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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우수등재

        망자의 壺, 영혼의 壺

        배진성 한국고고학회 2020 한국고고학보 Vol.0 No.116

        본고는 청동기시대 분묘에 주로 단 한 점 온전한 형태로 출토되는 적색마연호를 망자의 영혼을 담은 용기라는 관점에서 논한 것이다. 의례에서의 붉은색은 여러 시대에 걸쳐 신성한 의미로 인식되어 왔고, 고대의 壺는신령의 상징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이래 현대사회에도 조상의 영혼과 밀접한 신줏단지 등을 모시는 풍습이 있어 왔다. 이러한 측면들을 고려하면서 한반도 청동기시대 적색마연호의 공헌 사례가 가장 많은경남지역의 자료를 보면, 출토위치는 바닥면의 단벽측과 개석부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매장주체부 내에놓인 경우 피장자의 신변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목관 등을 감안하면 신변과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부장칸을 설치하여 호를 공헌한 사례도 적지 않고, 검·촉·옥과는 구분되어 상대적으로 독립된 공간에 놓인 점에서단순한 신변 부장품이 아니라 망자의 영혼을 담은 용기였을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다. 단벽측에서도 한쪽모서리에 공헌되는 경우가 압도적인데, 아마도 분묘의 한쪽 모서리에는 죽은 자의 영혼이 호를 통해 저세상으로 가는 입구나 통로로 여겨졌던 무문토기인의 관념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가 한다. 바닥면 다음으로 많은개석부 공헌에는 피장자에 대한 애도의 의미와 함께 그 영혼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추측된다. 호에 피장자의 영혼을 담아 저세상으로 인도하는 의례는 곧 신에 대한 제사인데, 송국리문화가 발달된 농경사회라는 점에서 그 신은 조상신일 것이다. 한편, 적색마연호 속의 내용물로는 곡물(종자)이 언급되어 왔는데, 여기에는 곡령의 관념이 내포되어 있다. 한국은 물론 중국 및 일본열도의 오래된 민간전승에서도 곡령은조상의 영혼인 祖靈으로 여겨져 왔다. 안정적인 수확을 위해 조상신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동아시아농경사회에서 시대와 지역에 상관없이 보편적인 관념일 것이다. 고대∼근현대에 보이는 곡령신앙은 선사시대의 농경사회에도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호에 영혼을 담아 신에게 제사하는 풍습은 농경사회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청동기시대 분묘에 단 한 점 공헌한 적색마연호는 단순한 부장품이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을 담은 용기였으며, 이때의 영혼은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위한 곡령이자 조령으로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KCI등재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의 분포와 성격

