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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国における共生の思想とその特徴

          崔在穆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0 동북아 문화연구 Vol.1 No.25

          This paper is a study on the character of Gongsaeng(共生, symbiosis) thoughts in Korea. Here, I mentioned the key words as follows; Dangun(檀君)'s Hongikingan(弘益人間), Wonhyo(元曉)'s Giilsimwonyiyoikjungseang(歸一心源而饒益衆生), Choi Chiwon(崔致遠)'s Jophwagunseang(接化群生)・Hoseangwibon(好生爲本), Lee Hwang(李滉)'s Guin(救人)・Gumul(救物)・Hwalmul(活人)・Hwalmul(活物), Choi Sihyong(崔時亨)'s Geongmul(敬物)・Sikilwan(食一碗), Gangilsoon(姜一淳)'s Haewonsangseang(解寃相生), Gyongju-Chobuja(慶州崔富者)'s Yukhun(六訓, six instructions), Yukyon(六然, six pretensions). The character of Gongsaeng(共生, symbiosis) thoughts in Korea, in the manner now described, shows very distinguishing characteristics compare with China and Japan. But these issues, from the past until now, did not begin to receive attention from academia. Korean Gongsaeng(共生, symbiosis) thoughts has the three characteristics as below. The first, Gongsaeng thoughts has idea that everybody must continue to serve on people or living things without compensation The second, Gongsaeng thoughts has idea that if we serve and benefit people and all things in the end, it must be of help for our well being. The third, Gongsaeng thoughts should to have a strong sense of responsibility and awe-inspiring for others of the world. Such as that, korean Gongsaeng thoughts has a idea of fair distribution and distributive justice to the others and world.

        • KCI등재

          정인조(鄭寅朝)의 「울릉도기행(鬱陵島紀行) : 식물채집기 (植物採集記)」에서 보는 1947년의 울릉도

          최재목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2020 비교일본학 Vol.49 No.-

          이 논문은 종래 소개된 바 없는, 1948년 7월에 발표된 鄭寅朝의 「鬱陵島紀行 : 植物採集記」 을 통해서, 1947년의 울릉도 식물 및 현지 상황을 살펴본 것이다. 위의 논의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鄭寅朝는 이미 울릉도의 식물에 대한 많은 기초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 기행문이 1947년 8월 ‘남조선 과도정부’와 ‘조선산악회’가 공동으로 구성한 ‘울릉 도학술조사대’의 식물전문조사팀에 소속되어 울릉도 현지답사를 수행했던 필자(정인조)에 의 해 작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기행문에서 언급된 당시의 식물 30여종은 현재 생육 식물들과 대조해본 결과 모두 현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째, 기행문에서는 조국, 국토라는 확고한 의식이 잘 드러나 있고, 해방 직후 본토에서 멀 리 떨어진 우리 국토 울릉도의 땅을 밟는 기쁨을 잘 드러나 있다. 넷째, 해방 직후의 울릉도는 정치적으로는 고요했으나, 약초 및 채소 채취는 물론 벌목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행위는 당시뿐만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와 그 이전에도 일본인들의 잠입에 의해, 그리고 조선의 內地 및 섬(거문도 등) 사람들에 의해 지속되어왔던 일이이었다. 다섯째, 일제강점기가 일본인들이 남긴 현지 풍경으로서 도동항의 ‘함석 이층집들’, 산에 식재된 ‘스기’(杉. 삼나무)를 살필 수 있다. 그 외의 것은 기록되지 않아 파악할 수가 없었다. This study examines Jeong In-jo's travel writing titled “Ulleungdo: Plant Collection Records,” written in 1947. This travel writing describes the landscape of Ulleungdo Island in 1947, immediately after liberation, but it has not yet been mentioned in the related studies so far. First, it seems that Jeong In-jo already had a lot of basic knowledge about Ulleungdo's plants. This is because this travel writing was written after a participation in the academic research team formed jointly by the ‘South Korean Transitional Government’ and the ‘Chosun Mountain Association’, that went to Ulleungdo in August 1947. Second, all the 30 plant species mentioned in the travel writing are growing on Ulleungdo. Third, the travel writing clearly reveals the firm consciousness of the motherland, and the joy of stepping on the land of Ulleungdo as our homeland, far from the mainland immediately after liberation. Fourth, Ulleungdo immediately after liberation was politically quiet, but it can be seen that harvesting herbs and vegetables as well as logging are routinely performed. Of course, this behavior was sustained not only at the time but also before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by the Japanese and by the Joseon people (inland and islands). Fifth, the scenery of Ulleungdo left by the Japanes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can be seen from the two-story houses in Dodong Port and the Sugi trees planted by the Japanese in the mountains. Everything else is not recorded and cannot be grasped.

