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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사 연구의 동향과 과제 -2000년대의 연구를 중심으로-

          윤경로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0 한국민족운동사연구 Vol.0 No.62

          ■Abstract Tendencies and Tasks of the Researches about Korean Internal Independence Movements in 1910s Yoon, Kyung-ro Recently researches on the Korean internal independence movements in 1910s have been made prosperously. So we could understand various aspects of them. Activities, leaders, ideologies, policies, and characteristics of them became known to us. Characteristics of researches on the Korean internal independence movements in 1910s have been studied during 2000s are as follow. First of all, studies about Chae Eung-eon loyal resistance troops and secret societies as Daehan Gwangbokhoe(大韓光復會), Taeeulgyo(太乙敎), and Chunglimgyo(靑林敎) have been presented. Next, researches about educational activities of the Christian religion and the Cheondogyo, and them of cultural movements for inspiring national spirit have been carried out. Finally, studies of national movements had been happened in the provinces of Korea have been carried out. In spite of many researches, we have a lot of task. In the future. First, we need to study about members of the organizations and societies for Korean Liberation. Second, it is necessary for us to study of characteristics and relations of members of them. Third, we have necessity to study of meaning of educational activities by religion organizations and schools. Fourth, we need to study of the attitudes of Koreans about Korean independence movements. Fifth, it is necessary to study connection between internal independence movement organizations and independence movement organizations. Finally, we need to study an interrelationship between the internal independence movements in 1910s and 3ㆍ1 Movement. ■국문요약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사 연구의 동향과 과제-2000년대의 연구를 중심으로-윤경로 이 글은 2000년대에 행해진 1910년대의 국내독립운동에 대한 연구의 성과를 분석하여 정리한 글이다. 이 시기의 연구는 크게 세 가지의 측면에서 두드러진다. 첫째 대한광복회를 비롯한 비밀결사의 조직과 활동에 대한 연구가 눈에 띄게 진척되었다. 둘째 독립운동의 기저로서 교육운동과 천도교를 비롯한 민족종교단체의 역량,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문화적 활동에 대한 천착이 이루어졌고, 독립운동의 배경으로서 일제의 지배이데올로기와 통치정책, 통치제도와 통치기구, 통치사업에 대한 연구에서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 셋째 지방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제고되면서 1910년대 지방의 독립운동에 관한 글이 여러 편 발표되었다. 1910년대 대표적 비밀결사인 대한광복회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의 결과, 대한광복회의 정식 명칭에 대한 재고가 있었고, 대한광복회의 지부의 조직과 활동이 구명되었다. 또, 본부의 박상진과 채기중 뿐만 아니라, 지부의 이관구와 조현균 등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졌다. 아울러 민족종교인 태을교와 청림교의 비밀결사 조직과 군자금 모집 활동이 밝혀졌다. 1910년대 독립운동의 기반, 혹은 민족운동의 역량과 관련된 연구로는 무엇보다도 교육 활동에 대한 연구가 눈에 띈다. 종교단체와 자치단체의 사립학교와 강습소를 통한 교육운동에 대한 글이 다수 발표되었다. 다음으로는 민족의식의 형성과 관련하여, 개조론, 문화사학, 영웅 만들기 등에 대한 글이 새롭게 소개되었다. 독립운동의 원인이 되는 일제의 지배와 관련된 연구로는 일제의 지배이데올로기와 통치정책, 통치제도, 통치기구, 통치사업에 관련된 연구가 있었다. 그리하여 일제가 동화, 군사기지화, 경제예속화의 목표 하에 여러 가지 사업을 전개하였고, 근대화ㆍ문명화를 내세우며 한인들을 예속시키려 하였음이 다시금 강조되었다. 그리고 일본시찰단, 상공회의소, 문화재 조사사업, 태형령 등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졌다. 특히 부산을 비롯한 경상도, 그리고 전라도의 지배와 통치에 관한 글이 다수 발표된 점을 주목할 만하다. 지방의 1910년대 국내독립운동에 대한 연구는 경북에서 특히 활발히 이루어졌다. 김희곤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안동ㆍ영덕 등 경북 출신 인물의 비밀결사활동과 교육운동을 검토하였다. 새로운 방식의 연구로서, 연구독립운동을 전개한 가문이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한 마을을 사회경제적으로 조사하여 독립운동 가문의 독립운동과 해외 이주로 인해 마을의 사회계층의 변화가 발생하였음을 입증하였다. 이상과 같은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1910년대 국내독립운동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첫째, 지방의 독립운동과 그 주도인물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 시ㆍ군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는 자치단체는 소수이고, 그 수준도 매우 열악한 상태이다. 따라서 대다수 시ㆍ군의 독립운동에 관한 보다 더 큰 관심과 후원이 요구된다. 둘째, 독립운동단체 구성원들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사상적 기반을 규명하기 위한 입체적 유기적 연구가 행해져야 할 것이다. 즉, 그들이 그 단체에 참여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들의 혈연과 학연, 정치적 경험의 공유 문제, 정치 이념 등을 통합적으로 고찰하고,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요구된다...

