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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이탈리아 한국학의 현재와 미래

        김효신 한국이탈리아어문학회 2018 이탈리아어문학 Vol.0 No.55

        Oggigiorno, la Cultura Coreana in Italia non è nuova. la Corea è presente in Italia sotto molti aspetti. In Italia si può trovare gli istituti universitari per la lingua coreana inclusa la coreanistica, le palestre dell’arte marziale, i ristoranti tipici coreani, i prodotti della grande industria. Oggi si può dire che non vi sia in Italia una sola casa in cui non sia mai penetrato qualcosa costruito in Corea. In effetti, durante questi ultimi 20 anni si è cresciuta molto l’attuale Coreanistica sia grazie alla passione ed agli sforzi continui degli studiosi italiani coreanistici, sia grazie al sostegno governativo della Corea. Inoltre la maggior parte dei lavori principali scritti da alcuni studiosi illustri italiani si è fatta grazie al supporto coreano. Quindi per il futuro, per il buon risultato cioè dei libri e delle tesi ecc. si deve andare avanti come adesso. Recentemente si può notare alcune vicende significative per lo sviluppo della Coreanistica per esempio, l’Esposizione Universale Milano 2015, il Window on Korea presso l’Università La Sapienza di Roma. 이탈리아 한국학의 현재와 미래를 부족하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의 위상을 살펴보고 그 문제점 및 미래에 대한 발전 방안 등을 모색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21세기는 현대문화 속에서 한국이 누려보지 못했던 한국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제 단순히 국제적인 한류가 아니고 세계 속의 한류, 한국, 한국학을 이야기해 볼 때가 되었다. 유럽 속 이탈리아의 한국학의 현황 및 분위기는 어떠할까? 이 자리에서 바로 이러한 이탈리아 한국학의 모습을 연대기적으로 그리고 통시적으로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데 이탈리아 한국학에 관한 선행연구도 사실 3편(김시홍, 김훈태, Maurizio Riotto) 정도가 고작인 현실이다. 그리고 기존의 선행연구는 시기적으로 2004년, 2009년, 2012년에 발표된 것들이어서, 지금이 시기적으로도 다시 업데이트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KCI등재후보

        한국에서의 이탈리아어 교육 및 이탈리아학 현황

        이상엽 ( Sang Yeob Li ) 한국이탈리아어문학회(구 한국이어이문학회) 2011 이탈리아어문학 Vol.0 No.33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이탈리아어문학자들의 학술대회가 지난 6월 초에 대만에서 개최되었다. 참가국은 주최국인 대만을 포함하여 모두 8개국 이었다. 대만, 한국, 호주, 일본, 중국, 태국, 인도, 베트남이 참가국이었다. 본 논문은 그 학술대회에서의 발표내용을 전체적으로 정비하고 보완하였다. 따라서 본고의 목적은 한국에서의 이탈리아어 교육과 이탈리아학의 현황에 대하여 설명하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들과 우리나라의 상황을 비교하여 특징적인 부분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인상적인 것으로는 호주와 일본에는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매우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탈리아인 이민자들의 숫자가 매우 많은 호주에서는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물론이고 이탈리아어를 가르치는 고등학교도 매우 많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도 대부분의 대규모 대학에는 이탈리아어 과정이 있으며 가장 좋은 대학으로 평가되는 6개 명문대학에는 모두 이탈리아어과가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대학 등의 평생교육 시스템을 통해 장년층에서도 이탈리아어 학습 수요가 매우 많다는 일본 단테 협회 회장 Fabrizio Grasselli의 설명도 인상적이었다. 또 한 가지 나의 관심을 끈 것이 있었다. 호주,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 인도, 태국, 베트남에도에도 단테 협회(Societa Dante Alighieri)가 설립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호주에는 수도 캔버라를 포함 10개 도시, 일본에는 동경과 오사카, 중국에는 홍콩과 북경 그리고 태국의 방콕, 베트남의 하노이와 인도의 뭄바이에 협회가 나와 있다. 이탈리아가 대만과는 정치적으로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 못한 점을 고려하면 참가국 중 유일하게 한국에만 단테 협회가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단테 협회를 통해 이탈리아가 공유하고 전하고자 하는 상징적 의미를 고려할 때 우리학회가 주관이 되어 이탈리아 정부에 한국내의 협회 설립을 건의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탈리아어 교육과 관련한 학회 참석자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나의 답변을 논문의 마지막에 첨부하였다.