        배진성 한국청동기학회 2016 한국청동기학보 Vol.18 No.-

        부여 송국리유적에서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가 처음 알려진 이래 오랜 시간이 지났고, 발굴조사의 폭증 속에서 무문토기 자료는 엄청난 증가 추세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의 수량은 예상외로 많지 않고, 이에 대한 개별 연구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전형의 경우 기고와 동최대 경의 계측치 분포가 대단히 좁은 범위에 한정되어 있는 점에서 다른 토기에 비해 어느 정도 규격화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는 대단히 한정된 시기 동안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세밀한 편 년보다는 계통 및 기능의 파악이 더 필요하다.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의 분포 범위는 자료가 증가한 현재에도 이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 안정된 분포권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송국리형주거지 및 송국리식 토기 등은 분포 범위가 매우 넓은 반면,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는 송국리유형의 여러 요소 가운데 금강중 하류역에 한정되는 매우 좁은 분포권을 이루고 있다. 이것의 계통에 대해서는 평양 남경유적의 미송리형 토기에 주목하기도 하였지만, 파수와 횡집선문의 부재는 물론 금강유역에 대동강유역 무문토기의 영향이 거의 보이지 않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 대안으로 전기 후반의 보령 주교리 18호 출토 적색마연호에서 관창리 801호 출토 적색마연호를 거쳐 송국리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의 등장으로 보는 것이 형식적인 연결로서는 가장 무난하다. 금강유역의 유적에서는 주거지 외에도 저장수혈에서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가 출토되는 사례가 적지 않 다. 주거지의 경우에도 벽면에 접하여 설치된 저장수혈에서 출토되기도 하는 등 저장과 관련된 출토 정황 이 다수 확인된다. 또 금강중하류역을 벗어난 지역에서는 진안 농산유적에서만 전형에 가까운 플라스크형 적색마연호가 출토되었는데, 해당 유구는 수혈이었다. 적색마연호 자체가 의례와의 관련성이 강한 점을 고려할 때, 아직 확실한 근거는 부족하지만 이러한 수혈에서 출토되는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는 저장과 관련된 의례에 사용된 특수 용기일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플라스크형적색마연호의 분포권은 특정 기물을 공통으로 하는 의례의 권역이면서, 어느 정도 규격화된 의례 용기의 사용이라는 공통의 규제가 작동하고 있었던 집단의 범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Flask-type pottery was known at first Songguk-ri Site in Buyeo. Despite the increase in the quantity of excavation and typical Flask-type Pottery did not increase significantly. In addition, individual study for Flask-type Pottery is not being done well. It is possible that typical Flask-type Pottery has been standardized to some extent than the other pottery. It was used only for a very limited time. Therefore we should focus on function rather than its detailed relative date. In the current distribution range of Flask-type Pottery is not much difference with the previous. Songguk-ri type Dwelling and Songguk-ri type Pottery seems a very wide distribution range. On the other hand, Flask-type Pottery among the many elements of Songguk-ri Culture forms a very narrow distribution range limited to the Geum River basin. It has been recognized that Misong-ri type Pottery is associated with genealogy of Flask-type Pottery. But Flask-type Pottery is likely to emerge in the course of changes of red burnished pottery in the Korean Peninsula. And in the site of the Geum River basin, it is excavated dwelling as well as storage feature. Besides red burnished pottery itself is closely related with the ritual. Definitive evidence is still lacking. But it is estimated that Flask-type Pottery is special bowl associated with storage ritual. Then distribution range of Flask-type Pottery can be understood to represent a range of common ritual.