        • KCI등재
        • 메타버스 표준화 동향

          윤경로 한국통신학회 2021 정보와 통신 Vol.38 No.9

          본고에서는 메타버스의 다양한 정의를 살펴보고, 미래 지향적인 정의를 내려 보았다. 이러한 정의에 기반하여 메타버스의 특징을 살펴보았으며, 미래 지향적인 정의에 기반한 메타버스를 현실화 하기 위하여 필요한 주요 표준들의 동향을 살펴 본다. 렌더링 관련 표준으로는 크로노스그룹이나 JTC 1 SC24의 표준들이 있으며, MPEG-I 표준 역시 메타버스 표현을 위한 표준으로 활용될 수 있다. 메타버스의 연결, 호환, 확장을 위한 표준으로 MPEG-V 와 IEEE 2888 표준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표준들을 기반으로 비로소 미래지향적인 메타버스의 규격이 완성된다 할 수 있겠다.

        • KCI등재

          105인 사건 피의자들의 사건 이후 행적에 관한 소고 - 친일로 경도된 9인을 대상으로-

          윤경로 한국기독교역사학회 2012 한국기독교와 역사 Vol.36 No.-

          이 논문은 105인 사건 피의자들에 관한 사후 행적을 추적한 연구이다. 본 연구에서는 105인 사건 피의자들 가운데 사건 이후 친일로 경도되었던 인물 9명을 선별하여 그들의 친일행적을 추적하였다. 추적 결과 이들 9인의 행적은 대체로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먼저 출옥 후 실업활동에 종사하다가 친일로 경도된 유형이다. 김동원 이근택, 이춘섭, 차균설 등 4인이 이에 해당 한다. 다음으로는 출옥 직후부터 친일활동으로 경도된 경우이다. 이에 해당자로 나일봉과 장응진 그리고 윤치호 등 3인을 들 수 있다. 끝으로 출옥 후 중국 상해로 망명한 후 일제의 ‘첩자’와 ‘밀정’ 혐의로 결국 사살당한 옥성빈과 옥관빈 형제 2인의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부류인 상기 4인은 105인 사건에서 풀려난 후 주로 실업 및 종교 활동과 민족개량주의운동에 참여하다가 1930년대 중반이후부터 보다 적극적인 친일 활동의 길을 걸었다. 특히 이들 4인은 일제의 식민지배하에서 주로 경제실업활동에 종사한 실업인이자, 기독교인이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두 번째 부류인 나일봉과 장응진은 사건 이후 일본 조합교회 교인이 되었다. 특히 나일봉은 출옥 후 바로 일본 조합교회 목사로 변신, 친일활동에 적극 나섰다. 마지막 부류인 옥성빈, 옥관빈 형제는 1933년 중국에서 살해되었다. 옥성빈은 출옥 후 상해로 망명하였지만 상해 망명 직후부터 임정 요인들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어 의심을 받았다. 옥관빈은 당대 재중 한인 가운데 최고의 사업가로 거부가 되어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사업가로서 대성공을 거둔 그를 바라보는 상해 임정과 한인 독립운동단체의 눈에는 대표적인 ‘한간’(韓奸)으로 비쳐졌다. 따라서 마땅히 처단해야 할 ‘간역(奸逆), 옥역관빈(玉逆觀彬)’으로 단정했고 그 결과 1933년 8월 1일 한인제간단(韓人除奸團)에 의해 처단되었다. 이상 9인의 행적 추적을 통해 105인 사건 이라는 동일한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들의 이후 행적은 민족과 역사의 길을 걸은 인물과 순응과 훼절의 현실적 길을 택한 자로 구분된다. 이중 상기 9인은 후자에 속한다 할 수 밖에 없다. 이 모두가 국권을 빼앗긴 민족과 나라의 아픔과 슬픔이라 할 것이다. This article selects nine convicts of the Korean Conspiracy Case who became Japanese collaborators after the case, and deals with their pro-Japanese activities. It grouped their pro-Japanese activities into three categories. First, Kim Dong-Won, Yi Geun-Taek, Yi Chun-Seop, and Cha Gyun-Seol became Japanese collaborators as they were engaged in business after their release from prison. Second, Na Il-Bong, Jang Eung-Jin, and Yun Chi-Ho began to work with the Japanese immediately after their release. Finally, two brothers, Ok Seong-Bin and Ok Gwan-Bin exiled themselves to Shanghai, China, were suspected to be Japanese spies, and were murdered on that account. The first group of four individuals participated in business, religious activities,and national improvement movement after their prison term, but became active Japanese collaborators since the mid-1930s. They were all Christian businessmen. The Na and Jang of the second group became members of the Japanese Johap Church. Na, in particular, became an ordained minister of the church, and actively participated in pro-Japanese activities. The two Ok brothers were killed in China in 1933. Ok Seong-Bin exiled himself to Shanghai upon release from prison and god involved in nationalist activities. But he was regarded as a person to be watched. Ok Gwan-Bin, on the other hand, made a huge fortune and became a prominent person among Korean communities in China. However, Korean nationalists in China considered him a double-crossing traitor, and a group of Korean undercover executioners assassinated him. The people involved in the Korean Conspiracy Case suffered greatly. However, some continued to walk along the path of nationalist cause, while others chose a practical way of submission and collaboration. The nine persons of this article chose the latter o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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