      • KCI등재후보

        한국인 학생들의 이탈리아 관사 습득과 학습방안

        정임숙 ( Im Suk Jung ) 한국이탈리아어문학회(구 한국이어이문학회) 2014 이탈리아어문학 Vol.0 No.42

        본 연구는 이탈리아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해 공부하는 한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탈리아어 관사 습득 과정에서 직면하는 문제점을 조사, 연구하여 이에 적합한 효율적 습득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국인 학생들은 이탈리아어 습득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관사 습득에 있어서는 고급 과정에 이르는 학생들 역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탈리아어의 관사는 여러 용법과 의미로 사용되어 성과 수에 따라 형태가 변화하는 문법적 요소 외에 기능, 특수 사용 등을 고려해야 한다. 2008년부터 2010년에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과 이탈리아문화원의 도움을 받아 14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지 조사 및 강의 녹화가 가능했으며 이는 본 논문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설문지 대상 학생들은 모두 한국인 성인이었으며 초급, 중급, 고급 과정으로 나뉘었다. 이 연구의 주 목적은 관사 습득 과정에서 나타나는 언어 현상과 문제점을 조사해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적합한 학습 방안을 제시하는 데 있다. 관사 습득에 초점을 둔 학습 방법을 제안함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를 알아본다.

      • KCI등재후보

        19세기 이탈리아 민족시인 카르두치; 반 기독교적, 고전주의적 관점 중심

        이정현 ( Joung Hyoun Lee ) 한국이탈리아어문학회(구 한국이어이문학회) 2016 이탈리아어문학 Vol.0 No.47

        오스트리아로부터 해방된 후 이탈리아 통일운동Risorgimento의 시기인 19세기는 이탈리아인들에게 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이며, 그한가운데 이탈리아 국민을 사랑하고 진정한 이탈리아의 해방을 찬양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위대한 민족시인 카르두치가 있다. 그의 애국심은 유수한 작품들에 녹아들어 이탈리아 국민들이 자유와 정의로 눈돌릴 수 있도록 이끌었다. 본 논문에서는 그의 작품들을 1) 고전주의적관점과 2) 반 기독교적 관점, 양방향으로 조망한다. 그리고 그의 문학작품에 나타난 이 두 관점은 결국 이탈리아인의 우수성을 일깨우고 진정한 독립을 향한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카르두치의 투사 방법이었음을 살펴본다. 본 논문에서는 첫 째, 통일을 위해 애국심이 요구되는 당시 이탈리아시대를 감안할 때, 적어도 카르두치의 관점에서는 다소 감상적일 수 있는 레오파르디와 같은 낭만주의자와 그와 다른 시각의 고전주의자 카르두치의 관점을 비교한다. 둘 째, Inno a Satana(1863) 와 Giambi edEpodi(1867-1879)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이탈리아 통일에 방해가 되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 강하게 반발하는 반종교적 정신을 소고한다. 셋 째, Rime(1857), Rime nuove(1887), Odi barbare(1878-1889)와 같은 그의 후반 작품들을 통해 찬란했던 역사의 부활, 고대 로마의 영광과 그 정신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카르두치의 고전 정신을 살펴본다. 결론적으로, 카르두치는 해방 이탈리아를 염원하는 ‘애국주의자’의 입장에서 통일 정신을 저해하는 교회에 적대감을 드러낸 ‘반 카톨릭 정신’을 시로 표현하였다. 둘째, 그는 ‘민족주의자’로서 고대 로마의 정신을 이어받아 본래 이탈리아인이 가졌던 우수한 국민성을 상기시키려 하는 ‘고전 정신’을 보여주었다. 본 연구가는 이 논문에서 카르두치를 시자체가 가지는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로서 의의를 두지 않았다. 그는 동시대에 어쩌면 사치일 지도 모르는 예술성이나 내적 감성을 추구했던 낭만주의에 반하였고, 오히려 반 기독교정신과 고전주의로 무장하여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투사시켰으며 그 시대와 국민이 실질적으로 필요로하는 ‘유용한utile’ 시를 선택한 시인이었다고 고찰하는 데 이 연구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