      • KCI등재

        묘광 外 공헌 적색마연호 小考

        배진성 한국청동기학회 2021 한국청동기학보 Vol.29 No.-

        이 글은 묘광 및 구획석 바깥에 적색마연호 한 점을 공헌하는 특이한 습속을 다룬 것으로, 진주 평거동 3-1지구의 묘역지석묘 및 이와 유사한 양상이 보이는 일본열도 북부구주의 사례에 대한 검토이다. 평거동 32~34호 묘역지석묘에는 묘광 및 구획석 바깥에 제단 기능의 수혈과 함께 적색마연호 완형품이 확인되어 여타 유적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장송의례의 습속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는 분묘 축조 및 매장 당시의 장송의례에 따른 것으로, 묘광 및 구획석 바깥에 설치한 제단과 적색마연호를 통해 피장자의 영혼을 저세상으로 보내는 의식을 행하던 습속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평거동 유적 내 다른 조사구역의 묘역지석묘에는 이러한 습속이 보이지 않고, 유독 3-1지구에만 있어 이 유적은 장송의례의 전통이나 방식을 달리하는 복수의 집단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고려된다. 적색마 연호의 형식에서도 평거동은 남강댐 수몰지구 및 그 동쪽의 여러 유적과도 구분되는 측면이 엿보인다. 현재로서 묘광 및 구획석 바깥에 적색마연호를 공헌하는 독특한 습속의 출현이나 성격에 대해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기는 시기상조이지만, 우선은 평거동유적 특히 3-1지구의 묘역지석묘를 축조한 집단은 남강유역권의 여타 유적들과 차이가 있는 동시에, 해당 유적 내에서도 장송의례 및 적색마연 호에서 특이성을 보이는 사례로 판단해두고자 한다. 그리고 북부구주 내에서도 한반도 남부와 지리적 으로 가까운 곳의 야요이 조기~전기 지석묘에도 묘광 외 공헌이 일부 확인되었다. 이러한 습속이 죠몬문화의 전통이 아니라면 新町遺蹟 등은 한반도 남부지역, 그 중에서도 진주 평거동 3-1지구의 집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This paper is a review of ‘red burnished jar(적색마연호)’ of ‘sacrifice to outside of grave pit(묘광 外 공헌)’. Specifically, it is a review of ‘dolmen with burial precinct(묘역지석묘)’ of Pyeonggeo-dong Site(Locality 3-1) and the case of Northern Kyushu of Japanese archipelago. Dolmen with burial precinct of Pyeonggeo-dong Site is characterized by the altar and the red burnished jar outside of grave pit. This characteristic suggests that there was a unique custom of funeral rites, which was rare in other sites. This is related to the construction of grave and funeral rites at the time of burial. Perhaps there was a custom of sending the souls of the dead to the other world through the altar and the red burnished jar. This habit does not appear in other survey areas within Pyeonggeo-dong Site, but only in Locality 3-1. Thus, it is also considered that Pyeonggeo-dong Site may have been made up of multiple groups that differ in the tradition or method of funeral rites. Pyeonggeo-dong Site, in the type of red burnished jar, is also distinguished from other sites in Namgang River basin. At present, it is difficult to draw specific conclusions on the appearance or nature of a unique custom that sacrifices to red burnished jar outside of grave pit. First of all, Pyeonggeo-dong Site, especially Locality 3-1, is divided from sites of Namgang River basin, and it is considered to be an example of unusuality in the funeral rites and the red burnished jar even within Pyeonggeo-dong Site. In addition, sacrifice to outside of grave pit were also investigated in some of dolmen in Northern Kyushu. If this is not a tradition of Jomon Culture, Sinmachi Site are believed to have been closely related to southern part of Korean Peninsula, especially Pyeonggeo-dong Site(Locality 3-1).

      • KCI등재
      • KCI등재

        靑銅器時代 前期 墳墓에 대한 補論

        배진성 호서고고학회 2018 호서고고학 Vol.0 No.40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propose five issues about graves of the early Bronze Age. First, there are many opinions about period of jar burial using straight-necked jar. Among the controversial cases, it is difficult to conclude that it is a later period, and if straight-necked jar of Seongsan-ri site is jar burial, the existence of the early Bronze Age jar burial using straight-necked jar should be acknowledged. Second, grave at the time of the beginning of the Bronze Age has not been investigated. In this regard, there is a possibility that grave related to the northeastern region of China∼Yalu River, which is closely related to the start of the South Korea Bronze Age, may be discovered in the future. On the one hand, there may be some form of burial that can not be recognized at this time. Third, it is a problem of the origin of graves of the early Bronze Age. Since cremation is confirmed, the relation between South Korea and Northeast China can be considered. In additi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areas can be seen in the painted pottery and bronze tool. Fourth, most of graves of the early Bronze Age are in the latter half of the early Bronze Age. Therefore, graves are built in earnest from this time. Fifth, the new placement appearance of grave and settlements is confirmed. At this time, I do not know the personality of settlements yet, but I would like to expect an increase in the number of cases. 본고에서는 청동기시대 전기의 분묘에 대한 다섯 가지 논점을 제안하면서 필자의 견해와 함께 앞으로의 자료 증가에 대비하려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첫째, 직립구연호를 이용한 옹관묘의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다. 논란이 있는 사례들 가운데는 후기로 단정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담양 성산리유적의 직립구연호가 옹관이라면 전기의 직립구연호 옹관의 존재는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현재로서 조기의 분묘는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신석기시대부터 있어 왔고 청동기시대에 더욱 활발하였던 분묘 축조의 습속이 유독 이 시기에만 없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남한 청동기시대의 개시와 관련이 깊은 중국 동북지역∼압록강유역과 관련된 분묘가 現在不在일 가능성, 남한 在地의 선택적 수용 등에 의해 이들 지역의 분묘는 탈락되었을 가능성, 현재 확인되기 어려운 다른 형태의 葬法으로 변화하였을 가능성 등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셋째, 전기 분묘의 원류에 대해서는 火葬으로 보이는 습속이 확인된다는 점에서 남한지역과 중국 동북지역과의 관련성을 생각할 수 있으며, 가지무늬토기의 원류와 함께 광주 역동에서 강상묘 출토품과 유사한 이형청동기가 출토된 점에서도 양 지역의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넷째, 대부분의 전기 분묘는 전기 후반에 해당하며, 전기 전반의 분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전기 전반에 분묘가 축조되었음은 인정되지만, 본격적인 분묘 축조 사회의 개시가 전기 후반이라는 점은 변함없다. 다섯째, 전기 분묘의 유적 내 배치양상을 통해 대형주거 한 동과 중소형주거 두 동이 분묘 한 기를 반원상으로 에워싸듯이 배치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때 주거군의 성격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전기 분묘에 대한 새로운 配置相을 고려하면서 類例의 증가를 기대해 보고 싶다.

