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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태론 6권 1호의 기고에 대한 논평

          권인한(權仁瀚),이관규(李寬珪) 형태론 2005 형태론 Vol.7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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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廣開土王陵碑文의 새로운 판독과 해석

          權仁瀚 한국목간학회 2011 목간과 문자 Vol.8 No.-

          이 글은 우리의 현존 最古 금석문인 고구려 「廣開土王陵碑文」(414)에 대한 새로운 판독과 해석을 목표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그동안의 논의들에서 논란이 되었던 글자들에 대하여 酒?本, 北京大本, 水谷1ㆍ2本, 靑冥本, 中硏本, 金子本, 周雲台本 등 8종의 탁본들에 의거하여 정확한 판독이 되도록 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水谷悌二郞(1959) 이후의 주요한 논저들과 함께 중국의 역대 문헌들에서의 여러 가지 용법들을 참조하여 최대한 문면에 충실한 해석안을 제시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이는 그 동안 국어학계에서 이 비문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 이두적 요소의 존재 여부를 가리는 문법 연구 일색으로 치우쳐 있는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微衷에서 출발한 것인데, 앞으로 고유명사 표기자에 대한 음운학적 분석(음운연구), 이두 요소의 존재 여부 구명(문법 연구), 한자어의 기원적 계보 고찰(어휘연구) 등 국어학의 전 부문에 걸친 종합적인 연구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 KCI등재

          광개토왕릉비문(廣開土王陵碑文)의 국어학적 연구 서설

          권인 구결학회 2012 口訣硏究 Vol.0 No.28

          이 글은 우리의 현존 最古금석문인 「廣開土王陵碑文」(414)에 대한 국어사적 가치의 재발견을 목표로 한 것인데, 이 비문에 많은 고유명사 표기 및 한자어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음운·어휘사 방면에까지 그 연구 범위를 확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출발한 것이다. 2장에서는 이 비문에 대한 필자의 해석문을 제시한다. 이는 그 동안에 논란이 되었던 부분들에 대하여 原石系탁본들과 水谷(1959) 이후의 주요 논저들을 참조하여 가능한 한 문면에 충실한 해석안이 되도록 한 것이다. 3장에서는 이 비문에 대한 국어학적인 연구의 가능성을 示顯할 것인 바, 음운·문법·어휘 등 국어학의 전 부문에 걸쳐 이 비문이 국어사 자료로서의 충분한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첫째, 음운사 방면의 연구는 이 비문에 보이는 다양한 고유명사 표기에 쓰인글자들에 대한 음운학적 분석을 통하여 5세기 초엽의 한반도 일원의 음운 상태를 재구하는 것이다. 논의 결과 가장 주목되는 점의 하나는 夫餘?韓系를 막론하고 이 비문의 고유명사 중에서 어두에서 /ㄹ/로 시작되는 예가 거의 보이지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말의 頭音法則의 연원이 매우 이른 시기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과 동시에 夫餘·韓系語의 계통적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을 가능성을 示唆하는 것이 될 것이다.둘째, 문법사 방면의 연구는 이 비문 속의 한문 문법상 특이한 문장들을 중심으로 이두 요소의 존재 여부를 재론하는 것이다. 기존의 논의들에서도 이 비문의 맨 마지막 구절 "買人制令守墓之."에서의 종결사 용법의 ``之``字, "我是皇天之子, 母河伯女郞, 鄒牟王."에서의 국어적 어순, 광개토대왕의 諡號"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國岡上大開土地平安好太王"에서의 석독 표기의 발달 가능성등 초기 이두적 사례로 지적된 바 있거니와, 이 밖에도 "過富山·山, 至鹽水上, ……", "自上祖先王以來, 墓上不安石碑, 致使守墓人烟戶差錯. 唯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 盡爲祖先王, 墓上立碑, 銘其烟戶, 不令差錯." 등에 보이는 처격 용법의 ``上``字도 이두 발달의 초기 단계에 해당되는 사례로 새롭게 주목할 만한것이 아닐까 한다. 셋째, 어휘사 방면의 연구는 이 비문에 보이는 한자어들에 대하여 중국의 역대 문헌들에서의 용례 및 용법을 대조함으로써 5세기 초엽 고구려에서의 한자어 수용 정도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 결과 이 비문에 등장하는 한자어들은 소수의 예인 "部洛, 先迷之衍, 論事"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국에서의 쓰임과 일치함으로써 당시 고구려에서의 한자어의 수용과 변용 양상이 아직은 초기 단계에 머물렀던으로 드러나고 있다. 本文旨在重新發掘韓國現存最古老的金石文「廣開土王陵碑文」(公元414年)在韓語史方面的價?。此碑文中出現了許多固有名詞標記及漢字詞,因此相信有望將其?究範圍擴大至音韻及詞彙史方面。第二章?筆者對此碑文的解讀。對於此前引起爭論的部分,筆者參考了原石系諸拓本及水谷悌二郞(1959)以後的主要論著,盡可能提出忠於字面的解讀方案。第三章提出了此碑文在韓語語言學?究方面的可能性,展現出此碑文在音韻·語法·詞彙等韓語語言學各分支學科中作爲韓語史資料之充分價?。首先,在音韻史?究方面,對那些在此碑文中用來標記各種固有名詞的漢字進行音韻學上的分析,?據此構擬出5世紀初葉朝鮮半島一帶的音韻體系。其中最受?目的一點是: 不論是夫餘系還是韓系,此碑文的固有名詞中幾乎?不到在詞首出現的/ㄹ/。這表示韓語的"頭音法則"可上溯至非常久遠的年代,同時也暗示著夫餘系與韓系語在譜系上的距離可能相去不遠。其次,在語法史?究方面,本文以碑文中在漢語文言語法上較爲特殊的句子?主,再論其中是否存有吏讀(yidu)的成分。現有的?究成果中也提到了碑文中的一些初期吏讀用例,諸如: 此碑文最後一句"買人制令守墓之"中用作終結詞的"之"字,"我是皇天之子母河伯女郞鄒牟王"中的韓語詞序,廣開土大王的諡號"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國岡上大開土地平安好太王"中釋讀標記發達之可能性等。此外,像"過富山·山至鹽水上……","自上祖先王以來墓上不安石碑致使守墓人烟戶差錯唯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盡爲祖先王墓上立碑銘其烟戶不令差錯"等文句中屬於處所格用法的"上"字,似乎也可看作是吏讀初期發展階段的例子,値得重新予以關注。第三,在詞彙史方面,本文將碑文中的漢字詞與中國歷代文獻中的用例、用法進行對比,探討5世紀初葉高句麗的漢字詞接受程度問題。其結果是,碑文中出現的漢字詞當中,除了"部洛?先迷之衍?論事"等少數用例之外,大部分均與中國的用法一致,足見當時高句麗對漢字的接受與變更使用?停留在初期階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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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한국 습서 목간의 사례와 그 의미