      • KCI등재후보

        한국에서 외국어로써의 이탈리아어 습득: 언어학적 및 문화적 특징

        SaraLisVentura ( Sara Lis Ventura ) 한국이탈리아어문학회(구 한국이어이문학회) 2011 이탈리아어문학 Vol.0 No.33

        본 논문은 한국 학생들이 외국어로서 이탈리아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주된 어려움의 원인들을 알아보고자 한다. 고려할 두 가지 변수는 언어적인 것과 사회문화적인 것이다. 우선 학습자들의 중간언어에서 출발하여 이탈리아어와 한국어 간의 대조 분석을 제시하고, 습득의 진행을 어렵게 하는 모국어의 형태론, 구문론 그리고 음성학적인 개입을 규명한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구술 생산력의 저해 요인 즉, 습득을 지연시키는 장애물로 예상되는 두 가지 문화적 요소로 강한 집단 소속감과 사회 계층구조를 살펴본다. 결론에서는 기저 체계에 필요한 적응 지침과 함께 원활한 습득을 위한 보다 적절한 접근으로서 Cooperative Learning 협력학습을 제안한다.

      • KCI등재

        새로운 이탈리아를 위한 언어 통일 정책

        윤종태 한국이탈리아어문학회 2018 이탈리아어문학 Vol.0 No.55

        In questo articolo ho cercato di dimostrare ogni misura e tutte le azioni che sono servite a rendere l’italiano più universale e più uniforme. Dopo l’unifacazione, Il nuovo regno d’Italia ha trovato un paese in cui la maggior parte del popolo, quasi analfabeta, utilizzava i dialetti propri delle differenti zone della penisola. Quando si completata l'Unità di Italia con la capitale a Roma non esisteva una lingua nazionale. L'Italia non aveva subito un processo di centralizzazione di politica come era accaduto in Inghilterra o in Francia, dove il dialetto di Parigi è diventato lingua nazionale, né una forte unificazione culturale come in Germania, dove la lingua usata da Lutero nella sua traduzione della Bibbia divenne la base della lingua. Prima di presentare le scelte linguistiche dei intelletuali e sopratutto dello Stato, ho presentato il dibattito sull'esigenza di scegliere una lingua comune per tutta l'Italia il quale aveva coinvolto vari letterati come Carlo Cattaneo, Alessandro Manzoni, Francesco De Sanctis. Così anche la proposta di scegliere il fiorentino parlato come una lingua nazionale. Manzoni ha elevato il fiorentino a modello nazionale linguistico, con il suo romanzo storico, 『I promessi sposi』 che è diventato il testo di riferimento per il nuovo italiano della prosa. Ho esaminato un avvenimento dell’unità di lingua non solo dal punto di vista linguistico, ma anche dal punto di vista legislativo e amminsitrativo. Così ho preso in esame i programmi scolastici dei ministri della Pubblica Istruzione e le azioni repressive del ventennio fascista con il quale si è inaugurata una fase di politica linguistica autoritaria. Ho accennato anche le migrazioni interne dalle campagne alla città e da sud a nord le quali hanno contributo alla diffusione dell'italiano come lingua commune, e la legislazione linguistica, cioè i provvedimenti a favore dell’unità linguistica, e anche il contributo dei mezzi di comunicazione di massa. 현재 이탈리아에서는 이탈리아어와 관련된 요구들이 이탈리아어 고등위원회 (2001년 12월 21일자 법령 993호)의 프로젝트에 포함되었으나, 이후에 많은 논란을 거듭하다가 결국에는 추진되지 못하였다. 크루스카 학회는 나름대로 20세기 말부터 영어의 확산으로 인한 영향과 방언 및 지역 언어의 압박으로 인한 전 세계의 복잡한 언어 현안에 직면하여, 지원을 필요로 하는 유럽 언어의 보호와 진흥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크루스카 학회는 유럽연합의 여러 국가들과 협정을 체결하고 통합된 유럽에서 시민의 언어·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언어 평등주의를 수호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탈리아 왕국의 통일과 함께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언어의 문제’를 교육부 산하의 위원회와 학회를 중심으로 해결해 왔다. 따라서 새로운 이탈리아 왕국의 통일 이후의 언어 정책과 관련된 활동은 학교 교육을 비롯하여 몇몇 지식인, 언어학자, 정치인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왔는데, 본 연구도 이러한 항목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 KCI등재