      • KCI등재

        美松里型土器文化의 動態와 分布圈

        배진성 동북아역사재단 2015 東北亞歷史論叢 Vol.- No.47

        The Misong-ri type pottery has been academically established by theresearch of North Korean scholars. Although this pottery is known bymany different names, must respect the original cover remains. TheMisong-ri type pottery indicates the specific shape within jar of theBronze Age. Therefore, the concept of type(型式) should be examined. There are numerous views regarding the origin and earliest form of theMisong -ri type pottery. In this study, the Misong -ri type potterysimultaneously appeared in the Liaodong region. And the spatial area inwhich the Misong-ri type pottery has been excavated can be referredto as the area of the Misong-ri Type Pottery Culture. These were notunified cultural and unified political groups. Rather, the pottery showsthat people maintained diversity and regional identities. Thus, thepottery can be identified as a so-called Local Culture. The Misong-ritype pottery was closely related to Gojoseon. Judging by the distributionof the Misong-ri type pottery, the center of Gojoseon was located inthe Liaodong region. In this area, the tombs of the highest powers werein northern Liaodong. 미송리형토기라는 용어는 북한학계의 조사와 연구에 의해 학술적으로 정착되어 왔다. 미송리형토기는 호라는 기종 내에서도 특정의 종류를 지칭하므로 이른바 형식의 개념으로 판단할 수 있다. 미송리형토기의 기원 및 가장 이른 형식에 대해서는 타두 적석묘, 쌍방 6호묘, 장가보 A동 34호묘, 산성자 C동 2호묘, 동산 9호묘의 호가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는 미송리형토기가요동의 어느 한 곳에서 발생하였다기보다는 요동반도와 요북지역에서 각기 지역색을 띠면서 거의 동시기에 발생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권역은 고식의 미송리형토기가 출토된 요동반도, 요북지역, 그 사이의 동산유적 일대,그리고 고식은 없지만 미송리형토기가 전개된 압록강∼청천강유역과 기형적인 지역색이 뚜렷한 대동강유역이라는 다섯 개로 구분된다. 이 지역들을 묶은범위가 이른바 미송리형토기문화권이며, 이것은 어떤 통일된 문화권이나 정치체가 아니라 전체적인 공통성 속에서 권역별 다양성과 독자성을 유지하였던지역문화권으로 볼 수 있다. 문헌에 기록된 고조선이 요하 이동의 미송리형토기를 사용하던 집단들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면, 고조선은 미송리형토기문화권전체를 가리키기도 하고 때로는 그 가운데 특정 권역을 가리키기도 하였을 것이다. 고식 및 전형 미송리형토기의 분포로 볼 때 압록강∼대동강유역보다는요동지역이 전국시대 이전 고조선의 중심 지역이었을 것이며, 그 중에서도 이도하자나 성신촌 석관묘와 같은 최고 유력자의 분묘가 확인되는 요북지역이가장 중심적인 권역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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