사건보다는 환상적이며 신화적인 이야기들이 충만되어 있다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도적(盜賊)」 론 : 처녀장편소설이 지니는 의미
허호 한국일어일문학회 2000 日語日文學硏究 Vol.37 No.1
三島由紀夫の處女長編小說である 『盜賊』は, 出世作『假面の告白』に比べて世間の注目を集めることも少なく, 硏究者たちからも失敗作として過小評價されて來たが, 硏究資料としては, 三島文學を論ずる際に缺かせなぃ, 極めて大事な作品である. 執筆當時, 弱冠二十二歲だった三島は, 後世に殘る大長編を書きたいという野心を抱いて, ラディゲの『ドルジェル伯の舞踏會』に匹敵する不朽の名作を夢見ながら『盜賊』の制作に取り掛かった. しかし, 自他共に認めるごとく, その野心は無慘な結果に終わったが, 當時の三島が『盜賊』に託した夢には計り知れないものがあり, 後に公開された「『盜賊』ノ-ト」ゃ「あとがき」の類いを見ても, その一端を伺うことが出來る. しかも, 『盜賊』の完結からわずか一年も經たないうちに, 三島は『假面の告白』で文壇の寵兒になり, その後も花形作家として『純白の夜』, 『愛の渴き』, 『靑の時代』, 『禁色』, 『夏子の冒驗』, 『幸福號出帆』, 『潮騷』, 『沈める瀧』などの話題作を矢繼ぎ早に發表し, 『金閣寺』で昭和文檀に確固たる地位を築くまで, 『盜賊』から始まる七年間の道程を見ると, その旺盛な活躍ぶりには誰しも驚かざるを得ないだろう. 從って本稿では, 三島文學の變遷を천る手始めとして, 三島が初めて挑んだ長編小說で何を試み, その失敗によって何を學んだのか, そしてこの作品を境に三島文學が如何なる變化を見せるのか等等, 處女長編小說としての『盜賊』の意味を考察してみることにした. まず, 『盜賊』のよって現れた三島文學の最も大きな變化は, 堀辰雄との決別であろう. 習作期から三島は堀の影響を受けて王朝物を相次いで發表し, 「四つの處女作」の一つである「煙草」も, 三島本人が認めるごとく堀の亞流であった. 三島は『盜賊』と關連してラディゲの影響を多く語っているが, むしろ堀の影響が露骨な作品であり, ラディゲを知ったのも堀を通してであった. しかし『盜賊』の制作過程で味わった挫折は, 堀の亞流としてのは職業作家として成功できないと痛感させ, 三島は反堀辰雄に急旋回して新しい活路を模索することになる. そして三島は, 兄妹愛を中心にした近親相姦的な家族關係を作品の素材もしくはテ-マとして積極的に取り入れたのである. これは『假面の告白』によって始まる同性愛的領向と共に, 三島文學を特徵づける根幹をなすようになる. そればかりでなく, 親たちの戀愛を「裏のテ-マ」として, 靑年たちの戀愛を「表のテ-マ」として設定し, 重層的な作品構造を作り出したのも, 本多秋五が酷評したとおり『盜賊』で成功はしなかったが, それも結局『金閣寺』では見事な成功を收めている. 『盜賊』から始まる三島文學のこのような變化は, 三島本人が語っているごとく, 女性的なものから男性的なものへの變遷であり, また, この變遷は男女兩性の對立という二元論として三島文學に定着するようになる. 『盜賊』以後の數年間, 卽ち二十代後半が, 三島文學において絶頂期であったと言われるのは, 單に三島が早熟な才の持ち主だったからばかリでなく, 『盜賊』の制作過程でそれほど多くのことを學び, 悟ったからである. 從って處女小說としての『盜賊』が三島文學の中で持つ意味は, 今後も多角的に檢討されるべきであろ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