        이탈리아 내러티브 연극

        장지연 한국이탈리아어문학회 2016 이탈리아어문학 Vol.0 No.49

        Il teatro di narrazione comincia a diffondersi in Italia intorno alla metà degli anni ottanta, e fiorisce negli anni novanta, e poi riesce a prendere posto con grande successo diventando il fenomeno teatrale principale dell'Italia. Il teatro di narrazione consiste nel fatto che l'attore­narratore solista, sul palco senza scenografia o costume di scena, rappresenta non un'azione drammatica ma il racconto di un'azione drammatica, conservando la propria identità, e attraverso la sua voce, la sua gestualità, il suo corpo. Il solista deve avere in sè una triplice professionalità (attore, autore, regista). Di questi narratori (narr-attori) solisti, Marco Baliani, Marco Paolini, Ascanio Celestini, intavolano un rapporto significativo tra palcoscenico e spettatori, ricostruendo alcune delle tragedie che hanno insanguinato l'Italia nei decenni del dopoguerra, stimolando l'impegno e la riflessione civica, e operando un recupero della memoria collettiva. Lo scopo di questo studio è di analizzare la concezione e le forme del teatro di narrazione, e di considerare le modalità degli spettacoli rappresentativi dei tre suddetti narratori. 1980년대 중반 이탈리아에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내레이션 연극(Teatro di Narrazione)’은 1990년대에 꽃을 활짝 피우며, 이후 현재 이탈리아의 주류 연극 현상으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이탈리아 내레이션 연극’이란 등장인물이라는 장치 없이 ‘공연자’가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지닌 채, 스토리들을 연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레이션(narrazione, 이야기하기, 구술)’ 형식을 통해 ‘혼자서’ 공연을 펼치는 연극형식이다. 따라서 극은 배우나 배우의 행동이 없고 ‘나라토레(narattore, narr-attore, 내레이터 혹은 내레이터-배우를 가리키는 명칭)’라고 불리는 공연자가 이끈다. 공연자는 ‘문학’에서 유래한 작품들을 새로운 각색과 독특한 해석을 통해 재탄생시키거나 새로운 텍스트들을 창작해내고, 그 언어를 가지도 연출가라고도 할 수 없다며 총체적인 의미에서 ‘예술가’라고 지칭한다. 이렇게 작업하는 공연자를 가리켜 이탈리아에서는 작가라고도 배우라고도 할 수 없다며 총체적인 의미에서 ‘예술가’라고 지칭한다. 이들 내레이션 연극의 흐름은 크게 두 세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 번째 세대는 마르코 발리아니와 마르코 파올리니를 선두로 한 이들로, 무대와 관객 사이의 의미 있는 관계의 재구축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전후 수십 년간 이탈리아의 피비린내 나는 비극적사건들(우스티카 학살사건, 모로 살인 사건, 바욘트 댐 붕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연구한 후 재구성해 무대 위에서 내레이션을 통해 펼치는 젊은 예술가들이다. 두 번째 세대는 아스카니오 첼레스티니가 대표적이며, 이들은 동화와 비극과 낭만적 현실 사이, 음악과 내레이션 사이, 내레이션과 캬바레 쇼 사이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내레이션을 펼친다. 특히 최근 들어 파올리니와 첼레스티 공연들은 음악과 노래를 혼합해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따라서 관객들은 한편의 극이 장르들 사이의 경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결과 현재 ‘내레이션 연극’은 이탈리아 관객이 가장 몰입하는 주류 흐름으로 자리 잡았고 이들의 막힘없는 행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는 이탈리아의 현대 내레이션 연극의 ‘형식’과 내레이션 연극인들 3인의 대표적 ‘공연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 KCI등재