          權仁瀚 한국목간학회 2013 목간과 문자 Vol.11 No.-

          본고는 한자문화의 수용과 학습에 초점을 두고서 고대한국의 습서 목간이 지니는 의미를 집중 고찰한 것이다. 본론에서의 논의 결과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제2장에서는 한국 고대목간의 출토 현황을 소개하였다. 현재까지 남한내 20개 유적지에서 600여 점의 목간이 출토된 바, 이 중 묵서 목간의 숫자는 400여 점에 달하고 있음을 보았다. 제3장에서는 습서 목간의 사례들에서 찾을 수 있는 고대한국 한자문화의 구체적인 모습을 추적하였다. 그 결과 습서 목간은 크게 경전 학습에 관련된 것과 문서 작성에 관련된 것으로 나눌 수 있었다. 먼저 경전 학습에 관련된 백제의 사례들은 종류를 특정하기는 어려우나, 성왕대에 양나라로부터 경전류를 수입하여 범국가적으로 경전의 학습에 힘쓴 시대적 배경에 부합됨을 알 수 있었다. 경전 학습에 관련된 통일신라의 사례를 통해서는 당시의 고등 교육기관인 국학에서『毛詩正義』와 같은 유교 경전류를 학습한 구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문서 작성에 관련된 백제의 사례에서는 종결사 등 문서 작성에 필요한 요소들을 연습한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다. 문서 작성에 관련된 통일신라의 사례들을 통해서는 책사 제도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문서 작성을 연습함에 있어서 서두부인 작성 시기와 종결부인 사업 참여자에 관한 정보가 핵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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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간을 통해서 본 신라 사경소의 풍경

          權仁瀚(Kwon, In-Han) 진단학회 2013 진단학보 Vol.- No.119

          본고는 월성해자 출토의 149호 목간이 이두 발달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면에 있어서도 7세기 중엽 신라 사경소에 관한 단서들을 제공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서 한?중?일의 관련 기록들을 참조하여 신라 사경소의 몇 가지 풍경을 그려봄에 목표를 둔 것이다. 제2장에서는 149호 목간의 판독과 해석에 관한 필자의 최종안을 제시하였다. 각 면에 한 군데씩 판독 및 해석 상의 수정 사항에 대하여 그 근거 및 의의를 밝혔다. 제3장에서는 149호 목간에 대한 필자의 최종 판독 및 해석안에서 찾을 수 있는 단서들을 바탕으로 당시 신라 사경소의 이모저모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① 7세기 중엽 신라에 관립 사경소가 존재하였고, ② 이 사경소의 인적 구성은 사무국 종사자 2인(‘大鳥知郞’, 목간 작성자)과 사경 종사자 2인(經筆師, 裝潢師) 정도의 소규모에 그쳤을 가능성이 높으며, ③ 사경지 재료인 ‘白不?紙’(도침 과정을 거치지 않은 흰 종이)와 이를 세는 단위로 ‘?’가 존재하였다는 점 등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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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古代 東아시아의 合文에 대한 一考察