        • 원효의 <무애무(無碍舞)>연구를 위한 기초자료 조사

          최재목,손지혜 남북문화예술학회 2009 남북문화예술연구 Vol.0 No.4

          이 글은 신라 원효대사(617∼686)가 창안한 <무애무(無㝵舞)>의 연구 사 검토를 위한 선행 작업으로 관련문헌 및 기초자료를 정리한 것이다. 원효의 독창적 화쟁회통(和諍會通) 사상의 탁월성은 현실에서의 무애행화(無㝵行 化)의 실천으로서 나타난다. 이러한 무애행의 구체적 실례인 <무애무>는 단순히 예술사적 논의를 넘어서 불교사상적 측면에서도 큰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현재까지 <무애무>는 일차적 근거가 되는 문헌사료의 부족으로 인해 연구 과제 및 주요쟁점이 세분·확장되어 논의되지 못하였다. 또한 민간에서 시작하여 궁중정재(宮中呈才)로 변모하며 겪는 다양한 변화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 따라서 <무애무>와 관련된 산발적인 의견을 재검토하고, ‘연구쟁점과 과제’를 명확히 부각시켜 구체화하기 위한 기초적 자료정리 역할을 하고자 한다. 연구범위는 문헌사료를 비롯하여 <무애무>를 직·간접적으로 조명한 학위, 학술 논문과 단행본, 그리고 기타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하였다. 1)문헌사료 2)단행본 및 논문 3)기타(잡지, 도상)으로 구분하여 편찬연대순으로 정리하였으며, 단행본 및 논문자료는 주요 쟁점별로 각 항목을 나누어 검토하였다. <무애무>는 가무희(歌舞戱)의 복합적 양상을 띤 무형예술로 각계의 추측성 해석 과 단편적 소개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무애무>의 관련 연구를 새롭게 조명하고 <무애무>의 기본정신과 예술사적 의의를 복원하기 위한 연구가 지속될 수 있도록 토대의 역할을 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 KCI등재
        • KCI등재

          최남선 少年誌의 ‘新大韓의 소년’ 기획에 대하여

          최재목 동아시아일본학회 2006 일본문화연구 Vol.18 No.-

          崔南善 ꡔ少年ꡕ誌の ‘新大韓の少年’企劃について 崔 在 穆 本稿は韓國近代期代表的知識人の一人である崔南善(號は六堂.1890∼1957)が當時韓國內に流入された泰西及び日本等地から得た最新版海外情報,より具體的に言えば日本の德富蘇峰の言論活動よりヒントを得て構想したꡔ少年ꡕ誌によって如何に‘新大韓の少年’を企劃しており,またその意味は何なのかを檢討するものである。 崔南善が使用するこの‘少年’槪念は、當時の文學、政治、思想などにおける共有された特有の言說‘空間’を見せている。このようにꡔ少年ꡕ誌には近代期韓國で苦惱したさまざまな問題意識が內在されている。すなわち、帝國主義や軍國主義に抵抗あるいは適應しながら展開し見せる愛國啓蒙運動、‘國民國家’の發見、それから泰西から流入された‘自由’ ‘地理學’などの新槪念と新潮流の理解、‘陽明學’及び‘近代日本陽明學’の韓國的再認識、再調整の努力。このような泰西及び‘日本帝國主義や軍國主義が創出した文化乃至文明を新しく領有(appropriation)しようとした方法を發見しうる一種の綜合情報源でもあろう。さらに本稿は韓國や日本、ひいては泰西との近代的知のネトワ-クを見ることのできる一つのよい方法になるであろう。 本稿は、「崔南善の‘少年’發見の思想的意味」、「ꡔ少年ꡕ誌と‘新大韓の少年’構想」、「ꡔ少年ꡕ誌と德富蘇峰との關聯性」、「海、大洋それから「海から少年へ」-三〮面環海‘新大韓の少年’の‘世界’認識のための記號 -」とに敍述さ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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