        이탈리아 비즈니스에 미치는 문화의 영향력에 관한 연구

        허유회 한국이탈리아어문학회 2018 이탈리아어문학 Vol.0 No.55

        Different countries have different cultures from the influences of its religions, custom, norms and tradition. Italy has its unique cultures that influence people’s daily life as well as its business practices, especially in international business. It is essential for foreigners or multinational companies in Italy to understand those cultures and use them appropriately to work better with Italian partners. This paper mainly focuses on five elements of the Italian culture, which are language, religion, social institution, education and value system. All of these critical aspects of the Italian culture have strong influence on the way how to do business in Italy. 오늘날과 같이 기업이 범세계적으로 비즈니스 활동을 전개하는 경우에는 현지국가의 이질적인 사회-문화 환경이 글로벌 비즈니스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비즈니스 수행자는 현지 시장의 문화적 이질성과 유사성을 파악하고 비즈니스 활동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진 것이다. 글로벌 국가들은 태도, 신념, 의식, 동기부여, 지각, 도덕성 등 여러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고, 이러한 차이는 시장에서의 소비자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전 세계로 확장된 타 국가의 비즈니스 파트너에 대한 이해는 비즈니스의 성공을 위해 긴요하다. 이런 현상이 비즈니스에 미치는 함의는 타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 되었다는 점이다. 세계화 시대의 기업 활동은 타문화권의 파트너와 거래와 협상을 통해 비즈니스를 수행하게 되었으며, 시장자유화, 국제적인 M&A 등에 의해 국제비즈니스에서의 문화적 다양성의 이해도의 중요성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Czinkota와 Robinson (1998)은 ‘국제시장에서 문화가 가장 도전적인 요소’라고 지적한다. 본 연구의 대상국가인 이탈리아 공화국(Repubblica Italiana)는 남유럽의 이탈리아 반도와 지중해의 두 섬 시칠리아 및 사르데냐로 이루어진 20개 주, 약 6천만의 인구로 구성된 단일 의회 공화국으로 타 유럽 국가들과 오랜 역사를 걸쳐 교류해 왔지만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갖고 있다. 이탈리아의 문화는 인접 유럽 국가들과 문화적 유사성도 있지만, 많은 점에서 차이가 존재하기에(Hooper, 2015), 본고는 이탈리아 비즈니스에 영향을 중요한 미치는 이탈리아의 문화적 특성을 분석함에 있어, 국제마케팅과 문화 간 협상 (cross-cultural negotiation)분야에서 권위 있는 연구서인 Czinkota와 Robinson (1998)이 제시하는 문화의 보편적인 요소인 언어, 종교, 사회제도, 교육, 태도와 가치를 분석의 틀로 하여, 이러한 보편적 요소가 이탈리아 문화에서 타 문화권과의 상이성, 그리고 이탈리아 비즈니스에서 어떤 영향력이 있는지를 고찰하려한다.