          權仁瀚(Kwon, In-han) 한국목간학회 2015 목간과 문자 Vol.0 No.14

          합문은 중국에서 기원한 것으로 甲骨文, 金文, 簡牘文 등에 걸쳐서 폭넓게 분포한다. 갑골문에서는 上下/下上 결합, 右左/左右 결합, 上下/左右 결합 방식의 합문들이 공존하고 있음에 비하여 금문·간독문을 거치면서 점차 상하 합문이 다수를 보이는 방향으로, 또한 合文號도 사라지는 방향의 변화가 나타난다. 이어서 秦·漢代의 간독문에서는 자형 상 공통 요소를 지니는 글자들(예: 大夫, 上下 등)끼리의 합문이 늘어나기도 한다. 한반도의 합문 사례는 특히 신라의 금석문·목간·고문서 등에서 자주 발견된다. 합문 방식은 상하 결합 유형이 절대 다수를 보이면서 합문호의 흔적은 전혀 찾아지지 않음이 특징적이다. 또한 부분적으로 자형 상 공통 요소를 지니는 글자들끼리의 합문 사례도 보이는데, 이러한 양상은 대체로 漢代의 간독문 사례와 유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신라는 중국의 여러 유형들 중에서 합문호가 없는 상하 방향의 합문 유형을 선택적으로 수용하여 차차 ‘大豆→□→太’와 같이 아랫 글자의 전체 혹은 일부를 점(?)의 형태로 지극히 단순화하는 독자적인 유형으로까지 변용·발전시킨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한편, 일본 열도의 합문 사례는 주로 목간들에 집중되며, 그 유형은 신라의 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상의 고찰을 바탕으로 “중국 대륙으로부터 한반도로의 선택적인 수용과 변용, 그리고 한반도로부터 일본 열도로의 전파”라는 문자문화의 교류 양상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 된다. As this paper is a case study on the interaction of Sinographic Culture in ancient East Asia, it focused on the data of Korean, Chinese, and Japanese ‘Ligature’. ‘Ligature’ means a way of writing a Chinese character to combine two or more sequent Chinese characters in the text vertically or horizontally. ‘Ligature’ was originally begun in China. It was found in various written texts throughout the ages such as “oracle bone scripts(甲骨文)” in the Shang Dynasty(=the Yin Dynasty), “bronze scripts(金文)” in the Zhou Dynasty and the warrior states period and “bamboo or wooden slip scripts(簡牘文)” in the Han Dynasty. The various forms of ‘Ligature’ co-existed in “oracle bone scripts”. That is to say that two characters were combined downward, upward, leftward or rightward. It is found that the forms of ‘Ligature’ were changed when reviewed ‘Ligature’ in “bronze scripts” and “bamboo or wooden slips scripts”. Gradually the form of combining two characters downward increased and ligative marking(合文號) got disappeared. In addition, the combination of two characters that have the shape of character in common, increased when investigating “bamboo or wooden slips scripts” in the Qin and Han Dynasty. The examples of ‘Ligature’ that were used in the Korean Peninsula are commonly found in epigraphs, wooden tablets, and ancient manuscripts in the Silla Dynasty. In these examples, the form that two characters combined downward got an absolute majority and it is distinctive that any trace of ligative marking was not found. In addition, partially the combination of two characters that have the shape of character in common, is found in some examples. These examples are regarded as similar cases of the form of ‘Ligature’ found in “bamboo or wooden slips scripts” in the Qin and Han Dynasty. As a result, the development of the ‘Ligature’ in the Silla Dynasty can be summarized as followings: among various forms of Chinese ‘Ligature’, the form that two characters combined downward without a ligative marker(e.g., 水+田→畓) was firstly accepted and then whole or part of the character of the lower part was simplified as a dot (?) (e.g., 大豆→□→太). Thus, it can be said that ‘Ligature’ used in the Silla Dynasty developed from simply using a form of Chinese ‘Ligature’ into creating a distinctive type of ‘Ligature’. Meanwhile, the examples of ‘Ligature’ in Japan are mostly found in “wooden tablets(木簡)”. They are not much different from the forms of ‘Ligature’ in the Silla Dynasty. Later some unique forms of ‘Ligature’ that combined a katakana(片?名) and a Chinese character(e.g., ト+云→) were used but the examples of this form cannot be found many. As examining the data of ‘Ligature’ in ancient East Asia, this paper can reconfirm the fact that China, Korean and Japan carried out Sinograpic cultural exchange. People in the Korean Peninsula played roles of both recipients and messengers. In particular, “they selectively accepted Sinograpic culture of China and transformed them, and then delivered them to people in the Japanese Archipel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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