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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에서 <전달>이란 무엇인가

        이마이야쓰오 ( Imai Yasuo ),한현정 한국교육철학학회(구 교육철학회) 2012 교육철학연구 Vol.34 No.4

        다자이 오사무(太宰治1909-1948)의 대표적 단편소설. 그리스 신화의 에피소드와 독일 시인 쉴러의 시를 바탕으로 창작. 1940년 발표. 보통 ‘훈련’이라고 번역되는 “Zucht”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지므로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단 헤르바르트가 말한 Zucht도 외면적 행동과 내면과의 연결에 주목하고 있다. 그것은 내면에의 작용을(관리처럼 암암리가 아닌 명시적으로) 목적으로 하고 학생의 행동에 작용하는 교사의 활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잊혀진 연관(한국어: 『가르치기 힘든 시대의 교육』)』의 졸역에서는 이 단어의 교육학적 의미내용을 계승해서 ‘대표적 제시’라는 부자연스러운 번역어를 붙였지만, 본고에서는 일반적인 문맥과의 연관을 중시하여 ‘표상’이라는 용어로 통일하고자 한다. 단, 그러한 일반적 ‘표상’의 문맥에 환원될 수 없는, 교육 장치로서의 representation의 함의가 본고에서도 부각될 것이다. ‘메논’의 해당 부분에서 플라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단지 우연히 그것을 만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의 ‘미지’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확하고 유일무이하게 논하고 있는 것처럼(Aristotle,1971,p615) 예를 들어 삼각형에 관해 ‘알고 있다’는 것은 삼각형의 개별적 내지 유형적 경우를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삼각형 일반에 관해 어떤 이해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삼각형에 관해 ‘미지’한 사람이란 삼각형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사항에 대한 이해는 원래 어떻게 해서 가능한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이다. 교육에 있어서 이것은 극히 실천적인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역사교육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각 사람이 그 사람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 상태를 최종적으로는 목표로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토피카』 제6권, 제 4장에서 ‘정의(定義)의 순서’와 ‘이해하기 쉬운 순서’의 차이를 세세한 데까지 다루어 논하고 있다. 정의의 순서는 점→선→면→입체이지만(선은 점으로 정의되며, 면은 선으로 정의되는 등등) 이해하기 쉽다는 점에서는 입체가 친근하고 이해하기 쉬운데 비해 선과 면은 추상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워 순서가 반대로 되는 것이다. (Aristotle, 1970, p173) 과학적인 표상이 전자인 내용의 논리에 따르고 있다면 교육적인 표상은 후자인 이해와 설득의 논리를 따른다. 몰렌하우어는 이 현실의 왜곡 문제를 표상에 고유한 문제로서 보고 있는데 (Mollenhauer, K.: Vergessene Zusammenhange. Uber Kultur und Erziehung, Munchen: Juventa 1983 = 『잊혀진 연관』 今井康雄역、みすず書房、1987年(1983:p76=1987:p89] 이처럼 레토릭적 설득문제와 연결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레토릭을 궤변이나 선동과 동일시할 수 없다. 긴즈부르크가 설득적으로 논한 것처럼 특별히 인문과학영역에서는 레토릭은 학문적인 논증과 불가분한 것이다(Ginzburg 『역사?레토릭?입증』 上村忠男역、みすず書房、2001年). 이런 의미에서는 주5의 과학 논리와 이해 설득의 논리의 대치는 상대화될 필요가 있다. 심리학에서 일정한 조건반사가 형성되면 최초의 조건자극과 비슷한 자극에 의해서도 같은 반응이 일어나는 현상을 말함. (번역자 주)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물론 때마침 알지 못했던 개별적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주 4를 참조. ‘있을 법한 것’으로의 전환이라는 기능 면에서 뿐만 아니라 겹침 내지 상호함입이라는 구조면에서도 미디어 개념과의 합치를 볼 수 있다. 내가 여기서 상기하고 있는 것은 현대 미디어 이론의 한 원류가 된 발터 벤야민이다. 그의 사상이 품은 미디어 개념은 예를 들어 그의 ‘성좌(Konstellation)’ 라는 사고상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겹침 내지 상호함입을 요건으로 한다.(今井,1998) 미디어에 의해 열려진 자유공간이 계속 그 가치를 유지한다는 보증은 없다. 오히려 개개인을 그 자발성 영역에까지 비집고 들어가서 통제하기 위해 자발성을 끌어내는, 그 계기로서 자유공간이 이용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러한 미디어에 의한 자발성의 동원으로 향하는 경향이 ‘발문’이라는 장치에 있다는 것은 이미 보았다.(Imai,2007a) 내가 여기서 상기하고 있는 것은 ‘접촉’을 둘러싼 교육학적 의미세계(Semantik) - 그것은 ‘발문’의 타케다에게도 나타났다- 만은 아니다. 몰렌하우어가 그 슐라이에르마허론에서 인용하고 있는 아테네움 단장의 한 구절이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누군가 타인의 윤곽을 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일 없이 많은 기복을 가로질러 빠짐없이 접해 본 일이 당신에게는 한 번이라도 있는가? 자신이 교양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관해 당신들 두 사람은 그 이외의 증거를 보일 필요는 없다(Mollenhauer, 1986, p141).’ 슐라이에르마허= 몰렌하우어에 의하면 이러한 사교적 배려를 결핍한 ‘아이의 신체에의 직접적인 개입’은 ‘뻔뻔스러움’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ibid.: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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