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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림자원 용익(用益)에 관한 공동체적 규범의 형성과 국가의 역할: 조선후기와 식민지기

        이우연 ( Woo Youn Lee ) 쌀.삶.문명연구원 2011 쌀삶문명 연구 Vol.4 No.-

        본고의 목적은 조선시대의 산림소유권의 발전과 식민지기의 변화를``소유권체제(所有權體制)``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사용·수익의 실태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이 과정에서 국가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였는지 밝히는 것이다. 조선왕조는 산림의 사적소유를 금지하였고, 산림자원은 무주공산(無主公山)=자유접근체제 하에서 선착순의 원리에 따라 이용되었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사실상의 소유로서 사적소유권체제가 발전하였지만, 자유접근체제는 20세기 초까지 존속하였고, 그 결과 산림자원은 고갈되었다. 일본의``입회(入會)``와 같은 공유재산체제의 발전은 미미하였다. 조선총독부는 법률과 정책에 입회와 유사한 형태의 공유재산체제를 도입하였고, 해방이후 산림계조직으로 계승된다. 이는 자유접근체제가 지배적일 때 국가가 농민에게 공유재산체제를 강제하여 산림자원의 고갈을 막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Private property rights on forest land developed in Korea from the17th century. However, the tradition of Moojoogongsan, which is classified as open-access system according to property rights system, was still prevalent in the early 20th century, and some rules of Moojoogongsan concerning secondary forest products applied even to privately-owned forests. Since the tradition of Moojoogongsan caused deforestation,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as well as Korean government after liberation, sought to terminate this custom introducing communal property system similar to Japanese Iri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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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 : 식민지기(植民地期) 임업(林業)의 근대화: 채취임업(採取林業)에서 육성임업(育成林業)으로

        이우연 ( Woo Youn Lee ) 경제사학회 2005 經濟史學 Vol.38 No.-

        20세기 초 朝鮮의 山林은 荒廢하였다. 식민지기를 통해 전국적으로 人工造林이 실시되었다. 그 실적은 해방 이후 한국의 ?治山綠化事業?의 실적에 비견할만하다. 총독부의 造林?勵政策과 조선인과 일본인의 참여로 인해 인공조림은 확산되었다. 총독부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특별한 권리자가 없는 국유임야를 민간인에게 貸付하고 조림에 성공하면 所有權을 讓與하는 造林貸付制였다. 조림대부제의 誘因體系에 대하여 조선인도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급속한 인구증가와 대체연료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인공조림이 확산되어 1942년까지 전국의 林相은 개선되었다. 북부 原始林의 伐採로 인해 이 곳의 산림은 감소하였지만, 그 수익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造林投資를 위한 財源으로 사용되었다. 식민지기에 실시된 인공조림은 조선의 林業의 體制轉換을 의미한다. 掠奪的 採取林業에서 造林投資를 병행하는 育成林業으로 전환한 것이다. 조선후기까지 광역적 인공조림의 사례가 없고 그 결과 조선후기의 산림황폐가 심각하였다는 점에서, 육성임업으로의 전환을 朝鮮 林業의 近代化로 규정할 수 있다. Korean forests had been in severe devastation in the early 20th century. The first and extensive afforestation began in the colonial period and attained as good result as Koreans accomplished in the "Reforestation Campaigns" after liberation. The success of the colonial period was made possible by forestry policies of Government-General and positive responses of Koreans and Japanese. For example, Government-General lent the deforested national forests to peoples who wanted to plant trees, and the lands could be transferred without compensation when they succeeded in the reforestation. Owing to the expansion of afforestation, the general condition of Korean forests improved from 1910 through 1942 in spite of rapid growth of population and fuel demands. Whether many primitive forest trees were cut down in the northern hinterland, the returns from them were used to foster the reforestation in southern region where the forest devastation was more severe problem. This process means a regime-shift from appropriative to regenerative forestry. It can be called as modernization of Korean forestry in that there had been no remarkable efforts for forestation and forest land had ever been overexploited bef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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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임금의 추이 ; 1853 ~ 1910