      • KCI등재후보

        Federico De Roberto의 『I Vicerè』 에 나타난 이탈리아 통합 - 『Il Gattopardo』 와의 비교

        김영숙 한국이탈리아어문학회 2022 이탈리아어문학 Vol.- No.66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troduce a writer, Federico de Roberto and his work, I Vicerè. Second, it is to reveal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y comparing and analyzing Gattopardo. Lastly, I tried to remind you again that art reflects reality through the publication of these two novels and the screening of movies. Federico de Roberto was not illuminated during his lifetime, but was properly recognized when I Vicerè was published in 1984 and made into a film in 2007. In Korea, the movie I Vicerè was screened in 2012, but it did not receive much attention, so I would like to introduce the artist and his work at this opportunity. Next, I Vicerè and Gattopardo are compared and analyzed. The former tells the history of the Italian integrated from Spanish rule and the latter tells the story of the descendants of the Don Fabricio family in 1910 from the time of Garibaldi's landed in Sicily in May 1860. Analyzing the two works, the gattopardismo was also found in I Vicerè published in 1894, but rather, it was found that the Uzeda family revealed such a tendency much more dynamically and explicitly by becoming a Roman member of the Italian Parliament. In terms of description, Gattopardo is concentrated on one of Fabrizio of the Salina family, but in I Vicerè the protagonists of various voices appear to avoid a specific perspective. The two works have similarities in many ways: the historical perspective of Risorgimento, the speaker is a nobleman, and Southern Sicily background. Also both works were made into movies, and after that, the artist and work were illuminated. There are differences. The big difference between the two works is that in Gattopardo, the Southern Salina family refuses to participate in Unified Italy and disappears from history, while the Uzeda family actively integrates and continues to maintain power. In this regard, it was possible to understand the perspective about Risorgimento of the public who loved Gattopardo in the 60s and the public who loved I Vicerè. 이 연구의 목적은 페데리코 데 로베르토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 『총독가』를 국내에 소개하면서 리소르지멘토 시기에 이탈리아 남부 귀족이 통합의 역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행동했는지 『표범』과 비교하는 데 있다. 페데리코 데 로베르토는 1861년에 태어나 1927년에 사망한 작가로, 저널리스트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으며 베리즈모의 대가 베르가와 함께 문학 서클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1984년 『총독가』의 출판 이후이다. 그는 아주 훌륭한 작가였지만 현대 이탈리아 문학가로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총독가』가 잠시 그에게 유명세를 주기는 했지만 이탈리아 현대 문학계에서 중요하게 논의되지 않을 정도로 홀대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탈리아 학계에서 그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일어난 때는 2007년 이후이다. 로베르토 파엔차 감독이 『총독가』를 영화로 만들면서 데 로베르토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반면, 국내 외국 문학 분야에서 페데리코 데 로베르토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 2007년 영화로 제작된 『총독가』가 국내에 알려지게 된 것은 2012년 무렵이었다. 영화는 일부 이탈리아 영화 애호가들에게 잠시 알려졌을 뿐 대중적 사랑을 받지 못했고 또한 작품이 번역되어 소개되지도 못했다. 이 연구를 기회로 국내에 페데리코 데 로베르토가 연구자들에게 소개되기를 바란다. 동시에 이탈리아 리소르지멘토 시기의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한 또 하나의 소설,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표범』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이탈리아 통합의 의미를 다시금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1860년대 이탈리아 리소르지멘토 시기에 시칠리아의 우제다 가문(총독가)과 살리나 가문(표범)의 대응을 통해 그리고 콘살보와 탄크레디의 역사적 행보를 통해 두 가문이 근대국가로 발돋움하려던 이탈리아 통합을 어떻게 인지했는지를 고찰하는 작업은 현시대의 우리 정치계에도 경종을 울리는 일면이 될 것이다. 리소르지멘토가 일어나고 귀족의 권력과 권위가 빠르게 침식될 국면에 우제다 가문은 새로운 시대에 빠르게 변신을 시도하여 성공적으로 새로운 의회 국가의 권력층으로 진입한다. 우제다 가문의 이러한 정치적 방향성은 오늘날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일정 부분 되풀이되어왔고 또한 경계해야 할 보편적인 모습이다.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바람직하지 못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상기시키는 데에도 일조할 것이다.