        이우연(Woo Youn Lee) 경제사학회 2000 經濟史學 Vol.29 No.-

        前近代社會에서 임금은 生活水準을 평가하는 중요한 指標가 된다. 본고의 목적은 兩班家置簿類를 통하여 19세기 후반 농업임금의 수준과 추이를 밝히는 것이다. 먼저 日雇와 年雇의 명목임금계열을 작성하고 이를 米價와 纖物價를 이용하여 실질계열로 전환한다. 실질임금변동의 원인을 추구하기 위하여 米作生産性의 動向을 살펴본다. 끝으로 魚鹽 및 織物에 대한 米의 相對價格을 검토하여 19세기 후반 농업생산성 하락이 1개 地主家에 한정된 局地的 현상이 아니라 일반적 농업변동 양상이며, 실질임금 하락의 직접적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확인한다.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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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노비 가격의 구조와 수준, 1678-1889

        이우연 ( Myung Soo Cha ),차명수 ( Woo Youn Lee ) 韓國經濟學會 2010 經濟學硏究 Vol.58 No.4

        이 논문의 목적은 노비 매매 문기에서 수집된 거래 정보에 헤도닉 분석 기법을 적용해서 조선 후기의 연령대별 奴와 婢 가격, 그리고 노비 가격 지수 시계열을 추정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노의 가격이 30대에, 비의 가격은 20대에 절정에 달하는 뒤집어진 U 모양의 연령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명목 노비 가격 지수는 곡물 가격 및 토지 가격과 유사한 시간 추세를 따랐는데 이는 통화 공급의 변화로 설명될 수 있다. 명목 가격을 쌀 가격으로 나누어 얻은 실질 奴婢 가격 지수는 18세기 동안에 하락한 뒤 19세기 초에 안정되었다가 19 세기 중·후반에 다시 하락했다. 이 같은 장기 추세는 이자율, 사망력, 노비 관리비용 변화 추세와는 일치하지 않으며 실질 임금 하락에 나타나는 노동의 한계생산성 하락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Applying hedonic regression technique to slave transactions data, this article estimates prices of Korean slaves from 1678-1889. Female and male slave prices followed an inverted U-shaped age pattern reaching peaks in their twenties and thirties, respectively, with female slaves being more expensive than male slaves. Nominal slave prices tended to fall until around 1740 and then to rise, a pattern also found in grain and land prices and consistent with a trend in money supply. Slave prices as standardized by rice prices tended to fall in the eighteenth and nineteenth centuries, which indicates declining marginal productivity of la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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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나라 금융 산업에서의 학력별 임금 격차,1922-2011 Educational Wage Gap in Korea, 1922-2011 : Evdence from Financial Industry

        차명수 ( Myong Soo Cha ),황준석 ( Junseok Hwang ),이우연 ( Woo Youn Lee ) 경제사학회 2014 經濟史學 Vol.56 No.-

        이 논문은 조선 식산은행의 퇴직사망대장과 고용노동부가 제공하는 마이크로 데이터를 분석해서 금융산업에 종사하는 학력이 다른 사무직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격차가 지난 한 세기간 어떻게 반했는지를 추정한다. 추정결과는 고졸자에 대한 초졸자 임금 열세는 제 2차 세계대전이전과 최근 반세기동안 추세적으로 완화되었음을 보여준다. 고졸자에 대한 대졸자 임금 우위는 1980년대와 1990년대처럼 완화된 시기도.1970년대와 최근 10여년간처럼 강화된 시기도 있었는데 식민지기 전체나 해방이후 시기 전체에 걸쳐 뚜렷한 추세를 말하게 여렵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한세기 동안 금융산업에서의 학력별 임금 격차는 완만히 수축됐다고 할수 있는데 어떻게 보더라도 확대 추세라고는 하기 어렵다. We estimate sKill premium in the Korean financial industry during 1922-1944 and during 1980-2011 using presonnel records left by the Development Bank of Colonial Korea and micro data provided by the Ministry of Labor of South Korea . Wage pre mium en joyed by university over high school graduates stagnated in the following decades. Such evidence suggests that returns to education tended to decline slowly or at least not to widen in Korea over the real interest rate as calculated from seasonal fluctuations in rice pr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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