      • KCI등재후보

        이탈리아 가톨릭교회의 정치적 영향력과 전략에 관한 연구: 1945년-1992년을 배경으로

        허유회 한국이탈리아어문학회 2020 이탈리아어문학 Vol.0 No.60

        The Catholic Church has employed different strategies to influence Italian politics. The objective of this thesis is to find out which strategies the Catholic Church has used, with emphasis on the period between 1945 and 1992. The analysis focused on three strategic ways in which the Catholic Church influences Italian politics. First, party politics. Second, through Catholic organizations and movements. Third, through popular referenda. Theories on how the Catholic Church, and in some extent religious groups in general, can influence political parties, organizations, and referendums, have also been presented. In Italy, organizational links have been most evident between the Catholic Church and the DC. The DC was a part of the Italian government for more than 45 years. The DC was strongly supported by the Vatican. This is one concrete example of how the Catholic Church attempted to affect Italian politics through a political party. Religious organizations, movements and interest groups are some channels through which the Catholic Church can affect politics. Through organizations and movements, the Catholic Church can affect politicians, and try to set an agenda for political causes of importance to the Church. Political role of religious organizations was almost exclusively connected to the DC during the First Republic. During the post-war era, the Catholic organizations supported the DC. which made a great impact on the power and influence of the DC on Italian politics. This again gave the Catholic Church great influence on Italian politics. The Catholic Church has also worked strategically towards different policies. As example of this is how the catholic Church work with referendums regarding the non-negotiable values. Referendums increases the potential of Catholic Church to act politically. Referendums are the most veto points which churches can use. The Catholic Church in Italy with a high mobilization potential, has attempted to use referendums in overturning, restricting, and maintaining laws. 제2차 세계대전 말기부터 제1공화국 붕괴시점 기간 동안 이탈리아의 가톨릭교회가 정당, 가톨릭 단체, 국민투표라는 간접적인 참여 수단을 통해 이탈리아 정치에서의 영향력을 행사한 전략을 분석하였다. 종전 이후 가톨릭 신앙에 기초한 이탈리아 사회의 기존 질서와 제도를 위협하는 좌익 세력을 통제하기 위해 가톨릭교회가 채택한 정치적 전략은 정당을 통해 강력한 정치적 힘을 구축하는 것이었고, 이런 전략에 의해 선택된 DC는 가톨릭교회에 의해 막강한 정치 세력이 되었다. 전후 45년 이상 집권한 DC는 그 출발부터 가톨릭교회의 절대적인 후원에 기반 하였고, 이 현상은 가톨릭교회가 정당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분명한 사례였다. 특히 1948년 선거의 압승 이후 장기 집권이 가능했던 이유도 가톨릭교회의 전 방위적 개입이었고, 이런 형태로 DC는 이탈리아 근대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정당으로서의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동시에 가톨릭교회는 DC라는 정당을 통해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국가의 정책형성방향과 정치적 의제(agenda) 설정에 상당한 정도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다. 종교 단체, 시민운동, 이익 집단의 활용은 가톨릭교회가 이 시기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주도해 온 두 번째 전략이었다. 이러한 단체들과 기구들의 활동을 통해 교회는 정치 세계를 후원 또는 압박하여 교회에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정치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는 의제를 설정하려 노력한 것이다. 공공영역과 정치 영역에 있어 가톨릭신도들을 동원하여 정치 행동을 유도하고, 해당 목표 달성을 위한 단체를 결성하고, 이와 연관된 정당을 지지하는 종교집단의 정치적 기능을 명백히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2차 대전 후 이탈리아의 경우이다. 전후시기에 정치적 존재감이 미미했던 DC를 강력한 대중 기반을 갖춘 정당으로 변모시켜 이탈리아 정치에 있어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을 구비한 집권 세력으로 키우고, 이와 비례한 가톨릭교회의 정치적 영향력을 증대시킨 바티칸의 전략은 가톨릭 평신도 단체를 활용한 것이었다. 1948년 이후 DC에 소속된 이익집단 성격의 가톨릭 단체들은 교회가 동원한 수 백 만 명의 회원과, 이들에 의한 전국적 조직망을 통해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단체인 Azione Cattolica는 1948년 총선의 DC 승리를 위해 가톨릭 정당 조직과 운영에 효과적으로 동원되었고, DC 정치인 양성을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DC가 장기집권을 통해 이탈리아 정치에서 최고의 위상을 확립한 역사는 가톨릭 단체를 이용한 교회의 전략의 효과성을 입증한다. 현재에도 정치적, 사회적 지지를 받고 있는 수많은 가톨릭 계열의 단체와 운동이 정치영역에서 이익 집단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바티칸은 이들 집단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지원하여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방식은 매우 전략적이다. Diotallevi 2016, p.89 DC 붕괴 이후 가톨릭교회가 특정 정당이 아닌 시민사회 안에서의 단체들을 활용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전략은 지속될 전망이다. 국민투표제도가 이탈리아 가톨릭교회의 정치력 행사를 위해 채택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수단인 이유는 교회가 국민투표 회부 위협이 가능한 정족수의 신도를 동원할 수 있는 커다란 잠재력과 국민 대다수의 가톨릭 신도들에게 교회가 직접 설득할 수 있는 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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